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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udy on the Structure of Combined Architecture of Dang and Sil in the Early Joseon Dynasty -Focusing on the Rectangular Plan and the Gable Roof Meeting at Right An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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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ISSN 1598-1142 (Print) / ISSN 2383-9066 (Online) https://doi.org/10.7738/JAH.2017.26.2.031

1. 서 론

1-1. 기존 연구 및 연구 배경

한옥은 장방형 평면을 기본으로 인식하고 건축 구조 와 가구를 해석한다. 특히 3 × 3칸의 평면은 5량 가구를 구성하는 데 유리한 일반적인 사례로 본다. 따라서 한 옥의 평면은 칸 체계가 반복되는 메커니즘으로 설명되 거나, 일정한 모듈을 가지고 변화해온 과정을 살피기도 한다.

1)

이러한 관점은 한옥 평면의 기본 단위인 ‘칸’의

* Corresponding Author : [email protected] 이 논문은 2017년도 울산대학교 연구비로 지원되었음.

확장과 축소에 따른 격자형 기본 틀을 가지고 설명함으 로써 어느 정도 한옥의 양식화(樣式化)와 가사제한

2)

같은 제도적 시스템을 설명하는 데 유리한 면이 있다.

그러나 칸은 2차원적으로 기둥과 기둥, 기둥과 보의 체 계로 설명하기 때문에 입체적인 공간의 의미와 기능을 파악하는 데에 소홀한 점이 있다.

칸을 기본으로 하는 격자형 기본 틀은 좌우대칭과 중 심성이 드러나는 정방형 장방형의 건축 설명에 유리하

1) 전봉희·이강민, 3칸 × 3칸: 한국 건축의 유형학적 접근, 서울대학 교출판부, 2006

2) 삼국사기의 옥사조, 최승로의 시무 22조, 조선시대 가사제한령 등 에서 가장 먼저 제한하는 요소가 칸이다.

조선전기 당(堂)·실(室) 결합 건축의 가구특성 분석

-방형 평면의 맞배직교형 지붕 가구를 중심으로-

A Study on the Structure of Combined Architecture of Dang and Sil in the Early Joseon Dynasty

-Focusing on the

Rectangular Plan

and the

Gable Roof Meeting at Right Angle

-

김 버 들 Kim, Bue-Dyel

(서울시립대학교 박물관 학예연구사, 공학박사) 이 종 서*

1)

Lee, Jong-Seo

(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

Abstract

This study investigates how the spatial recognition structure is emerging through the case of rectangular plan combined with a combination of Dang-Sil(堂室) and Gong(工) shape roof, and identifies a type of architecture in the early Joseon Dynasty that has never been revealed. The conclusion of this study is as follows. First, the Dang and the Sil are connected to each other, but the architectural elements such as pillars, frame, and windows are distinguished and appear as separate buildings. Second, the distinction between Dang and Sil is evident by the difference in the number of ridges and the shape of the roof. In addition, the roof and roof framework of the independent rooms and the rooms were common in the right angled architecture where the direction and the expandability of each structure were maintained. Third, the construction of the Dang-Sil combined structure, in which two or more structure frameworks were combined with the rectangular combined flat roof structure, gradually changed into a single structure with a single ridge. Fourth, this change means that people of the early Joseon Dynasty recognized the Dang and Sil as separate architecture, but the strict sense of spatial separation has disappeared over time.

주제어 : 당(堂), 실(室), 맞배직교형 가구, 장방형 평면

Keywords : Dang, Sil, Framed structure of gable roof meeting at right angle, Rectangular plan

(2)

다. 그러나 이러한 방형 건축은 대부분 사방이 개방되어 있는 구조로 궁궐의 주요 전각 및 사찰의 금당 등 권위 건축에 유리한 평면이다. 일반적인 살림집이나 특수한 목적을 지닌 건축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칸 체계와 함께 한옥의 평면은 기능별로 각 동을 구 성하는 채 분리에 입각하여 실에서 시작하였고,

3)

각각의 칸은 별도로 출발한 온돌과 마루라는 이질적인 재료가 결합하여 만들어졌다는 견해가 있다.

4)

여기에 부엌이 더 해져 현재와 같이 변화하였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5)

이러 한 연구는 양옥과 대비되는 한옥의 고유한 특성을 설명 하고, 반복되는 모듈을 찾아냄으로써 근대건축과 같은 기획과 규칙을 규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들은 고찰 대상의 시기와 용도가 너무 포괄적이어서 각각의 건물이 갖고 있는 변화 과정과 그 원인을 규명하 는 데 어려움이 있다. 또한 칸으로 구분하는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면, 장방형이 아닌 건축 평면의 경우 비정형 이거나 특이한 사례로 분류하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평 면과 지붕 가구의 관계를 소홀히 취급하여 지붕은 가구 식 구조의 체계로, 평면은 칸 체계를 가지고 설명하기 때문에 구조와 공간 체계를 종합적으로 고찰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그런데 지극히 반듯한 평면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 른 지붕 가구가 교차하여 ‘口’자, ‘工’자 혹은 ‘丁’자 등의 지붕 형태를 지니는 건축이 있다. 이러한 건축은, 뒤에 살펴보겠지만, 조선전기에 집중되어 있으며 지역과 유형 에 국한하지 않고 나타난다.

반듯한 평면과 ‘工’자형 지붕의 결합은 서로 직교하는 공간의 성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당(堂)과 실(室)로 구분되는 공간은 독립된 맞배 가구가 직교하면서 장방형 평면과 다른 ‘工’자형 지붕을 완성하였다. 이는 서로 다 른 용도로 기획된 당과 실을 결합하는 과정에서 조선후 기는 물론 현재와도 다른 당시의 공간 인식이 적용되었 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런데, 당과 실이 결합한 장방형 평면의 건축에서 맞 배가 직교하는 ‘工’이나 ‘丁’자형 지붕 구조를 채택한 사 례들은 조선후기로 오면서 지붕 구조를 단일 구조의 맞 배나 팔작으로 일치시키게 되었다. 이에 본 연구는 장방 형 평면의 맞배직교형 건축에 반영된 공간 인식을 살피 고, 이를 통해 그간 주목되지 않았던 조선전기 건축의 한 유형을 확인하고자 한다.

3) 주남철, 한국주택건축, 일지사, 1980, 86쪽 4) 신영훈, 한국의 살림집, 열화당, 1983, 84쪽

5) 전봉희·권용찬, 한옥과 한국 주택의 역사, 동녘, 2012, 63쪽

1-2. 연구 목적 및 내용 (1) 연구 대상의 개요

본 연구는 장방형 건축 평면과 ‘工’자형 맞배꺾음지붕 이 결합한 사례에 주목하였다.

6)

연구 대상 중에는 시대 에 따른 개보수로 인해 건축 연대는 창건 당시보다 많이 내려가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최소한 임진왜란 이전인 16세기의 건축 특징을 갖추고 있으므로 조선전기 당(堂) 과 실(室)에 대한 공간 인식을 보여주는 사례로 판단하 였다. 본 연구에서 고찰한 대상은 다음과 같다.

분석 대상

아산 맹씨행단

· 시기: 고려 말 조선 초

· 지역: 아산

· 용도: 주택

경주 향단 사랑채

· 시기: 1543년 경

· 지역: 경주

· 용도: 주택

안동 송암구택의 관물당

· 시기: 조선전기

· 지역: 안동

· 용도: 주택, 서당

안동 호계서원 숭교당

· 시기: 조선전기

· 지역: 안동

· 용도: 서원 강당

창덕궁 빈청

· 시기: 조선전기

· 지역: 서울

· 용도: 관청, 궐내각사

전주 희경루방회도 의 감영건축

· 시기: 조선전기

· 지역: 광주

· 용도: 지방 관아

고열녀전 의 건물 그림

· 시기: 조선전기

· 용도: 주택

표 1. 분석 대상의 건축 개요

6) 맹씨행단의 경우, 현재는 실의 전면과 후면이 당보다 돌출된 ‘工’자

형 평면을 하고 있지만, 기존 연구 성과에 의거하여 본래는 장방형 평

면이었다고 판단하고 분석 대상 중 마지막으로 고찰하였다.

(3)

(2) 당과 실의 정의

고문헌에서 건축의 공간과 평면을 칭하는 용어는 청 (廳), 당(堂), 방(房), 실(室) 등 다양하며,

7)

같은 단어도 시기와 문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특히 당과 청은 구 별 없이 혼용되고 있으며, 실과 방 또한 명확한 구분 없 이 사용하고 있다. 이는 중국의 용어를 우리의 건축 공간 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혼용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에 본고에서는 ‘당’과 ‘실’로 통일하여 사용하고자 한다.

논어의 선진편 에는 ‘승당입실(升堂入室)’, 즉 당에 올라 실로 들어간다는 표현이 있다.

8)

학문의 진보 과정 을 건축 공간에 비유한 ‘승당입실’은 고대 중국인들의 공 간 구분 인식과 동선 체계를 잘 보여준다. 당과 실은 진 행에 대한 단계의 표현임과 동시에 엄연히 구분되어야 하는 별개의 공간임을 의미한다.

그림 1. 승당입실(升堂入室)의 당(堂) 실(室)

우리에게도 당은 열린 공간을, 실은 닫힌 공간을 뜻하 며, 동선상으로 당은 실로 나아가기 위한 매개 공간이다.

당은 실에 비하여 개방적이고 공공성을 띠고 있으며, 다 수를 위한 공간이다. 이에 반하여 실은 폐쇄적이고 소수 를 위한 내밀한 공간이다. 이는 조선시대부터 전해오는 가도의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아래 제시된 가도를 비롯하여

9)

조선시대 각종 가도에서 당은 열린 공간이자, 실에 진입하기 위해 거치는 곳으로 표기되어 있다.

10)

그림 2. 금역당 소장 고서 중 가도(家圖)의 당·실 표기

7) 이정미, 옛文獻에 나타난 室의 意味 , 민족문화, 27집, 2004.12. 참고.

8) “由也 升堂矣 未入於室也.”; 논어 선진편

9) <그림 2>는 안동시의 흥해 배씨 종가 금역당(琴易堂)에 있는 가도 이다. 조선시대에 글씨를 연습한 책자에 거칠게 그린 것으로, 작성 목 적과 구체적인 작성 시기는 알 수 없다.

10) 이종서, 조선전기 ‘향단형(香壇型)’ 주택의 건축과 공간 구획의 특 징 , 대한건축학회논문집(계획계), 32권, 7호, 2016.7; 유기원·김기주, 학 봉종택 家圖의 분석을 통한 18세기 종택의 이건계획 및 건축적 특성 , 건축역사연구, 18권, 3호, 2009.6; 이호열, 三栢堂의 건립 연원과 복원방 향

-宗宅 所藏 家圖를 중심으로-

, 안동사학, 11집, 2006 참고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관점에 의거하여 평면과 공간을 설명하는 용어로 ‘당’과 ‘실’을 사용한다.

2. 건축 사례별 분석

2-1. 경주 향단 사랑채 (1) 건축 연혁

경주 향단은 조선전기의 성리학자 이언적(1491~1553) 과 관련된 고택이다. 이언적이 경상감사로 있던 시기에 현 위치에 지었다고 전한다. 본고에서는 안채와 연결된 사랑채 부분의 당·실 구조를 살펴보겠다.

(2) 평면

향단의 사랑채는 전면 4칸 측면 2칸의 방형 평면이며, 가운데에 전면 2칸의 당을 두고 당의 양쪽에 실을 배치 하였다. 현재 대청 좌측

11)

의 두 칸은 한 칸 반의 작은 사랑방과 그 앞의 반 칸 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작은 사랑방 모서리의 인방에는 문선을 위한 홈과 벽을 쳤던 흔적 및 지우지 않은 먹줄이 남아 있어 툇마루도 본래 방의 일부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림 3. 사랑채 좌측방 전면 마루 상부 인방의 벽 흔적 따라서 좌측 작은사랑방도 본래는 우측의 큰사랑방처 럼 당을 통하여 진입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좌측과 우측 모두 실의 정면부 끝단이 당의 정면부 끝단과 일치하며, 당에 올라 좌·우의 실로 진입하는 구조였다.

그림 4. 향단 사랑채의 당과 실의 진입 동선

(출처: 문화재청, 향단 실측조사보고서, 1999, 68쪽 재편집)

11) 외부에서 대청을 바라본 상태에서 좌측을 칭한다.

(4)

(3) 가구

지붕 가구는 3량가의 실과 5량가의 당이 맞배직교형을 이루며 3량가의 주심도리와 5량가의 주심도리, 3량가의 종도리와 5량가의 중도리가 각각 같은 높이에서 만나고 있다.

향단 사랑채는 당과 실에서 모두 원주를 사용하였지만, 기둥 상부 가구의 양식에서 차이를 보인다.

당은 기둥 위에 주두를 올리고 초익공으로 포를 구성 하였다. 보와 보 사이도 포대공과 양봉으로 결구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익공과 살미를 모두 초각하였고, 대공과 양봉, 첨차 등도 모두 초각으로 장식하였다. 가장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것은 대공이다. 천장에 감추어져 있는 3량 가 실의 대공은 구조재의 역할에 충실한 동자 대공이지 만, 당의 대공은 4개의 판재를 이어 양 끝단을 파련각으 로 하고 판재 면에 연화초각을 하여 구조재와 장식재의 역할을 겸하고 있다.

당 대공

(붉은 원)

실 대공

(파란 원)

그림 5. 향단의 당 대공과 실 대공

(출처: 문화재청, 앞의 책, 96·100쪽, 1999)

당과 실은 용도에 따라 내부 마감도 달리하였다. 대청 으로 사용하는 당은 골판벽에 연등천장으로, 온돌방으로 사용하는 실은 심벽과 고미반자로 마감하였다.

이 외에도 당의 정면은 부연을 사용한 겹처마 맞배집 이다. 이렇듯 당과 실은 가구의 규모뿐만 아니라 의장적 인 부분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림 6. 향단 사랑채 전경

(출처: 문화재청 홈페이지)

구 분

기 능 마루, 매개 공간 방, 마루

평 면 청: 마루 방: 온돌

가 구 5량 3량

창 호 당판문 띠살창

도리 연결 맞춤도리 맞춤도리

도리 위치 차 없음 없음

기 둥 원주 원주

수 장 화반·포대공, 양봉 동자대공

포 작 주두, 초익공

천 장 연등

회 첨 없음 없음

지 붕 맞배, 겹처마 맞배, 홑처마

용마루 위치 차 있음(높음) 있음(낮음)

변 작 4분변작

가구 비교 사진

[출처:

(우)

문화재청, 앞의 책, 206쪽]

표 2. 향단 사랑채의 당·실 구조

2-2. 안동 송암구택의 관물당(觀物堂) (1) 건축 연혁

관물당은 이황의 제자였던 권호문(權好文)이 38세(1569 년, 선조 2)에 거처하며 학문을 강론하기 위해 지었다. 처 음 당호는 관아당(觀我堂)이었으나, 이황이 관물당으로 당 호를 지어주었다.

그림 7. 관물당 전경 (2) 평면

관물당의 평면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장방형으로, 향 단과 달리 한쪽에만 전면 1칸 측면 2칸의 온돌방을 두었 다. 현재 실의 전·후면에는 쪽마루와 다락이 있으나, 후대 에 첨가된 것으로 본래는 완전한 장방형 평면이었다. 대 청으로 사용하는 당을 통해 실에 들어가는 진입 방식은 향단과 동일하다.

(5)

그림 8. 관물당 평면도

(출처: 정정남, 16·17세기 사대부주택의 공 간구성과 활용 , 경기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3, 129쪽)

(3) 가구

관물당 역시 당과 실의 지붕이 독립적이다. 그뿐만 아 니라 서로 다른 형태의 지붕으로 인해 독특한 외관을 보 인다. 당과 실의 건축선이 일치하는 방형 평면임에도 불 구하고 맞배와 팔작의 서로 다른 가구가 결합하는 것은 당과 실이 그만큼 엄격히 구분되어야 함을 나타내는 것 이다. 방, 즉 실이 있는 부분은 맞배로 직교하였고, 강학 공간으로 사용되었던 당만 있는 곳은 팔작지붕으로 마무 리하였다. 관물당은 당시, 당과 실의 견고한 구분 의식과 그것이 건축에 투영된 형태를 잘 보여주는 건축이다.

구 분

기 능 대청

평 면 청: 마루 방: 온돌, 마루

가 구 5량 3량

창 호 널판문, 띠살문 띠살문

도리 연결 맞춤도리 맞춤도리

도리 위치 차 없음 없음

기 둥 각주 각주

수 장 동자대공, 주두

포 작 굴도리, 장혀 굴도리

천 장 연등 고미반자

회 첨 없음 없음

지 붕 팔작, 홑처마 맞배, 홑처마

용마루 위치 차 없음 없음

변 작 4분변작

가구 비교 사진 표 3. 관물당 당·실 구조

2-3. 안동 호계서원 숭교당 (1) 건축 연혁

호계서원은 본래 여강서원(廬江書院)으로, 1575년(선조 20) 8월에 퇴계 이황의 선향에 세워진 안동 최초의 서원 이다.

임진왜란의 병화도 무사히 비껴갔던 호계서원은 1605 년(선조 38) 대홍수로 유실되었다.

12)

이에 유성룡을 비롯 한 이황의 제자들은 이듬해 이전의 위치에서 북쪽으로 100보를 이동하여 서원을 재건하였다.

13)

이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71년(고종 8) 8월에 이황, 김성일, 유성룡의 위패가 매안되었고, 한 달 여 뒤 주사까지 철거되면서 호계서원은 완전히 멸실되었다. 그 러나 4년 뒤인 1875년, 훼철 이후 재산 관리를 해오던 류 기호가 사당과 주사를 재건하였다. 이후에도 병호시비(屛 虎是非)의 논쟁이 지속된 것을 보면 사당 권역은 확실히 복구되었고, 강당인 숭교당까지 다시 지어진 것으로 추정 된다.

14)

따라서 현존하는 숭교당은 1875년의 건축이다.

그러나 숭교당은 임진왜란 직후, 나아가 숭교당이 처음 건축된 1575년 당시의 건축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그동 안 해체와 재조립 과정에서 새로운 양식이 도입되었을 수는 있으나, 주요 부재는 훼철 전의 부재를 지금까지 사 용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15)

또한 대청부의 상부 가구가 7 량가로서 경상도 지역에서 보기 드문 대규모이고, 칸 수 도 초창 당시와 동일하다.

16)

따라서 1875년 류기호가 주 도한 숭교당 건축은 1605년도에 건축한 부재를 재조립하 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고 판단할 수 있다.

17)

12) 경상도 안동부는 이달 20일 강물이 크게 범람해서 끝없이 아득한 물바다를 이루더니…(중략)…영호루(映湖樓)는 흔적도 없이 떠내려갔 고, 여강서원(廬江書院)도 완전히 떠내려갔으며, 대가 세족(大家世 族)의 백 년 된 가옥들이 남김없이 떠내려갔으니, 이번 수재는 개벽 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중략)…옛날 홍수가 난 상황을 표현할 때 산을 덮고 언덕을 넘쳤다고 하거나, 육지가 잠기고 산이 파묻혔다고 하 였으나, 이처럼 형언할 수 없었던 적은 없었을 것이니, 잔파된 상황이 임진년 적화에 분탕질당했을 때보다도 더 심했다. (선조실록, 선조 38년 7월 23일, 세 번째 기사)

13) 서원 중건 당시의 입지는 원래의 위치에서 벗어나지 않되, 수해의 위험이 없는 인근으로 결정하였다. (설석규, 퇴계학파의 분화와 병호시 비(Ⅱ)

-여강(호계)서원 치폐 전말-

, 퇴계학과 한국문화, 45호, 2009) 14) 한국국학진흥원, 경북서원지, 경상북도, 2009, 423∼426쪽 15) 대들보와 마루 장선은 현재에도 구하기 어려운 길고 육중한 부재 를 사용하였으며, 마루 장선은 부식 정도로 미루어 장기간 사용된 것 으로 판단된다. 2016년 이전(移轉) 공사에서 마루 장선을 교체하려 했 으나, 같은 규격의 부재를 구할 수 없어 구 부재를 보강하여 재사용하 였다. (숭교당 이전 공사 감독 김전 소장 인터뷰, 2016.10)

16) 초창시의 건축 내용과 규모는 배향 공간인 존도사(尊道祠) 6칸, 신 문 3칸, 신주(神廚) 5칸이며, 강학 공간인 숭교당(崇敎堂) 15칸, 동재 4칸, 서재 4칸, 진학문 1칸, 동몽재 15칸, 유사방 5칸, 재주(齋廚, 주사) 10칸, 보상고(寶上庫) 15칸, 양호루(養浩樓) 10칸 등 93칸이었다.

17) 이후 숭교당은 1973년 안동댐 공사로 안동군 월곡면 도곡동 1094-

(6)

1573(선조 6) 1월 건립 논의 및 착공 안동 최초 서원 1575(선조 8) 여름 건립 완료(백련사 터) 숭교당 15칸 / 총 93칸 1576(선조 9) 2월 위패 봉안 도산서원과 同日 1605(선조 38) 대홍수로 완전 유실

1606(선조 39) 재건 1607(선조 40) 위패 봉안

1620(광해 20) 11/4 학봉과 서애 추향 학봉: 서 / 서애: 동 1676(숙종 2) 사액서원 호계(虎溪)서원 1871(고종 8) 4/9 호계서원 철폐령

1871(고종 8) 8/2 위패 매안 퇴계·학봉·서애 1871(고종 8) 9/9 주사 철거 완전 멸실 1875(고종 15) 서당·주사 재조립

1973 안동댐 건설로 이건

2016

(안동 국학진흥원

경내로 이건)

표 4. 시기별 호계서원의 건축 변화와 내용

(2) 평면

호계서원 숭교당의 정면은 5칸이며, 대청 3칸의 좌우 에 각 1칸의 온돌방을 두었다. 향단 사랑채나 관물당과 동일하게 장방형 평면 안에 당과 실을 배치하였다. 다만, 숭교당의 대청부는 7량가이므로 실 부분의 측면을 3칸으 로 구획하였다. 당 부분의 기둥은 원주를 쓴 반면, 실 부 분은 각주를 쓰고 상부에 고미반자를 두어 당과 실의 구 분을 명확히 하였다.

그림 9. 숭교당 평면도

(출처: 우리건축사사무소 제공)

(3) 가구

숭교당은 장방형 평면이기 때문에 지붕 또한 팔작이나 맞배 중 하나의 구조로 충분히 건축할 수 있지만, 당과 실을 별도의 맞배지붕으로 구조한 후, 직교시켰다. 당과 실은 가구 규모부터 차이가 나는데, 3량의 실과 7량의 당 이 결합하여 당·실의 용마루 높이 차가 크다.

140번지에서 안동군 임하면 임하리 84-3, 4번지 잣밭으로 이전하였다.

그리고 2017년 현재 안동 국학진흥원 내로 이건된 상태이다.

그림 10. 숭교당 정면도

(출처: 우리건축사사무소 제공)

양측 실은 3량가이며, 3량가의 종도리는 7량가인 당의 중하도리에서 만난다. 당은 장연·중연·단연의 3중으로 서 까래를 걸었고, 부연을 단 겹처마이다. 실은 단연의 홑처 마이다.

그림 11. 독립적으로 직교하는 당

(겹처마 원주)과

(홑처마 각주)

당의 가구는 실보다 의장이 훨씬 복잡하다. 납도리가 아닌 굴도리를 사용하였고, 대들보 위에는 화려한 파련 대공을 두었다. 또한, 보와 보 사이는 첨차와 대공으로 연결한 무고주 7량 가구이다. 이렇게 수평 부재 사이를 연결하는 수직 부재를 화반이나 대공의 수직 부재와 행 공으로 결구하는 것 또한 조선전기 건축의 특징이다.

구 분

기 능 마루, 매개 공간 방, 마루

평 면 청: 마루 방: 온돌

가 구 7량 3량

창 호 널판문 띠살문

도리 연결 맞춤도리 맞춤도리

도리 위치 차 없음 없음

기 둥 원주 각주

수 장 파련, 포대공 동자대공

기둥 상부 굴도리, 장혀(소로수장) 납도리

천 장 연등 고미반자

회 첨 없음 없음

지 붕 팔작, 겹처마 맞배, 홑처마

용마루 위치 차 있음(높음) 없음

변 작 4분변작

가구 비교 사진

표 5. 숭교당 당·실 구조

(7)

2-4. 창덕궁 빈청(賓廳) (1) 건축 연혁

창덕궁 빈청은 조선시대 고위 관료들의 회의실로, 승 정원, 사옹원, 내반원과 함께 성종대부터 있었던 궐내각 사이다. 현재 빈청과 그 주변은 20세기 이후 급변하였다.

그러나 동궐도 및 동궐도형 의 시각 자료와 실록 및 의궤의 기록을 현존 가구와 종합하면 당·실 결합에 의한 맞배직교형 구조를 확인할 수 있다.

성종대 지어진 궐내각사들은 인정전 동편에 위치했으 며, 빈청 또한 처음부터 이동 없이 현 위치에 있었다. 이 는 실록과 동궐도 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연산군 일기에는 성종 재궁의 이동 경로를 논하던 중 빈청을 경유하여 진선문을 통과하는 것은 길이 매우 좁기 때문 에 불가하다는 기록이 있다.

18)

동궐도 에서 빈청과 진선 문의 위치를 보아도 왕의 관을 옮기는 의례를 행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임진왜란 이후 창덕궁을 중건한 뒤 빈청의 소실이나 재건 기록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임진왜란 이전의 궁궐 법식을 따랐다고 짐작되는 광해군 시대의 건축

19)

이 이어 진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따라서 창덕궁 빈청은 조선 전기의 법식을 현재까지 간직하고 있는 건축이라고 판단 할 수 있다.

그림 12. 창덕궁 빈청과 궐내각사의 위치 (2) 평면

빈청은 순종대에 어차고로 사용되었고, 현재 카페로 개조되었기 때문에 본래의 평면 구조는 알기 어렵다. 그 러나 1976년 국보건설단에서 제작한 도면을 보면 기둥의 위치가 동궐도형 과 동일하다. 동궐도형 에서 보이는 평면과 현재의 지붕 구조를 겹치면 당의 좌우에 실이 배

18) 연산군일기, 연산 1년(1495) 2월 8일, 네 번째 기사

19) 빈청의 맞배직교형 지붕 양식은 조선전기의 건축 법식을 따른 것 으로 볼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김버들 이종서, 조선시기 궁궐건축 꺾음부의 구조와 그 변화

-맞배직교형에서 팔작직교형으로-

, 건축역사연 구, 25권, 6호, 2016.12. 참고

치된 장방형 평면의 건축이 된다.

다만 향단 사랑채의 경우 5량가인 당의 종대공 위치 에 실의 기둥을 두어 실을 두 칸으로 구획한 것과 달리, 빈청에서는 중대공 위치에 실의 기둥을 두어, 실이 중간 의 어칸과 전후의 협칸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동궐도 형 을 보면 빈청의 실 부분 측면 3칸이 모두 벽이어서 협칸도 폐쇄된 방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림 13. 동궐도형 빈청

,

어차고 빈청

(출처: 국가기록원, 1999, CB0007076)

(3) 가구

빈청은 3량과 5량의 맞배 가구가 직교하고 있다. 정면 5칸의 칸살잡이(間架)는 동일한 규모이나, 측면은 4분변 작으로 인하여 어칸과 협칸의 칸살이가 다르다.

현재 전면과 측면의 외진기둥은 모두 높은 초석 위에 각기둥을 설치했지만, 기둥 상부와 대공에는 당·실을 구 분한 흔적이 있다. 5량의 당은 초익공의 포작을 구성하 였다. 주심도리 밑에는 주두와 익공을 두었고, 중도리도 주심도리와 같이 주두와 익공 위에 결구되어 있다. 종도 리 밑에는 화려한 파련대공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3량의 실은 주두 없이 굴도리를 사용하였고 종도리 밑에는 판

구 분

기 능 대청

평 면 청: 마루 방: 온돌

가 구 5량 3량

도리 연결 맞춤도리 맞춤도리

도리 위치 차 없음 없음

기 둥 각주 각주

수 장 파련, 포대공 판대공

기둥 상부 굴도리, 장혀(소로수장) 굴도리

천 장 연등 고미반자

회 첨 없음 없음

지 붕 맞배, 홑처마 맞배, 홑처마

용마루 위치 차 있음(높음) 없음

변 작 4분변작

가구 비교 도면

[출처: 국보건설단 (1976), 국가기록원, CB0004738]

표 6. 창덕궁 빈청 당·실 구조

(8)

대공으로 결구하였다. 보의 치장에도 차이를 두어 당의 대들보와 중보는 초각하여 보머리를 장식하였으나, 실의 대들보의 보머리는 두 번 꺾어 사절하였다.

2-5. 아산 맹씨행단 (1) 건축 연혁

아산 맹씨행단은 세종대에 활동한 맹사성(1360∼1438) 의 고택으로 최영(1316∼1388)이 손녀사위였던 맹사성에 게 물려준 것으로 전한다. 현존하는 살림집 중 가장 오래 된 것으로 맹씨세적(孟氏世蹟)의 행단고택중수유래현 판게시문(杏壇古宅重修由來懸板揭示文) 에 따르면, 현 위 치에 고택이 지어진 시기는 1330년(고려 충숙왕 17) 2월 이다. 1482년 대대적인 중수가 있었으며, 이때 좌향이 바 뀌었다. 이후 몇 번의 수리가 있었으나, 이 고택은 15세 기의 건축 법식을 지닌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살림집으 로 평가되고 있다.

(2) 평면

맹씨행단은 정면 4칸, 측면 3칸으로 당(대청) 좌우에 각 한 칸의 실(방)이 있다.

그림 14. 맹씨행단 현재 평면도 및 지붕 현황 사진

(출처: 문화재청, 아산 맹씨행단 정밀실측조사보고서, 2012, 42·121쪽)

현재의 맹씨행단은 1482년(성종 13)의 모습을 기준으로 복원한 것이다. 현재 ‘工’자형 평면이지만 1482년 이전에 는 장방형 평면이었다고 추정된다.

20)

고려 말 맹씨행단 초창기의 평면은 창덕궁 빈청과 같이 4분변작에 따라 배 치된 당 부분 중대공의 위치에 실의 기둥을 두어, 실 부 분이 중앙의 어칸과 어칸 앞뒤의 협칸으로 구성된 평면

20) 아산시, 맹씨행단 건축유적지 발굴보고서, 1998, 104쪽; 문화재청,

 아산 맹씨행단 정밀실측조사보고서, 2012, 126∼127쪽. 보고서에서는

① 현재 기단 안쪽으로 낙숫물이 떨어지는 불합리한 구조이나 현재의 기단 석렬 안쪽에 본래의 것으로 추정되는 석렬이 남아 있으며, ② 퇴칸 좌·우측에서 마루의 동바리를 받치고 있는 초석이 크기로 미루어 기둥 을 받치는 데 적합하며, 이는 좌우의 방이 밖으로 반 칸씩 확장되면서 그 위에 있던 기둥이 옮겨가고 남은 것으로 추정하였다. 그리고 이에 근거하여 본래의 평면은 현재와 같은 ‘工’자가 아니라 ‘一’자였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현재 실 부분의 남쪽과 북쪽 벽이 비를 가려주는 완충 공 간 없이 외부에 노출되어 직접 비를 맞게 되어 있는 불합리한 구조라는 점도 실 부분이 후대에 남쪽과 북쪽으로 각기 반 칸씩 확장되었다는 추 정을 뒷받침해 준다. 따라서 초축 당시의 맹씨행단은 4분변작의 5량 가 구 당과 3량 가구의 실이 맞배직교형으로 만나 중앙의 어칸과 상·하의 협칸이 형성되는 창덕궁 빈청과 같은 평면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었다고 생각된다.

또한, 1963년 시점의 평면과 이러한 평면에 이르기까 지의 변화 과정을 살피면 크게 세 차례의 변화를 도출할 수 있다. 초축 때에는 ‘一’자형 평면이었다가, 1482년에 실 부분을 남북으로 반 칸씩 확장하여 ‘工’자형 평면이 되었다. 이후 실의 남쪽으로 칸을 부가하여 증축하였다.

그림 15. 맹씨행단 당 단면도와 실의 기둥 배치

(출처: 문화재청, 앞의 책, 2012, 380쪽)

이러한 변화를 보면 실 부분의 확장이 매우 자유롭게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맹씨행단의 당과 실이 처음부터 별도로 계획되었으며, 방향성과 확장성을 지닌 맞배 가구가 직교하였기에 가능한 변화였다.

1차: 창건시의 평면 (14세기)

2차: 실 확장 후의 평면 (1482년 추정) 3차:

실 증축 후의 평면 (∼1964년)

그림 16. 맹씨행단 평면의 변화

(출처: 아산시, 맹씨행단 건축유 적지 발굴보고서, 1998, 102〜106쪽 재편집)

(3) 가구

맹씨행단은 5량가와 3량가의 주심도리 높이가 같고, 3량가의 종도리는 5량가의 중도리 부분과 만난다. 꺾음부 의 양 방향은 대등하게 맞배 가구로 직교한다. 따라서 같 은 규모의 가구가 아니면서도 당과 실의 가구는 독립된 방향성을 지니고 있다.

(9)

또한, 기둥부터 포작에 이르기까지 당과 실에 차이를 두었다는 점에서도 이제까지 살핀 다른 건축들과 일치한 다. 당에 해당하는 대청의 경우, 원주를 사용하였고 기둥 위에는 공포의 시작으로 볼 수 있는 주두를 올렸다. 주 두 위에는 행공(익공)과 보아지를 두어 보와 도리를 결 구하고 있으며, 고주와 동자주 위에도 포작을 구성하였 다. 그뿐만 아니라 종도리와 종보를 연결하기 위해 복화 반 모양의 대공과 소슬합장을 사용하여 도리의 구름을 방지하고 있다.

구 분

기 능 마루, 매개 공간

평 면 청: 마루 방: 온돌

가 구 1고주 5량 3량

창 호 널판문, 분합문 여닫이, 들어열개

도리 연결 맞춤도리 맞춤도리

도리 위치 차 없음 없음

기 둥 원주 각주

수 장 복화반대공, 소슬합장 동자대공 포 작 주두, 행공(익공)

보아지(주심포계) -

천 장 연등 고미, 우물반자

회 첨 없음 없음

지 붕 맞배, 홑처마 맞배, 홑처마

용마루 위치 차 있음(높음) 있음(낮음)

변 작 4분변작 -

가구 비교 사진

표 7. 맹씨행단의 당·실 구조

3. 회화 자료의 사례 분석

3-1. 전주 희경루방회도(喜慶樓榜會圖) 의 감영건축 희경루방회도 는 1546년(명종 1)에 있었던 증광시의 문무과 합격 동기생들이 20년 만에 광주 희경루에서 재 회한 모습을 그린 계회도이다. 화면의 가운데에는 희경 루가 크게 자리 잡고 있으나, 본고에서 주목하는 것은 희경루 담장 아래에 있는 맞배직교형의 건축이다.

신숙주의 기문에 따르면, 희경루는 1451년(문종 1) 객 사 북쪽의 공북루 터에 창건되었다. 일반적으로 감영(監 營)과 객사(客舍)로 이루어지는 관아는 선화당(宣化堂)을 중심으로 내아와 질청이 있고, 객사는 정청과 익사로 구 성된다.

21)

객관이 있는 곳에는 대개 누각이 세워졌다. 따

21) 문종 1년 창건된 희경루는 중종 28년(1533)에 화재로 소실되어 이 듬해 같은 위치에 같은 규모로 재건하였다. 본 계회도에 보이는 희경 루는 이때 재건한 것이다.

라서 희경루는 전주 관아 내에 위치하였고 본고에서 고 찰하고자 하는 맞배직교형 건축은 감영을 구성하는 주요 건축물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지붕 용마루 끝에 있는 기 와 장식과, 박공 부분의 단청에서도 추정할 수 있다.

건물의 지붕 아래 부분이 표현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 구 규모는 알 수 없지만, 당과 실의 공간이 독립된 정 면성과 방향성을 갖는 맞배로 직교하는 건축임을 짐작 할 수 있다.

그림 17. 희경루방회도 (

보물 1879호, 동국대학교박물관 소장)

3-2. 고열녀전(古烈女傳)의 건물 그림

고열녀전(古列女傳) 언해본은 조선전기 인물화의 대 가였던 궁중화가 이상좌의 그림을 밑그림으로 하여 1543 년(중종 38)에 다시 판각한 것이다.

22)

따라서 조선에서 새로 판각한 고열녀전의 건물 그림에는 중종대 이전의 조선전기 건축 양식이 반영되어 있다.

23)

조선 간본 고열 녀전에는 9개의 도판에 궁궐이나 민가가 그려져 있다.

이 중 송공백희(宋恭伯姬) 소남신녀(召南申女) 채인 지처(蔡人之妻) 의 세 도판에서 맞배직교형 당·실 결합 건축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송공백희 의 그림 구도는 희경루방회도 와 흡 사하다. 본고에서 주목하는 것도 화면 중앙의 누각이 아 니라 아래쪽 구석의 맞배직교형 건축이다. 이야기의 무 대가 궁궐이거니와 용마루의 표현과 지붕 장식에서도 궁 궐건축임을 알 수 있다.

고열녀전의 다른 두 그림에서는 서로 직교하는 당과 실의 방향성뿐 아니라 실내의 모습까지 유추할 수 있다.

소남신녀 의 건축도는 소남에 사는 신씨의 주택을 묘사 한 것이다. 신씨와 신씨의 어머니가 서 있는 건축은 전돌 마감된 기단 위에 세워진 맞배직교형 건축이다. 당과 실 이 살창을 둔 벽으로 명확히 구분되어 있고, 입식 구조로

22) 이에 대한 개요는 2015년 소장자료총서 2: 여러 여성들의 이야기, 열녀전(국립한글박물관, 2015) 및 김버들 이종서의 앞의 논문 참고.

23) 특히 중국판본의 건축은 누대만이 있을 뿐, 본 연구에서 주목하는

맞배직교형 건물은 없다. 맞배가 직교하는 건축의 형태는 당시 조선본

을 제작하면서 실재하는 건축을 나타낸 것이다.

(10)

표현하였다. 채나라 사람의 아내의 지조를 그린 채인지 처 의 건축도는 맞배직교형의 지붕과 더불어 당과 실의 공간이 서로 직교하는 내부 구조를 나타냈다.

이렇듯 고열녀전의 세 사례 모두 당과 실은 정면성, 용마루 높이 차, 내부 공간의 방향에 차이를 둠으로써 확 실히 구분하고 있다. 특히 맞배직교 가구는 당과 실의 정 면성과 방향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결국 중종대 이전의 건축 양식을 담고 있는 고열녀전의 맞배직교형 구조의 장방형 건축을 통하여 조선전기 사람들의 당과 실에 대 한 뚜렷한 구분 의식을 확인할 수 있다.

송공백희(宋恭伯姬) 소남신녀(召南申女) 채인지처(蔡人之妻)

그림 18. 고열녀전 중 맞배직교형 건축

(출처: 국립한글박물관, 2015년 소장자료총서 2: 여러 여성들의 이야 기, 열녀전, 2015)

4. 조선전기 당 실의 공간 인식

4-1. 조선전기 당 실의 독립된 공간 인식

조선전기의 법식을 지닌 건축과 회화 자료를 통하여 당·실이 결합한 장방형의 맞배직교형 건축을 살펴보았다.

지붕은 서로 다른 규모 혹은 다른 방향의 가구가 직교하 는데, 이때 직교하는 가구들은 서로의 가구를 침범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도리의 위치만 맞춘 상태에서 각각의 방 향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는 하나의 건축 안에 당과 실로 분리된 두 공간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평면에서 보면, 외부에서 당을 통하여 실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당의 정면과 실의 정면은 직교할 수밖에 없다.

또한 실에서 당을 향하는 벽면에 창호를 둔, 고열녀전

소남신녀 의 사례는 당과 실을 완전히 분리된 공간으로 인식했음을 시사한다. 또한, 실의 가구가 당과 독립되면 서 자신만의 방향성을 갖기 때문에 실의 확장이 매우 용 이하다. 이와 같은 사례는 앞서 맹씨행단에서 실이 확장 되는 모습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확인하였다.

이처럼 본고에서 살핀 고려 말에서 조선전기의 당과 실이 결합한 건축은 반듯한 방형 평면일지라도 당과 실 을 서로 다른 가구로 구성하고 방향을 달리하여 건축하

였다. 이는 적어도 고려후기부터는 당과 실, 즉 열린 공 간과 닫힌 공간, 공적인 공간과 사적인 공간에 대하여 명확히 분리되어 있었음을 뜻한다.

4-2. 독립된 당 실 구분에서 통합 관계로의 변화 방형 평면이면서도 당과 실의 지붕 가구를 별도로 구 축하여 직교하는 건축은 임진왜란 직후에도 지속되었다.

실이 동일 공간 내에 배치된 당의 부속 공간 또는 하위 공간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기능을 수용 하고 그에 따른 가구를 별도로 형성하며 분립하는 구조 인 것이다.

대청으로 나타나는 당은 가구의 규모, 대공과 수장 가 구의 꾸밈, 기둥의 형태 등에서 실보다 장려하다. 이러한 의장의 차이는 당과 실의 위계를 결정짓는 요소로 해석 되곤 한다. 대청이라고도 불리는 마루는 숭고하고, 바람 직하며, ‘원초적’인 의미를 갖는 정화된 공간으로 이해되 기도 한다. 그리고 어의적으로 당은 공간적 위계를 구분 하는 단(壇)이 전용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24)

이에 따라 당이 실보다 크고 화려한 건축으로 나타난다고 이 해된다. 그러나 구조적으로 보면, 실이 당에 종속되는 것 은 아니었다.

맞배직교형 건축에서 당과 실은 뚜렷한 방향성과 확 장성을 담보하기 때문에 필요에 의해 실은 확장과 축소 가 용이하다. 그러나 조선후기로 가면서 장방형 평면인 경우 지붕도 한 방향으로 조정하였다. 건물의 정면성도 당의 정면 방향으로 통일되었다. 이는 당과 실의 독자성 이 사라지고 공간의 자유로운 확장과 축소가 어려워졌 음을 뜻한다. 또한, 당과 실은 한정된 단일 공간을 분할 한 유기적인 관계이면서 실이 당의 하위에 위치하게 되 었음을 뜻한다.

결국, 독립적이었던 당과 실은 하나의 지붕 가구 체계 로 통합되면서 중심성, 대칭성, 위계성 등의 의미가 부여 되는 공간으로 변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4-3. 별도의 지붕 구조에서 통합된 지붕 구조로의 변화

조선전기에는 당과 실을 별도의 독립된 건축 공간으 로 인식하였다. 따라서 지붕 가구도 독립적으로 조성하 였고 결과적으로 당과 실의 방향대로 용마루 선이 나타 나게 되었다. 또한 서로 다른 두 건축이 직교하여 한 채 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一’자형의 방형 평면이라 할지라

24) 조정식, 마당의 語意와 超越的 特性에 관한 연구 , 대한건축학회

논문집, 12권, 2호, 1996.2, 93쪽

(11)

도 건축의 지붕은 맞배로 직교하였다. 맞배 가구는 다른 가구와 결합하더라도 본래 갖고 있는 진행 방향을 그대 로 유지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25)

앞서 살펴본 사례와 같이 정면과 측면에서 직교하는 맞배지붕의 박공이 드 러나며 방향성과 확장성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러한 맞 배직교형의 건축은 조선후기에 들어와 거의 자취를 감 추고 당과 실을 합하여 하나의 지붕 가구로 건축하였다.

이것은 당과 실을 엄격하게 분리하였던 조선전기의 공 간 인식이 변하였음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궁궐의 빈청들이다. 가운데 당을 두 고 양 옆으로 실을 배치한 빈청의 당·실 평면은 규모는 다르지만 창덕궁 빈청(5 × 2칸), 경희궁 빈청(4 × 2칸), 경 복궁 빈청(5 × 2칸)에서 반복되고 있다.

그림 19. 서궐도안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 및 경복궁배치도

(규장각본)

에 나타나는 빈청

앞서 고찰하였듯이, 조선전기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창덕궁 빈청은 맞배직교형으로 당과 실을 뚜렷이 구분 하고 있다. 그러나 숙종~영조대에 지어진 경희궁 빈청 은 당과 실을 단일한 맞배 가구로 건축하였고, 고종 연 간에 지어진 경복궁 빈청은 창덕궁 빈청과 같은 규모임 에도 불구하고 전체를 팔작 가구로 건축하였다. 이렇듯 같은 용도와 위계를 갖는 빈청 건축에서도 당·실 결합 이라는 평면의 구조 체계는 변함이 없지만, 당·실 공간 에 대한 인식 변화는 지붕 가구와 건축의 외관에도 변 화를 가져왔다.

그림 20. 경복궁 빈청의 평면과 입면

(출처: 문화재청, 경복궁 광화문 및 기타권역 복원정비 계획보고서, 2002, 191∼192쪽)

5. 맺음말

본 연구에서는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조선전기의

25) 김버들 이종서, 앞의 논문, 70쪽

‘一’자형 방형 평면과 맞배직교형 지붕 구조가 결합한 건 축을 고찰하여 조선전기 당과 실의 공간 인식을 살펴보 았다.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당과 실은 서로 종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연결 되었다. 평면은 서로 연접해 있지만, 기능 가구 창호 기 둥의 종류, 포작의 구성, 천장 구조, 도리 모양 및 지붕 구조에 이르기까지 별개의 건축으로 나타났다.

둘째, 당과 실의 구분은 외관상 지붕에서 현저히 드러 난다. 독립된 지붕 가구를 지닌 당과 실이 직교하면서 그에 따른 정면성도 서로 직교한다. 따라서 지붕은 다른 구조와 결합해도 방향성이 유지되는 맞배직교형 건축이 일반적이었다.

셋째, 당과 실의 구분은 지붕 가구의 방향뿐만 아니라, 가구의 규모와 구성 요소, 기둥, 기둥머리 장식, 대공의 형태와 포작, 천장 등에서 차이를 두어 서로 다른 건축 으로 분리하고 있다.

넷째, 반듯한 장방형 평면임에도 불구하고 ‘工’자형 맞 배직교 지붕을 갖추었던 당 실 결합의 건축은 점차 맞 배나 팔작으로 지붕 가구가 단일한 건축으로 변하게 된 다. 따라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용마루가 하나인 단일 가구 형태로 변하였다.

다섯째, 이러한 변화는 조선초기 사람들이 당과 실을 별도의 건축으로 인식하였으며, 당과 실을 결합하여 축 조할 때에도 공간의 고유성을 잃지 않도록, 각각의 영역 을 침범하지 않는 방식으로 건축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엄격한 공간 분리 인식은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조선후기에도 일부 지역에서는 이러한 맞배직교형의 당·실 결합 건축이 강력한 영향을 끼쳤다. 특히 경상도 지역에서는 맞배직교형 가구로부터 확장된 건축 사례가 많아 이 지역의 특징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본 연구는 지금까지 주목받지 못했던 사례들을 모아 적어도 고려후기부터 존재하였으며, 조선전기 건축에서 다수 나타나는 맞배직교형 당·실 결합 건축을 유형화하 여 설명하고자 하였다. 추후 조선후기의 더 많은 사례를 포함하여 당과 실이 결합한 맞배직교형 건축이 갖는 가 구 특성과 그 변화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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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수(2017. 2. 14) 수정(1차: 2017. 3. 27) 게재확정(2017. 4. 2)

수치

그림 8. 관물당 평면도 (출처: 정정남, 16·17세기 사대부주택의 공 간구성과 활용 , 경기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3, 129쪽) (3) 가구 관물당 역시 당과 실의 지붕이 독립적이다

참조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