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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udy on the Type and Spread of Framed Structure of Gable Roof Meeting at Right Angle in the early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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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1598-1142 (Print) / ISSN 2383-9066 (Online) https://doi.org/10.7738/JAH.2018.27.2.039

1. 서 론

상부 가구가 연결된 ‘口’자 평면의 주택은 현재 경상 북도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그동안 ‘口’자형 주택에 대 한 연구는 주로 가구(架構)보다는 평면 형태에 초점을 두고 진행되었다. 최근 가구에 대한 분석도 이루어지고 있지만, 공간의 크기와 기능, 지붕모양 등 형태에 집중 되는 경향은 여전히 강하다. 주택 건축의 결구부는 궁

* Corresponding Author : [email protected]

이 논문은 2018년 울산대학교 연구비에 의하여 연구되었음.

궐 및 사찰의 전각 건축에 비해 잘 조명되지 못하였다.

‘뜰집’으로 불리는 경상북도 지역의 ‘口’자형 주택들 은 지붕 모양에 따라 서산각과 우산각으로 구분된다.

서산각과 우산각의 차이는 직교부 외부에 추녀를 사용 했는지, 직교부 내부에 회첨이 형성되는지 여부에 근 거하고 있다. 그러나 현존 주택들을 분석하면 서산각 이나 우산각으로 포괄하기 힘든 사례들이 다수 확인된 다. 꺾임부의 지붕 모습을 결정하는 상부가구는 ‘맞배 직교형’과 ‘팔작직교형’으로 유형을 나누는 것이 더욱 정확하다.1) 따라서 지붕 모양을 결정짓는 데 가장 중

1) 김버들·이종서,「조선시기 궁궐건축 꺾음부의 구조와 그 변화 –

조선전기 맞배직교형 건축의 유형과 전파

A Study on the Type and Spread of Framed Structure of Gable Roof Meeting at Right Angle in the early Joseon Dynasty

김 버 들 Kim, Bue-Dyel

(서울시립대학교 학예연구사, 공학박사) 이 종 서*1)

Lee, Jong-Seo

(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

Abstract

This study investigates the types and spread of framed structures of gable roofs meeting at right angle showed in old architecture and documentary paintings of houses, which were well liked in the early Joseon Dynasty. The conclusions of this study were as follows. First, the framed structure of gable roof meeting at right angle can be divided or recognized in 4 types according to their structure’s size and purlin’s position. Three of those types were noted to be in Seoul. Second, the framed structure of gable roofs meeting at right angle begun from the awareness of their independence from one another. Each space was divided based on their functions. Therefore, it could be extended in various forms, not only in the square plan physique but also in many different forms. And allowed free plan configuration regardless of column layouts or size of structure.

Third, 5 purlins and 3 purlins crossing structure were preferred in Han-yang, the early Joseon Dynasty. It is related to the specific construction conditions of urban houses, such as the slope of land, limited land area, and economic power. Fourth, urban housing techniques were diffused throughout the country by officials who lived in Kae-gyeong and Han-yang at the end of Goryeo and early Joseon Dynasty. In other regions, framed structure of gable roof meeting at right angle households decreased, but in some regions of Gyeongsang-province, framed structure of gable roof meeting at right angle has maintained with Staggered purlin.

주제어 : 맞배직교, 맞춤도리, 엇도리

Keywords : Framed Structures of Gable Roofs Meeting at Right Angle, Crossed Purlin, Staggered Purlin

(2)

요한 요소인 상부 가구를 고찰하여 특징과 유형을 분 류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또한 맞배직교형 가구의 ‘口’자형 주택이 경상북도 지역에 밀집되어 있는 것에 근거하여 이러한 유형의 주택을 경상북도의 지역적 특색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조선 전기 이래의 건축을 살피면 맞배직교형 꺾음부는 ‘서산각’ 이외에도 다양한 양식으로 나타날뿐 더러, ‘서산각’을 포함한 맞배직교형 가구의 분포는 특 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에 본 연구는 조선전기 한양을 비롯한 중부 지역 주택 건축에서 유행했다고 생각되는 맞배직교형 건축 을 기록화 및 실제사례에 근거하여 가구의 유형과 구 조적 특징을 고찰하고자 한다. 나아가 맞배직교형 건 축의 전국적 분포 현황을 확인하고 이에 기반하여 이 유형의 건축이 전파된 과정을 추론해 보겠다.

2. 맞배직교형 건축의 유형

2-1. 기존 연구

맞배직교형 건축에 대한 연구는 다음과 같다. 조성 기·김화봉은 ‘뜰집’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뜰집을 한국의 대표적인 반가 주택이자 조선시대 유교문화의 산물로 보았다.2) 그리고 지붕모양에 따라 서산각, 우 산각 및 혼합형으로 나누었다. 서산각은 고주가 있고, 추녀가 없이 맞배지붕과 맞배지붕이 직교하는 건축으 로 본고에서 ‘맞배직교’로 분류하는 건축 유형에 포함 된다. 이 연구는 현지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학문적 언 어로 개념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구조 적인 접근이 아니라 ㅁ자형 평면으로 사방이 막혀 있 는 형태에 주목하면서 시작되었으므로, ‘뜰집’은 지역 적 특색을 설명하는 용어로 제한되었다.

김정현·전봉희의 연구는 ‘한국에는 왜 꺾음집이 많 은가’라는 의문에서 시작하였다.3) 꺾음부의 가구가 일 체화되는 경우와 분리되는 경우로 나누고, 전자는 추 녀가 있으며 후자는 추녀가 없다고 설명하였다. 후자 가 본고에서 ‘맞배직교’로 분류한 유형에 해당한다. 이

맞배직교형에서 팔작직교형으로」, 건축역사연구 25권 6호, 2016.12;

김버들·이종서,「조선전기 당(堂)·실(室) 결합 건축의 가구특성 분석 –방형 평면의 맞배직교형 지붕 가구를 중심으로-」건축역사연구 26권 2호, 2017.4

2) 김화봉, 「조선시대 안동문화권의 ‘뜰집’에 관한 연구」, 부산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99; 조성기 등 6인,『한국의 뜰집』, 기문당, 2013

3) 김정현·전봉희,「조선시대 주택 꺾음부의 유형에 관한 연구」,대 한건축학회논문집(계획계), 25권, 6호, 2009.6.

연구에서는 추녀뿐 아니라, 박공의 유무에 따라 4가지 로 나누어 구조를 분류하였다.

한진우는 선행연구 분석을 통해 꺾음부와 꺾음부 부 재의 용어를 정리하였다. 꺾음부가 발생하는 부분을 정침과 익사 구조로 나누고 처마선의 연결여부와 각 방향의 가구가 분리되는지 여부에 근거하여 유형을 분 류하였다.4)

이들 연구는 주택의 평면에 집중되었던 초기 연구에 서 벗어나 구조적 차이를 살핌으로서 한국건축의 가구 법식과 기법을 다양하게 살피는 연구를 촉진하는 계기 가 되었다. 그리고 평면과 가구의 관계에 있어서 꺾음 부 상부는 기둥의 배치에 종속되지 않으며, 상부 가구 만으로 독립적 유형설정이 유효함을 확인하였다. 그러 나 시대성에 대한 고찰을 결여하여, 각 유형이 유행한 시기의 선후 관계를 밝히는 데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지역적인 면에서도 경상북도의 안동문화권에 집중된 유형으로 설정하고 분석하는 한계도 있었다.

박진기·조재모는 기존에 서산각과 우산각으로 분류 하던 유형을 ‘꺾음형맞배’와 ‘꺾음형팔작’으로 나누고 안동문화권내에서만 설명되던 꺾음부 연구를 전 지역 으로 확대하였다.5) 이 연구는 처마선의 일치여부와 서 로 다른 방향으로 가구가 만나면서 형성되는 합각면에 중점을 두어 맞배 구조보다는 팔작 구조를 주로 고찰 하였다. 그러나 위에 언급된 연구들과 마찬가지로 시 대적 차이에 대한 분석이 미흡하다.

가구 유형의 시대성에 대한 연구는 류성룡에서 시작 되었다. 류성룡은 추녀의 유무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 로 보고, 그에 따른 도리사용 방식에 따라 ‘엇도리 맞 배지붕’과 ‘맞춤도리 팔작지붕’으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전자를 조선전기, 후자를 조선후기로 나누어 설명함으 로서 구조의 분류를 시대적 차이에 대한 판단으로 연 결하였다.6)

이처럼 꺾음부가 있는 주택에 대한 기존 연구는 추녀 의 유무, 처마선 연결여부, 도리의 연결방법 및 박공의

4) 한진우, 「조선시대 주택의 꺾음부 지붕구성에 관한 연구」, 강원 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6

5) 박진기·조재모, 「꺾음형 팔작지붕의 합각의장과 조정양상」, 대한 건축학회논문집(계획계), 32권, 9호, 2009.9

6) 이후 본 연구에서 사용하는 “맞춤도리” 및 “엇도리” 용어에 대한 정의는 류성룡의 견해를 따른 것임을 밝혀둔다 (류성룡, 「조선전기 (15∼16세기) 주택건축의 특징과 변화 양상 연구: 엇도리 맞배지붕 에서 맞춤도리 팔작지붕으로」, 대한건축학회논문집(계획계), 28권, 10호, 2012.10, 193쪽) 이 외에 꺾음부 팔작, 꺾음부 맞배 등의 용어 는 한진우, 앞의 책, 2016과 박진기·조재모, 「조선후기 경북부지방

‘ㅁ’자형 꺾음부 온돌방 확장과 단면계획 양상」, 대한건축학회논문 집, 2017.5의 견해를 참고하였다.

(3)

유무 등을 가지고 유형을 분류하는 기준으로 삼았다.

그런데 최근 연구에서는 맞배직교형 가구가 방형 평 면에서도 적용된 사례들을 분석하여, 이러한 가구는 내부 각 영역의 성격별 분리에 대한 조선전기의 이해 를 반영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7) 또한 회화자료와 실물 등 다양한 사례들을 살펴보면, 꺾음부 주심도리 의 수평에 근거하여 맞배와 팔작을 구분하는 것은 사 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후술하겠지만, 맞배직교형 가구 는 꺾음부 주심도리의 수평차와 관계없이 구조될 수 있다. 수평차의 유무는 대지 조건과 건물 구조, 경제력 등을 고려한 건축주의 선택에 달려있었다고 보인다.

연 구 자 기 준 분 류 기 준

조성기, 김화봉 형태

서산각 우산각 혼합형

김정현, 전봉희 추녀

박공

한진우 처마선 연결 분리

가구 연결 분리

류성룡 추녀

도리 맞춤도리 엇도리

박진기, 조재모 추녀

처마선 일치 불일치 일치 불일치 표 1. 기존 연구에서 보이는 꺾음부 구조 분류기준

이에 본 연구는 우선 맞배직교형 가구를 분류하여 세부 각 유형의 건축적 특징을 살펴보겠다. 이어 그림 과 현존 건축을 종합하여 지역적 분포를 확인하고 이 에 근거하여 맞배직교형 주택의 전파 과정을 추론하고 자 한다. 궁극적으로는 경상북도 지역의 특색으로 거 론되었던 맞배직교형 건축의 모든 유형이 조선전기 이 전부터 서울 지역에 존재하였고, 이것이 지방 상류층 의 가옥으로 확산되었음을 밝히고자 한다.

2-2. 맞배직교형 가구의 유형 분류

본고에서는 우선, 직교하는 주심도리의 수평차 유무 를 맞배직교형 가구의 유형을 분류하는 근거로 설정하 였다.8) 주심도리의 수평차가 없는 ‘맞춤도리’ 방식이면 처마선이 연결되어 결과적으로 직교하는 부분에 회첨 부가 형성된다. 반면에 수평차가 있는 ‘엇도리’ 방식이

7) 김버들·이종서, 앞의 책, 2017.4, 40~41쪽

8) ‘엇도리’라는 용어는 김화봉·조성기,「안동문화권 `뜰집` 의 구조 적 특성에 관한 연구」, 대한건축학회논문집(계획계), 14권, 11호, 1998, 191쪽에서 처음 사용되었다.(류성룡, 앞의 책, 2012.10, 193쪽) 류성룡은 이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맞춤도리라는 용어를 사용하였고 본 연구에서도 적합하다고 보았다. 단, 류성룡은 맞춤도리와 엇도리 의 구분 기준을 주심도리뿐만 아니라, 중도리, 종도리 등 다른 도리 에도 적용했지만, 본 연구에서는 주심도리에 국한한다.

면 처마선이 층단을 이루어 단절되며, 직교하는 부분 에 회첨이 형성되지 않는다. 따라서 직교부 주심도리 의 수평차 유무는 회첨의 형성 여부를 결정한다.

다음으로 직교하는 지붕 가구의 규모를 유형 분류의 근거로 설정하였다. 맞배직교형 건축은 분리된 두 채 이상의 맞배 건물이 직교하는 방식으로 구조된다. 각 채는 용도와 위상에 따라 규모가 달라진다. 주택에서 중심을 이루는 몸채는 많은 경우 5량으로 구조된다.

반면에 몸채의 좌우에서 직교하는 동·서 익랑, 동·서 익랑과 연결되는 행랑은 3량으로 구조된다. 5량과 3량 의 차이는 개방성과 공공성이 강한 청·당(廳堂) 영역 과 폐쇄성과 사적인 주거공간의 성격이 강한 방·실(房 室) 영역의 구분과도 연결된다.

이렇듯 맞배직교형 건축의 유형은 주심도리의 수평 차 유무와 직교하는 지붕 가구의 규모에 의해 결정된 다. 본고에서는 맞배직교형 건축에서 이 두 요소가 함 께 작용한 결과로서 총 4가지의 유형을 도출하였다.

아래에서는 각 유형의 구조와 특징에 대해 자세히 분 석하겠다.9)

(1) 맞춤도리식 5량(이상)×3량 가구

첫째 유형은 직교하는 부분의 주심도리가 같은 수평 에 놓이되 직교하는 건물의 규모가 다른 경우이다. 이러 한 구조는 방형 평면에서도 채택될 수 있다. 5량 이상으 로 구조된 중앙의 청·당과 3량으로 구조된 좌우의 방·실 이 전체적으로 단일한 방형 평면을 구성하되, 청·당과 방·실이 각기 독립된 지붕을 갖고 직교하는 구조이다.

그림 1. 맞춤도리식 5량×3량 가구도와 숭교당 정면도 (출처: 김버들·이종서, 앞의 책, 2017, 36쪽 그림10 재인용)

위에 제시된 가구도와 사진에서 보듯 이 유형에서는 방·실(房·室)부 종도리가 청·당(廳·堂)부 중도리와 같은 수평에 놓이게 된다. 그 결과 두 채가 직교하는 부분, 방·실부 종도리와 청·당부 지붕의 중도리가 만나는 부 분부터 회첨이 형성된다. 그 결과 건물의 좌·우측에는

9) 이와 같은 분류가 맞배직교형 건축을 모두 포괄하는 것은 아니 다. 안동 호계서원의 숭교당처럼 7량×3량인 경우도 있으며, 경주 양 동마을 관가정의 청·당부와 방·실부처럼 가구로는 3량×3량이되 칸 살이 달라 실제로는 5량×3량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그 러나 구조적 분류의 보편성과 편의성을 고려하여 이와 같이 4가지 의 세부 유형을 도출하였다.

(4)

청·당부 건물의 박공 중 종도리와 중도리로 구성되는 3량 부분이 당·실부의 종도리 위에 노출되어 합각을 형성한다. 이렇듯 전체적으로 방형 평면을 지니면서 5 량 이상의 청·당부와 3량의 방·실부가 직교하는 사례 로는 서울 창덕궁의 빈청 건물과 안동 호계서원의 숭 교당이 확인된다.

이처럼 전체적으로 방형 평면을 이루는 맞춤도리식 맞배직교형 구조에서 당·실부를 외부로 연장하면 좌·

우에 익랑이 형성되어 ‘ㄷ’자 형 건축이 된다. 이는 평 지에 적합한 구조로 판단할 수 있다. 기단 차를 두지 않아 청·당부와 익랑부 주초가 같은 수평에 놓이면, 청·당부와 익랑부의 기둥 길이가 같게 된다. 그 결과 생활하기에 적합한 실내 높이를 확보하면서 외관이 전 체적으로 통일감을 이루게 된다.

이 구조는 익랑을 중층으로 구축하기에도 용이하다.

각 부분 기단의 수평을 달리하거나 경사진 대지에 건 축하면 익랑부의 기둥이 청·당부의 평주보다 길어진 다. 그 결과 방형 평면을 이루는 청·당부와 당·실부는 단층으로, 돌출된 익랑부는 중층으로 구조할 수 있다.

이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사례로는 홍성의 노은리 고택 을 들 수 있다.

그림 2. 홍성 노은리 고택 원형 추정도

(출처: 이종서「홍성 “노은리 고택”의 건축 시기와 가구(架構)의 원형 고찰」건축역사연구, 25권 1호, 2016, 41쪽)

(2) 맞춤도리식 3량×3량 가구

둘째 유형은 3량과 3량처럼 같은 가구규모의 건물이 직교하면서, 직교하는 도리의 수평도 같은 경우이다.

그림 3. 맞춤도리식 3량×3량 가구도 및 임청각 안채 익랑

<그림 3>에 제시된 가구도와 사진에서 보듯 이와

같은 구조에서는 직교하는 건물의 규모가 같고 도리가 같은 수평에 놓인다. 그 결과 직교부의 용마루에서부 터 회첨이 형성된다. 외부에는 합각이 형성되지 않고, 각 건물의 측면 지붕이나 정면의 박공이 노출된다. 이 유형 역시 방형 평면에서도 실현할 수 있으나 현존하 는 사례는 확인되지 않는다. 주택에서는 대부분 익랑 과 행랑이 직교하는 구조에서 채택하였다.

이 구조는 행랑을 익랑과 동일한 높이로 구조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닌다. 청·당부와 익랑부에 기단차를 두 어 익랑을 중층으로 지은 경우, 행랑 기둥의 길이도 익랑과 같아 역시 중층으로 지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한정된 대지에서 건축 면적을 늘리는 동시에 웅장한 외관을 갖출 수 있다. 대지가 협소하고 비싼 도시에 적합한 유형이라고 볼 수 있다.10)

의도하는 방향으로 증축이 용이한 것도 이 구조의 장점이다. 5량×3량 구조에서는 5량 건물 좌우에 3량 건물이 직교하여 좌우에 합각이 형성되는 ‘工’자형 구 조가 정형을 이룬다. 이 경우 익랑부를 연장하는 증축 만 가능하다. 반면에 3량×3량 구조에서는 박공의 배치 를 쉽게 조절할 수 있어 ‘十’자 방향의 증축이 모두 가 능하다. ‘ㄷ’, ‘口’, ‘ㅂ’, ‘田’, ‘H’ 형 등 다양한 평면이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 구조는 사찰이나 궁 궐의 회랑에도 적합한 유형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3) 엇도리식 5량×3량 가구

셋째 유형은 직교하는 도리의 수평이 다르고 직교하 는 건물의 규모도 5량과 3량으로 다른 경우이다. 이 유형은 방형 평면에서는 확인되지 않고, 경상북도 지 역의 양반 주택에 집중되어 있다.

그림 4. 엇도리식 5량×3량 가구도 및 쌍벽당 안채 정면·배면 (출처: 문화재청,『한국전통가옥기록화보고서』, 2014, 12·13쪽)

<그림 4>에 제시된 가구도와 사진에서 보듯 이 유 형에서는 방·실 및 익랑부의 종도리가 청·당부의 주심

10) 기존 연구에서는 기록과 실물, 회화를 통해 조선전기에 중층 주 거 건축이 유행했으며 익랑과 행랑을 중층으로 구조한 경우도 많았 음을 확인하였다. 온돌의 미보급을 중층 주거 건축이 유행한 이유로 파악하였다.(이종서,「朝鮮前期의 住居用 層樓 建築 傳統」, 역사민 속학 22, 2006.6; 이종서,「고려~조선전기 상류 주택의 防寒설비와 炊事 도구」,역사민속학, 24호, 2007)

(5)

도리와 같은 수평에 놓인다. 그 결과 두 건물이 직교 하는 부분에 회첨이 형성되지 않는다. 3량 건물의 지 붕 절반이 5량 건물의 처마 아래로 들어가, 외면에서 보면 흡사 5량 건물의 좌우에 가적지붕을 설치한 것과 같은 모습이 된다. 그리고 5량 건물의 박공 전체가 3 량 건물 용마루 위로 노출되어 맞춤도리 방식에 비해 큰 합각부가 형성된다.

이러한 유형은 회첨이 형성되지 않아 누수를 방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경사가 급한 대지에 적합 한 구조라고 판단할 수 있다. 급한 경사면에 상·하단 의 기단을 조성하고 건물을 짓되, 엇도리 방식을 택함 으로써 당·청부와 익랑부의 기둥 길이가 비슷해지는 것이다. 다만, 상단에서 청·당부와 직교하는 방·실부의 높이가 맞춤도리 방식에 비해 낮아지는 단점이 있다.

(4) 엇도리식 3량×3량 가구

넷째 유형은 3량과 3량 규모의 건물이 직교하면서, 직교하는 도리의 수평이 다른 경우이다.

<그림 5>에 제시된 가구도와 사진에서 보듯 이와 같은 구조에서도 회첨이 형성되지 않는다. 도리의 수 평이 높은 3량 건물의 지붕 밑으로 도리의 수평이 낮 은 3량 건물의 지붕 절반이 들어가므로, 외면에서 보 면 가적지붕과 구분되지 않는다.

그림 5. 엇도리식 3량×3량 가구도 및 서백당

(출처: 문화재연구소,『양동 서백당 기록화보고서』, 2008, 11쪽 재편집)

이러한 구조 역시 경사가 급한 대지에 적합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경상북도 지역의 맞배직교 구조의

‘口’자형 가옥에서는 익랑과 행랑이 직교하는 건축에 대부분 이 유형을 적용하였다. 청·당부와 익랑부에도 이 유형이 적용된 사례가 많다. 경사면에 조성한 3단 의 기단에 맞배 구조의 행랑부, 익랑부, 청·당부를 엇 도리 방식으로 직교시켜 건물의 처마가 중첩되지 않는

‘口’자형 구조를 형성하였다.

2-3. 각 유형의 종합적 적용

이제까지 맞배직교형 구조의 세부 유형을 네 가지로 분류해 보았다. 이 중에서 엇도리 방식의 5량×3량 및 3량×3량 구조가 현재 가장 익숙하다. 경상도 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하는 맞배직교형 가옥은 대부분 이 구 조로 지어졌으며 그 결과 나타나는 지붕 형태에 근거 하여 ‘서산각’이라는 구분이 성립하였다.

그러나 경상도 지역에서도 맞춤도리식 5량×3량 및 3량×3량 구조가 일부 확인될 뿐만 아니라, 경상도 이 외의 지역에서는 맞춤도리식 구조가 더욱 흔하게 발견 된다. 또한 맞춤도리식과 엇도리식 중에서 하나를 택 하지 않고, 편의에 따라 적용한 경우도 다수 확인된다.

안동 임청각 살림채의 중심 영역에서 청·당부와 익랑 부는 엇도리 방식으로, 익랑부와 행랑부는 맞춤도리 방식으로 결구되었다.11)

청·당부+익랑의 엇도리 연결 익랑+행랑의 맞춤도리 연결 그림 6. 임청각 살림채 도리 연결모습

창경궁의 행각에도 엇도리 방식과 맞춤도리 방식이 함께 적용되었다.

그림 7. 창경궁 명정전 내행각 맞배직교부

(출처: 문화재관리국,『동궐도』, 1991, 101쪽 재편집; 김버들·

이종서, 앞의 책, 2016.12, 63쪽)

11) 임청각 청당부는 전면에 퇴칸이 있는 비대칭의 반칠량가이다.

퇴보의 수평에 기준하면 청당부와 익랑부의 직교부 가구는 맞춤도 리 방식으로 분류할 수 있다. 반면에 퇴칸을 후대에 증축된 것으로 보면 엇도리 방식으로 분류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퇴칸을 후대에 증축한 것으로 보아 엇도리 방식으로 판단하였다.

(6)

<그림 7>에서 보듯 ①은 3량과 3량의 동일한 가구 가 맞춤도리로 직교하면서 처마선이 연결되어 있다. 용 마루도 거의 같은 높이에서 만나고 있다. 5량과 3량이 직교하는 ②에서도 맞춤도리 방식을 택하였다. 반면에 3량과 3량이 직교하는 ③에서는 기단차가 없는데도 엇 도리 방식을 택하였다. 이는 명정문 행각의 용마루 수 평을 행각 중심에 있는 명정문의 처마 하부에 맞추기 위한 선택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맞배직교형 건축의 하위 유형으로 분류한 4 가지 구조는 단일 건축에서도 현실적인 필요에 따라 다양한 조합을 이루어 적용되었다. 맞배직교형 건축은 경상북도 지역에만 특화된 건축이 아니며, 특히 경상 북도 양반가옥의 전형적인 지붕구조로 간주되는 엇도 리 방식의 결구와 그로 인해 도출되는 지붕구조인 ‘서 산각’도 창경궁 행각에 적용되었다.

창경궁은 임진왜란 직후 조선 전기의 법식으로 건축 한 궁궐이라는 점에서 맞배직교형은 조선전기에 유행 한 건축이었을 가능성을 상정할 수 있다. 또한 현재는 경상북도 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하지만, 조선전기에 는 더욱 광범하게 분포했을 가능성이 크다. 다음 장에 서는 경상도 이외의 지역에서 맞배직교형 건축 사례들 을 살펴보겠다.

3. 맞배직교형 건축의 지역별 분포

3-1. 서울 및 경기도

서울과 경기도 지역에 현존하는 맞배직교형 건축으 로는 앞 장에서 살핀 창경궁 행각과 더불어 창덕궁의 빈청을 들 수 있다. 특히 창덕궁의 빈청은 방형평면이 면서 5량 가구의 청·당부와 3량 가구의 방·실부가 같 은 높이에서 직교하여 조선 전기 맞배직교형 건축에 적용된 공간 인식을 잘 보여준다.12)

그런데 개성 출신 4인의 장원급제를 기념하는 모임 을 그린 1612년(광해군 4)의 계회도에서도 창덕궁 빈청 과 같은 구조의 건물이 확인된다. 위의「송도용두회도 (松都龍頭會圖)」에서 보듯 계회의 장소인 태평관이 방 형 평면의 맞배직교형 건축이다. 그림에서는 청·당과 직교하는 방·실 부분을 팔작지붕처럼 처리하여 전면에 합각이 나타나지만, 방형 평면에서 이와 같은 지붕을 구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부분은 눈썹지붕을 설치 했거나, 팔작지붕에 익숙한 화원이 사실과 다르게 그린

12) 창덕궁 및 창경궁 건축에 나타나는 조선전기 건축 형식에 대해 서는 김버들·이종서, 앞의 책, 2017.4 참고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13)

그러므로 창덕 궁 빈청과「송도용 두회도」는 조선전 기에 서울과 경기 지역에 맞배직교형 건축이 지어졌음을 알려준다. 나아가 청·당과 방·실을 각기 독립된 공간 으로 인식하여 방 형 평면에서도 상 부구조를 달리 하 였던 조선전기의 공간 인식을 알려준다.

따라서 주택도 맞배직교형 구조가 많았을 것으로 짐 작되나 현재 서울 지역에는 조선전기는 물론 18세기까 지 연대가 올라가는 주택들도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그림에서 맞배직교형으로 건축된 주택이 확인된다.

『이경석사궤장연회도첩(李景奭賜几杖宴會圖畵帖)』

은 1669년(현종10)에 74세의 이경석이 현종에게 궤장 을 하사받은 것을 기념하며 제작한 시화첩이다. 그림 에서 이경석의 집은 맞배직교형 건축으로 두 채가 직 교하고 전면 지붕 용마루 위로 직교하는 건물의 합각 이 노출되었다. 3량×5량 구조이면 맞춤도리 방식이 될 것이고, 3량×3량 구조이면 엇도리식 방식이 될 것이다.

그림 9. 이경석사궤장연회도첩(보물 930호, 경기도박물관 소장)

13) 이와 같은 경우는 동궐도에서도 확인된다. 돈화문은 현재 우진각 지붕이나 동궐도에는 팔작지붕으로 처리되었다. 빈청 또한 방·실부의 전면을 팔작지붕처럼 그렸으나 현재의 빈청은 맞배의 박공이다.

그림 8. 송도용두회도 태평관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

(7)

3-2. 충청도

맞배직교형 건축은 충청남도 지역에서도 확인된다. 아 산시의 맹씨행단은 현재 평면이 방형이 아니라 방·실부 가 전후로 반 칸 씩 돌출된 H자 모양이다. 그러나 초창 시에는 방형 평면이었을 것으로 짐작되며14) 지붕은 방형 평면의 맞배직교형 건축에서 도출되는 구조이다. 직교부 의 가구 구성은 5량×3량의 구조가 맞춤도리로 결구되어 있다. 맹씨행단은 14세기에 건축되어 현존하는 주택 중 에 가장 오래된 주택 건축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그림 10. 아산 맹씨행단 전경 및 와복도

충청남도 홍성의 노은리 고택도 맞춤도리 방식의 맞 배직교형 주택 건축이다. 노은리 고택은 건축양식과 가구수법에 비추어 조선전기 건축으로 판단되며, 성삼 문(1418~1456)과의 관련성을 고려하면 건축 하한을 15세기 중반까지 올려볼 수 있다.15)

노은리 고택은 ‘口’자 형 평면으로, 청·당부를 높은 기단 위에 배치하고, 전체를 맞춤도리 방식으로 지어 익랑과 행랑이 모두 중층이다. 평면은 경북 지역에 밀 집한 ‘口’자형 주택과 일치하되, 직교부의 도리를 같은 수평에 두어 가구법은 서울의 빈청이나 아산의 맹씨행 단과 일치한다. 따라서 노은리 고택은 방형 평면의 맞 배직교형 건축이 확장된 형태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림 11. 홍성 노은리 고택 안채 단면 및 직교부

(출처: 문화재청,『’98년도문화재수리보고서(상) , 2001, 1103쪽;

문화재관리국,『중요민속자료지정조사보고서 ,1996, 39쪽; 문화 재청『가옥과 민속마을3 , 2010, 316쪽)

3-3. 전라도

맞배직교형 건축은 전라 남·북도 지역에서도 찾을 수 있다. 전라북도에는 현존하는 건축은 없으나 전주

14) 김버들·이종서, 앞의 책, 2017.4, 38쪽

15) 노은리 고택의 연혁과 건축구조에 대한 부분은 이종서, 앞의 책, 2016.2를 참고하였다.

감영의 행사를 그린「희경루방회도(喜慶樓榜會圖)」에 서는 맞춤도리 방식으로 추정되는 5량(이상)×3량의 맞 배직교형 건축이 확인된다.16) 실 사례로는 우선 전라 북도 남원의 금남재를 들 수 있다. 금남재는 오응17) (吳凝, 1422~1470)이 처음 지었다고 알려져 있다. 초 창시기와 이후의 변화에 대해서는 향후 심도 있는 고 찰이 필요하지만, 현재의 구조는 엇도리 방식의 맞배 직교형이다. 지붕에 회첨이 없는 서산각 지붕 형식 및 몸채와 익랑부의 ‘ㄷ’자형 평면과 입면은 경상도 지역 에 집중된 주택의 특징과 완전히 일치한다.

그림 12. 남원 금남재 안채 전경(출처: 문화재청 사이트, 항공사진) 전라남도 지역에는 몇 채의 맞배직교형 건축이 현존 한다. 특히 제주 양씨의 집성촌인 화순군 달아실[月谷]

마을에 맞배직교형 주택이 집중되어 있다. 양참사댁 (양동호 가옥), 학재고택(양승수 가옥), 양회두 가옥이 이에 해당한다.

그림 13. 양동호 및 양승수 가옥 전경 (출처: 문화재청,『한 국의 전통가옥 기록화보고서 37』, 2011, 15쪽 재편집)

양동호 및 양승수 가옥은 창덕궁 빈청 및 아산 맹씨 행단과 같은 형식의 방향성과 확장성을 지닌 맞배가구 가 직교하고 있다.18) 다만 방·실부가 전후로 확장되어

‘工’자 평면을 이루었다. 이들 주택에서 특징적인 것은

16)「희경루방회도」의 그림에 나타나는 맞배직교형 건축에 관한 내용은 김버들·이종서, 앞의 책, 2016.12 및 김버들·이종서, 앞의 책, 2017.4 참고하였다.

17) 조부 오상덕(吳尙德)은 황희의 자형(姊兄)이며, 고려 말 충신으 로 이성계에 반대하여 두문동에 은둔하였다. 오응은 조부 오상덕의 묘소가 남원에 있어서 이곳에서 말년을 보냈다.

18) 이들 가옥의 청·당부와 방·실부는 모두 3량이다. 그러나 청·당부 의 측면 칸살이 방·실부에 비해 넓어 실제로는 5량을 구조할 수 있다.

(8)

청·당부와 방·실부의 기둥이 독립되어 청·당부와 방·실 부의 칸 배치가 상호 제약 없이 결정되었다는 점이다.

팔작직교형 건축에서는 상부 가구가 단일한 체계를 이루며 결구되므로, 청·당부와 방·실부의 칸 배치는 상 호 연동된다. 반면에 맞배직교형 건축은 청·당부와 방·

실부의 상부 가구가 상호 독립되므로 각 부분의 칸 배 치를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아래 그림에서 보듯 양참사댁(양동호 가옥)에서는 청·당부와 방·실부의 기 둥을 별도로 배치하여 두 공간을 구분하는 의식을 명 확히 표현하였다.

그림 14. 양참사댁 횡단면도와 기둥 배치

(도면출처: 문화재청, 앞의 책, 2011, 395쪽 재편집)

이들 주택은 그간 학계의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평 면과 입면 구조의 특징과 건축사적 의미에 대한 별도 의 심도 있는 분석이 필요하다.

그림 15. 고산 윤선도 고택모형 안채와 직교부

맞배직교형 건축은 전라남도의 남단인 해남군에서도 확인된다. 윤선도(1587~1671)가 거주한 녹우당(綠雨 堂)은 전체 평면이 ‘口’자를 이루어 경상도 지역에 집 중된 양반주택과 평면이 같다. 현 주인인 윤형식 씨의 구술에 따르면 사랑채 부분은 효종이 사부였던 윤선도 에게 하사한 수원집을 옮겨온 것이고, ‘ㄷ’자형의 안채 부분은 임진왜란 이전의 건축이다. <그림 15>에서 안 채 부분이 맞배직교형 건축임이 확인된다.

윤두서(恭齋 尹斗緖, 1668∼1715)의 고택으로 알려진

공재 윤두서고택도 맞배직교형으로 건축되었다. 공재 고택은 안채의 상량묵서와 막새 명문을 통해 건립 시 기가 1730년으로 확인된다. 현존하는 공재고택은 ‘ㄷ’

자 형으로 녹우당 안채의 판박이라고 할 만큼 공간 구 획과 구조가 유사하다.19) 공재고택이 녹우당 안채를 모방했다는 점에서도 녹우당 안채는 17세기 이전의 건 축임이 확인된다.

그림 16. 윤두서 고택 정면과 배면(출처: 문화재청,『한국의 전통가옥 기록화보고서 19』, 2007, 3쪽·5쪽 재편집)

3-4. 강원도

맞배직교형 주택은 강원도 영동 지역에도 건축되었 다. 강릉 오죽헌은 1536(중종31)년에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6~1584년)가 태어난 곳이다. 오죽헌의 살림 채는 1976년의 정화사업으로 안채가 철거되어 본래의 모습을 대부분 잃었다. 1996년 안채를 다시 복원했지 만 본래의 구조와 전혀 다르게 건축되었다. 현재는 안 채와 사랑채가 별동으로 구분되어 있다.

그림 17. 안채복원 사업 후 전경과 1997년 안채 복원 배치도 (출처: 문화재관리국,『1996년 문화재수리보고서』, 1997, 224쪽)

그러나 1910〜30년대에 촬영한 사진에는 팔작지붕 의 사랑채가 익랑과 행랑을 통하여 안채와 연결되어 있다. 여기서도 맞배직교형 건축이 나타난다. 익랑과 행랑이 직교하는 부분의 사진을 보면, 안동 서백당처 럼 엇도리 방식의 맞배직교 구조였음이 확인된다.

또한 안채와 익랑채는 몸채의 합각마루와 익랑의 용 마루가 같은 선상에 위치하고, 합각의 규모가 커 보이 는 것으로 미루어 5량과 3량의 가구가 엇도리로 연결 되는 맞배직교형일 가능성이 크다.

19) 전봉희,「해남 윤씨가의 주택 경영에 관한 연구」, 대한건축학 회논문집, 12권, 11호, 1996, 104쪽; 문화재청,『가옥과 민속마을3』, 2010, 146쪽

(9)

그림 18. 익랑과 행랑 엇도리 맞배직교 모습(출처:강릉디지 탈문화대전: http://gangneung.grandculture.net)

그림 19. 오죽헌의 사랑채와 안채 전경_붉은 점선부분은 사 라진 익랑채(출처:近藤 豊,『韓國建築史圖錄』, 東京: 思文 閣, 1974, 306쪽)

4. 맞배직교형 건축의 전파 경로

4-1. 조선전기 중부지역의 맞배직교형 건축 유행 이제까지 맞배직교형 건축을 도리 연결방식에 따라 맞춤도리와 엇도리, 가구 규모에 따라 5량(이상)×3량 과 3량×3량의 두 요소를 결합하여 4가지 유형으로 분 류하고, 이에 근거하여 경상북도 이외의 지역에 존재 했거나 현존하는 맞배직교형 건축을 살펴보았다.

이 중에는 경상북도 지역에 밀집해 있는 ‘口’자형 평면 의 건축도 있지만, 방형 평면이나 ‘H’자형 평면을 한 경우 도 다수 확인하였다. 특히 방형 평면의 맞배직교형 건축 을 보면, 용도별로 구획된 공간은 독자적인 상부가구를 지닌다는 건축 인식이 맞배직교형 구조가 채택된 근본 요 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20) 확인되는 사례에 근거하면, 맞 배직교형 건축은 청·당부와 방·실부가 결합된 방형구조에 서 출발하였으며 익랑과 행랑의 확장에 따라 다양한 평면 이 도출되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경상북도 지역에 밀집 된 서산각 지붕의 ‘口’자형 주택들도 여기에 포함된다.

조선시대에 맞배직교형 건축은 경상도 이외의 지역

20) 김버들·이종서, 앞의 책, 2017.4

에도 광범하게 분포했거니와 특히 서울 창경궁의 행각 에서 엇도리와 맞춤도리의 맞배직교형이 모두 확인된 다는 점에 주목할 수 있다. 단일 건축에 복수의 유형 이 나타나는 것은 조선전기 서울 지역에서 4가지 유형 이 모두 유행하면서 대지의 조건과 건축주의 의도에 따라 적절하게 선택되고 조합되었음을 알려준다.

또한 건축연대가 가장 오래된 맞배직교형 건축이 중 부 지역에 있는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는 맞배 직교형 건축이 경상북도 지역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서울을 중심으로 한 중부지역에서 발생하여 남부지역 으로 확산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본래 방형 평면이었다고 짐작되는 충청도 아산의 맹 씨행단은 14세기에 건축되었다. 충청도 홍성의 노은리 고택도 건축 하한이 15세기 중엽까지 올라간다. 한양 이나 개경의 태평관도 임진왜란 후에 재건한 것이 아 니라면 조선전기의 건축이다. 나아가 궁중화가 이상좌 의 그림을 저본으로 삼아 1543(중종 38)년에 판각한

『고열녀전(古列女傳)』에는 세 채의 맞배직교형 건축 이 확인된다. 한 채는 궁궐 내부의 전각을 그린 것이 고, 두 채는 민가를 그린 것이다. 중국의 고사에 기반 하되, 조선 유형의 건물을 그린『고열녀전』의 사례 21) 당시 한양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에게 맞배직교형 이 매우 익숙한 건축 유형이었으며, 궁궐과 민가를 가 리지 않고 광범하게 채택되었음을 알려준다.

송공백희(宋恭伯姬) 소남신녀(召南申女) 채인지처(蔡人之妻) 그림 20. 고열녀전 중 맞배직교형 건축(출처: 김버들·이종 서, 앞의 책, 2017.4, 40쪽 그림18 재인용)

그런데 창덕궁의 빈청과 충남의 맹씨행단 및 노은리 고택은 맞춤도리 방식으로 결구되었다.『고열녀전』에 보이는 3채의 맞배직교형 건물도 측면에서 드러나는

21) 한글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고열녀전에 실린 그림을 보면 중 국본의 고개지(顧愷之)의 그림이 아니다.(국립한글박물관, 2015년 소장자료총서 2: 여러 여성들의 이야기, 열녀전 , 2015, 10~17쪽) 중국판본의 경우 건축은 누대의 형식으로 나타나며, 본 연구에서 주 목하는 맞배직교형 건축은 없다. 따라서 맞배가 직교하는 건축의 형 태는 당시 조선본을 제작하면서 실재하는 건축을 나타낸 것이다.(김 버들·이종서, 앞의 책, 2016.12, 66쪽)

(10)

합각의 크기로 미루어 맞춤도리 방식으로 보인다. 조 선전기에 서울을 비롯한 중부 지역에서 맞배직교형 건 축이 맞춤도리 방식보다 우세했다고 볼 수 있다.

방형 평면에 맞춤도리 방식을 채택하면, 방·실부의 높이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하단에 구획된 대지로 건물을 확장하면 익랑부의 기둥이 길어져 중층을 구획 할 수 있다. 맞춤도리 방식으로 행랑과 익랑을 결구하 면 익랑과 행랑 전체를 중층으로 지을 수 있다. 이러 한 구조는 노은리 고택에서 전형적으로 확인되거니와 조선 전기의 주택에 대한 기록에서도 확인된다.

1488년 봄에 사신으로 온 명의 동월(董越)은 높은 터에 지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직각으로 꺾어 실내 로 들어가는’ 주택에 대해 기록하였다. 이 주택에는

‘무서(廡序)’ 즉 익랑이 있었다.22) 또한 1830년대에 유 본예(柳本藝)는 한양 차동(車洞)에 있던 40칸 규모의 조선전기 주택에 대해 마루방이 많고 ‘굉걸’한 것을 특 징으로 기록하였다.23) 조선전기의 실록 기록과 개인 일기에서도 ‘낭루(廊樓)’가 확인된다.24) 이들 기록에서 묘사된 주택의 특징은 익랑과 행랑 전체가 중층으로 구조된 홍성 노은리 고택에서 확인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조선전기에 한양의 궁궐과 관청, 민가에는 맞춤도리 구조의 맞배직교형 건축이 유행했고, 일반 상류주택은 익랑과 행랑이 중층으로 구조된 ‘口’자형을 포함하여 다양한 형태의 맞배직교형 건축이 유행했다 고 추정할 수 있다. 대지의 조건이나 건축주의 의도, 경제력 등으로 인해 4가지 세부 유형이 다양하게 채택 될 수 있었지만, 중심부의 건축은 맞춤도리 방식의 맞 배직교형 구조가 가장 선호되었다고 볼 수 있다. 조선 전기 ‘사랑(斜廊)’의 자의(字意)와 이 공간이 행랑에 배 치되었음을 고려하면,25) 청·당부와 익랑부는 맞춤도리 방식으로, 익랑부와 행랑부는 엇도리 방식으로 결구한

22) 堂寢皆一間,廡序乃反三間…(중략) 其門雖皆南向, 然不自中開,

皆就東廡之棟南向以開,以基多高,故須梯升. 其面I東西者亦然.(동월,

『조선부』, 윤호진 옮김, 까치, 1995, 43~44쪽)

23)『漢京識略』권2 附 洞名「車洞」“而內屋四十間, 甚宏傑. 古之屋 制, 皆房少而廳多,”

24) 이종서, 앞의 책, 2006.6, 140쪽

25) 사랑이란 건물측면의 가로로 난 회랑이다. 동쪽 나라 사람들이 오역[옛날 풍속에 안채는 광대하였지만, 바깥채는 왜소하여 복도나 회랑과 다름이 없었기 때문에 중국의 사랑이란 명칭을 멋대로 갖다 썼지만, 지금 풍속은 바깥채가 더 광대하니 사랑이란 명칭은 더더욱 합당치 않다.]해서 지금 바깥채에서 업무를 보는 방을 사랑이라 부 르고……(丁若鏞,『與猶堂全書』권3, 「아언각비(雅言覺非)」斜廊者 堂側之橫廡也 東人誤譯 今以外舍聽事之室 謂之斜廊 古俗內舍宏大 外舍低小 無異廊廡 故冒中國斜廊之名 今俗外舍益宏大 斜廊之名 尤 不合矣)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4-2. 경기지역 맞배직교형 건축의 남부지역 전파 실물이나 회화자료에서 조선 전기 맞배직교형 건축 의 지역적 분포를 살피면〈그림 21〉에서 보듯 전국적 으로 분포하고 있다. 그런데 남부지역에 분포하는 맞 배직교형 건축이 남부지역 민가의 기본형과 일치하지 않는 점에 주목할 수 있다.

그림 21. 조선전기 맞배직교형 건축 분포

일반적으로 경기도를 중심으로 한 중부지역에서 “꺾 음집”이 기본형이라면, 남부지역은 ‘一’자형 이거나 분 산형 ‘튼口’자의 형태로 설명한다.26) 최근 서울의 청진 동과 공평동 발굴에서 확인된 조선전기 주택도 대부분

‘ㄱ·ㄷ·ㅁ’ 평면의 “꺾음집”으로 확인되었다.27) 그렇다 면, 남부지역의 상류주택에서 주로 발견되는 “꺾음집”

은 조선전기 이래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유행한 중부 형 주택이 전파된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나아가 경상북도 지역을 포함하여 현존하는 조선 전 기의 맞배직교형 주택은 대부분 한양에서 활동한 인물 과 관련이 있다. 이 역시 남부지역의 상류주택에서 나타 나는 맞배직교형 건축이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중부지 역의 가구 수법이 전파된 결과일 가능성을 시사한다.28)

26) 강영환,『새로 쓴 한국 주거문화의 역사 , 기문당, 2002, 256-264쪽;

주남철,『개정판 한국건축사 , 고려대학교출판부, 2006, 409-411쪽 27) 한울문화재연구원, 『종로 청진12~16지구 유적 발굴조사보고 서』Ⅰ·Ⅱ·Ⅲ·Ⅳ, 2013; 한울문화재연구원, 『서울 공평구역 제1⋅2

⋅4지구 유적 발굴조사보고서』Ⅰ·Ⅱ·Ⅲ , 2017

28) 서울의 도시계획은 개경의 도시계획을 기반으로 하였다.(이기봉,

『조선의 도시, 권위와 상징의 공간』,새문사, 2008, 93쪽) 그리고

‘안동문화권’ 형성의 배경을 고려 말 안동권씨의 집단 이전과 관계 된 것으로 설명하는 연구도 있다.(김화봉, 「안동문화권 안동 권씨 뜰집의 변천과정:安東權氏 僕射公派를 중심으로」, 건축역사연구, 25권, 2호, 2016.4, 45~46쪽)

(11)

충청남도 아산의 맹씨 행단은 고려 말에 개경에서 활동한 최영과 조선 초기에 한양에서 활동한 맹사성과 관련이 있는 주택이다. 홍성의 노은리 고택 역시 한양 에서 관직생활을 한 성승(?~1456)과 성삼문(1418~

1456) 부자의 주택일 가능성이 높다. 전라남도 화순 달아실 마을의 주택들도 기묘사화 이후 양팽손(1480~

1545)이 조광조의 귀양살이를 도우려 낙향한 데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진다. 해남 녹우당의 주인인 윤선도 (1587~1671)는 서울에서 생장(生長)하였고, 그의 생부 와 양부 모두 한양에서 관직생활을 하였다.

맞배직교형 주택의 주인이 서울에서 낙향한 인물인 경우는 경상북도에서도 확인된다. 경주 양동마을의 서 백당은 한양에서 관직생활을 한 손소(孫昭)가 1454년 에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향단은 이언적(1491 ∼1553) 이 경상감사로 재직할 때 지었다고 전해진다. 안동의 임청각은 조선전기 한양의 벌열이었던 고성이씨 가문 의 이명(李洺)이 낙향하여 1519년부터 지은 것이다.29) 임진왜란 이후의 건축이지만 상주의 양진당은 한양에 서 성장하고, 관직 생활을 한 조정(趙靖, 1555∼1636) 이 1626년(인조 4)에 지었다.

그림 22. 상주 양진당 전경과 익랑+행랑의 엇도리 방식 결 구 및 몸채+동익랑의 맞춤도리 방식 결구(출처: 문화재청,

『상주 양진당 정밀실측조사보고서』, 2011, 7쪽 재편집) 이렇듯 서울과 충청남도, 전라남도 지역의 맞배직교 형 주택들은 대부분 한양에서 활동한 인물들과 관련되 어 있다. 경상북도 지역 조선전기 맞배직교형 주택들 의 건축주도 이와 동일하다. 그리고 경상북도 지역의 조선전기 주택들에서는 조선후기에 집중적으로 건축된 엇도리 방식이 아니라, 맞춤도리 방식으로 건축된 사

29) 이종서,「안동 “임청각(臨淸閣)”의 건축 이력과 원형 가구(架構) 추정 : 사랑채와 안채를 중심으로」, 건축역사연구, 25권, 2호, 2016.4, 32쪽

례들이 확인된다.

아래 <그림 23>에서 보듯 향단은 전체가 맞춤도리 방식으로 구조되었다. 임청각은 익랑부와 행랑부가 맞 춤도리 방식으로 결구되어 행랑과 익랑이 모두 중층으 로 구조되었다. 양진당은 높은 기단 위에 자리한 몸채 와 하단의 익랑이 맞춤도리 방식으로 결구되어 익랑이 중층으로 구조되었다. 양진당의 입면 구조로 인한 진 입 방식은 명의 사신 동월이 언급한 서울 주택의 특징 과도 유사하다. 최근 복원한 행랑은 익랑과 엇도리 방 식으로 결구되어 단층이다.

그림 23. 향단 정면 및 배면 전경(출처: 문화재청,『향단 실 측조사보고서』1999, 11〜12쪽)

이처럼 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 경상북도 지역의 주 택에서 조선전기에 한양에서 유행한 맞춤도리 방식의 맞배직교형 건축이 흔하게 확인되는 것은 이 지역의

‘口’자형 주택 역시 한양의 주택을 모방한 데에서 비롯 되었음을 알려준다.

전국적으로 고르게 분포하고 있는 맞배직교형 건축 은 한양에서 낙향한 인물들이 한양의 도시형 주택을 모방하였을 가능성을 높여준다. 이후 다른 지역에서는 맞배직교형이 쇠퇴했지만, 경상북도 지역에서는 지속적 으로 유행하되 직교부의 결구가 엇도리 방식으로 통일 되어 ‘서산각’ 구조가 보편화 되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5. 결론

기존 연구에서는 엇도리 방식의 맞배직교형 건축을 경상북도 지역 ‘口’자형 주택의 전형적인 구조로 이해 하였다. 나아가 이 유형을 경상북도 지역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본고에서는 경상북도 이 외 지역의 사례들을 집중적으로 분석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첫째, 맞배직교형 건축은 직교하는 가구의 규모와 주 심도리의 위치 차 여부에 따라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5량(이상)×3량의 맞춤도리 구조, 3×3량의 맞춤 도리 구조, 5량×3량의 엇도리 구조, 3×3량의 엇도리 구 조이다. 서울에서는 5량×3량의 엇도리 구조를 제외한 세 유형이 확인된다. 대지의 가파른 정도, 중층 구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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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택 여부, 경제력의 강약 등이 작용하여 적합한 유형 이 채택되었으며, 한 건축에 복수의 유형이 채택될 수 도 있었다.

둘째, 맞배직교형 가구는 용도별로 분할된 공간의 독 립성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 결과 방형 평 면에서 시작하여 다양한 형태로 확장될 수 있었다. 심 지어 청·당부와 방·실부 기둥의 연계가 필수적이지 않 아 기능에 충실한 칸의 배치가 가능하였다. 가구의 규 모, 도리의 형식에 구애되지 않고 자유롭게 잇고 꺾으 며 확장할 수 있는 구조이다. 그 결과 평면과 입면 계 획에 있어 다양하고 자유로운 배치가 가능했다.

셋째, 조선전기에 한양에서는 세부 유형 중 맞춤도리 방식이 선호된 듯하다. 특히, 방형 평면의 5량×3량 구 조는 맞춤도리 방식으로 결구된 듯하다. 기단의 수평을 달리하면서 전체를 맞춤도리 방식으로 구조하여 익랑 과 행랑이 중층인 ‘口’자형 주택도 건축되었다.

넷째, 고려 말 개경, 조선전기 한양에서 활동했던 인 물들이 낙향하여 도시 주택의 가구 기법을 채택한 결 과 맞배직교형 주택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이후 다른 지역에서는 맞배직교 가구가 쇠퇴했으나, 경상북도에서 는 맞배직교형을 유지하되, 가구기법이 엇도리 방식으 로 수렴하여 현재와 같이 ‘서산각’ 지붕의 ‘口’자 평면 주택이 경상북도에 집중된 분포를 보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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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수(2018. 2. 6) 수정(1차: 2018. 3. 27) 게재확정(2018. 4. 9)

수치

그림 18. 익랑과 행랑 엇도리 맞배직교 모습(출처:강릉디지 탈문화대전: http://gangneung.grandculture.net) 그림 19. 오죽헌의 사랑채와 안채 전경_붉은 점선부분은 사 라진 익랑채(출처:近藤 豊,『韓國建築史圖錄』, 東京: 思文 閣, 1974, 306쪽) 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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