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1. 진리와 그리스도의 인격

N/A
N/A
Protected

Academic year: 2022

Share "1. 진리와 그리스도의 인격 "

Copied!
8
0
0

로드 중.... (전체 텍스트 보기)

전체 글

(1)

11 주차 강의: IIA. 다원적이고 세계화된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진리 증거하기

1. 진리와 그리스도의 인격

예수 그리스도는 만유의 진리이시다. 그리스도는 진리이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의 진리는 (i) 명제적일 뿐 아니라 인격적이며 (ii) 상황적일 뿐 아니라 보편적이고 (iii) 현재적일 뿐 아니라 궁극적이다.

A)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우리는 진리의 사람들로 부름받았다.

1. 우리는 진리를 살아내야 한다. 진리를 살아낸다는 것은 우리가, 어두운 마음에 복음의 영광의 빛을 계시하시는 예수님의 얼굴이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예수를 위해 신실함과 사랑으로 살아가는 자들의 얼굴에서 진리를 볼 것이다.

2. 우리는 진리를 선포해야 한다. 복음의 진리를 말로 선포하는 것은 우리의 선교에서 월등한 부분으로 남아있다. 그것은 진리를 살아내는 것과 분리될 수 없다. 행위와 말씀은 반드시 함께 가야만 한다.

B) 우리는 교회 지도자들과 목회자들과 복음전도자들이, 바울처럼 복음의 우주적인 범위와 진리를 온전히 전파하고 가르칠 것을 강권한다. 우리는 복음을 단순히 개인적 구원이나 다른 신들이 주는 것보다 더 나은 해결책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는 온 우주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으로 제시해야 한다.

2. 진리와 다원주의의 도전

문화적 ‧ 종교적 다원주의는 존재하는 사실이며, 특히 아시아의 그리스도인들은 오랫동안 문화적 ‧ 종교적 다원주의 상황에서 살아왔다. 종교들은 자신들의 길이 진리에 이르는 길이라고 주장하면서도 타종교의 경쟁적인 진리 주장을 존중하고 함께 공존하려고 한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의던적이며 상대주의적인

다원주의는 다르다. 그것은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를 인정하지 않으며 종교들의 진리 주장을 관용하기는 하지만, 문화적으로 형성된 것 이상으로 보지 않는다. (이러한 입장은 논리적으로 자기 파괴적인데, 왜냐하면 절대적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주장을 절대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다원주의는 궁극적 가치로서 “관용”을 주장하지만 세속주의나 공격적인 무신론이 공적 영역을 지배하는 국가에서는 억압적인 모습이 될 수 있다.

A) 우리는 확고한 변증이라는 어려운 과제에 더욱 헌신하고자 한다. 이것은 다음의 두 가지 수준으로 나타난다.

1. 우리는 공적 분야에서 성경적 진리를 수호하고 설득하는 데 있어 최상의 지적 ‧ 공적 수준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어 그들을 구비시키고 위해 기도해야 한다.

2. 우리는, 교회 지도자들과 목회자들이 진리가 일상적인 공적 대화와 예언자적 적실성을 갖고 모든 신자들에게 용기를 불어넣고 도구들을 구비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문화적 상황에 참여할 것을 촉구한다.

(2)

3. 진리와 일터

성경은 인간의 노동에 관한 하나님의 진리를 창조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의 일부로 우리에게 제시한다. 성경은, 우리가 여러 소명들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듯이 우리의 노동 전체를 하나님을 섬기는 노동의 삶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성속의 분리”라는 허위가 교회의 사고와 행동에 스며들어왔다. 이러한 이분법은, 종교적 활동은 하나님께 속해 있고 세상적 활동은 하나님께 속해 있지 않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으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일(소위 세속적 일)을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하나님은 삶의 모든 것을 주관하는 주님이시다. 바울은 세속적 일터에서 일하는 종들에게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주 58)고 가르쳤다.

비그리스도인들과 함께 하는 일터는 복음전도와 변혁을 초래할 중요한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교회만이 그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신자들을

구비시키려는 비전을 갖고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주되심 아래 삶의 모든 것을 드리지 못했던 것처럼 일 자체가 갖는 성경적이며 본질적인 의미를 깨닫는 데 실패했다.

A) 이러한 성속의 분리는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을 동원하는 것을 방해하는 주요 장애물로, 우리는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비성경적인 가정들을 거부하고 그 해로운 영향들에 저항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지역적 ‧ 타문화적) 사역과 선교를 그리스도의 몸의 적은 부분을 차지하는 전임 사역자들과 선교사들의 사역으로 간주하려는 경향을 거부한다.

B) 우리는, 모든 신자들이 일상사역과 선교를 하나님이 불러 세우신 모든 일터로 받아들이며 이를 확증하도록 촉구한다. 우리는 목회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이–성도들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봉사[사역]를 위해 그들을 구비시키며 그러한 사역–공동체와 일터–에서 사람들을 도울 것을 요청한다.

C) 우리는 삶 전체의 제자도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을 집중적으로 훈련시켜도록 노력한다.

이것은 일상적인 생활과 일터에서 선교적 효율성을 추구하며 성경적 세계관으로 살아가고, 생각하고, 일하고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양한 기술과 무역과 사업이라는 전문 분야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은 전통적인 교회개척자들과 복음전도자들이 갈 수 없는 곳으로 갈 수 있다. 이러한 “텐트메이커들”과 비즈니스 종사자들의 일터 사역은 지역 교회들의 사역의 한 영역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D) 우리는 교회 지도자들이 일터 사역의 전략적 영향력을 이해하고 교인들을 선교사로 동원하고 구비하여 지역 공동체의 일터와 전통적으로 복음증거를 거부하는 국가들에 파송할 것을

촉구한다.

E) 우리는 선교 지도자들이 “텐트메이커들”을 세계적 선교 전략 안에 통합할 것을 촉구한다.

4. 진리와 전 세계적 미디어

(3)

우리는 미디어 문화 가운데 그리스도의 진리를 드러내는 자들로서 미디어와 테크놀로지 분야에 비판적이면서 창조적인 방법으로 참여할 것을 다짐한다.

이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청한다.

A) 미디어에 대한 인식: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수용하는 메시지와 세계관에 대한 보다 비판적인 인식을 갖도록 한다. 미디어는 중립적이며 때로는 복음에 우호적이지만 포르노, 폭력, 탐욕에 악용되기도 한다. 우리는 목회자들과 교회들이 이러한 이슈들에 개방적으로 접근하고 신자들이 그러한 압력과 유혹을 거부하도록 교육하며 이에 대한 지침을 제공할 것을 권장한다.

B) 미디어의 실재: 일반적인 정보 미디어와 연예 미디어 분야에서 확실하고도 신뢰할 만한 기독교적 역할 모델들과 커뮤니케이터들을 발굴하고 그리스도를 위해 영향력을 미치는 훌륭한 수단들로서 해당 분야의 경력자들을 격려한다.

C) 미디어 사역: 통전적인 성경적 세계관을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전통적인’

미디어와 기성 미디어아 새로운 미디어의 상호작용을 위한 창의적이고 통합적인 용도를 개발한다.

5. 진리와 선교에서의 예술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이기에 창조성이라는 은사를 갖고 있다.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예술은 인류로서 우리가 행하는 통전적 행위의 일부이며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진리를 반영하는 것이다. 최고의 예술가들은 진리를 말하는 자들이며 따라서 예술은 복음의 진리를 말하는 중요한 구성요소이다. 드라마, 춤, 이야기, 음악, 그리고 시각 이미지는 우리의 분열이라는 실재와 복음의 핵심으로서 만물이 새롭게 될 것이라는 소망의 실재를 드러내는 표현들이다.

선교에 있어 예술은 미개척 분야이다. 우리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술 분야에 참여할 것을 적극 독려한다.

A) 우리는 모든 문화 속에서 교회가 다음의 선교를 위한 상황으로서의 예술에 열정적으로 참여하기를 갈망한다.

1. 우리를 향한 제자도로의 부르심이라는 타당하고 가치 있는 구성 요소로서의 신앙 공동체의 삶으로 예술을 되가져오도록 한다.

2. 예술적 은사를 가진 그리스도인 형제자매들을 후원하여 그들의 사역이 번창하도록 지원하도록 한다.

3. 예술이 우리의 이웃과 타인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친숙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한다.

4. 문화적 차이를 존중하고 토착적인 예술 표현들을 경축하도록 한다.

6. 진리와 부상하는 기술 문명들

21 세기는 바이오, 인포/디지털, 가상실재, 인공지능과 로봇기술 같은 부상하는

테크놀로지의 진보를 이룬 “바이오테크놀로지 세기”이다. 이것은 특히 인간

존재의 의미에 대한 성경적 진리와의 연관성에서 교회와 선교에 깊은 함의를

(4)

가진다. 우리는 테크놀로지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우리의 인간성을 조종하고 왜곡하며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보전하고 구현하는 데 사용될 수 있음을 확증하기 위해 공공정책 분야에서 진정한 기독교적 응답과 실천을 촉구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청한다.

A) 지역교회 지도자들은 (i) 과학, 테크놀로지, 건강, 그리고 공공정책에 전문적으로 종사하는 신자들을 격려하고 후원하며 문제를 제기하고 (ii) 그리스도인들이 해당 분야에 참여할 필요성을 학생들에게 신학적으로 신중하게 제시하도록 한다.

B) 신학교는 커리큘럼에 이러한 분야들을 포함시켜 미래 교회 지도자들과 신학자들이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대해 정확한 기독교적 비판 능력을 함양하도록 한다.

C) 정부, 경제, 학계, 기술 분야에서 신학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은 새로운 테크놀로지 분야에 참여하기 위해 국가나 지역의 ‘씽크탱크’와 동반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성경적이며 적실한 발언을 함으로써 공공정책 형성에 영향을 미치도록 한다.

D) 모든 지역 기독공동체들은 창조된 인간성의 물질적 ‧ 감정적 ‧ 관계적 ‧ 영적 양상들을 통합하는 실제적이고 통전적인 돌봄을 통해 인간 삶의 독특한 존엄성과 신성함에 대한 존경심을 보여 주도록 한다.

7. 진리와 공적 영역

정부, 기업, 학계가 연계된 영역들은 각 국가의 가치관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며 인간적 용어로 교회의 자유를 규정한다.

A)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사회적 가치를 형성하고 공적 논의에 영향을 미치는 공공 서비스나 개인사업 분야에서 해당 영역들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학문적 탁월성과 성경적 진리를 추구하는 그리스도 중심적인 학교와 대학교를 지원할 것을 촉구한다.

B) 성경은 부패를 정죄한다. 부패는 경제발전을 침식하고 공정한 결정을 왜곡하며 사회적 응집력을 파괴한다. 부패로부터 자유로운 국가는 없다. 우리는 이 문제에 최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창조적으로 구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일터의 그리스도인들, 특히 젊은 기독교 기업가들을 초청한다.

C) 우리는 젊은 기독교 학자들이 성경적 세계관으로 (i) 가르치고 (ii) 훈련시키는 법을 개발해 그들의 주요 전문 분야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세속 대학에서 장기적으로 활동하기를 권장한다. 우리는 학술연구를 무시하지 않는다.(주 59)

IIC. 타종교인 사이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살아가기

1.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명령은 타종교인을 포함한다 케이프타운 서약 1 부 7 장(D)의 연장으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타종교인들에 대한 성경적 관점에 있어 높은 소명에 응답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며,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죄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 우리는 그들을 우리의 이웃뿐 아니라, 우리를 그들의

(5)

이웃으로 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순종하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소박한 사람이 아니라 온화한 사람으로, 아량이 넓은 사람이 아니라 분별하는 사람으로, 두려움에 지배당하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직면한 어떤 위협에도 당당히 맞서는 사람으로 부름받았다.

우리는 값싼 개종이 아니라 복음전도를 통해 좋은 소식을 나누기 위해 부름받았다. 사도 바울의 본을 따라 설득력 있고 이성적인 논쟁을 포함하는 우리의 복음전도는 “복음에 관한 청취자들의 사고방식을 형성할 자유를 전적으로 그들에게 일임하며 복음을 정직하고 개방적으로 진술하는 것이다. 우리는

타종교인들에 대한 민감하기 원하며, 그들을 억지로 회심시키려는 어떤 방식도 거부한다 .”(주 67) 이와 대조적으로 개종은 타종교인들을 ‘우리처럼’ 만들고

‘우리의 종교를 받아들이게’ 하거나 ‘우리의 교파에 소속하도록’ 강요하려는 시도이다.

A) 우리는 우리의 모든 전도 활동이 윤리적이어야 함을 확고하게 서약한다. 우리의 증거는

‘깨끗한 양심을 지키는 온유함과 존경’으로 나타나야 한다.(주 68) 따라서 우리는 강제적이고 비윤리적이며, 거짓되고 경멸적인 어떤 복음 증거의 형태도 거부한다.

B) 우리는 사랑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무슬림, 힌두교인, 불교인, 그리고 다른 타종교인들과 우정을 나누지 못한 것을 회개한다. 예수님의 영 안에서 우리는 솔선수범하여 타종교인들에 대한 사랑과 선한 뜻과 친절한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C) 우리는 진리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i) 타종교에 관한 거짓과 조롱을 조장하는 행위를 거부하고, (ii) 인종차별적 편견과 대중매체와 정치적 견해를 통해 선동되는 증오와 공포를 고발하고 거부한다.

D) 우리는 평화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폭력을 당했을 때에라도 타종교인들을 대하는 데 폭력적이고 복수 같은 방법을 사용하는 것을 거부한다.

E) 우리는 바울이 회당과 공공장소에서 유대인들이나 이방인들과 논쟁을 벌였던 것처럼, 타종교인들과 대화를 위한 적절한 장소를 모색한다. 기독교 선교의 합법적인 방법인 대화는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복음의 진리에 대한 확신과 함께 존중하는 마음으로 다른 이들의 주장을 경청하려는 태도와 결합된다.

2. 그리스도의 사랑은 복음을 위해 고난과 죽음을 감수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스도의 사도들과 구약의 예언자들에게 요구되었듯이 고난은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우리의 선교에 반드시 필요하다.(주 69) 고난을 기꺼이 받는다는 것은 우리의 선교의 진정성을 명백하게 검증해 줄 수단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선교의 진전을 위해 고통과 박해와 순교를 사용하기도 하신다. “순교는 무엇보다

그리스도께서 명예를 위해 약속하신 증거의 한 형태이다.”(주 70) 안락함과 번영을 누리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기꺼이 고난 받기 위해 그분의 부르심을 다시금 상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적대적인 종교문화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 값비싼 고난을 당하고

있다.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신실한 순종으로 자신들에게 해를 입히는 사람들을

(6)

끝까지 사랑하며, 사랑하는 사람들이 순교와 고문, 박해를 당하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A) 우리는 복음을 위해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눈물과 기도의 간증을 기억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셨듯이 우리는 ‘원수를 사랑하기’ 위해 그분이 은혜와 용기를 주시길 함께 기도한다. 우리는 복음 증거자들에게 적대적인 곳에서 복음의 열매가 맺히기를 기도한다. 우리는 고통당하는 자들을 위해 슬퍼하며 하나님이 그분의 사랑과 복음, 그리고 그분의 종들을 거부하고 거절하는 이들에 대해 느끼는 끝없는 아픔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는 그들이 회개하고 용서받으며 하나님과의 화해를 통해 주어지는 기쁨을 발견하게 되기를 열망한다.

3. 행동하는 사랑은 은혜의 복음을 구체회하며 권고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이다.'(주 71) 우리의 소명은 그리스도의 냄새인 하나님의 은혜의 향기를 발하므로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라는 것을 타종교인들이 맛보게 만들므로 타종교인들 속에서 살고 그들을 섬기는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구현된 사랑을 통해 모든 문화적 ‧ 종교적 상황에서 복음을 매력적으로 만든다.

그리스도인들이 사랑의 삶과 섬김의 행위를 통해 타종교인들을 사랑할 때, 그들은 하나님의 변화시키는 은혜를 구체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수치와 복수가 종교적 율법주의와 결합되어 “명예”를 중시하는 문화에서

“은혜”는 낯선 개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연약하고 자기희생적인

사랑은 논쟁거리가 아니라, 매우 이질적이며 반동적인 개념으로 간주된다. 여기서 은혜는, 은혜의 맛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에게 오랜 기간에 걸쳐 체득된 맛이다.

그리스도의 향기는 그를 따르는 자들이 접촉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서서히 스며든다.

A) 우리는 하나님이, 그리스도인들이 배척당하고 위험에 처한 문화들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향기와 맛을 내기 위해, 타종교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어려운 곳에서 살며 사랑하고 섬기며 장기적으로 헌신할 은혜로 충만한 남녀 그리스도인들을 더 많이 세워주시기를 열망한다.

4. 사랑은 제자도의 다양성을 존중한다

소위 “내부자 운동”은 여러 종교들에게서 발견된다. 내부자 운동은 예수님을 그들의 하나님과 구세주로 따르는 집단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의무를 준수하는 것을 포함해 그들이 속한 사회문화적 공동체 안에 살아가면서 예수님과 성경을 중심으로 친교, 가르침, 예배, 기도를 위한 소그룹 모임을 가진다. 이는 복합적인 현상이며, 이 현상에 대해 응답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다.

어떤 이들은 내부자 운동의 혼합주의적 위험성을 경고하기도 한다. 그러나 혼합주의는 문화의 한 형태로 우리의 신앙이 표현되는 것같이,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 발견되는 위험이다. 우리가 예상하지 못하거나 익숙하지

않은 방법으로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목격할 때 (1) 성급하게 내부자 운동을

분류하고, 그것을 일련의 새로운 선교전략으로 추진하거나 (2) 민감하게 현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것을 성급하려고 하지 않아야 한다.

(7)

A) 안디옥에 도착해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했던(주 72) 바나바의 심정으로 우리는 이 이슈와 연관된 모든 사람들에게 다음의 사항들을 권고한다.

1. 우리는 사도적 결정과 실천을 주요 원리 지침으로 취한다.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주 73)

2. 우리는 관점의 다양성을 인정하며 겸손과 인내와 호의를 실천하며 상호 비난을 배제한 대화를 전개한다.(주 74)

5. 사랑은 흩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전파된다

오늘날 전례 없는 대규모 인구 이동이 일어나고 있다. 이주는 이 시대의 중대한 세계적인 실재들 가운데 한 현상이다. 2 억 명 정도가 자발적 ‧ 비자발적으로 자신들의 출생지 아닌 곳에서 살고 있다. 여기서 ‘디아스포라’라는 단어는 어떤 이유에서건 자신들의 출생지를 떠난 사람들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을 포함하여 다양한 종교적 배경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디아스포라의 상태로 살고 있다. 일거리를 찾는 경제적 이주자들, 전쟁이나

자연재해로 인해 내부적으로 격리된 사람들, 난민과 망명자들, 인종청소와 종교적 박해의 피해자들, 가뭄이나 홍수, 전쟁으로 인한 기근 피해자들, 도시로 이주한 빈농 희생자들이 모두 그런 이들이다. 우리는 현대의 이주현상에 수반될 수 있는 악과 고통을 무시하지 말며,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교적 목적 안에 있음을 확증한다.(주 75)

A) 우리는 교회 지도자들과 선교 지도자들이 디아스포라들 가운데서 사역하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들에 대한 전략적 계획과 그들을 훈련하고 자원을 구비하는 데 집중하면서 세계적인 이주 현상과 디아스포라 공동체에 의해 제기된 선교적 기회들을 인식하고 응답할 것을 권고한다.

B) 우리는 다양한 종교적 배경을 갖고 있는 이주자 공동체들이 산재해 있는 나라의

그리스도인들이 타인들을 사랑하고, 외국인들의 복지를 변호하며, 갇힌 자들을 방문하고, 환대를 실천하며 우정을 나누고, 자신들의 집을 개방해 돕고 섬기라는 포괄적인 성경의 명령에

순종하므로 행위와 말씀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반문화적 증거를 담지할 것을 촉구한다.(주 76)

C) 우리는 자신들이 선택하지 않은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을 깨달으며 그들의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의 증거를 품고 공동체의 복지를 위한 기회를 얻으려 노력하는 디아스포라 공동체의 일원인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한다.(주 77) 우리는 디아스포라 공동체가 교회를 포함하고 있는 나라에서 이주민 교회와 토착 교회가 서로에 대해 귀를 기울이고 서로 배우며 그 나라를 복음으로 변화시키려는 공동의 노력을 전개할 것을 권고한다.

6. 사랑은 모든 사람의 종교적 자유를 위해 힘쓴다

박해에 직면하여 종교의 자유 수호를 통한 인간의 권리를 변호하는 것은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것과 대립되지 않는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기꺼이 박대를

당하거나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과 인권침해가 이루어지는 상황 속에서

침묵을 강요당하는 사람들을 옹호하고 목소리를 내는 데 헌신하는 것 사이에는

결코 모순이 없다. 또한 우리는 타종교인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과 그들의

(8)

신앙의 진리를 인정하는 것의 차이를 구분해야 한다. 우리는 타종교를 진리로 수용하지 않고도 타종교인들의 자유를 변호할 수 있다.

A) 우리는 모든 사람들의 종교의 자유라는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은 박해를 받고 있는 그리스도인들과 타종교인들을 대표해 정부를 향해 종교의 자유를 주창하는 것을 수반한다.

B)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의 복지를 추구하고, 권력을 가진 자들을 존중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세금을 내며 선을 행하고 평화롭고 평온한 삶을 추구하는 선한 백성이 되라는 성경적 가르침에 의지적으로 순종한다. 하나님이 금한 것을 명령하지 않고 하나님이 명령한 것을 금하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 그리스도인은 국가에 복종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따라서 국가가 우리에게 국가에 대한 충성과 하나님에 대한 충성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한다면, 우리는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을 맹세했기에 국가에 대해 ‘아니오’ 라고 말해야 한다.(주 78)

모든 사람들의 종교의 자유를 위한 우리의 모든 합법적 노력들 중 가장 깊은

열망은 모든 사람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유롭게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야 한다.

참조

관련 문서

우리는 패스트캠퍼스를 찾아오는 분들께 단순한 교육기관을넘어서서, Life Accelerator 가 되려고 합니다.. 우리는 Life-changing Education 을

불평등을 의미하는 영어 원문은 inequity이다.. 불균등이라고 쓰고 불평등이라고

우리는 이제 좋은 회사에서 위대한 회사로의 전환은 반드시 일어나고, 그 전환을 일으키는 기본 변수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냈노라고 의심없이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좋은

제의 진리를 탐구하고 학문 그 자체를 신성시하는 일은 대학의 설립 목적에 붙박혀 있는 대학의 고유한 이념이다.. 강원대학교의 교육이념 실사구시 ‘ ’( 實事求是 :Veritasex

우리는 더 이상 이런 것을

 주로 종교의 언어에서 우리의 일상에서는 이해될 수 없는 초월적인 진리를 언어로 담으려 할 때, 자주 사용됨. 예) 불교의 교리나 기독교의

음식 섭취를 중단함으로써 서서히, 품위 있게, 그리고 평화롭게 육신의 옷을 벗고자 했다... “여보, 이제 무엇이든 붙잡고

모든 문화적 산물을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에 비추어 평가해야 하고 , 우리는 이 세상의 문화 속에 있는 모든 가치 있는 것에 감사하며 사용 우리는 이 세상의 문화 속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