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岬寺大雄寶殿의 造營에 관한 硏究
-전통중층목조건축의 주칸설정과 상층체감기법을 중심으로-
A Study on the Construction of Main Sanctuary of Dogapsa Temple
-Focused on Establishing Bay of columns and Setback Technique in Upper Stories of Traditional Architecture with Multi Roof-
신 웅 주* 이 봉 수** 박 강 철***
Shin, Woong-Ju Lee, Bong-Soo Park, Gang-Ch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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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he results of examining the architectural features and changes of the main building of Dogapsa temple which is multi roofs wooden structure are as follows. The passage comparing 'Dogapsa' of <<Namyurok>>, account of Lee Ha Gon's trip as the literature showing the appearance of Dogapsa temple in the early 18th century to Borimsa through verse of 'Dutacho' was noticeable. Dogapsa temple at Yeongam was distant over 100 ri from Borimsa temple at Jangheung and it was considered that there were many temples at Mt. Wolchul, Yeongam and there were also many temples to be comparable with it. But, Dogapsa temple was compared to Borimsa temple because verses 'many-storied building is high and immense' of 'Dogapsa' at
<<Namyurok>> and 'Dogapsa is lower than Borimsa at Jangheung' at 'Dutacho' of <<Namyurok>> were interpreted as the existence of multi roofs Buddhist temple which had something in common with Dogapsa and Borimsa and was comparable to them. According to existing materials, it was assumed that the main building of Dogapsa was burnt through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the 52nd year of the sexagenary cycle (Eulmyooebyeon, 1555) and Jungyujaeran (1597), but record of major history of the main buildings of Dogapsa and Borimsa indicated that multi roofs wooden structure of the two temples were built at the same period. Since multi roofs wooden structure of main building of Borimsa was rebuilt in 1692, these buildings existed from the early 18th century to middle 18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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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워 드 : 전통중층목조건축, 조영, 도갑사, 불전, 전각
Keywords : Traditional Architecture with Multi Roof, Construction, Dogapsa Temple, Buddhist Temple, Royal Pala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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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 론
1)1.1 연구의 배경 및 목적
통일신라 말에 창건된 월출산(月出山) 도갑사(道岬寺) 는 현재까지 그 명맥이 유지되면서 많은 유적과 유물들 이 보존되고 있다. 도갑사대웅보전의 복원을 위하여 2005 년 진행된 대웅전지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 과거 불전의 것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적심석(積心石)과 기단열(基壇 列)이 확인되었다. 이러한 추정은 조선시대 초 도갑사의 중창에 관한 내용이 기록된 『도갑사묘각화상비(道岬寺妙 覺和尙碑)』를 비롯한 각종 문헌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1473년 건축된 도갑사해탈문 계단 대우석의 형태와 문양이, 발굴된 불전의 계단 대우석과 일치하여 조선 초 수미왕사(守眉王師)에 의해 건축된 건물의 기단이라는 추
* 정회원, 일본나라문화재연구소 객원연구원, 공학박사
** 정회원, (주)삼진건축사사무소 대표, 공학박사
*** 정회원, 조선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공학박사
정에 힘을 실어 주었다. 결국 적심석 배열에 따른 유사 유구의 비교 분석, 문헌 고찰과 관계전문가의 조언 등을 통해 2009년 중층(重層)의 도갑사대웅보전(道岬寺大雄寶 殿)
1)으로 복원하였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도갑사대웅전지(址)의 발굴 자료와 수미왕사에 의해 불전이 중층으로 건립될 당시의 건축양 식, 동일한 가구법과 평면구성이 적용된 타 불전과의 비 교 고찰 등을 토대로 현재 새롭게 건축된 도갑사 대웅보 전의 복원방법에 관하여 논하고 동시대에 건축된 다른 중층목조건축과의 비교를 통하여 주칸의 설정과 상층체 감의 기법을 중심으로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는 문헌고찰과 발굴 건물지의 해석을 토대로 상하층의 평면이 상이한 중층목조건축의 복원에 있어서 계통사와 구성체계를 연구하는데 일조할 것으로 기대된다.
1) 문헌에 불전, 불당, 법당으로 표기되어 있음. 발굴 전에는 대웅전 이 존재하였으므로 2009년 복원된 건물의 명칭은 ‘대웅보전’으로, 발굴지의 명칭은 ‘대웅전지’로 칭함
년도 논문제목 연구대상 비고 1994 전통중층목조건축에 관한 연구 법주사대웅보
전외 21곳 박사 1996 중층건물 층 구조의 유형변천에 관한연구 평양보통문외
20곳 저널
1997 조선시대 전통목조건축의 통주형 중층체계 평양보통문외
20곳 박사
2000 중층요사의 건축특성에 관한 연구 화엄사적묵당 외 10곳 석사 2000 경운궁 중화전 중층가구 복원계획 연구 경운궁중화전 석사 2006 조선시대 중층 사찰건축의 비례에 관한 연구 법주사대웅보
전외 7곳 석사 2009 전통 중층목조건축의 구성체계 연구 숭례문외 72
곳 박사
2010 보림사대웅보전의 조영에 관한 연구 보림사대웅보
전 저널
2010 쌍봉사대웅전의 건축변화 고찰 쌍봉사대웅전 저널 표 1. 중층목조건축의 선행연구
1.2 연구의 방법 및 범위
본 논문은 현재 기단(基壇)과 적심석의 흔적만 있는 도 갑사 불전지를 도갑사 대웅보전으로 복원하는 과정에서 문헌과 유구를 통한 건물의 복원과정을 평면 형태와 가 구법을 중심으로 살펴본 연구로써 첫째, 도갑사의 연혁과 조영시기를 문헌을 통해 고찰한 후 중층목조건축으로 건 축되었을 가능성을 확인하였다. 둘째, 중층목조건축의 건 축 특징을 고찰한 후 발굴된 적심석의 배열을 수치적으 로 따져서 평면구성과 가구법의 연관성을 중심으로 분석 하였다. 셋째, 현존하는 비슷한 중층목조건축 유구와의 비교를 통하여 복원된 도갑사 대웅보전의 형태 추정 근 거를 찾고자 하였다.
연구의 시간적 범위는 조선시대 초기부터 현재까지이 고 공간적 범위는 현재 도갑사 대웅보전이 건축되어 있 고 과거 3차에 걸쳐 불전이 건축되었던 것으로 확인되는 도갑사 경내의 대웅전지로 한정하였다.
1.3 선행연구고찰
중층목조건축에 관한 선행연구는 건축학계와 고고학계 그리고 미술사학계에 의해 주도되었고 발굴조사 결과 및 문헌자료 그리고 현존하는 중층목조건축물에 대하여 많 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1990년대의 선행연구는 한국 중층목조건축의 가구, 구 조방식을 파악하는 유형분류 방식의 연구가 대부분이었 다. 전통중층목조건축에 관한 연구(김봉건 1994)는 한국 에 산재하는 중층목조건축에 대한 최초의 유형분류 연구 시도였지만 현재까지도 그의 분류방식이 널리 적용되고 있다. 조선시대 전통목조건축의 통주형 중층체계(김덕문 1997)는 조선시대에 건축된 중층목조건축에 대한 구조상 의 유형분류를 시도함으로써 그 특성을 밝혔다. 2000년대 에는 특정 건축물에 대하여 상세하게 진행된 점이 특징 이다. 중층요사의 건축특성에 관한 연구(김정훈 2000)는
현존하는 중층요사를 대상으로 기능, 공간구조를 중심으 로 파악하였다. 경운궁 중화전 중층가구복원계획 연구(노 현균 2000)의 이론고찰에 수록된 구조적 분류에서는 상층 외진우주의 지면지지 여부에 따라 기둥형과 보형으로 나 누어 서술한 점이 특징이다. 의장성의 비교분석을 통하여 건축변화와 시대성을 중심으로 진행된 조선시대 중층 사 찰건축의 비례에 관한 연구(김재길 2006)도 있다. 보림사 대웅보전의 조영에 관한 연구(신웅주 2010)는 보림사 대 웅보전의 연혁에 관하여 고찰하고 동시대에 건축된 다른 중층목조건축과의 비교를 통하여 주칸의 설정과 상층체 감의 기법을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쌍봉사대웅전의 건축 변화고찰(신웅주 2010)에서는 동일 위치에 3회 이상 재건 축되었을 것으로 판단되는 쌍봉사대웅전을 대상으로 창 건 이후의 건축변화 과정을 문헌과 유구를 통하여서 고 찰하였다. 한편, 1980년대에 자주 등장하였던 목조탑에 대한 연구는 황룡사9층탑의 복원문제와 관련하여 다시 다양하게 논의되었다.
2)위의 선행연구들은 중층목조건축의 건축적 특징을 밝 히는 연구와 복원적 고찰을 다룬 연구로 구분된다. 중층 목조건축의 특징과 유형을 밝히는 연구에서는 다양한 용 어가 사용되어 각 층의 분리된 구조와 연결된 구조의 방 식으로 구분하고 있다. 그러나 층의 분리 개념의 ‘각층방 식’과 연결 개념의 ‘통층방식’을 구성하는 각각의 대표적 매개체인 ‘평좌’와 ‘부계’의 기능중심적인 성격은 퇴색되어 갔고 각층방식과 통층방식은 하나의 중층건축에 동시에 사용된 것으로 판단된다.
과거에 중층의 건축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적에 대
2) 1980년대부터 진행된 목탑에 관한 주요 선행연구는 다음과 같다.
金正守,「黃龍寺九層木塔의 形態推定에 관한 硏究, 文化財와 作圖 法을 중심으로」, 大韓建築學會誌 25卷 102號, 1981.10
김동현, 「황룡사9층목탑의 5개 복원안에 대한 비교」, 계간미술, 1982.
金正守,「望德寺十三層木塔의 形態推定에 관한 硏究」, 大韓建築學 會誌 28卷 119號, 1984.8
金慶彪外,「東洋木造塔婆의 構造形式에 관한 硏究, 法主寺 八相殿 과 法隆寺 五重塔의 비교분석적 측면에서」, 建築歷史硏究 第1卷 1 號 通卷1號, 1992.6
李廷國외,「高麗時代 木塔의 內部空間에 관한 硏究」, 大韓建築學 會論文集 13卷 10號 通卷108號, 1997.10
權鍾湳,「韓國古代木塔의 構造 및 意匠에 관한 연구, 黃龍寺 木塔 의 復元的 考察을 중심으로」, 成均館大學校 博士學位論文, 1998 김정수,「신라시대 목탑의 전래에 관한 연구, 찰주와 심초석을 중 심으로」, 大韓建築學會論文集 計劃計 20권 7호 (통권189호),
2004.7
김경표,「高麗金銅搭을 통해본 法主寺 八相殿 構造形式系統」, 建 築歷史硏究 第14券 1號 通卷41號, 2005.3
佐川正敏,「日本古代木塔基壇의 構築技術復原과 心礎設置形式의 변천에 관한 연구」, 백제연구 Vol 44, 2006
洪大韓,「高麗初 石塔의 塔身받침 造形特性에 관한 硏究, 塔身받 침의 起源과 變化를 중심으로」, 文化史學 第27號, 2007.6
김경표,「실상사 목탑의 복원 연구」, 건축역사연구 제16권 6호 통권55호, 2007.12
조원창,「백제 木塔址 편년과 축기부 축조기법에 관한 연구」, 건 축역사연구 제17권 4호 통권59호, 2008.8
조원창,「백제 군수리사원의 축조기법과 조영주체의 검토」, 한국 고대사연구 51호, 2008.9
한 복원 연구는 최근 주목받고 있는 특정 건축물에 대한 현실적인 복원설계안들이 주를 이루어 괄목할 만하지만, 고려시대 후기 이전의 건축유구가 남아 있지 않은 현실 에 비추어 볼 때 연구결과에 의해 시대적 특징이 좌우되 거나 왜곡될 수 있으므로 다양한 문헌과 축적된 자료에 근거하여 보다 정교한 복원 안이 절실하다.
2. 도갑사의 연혁 고찰
2.1 도갑사의 연혁
도갑사는『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이나
『도갑사사적(道岬寺寺蹟)』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머 물렀던 곳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사실을 입증할 만한 유 구와 유물의 흔적이 없다. 현재까지 도갑사의 조성연대가 확인된 유적으로는 도갑사와 관련이 있는 죽정리에 고려 문종대(1081년)의 명문(銘文) 뿐이다. 아마도 도갑사는 이 연대의 이전 시기에 창건된 후 11세기 후반에 대대적인 중창을 통하여 발전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고려말부터 조선초에 이르러서 도갑사는 황폐 해진 것으로 보인다. 이후 세조(世祖)대인 1457년~1464년 경에 수미왕사(守眉王師)가 조선왕실의 지원을 받아 대대 적으로 중창하였는데 현존하는 도갑사 해탈문(1476년)도 이 시기에 건축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도갑사의 사정과 중창에 대해서는 『도갑사묘각화상비(道岬寺妙覺 和尙碑)』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영암출신이며 도갑사로 출가해서 스님이 된 수미가 15세기 중반에 돌아와 보니 도장(道場)이 황폐하고 건물 이 거의 없어서 싸늘한 연기와 무성한 풀 속에 있었다.
당시 절에 있던 洪月 등의 스님과 함께 중창하였다. 1457 년에 영응대군이 단월이 되어 조성한 소조약사여래 3구 를 감전에 봉안하였다.
3)조선 초 왕실의 지원을 받아 불사가 이루어졌을 것으 로 추정할만한 근거는 발굴 당시 발견된 명문기와이다.
명문은 성화(成化) 3년(1467년), 홍치(弘治) 원년(1488년), 弘治 8年(1495년) 등으로 미루어 세조가 도갑사의 불사를 명한 후 3년에 걸쳐 불전들이 중창되었고 9년 후에는 해 탈문이 건축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홍치 8년의 명문 기 와를 통해 30여 년간 불사가 계속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 다.
4)당시의 중창불사를 통해 966칸의 당우와 12곳의 암 자가 건축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5세기 왕실의 지원을 받아 대규모 불사를 이루었던 도갑사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면서 대부분의 전
3) 문화재청, 『도갑사해탈문 실측조사보고서』, 2005, p.59 4) 목포대학교 박물관, 『도갑사』, 2001, pp.237~238
각들이 소실되었다. 그 후 광해군 때에 낡고 허물어진 전 각이 새로 중수되었는데 승려가 730명이나 될 정도로 다 시 번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밖에 불사를 통한 사세 를 증명해주는 것으로 명문 기와와 괘불대, 석조 등이 있 다. 특히 대웅전 앞의 괘불대는 좌측 석주의 명문으로 보 아 제작연대가 1682년임을 알 수 있다. 석조는 측면에 새 겨진 ‘강희(康熙) 31년 임술(壬戌)’의 기록으로 미루어 1682년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5)2.2 중층 불전의 조영시기 추정
18세기 초 도갑사의 모습을 비교적 잘 보여주는 문헌 자료로 이하곤(李夏坤)의 기행문인 『남유록(南遊錄)』에 서 1722년 호남지방을 여행하고 남긴 ‘도갑사(道岬寺)’라 고 하는 漢詩에서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6)승려들이 서로 전해 말하기를 도선이 이 절을 창건했 다하네, 중문의 규모가 장관이며, 층각은 높고 장대하네
또한 『남유록』의 ‘두타초(頭陀草)’에서도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도갑사는 건물이 웅장하고 화려하다. 규모가 정제되 어 장흥(長興)의 보림사(寶林寺)보다 낫다. 법당 앞에 종 각이 있고, 종각 남쪽에 긴 회랑을 건립하였는데 30여 칸 이나 되며, 밖에 사중문(四重門)이 있고 불전 서쪽에 고 승당(高僧堂)[단림(檀林)]이 있다.
7)이상과 같이 18세기 초 도갑사에는 많은 전각들이 있 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현재는 소실된 사중문과 회랑, 고승당 및 종각 등이 배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건물을 층각(層閣)으로 묘사한 점과 보림사대웅전과 비교한 점에서 당시의 주불전은 중층목조건축이었을 것 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중층으로 건축되었던 도갑사 대웅 보전의 소실에 관한 기록은 찾을 수 없고 그 다음의 대 웅전은 영조 25년(1776년)에 건립된 것으로 확인된다.
1977년에는 이 대웅전마저도 소실되어 1981년 복원불 사가 이루어졌고 이후 지반침하로 다시 해체되었다. 2005 년에는 발굴조사를 통하여 도리통 5칸, 양통
8)4칸의 중층 불전이 과거에 존재했음이 확인되었고 2009년 현재의 대 웅보전이 건축되었다.
5) 문화재청, 『도갑사해탈문 실측조사보고서』, 2005, p.60에서 재인용 6) 문화재청, 『도갑사해탈문 실측조사보고서』, 2005, p.60 7) 목포대학교 박물관, 『도갑사』, 2001, pp.238~239
8) 정면과 측면의 명칭은 목조건축의 구조적 측면보다 기능적인 측 면의 성격이 강하므로 정면을 도리통(道理通)으로, 측면을 양통 (梁通)으로 하였다.
목조건축단층 殿閣 목조건축전통
중층 전각계
목조건축 門樓
탑파계
그림 1. 중층목조건축의 분류
출처 : 김봉건, 전통 중층목조건축에 관한 연구, 1994, 서울대 박사학위 논문
3. 중층목조건축과 도갑사대웅보전
3.1 중층목조건축의 개념
중층목조건축(中層木造建築)은 바닥 또는 지붕의 적재 에 의해 건물의 평면기능 또는 외형이 수직적으로 증대 된다. 중층목조건축의 구조방식은 목조건축의 형식을 기 초로 하는데 기본적인 유닛인 면적개념의 칸(間)이 수직 적으로도 연결되어 있다. 단층의 목조건축처럼 지표면 상 에서의 수평적 확대는 용이하지만 규모의 수직적인 확대 를 위해서는 구조적인 문제와 의장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중층목조건축은 두 개의 층 이상의 공간이 수직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단층과 차이가 있고 고도의 건축기법이 요구되는 건물이다.
공간의 수직적 확대를 기준으로 목조건축형식을 구분 하면 단층목조건축 형식과 중층목조건축 형식으로 나뉜 다. 중층목조건축 중에는 문루와 같이 예외가 있으나 구 조 또는 형태에 의해 구획된 각 층마다 지붕이 설치되는 방식이 가장 일반적이다. 중층목조건축 형식은 다시 전각 과 탑파로 구분된다. 전각과 탑파는 기능상의 차이는 물 론 평면상의 규모와 입면상의 높이에서도 차이가 있다.
중층목조건축에서 층을 구분하는 기준
9)은 바닥구조 외 에도 지붕의 수, 건축물의 높이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이 러한 의미를 갖는 중층목조건축은 기능적인 측면과 형태 적인 측면으로 나누어 그 개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중층목조건축은 첫째, 건축물의 내부에 상하층을 구획하 는 바닥구조가 설치되어 각 층을 사용할 수 있는 경우와
9) 重層은 ‘중첩 重’과 ‘켜 層’의 복합 의미로서 전통목조건축에서 바 닥구조의 적재에 의해 수직적으로 높아진 구조 또는 형태를 의미 한다. 즉, 중층건축은 바닥구조가 중첩되어 층수가 많음을 뜻하는 다층건축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중층건축의 형태와 기 능에 따른 명칭은 중국, 일본, 한국에서 다소 상이하다. 중국은 重 層의 용어 대신에 ‘重屋’, ‘重檐’의 용어를 주로 사용한다. 屋은 지 붕을 뜻하고 檐은 처마 또는 추녀를 뜻한다. 중국 고대의 周禮考 工記에는 중층건축이 重屋으로 표기되어 있다. 일본에서도 중층의 용어 대신 重의 용어를 주로 사용한다. 특히 일본의 木造塔의 대 부분은 平面이 三間方形으로 그 규모가 비교적 협소하여 상층의 축조가 불가능하여 오르내릴 수 없었다. 외견상 일본의 三層과 五 層 목조탑은 층의 수와 무관하다. 藥師寺 東塔과 같이 平坐로 인 하여 외견상의 지붕[屋蓋] 수와 木塔의 명칭 상 층 개념의 수가 서로 상이한 경우도 있다. 이러한 혼동을 피하기 위해 重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실제로 각 층이 존재 하는 경우 뿐 만 아니라 지붕이 수직으로 둘이고 내부가 트인 경 우에도 명확히 층으로 기록되어 있다.
둘째, 두 층 이상의 높이를 하나의 층으로 구성하여 내부 공간을 수직으로 확대하고 외부에 두 개 이상의 지붕을 상하로 설치한 경우이다.
10)3.2 중층목조건축의 유형
중층목조건축은 수적적으로 중첩된 층의 안정적인 지 지를 위하여 단층목조건축에 비하여 복잡한 구조 체계를 갖는다. 이러한 구조체계는 시대별, 규모별, 용도별로 특 징을 보이는데 현존하는 건물, 잔존유구, 문헌, 연구를 통 한 추정 등을 통하여서 대략 세 가지의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기둥과 공포로 구성된 독립 구조체계가 수직으로 중첩된 적층구조방식의 중층목조건축이다. 현존하거나 기 록이 남아있는 건물로, 한국에서는 1984년 소실된 쌍봉사 대웅전이 유일하지만 중국과 일본에는 다수의 유구가 보 존되고 있다. 이러한 수적 결과치에 의거하여 초기의 연 구들은 상하층이 내진에서 하나의 기둥으로 연결된 연속 구조방식에 기초한다고 제안하였으나 다층이 수직적으로 중첩되는 목탑의 복원 안에서 구조적인 문제점과 기술적 인 한계 등이 집중적으로 제시되었고
11)현재는 각 층의 독립구조체계가 적층되어 형성된 적층구조방식
12)도 한반 도 내에 다수 존재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둘째, 각 층을 구성하는 독립 구조체계가 따로 존재하 지 않고 두 개 층 이상이 연속된 통층으로 구성되어 내 부공간이 수직적으로 확대되는 연속구조방식의 중층목조 건축이다. 부계(副階)
13)14)를 갖는 연속구조방식의 중층목
10) 신웅주, 박강철,「보림사 대웅보전의 조영에 관한 연구」, 대한건 축학회논문집 제12권 제9호 통권95호, 대한건축학회, 2010. 6.
11) 특히 황룡사구층목탑의 복원안 제시에서 연구자별로 이견이 컸 다. 연속구조방식 복원안은 각 층 퇴칸의 연속적 후퇴에 의해 옥 개를 규칙적으로 체감시켜 나갔고(후지시마 가이지로 1929, 김정 수외 1981) 각층구조방식 복원안은 중국의 불궁사석가탑, 일본의 삼중탑 및 오중탑의 구조 원리를 근거로 층단구조를 적용시켰다 (김동현 1982, 권종남 1998)
12) 상하층이 완전히 분리된 적층구조방식의 중층목조건축은 조선 초기까지 조영되었으나 중기 이후에는 자취를 감추었다. 상하층 의 가구가 분리되어 구조적 취약점을 안고 있었고 건축분야에서 도 한반도에 영향을 끼치던 중국에서도 明·淸代 들어서 상하층 의 기둥이 통주로 대체되는 경향과 그 궤를 같이 하고 있다.
(김덕문, 조선시대 전통목조건축의 통주형 중층체계, 충북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7, p.33)
13) 副階는 일정 길이만큼의 간격을 두고 달아낸 지붕을 갖는 구조 로서 건축물의 본체 주위 또는 정면을 에워싸여 외관상 2층으로 보이게 한다. ≪營造法式≫ 卷31에서는 ‘副階周匝’이라고 한다.
이러한 형태는 원래 높은 土臺 위에 지어지던 방식으로 지붕 간 격과 분리된 구조를 갖는 주건물과 부속의 間 또는 副階가 결합 되어 공간이 형성된다고 하였다. (국경화,『중국 목조건축의 구 조』, p.163)
14) ≪營造法式≫에서는 연속구조방식의 중층목조건축을 纏腰와 副 階로 설명하면서 다층건축물 즉 중층건축물로 혼동하기 쉽다고 하였다. 纏腰는 ‘처마구조’로 부계는 殿堂에서 多層 혹은 큰 건축 물 본체의 주위에 첨부되거나 에워싸는 ‘添附間’ 혹은 ‘附屬間’
정도로 설명하고 있다.
纏腰와 副階의 규칙에 관해서는 ≪營造法式≫ 卷4 ‘總鋪作次序’
와 ‘材’에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다.
- 纏腰나 副階의 栱包는 건물 본체와 동일한 층단을 갖거나, 하
명칭 가구개념도 구성체계 현존 대상
중층불전 기타 중층목조건축
적층구조방식
층에 다음의 층이 수직으로 쌓이는 방식으로 층간연결방법은 상층의 기둥 하부에 평좌를 설 치하여 상층이 올려짐. 정방형의 평면으로 중 앙에 심주가 설치되는 목탑형
쌍봉사대웅전(복원)
기준층에 상층이 수직으로 체감을 이루며 적재 됨. 상층의 기둥 체감은 ≪營造法式≫의 전주 조방식보다 크나 한국의 경우 공포대 내부 출 목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음
연속구조방식
연속구조방식을 갖는 중층목조건축으로서 하층 의 내진고주가 상층의 외진주로 형성되고 상하 층의 기둥열이 수직으로 일치되는 유형
도갑사대웅보전(15c초)*
마곡사대웅보전(1651) 무량사극락전(1633) 장안사대웅전(1731) 장안사사성전(1731)
창덕궁존덕정(육각)
부계고주형의 가구구조에 층을 구획하여 상하 두 개의 공간을 확보할 목적으로 건축된 연속 구조방식의 중층목조건축
남한산성수어장대 북한산성동장대
전주풍남문 화성서장대 경성읍성남문
절충구조방식
상하층에 연속된 내진고주와 하층의 외진인 평 주열과 연결되는 퇴량의 상부에 별도의 평주가 놓여 상층의 외진이 내진고주열보다 넓은 면적 으로 구성된 유형
법주사대웅보전(1624) 화엄사각황전(1699) 보림사대웅전(1692)*
안국사대웅보전(1785)
평양보통문 평양대동문 의주읍성남문 구성읍성남문 철옹성남문 상층의 네 隅柱가 세워지는 지점을 보강하기
위한 기법으로 하층 우주에서 추녀방향으로 상 층의 체감길이와 일치되는 곳에 고주가 설치된 방식
창덕궁인정전 경복궁근정전
복합형 숭례문
흥인지문광화문 측면의 중앙에서 도리방향으로 하층부터 상층
으로 연결된 1열의 고주가 존재하고 상층의 네 우주를 비롯한 평주들이 하층의 외진주와 상관 없이 일정 길이만큼 내진으로 체감된 유형
창덕궁돈화문 창경궁홍화문 수원팔달문 수원장안문 경복궁근정문
일반적인 절충구조방식의 적층 고주형 결구방 식이 응용되어 수직으로 3개 이상의 지붕이 중 첩된 구조
법주사팔상전(1605) 금산사미륵전(1635)
*은 初創 또는 重創 년도 표 2. 중층목조건축의 유형
조건축은 상하층의 가구가 고주에 의해 연결되어 있어 각 층이 분리된 적층구조방식에 비하여 횡력에 대한 저 항성이 강한 가구방식으로 종단면상에서 2고주와 전후퇴 칸의 가구방식이 적용되었다.
셋째, 절충구조방식은 적층구조방식과 연속구조방식이 복합적으로 적용된 층 연결기법으로 현존하는 과반수이 상의 중층목조건축에 적용되었다. 이 방식은 상층의 외진 이 하층의 외진 또는 고주열과 단면상에서 수직으로 일 치되지 않고 하층의 퇴량에 세워짐으로써 연속구조방식 에 비하여 상층의 체감율이 낮다. 또한 부계로 구성된 하 층의 퇴칸이 상층에서 분할되어 협소한 퇴칸이 상층에 형성됨에 따라 하층의 협칸 폭이 조절되어 주칸의 배열 이 자유롭다.
나 적은 층단을 가질 수 있다. [≪營造法式≫ 卷4 ‘總鋪作次序’]
- 재분법 등급에서 부계의 구조부재들은 건물 본체의 구조부재들 보다 한 등급이 낮다. [≪營造法式≫ 卷4 ‘材’]
4. 도갑사 대웅보전의 조영
4.1 기단과 적심석의 배열
조선 전기에 건축된 도갑사 대웅보전은 그 평면 형태
와 규모에 대하여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가 2005년에는
1981년에 건축되었던 대웅전에 침하 균열 현상이 보여
해체수리가 시작되었고 시굴조사를 통하여 대웅전의 규
모와 유구 등을 파악하는 과정 중 트랜치에서 연결 기단
열과 도갑사 해탈문(1473년) 계단의 대우석(大隅石)
15)과
15) 대우석, 4~5단 정도의 계단에서는 그 옆을 위가 휘어오른 삼각형 의 판석으로 막아댄다. 이것을 우석이라 하고 특히 크고 옆면에 운문을 새긴 것을 雲刻大隅石이라 하였으며, 일명 毛老臺라고도도갑사 대웅보전(중층부) 목포대박물관, 도갑사대웅보전,
2007
도갑사 대웅보전지(北방향촬영) 목포대박물관, 도갑사대웅보전,
2007
그림 2. 1776년에 건립된 도갑사 대웅보전(1960년대 사진)과 위치하였던 중층부 발굴조사 결과
道岬寺 解脫門 계단 大隅石
2007.2. 촬영 道岬寺 大雄寶殿址 계단 大隅石 2005.5. 촬영 그림 3. 도갑사의 대웅전의 건축시기 추정 자료
그림 5. 연속구조방식을 갖는 중층목조건축의 주망도 그림 4. 연속구조방식의
중층목조건축 평면개념
동일한 석재가 발견됨에 따라 전면 발굴조사가 시행되어
도갑사 대웅보전지에는 총 4차례 가량의 개축이 이루어 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건물지의 중첩은 크게 상층부와 2005년 당시 대웅전을 해체한 후 초석과 적심석을 제거한 중층부, 바닥면인 하 층부로 구분된다. 상층부에 있었던 대웅보전은 1977년 소 실된 대웅보전을 대신하여 1981년에 건립된 불전으로 도 리통 3칸, 양통 3칸의 규모이다. 이 대웅보전의 초석은 1977년 소실된 것으로 알려진 영조 52년에 건축된 대웅 보전의 초석 중 일부가 활용된 것으로 보이는데 초석의 상면에 불에 그을린 자국이 남아 있어 이를 반증한다. 중 층부는 1776년에 건축된 도리통 3칸, 양통 3칸의 대웅보 전지로 대부분 교란되고 마지막 단 일부만 원형이 유지 되어 있었다. 남아 있는 기단열은 서쪽 10.6m, 동쪽 15m, 북쪽 10.3m, 남쪽 1m 만 잔존되어 있었다. 하층부에서는 규모가 파악되는 두 동의 건축물지가 확인되었는데 그 중 도리통 5칸, 양통 4칸의 중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웅보전지가 확인되었다.
16)이 대웅보전지와 관련이 있 는 적심석은 22개이나 주망의 배치상 총 28개
17)가 있었 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였다. 이것은 기단석에 1치 가량 물리고 또 그보다 조금 높게 댄다. 중간에 휘어오른 것은 계단의 난간 구실로도 유효한 것이 다. 끝 아무림에는 북모양으로 둥글게 하고 그 옆면에는 태극무 늬나 꽃무늬를 새기고 위에는 쌍사 쇠시리를 넣기도 한다.
16) 목포대학교박물관, 『도갑사 대웅보전』, 2007, p.35
17) 목포대학교박물관, 『도갑사 대웅보전』, 2007, p.35 의 보고서에 따르면 초석이 총 30개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대의 금당 처럼 감주법과 이주법이 없을 경우는 30개로 추정이 가능하겠지 만 도갑사 대웅보전이 건축되었던 당시에는 대부분 감주법이 적 용되어 불단 앞의 고주 2개는 생략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 대웅전지에서 발견된 계단의 대우석(大隅石) 단부에 는 태극문양이 새겨져 있는데 문양은 해탈문의 것과 일 치한다. 이로서 1473년에 건축된 도갑사 해탈문과 비슷한 시기에 건축된 것이 확실하므로 도갑사 대웅보전의 건축 도 이때보다 조금 앞선 시기로 보아야 타당할 것이다.
18)4.2 연속구조방식의 유구와 비교
연속구조방식의 중층목조건축이 구성되기 위한 하층의 최소 칸 수는 도리통 3칸, 양통 3칸으로 상층에서 외진칸 은 지붕으로 구성된다. 특히 다포계 건축에서 주칸 길이 는 건축물의 규모, 기능, 포간거리와 연계되어 있기 때문 에 설계와 시공의 편의를 위해 설정되어야 한다.
19)사방에 부계 형태의 퇴 칸을 갖는 연속구조방식 의 중층목조건축의 대부 분은 어칸의 주칸을 다른 칸보다 넓게 설정하는 방 식으로 도리통 5칸, 양통 4칸으로 구성된다. 도갑사 대웅전지와 비슷한 주망 (柱網)을 갖는 현존 건축 물과 건물지를 살펴보면 무량사 극락전(1633년), 마곡사 대웅보전(1651년) 과 현재는 소실되어 사진 기록으로만 남아있는 장 안사 대웅전(1731년)과 장 안사 사성전(1731년)이 있 다. 위의 불전들은 연속구 조방식의 특징을 갖는 중
층목조건축으로 하층에 내진고주와 외진평주가 세워지고 상층은 내진부에 위치한 고주가 상층의 외진주 역할이 되는 가구방식이다.
현존하는 연속구조방식의 중층 불전은 17세기 초반부 터 18세기 초반에 건축된 경우가 대부분으로 추정 연혁 이 15세기 중반인 도갑사 대웅보전과 시기적으로 일치하 지 않는다. 물론 도갑사 대웅전이 건축된 후 동일한 유형 으로 건축되어 17~18세기의 양식적 특성으로 자리매김 되기까지 여러 건축물들이 건축되고 소실되었을 가능성 도 크다. 그렇지만 이 연속구조방식을 갖는 중층의 불전 들은 도갑사 대웅전지와 같이 퇴칸의 폭이 작고 어칸 및
18) 1473년 도갑사 해탈문의 건축으로 불사가 마무리 되었다고 전함.
19) 중층목조건축에서 포간 거리가 균등하지 않아 첨차의 크기 조절 을 통해 포작 사이의 포벽크기를 일치시킨 사례가 있다.이러한 첨차의 크기조절은 어칸과 퇴칸에서 모두 나타나는데 어칸에서 첨차의 길이조절이 나타나는 중층목조건축은 금산사 미륵전, 법 주사 팔상전 4층[최상층만 다포], 숭례문, 마곡사 대웅보전 상층 등이 있고 퇴칸의 경우 마곡사 대웅보전 상하층, 법주사 대웅보 전 상하층, 숭례문 상층 등이 있다.
무량사 극락전(1633년) 마곡사 대웅보전(1651년) 장안사 대웅전(1731년) 그림 6. 連續構造方式이 적용된 重層木造建築의 사례 입면도
명칭 하층퇴칸점유율 하층어칸대퇴칸길이비
도리통 양통 퇴칸 어칸 비
무량사극락전 28% 40% 8尺 16尺 0.50 장안사대웅전 29% 36% 8尺 16尺 0.50 마곡사대웅보전 35% 36% 8尺 10尺 0.80 평균 30% 37% 7.8尺 13.6尺 0.57 표 3. 連續構造方式의 어칸대 퇴칸의 비교
무량사극락전 마곡사
대웅보전 장안사
대웅전 장안사 사성전 전각
평균치 도갑사 대웅보전 도리통양통도리통양통도리통양통도리통양통도리통 양통 도리통양통 상층길이40尺24尺30尺18尺40尺28尺30尺21尺35尺22.8尺42尺28尺 하층길이56尺40尺46尺28尺56尺44尺42尺33尺50尺36.3尺60尺46尺 길이비 0.71 0.60 0.65 0.64 0.71 0.64 0.71 0.64 0.70 0.63 0.70 0.61 표 4. 副階型 連續構造方式의 상층 대 하층의 길이비
용척(㎜) 산출근거
A안 303 2,736㎜ / 9尺 = 303 4,250㎜ / 14尺 = 303 B안 340 2,736㎜ / 8尺 = 340
4,250㎜ / 12.5尺 = 340 표 5 . 도갑사 대웅전지의 적심을 통한 용척 산출안
협칸의 폭이 큰 주칸의 배열을 보인다.
20)비슷한 연속구조방식을 갖는 중층 불전은 어칸 대 퇴 칸의 길이비는 평균 0.57로 도갑사 대웅보전의 0.64에 비 하여 작은 수치를 보인다. 특히 마곡사 대웅보전은 퇴칸 이 어칸 폭의 8할로 비슷한 수치를 보인다. 연속구조방식 에서는 상층의 체감이 그만큼 커질 수 있다는 것으로 풀 이된다. 이 값은 적층 고주형의 절충구조방식에서 계산된 0.70의 값보다 훨씬 작은 값으로 중층건축의 유적발굴지 에서 상층의 가구방식을 추정하는 기준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동일한 유형에서 하층과 상층의 도리통과 양통에 대한 전체 길이비를 따져보면 기존 전각의 평균치는 도리통 0.70, 양통 0.63의 값을 보여 도갑사 대웅보전지의 발굴조 사 결과자료를 토대로 전체의 칸 길이 대 양 협칸을 뺀 길이의 비를 계산한 결과 동일한 값의 도출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결과로 미루어 어칸 대 퇴칸의 길이비가 0.57 에 근사한 값을 갖고 양 협칸을 뺀 길이 대 전체의 칸 길이의 비가 0.70에 근사할 경우 연속구조방식이 적용된 중층목조건축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21)20) 이러한 배열 방식의 주망을 갖는 고대의 중층 추정 건축물은 능 산리사지 금당, 정림사지 금당, 법광사지 금당, 미륵사지 금당 등 으로 추정할 수 있다.
4.3 도갑사 대웅보전의 조영
가) 주칸설정
2009년 복원된 도갑사대웅보전은 발굴조사를 통해 확 인된 건물지를 기초로 설계되었다. 대웅전지는 도리통 5 칸, 양통 4칸의 규모로 초석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적심석 은 잘 남아 있었다. 대웅전지의 규모를 추정해보면 도리 통과 후면 어칸을 포함한 중앙 3칸의 적심간 거리는 4,200㎜~4,500㎜로 거의 동일하고
22)좌우 퇴칸은 2,600㎜
가량이다. 이 계측치를 기준으로 도리통 5칸, 양통 4칸의 건물지 영조척(營造尺)을 파악해 보면 303㎜와 340㎜로 계산할 수 있다.
연속구조방식이 적용된 중층목조건축의 주칸 설정은 맞배집이나 단층의 다포계 팔작집에 비해 상하층의 연결 방식으로 인하여 비교적 난해하다. 그러나 하층의 외진칸 은 상층의 퇴칸 길이결정에 영향을 주지 않으므로 하층
21) 신웅주, 「한국 전통중층목조건축의 구성체계 연구」, 2009, 조선 대 박사학위논문, p.198
22) 주칸의 설정은 대개 2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모든 칸이 동일한 간격으로 배분되는 방식으로 다포계 중층목조건축에서는 그 유 례가 드물다. 다른 하나는 칸의 길이를 다르게 설정하는 방식으 로 평면의 중심에 해당되는 어칸의 주칸 길이를 다른 칸보다 넓 게 설정하는 방식으로 중국의 목조건축 역사상 후대로 내려오면 서 정중앙 부분을 강조하기 위하여 當心間이라고 불리는 정중앙 의 칸은 일반의 칸에 비하여 기둥 사이의 거리를 크게 하였다.
현존하는 불광사 대전의 당심칸도 이러한 수법이 적용된 것이고 청대에 이르러 한층 강조되어 明間으로 나타났으며 명칸 양측의 칸을 次間이라고 하였다. 차칸 이외의 좌우 칸은 稍間으로 불렸 고 양끝의 마지막 칸은 盡間이라고 하였다. 기둥의 거리 변화를 주는 중요한 목적은 정중앙 부분이 두드러져 보이기 위함이었다.
이는 본 연구의 진행을 위한 참고자료인 무량사 극락전, 장안사 대웅전에도 적용되었다. (이상해 역, 『중국고전건축의 원리』, 시공사, 2000, pp.169~171)
그림 7. 복원 도갑사 대웅전
좌상부터 발굴평면도, 횡단면도, 종단면도, 평면도, 정면도, 측면도 (출처 : 삼진건축사사무소)
도리통 양통
주칸 주간포수 주칸 주간포수
칸 칸 칸 칸 칸 칸 칸 칸 칸 칸 칸 칸 칸 칸 칸 칸 칸 칸 무량사극락전
상 12 16 12 2 3 2 12 12 2 2 하 8 12 16 12 8 1 2 3 2 1 8 12 12 8 1 2 2 1 대웅보전마곡사
상 10 10 10 1 1 1 5 8 5 0 1 0 하 8 10 10 10 8 1 1 1 1 1 5 9 9 5 1 1 1 1 장안사대웅전
상 12 16 12 2 3 2 16 12 3 2 하 8 12 16 12 8 1 2 3 2 1 8 16 12 8 1 3 2 1 장안사사성전
상 9 12 9 2 3 2 12 9 3 2 하 6 9 12 9 6 1 2 3 2 1 6 12 9 6 1 3 2 1 도갑사대웅전
상 14 14 14 2 2 2 14 14 2 2 하 9 14 14 14 9 1 2 2 2 1 9 14 14 9 1 2 2 1 표 6. 연속구조방식의 중층목조건축 중 도리통5칸 불전의 주간포 배치
참고 : 김봉건, 전통 중층목조건축에 관한 연구, 1994,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p.77
단위 : 주칸 - 영조척, 주간포수 - 개
의 내진고주 외부에 평주를 둘러 하층 퇴칸의 중앙지점 에서 수직으로 상층의 벽체가 형성되는 절충구조방식보 다 포간거리의 설정이 수월하다.
23)도갑사대웅보전의 경우 발굴조사 결과 적심석으로부터 확인된 도리통 5칸, 양통 4칸의 규모와 용척 산출안 중 A안에 근거하여 도리통 14척, 양통 9척으로 주칸을 설정 하였다.
현존하거나 사진기록으로 남아있는 연속구조방식의 중 층목조건축은 모두 다포계 양식이다. 하지만 공포의 세부 양식은 시대적으로 많은 차이가 있는데 상하층 공포의 출목수의 결정
24)은 조선초기의 중층건축에 적용되었던
23) 무량사 극락전은 매 칸마다 4척으로 동일하여 주칸거리와 포간 거리가 모두 完尺으로 맞아 떨어진다. 이렇듯 공포의 배치와 기둥의 주칸 설정은 상호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대상 중층건축의 주칸 배열 을 살펴보면 도리통에서 서로 다른 길이가 적용되어 퇴칸의 2배인 어칸이 중앙에 배치되고 특정 정수를 반복하여 뺀 길이가 협칸과 퇴 칸에 차례로 적용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무량사 극락전과 장안사 대웅전은 어칸이 16척, 협칸이 4척을 뺀 12척, 퇴칸이 다시 4척을 뺀 8척으로 구성되는데 어칸의 폭은 퇴칸의 2배가 된다. 장안사 사성전 에도 비슷한 방식이 적용되었는데 어칸이 12척, 협칸이 3척을 뺀 9 척, 퇴칸이 다시 3척을 뺀 6척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마곡사 대 웅전에서는 중앙의 어칸과 양 옆 협칸의 폭이 10척으로 같고 퇴칸의 폭이 8척으로 설정되었다.(신웅주, 「전통 중층목조건축의 구성체계 연구」, 2009, 조선대 박사 학위 논문
24) 중층목조건축에서 상하층 공포의 출목수를 조절하는 방식은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는 상하층의 출목수가 같은 형식으로 경복궁 근정전을 예를 들 수 있는데 현존하는 중층목조건축 중 다수에서 이 방법이 적용되었다. 둘째는 법주사 팔상전에서 보이는 상층의 출목수 가 하층의 출목수보다 많은 형식이다. 중국의 사례로는 ≪영조법식≫
의 殿堂側樣圖, 北京 太和殿이 있고 일본의 경우 圓覺寺 舍利殿과 같 이 다포계의 선종사찰 불전과 金剛三昧院 多寶塔 등에서 이 원칙이 발견된다. 셋째는 안국사 대웅보전과 같이 오히려 상층의 공포가 하
상층의 출목수가 하층보다 많은 형식을 적용하였다. 이러 한 기법은 숭례문(1479년), 구성읍성 남문(복원), 법주사 대웅보전(1624년), 무량사 극락전(1633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나) 가구법에 의한 상층체감
연속구조방식의 중층목조건축은 상하층의 가구가 고주
층의 공포보다 출목수가 작게 사용된 경우이다.(국립문화재연구소, 『한국의 고건축 22』, 2000, p.29)
도갑사대웅보전 정면 도갑사대웅보전 측면 하층 주간포 하층 귀포 그림 8. 복원 도갑사대웅보전
년도 도갑사 대웅보전
주요 연혁 년도 보림사 대웅보전 주요 연혁 1456 도갑사 대웅전 중창 시작 1660 보림사 대웅보전 중수 1473 도갑사 해탈문 건립으로불사 마무리 1692 보림사 대웅보전 중창 1633 전각(?) 중수 1693 보림사 대웅보전 단청 1722 남유록에 기록됨 1735 보림사 대웅보전 추녀,활주고침 18C중 대형 석조 조성 1748 보림사 대웅보전 개금 1776 도갑사 대웅전 재건(單層) 1761 보림사 대웅보전 중창 표 7. 도갑사 대웅보전과 보림사 대웅보전의 주요 연혁
그림 9. 『朝鮮古蹟圖譜』에 실린 寶林寺 大雄殿 좌상부터 정면, 측면, 하층퇴칸 공포, 내부, 불단
에 의해 연결되어 있어 각 층의 사이에 평좌기단을 갖는 적층구조방식에 비해 횡력에 대한 저항성이 훨씬 강하다.
도갑사대웅보전도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적심석 배치
와 이를 토대로 한 주칸설정에 의거하여 종단면상에서 2 고주에 전후퇴칸이 있는 연속구조방식의 가구법을 적용 하였다.
전체적인 구조방식은 내진주가 고주로써 건축물의 주 구조체를 이루고 있고 하층 외진의 평주 상단에 보머리 가 놓이며 그 뒷뿌리가 내진고주의 중간에 장부로 결구 되어 퇴량(退樑)으로 구성되게 하였다. 상층의 지붕가구 는 전면과 후면의 내진고주 상부에 대량(大樑)이 걸쳐지 고 그 위에 종량(宗樑)이 올려져 5량의 가구가 형성되도 록 하였다. 상층의 양측면 중앙기둥 위에는 충량을 설치 하여 대량 상단에 충량의 머리가 얹어지도록 하였다.
내진고주의 길이는 매우 세장하여 외진의 평주와 수평 부재인 퇴량이 상호 결합시켜 좌굴을 방지하였다. 내진고 주에는 기본적으로 세 군데가 긴결되는데, 최상부 주두 밑의 창방, 퇴칸의 서까래가 지지되는 멍에, 외진평주 공 포대의 상부에 위치하여 수평으로 연결된 퇴량이 그 보 강 긴결부재의 성격을 띤다.
다) 보림사대웅보전과 비교
1692년 중창된 전라남도 장흥군의 보림사 대웅보전은 한국전쟁 때에 소실된 후 1984년 복원된 중층목조건축이 다. 1692년 이전의 기록은 『보림사 사적기(寶林寺 事蹟 記)』, 그 이후의 기록은 『보림사 중창기(寶林寺 重刱 記)』에서 관련 연혁과 조영방식의 확인이 가능하며 일본 인 학자인 세키노타다시(關野貞)의 『조선고적도보(朝鮮 古蹟圖譜)』, 후지시마가이지로(藤島亥治郞)의 『조선건축 사론(朝鮮建築史論)』에 소실 전의 실측 및 사진자료가 남아 있어 확인 가능하다.
도갑사대웅보전은 『남유록』의 ‘두타초’의 싯구 중에 서 보림사의 불전과 비교된 대목이 된다. 영암의 도갑사 와 장흥의 보림사는 100리 이상 되는 먼 거리였고 도갑 사와 가까운 영암의 월출산에는 많은 사찰들이 산재하여 인근에도 비교의 대상되는 사찰들이 많았을 것으로 판단
된다. 하지만 굳이 보림사와 비교하여 『남유록』‘도갑사’
의 ‘층각이 높고 장대하다’는 싯구와 『남유록』‘두타초’의
‘장흥 보림사보다 낫다’라고 쓴 것은 도갑사와 보림사의
공통점이자 비교대상이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25)그 비교 대상은 중층으로 건축된 불전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표 7>은 도갑사 대웅보전과 보림사 대웅보전 의 중층목조건축이 같은 시기에 각 사찰에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자료로 각 대웅보전의 주요 연혁을 정리한 것 이다. 기록에서도 확인되듯 1692년 보림사 대웅보전이 중
25) 신웅주, 「한국 전통중층목조건축의 구성체계 연구」, 2009, 조선대 박사학위논문, pp.192~193
층목조건축으로 중창된 이후 18세기 초반부터 중반까지 두 건축물은 모두 존재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26)보림사 대웅보전의 불사 기록은 보림사 중창기를 통해 확인되고 중창 전의 기록을 통하여 과거부터 중층목조건 축이 존재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중층의 전각에서 하층의 주칸이 모두 동일한 치수로 계획되어 있는 건축 물의 현존사례는 없고 9세기에 일부 금당지에서 비슷한 평면의 형태가 발견되어 1692년에 중창된 보림사 대웅보 전은 기존의 창건 금당지에 건축되었을 가능성을 추론할 수 있다. 특히 타 중층 전각에 비하여 비교적 넓은 퇴칸 으로 구성되어 있어 특수한 상층 체감의 기법이 선택되 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체감 기법은 도갑사대웅보 전과의 비교를 통하여 중층목조건축의 조영에서 입면의 비례도 매우 중요한 요소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27)이러한 결과는 1470년대에 건축된 도갑사 대웅보전을 비롯하여 조선시대 후기까지 꾸준히 건축된 연속구조방 식과는 다른 상층 체감을 갖는다. 특히 현존하는 연속구 조방식의 중층목조건축 중 전각은 17세기 초반부터 18세 기 초반에 건축된 경우가 대부분으로 퇴칸의 폭이 작고 어칸 및 협칸의 폭이 큰 주칸의 배열을 보인다.
5. 결론
본 연구는 도갑사대웅전지의 발굴 자료와 수미왕사에 의해 불전이 중층으로 건립될 당시의 건축양식, 동일한 가구법과 평면구성이 적용된 타 불전과의 비교 고찰 등 을 토대로 현재 새롭게 건축된 도갑사 대웅보전의 복원 방법에 관하여 고찰한 것으로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발굴조사 결과 대웅전지에서 발견된 계단의 대우석단 부의 태극 문양이 해탈문의 대우석과 일치한 점으로 미 루어 1473년에 건축된 도갑사 해탈문과 같은 시기에 건 축된 건물의 잔해인 것으로 추정된다.
18세기 초 도갑사의 모습을 비교적 잘 묘사한 문헌자 료로 층각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점과 보림사와 비교한 대목이 주목된다. 『남유록』‘도갑사’의 ‘층각이 높고 장대 하다’는 싯구와 『남유록』‘두타초’의 ‘장흥 보림사보다 낫 다’라고 쓴 것은 도갑사와 보림사의 공통점이자 비교대상 인 중층목조건축이 존재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기존 자료에 의하면 도갑사 대웅보전은 을묘왜변(1555 년)과 정유재란(1597년)을 거치면서 소실되었다고 추정하 고 있으나 도갑사 대웅보전과 보림사 대웅보전의 중층목 조건축이 같은 시기에 각 사찰에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26) 목포대학교박물관, 『도갑사 대웅보전』, 2007, p.100 에는 도갑사 대웅보전이 을묘왜변(1555)과 정유재란(1597)을 거치면서 소실되 었다고 추정하였다.
27) 신웅주, 박강철,「보림사 대웅보전의 조영에 관한 연구」, 대한건 축학회논문집 제12권 제9호 통권95호, 대한건축학회, 20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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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로 각 대웅보전의 주요 연혁을 정리한 다음의 사실 에 주목된다. 즉 1692년 보림사 대웅보전이 중층목조건축 으로 중창된 이후 18세기 초반부터 중반까지 두 건축물 은 모두 존재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연속구조방식을 갖는 중층의 불전들은 도갑사 대웅보 전지와 같이 퇴칸의 폭이 작고 어칸 및 협칸의 폭이 큰 주칸의 배열을 보이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특히 발굴조사 를 통해 새로운 중층목조건축물지가 발견되었을 경우 주 칸의 배열방식에서 어칸 대 퇴칸의 길이비가 0.57에 근사 한 값을 갖고 양 협칸을 뺀 길이 대 전체의 칸 길이의 비가 0.70에 근사할 경우 연속구조방식이 적용된 중층목 조건축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판단된다.
도갑사대웅보전의 주칸은 발굴조사 결과 적심석으로부 터 확인된 도리통 5칸, 양통 4칸의 규모와 용척 산출에 근거하여 도리통 14척, 양통 9척으로 설정되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또한 적심석 배치와 이를 토대로 한 주칸 설정에 의거하여 조선시대 초 세종 연간에 수미왕사에 의해 건축된 당시의 도갑사 주불전은 종단면상에서 2고 주에 전후퇴칸이 있는 연속구조방식의 가구법이 적용되 었을 가능성이 가장 큰 것으로 판단된다.
도갑사대웅보전과 보림사대웅보전의 사례를 통하여서 중층목조건축의 상층체감을 통한 입면 비례의 설정은 조 영계획 중 매우 중요한 요소였던 것으로 파악되었다.
본 논문은 2009년 도갑사대웅보전의 복원사업에 참여 하여 발굴조사, 실측설계, 시공을 망라하여 자료를 수집, 분석한 연구의 결과물로써 그 의의가 크지만 복원 대상 건물의 상세한 부재 디자인이 다소 결여되었다는 점이 이 연구의 한계이다. 마침 일본에는 나라시대의 수도였던 평성궁지(平成宮址)에 대극전(大極殿)이 2010년 복원되었 다. 대극전에 관한 복원 보고서도 기단 및 초석, 목부, 채 색, 지붕 및 기와의 4권으로 2009년도에 출판되었는데 기 둥배치, 난간의 모양, 기와의 형태와 크기까지 고증을 거 쳐 상세하게 디자인한 점은 본받아야 할 부분이다.
참고문헌
1. 국립문화재연구소, 『한국의 고건축 22』, 2000 2. 이상해 역, 『중국고전건축의 원리』, 시공사, 2000 3. 목포대학교 박물관, 『도갑사』, 2001
4. 문화재청, 『도갑사해탈문 실측조사보고서』, 2005 5. 목포대학교박물관, 『도갑사 대웅보전』, 2007
6. 김봉건, 「전통중층목조건축에 관한 연구」, 1994, 서울대박사 학위논문
7. 김덕문, 「조선시대 전통목조건축의 통주형 중층체계」, 1997, 충북대박사학위논문.
8. 신웅주, 「전통중층목조건축의 구성체계 연구」, 2009, 조선대 박사학위논문
9. 신웅주, 박강철,「보림사 대웅보전의 조영에 관한 연구」, 대 한건축학회논문집 제12권 제9호 통권95호, 대한건축학회, 2010. 6.
(접수: 2011.01.10, 심사완료: 2011.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