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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골리의 사라진 코와 외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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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EP Original Article 精 神 分 析 :第 15 卷 第 2 號 2 0 0 4

J Korean Psychoanalytic Society Vol.15, No. 2, Page 201~209, 2 0 0 4

고골리의 사라진 코와 외투를 찾아서

李 炳 郁

*

In the Search for Gogol ’s Lost Nose and Overcoat

Byung-Wook Lee, M.D.*

서 언(序言)

러시아의 소설가 고골리는 푸쉬킨과 더불어 근대 러시아 문학의 효시로 불리운다. 고골리 이전의 러시아 문학은 내 세울만한 별다른 인물이 없을 만큼 보잘 것 없었다. 도스토 예프스키는 말하기를, “우리 모두는 그의 외투에서 나왔 다”고 할 정도였다. 고골리의 문체와 스타일은 확실히 그 이후의 러시아 작가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도스토 예프스키의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을 보면 그런 사실이 분 명히 드러난다. 물론 고골리의 대표작은 소설 [외투], [대 장 부리바], [광인일기], 희곡 [검찰관] 등을 꼽는다. 그의 소설 [코]는 초기작에 속하며 아주 짧은 희화적 단편이다.

그러나 웃음 속에 내재된 통렬한 비판과 조소가 고골리다 운 특징을 아주 잘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쇼스타코비치 는 이 작품을 소재로 오페라 [코]를 작곡하기도 하였다. 모 든 작가는 자신이 속한 시대정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내면에 자리 잡은 원초적 욕망의 세계와 갈등의 본질은 시대적 변화와 차이에 상관없이 줄기 차게 이어져 오고 있다. 고골리가 살았던 시대적 상황은 짜 르 황제가 절대 권력을 행사하던 제정 러시아로서 온갖 사 치와 향락에 젖어 살던 귀족층을 제외한 대다수의 국민들 은 가난과 폭정으로 시달리며 고통 받던 시기였다. 그러한 상황에서 태어난 고골리는 자신이 몸담은 사회의 부조리와 고통스런 현실을 그 특유의 풍자와 독설로 관료사회를 조롱 함으로써 대중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던 작가였다. 그의 출세작 [코]와 [외투]는 고골리의 특성을 고스란히 드러내 는 작품으로 이에 저자는 이 두 작품을 중심으로 작가의 심 리적 상태를 통하여 드러난 코와 외투의 상징성과 더불어

고골리의 심리적 배경 및 그 역동적 의미를 탐색해 보고자 하였다.

고골리의 작품세계

니콜라이 고골리는 1809년 러시아 남부의 변방 우크라이 나에서 소지주의 장남으로 태어나 1852년 42세로 사망하 기까지 비교적 짧은 생애를 살다간 러시아 근대문학의 선 구적 역할을 맡았던 작가로 유명하다. 우크라이나는 호방 하고 낙천적 기질을 지닌 코자크들의 주 활동무대가 되었 던 지방으로 고골리의 탁월한 유머 감각은 그러한 풍토와 도 결코 무관치 않다. 그는 6남 6녀인 12형제 중에서 성인 기까지 살아남은 유일한 아들로서 그의 문필력은 아버지에 게서 물려받은 것 같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페테르스 부르크로 상경하여 관리가 되었으며 [미르고로드]라는 단 편집으로 문단의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잠시나마 페테르 스부르크 대학에서 역사학을 강의하기도 하였는데 대학을 그만두고 창작에 몰두하면서 대표작들을 쏟아내기 시작하 였고, 이 시기에 그는 주로 가볍고 재치 있는 문체를 사용 하여 당시의 부패한 관료주의 사회를 고발하고 비판하였다.

[코], [네프스키 거리], [초상화], [광인일기], [대장 불리 바] 등의 작품들이 주로 이 시기에 쓰여졌으나 1936년에 발표한 그의 대표작 [검찰관]이 당국의 검열에 걸리면서 러 시아를 떠날 수밖에 없었으며 이후 거의 12년에 걸친 타국 생활을 감수해야만 되었다. 그 사이에 고골리는 유명한 [외 투]와 [죽은 혼]을 집필하였다. 가장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 은 [대장 불리바]는 폴란드와 러시아간의 영토분쟁으로 치 열한 전쟁이 있었던 시기를 배경 삼아 코자크 족들의 자유 분방한 기질과 그들의 독특한 생활 습관을 서구인들에게 최 초로 소개한 작품이다. 그러나 내용적으로는 부자간의 갈등 및 형제간의 경쟁심리를 내포하고 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초상화]와 [광인일기]는 환상적인 이상심리를 다루고 있

*翰林大學校 醫科大學 精神科學敎室

Department of Psychiatry, Hallym University College of Medi- cine, Seoul,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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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데 특히 [초상화]는 악마의 화신을 초상화로 그린 화가가 경건한 수도사가 되어 금식기도와 영혼의 정화를 통한 신 앙의 힘으로 결국 악마를 물리치게 된다는 다소 통속적인 내용이지만 탐미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나 예술을 신앙의 유 용한 도구로 간주한 부분은 고골리의 독특한 예술관을 엿 보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검찰관]은 고골리의 대표작으 로 꼽히는데 손색이 없는 작품으로 당시 러시아의 부패한 관료주의를 가장 신랄하게 꼬집고 비판한 소설이다. 그러나 당국의 가혹한 검열로 인해 본의 아닌 타국생활에 접어든 고골리는 그후 자신의 시선을 내적인 세계로 돌려 영혼의 구원과 정화에 몰두하게 되었다. 그러한 결과 착수한 소설 [죽은 혼]은 미완성작이지만 만년의 고골리가 과연 무엇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는가를 짐작케 해주는 소설로서 그의 영적인 관심과 추구를 잘 드러내고 있다. 고골리에 대한 가 장 탁월한 문학적 비평으로 유명한 Nabokov(1961)는 줄 거리나 사건 전개 자체보다는 고골리의 문체와 스타일에 더 욱 주안점을 두었으며 특히 고골리의 풍자정신을 높이 평 가하였다. 그러나 작가가 문제삼은 플롯의 중요성도 간과 되어서는 안될 것으로 본다. 고골리는 분명한 이유도 없이 일생동안 결혼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내며 영혼의 경건 함과 정화를 위해 정진하는 가운데 성지 예루살렘을 방문 하기도 하면서, 더욱이 그의 만년에는 심각한 우울증과 죄 의식에 사로잡혀 금식에 들어가기도 하였는데 결국 기진한 쇠약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조용히 숨을 거두고 말았다.

소설(小說) [코]의 줄거리

제정 러시아의 수도 페테르스부르크가 소설의 무대이다.

무식하고 더러운 주정뱅이 이발사 이반 야코블레비치는 어 느날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하려고 빵을 자르는 순간 구운 빵속에서 사람의 코를 발견하고 아연실색한다. 그 코는 다 름 아닌 자신의 단골손님인 관리 코발로프의 것임에 틀림 없었다. 곤경에 빠진 그는 그 코를 네바강에 몰래 버리기로 작정하고 이사키예프스키 다리위를 얼쩡거리다 그의 행동을 수상히 여긴 경찰의 심문을 받는다. 한편 팔등관 코발로프 는 아침에 눈을 뜬 순간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 기절초풍한다. 얼굴 한가운데 당연히 붙어있어야 할 코가 감 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그는 경찰에 신고를 할까 신문사에 광고를 낼까 갈팡질팡하다가 우연히 자신의 코가 오등관 관 리 복장으로 거리를 돌아다니는 모습을 목격하고 그 뒤를 추적한다. 카잔스키 대성당에서 가까스로 코와 대면했지만 시치미를 잡아떼며 사라진 코를 그만 놓쳐버리고 만다. 낙 심한 코발로프가 풀이 죽어 집에 돌아오자 한 경찰관이 찾

아와 혹시 코를 잃어버리지 않으셨는가 묻고는 종이에 싼 코를 그에게 내밀었다. 기적적으로 코를 되찾은 것이다. 그 러나 기쁨도 잠시였다. 코를 제자리에 붙일 일이 문제였던 것이다. 의사를 찾았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다 행히도 어느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코발로프가 거울을 보 니 그 말썽 많던 코가 어느 틈에 제자리에 붙어있지 않은 가. 기쁨에 겨워 코발로프는 자신의 자랑스런 코를 사람들 에게 과시하기 위해 거리로 나가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돌 아다녔는데 장안에는 그런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큰 화제 거리가 되고 있었다(Gogol 1835).

코의 상징(象徵)

코 큰 남자는 물건도 크다는 것이 오랜 세월동안 정설로 믿어져 왔다. 그래서 코에 관한 음담패설도 무척 많다. 동서 고금을 불문하고 남성의 코는 남근의 적절한 대리물로서 사 용되어져 왔다. 농경사회인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남근의 상 징으로 방아에 비유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반면에 절구는 여성 성기의 상징으로 애용되었다. 멧돌을 가는 장면도 흔 히 성행위에 빗대어 자주 인용되기도 한다. 코가 큰 남성에 대한 여성들의 기대심리 또한 은유적으로 자주 등장하는 모 티브가 되어 왔다. 李圭泰(2002)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옛 관습법에 [코문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는 거세를 대신한 형벌로서 바람피운 남편에 대해 본처로 하여금 코를 물어 뜯게 했던 일종의 상징적 징벌행위였던 것이라고 한다. 이 러한 코문이가 발전하여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 성 기를 자르는 대신 코를 자르게 하는 괄비형(刮鼻刑)으로 성 문화되었다는 것이다. 심청전에도 나오는‘뺑덕어멈, 코 큰 총각 떡 사준다’는 대목 역시 코와 성기의 등식화를 나타 낸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서양 민담이나 우화에서도 코는 자주 등장한다. 피노키오 의 코도 말썽을 부리며 자란다. 시라노 백작의 큰 코는 여 성들에게 항상 인기였다. 매력 없이 휘어진 매부리코는 항 상 혐오스런 유태인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빗자루에 올라타 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마귀할멈의 코는 항상 매부리코로 묘 사되었다. 이처럼 코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미움의 대상이 되어왔다. 우리말에도 코는 권위와 자존심을 나타내 는 신체기관이다. 콧대가 세다거나 코가 석자나 빠졌다는 표현에서 알 수 있다. 또한‘코 크다고 얻은 서방이 고자’

라든지‘코 크고 실속 없다’ 라는 등의 우리 속담을 통해서 도 알 수 있듯이 오래 전부터 코는 분명히 남근의 상징임 을 웅변적으로 말해준다(宋在璇 1994).

Fenichel(1945)은 신체부위의 상징적 의미에 대하여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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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기를, 외부로 돌출한 기관과 내부로 함입된 부위의 무

의식적 의미가 각기 다르다고 하면서 팔이나 발, 코, 머리처 럼 밖으로 튀어나온 기관은 남근을 상징한다고 하였다. 이 들 부위의 상징적 의미는 특히 꿈 해석에서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기도 한다. 정신분석적 경험에 의하면 수많은 환자들 의 꿈 내용에 나타나는 코의 상징적 의미는 남근과 관련된 것임이 분명하다.

꿈 이론의 대가로 유명한 Altman(1975)이 제시한 꿈 사 례 가운데 코에 관한 꿈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나는 내 코에서 털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나는 많은 털들이 밖 으로 빠져나온 것을 보고 놀랐다.”이 꿈을 보고한 환자는 자위행위에 대한 충동을 억제하느라 애를 먹고 있던 남자 였다. 남근선망을 지닌 한 여성 환자는 다음과 같은 꿈을 꾸었다.“한 어린 소년이 손으로 여우를 잡고 있었다. 그것 은 작고 버릇없는 빨간 코를 가진 동물이었다. 그것은 장난 감 같았지만 깨물 수가 있었다. 그것은 갑자기 소년의 주머 니에서 나타난 뒤 다시 숨었다가 양복 단추 덮개에서 튀어 나오곤 했다.”Altman은 외투나 넥타이 같은 남성 복장 도 구들도 흔히 남근의 상징물로 나타난다고 하였는데 그렇게 본다면 고골리의 [코] 외에 또다른 그의 대표작 [외투] 역 시 남근의 상징물로 간주할 수도 있겠다. Altman의 사례를 다시 살펴보자.“나는 해군제복을 입은 남자와 걷고 있었 다. 어린 소녀가 나타나서 살금살금 그에게 다가왔다. 그는 자기 외투를 그 소녀에게 주고 싶어 했지만 내가 못하게 했다. 나는 그가 외투를 내게 주기를 바랬다.”성적 몽상에 빠진 여성 환자가 어느 책에서 할례를 외투에서 소매 부위 를 제거하는 것이라는 내용을 읽고 나서 꾼 꿈 내용이다.

분석가는 외투가 남성 성기를 나타내는 꿈속의 암호라고 해석해 주었지만 환자는 그것은 분석가의 상상 일뿐이라고 반박한다.

Fenichel(1953)은 흔히 아이들이 야유의 표현으로 사용 하는 몸짓 가운데 손으로 긴 코를 만들어 보이는 행동의 의 미를 탐색하면서 이는 곧 자신의 남근을 노출시키고자 하 는 과시욕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그 의미는 “와서 내 성기 를 봐라”하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또한 이런 야유적 표현은 실제로 남근을 보유하고 있는 사내아이들보다 오히 려 소녀들이 더욱 선호하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하고 이는 소녀들의 잠재된 남근선망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하였다. 대 개의 경우 긴 코를 흉내낼 뿐만 아니라 동시에 혀를 내밀 어 보이는 행동도 동반되기 마련인데 코와 혀가 모두 밖으 로 노출된 물건이라는 점에서 매우 상징적이다. 우리말에도 심한 무안이나 망신을 당했을 때,“코가 석자나 빠졌다” 라 는 표현이 있듯이 코는 자부심의 상징으로서 여기서도 코

는 곧 남성의 자부심을 상징하는 남근의 대치물로 작용하 고 있음을 알 수 있다.

DSM-Ⅳ의 사례집에 예시한 증례 가운데‘코끼리 사나 이’는 비록 망상적 수준의 집착을 보이고 있으나 자살을 시도할 정도로 자신의 코에 대한 비관과 좌절을 보인다는 점에서 정신병 단계의 진단을 고려하고 있지만 그러나 어 떤 동기에 의해서 그가 그토록 자신의 코에 집착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의문을 표시하지 않았다. 입원까지 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자신의 코가 정말 이상하게 생기지 않았 는지 여부를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쉴 새 없이 질문하게 됨 으로써 결국 그녀와 헤어지게 된 이후 더욱 자신을 비관하 고 자살을 기도하게 된 것이다(Spitzer 등 1994). 여기서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고려해볼 수 있는 점은 코라는 존재 가 그에게 갖는 의미와 상징성이라 할 수 있다. 코는 그 자 신의 남성성을 대변하는 상징으로 기능하는 것 같다.

사라진 코에 관한 희화적인 사건의 전개는 그 이면에 놓

인 불안과 공포를 희석시키는 동시에 은폐시키는 역할을 맡

고 있다. 우선 소설의 첫 장면은 무지한 이발사가 아침식사

를 막 시작하려는 순간, 맛있게 구운 빵 속에서 우연히 사

람의 코를 발견하는 희극적인 대목으로 묘사된다. 작가는 미

리 독자들의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키되 불필요한 긴장을

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사람의 코가 어떻게 해서 맛

있게 구운 빵 속에 들어갈 수가 있었는지 그 이유에 대해

서는 아무도 알 수 없는 노릇이겠지만 그러나 상징적 의미

에서 본다면 이해할 수 없는 일도 아닐 것이다. 여성의 자

궁 속에 들어간 남근의 모습을 상상해본다면 우리의 일상적

인 의식세계의 용어로서도 손쉽게 이해할 수가 있는 것이

다. 더욱이 이발사라는 직업은 사람들로 하여금 항상 거세

공포를 야기 시킬 수 있는 소지가 다분히 있는 직업이다. 특

히 면도를 할 때는 대개의 남자들이 긴장과 불안을 경험한

다. 혹시 이발사가 면도 중에 실수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불

안심리가 작동하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이발사는 칼을 들고

다가서기 때문이다. 안면의 털을 깎는 행위는 결국 음모를

깎는 상징적 행위인데 가장 염려가 되는 것은 중심부에 솟

아오른 물건 즉, 코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더군다나 비누

거품을 칠한 후에 뜨거운 물수건으로 덮기 마련인데 숨쉬기

위한 코만 남기고 모두 덮어버리기 때문이다. 이발사에게 노

출된 부분은 코밖에 없게 된다. 채플린의 영화 [독재자]는

빠른 템포로 연주되는 브라암스의 헝가리 무곡에 맞추어 신

나게 칼을 갈고 면도하는 유태인 이발사의 모습을 재치 있

게 묘사하였지만 그러한 희극적인 장면에 관객들은 폭소를

터뜨리면서 자신들의 잠재된 거세공포를 잠시나마 잊는 것

이다. 그러나 조마조마한 심정은 억누를 수가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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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물적인 관료 코발로프는 평소에 거드름을 부리며 힘없 는 서민들 위에 군림하던 팔등관이지만 고골리는 그러한 속 물근성에 대한 복수로 그의 남근 대신 코를 베어버림으로 써 혼을 내주고 싶은 자신의 욕망을 작품 속에서 실현했다.

한번 혼줄이 난 이후 코발레프는 상당히 명랑한 사람으로 변모했다는 점이 작품 속에서 증명되었다. 신체 부위 중에 서 어떤 부위보다도 코는 그 사람의 자존심을 유지하는 중 요한 지표가 된다는 점에서 작가의 선택은 탁월하다. 콧대 가 세다는 말처럼 코는 힘을 상징한다. 그 힘은 권력뿐 아 니라 성적인 능력도 포함된다. 코발로프가 자신의 당당한 코 를 되찾은 후 거리에서 만난 남자의 코가 그 사람 옷에 달 린 단추보다 작은 것을 비웃듯 바라보는 모습은 코의 크기 를 비교하며 자신의 우월감을 확인하는 장면이다. 그에게 코 는 남근의 상징임을 정확하게 드러내는 장면이 아닐 수 없 다. 마치 소년들이 함께 소변을 보며 누구 물건이 더 큰가 또는 누가 멀리 오줌 줄기를 보낼 수 있나 내기 시합을 하 는 모습과 흡사하다.

거세공포(去勢恐怖)

Freud(1927)는 자신이 분석했던 한 환자의 코에 대한 집착의 예를 들면서 코가 페티시즘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이러한 경우 단순한 남근의 상징이 아니라 특별히 개인적으로 변형된 의미를 지닌 남근을 상징한다고 하였는 데, 달리 말해서 남근을 지닌 어머니의 존재를 계속 인정하 고 싶은 욕구와 여성의 성기를 직접 목격함으로써 야기된 거세 공포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페티시 즘을 선택하게 된다고 하였다. 즉, 페티시즘은 그 자체가 거 세 위협에 대한 승리의 표시이며 또한 그러한 위협으로부 터 계속 보호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하였다. 거세의 인정과 부정 사이에 생긴 갈등 때문에 남근의 대리물인 코로 도피 한 것이다. 남근과 멀리 떨어져있는 코로 도피함으로써 위 에서 안전하게 자신의 남근을 대리 보관하는 셈이 된다. 이 는 Freud(1922)가‘메두사의 머리’ 에서 언급한 거세공포 와도 연결되는 상징이다. 무시무시한 뱀들로 이루어진 머 리의 형상 자체가 남근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으며 그것을 보고 공포에 사로잡히는 행동 역시 거세를 연상시키기 때 문이라는 것이다. Saul(1948) 역시 코의 의미를 탐색하면 서 남근적 관점뿐 아니라 여성적 의미를 찾기도 했다. 물론 모든 심리적 현상에는 다중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 이 오늘날의 추세로 자리 잡고 있는 마당에 코와 거세공포 를 결부시키는 것은 이미 진부한 내용처럼 들린다. 그러나 고골리가 정신분석 탄생 이전에 활동했던 인물이었다는 점

을 감안한다면 그가 코의 상징적 의미를 의도적으로 의식 해서 소설을 쓴 것은 아니라고 추정된다. 고골리 자신도 거 세공포라는 용어는 들어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소 설 [코]는 결국 일종의 해프닝으로서 끝나버릴 수도 있는 웃기는 얘깃거리 인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있을 수 없는 일 이 실제로 일어났다는데 문제가 심각한 것이다. 어느 날 갑 자기 떨어져나간 코가 주인이 영문도 모르는 상태에서 다 시 제자리에 붙게 되기까지 벌어진 소동을 희화적인 수법 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는 결국 남근이 잘려나갈지도 모 른다는 잠재적인 거세불안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고 보여 진다. 더욱 희화적인 것은 고골리의 소설 [코]를 기념해서 페테르스부르크 시에 세워둔 거대한 코 조각이 최근에 도 난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는데 이는 그만큼 코라는 존재가 얼마만큼 일반인들에게 상징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가 하는 점을 간접적으로 시사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코는 냄새를 맡는 기능을 수행하는 중요한 기관이지만 진 화적 차원에서 본다면 뇌 기능 중에서도 가장 원시적인 발 달단계에 속하는 기능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여성들은 남성 에 비하여 코의 감각이 뛰어나며 수렵생활을 주로 했던 서 양인들이 다른 농경민족들보다 후각기능이 발달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과거에 수렵생활을 많이 했던 러시아인들의 동화나 전설에서도 코가 인체를 이탈하여 방황한다는 내용 이 특히 많았던 것도 그러한 이유로 설명될지도 모른다. 자 신의 성기를 자르는 극단적인 행위를 통하여 죄사함을 얻고 회개하는 종교적 의식을 주장한 기독교 교파가 한때 러시아 에서 유행한 적도 있었는데 이는 결국 집단적 거세공포 심 리를 반영한 것이기 쉽다. 특히 가부장적 권위주의가 지배 적이었던 제정러시아시대는 잔혹한 형벌로도 유명하였는데 그러한 시대적 배경이 사람들로 하여금 잠재된 거세공포를 더욱 두렵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을 수도 있다. 또한 당시의 러시아는 동성애적 관계가 보편화된 것으로도 알려져 있지 만 이성애에 대한 두려움 및 거세공포의 결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결국 거세공포는 근친상간적 욕망에 대한 금지와 그 에 대한 형벌 및 보복에 대한 두려움과 연결되는 것으로 그 러한 불안이 남근에서 코로 수직 상승하여 형상화된 대표적 인 예가 고골리의 소설 [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소설(小說) [외투]의 줄거리

제정 러시아의 가난한 하급 관리 아까끼 아까끼예비치는

낡은 외투 한 벌을 자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기고 사

는 고지식한 사람이다. 그는 늦은 나이에 노총각 신세로 결

혼도 못하고 외롭게 사는 처지이긴 하지만 한량없이 정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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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이었다. 그러나 그의 걸레처럼 헤진 외투는 더 이상

수선할 방도가 없을 정도로 낡아버렸다. 하는 수 없이 그는 일생 일대의 큰 결단을 내린 끝에 그로서는 상당히 큰 거 금을 들여 새 외투를 맞추기로 결정한다. 외투가 완성된 날, 그는 생애 최고의 희열을 느끼며 새 외투를 찾으러 간다.

그러나 그는 새 외투를 입고 상관의 집에서 열리는 파티에 초대되어 참석하고 돌아오는 길에 노상에서 강도를 만나 그에게는 목숨보다 더 귀한 새 외투를 강탈당하고 만다. 아 까끼는 거의 실성한 사람처럼 외투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결국 그는 가엾게도 열 병에 걸려 죽고 만다. 외투는 그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존재 였기에 그에게 있어서 외투의 상실은 삶의 의미를 잃어버 리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아까끼가 죽은 후에 그 도시에 는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하였는데 어두운 밤길에 유령 이 나타나 지나가는 사람들의 외투를 강제로 벗기고 달아 난다는 것이었다. 아마 그 유령의 주인공은 틀림없이 아까 끼일 것이라고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죽어서도 빼앗긴 외투 를 잊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 것이다. 어느 누구도 한 이름없는 하급관리의 죽음에 대해 아쉬워한 사람 은 없었지만 유령이 되어 밤길을 배회하는 아까끼의 모습 을 보기 위해 호기심 많은 구경꾼들이 거리로 모여들기 시 작했다. 그러나 그후로 아무도 아까끼를 직접적으로 목격 한 사람은 없었다(Gogol 1835). 세상은 외투 한 벌과 하 잘 것 없는 인간 한 명이 사라졌다고 해서 전혀 달라진 것 은 없었으며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예전과 같은 삶 을 반복할 뿐이었다.

외투(外套)의 상징(象徵)

외투는 주인공 아까끼에게는 그 자신의 피부와 다름없는 소중한 존재였다. 혹한에 시달리는 러시아에서는 추위로부 터 보호해주는 두툼한 외투의 존재야말로 어머니의 존재 못 지않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어린 아기에게 어머니의 품 안과 아늑한 자궁안은 더할 나위없는 안식처가 된다. 집과 자궁은 배고픔과 추위로부터 아기를 보호해주는 유일한 피 난처이기도 하다. 따라서 외투는 모성의 상징인 동시에 자 궁을 의미할 수도 있다. 자신의 생명보다 더 귀한 외투를 한 순간에 잃고 난 하급 관리 아까끼의 서글픈 삶과 죽음은 독 자들의 심금을 울리고도 남는다. 독신인 그에게 외투의 존 재는 마치 평생 반려자와도 같다. 그와 외투는 일심동체로 서 어디를 가나 함께 움직이는 존재였다. 아까끼는 외투와 동거중인 셈이었다. 그런 그가 외투를 하루아침에 강탈당했 으니 땅을 치고 통곡할 노릇이었다. 외투의 상실은 결국 그

에게는 어머니의 상실, 낙원의 상실, 온기의 상실을 의미했 다. 외투의 존재야말로 그의 삶의 전부였기에 강도에게 외 투를 빼앗긴 후 그는 완전히 삶의 목표를 잃고 말았다. 시 름시름 앓다 죽은 것은 다름 아닌 그의 영혼이 병들었기 때 문이다. 보다 의학적으로는 상실의 충격에 기인한 중증 우 울증이었던 것이다. 삶의 의미를 상실한 그는 식음도 전폐 하며 외투를 그리워하다가 결국 숨을 거두고 만다.

Fenichel(1945)은 피부가 지니는 심리적 의미에 대하여 네 가지로 요약한 바 있다. 첫째, 개체를 보호하는 기능이 있다. 둘째, 피부는 중요한 성애적 기능을 맡는다. 셋째, 노 출증적 갈등의 표현 부위가 된다. 넷째, 불안을 드러내는 표 현 부위가 된다. Fenichel에 의하면, 피부는 개체와 외부세 계 사이의 경계를 나타내는 신체부위로서 외부로부터 유입 되는 자극을 조사하고 필요하다면 그러한 자극들을 차단시 키는 기능도 행사한다는 것이다. 추위를 느낄 때 외투 깃을 세우고 그 안에 움츠러드는 것과 같이 심리적으로 위축되 었을 때도 마찬가지의 행동 반응을 보이기 마련인데 그럴 때 옷이나 외투가 하는 기능은 위축된 심리를 보호하는 역 할을 맡기 쉬운 것이다. 신체 접촉에 유달리 민감한 경계성 환자들이 어머니와의 피부 접촉을 대행할 수 있는 이행기 대상에 집착하는 이유도 그와 같은 심리의 연장선상에서 이 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형과의 접촉은 어머 니와의 분리 불안을 경감시켜주는 효과를 발휘한다. 외투와 의 피부 접촉 또한 그와 유사한 보호 기능 및 위안의 효과 를 주기 쉽다. Pines(1980)도 피부가 지니는 상징적 의미 에 대하여 논한 바 있는데 그녀에 의하면 피부란 결국 환 자라는 심리적 존재 전체를 담아두는 용기의 기능을 의미하 는 것으로 그러한 특성은 어머니상을 치료자에게 투사하는 전이적 태도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일차적 피부 기능에 대해 강조한 인

물은 Bick(1968)로서 그녀가 말한 일차적 피부보유(prim-

ary skin containment)는 미분화 단계의 유아가 자타를 구

분하는 경계로서 피부를 이용할 때 사용되는 기제를 의미하

며 이러한 기능이 실패하게 될 때, 이차적 피부현상(second

skin phenomena)으로 나타나게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Wi-

lloughby(2004)는 일차적, 이차적 피부 기능에 대한 Bick

의 개념은 Balint(1968)의 기본적 결함(basic fault) 개념

과 Bion(1962)이 말한 containing 개념과 결코 무관치 않

다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Freud(1923)도 그와 유사한 언

급을 하였는 바, 가장 초기의 자아는 신체자아(body ego)

의 형태이며, 그것은 단순한 표면 영역(surface entity)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표면의 투사를 나타내는 것

이라는 주장을 통하여 어떤 면에서는 일차적 피부 기능을

(6)

고골리의 사라진 코와 외투를 찾아서

206

암시하는 언질을 주었다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여러 단계 의 이론적 주장을 종합해볼 때, 고골리의 외투가 상징하는 의미는 결국 아기를 보호하고 담아두는 모성적 기능 및 피 부 기능을 대리하는 것이며 그러한 상징적 의미를 지닌 외 투의 상실은 곧 어머니와의 원초적 관계의 상실을 대변하 는 것이기도 하다.

상실(喪失)과 실종(失踪)

고골리의 대표작 가운데 가장 유명한 소설 [코]와 [외투]

의 주제는 상실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날 갑자기 이유 없이 사라진 코와 억울하게 밤길에서 강탈당한 외투를 찾기 위해 주인공들은 갖은 고초를 겪는다.

코발로프 소령은 자신의 코를 우연히 되찾고 행복을 누리 지만 자신의 생명보다 더욱 소중하게 아끼던 새 외투를 강 도에게 빼앗긴 아까끼 아까끼예비치는 불쌍하게도 열병에 걸려 죽음에 이른다. 코가 사라진 이유도 그리고 다시 돌아 온 이유도 끝내 밝혀진 바 없지만 문제는 당연히 제자리에 붙어 있어야할 코가 사라짐으로써 겪어야 했던 코발로프 소 령의 경악과 두려움은 거의 공황발작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 닐 것이다. 이는 현실적으로는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지만 인간의 무의식적 환상의 세계에서는 잠재적으로 자신의 남 근이 제대로 있을 자리에 붙어있을지 전전긍긍하는 신경증 적 공포와 불안을 반영하는 것이다. 갑자기 사라진 코의 행 방을 쫓는 코발로프는 여러 가지 말도 안되는 심증을 지니 고 고민한다. 주정뱅이 이발사 이반의 실수인지 아니면 자 신을 사위로 삼고 싶어하는 포드토치나부인의 음모에 의한 마술적 소행인지 혼란에 빠진다. 잔뜩 심술을 부리며 한동 안 주인을 마음껏 골탕 먹이던 코는 어찌된 연유인지 제자 리로 돌아왔다. 제자리에 붙어 있는지 수시로 거울을 보며 확인하는 코발로프의 행동은 마치 자신의 남근이 제대로 붙어 있는지 매일 같이 거울 앞에서 남근을 꺼내보며 확인 하는 쥐 사나이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Freud(1909)는 자신의 분석 사례였던 쥐 사나이 rat- man의 강박적 의례행위가 지닌 역동적 의미를 자세히 탐 색하였지만, 코의 실종사건을 상식적으로 설명할 길이 없 었던 코발로프는 자신의 코가 제 발로 걸어 나갔다는 사실 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따라서 당연히 누군가 자신이 잠든 자는 사이에 몰래 코를 베어갔든가 아니면 더럽고 무 식한 단골 이발사인 이반이 술에 취해 실수로 면도 중에 자 신의 코를 베고 난 후에 그 사실이 발각될까 두려워 네바 강에 몰래 내버리려다 경찰에 붙들린 것이라 추정할 수밖 에 없었다. 이에 반해 생명보다 더 소중한 새 외투를 도둑

맞은 아까끼 아까끼예비치의 죽음은 너무 측은하고 의외의 결말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의 모든 것을 상실당한 인간의 최후가 어떤 것인지를 암시하는 것 같다. 아까끼는 가진 재 산이라고는 낡은 외투밖에 없는 가난한 하급관리에 불과하 다. 그는 나이 50이 넘도록 결혼도 하지 못하고 그의 외투 와 함께 단둘이 살고 있었는데 이는 마치 부부관계와 흡사 한 사이로 묘사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거세된 남근의 상 징일 수 있는 코가 온갖 골탕을 먹이다가 결국에는 원래 있 던 제자리로 다시 돌아옴으로써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반면 에 이와는 달리 모성을 상징하는 외투는 일단 실종된 이후 에는 두 번 다시 찾을 수 없으며 결국 외투의 주인도 죽고 만다는 비극적인 설정이 독특하다. 코의 실종은 거세된 남 근을 의미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점에서 일단 거세공포는 제거되고 해결되었다고 본다. 그러 나 외투의 상실은 그보다 원초적인 모성의 상실을 의미하기 때문에 더욱 큰 충격과 좌절로 다가오는 것이며 따라서 주 인공은 그러한 상실을 극복하지 못하고 죽음에 이른다는 점 에서 비극적이다. 외투 속에 담겨진 몸 전체가 남근을 상징 한다고 본다면 외투를 강탈당한 사실은 결국 모성과의 합 일에 실패하고 영원한 안식처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절망감 과 어머니를 잃어버렸다는 상실감, 그리고 근친상간적 욕구 의 좌절이 가져다준 두려움과 죄책감이 주인공의 죽음을 더 욱 재촉하게된 요인으로 보인다.

작가심리(作家心理)

고골리의 생애는 제대로 알려진 바가 없다.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여야할 시기에 일찍 죽은 것도 석연치 않은 점이

다. 왜냐하면 병에 걸린 것도 아니고 단지 식사를 거부한 끝

에 탈진상태로 죽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그는 소극적

인 자살을 선택한 것일 수도 있다. 수많은 독자들에게 웃음

과 눈물을 선사했던 고골리 본인은 오히려 심각한 우울과

죄책감 그리고 절망감에 사로잡혀 삶을 마감했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보인다. 작가들의 심리분석으로 유명한 Bergler

(1992)는 그 자신이 창조적 무력감에 빠진 작가들을 대상

으로 치료한 경험을 토대로 얻은 결과에서 많은 작가들이

그들 내면의 무의식적 초자아에 대항하기 위한 노력으로 창

조적 작업에 매달리는 현상이 있음을 관찰하였다. 고골리의

절망감과 자학적인 자기비난도 그 자신의 양심과의 투쟁에

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성급한 일반화는

물론 바람직한 것이 아니지만 Laferriere-Rancour(1996)

의 주장처럼 온갖 고통을 이겨내는 인고의 미덕을 강조하

는 러시아의 문화적 전통의 심리적 배경에 도덕적 피학증

(7)

李 炳 郁

207

(moral masochism)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톨스토이나 푸

쉬킨, 고골리 등의 비극적인 최후도 설명이 가능할 수는 있 겠다. 사실 어떤 점에서 본다면 러시아 여성들 특히 어머니 들의 존재는 강인하고 모성적인 특성이 두드러지며 서구사 회에서는 특이하다 싶을 정도로 러시아인들은 모자관계에 서 강한 유대감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고리키의 대표작 [어머니]를 보면 그런 점이 더욱 두드러지며 러시아인들은 작가나 독자들 모두가‘어머니’라는 한 가지 단어 앞에서 는 맥을 못 쓰기 마련인 것처럼 보인다. 아버지로부터 학대 받는 어머니와 강한 동질감을 보이는 아들의 이야기는 러시 아의 전설이나 우화, 소설 등에 자주 등장하는 내용들이다.

Karlinsky(1992)는 고골리의 동성애적 경향을 주장하였 는데 물론 이러한 주장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회적 편견에 의한 혐오감의 대상으로 일 컬어지는 동성애적 행동을 고골리가 직접 실천으로 옮겼다 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정신분석이론에 의하면 정상인들의 무의식 안에도 잠재적인 동성애적 경향이 존재한다는 증거 들이 많다는 주장이고 보면, 고골리라고 해서 자신의 작품 을 통해서 그러한 측면들을 예술적으로 표현하지 말라는 법 은 없을 것이다. 특히 고골리는 한창 활동할 나이에 심각한 죄의식에 빠져서 종교적 구원에 모든 정력을 바쳤는데 일 설에 의하면 신부 콘스탄지노프스키가 고골리에게 충고하기 를 그의 작품은 모두 악마의 행위이며 그가 계속 소설가로 서 살아간다면 하느님의 구원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는 것 이다. 결국 고골리는 식사를 거부한 채 굶어 죽었다. 악을 거부하고 선을 추구했던 그로서는 극단적인 선악의 이분법 적 구도에 빠져서 갈등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정확한 이 유는 모르지만 그는 마지막 작품 [죽은 넋]의 2부를 죽기 전에 완전히 불태워 버리고 말았다.

Altman(1975)에 의하면 이발소는 남자들이 모이는 장소 로서 이와 관련된 동성애적 충동을 나타내는 꿈 사례를 소 개하고 있다.“나는 아버지와 함께 가곤 했던 이발소에 있 었다. 아내가 나와 함께 갔다. 한 늙은 이발사가 내 머리를 손질하려 했다. 나는 다른 이발사에게 갔다. 그러나 아내와 나는 그곳에서 나오고 싶었다.”이발소는 남자가 남자의 털 을 깎아 주는 곳이다. 소설 [코]는 이발사와 단골 고객인 관리 사이에 벌어진 해프닝 이야기다. 면도하기 위해 코를 잡으려하는 이발사에게 그가 더러운 손을 씻었는지 관리가 확인하는 장면은 다른 남성이 자신의 성기를 만지려는 것에 대한 불안을 반영한다. 오늘날에 와서는 이미 금기 같은 것 이 깨지고 말았지만 관례적으로 털을 깎는 행위만큼은 오 랜 세월 동성끼리 사이에서만 이루어져 왔다. 남자는 남성 이발사에게 여성은 여성 미용사에게 자신의 머리털과 수염

을 맡겼던 것이다. 털을 깎는 행위는 그 자체가 매우 퇴행 을 조장하는 경향이 높다. 면도중에 잠에 골아떨어지는 경 향도 정상적 퇴행의 일부로 간주될 수 있다. 사랑하는 연인 끼리 상대의 머리를 감아주는 행위도 그러한 차원에서 설 명될 수 있다. 그러나 편집증적인 거세공포를 지니게 되면 털을 깎는 행위를 다른 남성에게 맡긴다는 것 자체가 위험 을 초래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불안을 야기시키기 쉽 다. 더군다나 아무런 방어도 취할 수 없는 무방비의 상태에 서 긴 의자에 누워 자신의 남근을 그대로 방치하는 상황은 그러한 불안을 더욱 고조시킨다. 이러한 거세불안의 특성은 카우치에 누운 환자들에서도 흔히 발견되는 현상들이다. 이 발소의 상황은 더욱 자극적일 수 있다. 코를 만지고 흉기의 소지가 될 수 있는 면도칼로 털을 깎도록 맡긴다는 것은 잠 재된 거세공포를 유발시키기 쉬운 상황이며 동시에 면도에 열중한 이발사가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얼굴을 가까이 접 근시키는 것은 잠재된 동성애적 욕망을 일깨우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사회에서 면도를 여성에게 맡기는 현상도 그런 측면에서 고찰해볼 수도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아버지 보다는 어머니가 털을 깎아주는 것이 차라리 안전감을 제 공해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코와 외투는 모두 털과 밀접한 인연을 맺는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러시아인들은 대부분 콧수염을 키우고 털로 된 두툼한 외투와 털모자를 걸친다. 혹한을 이기기 위해서다.

여성들도 대부분 스카프를 머리에 두른다. 그런데 고골리는 코와 외투를 소재로 재미있는 작품을 썼지만 모자에 대해 서는 다루지 않았다는 점이 궁금하다. 추측컨대 모자는 여 성 성기를 상징한다고 봤을 때, 고골리는 뭔가 그러한 소재 를 다룬다는 것이 자신도 모르게 내키지 않았을지도 모르 겠다. 그는 결혼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노총각으로 살 다 죽은 인물이다. 또한 여성들과 염문을 뿌렸다는 소문도 들리지 않았다. 분명 그는 이성과의 사랑에는 별다른 관심 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골리의 대부분의 작품들을 보 더라도 남녀 간의 애정문제는 별로 드러나지 않는다. 아마 그런 점들이 고골리의 동성애적 경향에 대한 논의들이 나 오게 된 배경이 아닐까 생각해볼 수는 있겠다.

모자의 특성은 그 안에 머리를 집어넣는다는 점이다. 머

리는 상징적으로 남근을 의미할 수 있다. 털로 덮인 무언가

를 털에 덮인 빈 공간속에 집어넣는다는 것은 잠재적인 거

세공포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외투는 의미가 조금

다르다. 몸 전체를 감싸주고 추위를 막아주며 온기를 보호

해주는 외투의 존재는 원초적 모성을 상징하는 것이기에 단

순히 성적인 의미를 떠나 유아적 만족감을 제공하는 원천

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이성과의 결혼, 즉 성적인 관계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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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골리의 사라진 코와 외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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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않고도 아까끼 아까끼에비치는 나이 오십이 넘도록 오 직 한 벌뿐인 외투만으로도 삶의 만족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인데 그의 유일한 의지처인 외투를 강도에게 빼앗 기면서 결국 삶의 의욕을 앓고 시름시름 앓다 죽음에 이르 게 된 것이다. 이미 코와 외투에 관한 두 소설에서 고골리 는 자신의 무의식적 갈등의 핵심을 다루었다고 해도 과언 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거세불안 및 원초적 모성에 대한 그리움을 상징적으로 희화화시켜 작품으로 완성시킨 셈이며 작가적 성공 후에도 실제로 이성에 대한 별다른 관심을 보 인 적이 없었다. 고골리는 인간의 욕망을 탓하고 책망하는 동시에 자신의 세속적인 태도를 스스로 비난하면서 영적인 구원과 승화를 위해 노력하였으며 그리고 공식적으로는 이 유가 분명치 않은 죄책감과 우울증으로 식사를 계속 거부 하던 중에 사망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의 작품 배경과 고골 리 자신의 심리적 특성을 고려해본다면 나름대로의 부분적 인 이유를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結 語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가 러시아문 학을 지탱하는 두 개의 큰 강이라면 그 강의 원류는 고골 리라는 작고 아름다운 호수라고 하겠다. 고골리의 초기 소 설에 속하는 [코]와 [외투]는 비록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개 념이 나오기 훨씬 이전에 쓰여진 작품이지만 상징적 의미 에서 본다면 각각 남근과 자궁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유도 없이 사라졌다가 영문도 모르게 제자리에 찾 아든 코 때문에 겪게된 거만하기 짝이 없는 고급관리의 희 화적인 모습과 도둑에게 빼앗긴 외투를 찾기 위한 가난한 하급관리의 눈물겨운 모습은 너무도 대조적이다. 그러나 두 작품의 제목이 상징하는 공통점은 상실이라고 할 수 있다.

코와 외투의 상실에서 비롯된 비극은 결국 오이디푸스 갈 등의 고리에 얽힌 문제라는 점에서 양 축을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거세공포와 자궁으로의 회귀 문제 는 대부분의 인간 심리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핵심적인 부 분을 차지하는 내용들이다.

고골리 자신의 거세불안 및 자궁 지향적 소망은 비록 의 식적인 내용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창의적 영감에 의해 그러 한 심층적 문제점을 인식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는 인간의 심층 내면에 감추어진 보편적 갈등의 핵심을 드러내되 상 당히 희화적인 수법으로 묘사함으로써 문제의 심각성을 교 묘히 피해갈 수 있었다. 비록 그 자신은 불행한 모습으로 생을 마감하긴 했지만 적절히 감추어진 그러나 은유적으로 적절히 드러낸 보편적 인간 내면의 심리적 갈등의 핵심을

형상화시킴으로써 고골리는 시대적 정신과 문화적 차이를 넘어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독자들로부터 계속 읽 히고 또 사랑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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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炳 郁

209 ABSTRACT

In the Search for Gogol’s Lost Nose and Overcoat

Byung-Wook Lee, M.D.

If Tolstoi and Dostoevsky were two big mountains of Russian literature, Gogol was a cute and beautiful lake at the foot of those mountains. This paper is a study of two of Gogol’s famous novels, Nose and Overcoat, from the psychoanalytic perspective. Symbolically, the stolen nose and overcoat are very meaningful because they symbolize the phallus and uterus, respectively. Their loss makes the protagonists of the stories panic, but Gogol’s strategy of creating comic caricature in the story relaxes and dilutes all the reader’s anxiety and frustration. In my view, these two novels seem to imply that each protagonist is the other self of Gogol, confiding in us about his own secret castration fear and incest wish, including latent homosexuality. Nervertheless, many readers these days find that the satiric black humor in his work detoxifies the inner conflicts.

KEY WORDS

:Gogol·Nose·Overcoat·Castration fear·Loss.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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