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 은 글 긴 생 각 짧 은 글 긴 생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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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인 집필실은 내 오랜 꿈이다. 주위의 소요로부터 일정 거리를 둔 독립된 창작공간이야말로 몰입과 사유와 휴식을 동시에 꾀할 수 있는 적소이기 때문이다. 허 나 수입이 최저생계비를 밑도는 처지이다 보니 이는 말 그대로 꿈같은 얘기에 지나지 않는다. 글이 순조롭 게 풀릴 때는 불편함을 못 느끼다가도 정반대의 경우에 맞닥뜨리게 되면 한껏 예민해져 회의도 들고 낙심 할 때도 더러 있다. 게다가 여름방학이면 예외없이 되풀이되는 칩거에 대한 열망은 가히 중증이라 해도 과 언이 아니다. 방방마다 선풍기 프로펠러 윙윙거리는 혹서기와 숟가락 놓기 무섭게 돌아오는 식사준비를 포 함한 첩첩 가사노동은 마감이 촉박한 글쓰기와 맞물려 눅눅한 우기를 더욱 우울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자리 하곤 한다.
한번은 모 일간지에 3개월간 고정 집필을 해주고 받은 원고료 전액을 들고 부동산중개소를 방문한 적이 있다. 나는 비싼 월세에 놀라고, 그들은 세상물정 모르는 나를 어처구니 없어하던 민망한 일을 겪은 이후, 집필실이란 단어 자체를 금기시해왔는데 최근 꿈꾸던 공간이 생겼으니… 세상사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토록 열망할 땐 아득하더니만, 포기하니 절로 얻어지니 말이다. 사연인즉, 도보여행에 빠져 몇 계절 강화 도 구석구석을 강화나들길(강화군의 도보여행 공식 명칭이며, 두두미마을은 6코스에 있다) 추진위와 동행 했는데 일행 중 두두미마을 촌장님께서“별채를 짓긴 했는데 본가가 지척이라 비워두는 일이 많으니 언제 든 사용하라”며 열쇠를 건네주신 것이다. 강화섬의 전형적 주거형태인 돌담이 남아 있고, 심도기행의 저자 고재형 선생의 생가가 있는 유서 깊은 두두미마을에 그토록 오래 고대하던 은신처가 생길 줄이야.
일산대교를 건너 48번 국도를 40여 분 달렸을까? 두두미마을이다. 홀로 전원에 들었으니 막힌 글이 술 술 풀릴 줄 알았는데 웬걸, 아니다. 호흡이 자꾸만 끊긴다. 지척에 생활소음이나 가사노동과는 비교도 안 될 막강한 복명이 잠복해 있었으니 그도 그럴밖에. 성하(盛夏)의 눈부신 풍경이 바로 그 주범이다. 텃밭에 나갔다. 숲을 이룬 옥수수, 탱탱한 토마토, 검보랏빛 연미복 차림의 가지, 무농약 상추, 색색으로 물결치는 드넓은 봉숭아꽃밭, 코스모스 군락, 자작나무 울타리……. 아! 곳곳이 신의 명문장(名文章)으로 가득하다.
뙤약볕 무차별 투하 중인 밭이랑에 우두커니 서서 대지의 모신께 오래오래 경의를 표했다. 그러노라니 복 잡하던 심사가 유순해지고 글감옥으로부터 거짓말처럼 홀연해지는 게 아닌가. 한술 더 떠 선풍기를 풀타임 으로 맞춰놓고 낮잠에 빠진 가족들과 수시로 뒤집어주지 않으면 쉰내 나기 십상인 빨랫줄의 두툼한 옷가 지, 마감을 채근하던 편집부 기자의 사무적인 음색까지 못 견디게 그리워져 총총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최상의 집필실은 외부에 있지 않고 마음 안에 있음을 확인시켜준 두두미 별채에 조만간 다시 다녀와야 겠다. 자작나무 희디흰 발목께 뿌릴 꽃씨 몇 봉지 사들고서.
손세실리아|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