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0 Polymer Science and Technology Vol. 13, No. 3, June 2002 지난 호 이 ‘쉼터’ 난엔 KIST 김정안 박사님의 ‘이공계의 위기’란 제목의 좋은 글이 게재되었다. 이 글을 읽으며 김 박사나 필자나 같은 처지에 있는 이공계 사람으로서 구구절절 옳은 말이라는 느낌이 뼈에 사무칠 정도로 가슴에 와 닿았다. 이공계의 위기를 바라보며 이공계와 관련 없는 분들이 하는 이야기야 우리에겐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이공계에 몸담은 사람들의 위기 타파에 대한 처절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정말 우리 이 공계가 다시 살아날 길은 없는가 하는 생각이 깊이 든다. 얼마 전 신문을 보니, 미국의 경우는 화공 및 화학 관련 전공 출신자의 연봉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분야의 전문가에게 그만한 대우를 해 주는 미 국이라는 나라에 일견 부러움을 느꼈지만, 어디 이런 현상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이공계의 위기는 비단 고등학생들의 대학진학 경향에서만 나타나는 현상만은 아닐 것이다. 요즈음 대학생 들을 보면 졸업학점이 낮아지면서 옛날보다 취득해야 할 전공 필수학점이 점차 낮아지고 대신 많은 전공관 련과목들이 부득이 전공선택과목으로 편성되어 있는데 그러다 보니 자신의 전공보다는 학점 따기 쉬운 일반 교양과목을 수강하는 경향이 크다. 가령 고분자 전공 학생이 선택과목으로 되어있는 고분자물성 3학점을 이 수하기보다는 같은 선택과목이라면 교양체육 3학점을 이수하는 것이다. 이런 학생들을 볼 때마다 이공계의 교육 현장에 있는 우리들로서는 비애감을 넘어서 우리가 과연 제대로 가르쳐 왔는가 하는 부끄러움을 더 느 끼게 된다. 이런 정책들을 만든 정부관료들을 탓하기 전에 이런 정책이 사용되도록 방조한 교수로서의 내 탓이 더 큰 것 같아 몸둘 바를 모르겠다.
한국에서의 이공계의 위기가 오늘 내일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특히 최근 들어 대학 진학에 관련하여 새삼 사람들의 입에 더 오르내리는 이야기가 되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공계의 위기를 타파하자는 목소리 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는 가운데 이공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의 간절한 목소리들이 안타깝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느껴진다.
이공계 관련 대학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산업체에서 잘 나가는 이공계 출신 최고경영자 (CEO)들이 요즈음 들어 초, 중등학교를 직접 찾아다니면서 어린 학생들에게 이공계에 대해 관심을 돌리려고 온갖 애를 다 쓰 고 있는 모습을 보면 정말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일이라 마음이 아프다. 식자들은 저마다 이공계 위기를 타파하자며 백방의 처방전을 내어놓는다. 스타과학자를 만들어 G.O.D.나 핑클 혹은 배용준처럼 대중 앞에 상품으로 내어놓으면 하루아침에 이공계의 위기가 타파될 것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이공계 기술자들에 게 월급을 많이 주면 만사가 해결될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들 처방들이 나름대로 타당한 이야기일 수 도 있다.
하지만, 진정 애정 어린 마음으로 오늘날 한국사회 이공계 사람들의 현장에서의 모습들을 조금만 들여다 보라. 그러면, 이공계 대학 대신 기를 쓰고 의대나 법대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젊은 학생들이나 그들의 부모 님들에 대해 일방적으로 불평을 할 수만은 없음을 잘 알게 된다. 과학기술자들의 생명 줄을 손안에 쥐고 하 루아침에 연구소를 지었다 허물었다 하며 결과만을 내어놓기를 강요하고 그 알량한 연구비를 무기로 당근과 채찍을 반복하는 정책이 만연하는 나라가 어디인가? 이런 나라에서 불안한 자신의 신분을 누구보다 더 잘 알면서, 자신의 자녀에게 과학기술자가 되라고 할 어리석은 이공계 출신자가 어디 있겠는가? 국가의 명운을 과학기술에 걸고, 연구소를 새로 설립하여 해외 우수두뇌를 유치하고 대통령이 밤늦게 연구소를 찾던 그 시
쉼 터
그들에 의한, 그들을 위한
하 창 식 (부산대학교 고분자공학과)
고분자과학과 기술 제 13 권 3 호 2002년 6월 361 절엔 그나마 이공계 출신자에겐 희망이 있었다. 때문에, 의대나 법대 못지 않게 공대나 자연대에서도 열심히 만 하면, 병역혜택도 받을 수 있고 취업도 확실히 보장되는 길이 이공계였었기에 우리들 이공계 학생들에겐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의 모습은 어떤가? 너도나도 굴뚝산업 대신 벤처로 일확천금을 꿈꾸는 게 오늘 의 현실이다. 한쪽엔 국방자원이 모자라 특례보충역 수혜자 수를 줄여야 한다고 아우성치면서 다른 한 쪽에 선 월드컵 16강에 진출하면 선수들에게 병역혜택을 주자고 난리이다.
말없이 대한민국을 오늘만큼이나 이끌어 오며 굴뚝산업을 지켜온 이공계 과학기술자들 위에 군림하며 이 나라를 쥐고 흔들었던 사람들이 누구였던가? 군말할 것 없이 스페셜리스트 (specialist) 즉 전문가라고 불리 는 과학기술자들은 수십 년 동안 제너럴리스트 (generalist)라고 불리는 비 이공계 행정관료나 정치가들의 탁상공론에 주눅들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었던 게 아니던가? 국가주석에서부터 총리며 차세대 지도 자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이공계출신인 중국이 너무도 부러운 게 우리 현실이다. 우리나라 정부의 고위직 관 료나 정치가 중에 1%도 안 되는 이공계통 출신자의 비율이 바로 이공계 위기의 주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 닐 것이다. 이공계통 출신자에게 월급 몇푼 더 주고, 한 두 사람의 과학기술자를 스타로 만든다고 이공계의 위기가 사라질까?
제너럴리스트들의 과도한 지배(?)는 우리들 과학기술자들로 하여금 그 잘못된 정책에 순응하며 나 자신의 몫 챙기기에만 급급하도록 강요해 온 측면이 적지 않았다. 이를테면 요즈음 시중에 회자하는 ‘니나노’란 용 어는 우리를 정말 슬프게 한다. 클린턴 대통령의 한마디가 태평양을 건너며 폭풍소리가 되어 나노과학기술 천국이 되어 요즈음 니도 (필자 주; ‘너도’의 경상도 말), 나도, 나노과학기술에 관련된 연구개발에 뛰어들다 보니 그야말로 니나노 세상이 되어버렸다. 모든 연구비는 나노과학기술에 집중되고, 그러다 보니, 연구과제 제안서에 나노라는 단어가 포함되지 않으면 아예 심사대상에서조차 제외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니, 모두 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일부 과학기술자들이 물고기란 별명으로 조소를 받아도 항변할 말이 없어지는 것 이다. 과자 부스러기를 집어 던질 때마다 그 부스러기를 집어먹으려고 우르르 몰려드는 연못에 갇힌 물고기 를 생각해 보라. 어느 정부 부처를 막론하고 해만 바뀌면 새로 내어놓는 어떤 이상한 연구지원 사업이라도, 탁상공론으로 급조된 정책의 미끼에 걸려 벌떼같이 달려들며 니나노와 같은 모진 외풍에 실려 갈 수밖에 없 는 이것이 과연 우리자신의 모습이어야 하는가를 생각하면 서글프기 그지없다. 더구나, 힘센 물고기들 속에 떼밀려 힘없이 밀려나 배를 곪아야 할 수밖에 없는 작은 물고기들에 불과한 지방대학 교수의 입장으로서야 애간장이 다 녹으리라.
선택과 집중도 중요하고 월급도 중요하다. 하지만, 나도 살고 너도 살고 기초과학도 살며 비-나노과학도 사는 공생의 길에서, 과학기술자들 모두가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도록 하여 과학기술자들의 얼굴에서 웃음 을 빼앗지 않도록, 그들에 의한, 그들을 위한, 백년대계의 일관된 정책을 써 보라. 이공계의 위기라는 말은 저절로 사라질 것으로 확신한다. 게다가 정부에도 국회에도 이공계 출신자들이 너무 많아 골치 아플 정도라 면 더욱 미래는 밝다.
지난 이십 년 동안, 신분안정을 보장하지 않는 정부출연 연구소의 불확실한 미래와, 장관이나 정권만 바뀌 면 한 건 주의로 어김없이 새로 등장하는 과학기술정책들을 생각하면, 이공계 위기가 더 빨리 닥치지 않은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이다. 한두 사람의 스타과학자도 중요하겠지만, 자신의 장래에 대한 일말의 불안 없이 밤을 새우며 자신의 연구실을 지키는 과학기술자들의 보람되고 희망찬 얼굴이 우리 주위에 보편적으로 그리 고 널리 자리할 때, 에디슨이나 아인쉬타인과 같은 위대한 과학기술자의 삶이 의사나 법관보다 훨씬 더 아 름다운 삶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 어린 학생들은 느낄 것이다.
즐겨 과학의 진리를 탐구하며 연구하고 자신의 기술을 통해 국가경쟁력 제고에 신바람 내는 과학기술자들 의 순수함과 열정이 꽃필 수 있는 시스템이 정착될 날은 과연 오지 않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