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1598-1142 (Print) / ISSN 2383-9066 (Online) https://doi.org/10.7738/JAH.2016.25.6.061
1. 서 론
1-1. 연구 배경 및 목적
목조건축의 꺾음부는 제한된 대지를 효율적으로 사용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또한 구조적으로 취 약하여 보수가 잦기 때문에 원형을 파악하기 어려운 점 은 있으나, 가구의 변화를 살필 수 있는 좋은 사례이다.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 궁궐건축은 시기, 용 도, 위계에 따라 다양한 꺾음부를 보여준다. 그러나 기존 목조건축의 꺾음부 연구는 안동문화권의 살림집을 집중 적으로 다루어 왔으며, 그 결과를 가지고 조선시대 목조
* Corresponding Author : [email protected]
건축의 꺾음부를 일반화하는 경향이 있다.
꺾음부가 있는 주택 중 ㅁ자 집은 튼ㅁ자 집과 달리 평지에 적합한 구조라고 설명한다.
1)
그러나 실제로는 경 사지가 많은 안동문화권에 가장 많이 남아 있다. 이를 설명하고자 ㅁ자 집을 안동문화권의 특징으로 간주하여, 경사지에서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기법들에 초점을 두었다. 그러나 평지나 도회지에 유리한 이 구조가 도시 에서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에 대한 관심은 미흡한 상 황이다.도회지를 대표하는 서울은 대지의 경사가 상대적으로
1) 김화봉, 안동문화권 뜰집의 ‘직교도리’ 구조에 관한 연구 , 건축역 사연구, 9권, 2호, 2000.9.
조선시기 궁궐건축 꺾음부의 구조와 그 변화
-맞배직교형에서 팔작직교형으로-
A Study on the Structure and Transition of Corner-connections of Palace Architecture in Joseon Dynasty
-From
Gable Roofs Meeting at Right Angleto
Hipped and Gable Roofs Meeting at Right Angle-
김 버 들Kim, Bue-Dyel
(서울시립대학교 박물관 학예연구사, 공학박사) 이 종 서*
1)
Lee, Jong-Seo
(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
Abstract
This study is about the structure and transition of orthogonal design of palace architectures in Joseon Dynasty.
The results are as follows. First, Changdeokgung and Changgyeonggung Palaces’ corridors, and their architectures seen in the Court Documentary Paintings have early Joseon style in the corner-connections. Their roof shape in the corner is gable roof. Generally, gable roof has direction. Besides, it is easy to extend gable sides. Second, Corridor of Gyeongbokgung Palace has hipped and gable roofs with corner eaves. It was popular during the late Joseon Dynasty.
On the other hand, it is impossible to extend any sides of those roofs since they have roof faces in their four sides.
Instead, they have completeness. That’s why their aesthetic appeal exhibits more pleasing than gable roofs. Third, corner-connections of palace architecture shows evidences and traces of the transition from
gable roofs meeting at right angle
in the early Joseon tohipped and gable roofs meeting at right angle
with corner eaves in the late Joseon.Also, the corner-connections with corner eaves were usually used even in the attached architectures.
주제어 : 맞배직교, 팔작직교, 확장성, 완결성
Keywords : Gable roofs meeting at right angle, Hipped and gable roofs meeting at right angle, Extendability, Completeness
작기 때문에 도리 가구의 위치 차도 작아서 꺾음부의 부 속채가 몸채 가구의 일부가 된다. 대지의 높이차보다는 3량과 5량 가구의 결합처럼 서로 다른 규모의 건축이 만 나면서 생기는 꺾음부가 나타나며, 시간이 지나면서 맞 배 가구에서 팔작 가구로 이행하는 현상을 보인다.
맞배직교형과 팔작직교형은 도리 이상의 가구법이 확 연히 다른 구조이다. 기존의 연구는 이러한 가구법보다, 대지 경사나 다른 건축요소와의 관계에 초점을 두었다.
그러나 우산각, 서산각의 구분은 결국 추녀의 유무로 나 눌 수 있기 때문에 맞배직교형과 팔작직교형의 지붕으 로 구분할 수 있으며, 두 가구의 차이를 고찰하는 연구 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에 본 연구는 맞배직교형과 팔작 직교형의 차이 및 그 변화를 규명한다.
1-2. 연구의 방법 및 절차 (1) 기존 연구
꺾음부에 대한 기존 연구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살 펴볼 수 있다. 첫째, 꺾음집의 구조에 관한 연구로 꺾음부 의 분류에 초점을 두고 있다. 둘째, 꺾음집의 계획적 요소 와 집성촌별 분포를 설명하면서 종가의 세력과 가계 변화 에 따른 꺾음집의 변화 과정을 설명하기도 한다.
2)
최근 10년간 진행된 연구들은 꺾음부 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을 다양하게 살펴 왔다. 평면, 가구, 기단
3)
, 위계, 도리의 수, 지붕 형태4)
, 간살이5)
, 처마선, 회첨부 구조6)
등의 요소를 추출하고 그에 따른 꺾음부의 유형화 에 치중하고 있다. 또한, 지정문화재의 현존 상태를 분석 하기 때문에 공간과 시간 변화에 대한 고찰이 부족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의 결과는 조선시대 전체와 서울 을 포함한 전 지역에 적용되고 있다. 서울은 도시형 주택 을 대변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 는 사례가 없다는 이유로 주목받지 못하였고, 오히려 지 방의 사례가 서울로 전파된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2) 박현·김봉렬·임충신, 양동마을 17-18C 주택의 건축적 특성에 관한 연구
-계획과정의 분석을 통하여-, 대한건축학회학술발표논문집, 17권, 2 호, 1997.10; 김화봉, 조선시대 안동문화권의 ‘뜰집’에 관한 연구 , 부 산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99; 김화봉, 안동문화권 안동권씨 뜰집의 변천과정
-안동권씨 복야공파를 중심으로-, 건축역사연구, 25권, 2호, 2016.4.
3) 한진욱, 조선시대 주택의 꺾음부 지붕구성에 관한 연구 , 강원대 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6
4) 김정현, 조선시대 주택의 꺾음부 구조와 의장 , 서울대학교 대학 원 석사학위논문, 2009
5) 조성규, 전통한옥 꺾음부 가구법과 구조 특성에 관한 연구 , 명지 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3
6) 박새미·장헌덕, 전통 목구조 살림집의 회첨부 결구방식에 관한 연 구 , 한국건축역사학회 추계학술발표대회논문집, 2012.11.
그중 류성룡의 연구는 ‘15∼16세기’라는 시기와 ‘주택’
이라는 대상을 한정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15세 기와 16세기 주택 꺾음부의 차이를 파악하고 그 과정이 엇도리 맞배지붕에서 맞춤도리 팔작지붕으로 변화하였다 고 설명함으로써, 꺾음부의 양식 분류보다 변화 과정과 기법에 대하여 세밀하고 집중적인 분석을 가능하게 하였 다.
7)
이종서의 연구는 하나의 살림집을 대상으로 창건부 터 현존 모습까지 종합적으로 고찰하였다. 소유주의 이 력, 창호·장부구멍·지붕 가구 등의 보수 흔적, 문헌 일치 여부 및 주민과의 면담을 통해 꺾음부의 원형과 시간에 따른 구조 변화를 규명하고 있다.8)
그리고 꺾음부의 사례가 다양하다 보니, 많은 선행 연 구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꺾음부에 대한 통일된 명칭이 없다.
9)
게다가 현존 주택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시 기 변화에 대한 인식과 주택 이외의 다른 건축에 대한 관심은 다소 부족한 면이 있다. 그러나 건축의 꺾음부는 주택만이 아니라 서로 다른 방향으로 진행하는 공간이 만날 때면 어느 건축에서나 나타난다.(2) 연구 대상 선정
현재 서울에는 조선전기에 지어진 건축은 없지만, 다 양한 시대적 층위를 담고 있는 궁궐에서 그 흔적을 유 추할 수 있다. 현존하는 서울의 궁궐은 시기적으로는 조 선후기의 건축이지만, 옛터를 고수하면서 전문가들의 고 증과 연구를 통해 특정 시기의 양식을 재현한 건축이다.
경복궁의 경우 흥선대원군 시대를 기준으로 하였기 때 문에 조선후기의 건축 법식을 참고할 수 있고, 창경궁이 나 창덕궁은 그보다 앞선 시기의 법식을 보여준다. 따라 서 궁궐은 도시 서울의 꺾음부 구성 법식과 시기별 변 화를 보여주는 좋은 연구 대상이다. 특히 궁궐 법전의 내행각은 법전의 용도가 명확하기 때문에 다른 전각에 비해 대지의 변화나 주변 건축과의 관계에서 영향을 덜
7) 류성룡, 조선전기(15∼16세기) 주택건축의 특징과 변화 양상 연구
-엇도리 맞배지붕에서 맞춤도리 팔작지붕으로-, 대한건축학회논문집(계획 계), 28권, 10호, 2012.10; 류성룡의 연구는 시기와 공간에 따른 꺾음부 의 차이를 규명하고자 하였으며, 추녀 설치를 위해 맞춤도리를 사용하 고 그 외의 경우 엇도리를 사용하는 점을 구분하였다. 그러나 한진욱 은 추녀 없이도 도리 선을 일치시킨 향단의 예를 들면서, 류성룡의 견 해와 달리 도리 높이 이외에 지붕 가구에 영향을 미치는 원인을 더 종합적으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8) 이종서, 홍성 “노은리 고택”의 건축 시기와 가구의 원형 고찰 , 건축역사연구, 25권, 1호, 2016.2.
9) 서로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는 가구가 만나 꺾어지는 부분은 학자,
지역, 건축의 용도에 따라 다양하게 불리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김정
현, 한진욱의 주장에 따라 더 다양하고 포괄적으로 사용될 수 있으며,
직각으로 교차하는 부분의 안팎을 함께 지칭할 수 있는 꺾음부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꺾음집과 꺾음부 각 부재별 용어 정리는 한진욱, 앞
의 논문, 10~14쪽 참고.
받는다. 따라서 전체적인 구조가 쉽게 변하지 않는 경 복궁, 창덕궁, 창경궁 법전의 내행각에서 꺾음부 사례를 선별하였다.
10)
창경궁 명정전 행각 창덕궁 인정전 행각 경복궁 근정전 행각 표 1. 궁궐 꺾음부 분석 지점
앞으로 확인하겠지만, 창경궁 명정전과 창덕궁 인정전 행각은 대원군 시대를 기준으로 재현된 경복궁 근정전 행각과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또한, 행각이 아닌 단일 건축이지만 창덕궁 빈청(賓廳)은 경복궁 빈청과 같은 평 면이면서도 조선초기 건축인 ‘아산 맹씨 행단’과 유사한 지붕 구조임이 주목할 만하다. 이 외에 궁궐 관련 계회 도와 기록화 및 창경궁의 영춘헌·집복헌과 창덕궁의 낙 선재 행각의 꺾음부도 살펴보았다.
11)
2. 조선전기 꺾음부 사례
2-1. 창경궁 명정전 내행각
12)
보물 제385호 창경궁 명정전 행각(지정명: 창경궁 명 정문 및 행각)은 조선 성종15년(1448)에 지어졌으며, 임 진왜란시 소실된 것을 광해군8년(1616)에 재건하였다. 재 건 당시 옛터에 그대로 지었던 내행각
13)
은 일제가 창경 궁을 훼철할 때에도 광해군대의 법식을 유지하였다. 현 재의 모습은 1986년 외행각을 공사할 때에 일부를 수리 한 것이다. 따라서 1616년 지어진 조선전기의 궁궐건축 법식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14)
창경궁 명정전 행각의 꺾음부는 모두 맞배 가구가 직 교하였다. 그러나 같은 맞배끼리 직교하더라도 대지 상
10) 정전을 위요하는 내행각에 비해, 외행각은 궐내각사와 연관되어 변화가 많기 때문에 연구에서 제외하였다.
11) 현존하는 궁궐의 행각부는 최근에 중건과 보수를 한 것이다. 그러 나 구조의 법식은 이전의 사례를 따랐기 때문에 건축 시기와 관계없이 표현하고 있는 법식을 기준으로 하였다.
12) 궁궐의 주요 전각의 권역을 구분하는 건축요소로 담장, 행각, 행랑, 회랑 등의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행각으로 통일하였다.
13) 광해군일기, 광해9년(1617) 5월 20일, 두 번째 기사; 동년 7월 1일, 두 번째 기사
14) 현재 창경궁 내행각은 1928년 창경궁과 동일한 구조이며, 철거된 외행각만 복구한 모습이다.
황에 따라 지붕 모양에 차이가 있다. 특히 b와 c 지점은 모두 명정전의 좌우에 대칭으로 있지만, 주변의 다른 전 각과의 관계 및 기단 높이 차이에 대한 해결 방식을 다 르게 보여주고 있다.
그림 1. 1928년 및 현재 내행각 외부
(左: 국립중앙박물관, 국립 중앙박물관소장 유리건판: 궁궐, 지앤에이커뮤니케이션, 2008, 235쪽)
(1) a 지점
a 지점은 명정문의 도리방향 행각과 명정전의 보방향 행각의 맞배 가구가 직교하는 부분으로, 박공이 있다. 이 박공은 명정전의 보방향 행각의 기단 차이로 인한 것이 다. 따라서 박공의 위치와 방향은 명정전의 보방향으로 진행하면서 나타난다. 꺾음부 가구는 5량과 5량이 직교하 였고 직교하는 방향으로 동시에 확장할 수 있다. 실제로 명정문의 도리방향으로 행각이 더 진행되고 있다.
그림 2. a 지점에서 가구의 진행 방향
도리의 높이는 기단의 경사 때문에 차이가 있다. 꺾음 부의 가구는 모두 5량이며 기둥 간격이 동일하다. 따라 서 도리의 높이차는 있으나 서로 직교하는 가구의 일부 가 되었다.
그림 3. 명정문의 도리방향 및 보방향 가구 (2) b 지점
b 지점은 b1과 b2, 두 번의 꺾음이 있다. b1 지점은 명 정전의 도리방향에서 맞배와 맞배가 직교하며, 명정전 행 각 뒤로는 숭문당이 있다. 3량과 3량의 동일한 규모의 가 구가 만나지만, 기단 차로 인해 명정전 보방향 행각에 작 은 박공이 형성되었다.
그림 4. b 지점의 지붕 교차 모습 및 현재
(左下: 조선총독부, 조선고적도보, 10권, 1930, 1451쪽)
b2 지점은 명정전의 도리방향 및 보방향 행각의 맞배 가구가 직교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b1과 다른 두 가지 차이가 있다. 보방향으로 진행하는 행각으로 대지 경사 가 있으며, 직교하는 가구의 규모가 3량과 5량으로 서로 다른 점이다. 명정전의 도리방향 행각이 3량, 보방향 행 각이 5량이며, 명정전의 보방향으로 행각을 증축할 수 있는 확장성이 있다.
그림 5. 명정전의 보방향(5량) 및 도리방향(3량) 가구 별도로 기둥 간격을 조정하지 않아서 꺾어지는 부분 의 외진주가 일치하지 않고, 그 높이차가 지붕까지 이어 져 3단의 층을 두고 서까래 면을 구성하였다.
그림 6. 꺾음부의 기둥 구성과 서까래 배열
또한, 꺾음부의 내부도 연목을 직교하여 구성하였다.
이는 꺾음부에서 가구를 완결하지 않고 각자의 방향대 로 진행할 수 있는 확장성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동궐도 와 동궐도형 을 보면, 명정전 동측 행각은 복랑이며 영청문을 사이에 두고 서측에 방, 마루 및 아 궁이가 있었다. 본 연구의 분석 지점인 b2 지점은 방이
있는 복랑이 계속되다가, 직교한 이후 단랑으로 이어진 다. 서로 다른 규모의 가구가 맞배로 직교하면서, 동시 에 같은 방향으로는 다른 규모의 건축이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즉, 다른 조건을 지닌 3종의 가구가 만나기 때 문에 지붕 자체의 높이차를 그대로 두고 직교하는 맞배 가구에 기왓골을 두면서 3개의 지붕이 독립적으로 만나 결합하고 있다. 이는 뚜렷한 방향성과 확장성을 가지면 서도 서로의 구조를 방해하지 않는 맞배 가구의 특징으 로 볼 수 있다.
그림 7. 행각의 진행 방향 및 동궐도 의 명정전 권역
(右: 문화부 문화재관리국, 동궐도, 1991, 101쪽)
(3) c 지점
c 지점 뒤에는 창경궁의 편전인 문정전이 있다. 따라서 명정전의 행각은 동시에 문정전의 행각이 된다. b 지점과 같이 3량과 5량 가구가 만나지만, 지붕의 형태는 다르다.
꺾음부의 용마루 높이가 같고, 처마 높이는 일치시키지 않은 채 지붕면의 크기를 달리하였다.
그림 8. c 지점 맞배지붕의 교차 모습
역시 맞배가 직교하고 있으며, 문정전 행각을 구성하는 3량 가구가 본채의 역할을 한다. 따라서 3량 가구는 확장 성을 갖고 있으나, 명정전의 도리방향으로 진행하는 5량 가구는 3량 가구와 만나면서 완결된다.
그림 9. 문정전의 도리방향 및 보방향 가구
2-2. 창덕궁 인정전 내행각
태종대에 박자청(朴子靑)에 의해 초축된 창덕궁 인정전 은 단종대에 이명민(李命敏)에 의해 법궁 수준으로 확대 되었다. 임란시 다른 궁궐과 함께 전소되고,
15)
이후 인조 반정(1623)과 순종대 화재(1803), 일제의 훼철로 소실과 복구를 반복하였다. 인조대의 공사는 광해군대에 지어진 인경궁을 철거하고 그 자재를 사용한 것이 많았다. 따라 서 임진왜란 이전의 건축 법식을 따랐던 광해군대 궁궐 건축의 기법이 창덕궁에 남겨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현재의 인정전 행각은 동궐도 를 기준으로 1990년대에 재현한 것이다. 당시 인정전 내행각 복구공사에 대한 자 문회의 기록을 보면, “행각의 회첨 부분은 궁궐건축의 전 통 구조상 추녀가 없이 연목을 서로 교차하는 구조이므로 추녀를 제외한다”, “행각이 직교하는 부분의 외부 지붕 구 조는 맞배로 처리토록 함”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16)
기록 화와 사진을 보아도 인정전 행각의 꺾음부 구성은 맞배가 직교하는 형태로 창경궁의 사례처럼 조선전기 법식을 준 수하였음을 알 수 있다.(1) a 지점
a 지점은 인정문의 도리방향과 보방향 가구가 만나는 지점으로, 5량과 3량인 서로 다른 규모의 가구가 결합하 고 있다. 평지에서 만나기 때문에 기단, 기둥 및 처마선 의 높이가 같다. 그러나 가구 규모의 차이로 인해 5량 가 구의 중도리와 종도리 높이만큼 용마루에서 높이차가 있 다. 이 경우, 추녀를 사용하지 않고 맞배가 직교하는 꺾 음부를 구성하였다. 꺾음부의 내부인 회첨부도 추녀 없이 연목이 직교하였고, 가구는 보방향과 도리방향의 가구가 서로의 일부가 되어 결합하고 있다.
그림 10. 회첨 및 인정전의 도리(3량)·보방향(5량) 가구
15) 창덕궁과 창경궁의 경우는 옛터에다 그대로 지었으므로 임무를 부 여받은 관원이 단지 역사만 감독하면 그만이었습니다. [광해군일기, 광해9년(1617) 5월 20일, 첫 번째 기사]
16) 문화재청, 창덕궁 인정전 행각 중건공사보고서, 1999, 39쪽
(2) b 지점
인정전의 뒤편에 위치하며, 인정전의 도리방향과 보뱡 향의 행각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인정전의 보방향 행각은 충분히 확장 가능하여 행각이 계속 진행될 수 있고, 도리 방향 행각은 보방향 행각의 일부가 되었다.
그림 11. 1900년대 및 현재의 창덕궁 행각
(左: 조선고적도보, 10권, 1412쪽)
b 지점은 인정전 도리방향 행각과 보방향 행각이 직교 하면서 대지 경사의 차이만큼 용마루의 차이가 있을 뿐, 맞배 가구의 직교 방식은 다른 부분과 차이가 없다. 다 만, 인정전 b 지점과 명정전 b2 지점은 법전 보방향의 확 장성과 대지 경사가 있는 조건은 같지만, 인정전은 꺾음 부의 모서리 기둥이 일치하여 창경궁의 b2처럼 각 방향 별로 기둥을 세우지 않았다. 대신, 직교부의 기왓골이 기 둥 위치에서 한 번 더 꺾여서 나타난다.
그림 12. 인정전 내행각의 b 지점 및 꺾음부 내부
2-3. 창덕궁 빈청
빈청은 삼정승과 정이품 이상의 고위 관직자가 모여 국사에 관한 중요 안건을 협의하는 장소이다. 창덕궁 빈 청의 내부는 일제강점기에 변형되었고, 1908년부터 2007 년까지 어차의 보관 장소로 사용되었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초익공 건축으로 장방형 평면이지만, 지붕 평면은 H자로 모두 맞배직교형 꺾음부를 보인다.
17)
5량가의 몸채가 3량가의 날개채보다 높아 몸채 양옆
17) 경복궁에도 빈청이 있었다. 창덕궁 빈청과 규모(궁궐지, “賓廳 十
間二間五梁以西又有八間二間五梁”)도 같지만, 창덕궁이 工자형 지붕인
데 반해, 경복궁 빈청은 전·후퇴가 없는 측면 2칸 구성으로 지붕의 형
태 또한 팔작지붕으로 추정한다. (문화재청, 경복궁 광화문 및 기타
권역 복원정비 계획보고서, 2002, 191∼193쪽)
으로 맞배지붕의 박공이 형성되었다. 동·서 날개채가 본 채의 일부로 부속되어 있으며, 협칸의 가운데부터 기왓 골이 형성되었다.
그림 13. 창덕궁 빈청
그림 14. 동궐도 (동아대본) 및 동궐도형 에 나타나는 빈청 창덕궁 빈청의 지붕 가구는 아산의 맹씨 행단과 매우 흡사하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살림집으로 알려진 맹씨 행단도 5량의 본채와 3량의 날개채가 직교하여 창덕궁 빈청과 같은 맞배직교형 꺾음부를 보인다.
18)
두 건축 모 두 H자형 지붕 구조에 맞배직교형의 꺾음 구조이며, 몸 채와 날개채 용마루에서 높이차로 인해 날개채의 용마루 중심선에서 기왓골이 형성되는 점이 동일하다.그림 15. 아산 맹씨 행단
18) 동아대본과 고려대본에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동궐도 에 나타나 는 빈청은 후면부가 보이고, 양성바름과 팔작지붕을 묘사한 것처럼 보 인다. 이는 본채와 서로 다른 높이차를 가진 빈청의 지붕을 꺾음지붕 처럼 묘사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는 현재 우진각인 돈화문과 홍화 문을 팔작으로 표현하는, 동궐도 가 회화로서 갖고 있는 묘사력의 한 계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동궐도 가 건축도로서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서궐도안 에 나타나는 경희궁의 빈청 또한 맞 배 단독 건물과 맞배직교형 건축으로 영역을 구성하였고, 창덕궁 빈청 지 발굴 조사를 통해 현재의 빈청이 신축되거나 이건된 것이 아님을 감안하여 현재의 모습을 원형에 가깝다고 판단하고 맞배직교형으로 분석하였다.
2-4. 기록화 및 계회도에 나타나는 꺾음부 사례 (1) 고열녀전 중 송공백희 및 채인지처
2015년에 국립한글박물관에서 공개한 고열녀전(古列女 傳) 언해본에는 본고에서 실물을 통하여 확인한 가구와 동일한 형태의 지붕을 볼 수 있다. 고열녀전은 중국 한 나라 때의 유향(劉向)이 편찬한 이래 중국에서 수차에 걸 쳐 개각되었다. 이 고열녀전은 적어도 고려 말에 국내에 유입된 것이 확인되며, 1404년 명나라 황제가 보낸 고금 열녀전(古今列女傳) 600여 부가 국내에 유입되었다. 그러 나 중국에서 출간된 열녀전은 현재 국내에 전하지 않고 중종38년(1543)경에 자체적으로 간행한 고열녀전 언해 본 중 제4권 정순전(貞順傳) 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중종 때 간행된 고열녀전은 중국본을 따르지 않고 다시 그렸다. 조선에서 새로 판각한 고열녀전은 당대의 인물화가로서 도화서에 소속되었던 이상좌가 다시 그린 것이다.
19)
따라서 고열녀전에 그려진 건축에는 조선전 기의 양식이 반영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중국에서 간행한 역대의 판본과 한국본을 비교해 보아도 알 수 있 다. 따라서 중종 때 이상좌의 그림을 저본으로 판각한 고 열녀전에 나타나는 건물은 조선전기의 실제 모습임을 추 론할 수 있다.20)
그림 16. 고열녀전 중 송공백희
(국립한글박물관, 2015년 소장자료총서 2: 여러 여성들의 이야기, 열녀전, 2015, 32쪽)
조선 간본 고열녀전의 현전하는 부분에는 9장의 도 판에 궁궐이나 살림집이 그려져 있다. 이 중 채인지처 (蔡人之妻) 와 송공백희(宋恭伯姬) 의 두 도판에서 본고
19) 어숙권, 稗官雜記, 4권; “嘉靖癸卯 中廟出劉向列女傳 令禮曹飜以 諺文 禮曹啓請申珽柳沆翻譯 柳耳孫寫字 舊本本顧愷之畫 而歲久刻訛 殊失筆格 令李上佐畧倣古圖而更畫之 旣成 誤依舊本書於每卷之首曰 漢 劉向編撰 晉顧愷之圖畫 正猶班固至今血食之文 使此書傳於後世 則孰知 其爲李上佐之畫乎”
20) 특히 중국판본의 건축은 누대만이 있을 뿐 본 연구에서 주목하는
맞배직교형 건물은 없다. 맞배가 직교하는 건축의 형태는 당시 조선본
을 제작하면서 실재하는 건축을 나타낸 것이라고 판단된다.
에서 다루는 맞배직교형 지붕이 확인된다.
송공백희 에서 나타나는 맞배직교형 건축은 맹씨 행 단 및 창덕궁 빈청과 동일한 사례이다. 가구의 규모나 대 지 경사로 인해 도리의 높이차가 발생하고, 용마루 높이 가 동일하지 않으며 몸채 건물의 박공이 보인다. 그림의 내용은 누각 건물에 집중되고 있으나, 본 연구에서 주목 한 건축도 단순한 부속채가 아니다. 건물의 용마루와 용 두 등의 기와 장식으로 보아 독립 기능을 가진 전각으로 볼 수 있다.
채인지처 는 맞배직교형 건 축이 그림의 중심을 차지하며 측 면에서 보이는 장면을 전달하고 있다. 그러나 묘사된 건축 형태 로 보아 본채가 더 높고, 높이차 만큼 본채 건물에서 박공이 나타 나고 있다. 궁궐의 행각과 같이 부속채이거나 완결된 건축이 아 닌, 단독채의 경우도 맞배가 직 교하는 형태가 적지 않았다고 추 정할 수 있다.
(2) 은대계회도(銀臺契會圖)
은대계회도 는 승정원 관리들의 모임을 그린 것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은대계회도 는 총 2점으로 1534년(농 암종택 소장)과 1560년(개인 소장)에 제작된 것이 있는 데, 그중 1560년 제작된 은대계회도 는 임진왜란 이전 의 창덕궁 상황을 보여준다.
21)
①, ④ ② ③
그림 18. 은대계회도 (1560, 개인 소장)와 맞배직교형 꺾음부 추정도
(上: 박효정, 16세기 《은대계회도》와 《만력임오합사계회 도》연구 , 명지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4, 78쪽)
21) 인정전뿐만 아니라 인정문도 중층이며, 인정전 외행각 양쪽 모서 리는 현재 창경궁에서 볼 수 있는 십자각루가 있다.
이 외에 창덕궁 인정전, 인정전 외행각, 중층의 인정문, 인정문 좌우의 십자각과 진선문 및 숙장문의 모습이 보 인다. 전체적으로 운무에 싸여 있어 인정전 내행각은 희 미하게 나타나지만, 외행각은 맞배로 연결되는 모습을 확 인할 수 있다. ①, ④ 부분은 본채 맞배지붕의 풍판이 보 이는 고열녀전의 사례와 같다.
(3) 만력임오합사계회도(萬曆壬午合司契會圖) 만력임오합사계회도 는 선조15년(1582)에 열린 사헌부 와 사간원의 합동계회를 기념하여 제작한 그림이다. 계회 의 장소는 창덕궁 숙장문과 연결된 인정전 외행각이다.
1560년 은대계회도 와 비교하면, 숙장문 부근에 있던 전각들이 사라졌으나, 이는 계회의 장면을 보이기 위해 다른 장치들을 제거한 것으로 보인다. 계회가 있는 숙장 문 행각의 맞은편 행각을 보면, 맞배가 직교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숙장문
그림 19. 만력임오합사계회도 에 보이는 맞배직교 부분
(박효정, 위의 논문, 81쪽)
3. 조선후기 꺾음부 사례
3-1. 경복궁 근정전 행각
조선의 법궁 경복궁은 임진왜란 때에 소실되고, 고종 2년(1865)~4년(1867)에 재건되었다. 현재의 모습은 일제 강점기에 훼철된 경복궁을 1990년대에 재건한 것이다. 그 러나 훼철되지 않고 남은 부분과 사진자료를 보면, 현재 의 경복궁은 19세기 궁궐건축 꺾음부의 새로운 법식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판단할 수 있다.
경복궁 근정전 행각은 창덕궁 및 창경궁과 달리 꺾음 부에 추녀를 설치하는 팔작 가구이다. 이것은 조선후기 의 어느 시점부터는 궁궐건축의 꺾음부가 맞배직교형에 서 팔작직교형으로 변하게 됨을 뜻한다. 조선고적도보
속의 경복궁은 외행각이 철거된 상태지만, 팔작지붕의 합각과 추녀로 인해 내행각의 지붕선이 올라간 것을 뚜 렷이 확인할 수 있다.
그림 17. 채인지처
(국립한글박물관, 앞의 책,
52쪽)
그림 20. 근정전 내행각과 북궐도형
(左: 조선고적도보, 10권, 1320쪽 / 右: 문화재청, 경복궁 복원기 본계획, 2009, 424쪽)
당시 경복궁을 그린 북궐도형 을 보면, 근정전 내행 각 꺾음부는 더 이상 확장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 근정 전과 흥례문 좌우로 이미 많은 궐내각사들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처음부터 경복궁에 필요한 모든 시 설에 대한 검토와 설계가 이루어진 후 경복궁이 지어졌 기 때문이다. 또한, 맞배 가구와 달리 팔작 가구가 갖고 있는 완결성을 보여준다.
(1) a 지점
a 지점은 근정전 보방향 행각과 근정문의 도리방향 행각이 팔작으로 직교한다. 경복궁 근정전의 내·외행각 은 근정전 도리방향으로 진행되는 장랑이 흥례문까지 연 결되고 있다. 따라서 팔작지붕의 합각면은 진행과 직교 하는 근정전의 도리방향에서 보인다.
그림 21. 경복궁 내·외행각의 진행 방향과 합각 위치 직교하는 양방향 가구는 모두 5량 구조의 복랑이다.
외부에 추녀를 걸기 위해 지붕의 도리와 처마선을 일치 시켰다. 그러나 내부는 조선전기 맞배직교의 기법대로 추녀를 두지 않고 연목이 교차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동일한 규모의 가구가 서로 대등한 구조 로 만나기 때문에 도리 및 보의 위치 차가 없으며 서로 다른 가구의 일부가 되었다.
그림 22. a 지점 내부와 회첨부 (上) / 지붕 가구의 직교 모습과 추녀 및 선자연 (下)
(2) b 지점
b 지점은 경복궁 내행각이 끝나는 부분으로, 위로는 편전 권역의 행각과 이어지고 있다. 내부는 추녀 없이 연 목이 교차하지만, 외부는 추녀가 있는 팔작 가구로 구성 하였다. 따라서 추녀를 걸기 위해 도리의 높이를 맞추었 고, 합각을 위한 헛집을 구성하기 위해 직교하는 용마루 의 끝점은 만나지 않는다.
근정전 뒤로 이어지는 사정전의 행각은 단랑으로 변하 기 때문에 복랑이었던 근정전 행각은 팔작으로 마무리하 였다. 즉, 같은 방향으로 행각이 이어지기 때문에 외부에 서 보면 별도의 건축으로 분리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러나 내부에서 보면 직교부의 기둥이 일치하지 않지만, 창경궁 b2의 경우처럼 보인다.
그림 23. b 지점 지붕골과 회첨 및 전각부
3-2. 창경궁 영춘헌과 집복헌
창경궁의 영춘헌과 집복헌이 언제 처음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궁궐지의 기록을 통해 현재의 모습은 순조34년(1834)에 건축된 것임을 알 수 있다.
22)
22) 궁궐지에 의하면, 영춘헌은 창경궁의 내전이며 집복헌은 영춘헌
의 행각이다. 장헌세자와 순조가 이곳에서 태어났다. 정조는 영춘헌을
집무실 겸 독서실로 사용하였고, 이곳에서 승하하였다. 순조30년 화재로
소실되자 순조는 동궁전 뒤편에 있던 장남궁을 헐어 그 부재를 사용하
였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동물원 관리소로 사용되었고, 1998년 현
재의 모습으로 복구하였다.
a
b
c d
e
그림 24. 집복헌, 영춘헌 전경 및 지붕 평면도
(문화재청, 창경궁 영춘헌 및 집복헌 수리공사 보고서, 2000, 5 · 166쪽)
지붕 평면도를 보면, 5군데의 꺾음부 모두 추녀를 설치 하였고 그중 꺾음부 e만 우진각지붕이다. 다만, a 꺾음부 는 3량과 반5량 가구가 만나 팔작지붕을 구성하였고, b 꺾음부는 3량과 5량 가구가 직교하여 합각을 구성하였다.
일반적으로 3량가의 경우 추녀를 설치하려면 꺾음부 e 와 같은 우진각지붕 구조가 용이하다. 그러나 a 꺾음부 는 우진각지붕이 아니라 합각이 있는 팔작지붕을 구성하 였다. 따라서 반5량가의 단면을 보면, 하부 서까래의 교 차 지점인 종도리 위에 덧도리를 올리고 그 위에 다시 덧서까래를 걸쳤다.
그림 25. a, b 지점의 가구 단면
(문화재청, 위의 책, 140쪽)
본래 영춘헌은 집복헌에서 독립된 맞배지붕 건물로, 정 면 3칸, 측면 1칸 반 정도의 건축이었다. 정조20년(1796) 혜경궁 홍씨의 생일 진찬을 영춘헌에서 진행하기로 하고 준비하던 중, 정리당상 이시수가 영춘헌이 좁고 비가 많 이 새니 개수하고 도배를 하자고 건의하자, 정조가 말하 기를 “이 건물이 옛날의 제도를 따라 처마를 달았기 때문 에 서까래의 경사가 평평하고 따라서 처마에 흐르는 빗물의 속도가 느리게 된다. 빗물이 새는 것은 형세상 어쩔 수 없다. 굳이 고칠 필요가 있겠는가”
23)
라고 하며 개수하 지 않았다. 당시의 모습을 동궐도 에서 확인할 수 있다.그림 26. 동궐도 의 영춘헌과 집복헌
(동궐도, 101쪽)
따라서 영춘헌은 맞배가구 건축을 고쳐 지으면서 덧 도리와 덧서까래를 사용하여 팔작직교형으로 변형된 모 습을 보여주는 사례이다.3량가의 맞배지붕을 팔작으로 고쳐 지으며 합각을 구 성하는 a-b 입면을 구성한 이유는 팔작지붕이 가진 입 면 효과 때문이다. a-b 입면은 편전인 양화당
24)
에서 보 이는 파사드이자 주 출입구가 있다. 따라서 외부에서 첫 번째로 가장 잘 보이는 건축면이므로, 입면상의 웅장함 과 의장성을 위해 합각을 구성한 것으로 보인다.3-3. 창덕궁 낙선재 행각
낙선재는 헌종13년(1847) 헌종이 선왕들의 업적을 본 받으며 왕의 자질을 키우기 위해 동궁전의 별당인 낙선 당 부근의 빈터에 지은 것이다.
25)
이듬해에는 경빈 김씨 를 위해 낙선재 동쪽으로 석복헌을 짓고, 그 옆에 순원 왕후를 위해 수강재를 지었다. 이후 실제로 윤황후와 덕 혜옹주 및 이방자 여사의 생활공간으로 사용되면서 내 부가 변용되었으나, 현재 건립 당시의 모습을 바탕으로 내행각까지만 재현한 상태이다.26)
낙선재의 내행각 꺾음부는 추녀가 있는 우진각지붕이 다. 3량 가구가 직교하여 합각은 형성되지 않았지만, 추 녀를 써서 처마를 형성했다는 점에서는 팔작직교형과 같
23) 정조실록, 정조20년 6월 16일, 첫 번째 기사
24) 양화당도 순조30년에 소실되어 영춘헌, 집복헌과 함께 지어졌다.
따라서 당시 양화당-영춘헌-집복헌 공간 간의 동선을 포함한 건축계 획을 충분히 염두에 둔 입면 구성임을 짐작할 수 있다.
25) 역사건축기술연구소, 우리 궁궐을 아는 사전 1: 창덕궁_후원_창 경궁, 돌베개, 2015, 154쪽
26) 동궐도형 을 보면, 석복헌과 수강재 남쪽으로 행각이 있고, 다시
낙선재, 석복헌, 수강재를 둘러싸는 외행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은 구조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행각의 전체적인 구조는 맞배 가구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즉, 직교하는 방향의 가구들이 서로 대등하게 만나고 있으며, 내부 쪽으로는 회첨 없이 연목이 교차하고 있다.
그림 27. 창덕궁 낙선재 내행각 꺾음부의 외부와 내부 19세기 전반기에 건축된 영춘헌과 낙선재, 두 건축의 사례는 추녀가 있는 행각을 배치하여 하나의 권역이 완 성되는 강한 영역성을 보이고 있다. 행각 밖과 엄연히 구 별되는 행각 내부의 고유한 공간의 성격을, 확장 가능한 맞배 가구가 아니라 추녀를 설치한 행각을 둘러서 공간 의 완결성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4. 맞배와 팔작 꺾음부 구성의 특징
4-1. 맞배 가구의 확장성
창경궁과 창덕궁의 꺾음부는 맞배와 맞배가 직교하는 가구이다. 이에 반해 경복궁은 팔작 가구의 결합을 보 이고 있다. 서울을 비롯한 도시형 건축은 평지에 입지 하여 대지의 경사도가 적고 주심도리의 위치 차도 거의 없다. 따라서 충분히 추녀를 걸 수 있는 구조임에도 불 구하고 맞배 가구를 기본으로 구성하였다. 맞배가 직교 하는 꺾음부는 익랑부가 몸채 가구의 일부가 된다. 이 는 더 이상의 가구 조립을 염두에 두지 않고 완결된 구 조를 보이는 팔작 가구와 달리, 건축의 확장 가능성을 열어두고 조성하였기 때문이다. 맞배 가구의 경우 직교 하는 양방향의 가구가 다른 보조 부재 없이 서로의 일 부가 되어 방향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얼 마든지 공간의 확장과 축소가 가능하다.
결국, 궁궐의 배치계획에서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는 행각 부분은 향후 변형의 가능성을 위해 맞배 가구로 구 성하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조선초기 창덕궁을 조성하 면서 특히 궁궐 정전의 행각은 누가 있는 창고, 아궁이
를 들인 방, 혼전의 부속시설 및 군사 숙위시설 등 다양 한 용도로 활용되었기 때문에 완결성을 지니기 어려운 건축이다.
완결성과 확장성에 따른 맞배와 팔작 가구의 구성은 순조대에 제작된 동궐도 상에도 나타난다. 궁궐 내 궐 내각사는 장소의 사용빈도 및 정치기구의 변화에 따라 변경이 잦은 곳이다. 동궐도에 보이는 창덕궁 정원과 내 반원의 경우, 조선후기 모습이지만 꺾음부를 맞배 가구 로 구성하였다. 용마루 높이를 일치시키지 않고 그대로 이어나가고 있다. 이것은 때에 따라 다양한 용도로 활용 가능한 행정 각소의 특성상, 확장과 축소에 용이하도록 공간의 융통성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림 28. 동궐도 중 창덕궁 정원 및 내반원의 꺾음부
(동궐도, 75쪽)
맞배지붕이 갖고 있는 확장성은 경복궁 집경당과 함 화당의 사례로도 확인할 수 있다.
조선고적도보에 나타나는 집경당의 익랑채는 맞배 로 마무리되고 있으나, 북궐도형 을 보면 같은 방향으 로 건축이 확장된 것을 볼 수 있다. 반대로 집경당 뒤로 보이는 함화당은 도면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더 이상 건 축이 진행되지 않으면서 팔작지붕으로 마무리되었다.
함화당 집경당
그림 29. 경복궁 집경당 및 함화당 비교
(上: 조선고적도보, 10권, 1392쪽 / 右下: 문화재청, 경복궁 광화문 및 기타권역 복원·정비계획 보고서, 2002, 445쪽)
맞배 가구의 확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기성입직사주 도(騎省入直賜酒圖) 가 있다. 이 그림은 1581년 왕이 내린 술을 기념하는 병조의 모임을 기념하여 흥례문 행랑에서
계회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광화문, 흥례문, 근정문, 근 정전이 일직선으로 보이고, 흥례문 행각에서 모임을 갖는 병조 관원들의 모습이 보인다. 행각의 우측에 비해 관원 들이 모여 있는 좌측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좌 측 행각은 맞배의 지붕 가구를 보이고 있다. 조선초기의 경복궁 궁장은 여러 번 변하였다. 태종 연간에는 공사 중 에도 담장을 행각으로 바꾸었다가 다시 담장으로 고치는 등 다양한 구조로 변용되었다. 그림에는 행각 일부가 운 무에 가려져 있지만, 광화문의 궁장 너머로 보이는 지붕 과 가구 구조로 볼 때, 흥례문과 연결되는 행각의 꺾음부 는 맞배가 직교하는 형태임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림 30. 임진왜란 이전의 흥례문 행각( 기성입직사주도 )과 현재의 흥례문 행각(고려대학교 소장 경복궁 배치도 중)
(左: 박효정, 앞의 논문, 77쪽 / 右: 경복궁 복원기본계획, 407쪽)
이러한 맞배직교형 가구가 언제까지 이어졌는지를 규 명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례가 필요하다. 그러나 적어 도 전후 복구 시기인 광해군대와 인조대까지는 조선전기 의 법식인 맞배직교형 꺾음부를 선호했음을 알 수 있다.
광해군의 궁궐 재건은 임란 이전의 고례를 회복하고자 하였고, 인조대 역시 그러하였다. 대표적으로 광해군12년 (1620)에 창건된 경희궁의 숭정전 행각의 꺾음부도 맞배 직교형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림 31. 서궐도안 중 경희궁 숭정전 행각
(서울역사박물관, 경희궁은 살아있다, 2015, 58∼60쪽)
4-2. 팔작 가구와 완결성
맞배와 맞배의 이음을 기본으로 하던 꺾음부는 조선 후기에 들어와 팔작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사실, 목조 건축의 꺾음부는 집중 강수량이 많은 우리나라 환경에 서는 매우 취약한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 인 수리를 감내하면서 추녀를 두는 팔작직교형 건축이 많아진다. 팔작이나 우진각지붕은 추녀를 거는 구조이기 때문에 도리 높이를 맞추어 설치하는 맞춤도리를 사용 하여 처마 끝선을 일치시켜야 한다. 겉에서 보면, 건물 전체가 하나의 매스로 보이기 때문에 지붕면이 커지면 서 거대하고 웅장한 느낌을 준다. 동시에 처마선이 가볍 게 올라가기 때문에 어두운 지붕면의 무거움을 상쇄하 면서 화려한 이미지를 줄 수 있다. 또한, 여러 방향에서 정면성을 갖게 된다. 꺾음부의 외부는 추녀와 선자연을 걸기 때문에 정면과 후면에만 지붕면을 형성하는 맞배 지붕과 달리 네 방향에서 모두 기와를 두어서, 정면과 후면만이 아니라 측면에도 지붕면을 형성할 수 있기 때 문에 더 많은 치장이 가능하다.
그림 32. 창경궁 영춘헌과 집복헌 외관 및 내부
창경궁 영춘헌과 집복헌의 외관은 추녀를 둔 팔작직 교형으로 외관의 처마선이 하나로 이어져 있다. 그러나 외부인에게 보이지 않는 건축 내부의 꺾음부는 추녀 없 이 마무리하였다.
27)
이는 팔작지붕을 선호하는 이유가 장중하고 가벼워 보이는 외양에 있음을 의미한다.4-3. 궁궐 내행각 꺾음부의 특징
창경궁, 창덕궁, 경복궁의 사례에서 보듯 조선시대 궁 궐 행각의 꺾음부는 맞배직교형에서 팔작직교형으로 변 하였다. 조선전기 건축 특징을 보이는 창경궁 및 창덕궁 의 경우 모두 추녀가 없는 맞배직교형 건축이다. 맞배지 붕의 특성상 전·후면에만 지붕면이 생기기 때문에 측면, 즉 도리방향으로 무한한 확장이 가능하다. 따라서 법전 을 위요하고 동시에 다른 전각과의 유기적 관계를 지녀 야 하는 행각 건축에 매우 적합한 구조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가구 구조가 단순하며, 서로 직교하는 가구가 독립
27) 이를 두고 우산각과 서산각이 혼재된 혼합형이라고도 하는데, 현
존 상태가 아니라 장소와 시간에 따른 흐름상에서 보면, 맞배 가구가
팔작 가구로 변화하는 현상과 도시형 및 지방형의 구분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더 많은 사례를 가지고 추후 논의하
여야 할 것이다.
적으로 만나기도 하고, 때로는 다른 가구의 일부가 되는 등 가구의 규모, 대지의 고저 차, 용마루 및 처마선 일 치 여부와 관계없이 어느 경우에도 가능한 구조이다.
반면 조선후기 건축인 경복궁의 경우, 주 전각에만 사 용하던 추녀를 행각과 같은 부속 건물의 꺾음부에도 사 용하였다. 이는 법전 건축만이 아니라 법전의 영역 전체 가 다른 권역과 엄격히 구분되는 차별성을 지니게 하였 다. 팔작 가구의 특성상 전·후·측면 모든 방향에서 지붕 면을 형성하고 추녀로 인한 지붕곡이 연출되기 때문에, 맞배직교형에 비해 훨씬 위엄을 보일 수 있다. 특히 단순 히 목재로 풍판을 두어 마무리하던 맞배 가구와는 달리, 합각부에 전돌·와편 등 다양한 치장을 베풀어 의장성이 뛰어나다. 그러나 추녀와 선자연을 필요로 하는 가구의 특성상 맞배 가구와 같은 증축의 가능성은 차단된다. 따 라서 경복궁의 행각은 그 자체로 완결성을 지니며, 이는 사전에 완벽한 기획과 설계가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창 경 궁 창 덕 궁 경 복 궁
a b1 b2 c a b a b
시 기 17C 17C 17C 17C 17C 17C 19C 19C
지붕형 맞배직교형
(추녀 없음)
팔작직교형(추녀 사용)
대지 경사 × × ○ ○ × ○ × ×
도리 차 × ○ ○ ○ ○ ○ × ×
처마선 ≠ ≠ ≠ ≠ = ≠ = =
용마루 ≠ ≠ ≠ = ≠ ≠ = =
도리 수 = ≠ = ≠ = ≠ = =
확장성 ○ ○ ○ ○ ○ ○ × ×
완결성 × × × × × × ○ ○
사 진
표 2. 창경궁·창덕궁·경복궁의 내행각 꺾음부 지붕 비교
5. 맺음말
본 연구는 창경궁, 창덕궁과 경복궁 법전 내행각을 통 해 조선시대 꺾음부의 변화와 특징을 규명한 것이다. 이 상의 고찰을 통하여 본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추녀가 없는 맞배직교형 가구는 지붕면이 없는 측면으로 확장·축소·꺾음에 용이하다. 지붕 중간부터 기 왓골이 생기며 서울의 주택, 아산 맹씨 행단, 빈청과 같 이 H자, ㄷ자, ㅁ자 등 다양한 꺾음부를 만들었다.
둘째, 추녀를 사용하여 꺾음부를 구성하는 가구의 경우, 팔작지붕의 합각면이 형성되어 더 이상 가구의 확장이 불 가능하다. 그러나 건물 네 면에서 모두 지붕면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에 맞배직교형에 비해 의장성이 뛰어나다.
셋째, 본 연구에서 고찰한 궁궐의 꺾음부를 통해 조선 전기의 맞배직교형 가구는 늦어도 19세기에 이르면 추녀 를 사용하는 팔작 가구로 변화하였다. 조선초기부터 양 난 이후 복구 시기까지 행각과 같은 부속 건축만이 아니 라 단일 건물의 꺾음부에도 맞배직교형 가구를 채택하였 다. 그러나 19세기에 이르면 추녀를 사용하는 꺾음부가 부속 건축에까지 일반화되면서 완결성을 지니게 되었다.
이는 각각의 건물군이 고유의 성격을 지니도록 건축계획 이 이루어짐을 뜻한다. 19세기 전반기에 궁궐 내에 지어 진 영춘헌과 집복헌 및 낙선재 행각은 맞배직교형 가구 가 팔작직교형으로 변화한 사례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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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류성룡, 조선전기(15∼16세기) 주택건축의 특징과 변화 양상 연구 -엇도리 맞배지붕에서 맞춤도리 팔작지붕으로- , 대한건축학회논문집(계획계), 28권, 10호, 20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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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 명지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4
5. 이종서, 홍성 “노은리 고택”의 건축 시기와 가구의 원형 고찰 , 건축역사연구, 25권, 1호, 2016.2.
6. 한진욱, 조선시대 주택의 꺾음부 지붕구성에 관한 연구 , 강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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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2011
10. 문화재청, 경복궁 광화문 및 기타권역 복원정비 계획 보고서, 2002
11.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창경궁 중건보고서, 1989 12. 국립한글박물관, 2015년 소장자료총서 2: 여러 여성들의
이야기, 열녀전, 2015
접수(2016. 10. 11) 수정(1차: 2016. 11. 17) 게재확정(2016. 11.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