투고일_2018.10.10 심사기간_2018.11.01-18 게재확정일_2018.11.19
한·중·일 그래픽에 나타난 서구 디자인의 영향 - 유입, 수용, 재해석 과정을 중심으로 The Influence of Western Designs on the Graphics of Korea, China and Japan - fucused on the processes of introduction, acceptance and reinterpretation
이봉만, 홍익대학교 국제디자인전문대학원 / 나 건(공동저자), 홍익대학교 국제디자인전문대학원 Lee, Bong Man_International Design school for Advanced Studies, Hongik University / Nah, Ken_International Design school for Advanced Studies, Hongik University
차례 1. 서론
1.1. 연구배경 및 목적 1.2. 연구내용 및 범위
2. 바우하우스에 관한 이론적 고찰
3. 서구 디자인의 유입, 수용과 전개 3.1. 일본
3.2. 한국 3.3. 중국
4. 재해석을 통한 디자인의 문화적 정체성 추구 4.1. 일본, 화혼양재를 통한 디자인의 세계화 4.2. 한국, 동도서기를 통한 디자인의 민족화 4.3. 중국, 중체서용을 통한 디자인의 국제화
5. 결과
6. 결론
참고문헌
한·중·일 그래픽에 나타난 서구 디자인의 영향 - 유입, 수용, 재해석 과정을 중심으로 The Influence of Western Designs on the Graphics of Korea, China and Japan - fucused on the processes of introduction, acceptance and reinterpretation
이봉만, 홍익대학교 국제디자인전문대학원 / 나 건(공동저자), 홍익대학교 국제디자인전문대학원 Lee, Bong Man_International Design school for Advanced Studies, Hongik University / Nah, Ken_International Design school for Advanced Studies, Hongik University
요약 본 연구는 한·중·일 그래픽 디자인에 나타난 서구 디자인의 영향에 관한 것으로, 20세기 초 서구 모던디자인의 유입, 수용, 재해석 과정을 중심으로 삼국의 디자인 전개 과정을 고찰하였다. 연구범위는 근대화 과정에서 만들 어진 수많은 사물 가운데 동아시아 삼국의 시각 문화 중 하나인 포스터를 중심으로 하였다. 연구내용은 첫째, 20세기 현대 디자인의 원천인 바우하우스에 대해 그래픽 디자인 관점에서 문헌연구를 진행하였다. 둘째, 서구 모던디자인이 유입되고 이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바우하우스의 영향을 받은 그래픽 디자이너의 작품을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셋째, 서구 디자인의 무분별한 수용으로 모방은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삼국 그래픽 디자이너들의 정체성 추구와 방법론에 관해 살펴보았다. 연구 결과, 한·중·일 삼국의 디자인 전개 과정 은 비슷한 양상을 보였으나 결과에서는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예컨대 일본은 화혼양재의 디자인 방법론을 통해 일본의 전통적인 스타일을 현대화시킨 과정에는 서구에서 약동한 움직임을 단순한 스타일이 아닌 동시대 적 시각전달의 기본 원리로 받아들이고 재해석하는데 매진했다. 결과적으로, 이는 일본 현대 디자인의 한 장르 로 분명히 자리 잡고 있다. 중국은 비록 늦은 출발이지만, 홍콩의 중체서용 디자인 방법론을 통해 짧은 기간 동 안 중국 그래픽 디자인이 국제적인 명성을 확립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홍콩의 디자인 정체성은 서구적 양식 의 외적 표현이라기보다는 ‘동·서양 만남’의 정신적인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에는 동시대 스타일로서의 ‘한국적 디자인’이라는 것을 이룩하지 못했다. 물론 한국도 동도서기 디자인을 추구하며, 전통적 인 소재를 현대적 기법으로 표현하였으나 이는 서구 정신에 대한 이해 없이 물질적 일면만 받아들인 것이다. 삼 국의 정체성 추구에 대한 노력이 동일해 보이는데도 그 결과가 크게 다른 점에 대해서는 후속연구로 남기고자 한다.
This study was to investigate the effects of Western designs on the graphic designs of Korea, China, and Japan, tracing the development processes of design in the three nations around the introduction, acceptance, and reinterpretation of modern Western designs in the early 20th century. The scope of research was restricted to posters as part of the visual culture in the three East Asian nations. The content of research was as follows: first, literature study was conducted on Bauhaus, which was the source of modern designs in the 20th century, from the perspective of graphic design; second, the works of graphic designers were analyzed who were influenced by Bauhaus in the process of introducing and accepting modern Western designs; and third, copying became a social issue due to the reckless acceptance of Western designs, and the study examined the pursuit of identity and its methodologies to overcome it among graphic designers in the three nations. The findings show that the three nations had similar patterns in the development process of design but showed differences in the outcomes. Japan, for instance, adopted the design methodology of Wakon-Yosai and was devoted to accepting and interpreting movements that originated in the West as the basic principles of contemporary visual delivery rather than simple styles in the process of modernizing its traditional styles. As a result, it has certainly established itself as a genre of modern Japanese design. China made a late start, but the Zhongtixiyong design methodology of Hong Kong played a huge role in China's graphic design establishing an international reputation in a short period of time. The design identity of Hong Kong was the spiritual aspect of "encounter between East and West" rather than the external expression of Western styles. South Korea, however, failed to achieve "Korean-style design" as a contemporary design. It also expressed its traditional materials in modern techniques in pursuit of Dongdoseogi design, but it was the acceptance of only materials aspects without the understanding of Western spirit. Follow-up study will have to cover huge differences in outcomes among the three nations despite their seemingly same efforts to pursue identity.
중심어
한국, 중국, 일본 서구 디자인 그래픽 디자인 재해석
ABSTRACT Keyword
Korea, China, Japan Western design Graphic design Reinterpretation
1. 서론
1.1. 연구배경 및 목적
세계는 지금 서구문화가 주도하고 있다. 아프리카와 남미 원시 부족, 중국의 상당 부분 그리고 이슬람 문명권 등을 제외하고는 서구문화가 전면적으로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떠한가?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의 정치·경제, 관습과 제도, 의식주 생활문화 나아가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까지 모두 서구화되어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대 서구 문물이 밀려오자 방어적인 논리로 한국은 동도서기(東道西器), 중국은 중체서용(中 體西用), 일본은 화혼양재(和魂洋才)론을 폈다. 이는 동양의 정신(oriental spirit)을 중심에 두고, 서구의 발달한 기술(western technology)을 유연히 수용하는 자세를 이르는 것으로, 한중일 삼국이 서구 열강의 거센 물결에서 살아남기 위한 동양인의 지혜를 압축해 표현한 말이 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동일해 보이는 이러한 명제들은 그 결과가 크게 다르다는 점에서 주목 해 볼 필요가 있다. 중국 서적 ‘동아시아의 삼국지’에 의하면 한국은 “수용 문화와 자신 보험 문화”, 중국은 “기여 문화”, 일본은 “수용 문화”라고 하였다.1) 한국은 외래문화를 받아들이면서 도 본국 문화를 수호하는 의식이 강했으며, 중국은 대국 의식이 농후하고 외래문화의 중국화에 전념하며, 일본은 외래 선진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강하여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2) 그렇다면 디자인영역에서는 어떠한가? 삼국의 유사한 명제가 보여주듯 디자인 영역 또한 예외 가 아니다. 서구의 모던 디자인은 보편성의 날개를 달고 세계 여러 국가와 지역으로 퍼져 나갔 다. 앨런과 줄리아 럽튼(Ellen Lupton & Julia Lupton)은 ‘보편적 디자인의 역습’3)이라는 에세 이에서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비약적 발전으로 전례 없이 모든 사람이 시각언어를 다룰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이는 기술의 발전이 낳은 새로운 의미의 보편성이며, 이렇게 양산된 결과물은 서로 비슷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국가에서는 자국의 고유한 전통과 모던 디자 인 양식을 접목시켜 독자적인 발전을 이룩했다.
본 연구는 한·중·일 그래픽 디자인에 나타난 서구 디자인의 영향에 관한 것으로 유입, 수용, 재해석 과정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전통공예를 기반으로 해왔던 동아시아 삼국은 20세 기 초 서구 디자인이 도입되면서 무분별한 모방은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이러한 단계를 극복 한 이후, 디자인의 정체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국의 고유한 전통과 모던 양식을 어떻게 접목하여 독자적인 발전을 이룩했는지 한·중·일 대표적인 그래픽 디자이너의 포스터 작품을 중심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1.2. 연구내용 및 범위
본 연구는 한·중·일 그래픽 디자인에 나타난 서구 디자인의 영향에 관한 것으로, 20세기 초 모던디자인의 유입, 수용, 재해석 과정을 중심으로 삼국의 디자인 전개 과정을 고찰하였다.
연구 내용은 첫째, 20세기 현대 디자인의 원천인 바우하우스에 대해 그래픽 디자인 관점에서 문헌연구를 진행하였다. 둘째, 서구 모던디자인이 유입되고, 이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바우하우 스의 영향을 받은 그래픽 디자이너의 작품을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셋째, 서구디자인의 무분별 한 수용으로 인한 모방은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삼국 그래픽 디자이너 들의 정체성 추구 단계와 방법론에 관해 살펴보았다.
연구방법은 각국의 전통이 모던 디자인과 만나 어떻게 현대 그래픽으로 재해석 되는지 사례를 통해 분석하고자 한다. 연구범위는 근대화 과정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사물 가운데 동아시아 삼국의 시각 문화 중 하나인 포스터를 중심으로 하였다. 디자인은 산업화와 연결되어있어 산업 화 발전 단계에 따라 삼국의 디자이너와 작품은 시대적 차이를 보인다. 따라서 연구내용은 산업화 발전 단계에 따른 일본, 한국, 중국 순으로 정리하였다.
1) 金文学, 『东亚三国志』, 贵州人民出版社, 2011, p.103 2) 金文学, 앞의 책, p.53
3) 헬렌 암스트롱, 『그래픽 디자인 이론: 그 사상의 흐름』, 비즈앤비즈, 2009, p.13 재인용
Lupton, Ellen and Julia,, 『Universe Strikes Back』, 2007. An edited form of this essay was published as “All Together Now”, Print 61, no.1(Jan-Feb 2007), pp.28-30
2. 바우하우스에 관한 이론적 고찰
1919년 독일 바이마르에 바우하우스(Bauhaus)4)가 설립되었다. 이 학교의 주축 멤버는 순수 하고 객관적인 자세를 추구하기 위해 표현주의 예술이 야기한 왜곡된 주관적인 관점에 맞서 기계적 아름다움을 강조한 러시아의 구축주의(Constructivism, 1917)5), 이탈리아의 미래주 의(Futurism, 1909-)6), 네덜란드의 데 스틸(de Stijl, 1919-31)7) 사상을 모델로 삼고 활동 했다<그림 1>. 라즐로 모홀리나기(László Moholy Nagy, 1895~1946)를 중심으로 한 바우 하우스 학파는 객관적 표현을 통해서만이 진실되고 명확하게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고 믿었고, 이에 따라 예술가는 감정을 철저히 배제하고 이성적이고 보편적인 접근을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8) 정확하고 명료한 의사소통에 대한 생각에 고무된 허버트 바이어(Herbert Bayer, 1900~1985)와 요제프 알베르스(Josef Albers, 1988~1976)를 포함한 바우하우스 교수들은 객관적 표현에 걸맞은 이상적인 형태를 찾고자 주관적이고 애매하다고 생각되는 시각 요소를 몽땅 뿌리 뽑으려 했다<그림 2>.9) 모홀리 나기는 ‘타이포포토(Typophoto)’라는 글에서 “세 상이 점점 깨끗해지면서 건강한 시각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10)는 말로 자신의 희망찬 생각을 밝혔다. 이렇듯 디자인은 예술과 달리 주관적인 표현보다는 객관적인 사고를, 감정에 치우치기 보다는 이성적 태도를 중시하였다.
<그림 1> 미래주의 F.T.마리네티, 1912
구축주의 엘 리시츠키, 1919
데 스틸
피에트 몬드리안, 1922
<그림 2> 바우하우스 허버트 바이어, 1923
김민수(2014)는 “19세기 이래 근대 디자인의 모든 움직임과 철학이 바우하우스에서 결집되고 20세기 현대 디자인은 다시 바우하우스의 물줄기로부터 흐르기 시작했다.”라고 했듯이, 바우 하우스는 1933년 나치에 의해 폐쇄되었으나, 이 곳에서 탄생한 디자인은 많은 곳에서 모방하 였다. 또한, 바우하우스의 교수법과 교육 이념 역시 세계 곳곳에 널리 보급되어 현대 조형 예술 분야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최범(2018)은 “서구의 모던 디자인은 국제양식(internat ional style)으로 불릴 만큼 국제적이고 보편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나, 문화적 전통이 강한 국가들에 전파·수용되는 과정에서 그 민족의 고유한 감성과 결합되면서 민족적 성격을 띠게
4) 1918년 이후 독일에서는 산업디자인과 건축 등에 있어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났고, 벨기에 건축가인 앙리 반 데 벨데(Henry van de Velde, 1863~1957)가 맡고 있던 ‘바이마르 미술 공예학교(Weimar School of Arts and Crafts)’와 ‘바이마르 미술 아카데 미(Weimar Academy of Fine Arts)’를 통합하여 1919년 종합 조형학교인 바이마르 바우하우스가 독일 건축가인 발터 그로피우 스(Walter Gropius, 1883~1969)에 의해 설립되었다.
5) 구축주의는 1917년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을 전후로 건축, 조각, 회화, 공예 등의 여러 분야에 걸쳐 일어난 실험적인 추상 미술의 흐름 가운데 하나로 ‘구성주의’와 ‘구축주의’라는 두 개의 번역어로 소개되었는데 추상 미술에서 자주 쓰이는 용어 ‘구성 (Composition)’과 구분하고 보다 정확한 의미전달을 위해 최근에는 ‘구축주의(Consturctivism)’로 불리는 추세다.
6) 미래주의는 1909년 일어난 이탈리아의 전위예술운동. 미래파라고도 하며, 이탈리아어로 ‘푸투리스모(Futurismo)’라고 한다. 전통을 부정하고 기계문명이 가져온 도시의 약동감과 속도감을 새로운 미(美)로써 표현하려고 하였다. 이 운동은 1909년 시인 F.T.마리네 티(Filippo Tomaso Marinet´ti)가 프랑스 신문에 ‘미래주의 선언(Manifesto de Futurisme)’을 발표한 것이 시작이다.
7) 데스틸은 네덜란드어로 ‘The Style’을 의미한다. 1917년 동명의 미술 저널을 중심으로 모였던 일군의 건축가, 디자이너, 미술가, 사상가, 시인그룹을 지칭하는 이름이다. 화가이자 건축가인 테오 반 데스부르흐(Theo van Doesburg)의 주도로 피에트 몬드리안 (Piet Mondrian), 야코부스 요하네스 피터 오우트(Jacobus Johannes Pieter Oud), 헤릿 토마스 리트벨트(Gerrit Thomas Rietveld) 등이 이 그룹에 참여했다. 미술과 디자인의 순수화를 주창한 이들은 기하학적인 추상을 선호하며 자연적 형태와 소재를 배제하고, 수평 수직적인 화면 구성과, 기본색 또는 흑색 등 제한된 색상을 사용했다.
8) Margolin, V., 『The Struggle for Utopia: Rodchenko, Lissitzky, Moholy-Nagy 1917~1946』,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7
9) Lupton, E. & Miller, J. A., 『The ABC’s of Triangle Square Circle: The Bauhaus and Design Theory』, New York: Princeton Architectural Press, 2000, p.22
10) Moholy-Nagy, L., 『Painting, Photography, Film』, London: Lund Humphries, 1969, pp.38-40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라고 하며, 이러한 모더니즘을 민족적 모더니즘(national modernism)이라고 했다. 3장에서는 한·중·일 삼국이 자국의 고유한 전통과 모던 양식을 어떻 게 접목하여 독자적인 발전을 이룩했는지 고찰하고자 한다.
3. 서구디자인의 유입, 수용과 전개 3.1. 일본
3.1.1. 바우하우스 디자인 교육 방법 도입
나카타 사다노스케(仲田定之助, 1888~1970)는 1920 년대 초 독일 유학시절 일본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바우 하우스를 방문하였다. 귀국 후 1925년 미술잡지 ‘미즈 에(みづゑ)’에 독일의 조형학교 바우하우스의 교육이념 과 활동을 소개하는 ‘국립 바우하우스(国立バウハウ ス)’ 기사를 2회에 걸쳐 기고하였다.11) 이밖에도 유럽 을 돌아보고 귀국한 디자이너들이 가지고 온 미국과 유 럽의 포스터는 전통적인 일러스트레이션을 기반으로 하 고 있던 일본 그래픽 디자인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1930년대 초기 일본 포스터는 허버트 바이어(Herbert Bayer, 1900~1985)와 얀 치홀트(Jan Tschichold, 1902~1974)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고, 일본의 미술 대학들은 일제히 바우하우스 스타일의 디자인 교육 방법을 도입했다.
3.1.2. 유럽의 비전을 기반으로 한 디자인의 현대화
<그림 4>
고노 다카시, ‘숙녀와 수염’ 영화포스터, 1932 고노 다카시, JAPAN 포스터, 1955
<그림 5>
하라 히로무, 석판도안집, 1930
하라 히로무, 제1회 타이포그래피전 포스터, 1959
<그림 6>
가메쿠라 유사쿠 잡지표지디자인, 1956
여전히 일러스트레이션이 일본 그래픽 디자인의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고노 다카시(河野鷹思, 1906~1999)와 하라 히로무(原弘, 1929~1989)는 유럽의 비전을 기반으로 현대적인 포스터 를 디자인했다.12) 일러스트레이션의 요소가 강하고, 화려한 도시적 스타일을 보여주는 고노 다카시의 표현 기법은 다나카 잇코(田中一光, 1930~2002)와 요코 다다노리(橫尾忠則, 1936~)의 디자인 스타일 형성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그림 4>. 고노가 일러스트레이션을 사용한 모더니즘을 시도했다면, 하라는 추상적인 구성으로 서양 디자인 이론의 구조를 이해했 던 그는 일러스트레이션 기법 없이 냉철하고도 소박한 감각으로 조형하는 스타일을 추구했다
<그림 5>. 그의 포스터에는 사진과 타이포그래피가 같은 무게로 쓰였는데, 이것은 후에 현대 일본 그래픽 디자인의 정형이 되었다.13) 하라는 바우하우스의 영향에 대해 “바이어와 치홀트 가 내 스승이었다. 아마 죽는 순간까지 나는 그들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하 며, 서구에서 약동한 움직임을 단순한 스타일이 아닌, 동시대적 시각전달의 기본 원리로 받아
11) 京都国立近代美術館, 「創造のバウハウス」, 2018
12) 가메쿠라 유사쿠, 『일본 디자인의 신화』, 디자인하우스, 2003, p.105 13) 가메쿠라 유사쿠, 앞의 책, pp.105-106
<그림 3> 교토국립근대미술관 ‘創造のバウハウス’
에 전시된 바우하우스 기사 자료, 2018
들이고, 이를 당시의 활자·문자 환경에서 검증하고 재해석하는 데 매진했다.14) 고노와 하라의 디자인은 가메쿠라 유사쿠(龜倉雄策, 1915~1997)의 추상적인 디자인 스타일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그림 6>. 당시 가메쿠라는 국제 사회에 일본의 현대화를 알리기 위해 전통적인 것보 다는 절제된 형식으로 국제적인 디자인 스타일을 선호하였다. 다나카 잇코는 1950년대를 거 치면서 바우하우스 디자인의 전통을 흡수하여 면과 형을 작업의 핵심으로 삼았다. 스기우라 고헤이(杉浦康平, 1932~)는 바우하우스 초기 작가들과 입체파 화가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 았으며, 초기에는 부분적으로만 사용했던 타이포그래피를 후기에 와서는 중요하게 다루었다.
3.2. 한국
3.2.1. 일본 유학을 통한 디자인 개념 도입
디자인 개념은 일본에서 유학했던 임숙재(1899~1937)15)가 1928년 동아일보에 2회에 걸쳐
‘공예와 도안’이라는 글을 연재하면서 부터이다. 당시 도안으로 번역된 디자인은 “우리 의식주 에 관한 제반 물건과 기물에 대하여 자기 두뇌에 착상되는 형상과 문양, 색채 등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정하는 일”이라 하였다.16) 한국은 일본을 통해 ‘도안’ 이라는 이름으로 디자 인의 개념이 도입되기 시작하였다. 그의 졸업 작품 ‘서봉급식부공예품도안’은 서구 양식을 수 용하여 전면이 아르누보 장식으로 이루어 졌으나, 자세히 살펴보면 각 문양이 표주박 꽃과 가늘고 섬세한 넝쿨의 곡선으로 이어져 있어 한국적인 전통문양을 이용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그림 7>. 그의 작품은 유럽의 공예미술 사조와 일본에서 자생한 문화, 그리고 한국적 이미지 가 복합적으로 스며들어 있다고 평가된다.
<그림 7>
임숙재, 서봉급식부공예품 도안, 1928
<그림 8>
이순석, 장정도안 시리즈, 1931
<그림 9>
한홍택, 1939
이순석(1905~1986)17)은 동경미술학교를 졸업 후, 1931년 ‘한국 최초의 디자인 개인전’을 개최했다. 일본 유학 시절 책표지를 도안한 그의 작품들에서는 1920년대 후반 일본 공예계에 유행했던 아르누보 장식과 바우하우스의 반추상적인 조형 등 다양한 양식이 혼합되어 있다
<그림 8>. 한홍택(1916~1994)18)은 1939년 일본 동경도안전문학교 졸업작품<그림 9>에 서는 회화적 일러스트레이션과 간결한 형태, 중복구성, 평면성 등과 같은 회화적 모더니즘의 그래픽 기법을 엿볼 수 있다. 19)
14) 가와하타 나오미치, 『하라 히로무와 근대 타이포그래피: 1930년대 일본의 활자·사진·인쇄』, 워크룸프레스, 2017 15) 임숙재는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1929년 일본의 동경미술학교 도안과를 졸업하고 근대 공예사의 개척자로 불리운다.
16) 최공호, 『한국 현대공예사의 이해』, 재원, 1996, p.80
17) 이순석은 한국 현대 공예와 디자인의 선구자로 불리며, 일본 동경미술학교 도안과를 졸업하고, 1931년 우리나라 최초의 디자인 개인전을 개최했다. 그러나 당대 화려한 이력과는 달리 귀국 후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았다. 1946년 한국 최초로 도안과(응용미 술과)를 신설한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의 교수로서 초창기 응용미술의 기틀을 잡았으나, 이마저도 일본의 응용미술 교육 체제를 해 방 후 한국에 그대로 이식했을 뿐, 한국적 제도 성립의 가능성을 없애버리고, 미래지향적인 교육체계를 만들지 못했다는 인물로 양극단의 평가를 받았다. 허보윤, 「미술로서의 디자인: 이순석의 1946~1959년 응용미술교육」, 서울대학교 조형아카 이브 Vol.2, 2010, p.143
18) 한홍택은 1937년 일본 동경도안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39년에는 데이고쿠미술학교 연구과에서 약 1년간 유화를 배우고 돌아와 산업 도안 활동과 유화가 생활을 병행하였다. 도안이라는 말이 현대적인 시각디자인이라는 용어로 바뀌기까지 그의 공헌은 지대했 다. 개인전에 붙인 명칭의 변화를 관찰하면 디자인의 성격이 점차 분명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955년 <산업미술제일회개인 전>, 1958년 <모던디자인전>, 1961년 <상업미술개인전>, 1966년 <그래픽아트전>, 1969년 <시각언어전> 등 개인전의 명칭에서 디자인의 본질을 담으려는 시도가 보인다.
19) 김종균, 「1960~80년대 국내 일본디자인의 영향과 과제」, 디자인학연구 28(3), 2015, p.189
3.2.2. 미국을 통한 서구 디자인 사조 수용
1950년대를 거치며 미국의 원조와 지원을 통해 일본의 디자인 영향력이 급속히 사라지고, 대신 서구 디자인 사조를 직접 수 용하기 시작했다. 미국정을 통해 국내 대학 내에 디자인학과가 신설되기 시작했고, 1958~60년대 미국 연수를 다녀온 교수진 (권순형, 민철홍)들이 대학 강단에 등장하면서 미국식 학제와 수업이 일부 도입되기 시작했다.20) 이때부터 개인전을 통한 디자이너의 작품 소개와 독자적인 활동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백태원과 권순형의 포스터에서는 서구 모더니즘의 추상적인 면과 선의 기하학적인 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그림 10>.
1960년대를 거치면서 비로소 디자인의 영역이 틀이 잡혀갔으며, 디자인의 중요성이 새롭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3.3. 중국
3.3.1. 상해, 모던 디자인 양식 도입
중국은 전통 ‘공예(工藝)’에서 일본의 한자 ‘미술(美術)’이라는 용어를 빌 려 1920년대 후반 공예미술(工藝美術)로 디자인의 개념을 도입했다21). 1934년 중국 최초 디자인 전문 기관인 ‘중국공상미술작가협회(中國工商 美術作家恊會)’가 상해에 설립되었고, 중국의 상업과 비즈니스를 홍보하 기 위한 것22)이었다. 이러한 전문 기관의 설립은 중국에서 ‘모던 디자인’
의 초기 발전과 과거 공예 활동의 현대적 직업, 상업예술/디자인으로의 전 환을 의미한다. 이 협회에서 발간하는 잡지<그림 11>에는 서양식 모방 작품으로 가득 차 있었고, 전통 공예를 현대 맥락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 지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다.
3.3.2. 홍콩, 동양과 서양의 조화를 통한 디자인의 국제화
홍콩의 현대적인 디자인 개발은 중국 대륙의 초기 현대 디자인의 발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헨리 스타이너(Henry Steiner, 1934-)23)는 당시 쇠퇴해가는 1930년대 중국 최초의 모던 디자인 양식인 ‘상해 퓨전 디자인 양식’을 1960년대 중반 홍콩에서 재탄생시켰던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림 12>에서 볼 수 있듯이,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의 양면성을 결합한 디자인을 엿볼 수 있다.
<그림 12>
헨리 스타이너, Old & New, Asian Magazin, 1965
<그림 13>
칸 타이킁, One Art Group Show, 1983, 홍콩저명화가13인展, 1989
<그림 14>
알란 찬 1998
<그림 15>
리우 샤오캉 1997
20) 강현주, 「김교만과 한국 현대 그래픽 디자인」, 서울대학교 조형아카이브 Vol.3, 2011, p.110
21) Yuan, X. Y., 「The Studies of the Development of Arts Design Education in China」, Beijing: Beijing Polytechnic University Press, 2003
22) China Commercial Artists Association, 「Collection of Modern Chinese Commercial Arts」, Beijing:CCAA, 1937 23) 오스트리아 출신의 미국 디자이너인 헨리 스타이너는 헌터컬리지, 예일대학,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수학한 후 1961년부터 현재까
지 홍콩에서 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다.
<그림 10> 백태원, 개인전 포스터 1957 권순형, 컬러톤 포스터, 1960
<그림 11>
Modern Miscellany Magazine, 1930s, 상해
홍콩의 1세대 디자이너로서 칸 타이킁(靳埭強, 1942~)은 1960년대 초기 예술과 디자인을 배우며 바우하우스 디자인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으나 이후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모국 문화에 대한 결핍을 깨닫고, 중국으로 돌아가 공부한 후 1980년대 비로소 작품에 전통적인 동양철학 사상을 반영하기 시작했다. 그는 수묵화 기법에서 볼 수 있는 동양적 문화요소와 서양의 현대적 디자인 컨셉과 융합하는 디자인을 추구했다<그림 13>24). 알란 찬(陈幼坚, 1950~)은 1970년 디자인계에 첫발을 내딛고, 고집스럽게 중국의 전통에 천착해 온 디자이너 로서 서구화된 홍콩의 문화와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전통과 현대의 양면성을 결합한 독특 한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25). 이외에도 라우 시우 홍(劉小康, 1958~) 작품에서도 비슷한 맥락 을 확인할 수 있다. 홍콩은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결합된 사상을 디자인에 응용하여 1970년대부터 그래픽 디자인에서 두각을 보였고, 1980년대 황금기를 맞이하며, 1990년대 홍콩의 디자인 파워를 세계 시장에 알리며 디자인의 국제화를 실현하였다.
홍콩의 디자인 정체성은 대영제국 식민지하에서 서구적 양식의 외적 표현이라기보다는 ‘동·서 양 만남(East meets West)’의 정신적인 측면이라 할 수 있다.26) 1997년 홍콩의 중국반환으 로 대륙의 그래픽 디자인 교육은 칸 타이킁을 비롯하여 알란 찬, 라우 시우 홍 등 홍콩의 유명 한 디자이너들과 활발한 교류를 통해 비약적 발전을 이룩했다. 이들은 중국에 본격적인 서구 문화의 유입을 시도하였고, 서양 디자인 이론을 동양의 문화부호와 융화시켰으며, 이는 대륙의 디자이너들에게 강한 영향을 미쳤다.
4. 재해석을 통한 디자인의 문화적 정체성 추구 4.1. 일본, 화혼양재를 통한 디자인의 세계화
1950년대 초 서구 디자인의 정보가 대량으로 유입되면서 모방은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고, 1960년대를 기점으로 일본 디자인계에서는 ‘일본적인 것’의 정체성과 전통의 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했다. 1964년 도쿄올림픽을 시작으로 1970년 76개국이 참가한 오사카 만국박람회를 통 해 일본 디자이너 작품이 해외에 소개되는 경우가 많았다.
카메쿠라 유사쿠 섬유관련 포스터 1962
카메쿠라 유사쿠 오사카 엑스포 ’70 1970
고노 다카시 삿뽀로 동계올림픽 1972
다나카 잇코 제5회산케이간제노 1958
다나카 잇코 니혼부요 1981
다나카 잇코 문자의 상상 1993
나가이 가주마사 나가우타 샤미센 1981
스기우라 고헤이 파리 레자틀리에 1984
사토 고이치 뉴 뮤직 미디어 1974
가츠이 미츠오 모리사와 1985
후쿠다 시게오 승리 1945 1975
요코 다다노리 고시마키 오센 1966
<그림 16> 일본 그래픽 디자이너들의 ‘화혼양재’를 통한 국가적 정체성 추구
24) Kan TAI-KEUNG, 「Interview with Kan TAI-KEUNG」, Asia Design Journal 6, 2011, p.95 25) 월간디자인, 「이제 중국 디자인의 세계화에 도전한다」, 디자인하우스, 2003년 10월호
26) Wendy Siuyi Wong, 「Design Identity of Hong Kong: Colonization, De-Colonization, and Re-Colonization」, York University, 2004, p.6
일본 디자이너들은 기술의 선두적인 역할과 서구 사회의 영향으로 국가의 전통을 유지한 채 이를 국제적인 영향과 융화시킬 방법을 모색했고, 화혼양재는 디자이너들에게 철학의 화두로 떠올랐다.27) 가메쿠라 유사쿠는 일본 그래픽 디자인의 원천에는 “형태를 간략화하고 색채를 단순하게 처리한 우키요에(浮世繪)와 장식성이 강하고 비대칭적이며 추상적인 패턴을 즐겨 사용한 17세기의 린파(琳派)28)그림 그리고 일본의 문장(紋章)”이라고 했다.
가메쿠라는 추상적이며 절제된 형식의 국제적인 스타일에서 일본의 전통적인 것으로 눈을 돌 렸다. 다나카 잇코는 “일본식 정체성을 구현하고자 했던 방법론에 가장 충실한 일본 디자이너 들 중 한명이다.”(김민수, 1999) 스기우라 고헤이(杉浦康平, 1932~)는 모두가 서구를 바라볼 때 아시아로 눈을 돌려 동양적 도상(圖像)에 집중하였다. 그의 작품에서는 동양과 서양의 차이 를 강조하며, 아시아를 하나의 코드로 묶어 정체성 연구에 일생을 바쳤다. 사토 고이치(佐藤晃 一, 1944~)는 여백을 살려 일본의 미를 강조하고, 전통적인 시 형식에서 발견되는 깊은 감성 의 표현과 의미의 다중성을 포함한다. 이외에도 가츠이 미츠오(勝井三雄, 1931~)는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한 ‘빛과 색채의 시각언어’, 후쿠다 시게오(福田繁雄, 1932~2009)는 ‘현대적 유머와 풍자’, 요코 다다노리(橫尾忠則, 1936~)는 우키요에를 연상케 하는 ‘팝 아트’적 방식 등을 사용하여 각자의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화혼양재29)의 디자인 철학을 추구하였다.
유럽의 구성주의는 일본 디자인이 현대화하는 과정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나 구성주의가 갖는 체계적인 조직과 강한 이론적 기초는 일본의 전통적 경향인 직관적인 문제 해결 방식과 단순화 된 상징적 형태라는 유산에 의해 완화되었다. 또한, 구성주의가 갖는 상대적 비대칭의 균형이 아니라 일본의 디자이너들은 중심에 배치하고, 가운데를 축으로 공간을 구성한다. 이는 일본 예술품과 공예품이 갖는 전통적 구성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30)
4.2. 한국, 동도서기를 통한 디자인의 민족화
정시화(1972)는 일제 식민지 통치시대의 조선미술전람회(鮮展)로부터 1960년대 초에 이르 는 시기 동안 응용미술은 평면적인 표면장식이나 배색 등을 고려하는 도안 이상으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보았다.31) 1970년대 비로소 디자인계가 미술계로부터 분리되었고, 그래픽 디자인 이 본격적으로 등장하였다. 김교만(1928~1998)은 이순석의 공예미술로서의 디자인, 한홍택 의 회화를 응용한 응용미술로서의 디자인의 영향을 받았다. 김민수(1996)는 김교만이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전문적인 성공을 거둔 측면이 있으나 그의 성공은 오히려 한국 그래픽 디자인을 오랫동안 오로지 자와 컴퍼스에 의한 도안기법으로 인식하게 했다면서 이러한 기법은 이순석 의 교육으로부터 전통적으로 이어져 온 응용미술과의 편화 방법에 의한 양식화(stylization) 과정이 심화된 모습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그 결과 1990년대 중반까지도 한국적 정체성이 단지 표면 이미지에 한국적 주제를 사용하는 것으로 합법화되는 한계를 드러냈다는 것이다.32) 1970년대와 80년대 국내 모든 디자이너에게 ‘한국적 디자인’은 과제였다. 정시화는 조영제 (1935~)의 디자인 특징을 “간결하고 절제된 형상성으로 시각적 메시지 전달, 구성주의적 논 리성, 객관적인 사진처리, 하이테크 기법의 수용, 논리적 타이포그래피와 색채의 구성”이라고 평가하였다.33) 나재오(1945~)는 “세계속에 한국인의 표상이 제대로 전해지기 위해서는 우리 의 토속적 이미지와 색감위에 현대적 터치가 묻어나야 한다”고 강조하며, 한국인의 특성을 간결하게 표현하였다.
27) 이봉만, 김현선, 「다나카 잇코의 포스터에 표현된 일본적 그래픽 디자인 고찰」, 기초조형학연구 17(6), 2016, p.385 28) 17~18세기 일본의 야마토에(大和繪) 전통에 중국의 수묵화 기법을 조화시켜 형성된 에도(江戶)시대의 독창적 장식화파.
29) 김민수, 「호돌이의 뿌리와 그림자: 한국 그래픽 디자인의 정체성」, 디자인 문화비평 01, 1999, p.59 화혼양재(和魂 洋才)는 ‘정신과 감정은 일본, 이치와 기술은 서양에서’라는 근대 일본 문화예술계의 슬로건으로 서양미술의 가치 체계 나 표현 기술을 수용해서 새 시대 일본 미술과 디자인의 정체성을 확보하려 했던 근대 일본 디자인의 생산전략.
30) 필립 B. 멕스, 『그래픽 디자인의 역사』, 미진사, 2011. p.473
31) 정시화, 「서구 모더니즘의 수용과 전개–공예와 디자인(1)조형』, Vol.17, No.1, 1994
32) 김민수,「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의 디자인ㆍ공예교육 50년사: 1946–1996년」, 서울대학교 개교50주년 기념학술심포지엄 논문집, 조형연구소, 1996
33) 강현주, 「디자이너 열전: 조영제, 생각하는 아트디렉터』, KIDP, 2014년 4월
김교만 한국관광포스터 1976
조영제 자연보호 포스터 1976
나재오 Thinking Korea 1979
정연종 국풍’81 1981
나재오 시집가는 날 1986
김현 여인의 얼굴 1986
정연종 한국인의 표정 1986
류명식
한국의 멋 - 호랑이 1987
김현
서울올림픽 마스코트 1988
조영제
서울올림픽 포스터 1985
권명광 서울올림픽 MBC 1987
<그림 17> 한국 그래픽 디자이너들의 ‘동도서기’를 통한 민족적 정체성 추구
그러나, 한국적 디자인에 천착해오던 디자이너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내 몇몇 디자이너들 의 작품에서는 가메쿠라 유사쿠와 다나카 잇코, 후쿠다 시게오 등 일본 그래픽 디자이너들의 표현기법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그림 17>. 사토 고이치는 “가장 일본적인 디자인은 기모노 와 같은 일본을 대표할만한 소재를 내세우는 것이 아닌 가장 일본적인 관점, 기호를 담아낼 수 있는 것”이라고 했는데, 한국의 디자이너들은 내적 정신을 무시한 채 한복, 탈춤 등 전통적 인 소재만 교체했다면서 비판적인 평을 하였다. 최범(2008)은 “동도서기론의 결정적 맹점은 서구의 물질적 일면만 보고 서구의 정신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 즉, 우리것을 유지하되 물질만 받아들이려 한 선별적 근대화였다”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동시대 스타일로서의 한국적 디자 인은 현대 디자인의 한 장르로 자리잡지 못했던 것이다.
4.3. 중국, 중체서용을 통한 디자인의 국제화
천 샤오화(陈绍华, 1954~)와 왕 쉬(王序, 1955~)는 대륙의 디자이너로 칸 타이킁과 알란 찬 등의 홍콩 디자이너들의 영향을 받아 동양과 서양의 스타일이 교차하는 그래픽 디자인을 추구하고 있다. 천 샤오화는 “중국정신을 지닌 디자인의 세계화를 추구하여 디자인은 사람들 로 하여금 중국 오천 년 문화의 지혜와 정신을 느끼게 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즉, 국제화 과정 속에서 민족화를 반영할 때 비로서 국제적 디자인을 실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지아 잉(韩家英, 1961~)은 중국의 ‘그래픽 디자인 시인’으로 불리며, 포스터의 기본 디자인 요소인 점,선,면을 이용하여 한자 서체의 미학을 실험했다. 10여 년간 작업한 순수문학잡지 ‘천애’의 표지 연작에서는 한자를 모티브로 동양성을 살린 예술성을 강조했다. 즉, 동양미학의 경지를 현대 그래픽으로 표현한 것이다.
왕 민(王敏)은 20여 년간 유럽과 미국에서 후학 양성 및 작업활동을 계속해 오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디자인 디렉터를 맡기 위해 귀국했다. 그는 ‘전서(篆書)의 미’라고 이름붙인 픽토그램을 탁본을 연상케하는 배경위에 고대 중국 서체의 그림 문자적 매력과 현대 그래픽의 단순미를 결합하여 표현했다. 칸 타이킁은 홍콩의 1세대 디자이너로서 수묵화 기법에서 볼 수 있는 동양적 문화요소와 서양의 현대적 디자인 컨셉과 융합하는 디자인을 추구했다. 비 쉐펑(毕学锋, 1963~)에게 프랑스 그래픽 디자이너들의 순수 예술과 회화에 기반한 작업은 큰 자극이 되었다.
천 샤오화 1992
한 지아잉 천애 표지 연작 1997
지앙 화 Hong Kong 1998
알란 찬 AGI, 베이징 2004
자오 지안 AGI Congress 2004
라우 시우 홍 Chair play 2005
왕 쉬 Nagasaki 2005
구어 추닝 올림픽 공식 포스터 2008
왕 민 올림픽 포스터 2008
칸 타이킁 올림픽 포스터 2008
비 쉐펑 파리 예술 도시 2011
허 지엔핑 Spirited 2011
<그림 18> 중국 그래픽 디자이너들의 ‘중체서용’을 통한 동양적 정체성 추구
그동안 형태가 있는 구상적인 포스터를 해왔던 것에서 벗어나 현대 예술처럼 형태들을 고도로 추상화 했다. 특히 파리에서 발표한 그의 포스터 ‘파리 예술 도시’는 문자를 해체해서 그래픽 자체의 회화성을 강조하고 있다. 허 지엔핑(何剑平, 1973~)은 중국태생의 독일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으며, 경계를 허물어 변화와 다양성을 추구하는 그의 미학은 그가 위치하고 있는 동양과 서양의 긴밀한 사이를 대변한다. 이는 먹과 여백의 경계를 짓지 않고 번짐 효과를 중시 하는 중국 수묵화가 가지는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34)
홍콩의 영향을 받은 중국의 그래픽 디자인은 동·서양이 교차하는 디자인에서 최근에는 중화 (中華)를 강조하는 경향이 보인다<그림 18>. 한자와 먹 같은 전통소재에만 집착하고 서양적 조형요소의 배제는 자칫하면 자문화중심주의로 빠질 수 있다. 주효(2012)는 “중국은 지나치 게 중국 문화의 독자성을 강조하고 외래문화를 배척하면서 민족주의적 정서를 고취시키려는 경향이 있다”라고 하면서 “중국 전통 문화를 바탕으로 한 현대 스타일의 디자인이야 말로 앞으 로 중국 그래픽 디자인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강조했다.35)
5. 결과
지금까지 한·중·일 그래픽 디자인에 영향을 미친 서구 디자인의 유입, 수용, 재해석 과정을 중심으로 삼국의 디자인 전개 과정을 살펴보았다. 이들은 서구 디자인을 받아들이고, 모방 단계를 극복한 이후자국 디자인의 정체성 추구라는 과정의 유사성과 결과의 차이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 디자인의 ‘유입’에 관한 것이다. ‘디자인’이라는 용어는 대부분의 아시아 언어에서 자연 적·직접적으로 번역 가능한 용어가 없다(Rajeshwari Ghose, 1990). 일본은 1925년 독일 바우 하우스의 교육이념과 활동이 처음 소개되었고, 당시 전통적인 일러스트레이션을 기반으로 했 던 ‘도안’에서 1930년대 초 현대 ‘디자인’으로의 이행이 시작되었다. 한국은 1928년 일본 유학 을 다녀온 임숙재를 통해 ‘도안’ 이라는 이름으로 디자인의 개념이 도입되기 시작하였다. 중국 은 전통 ‘공예’에서 일본의 한자 ‘미술’이라는 용어를 빌려 1920년대 후반 ‘공예미술’로 디자인 의 개념을 도입하였다.
34) 황윤정, 페이웬화, 『중국 디자인이 온다』, 미술문화, 2018, pp.176-197
35) 주효, 「중국 디자인의 발전 과정에 관한 연구: 개혁개방 이후의 그래픽 디자인을 중심으로」, 건국대학교 석사학위논 문, 2012, p.68
둘째, 디자인의 ‘수용’에 관한 것이다. 1930년대 초 일본 미술 대학들은 일제히 바우하우스 스타일의 디자인 교육 방법을 도입하였다. 고노 다카시와 하라 히로무는 유럽의 비전을 기반으 로 현대적인 포스터를 디자인했으며, 이들의 디자인 스타일은 가메쿠라 유사쿠와 다나카 잇코 등 일본디자이너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은 일본유학을 다녀온 디자이너들이 귀국 후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았다. 이후 1946년 서울대에서 한국 최초로 도안과(응용미술과)를 신 설하였고, 미술대학의 교수인 이순석은 일본의 응용미술 교육체제를 그대로 이식했다. 이후 1950년대를 거치며 미국의 원조와 지원을 통해 국내 대학 내에 디자인학과가 신설되기 시작 했으며, 서구 디자인 사조를 직접 수용하기 시작했다. 1958~60년대 미국 연수를 다녀온 교수 진(권순형, 민철홍)들이 대학 강단에 등장하면서 미국식 학제와 수업이 일부 도입되기 시작했 다. 중국은 1978년 문호개방 이후, 대륙과 교류가 끊어진 홍콩, 마카오, 대만의 디자인 문화가 물밀 듯이 밀려왔다. 또한, 1997년 홍콩의 중국반환으로 대륙의 그래픽 디자인 교육은 칸 타이 킁을 비롯하여 알란 찬, 라우 시우 홍 등 홍콩의 유명한 디자이너들과 활발한 교류를 통해 중국에 본격적인 서구 디자인 문화가 유입되었다.
셋째, 디자인의 ‘재해석’을 통한 정체성 추구에 관한 것이다. 일본은 1950년대 초 서구 디자인 의 정보가 대량으로 유입되면서 모방은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고, 1960년대를 기점으로 일본 디자인계에서는 ‘일본적인 것’의 정체성과 ‘전통’의 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했다. 1964년 도쿄올 림픽과 1970년 오사카 만국박람회를 통해 국가의 전통을 유지한 채 이를 국제적인 영향과 융화시킨 ‘화혼양재’의 디자인 철학을 추구함으로써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되었다. 한국은 1960 년대를 거치면서 비로소 디자인 영역이 틀이 잡혀갔으나, 일본디자인의 모방은 또다른 사회적 문제가 되었고, 1970년대와 80년대 국내 모든 디자이너에게 ‘한국적 디자인’은 과제였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이라는 국가적 규모의 행사를 개최하면서 한국문화 의 고유성에 대한 자각이 일어났고, ‘동도서기’의 디자인 방법론을 활용하여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구호아래 ‘한국적 디자인’이라고 해서 전통 소재를 차용한 디자 인이 주를 이뤘다. 중국은 일찍이 디자인의 국제화를 실현한 홍콩과의 활발한 디자인 교류를 통해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이 결합된 사상을 디자인에 응용한 ‘중체서용’ 디자인 방법론을 추구하였다. 이는 대륙의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강한 영향을 끼쳤고, 자국 문화의 정체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0년 상하이 엑스포 디자인은 동양의 전통사상을 집중적으로 체현하면서 세계 디자인계의 주목을 받았다. 비록 늦은 출발이지만 이미 디자인의 국제화를 실현한 홍콩의 영향은 짧은 기간 동안 중국 그래픽 디자인이 국제적인 명성을 확립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6. 결론
근대 서구 문물이 밀려오자 방어적인 논리로 한국은 동도서기, 중국은 중체서용, 일본은 화혼 양재론을 폈다. 이는 동양의 정신을 중심에 두고, 서구의 발달한 기술을 유연히 수용하는 자세 를 이르는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근대 동아시아 삼국의 유사한 명제를 디자인 영역에 대입하여, 서구 디자인을 받아들이고, 모방단계를 거친 이후, 자국의 정체성 추구를 위한 디자 인 방법론으로 맥을 같이 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한중일 삼국의 디자인의 전개 과정은 논리적 으로 비슷해보였으나 결과는 크게 다르다는 점을 본 연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예컨대 일본은 화혼양재 디자인 방법론을 통해 일본의 전통적인 스타일을 현대화 시켰고, 일본 현대 디자인의 한 장르로 분명히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양식은 필립 멕스(Philip B. Meggs)의 저서
‘그래픽 디자인의 역사’에서도 ‘Japanese Style’ 또는 ‘Japanese Wave’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동아시아의 그래픽 디자인과 구분하여 별도로 서술하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은 어떠한가? 비 록 늦은 출발이지만, 홍콩의 동·서양이 교차하는 디자인, 즉 중체서용의 디자인 방법론을 통해 짧은 기간 동안 중국 그래픽 디자인이 국제적인 명성을 확립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에는 동시대 스타일로서의 ‘한국적 디자인’이라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 적 디자인’이라고 해서 전통 스타일을 차용하였지만 현대 디자인의 한 장르로 자리잡지는 못했
다. 이에 대해 디자인평론가 최범(2008)은 “동도서기론의 결정적 맹점은 서구의 물질적 일면 만 보고 서구의 정신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라고 평하면서 한중일 삼국이 디자인 정체성 추구 를 위한 노력이 논리적으로 동일해 보이는데도 그 결과가 크게 다른 점에 대해서는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하였으며, 이를 후속연구로 남기고자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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