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rresponding author; Yeon-Ok Sim Tel. +82-41-830-7307, Fax. +82-41-8307349 E-mail: [email protected]
조선전기 직금흉배직물 연구
심 연 옥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미술공예학과 교수
A Study of Jik-geum Hyoong-bae Textile in the Early Joseon Dynasty
Yeon-Ok Sim
Prof., Dept. of Art and Craft, Korea National University of Cultural Heritage (2013. 8. 27.접수; 2013. 10. 17. 수정; 2013. 10. 22. 채택)
Abstract
Those records indicate that Jik-geum Hyoong-bae fabric was imported from China and its period was during the fourteen and fifteen century.
Gold threads used in three Jik-geum Hyoong-bae artifacts were all wrapped gold thread and gold thread of Danryeong from Young-dukdong, Yong-in, did not have a base, but instead the gold foil itself was attached to the silk cord. Such form of artifact had never been discovered before in Korea. Wrapped gold thread of Seoknamdong’s basis was presumably bamboo paper.
Three Jik-geum Hyoong-bae have the same weave structure. The ground is woven in a warp-faced 5-end satin weave. The pattern is brocaded with supplementary gold wefts. Supplementary gold wefts are composed of 1/4 twill binding by the odd number pairs of warps within every group of 10 pairs of warps.
All of the Jik-geum Hyoong-bae textile were designed and weaved according to the overlapped collared costume’s structure. This is also known as ‘Jik-seong-pil-ryo’.
One symmetric collared jacket excavated in Seok-namdong, Incheon, only has the right half of Hyoong-bae in the front. This is because symmetric collared jacket was made from overlapped collared costume.
Tiger and peacock are the main patterns of Jik-geum Hyoong-bae which have realistic and free screen composition and this shows a huge difference to the later generation’s standardized Hyoong-bae pattern.
Key Words: Jik-geum Hyoong-bae(직금흉배), Wrapped gold thread(연금사), Jik-geum (직금), Satin(단(緞))
Vol. 15 No. 4 (2013) pp. 113~128
I. 서 론
흉배는 품계를 구분하기 위해 복식의 가슴과 등에 장식한 일종의 표식으로 직조(織造), 자수 (刺繡), 금박(金箔) 등의 기법으로 표현하였다.
직조흉배의 제작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 다. 첫째는 복식을 구성하는 바탕직물에 흉배 문양을 직접 짜 넣는 형식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전기의 유물에서 보이며, 중국에서는 몽골 시기, 원대에 시작되어 명대까지 사용된 흉배의
초기형태이다. 둘째는 직조흉배의 일반적인 형 태로서 흉배를 따로 제작하여 복식에 부착하는 방법이며 우리나라에서는 16세기 초 출토복식에 서 처음 나타난다(노수정, 2008).
첫째형식의 직조흉배는 현재까지 국내에서 3 점이 출토되었으며 국내의 흉배유물 중 가장 이 른 시기의 것이다. 유물 1점은 현재 대구박물관 에 소장되어있는 단호문 직금흉배단령으로 2005 년 9월 용인시 영덕동 택지개발지구의 무연고 분묘에서 발견되었으며 묘주는 밝혀지지 않았 다. 다른 2점은 인천시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 는 공작문 직금흉배단령과 공작문 직금흉배 대 금형 상의로 2004년 인천 서구 석남동 무연고묘 에서 출토되었다. 이들 복식에 표현된 흉배는 모두 금사(金絲)로 문양을 제직한 직금흉배(織 金胸背)로서 흉배의 초기형식과 직금직물의 제 직특성을 밝힐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료적 가 치가 있다.
현재까지 흉배에 대한 연구는 흉배의 제도(전정 희, 1978; 오경미, 2000)와 조형성(김숙영, 1986; 백 은희, 1994; 이지영, 1994; 하명은, 2005), 자수흉배 (김연미, 2012), 직금흉배 보존처리(노수정, 2008;
오준석 외 2010), 중국과 한국의 흉배비교(정혜란, 2001; 송수진, 2013; 김영재, 2000; 배정용, 1989)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발히 이루어져 왔으나 흉배의 직물에 관한 전문적인 연구는 전무하다. 특히 바탕 직물에 직성(織成)한 직금흉배의 제직기술에 대해 서는 출토복식보고서(조효숙, 배순화, 2005)에 단 편적으로 언급한 내용이 있을 뿐 제직기술의 정밀 분석을 통한 심도있는 연구 성과는 미비하다.
따라서 본 연구는 용인 영덕동과 인천 석남동 에서 출토된 직금흉배유물 3점에 대한 섬유학적 분석을 실시하고, 유사한 형식의 중국 원․ 명대 의 직성형 직금흉배유물과 비교하여 조선전기 직금흉배직물의 제직특성, 직조설계방식을 살펴 보았다. 또한 유물연구에 앞서 직금흉배에 대한 문헌연구를 병행하여 직금흉배가 사용된 시대 적 특징 및 직물의 특성을 유물과 비교하였다.
연구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직금흉배 기 록을 조사하여 시대적 특징과 교류관계를 살펴 보고, 문헌에 나타난 직금흉배 바탕직물과 흉배 문양, 색에 대해 분석하였다.
둘째, 직금흉배유물에 사용된 금사에 대한 과 학적 분석을 실시하여 금사의 형태 및 특징에 대해 밝혀보고, 중국의 직금유물에 사용된 금사 와 비교하였다.
셋째, 실의 종류, 굵기 및 꼬임정도, 밀도, 조 직 등 직물의 제직특성을 분석하였다.
넷째, 직금흉배복식의 직물제직설계에 대해 중국 직금흉배 복식과 비교하여 직조설계방식 및 구성형식을 유추해 보았다.
마지막으로 직금흉배문양의 조형적 특성을 분 석하고 이를 중국의 직금흉배문양과 비교하여 시대적 특징을 살펴보았다.
Ⅱ. 문헌에 나타난 직금흉배의 형태와 직물특징
유물연구에 앞서 문헌에 나타난 직금흉배에 관한 기록을 조사하여 직금흉배직물의 형식과 바탕직물의 종류, 문양, 색 등을 확인하였다. 또 한 시대적 배경과 교류관계를 조사하여 유물의 연대를 판정하고 해석하는 자료로 삼고자 하였 다.
직금흉배에 관한 기록은 고려 말에 처음 나타 난다. 고려 말에 간행된 <원간노걸대(原刊老乞 大)>에는 고려의 상인이 중국에서 ‘아청금흉배 단자(鴉靑金胸背段子)’와 ‘금흉배(金胸背)’를 구 매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으며, 이후의 번역본 인 <번역노걸대(飜譯老乞大)>, <노걸대언해(老 乞大諺解)>에서는 ‘심청직금흉배단자(深靑織金 胸背段子)’, ‘디튼 야 직금 븨 비단’, ‘지 튼 아청(鴉靑) 비단에 금사(金絲)로 흉배(胸 背)’, ‘지튼 야쳥 직금흉배(織金胸背) 비단’으 로 언해하였다. 즉, ‘아청금흉배단자’에서 ‘금 (金)’이라는 의미가 ‘직금(織金)’, ‘금사(金絲)로 짠’이라는 의미이며 마지막에 ‘단자’, ‘비단’ 등 으로 직물명이 함께 표기된 것으로 미루어 당시 직금흉배는 흉배문양을 금사로 바탕직물에 짜 넣은 형태임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직금흉배직물의 기록은 사신들의 교 류를 통해 중국 명나라 황실에서 조선의 왕과 왕비에게 보내진 직물에서 나타난다. <조선왕조 실록(朝鮮王朝實錄)>에 나타난 직금흉배의 기록
연대 내용
世 宗
17年(1435) 3月18日
紵絲織金胸背麒麟紅一匹、織金胸背麒麟綠一匹、織金胸背白 紅一匹、織金胸背白 靑一匹
紵絲織金胸背麒麟紅一匹、織金胸背麒麟綠一匹 24年(1442)
8月 12日
紵絲八匹、織金四爪單纏身莾龍大紅一匹、織金胸背麒麟大紅一匹、織金胸背麒麟深靑一 匹、織金胸背麒麟黑綠一匹
32年(1450) 閏1月 1日
紵絲織金胸背獅子紅一匹、織金胸背白澤紅一匹、織金胸背麒麟靑一匹、織金胸背麒麟綠 一匹
紵綵織金胸背獅子紅一匹、織金胸背麒麟靑一匹
文 宗
卽位年(1450) 4月 19日
紵絲織金胸背麒麟紅一匹、織錦胸背麒麟綠一匹、織錦胸背獅子紅二匹、織錦胸背獅子綠 一匹、織金胸背虎豹靑二匹、織錦1)胸背虎豹綠一匹, 羅織錦胸背獅子紅一匹、織錦胸背 白澤紅一匹、織錦胸背虎豹靑一匹、織錦胸背麒麟靑一匹、織錦胸背麒麟綠一匹
卽位年(1450) 4月 29日
紵絲三十匹內織錦胸背麒麟紅二匹、織錦胸背麟麒靑二匹、織錦胸背麒麟綠一匹、織錦胸 背白澤紅二匹、織錦胸背白澤靑一匹
羅三十匹、內織錦胸背麒麟紅二匹、織錦胸背麒麟靑二匹、織金胸背白澤紅一匹
卽位年(1450) 7月 19日
紵絲織金胸背麒麟紅二匹、織金胸背麒麟靑二匹、織金胸背麒麟綠一匹、織金胸背獅子紅 一匹、織金胸背獅子靑一匹、織金胸背獅子綠一匹
羅織金胸背麒麟紅二匹、織金胸背麒麟綠一匹、織金胸背獅子紅一匹、織金背胸獅子靑一 匹
卽位年(1450) 8月 3日
紵絲織金胸背麒麟紅一匹、靑一匹, 羅織金胸背麒麟紅一匹、織金胸背獅子靑一匹 紵絲織金胸背麒紅一匹、靑一匹、羅織金胸背麒麟紅一匹、織金胸背獅子靑一匹、素紅一 匹、素綠一匹
端 宗
卽位年(1452)
8月 10日 紵絲織金胸背麒麟大紅一匹、暗花骨朶雲靑一匹、素綠一匹 卽位年(1452)
閏9月 17日
紵絲四匹、織金胸背麒麟一匹、內大紅一匹、深靑一匹、暗花骨朶雲二匹、內深靑一匹、
黑綠一匹、羅四匹、織金胸背麒麟二匹、內大紅一匹、黑綠一匹、素二匹、內深靑一匹、
黑綠一匹 14年(1455)
윤6월 1일 黑羅織金骨朶雲麒麟胸背紵絲一匹, 大紅織金胸背骨朶雲麒麟胸背紗一匹
世 祖
2年(1456) 4月 20日
紵絲織金胸背麒麟大紅一匹、織金胸背麒麟深靑一匹、羅織金胸背麒麟大紅一匹、織金虎 豹深靑一匹
紵絲織金胸背獅子大紅一匹、織金胸背深靑一匹、羅織金胸背獅子大紅一匹、織金胸背虎 豹深靑一匹
14年(1468) 4月 9日
織金胸背麒麟暗骨朶雲大紅紵絲二匹、織金胸背麒麟暗骨朶雲黑綠紵絲二匹、織金胸背麒 麟暗骨朶雲靑紵絲二匹
睿 宗
1年(1469) 閏2月 4日
紵絲織金胸褙麒麟紅一匹、織金麒麟靑一匹、暗細花紅一匹、素綠一匹、羅織金胸褙麒麟 紅一匹、(羅)織金胸背獅子靑一匹
紵絲織金胸褙麒麟紅一匹、織金胸背麒麟靑一匹、羅織金胸背麒麟紅一匹、織金胸背獅子 靑一匹
成 宗
14年(1483) 7月 2日
紵綵織金獅子胸背大紅一匹、羅織金獅子胸背大紅一匹、黑綠一匹、素柳靑一匹、亮綠一 匹、紗織金麒麟胸背大紅一匹
<표 1>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직금흉배 기록
을 정리하면 <표 1>와 같다.
직금흉배의 기록은 세종연간에서 성종대 즉 1435년에서 1483까지의 기록에 집중적으로 나타 나고 있어 직금흉배는 15세기에 많이 사용된 특 징적인 직물임을 알 수 있다.
직금흉배직물은 복식의 형태가 아닌 필(匹)단 위의 직물로서 유입되었으며 보통 1필을 기준으 로 하였으나 드물게 2필의 단위도 보인다. 직금 흉배의 표기는 바탕직물에 문양이 없는 경우에 는 ‘저사직금흉배기린대홍일필(紵絲織金胸背麒 麟大紅一匹)’과 같이 바탕직물종류, 직금, 흉배, 문양, 색, 수량 순으로 이루어졌으며, 바탕직물 에 문양이 있는 경우에는 ‘직금흉배기린암골타 운흑록저사이필(織金胸背麒麟暗骨朶雲黑綠紵絲 二匹)’과 같이 직물명을 뒤로 빼어 직금, 흉배, 흉배문양, 바탕직물문양, 색, 바탕직물종류, 수량 순으로 표기되기도 하였다. 모든 직금흉배 직물 은 필을 단위로 사용한 것으로 보아 당시 흉배 는 탈ㆍ부착식의 흉배가 아닌 흉배문양을 직물 에 직접 직성(織成)한 직물형태임을 알 수 있다.
즉 직물을 제직하기 전에 흉배 위치를 정하고 한 벌의 옷을 만들 분량을 미리 설계하여 제직 한 ‘직성필료(織成匹料)’(심연옥, 1998)였음을 알 수 있으며, 1필은 1벌 분량의 단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록에 나타난 직금흉배의 문양은 기린(麒麟), 백택(白擇), 사자(獅子), 호표(虎豹)등이다. <노걸 대>에는 고려의 상인들이 중국에서 직금흉배를 구입해 이를 팔아 이익을 남겨야 한다고 흥정하 는 상황이 묘사되어 있어 당시 직금흉배는 사사 로이 매매가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실록에 기록된 직금흉배문양이외에도 다양한 종류의 문양이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인 천 석남동에서 출토된 직금공작흉배를 통해서 도 이 같은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흉배를 직금한 바탕직물은 고려시대에는 단자 (段子)로 나타나며, 조선시대에는 저사(紵絲)가 많이 사용되었다. 저사와 단자는 모두 수자조직 으로 제직된 직물이며 특히 저사는 명대에 5매 수자조직 단직물의 명칭으로 일반화되어 있었 다(趙豊, 2005). 문양에 대한 언급이 없이 저사로 만 표기한 것은 문양 없이 제직한 무문단(無紋 緞)임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발
견된 조선전기 직금흉배유물 3점도 모두 무문단 즉 저사를 사용하고 있어 이러한 문헌의 기록을 실증한다.
라(羅)직물 바탕의 직금흉배는 세종 때를 제 외하고는 매번 저사 직금흉배와 함께 하사되어 계절에 관계없이 흉배의 바탕직물로 많이 쓰였 음이 나타난다. 사(紗)는 단종 14년 윤6월과 성 종 14년 7월에 2차례 하사된 기록으로 보아 여 름 옷감용으로 사용되었음이 나타난다.
직물바탕에 문양이 시문된 예는 매우 드문데 단종과 세조 때의 직금기린흉배에 무리구름문 [骨朶雲紋]의 저사와 사직물이 사용되었다.
흉배 바탕직물의 색은 기린흉배의 경우 대홍, 홍, 록, 흑록, 청, 심청으로 다양하게 나타나며, 백택은 홍, 청, 사자는 홍, 청, 록, 대홍, 호표는 대홍, 청, 심청색이 쓰였다.
Ⅲ. 한국과 중국의 직금흉배유물 출토현황
한국의 직금흉배유물의 출토현황을 살펴보고 중국의 직금흉배유물과 비교하여 유물의 연대 와 구성특징을 살펴보았다.
1. 국내 직금흉배유물의 출토현황
앞서 언급한바와 같이 현재까지 국내에서 조 사된 복식유물 중 바탕직물에 직접 흉배문양을 직성한 유물은 모두 3점이 있다.
용인 영덕동에서 출토된 단령은 수의로 사용 되었으며 출토당시 제일 바깥쪽에 입혀져 있었 다(박성실, 이명은, 2010). 무문단 바탕에 가슴과 등에 금사로 단호흉배를 직금한 여성용 홑 단령 이다. 이 단령의 직물명을 문헌에 근거하여 명 명한다면 ‘저사직금흉배호표심청(紵絲織金胸背 虎豹深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단령의 색 상은 퇴색되어 원래의 색은 알 수 없으나 소매 안쪽 부분에 짙은 청색이 남아있어 원래 아청색 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천 석남동에서 출토된 단령은 보공품으로 사용되었으며(김미자, 송미경, 2005) 용인 영덕
출토지 복식 앞면 뒷면 흉배문양
용인 영덕동
출토
여성 단령
(출처: 국립대구박물관 제공) (출처: 국립대구박물관 제공)
(출처: 국립대구박물관 제공)
인천 석남동
출토
여성 단령
(출처: 인천 석남동 회곽묘 출토복식(p.6) 인천광역시립박물관. 2005)
(출처: 배순화 제공) (출처: 배순화 제공)
인천 석남동
출토
대금형 상의
(출처: 인천 석남동 회곽묘 출토복식(p.7) 인천광역시립박물관.
2005)
(출처: 배순화 제공)
(출처: 배순화 제공)
<표 2> 국내출토 직금흉배유물의 현황
동 출토 단령과 마찬가지로 아청색의 무문단에 등과 가슴에 금사로 공작흉배를 직금한 여성용 홑 단령이다.
인천 석남동의 동일 묘에서 출토된 대금형 상 의 역시 보공품으로 넣어졌던 것으로(김미자, 송미경, 2005) 가슴과 등에 공작흉배를 직금하였 으나 앞쪽에서는 오른쪽 길부분에 반쪽 흉배만 있을 뿐 왼쪽에는 흉배가 없이 무문단으로 구성 되었다.
이들 유물의 연대는 묘주의 생몰연대를 알 수 없어 정확히 확인할 수 없으나 선행연구에서는 복식의 형식과 직물의 제직기법 등을 통해 시대 를 추정하였다. 용인 영덕동 출토복식유물의 연 대에 대해 박성실, 이명은(2010)은 16세기 중후 반기로 추정하였다. 인천 석남동 출토복식유물
의 연대에 대해서 조효숙, 배순화(2005)는 직물 연구를 통하여 15세기로 추정하였으며, 김미자, 송미경(2005)은 복식고찰을 통해 16세기 초기 이전으로 추정하였다.
2. 중국 직금흉배유물의 출토현황 중국에서 흉배는 몽골시기와 원대의 유물에 서 처음 보이며 직조 또는 자수, 금박기법으로 복식의 앞이나 뒤에 방형의 문양을 장식하였다.
원대의 직조흉배는 모두 금사를 바탕직물에 짜 넣어 문양을 시문한 직금흉배이다. 원대에는 금 사를 사용한 직금직물이 매우 유행하던 시기로 흉배도 금사로 제직하여 화려하게 장식했음을
<그림 5> 상의, 명대 (출처: 織繡券 (p68) 北京文物精粹大系編委會, 2001, 북경:
北京市文物局)
<그림 1> 반수포, 원대 (출처: 中華歷代服飾藝術 ( p.323) 黃能馥외 1인. 1999,
북경: 中國旅遊出版社)
<그림 2> 착수포, 원대 (출처: 黃金․絲綢․靑花瓷 (p.50) 趙豊외 1인. 2005, 홍콩: 藝紗堂,
服飾工作隊)
<그림 3> 단령, 명대 (출처; 필자촬영)
<그림 4> 상의, 명대 (출처: 織繡券 (p.72) 北京文物精粹大系編委會, 2001,
북경: 北京市文物局)
알 수 있다. 원대 직금흉배의 출토 예로는 내몽 고 달무기(達茂旗) 명수묘(明水墓)에서 화훼(花 卉), 물, 석산(石山)문양의 직금흉배 잔편이 발견 되었으며, 산동 추성(鄒城) 이유암묘(李裕庵墓) 에서는 능문능(菱紋綾) 바탕에 매작문(梅雀紋) 직금흉배의 반수포(半袖袍)<그림 1>가 출토되었 고, 개인소장으로 소나무, 사슴문양의 직금흉배 도 남아있다. 개인소장으로 남아있는 또 다른 1 점은 짙은 청색에 전면만 토끼문의 직금흉배가 시문된 착수형의 포<그림 2>이다.
고려 말 <원간노걸대>에 기록된 ‘아청금흉배 단자’와 ‘금흉배’는 바로 이 같은 형식의 직금 흉배직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명대 절강성 가흥(嘉興) 왕점묘(王店墓)에서는 곡수지단봉문능(曲水地團鳳紋綾) 바탕에 금사로 쌍학흉배가 가슴과 등에 짜여 진 직금흉배단령 이 출토되었다. 북경 풍태(豊台) 장신점(長辛店) 에서는 운문단바탕에 사슴문양흉배가 직금된 여오(女袄)(織繡券, 2001, 복식명은 중국보고서 의 명칭을 따름)가 출토되었으며, 명대의 직금 흉배유물은 원대의 형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으 며 복식의 형태는 교임형의 단령과 여성용 상의 가 주를 이룬다.
위와 같이 직성형 직금흉배는 중국 원대와 명
대의 유적에서 많이 출토되어 문헌에 기록된 직 금흉배 유입시기인 고려 말, 조선 초와 일치한 다. 따라서 바탕직물에 직접 문양을 금사로 시 문한 직금흉배는 14세기에서 15세기까지 사용된 초기 흉배의 형태임을 알 수 있다
Ⅳ. 직금흉배 유물의 제직특성 및 직조설계
1. 금사의 형태와 특징
직금흉배 유물 3점에 사용된 금사의 형태는 모두 연금사이며 금사의 형태에 따라 금박연금 사와 편금연금사로 구분된다. 금사의 형태와 특 징은 다음과 같다.
1) 금박연금사
용인 영덕동 출토 단령의 금사는 배지가 없이 심사에 금박을 붙여 만든 연금사의 형태이며 금 박의 박락이 심하다. 심사는 좌연으로 강하게 꼬임을 준 견사를 사용하였다. 금사의 너비는 0.137~ 0.218㎜이며 금박이 박락된 부분에서는 실이 풀어지면서 굵어지는 현상이 보인다.
오준석 외(2010)의 선행연구에서는 ATR 부착 적외선분광기로 측정한 스펙트럼을 분석하여 접착제가 단백질계 아교였을 것으로 추정하였 다. 또한 금박의 성분은 SEM-EDS를 이용한 금 속사의 성분 분석에서 금(Au), 탄소(C)가 주성분 으로 검출되어 순금 100%의 금사로 확인하였다.
금박연금사는 중국 요대와 원대, 명대의 유물
요대 원대 명대
球路大窠卷草对雁罗袍 (중국 항주실크박물관 소장,
필자촬영)
肩襕纹样纳石失 (중국 항주실크박물관 소장,
필자촬영)
褐色素面罗金丝刺绣裙服 (중국 항주실크박물관 소장,
필자촬영)
<표 3> 중국의 금박연금사
중에 다수 확인된다.
<그림 6> 영덕동 출토 직금흉배단령 금사(×100)
<그림 7> 영덕동 출토 직금흉배단령 금사(×200)
중국 요대, 원대, 명대의 금사유물 중 금박을 붙여 만든 유사기법의 금사를 조사하여 직금흉 배의 금사와 비교해 본 결과 금사의 표면특징에 일부 차이는 있으나 심사의 형태와 금박을 접착 한 제작형식이 단령흉배의 금사와 유사한 표면 특징을 보인다.
심사는 모두 견사를 사용하였으며 단령흉배 금사와 마찬가지로 모두 좌연[Z연]의 합연사로
강한 꼬임을 주었다. 일부 금박이 박락되면서 실이 풀어진 부분에서는 이합연사가 확인된다.
금사의 두께는 용인 영덕동 단령의 금사와 중국 의 금사 모두 0.137~0.28㎜정도로 유사하였으며, 중국 금사의 금속성분 분석결과 대부분 금으로 확인되었다.
이 같은 금박연금사가 원래부터 심사에 금박 만 하여 만든 것인지, 아니면 심사에 말아 감은 편금사의 배지가 보존환경에 의해 녹아 없어지 면서 금박만 남은 것인지에 대한 여부는 앞으로 더 정밀한 분석과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본다.
2) 편금사를 말아 감은 연금사
석남동 출토 단령과 저고리에 사용된 금사는 초기 보고서의 금사 잔편 사진<표 4>에는 견사 인 심사에 편금사를 말아 감은 연금사임이 확인 된다. 그러나 최근 인천시립박물관에서 제공한 사진자료에서는 일부에서만 편금사를 말아 감 은 흔적이 있을 뿐 전체적으로 배지가 잘 보이 지 않으며 금박이 탈락되고 있어 금박연금사와 같은 외관을 보인다.
이 같은 연금사는 중국 항주 실크박물관 소장 의 명대 곡수지단봉직금쌍학흉배의 금사에서도 확인된다. 조사결과 배지가 다른 일반 금사의 배지보다 매우 얇아서 거의 녹아 없어졌음을 알 수 있었으며, 중국 항주 실크박물관의 분석 결 과 사용된 배지는 죽지(竹紙)로 분석되었다. 석 남동 출토 금사의 배지가 죽지인지는 현재 확인
금사 편금사의 너비 연금사의 굵기
<표 4> 인천 석남동 출토 직금흉배단령의 금사와 크기
제직특성 영덕동 출토 직금흉배단령 석남동 출토 직금흉배단령 석남동 출토 직금흉배 대금형 상의 밀도
올/1㎝
경사 93 68 66
위사 30 29 28
꼬임 경사 좌연사 좌연사 좌연사
위사 무연 무연 무연
조직 5매 2뜀 경수자조직 5매 3뜀 경수자조직 5매 3뜀 경수자조직
부분확대
<표 6> 바탕직물의 제직특성
금사 편금사의 너비 실의 굵기
<표 5> 중국 실크박물관 소장 곡수지단봉직금쌍학흉배단령의 금사와 크기
할 수 없으나 조선전기 직금흉배유물이 중국에 서 유입된 것으로 미루어 중국 전통 배지인 죽 지일 가능성도 클 것으로 추정된다. 석남동 출 토 단령 금사의 두께는 0.31㎜, 편금사의 너비는 0,98㎜이며 중국 실크박물관 소장 곡수지단봉직
금쌍학흉배단령의 금사의 크기도 두께는 0.3㎜, 편금사의 너비는 0,963㎜정도로 용인 연덕동 금 사와 거의 일치한다.
<그림 8> 영덕동 출토 직금흉배단령의 5매2뜀 수자조직과 식서의 조직모형도
<그림 9> 석남동 출토 직금흉배단령과 대금형 상의의 5매 3뜀 수자조직 조직모형도
2. 직금흉배의 조직
직금흉배유물 3점의 제직기법은 경사는 지경사 1종류, 위사는 지위사와 문위사 2종류를 사용하여 지경사와 지위사는 바탕조직을 짜고 그 위에 문위 사를 덧 짜서 이중으로 문양을 시문하였다.
1) 바탕부분
용인 영덕동 출토 단령의 바탕직물은 무문단 이며, 깃, 소매, 무 역시 동일한 무문단을 사용 했다. 바탕부분의 조직은 5매 2뜀 경수자조직이 며(그림 8), 경사는 좌연의 견사이고 위사는 좌 연의 실을 3올 합사하여 꼬임을 주지 않고 나란 히 병사로 사용하였다. 위사의 굵기는 경사의 약 3배정도이다. 경위사밀도는 93×30올/㎠이며, 두께는 약 0.42㎜, 직물의 총 너비는 63㎝이다.
식서부분의 너비는 0.8㎝이며 경사를 2올, 3올씩 합쳐서 1/1 2/1의 혼합능조직으로 제직하였다.
석남동 출토 단령과 상의 역시 바탕직물은 무 문단이다. 바탕부분의 조직은 5매 3뜀 경수자조 직이며(그림 9), 경사는 좌연의 견사이고 위사는 좌연의 실을 3올 합사하여 꼬임을 주지 않고 나 란히 병사로 사용하였다.
2) 흉배부분
흉배문양부분은 문위사인 금사를 봉취직 [brocade]으로 덧 짜서 시문하였다. 즉 지경사와 지위사가 바탕조직을 짜고 흉배문양부분에서만 금사를 직입하여 흉배의 문양을 시문하였다. 금 사는 식서에서 식서까지 직입되지 않고 문양이
필요한 부분에서만 짜 넣어 부분적으로 위이중 조직을 만들었다. 중국에서 봉취직은 ‘통경회위 (通經回緯)’, 또는 ‘통경단위(通經斷緯)’의 기법 이라 하며, 이 조직으로 제직된 직물을 ‘장화(粧 花, 壯花)’라 한다.
영덕동 출토 직금흉배직물의 바탕은 지경사와 지위사가 5매 2뜀 경수자조직으로 제직되고 흉 배부분에서는 지경사 1올 금사 1올을 번갈아 제 직하여 금사로 문양을 표현하였다. 금사는 한올 건너 한올씩의 지경사에 의해 1/4 좌향 위능직 으로 조직되었으나 실제로 지경사를 한올씩 건 너뛰었기 때문에 표면에 드러난 문위사는 1/9 10매 위능직으로 나타난다(그림 11). 직물 뒷면 에서 금사는 조직되지 않고 길게 떠있다.
석남동 출토 단령과 상의의 조직은 지경사와 지위사가 5매 2뜀 경수자조직으로 조직되고 그 위에 금사를 덧 짰으며 지위사와 문위사의 직입 비율은 1:1이다. 문위사는 한올 건너 한올의 지 경사에 의해 1/4 우향 위능직으로 조직되었다 (그림 12). 뒷면에서 금사는 조직되지 않고 길게 떠있다.
<그림 10> 영덕동 출토 직금흉배단령 흉배문양부분의 뒷면
<그림 11> 영덕동 출토 직금흉배단령의 직금부분 조직모형도 <그림 12> 석남동 출토 직금흉배단령과 대금형 상의의 직금부분 조직모형도
<그림 13> 고려(1346), 조문직금능 조직모형도
<그림 14> 중국 명대중기, 곡수지단봉직금쌍학흉배 직금조직모형도
<그림 15> 조선중기 직금 조직모형도
제직특성 영덕동 출토 직금흉배단령 석남동 출토 직금흉배단령 석남동 출토 직금흉배 대금형 상의
조직 1/4 좌향 위능직 1/4 우향 위능직 1/4 우향 위능직
부분확대
<표 7> 흉배 문조직의 제직특성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영덕동 출토 직금흉 배직물과 석남동 출토 단령 및 대금형 상의의 직금흉배직물은 매우 유사한 조직구조를 보인 다. 바탕직물은 모두 5매수자조직이고, 지위사와 문위사[금사]가 1:1로 직입되었으며 금사는 지경 사에 의해 1/4 5매능조직으로 조직되었다. 문조 직의 능선방향만 다를 뿐이다.
우리나라의 직금유물 중 금사를 지경사와 1:1 로 직입하고, 문위사를 격 올의 지경사를 사용 해 능조직으로 제직하는 기법은 고려 말 유물에 서 확인되는 특징적인 형태이다(그림 13).
중국 실크박물관에 소장된 명대 곡수지단봉직
금쌍학흉배 단령의 조직은 <그림 14>와 같이 바 탕은 2/1경능조직 바탕에 1/5능조직으로 문양을 제직한 문능직물 위에 금사를 지경사와 1:1로 짜 넣어서 문양을 시문하였다, 금사의 조직은 지경사에 의해 6매 능조직으로 제직되어 바탕문 양의 유무만 다를 뿐 영덕동과 석남동 직금직물 의 문조직과 유사한 특징을 보인다.
15세기 이후 출토되는 직금직물 조직의 대부 분은 지경사와 금사가 2:1로 직입되며, 문위사를 조직하는 지경사를 한 올 건너 한 올씩 사용한 5매수자조직이지만 결과적으로 10매 위수자조 직의 효과(그림 15)를 나타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림 16> 용인 영덕동 단령 직조설계
<그림 17> 용인 영덕동 단령 복식구성
따라서 직금흉배유물 3점의 조직구조는 중국 명대중기 직금의 구조와 유사하며 이를 근거로 볼 때 용인 영덕동 직금흉배직물과 인천 석남동 출토 직금흉배 직물의 제작연대는 15세기로 추 정된다.
3. 직금흉배직조설계
직금흉배 복식에 표현된 흉배문양은 반으로 나누어 두 폭에 각각 제직되었으며, 복식을 구 성하면서 서로 맞대고 이어서 한 문양으로 완성 하였다. 앞길과 뒷길은 따로 붙인 것이 아니고 연이어져 있으므로 직물을 제직할 때 앞쪽흉배 와 뒤쪽흉배가 어깨선에서 어느 지점까지 내려 와서 위치할 것인지 미리 설계를 하고 이에 맞 추어 흉배를 짜야만 한다. 즉 복식의 구성에 따 라 흉배문양의 위치를 결정하여 설계한 후 이에 맞추어 한 벌 분량의 옷감을 제직한다. 문헌에 나타나는 직금흉배직물이 1필 단위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한 벌을 만들 분량을 1 필 단위로 나타냈음을 알 수 있다.
용인 영덕동에서 출토된 단령에서 앞길의 흉 배는 어깨선에서 16cm 내려온 지점에 위치하고,
등길은 어깨선에서 15cm 아래 흉배가 짜여졌다.
길 부분은 전폭을 사용했으며 앞뒷길은 양옆에 무를 덧대었다. 폭 너비는 내폭이 58㎝, 식서가 양쪽 2.3㎝로 총 폭 너비는 60.3㎝이다. 직금흉 배직물 설계는 <그림 16>와 같이 유추해 볼 수 있다. 왼쪽 길 A는 뒤쪽만 흉배를 짜고 앞쪽은 흉배문양 없이 무문단으로만 제직한다. 오른쪽 길 B는 앞쪽 흉배를 짜고 나서 21㎝를 무문단으 로 짠 뒤 다시 흉배를 제직하였다. 겉섶 C는 흉 배를 반쪽 제직하여 오른쪽 앞길의 흉배문양과 한 문양을 이루도록 하였다. 그 외 안섶, 무, 깃, 소매의 한삼은 무문단을 사용하였다. A와 C의 흉배문양은 B폭의 문양이 반복되는 것으로서 다른 문양 설계 없이 B폭과 연이어 제직하고, 소매와 무에 필요한 무문단을 조금 더 제직하여 전체 1필로 구성하였다. 복식구성 시에는 <그림 17>와 같이 A, B, C 3폭으로 재단하여 구성한다.
인천 석남동 출토 여성단령의 흉배는 가로 36
㎝, 세로 33㎝로서 용인 영덕동 직금흉배보다 조금 더 크다. 흉배는 앞길에서는 어깨선에서 15.8cm 내려온 지점에 위치하고, 뒷길에서는 앞 길보다 흉배가 조금 더 위에 붙어 있어 깃 뒷중 심선에서 14㎝ 아래에 달려있다(박성실, 이명은,
<그림 19> 직금흉배 대금형 상의 복식구성
<그림 18> 석남동 출토 직금흉배 대금형 상의 직조설계
2010). 폭은 약 60.8㎝로 크기의 차이는 있으나 직조설계는 용인 영덕동 출토 단령과 같다.인천 석남동에서 출토된 대금형 상의는 어깨솔기 없 이 너비 61.5cm 전폭을 사용하여 길이 77cm 앞 뒷길을 만들었다(김미자, 송미경, 2005). 뒷면에 는 두 폭을 맞대어 완전한 공작흉배문양을 구성 하였으나 앞면에서는 오른쪽 길에만 흉배가 짜 여 졌고 왼쪽에는 흉배가 없이 무문단으로 구성 되어 흉배는 반쪽만 시문된 형태이다.
중국에서 출토된 명대의 직금흉배 상의(上衣) 는 모두 교임형으로 앞쪽과 뒤쪽에 모두 흉배가 완전한 문양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인천 석남동 출토 대금형 상의는 교임형 상의용으로 설계된 직금흉배직물을 대금형으로 구성하면서 겉섶부 분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앞쪽에서 흉배문 양이 오른쪽 반만 시문되는 현상이 만들어졌을 것으로 유추된다.
대금형 상의의 직조설계는 <그림 18>과 같이 유추해 볼 수 있다. 오른쪽 앞뒷길 B는 어깨선 에서 앞뒤에 간격을 두고 흉배를 반쪽씩 짜고, 왼쪽 앞뒷길 A는 뒤쪽만 흉배를 짜고 앞쪽은 흉 배문양 없이 무문단으로 제직한다. 원래 직물에 는 겉섶 C부분도 있었을 것이나 대금형으로 복 식을 구성하면서 겉섶 C는 사용하지 않고 왼쪽
앞뒷길 A와 오른쪽 앞뒷길 B로만 구성하여 앞 쪽에서 흉배가 오른쪽 반쪽만 시문되는 현상이 생긴 것으로 본다.
Ⅴ. 직금흉배의 문양
직금흉배유물 3점의 문양 구도와 조형성은 다 음과 같다.
용인 영덕동 출토 단령의 흉배문양은 단호문 (單虎紋)이며 앞뒤로 동일하게 짜여졌다. 화면 위로는 꼬리가 이어진 무리구름형태의 서운(瑞 雲)이 가득하고, 양옆으로 영지가 피어있는 영 산(靈山)을 표현했다. 왼쪽 화면의 바위산에서는 폭포가 쏟아지고 폭포물이 강이 되어 흐르다 바 다로 흘러드는 산수의 모습을 세세하게 묘사하 여 마치 송대 산수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이 같이 서정적으로 표현된 자연의 모습은 후대 의 흉배문양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해수(海水)는 부채꼴 모양으로 겹치면서 펼쳐진 평수(平水)에 파도의 끝이 말려드는 랑수(浪水) 를 더하고 물보라를 표현했다. 이 같은 바위산 과 수파로 이루어진 문양을 ‘강애해수문(江崖海 水紋)’이라 하며(심연옥, 2006) 흉배의 하단과
<그림 20> 용인 영덕동 출토 단령 흉배문양도안
<그림 21> 대명회전 호표흉배문양 <그림 22> 인천 석남동 출토 단령 흉배문양도안
<그림 23> 인천 석남동 출토 대금형 상의 흉배문양도안
<그림 24>『대명회전』공작 흉배문양
<그림 25> 매작문 직금흉배
(출처: 中國絲綢藝術史 (彩版 p.30) 趙豊. 2005, 북경:
文物出版社)
명․청대 용포(龍袍) 및 망포(蟒袍)등의 하단무늬 로 많이 쓰였다. 강애해수의 길상적 의미는 산 하(山河)를 통일하여 모두가 하나로 돌아간다는 뜻을 지닌다. 화면의 가운데는 큰 몸집의 신령 스런 호랑이가 영산에 앉아 고개를 돌려 아래 세상을 응시하고 있다.
<대명회전>의 호표문흉배는 호랑이와 표범이 함께 묘사되어 있으며 배경에 비해 동물이 작게 표현되어 있고, 하단에도 바위산만 있을 뿐 해 수가 없어 구도나 소재면에서 영덕동 흉배와 많 은 차이를 보인다.
인천 석남동 출토 단령과 대금형 상의의 흉배 문양은 모두 공작문이며 소재와 구도에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두 점 모두 상단에는 무리 구름문을 충전시켜 서기(瑞氣)를 표현하고 하단 에는 해수를 배치하여 용인 영덕동의 단호문 흉 배와 유사한 구도를 보인다. 바위산에는 모란과 산다화가 가득 피어 부귀를 상징하고 있다. 화 면 중앙으로는 두 마리의 공작이 위와 아래로 자리하고 머리를 돌려 서로 마주보고 있다. 위
쪽의 봉황은 날아드는 모습이며 아래쪽의 공작 은 바위에 앉아 있는 모습 또는 연꽃이 핀 연당 (蓮塘) 위에 내려앉으려는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대명회전>의 공작문흉배도 연꽃과 수초 가 피어있는 연당문이 시문된 유사한 형식을 확 인할 수 있다. 연당문은 원대의 복식, 도자기 등 의 문양에서 기원하며 이것이 명대까지도 이어 져 많이 사용된다.
중국 몽골시기와 원대의 초기 직금흉배문양은 매작문(그림 25), 산수문과 같이 송대에 유행한 화조, 화훼문양이 보이며, 원대의 대표적인 문양 인 ‘춘수추산(春水秋山)’문양도 나타난다. ‘춘수 추산’문양은 중국 북방민족들이 봄에는 물가에 서 가을에는 산림에서 수렵하는 장면을 문양화 한 것이다. <그림 26>은 해동청(海東靑)이 토끼 를 추격하는 수렵장면이 묘사되어 있는 ‘추산’
의 문양이다. 또한 <그림 27>과 같이 소나무와 꽃 사이에 서녹(瑞鹿)을 단독으로 배치한 문양 도 있다. 따라서 원대의 흉배문양은 당시 많이 사용된 직물문양을 방형(方形)으로 도안하여 장
<그림 26> ‘추산’문 직금흉배 (출처: 黃金․絲綢․靑花瓷 (p.51) 趙豊외 1인.
2005, 홍콩: 藝紗堂)
<그림 27> 서녹문 직금흉배 (출처: 中國絲綢藝術史 (p.212) 趙豊. 2005,
북경: 文物出版社)
<그림 28> 쌍학문흉배도안 절강 嘉興 王店墓 출토
식적인 효과를 나타냈을 뿐 계급의 의미를 담고 있지는 않았다(趙豊, 2005).
명대의 유물은 원대의 유물에 비해 문양이 정형 화된 모습을 보인다. <그림 28>은 가흥 왕점묘에 서 출토된 명대중기의 직금흉배문양으로 간결하 게 중첩된 운문 사이에 상하로 쌍학을 배치하였으 며 흉배에 테두리를 둘렀다. <그림 29>는 북경 봉 태 장신점(長辛店) 명대묘에서 출토된 직금흉배로 명대의 전형적인 골타운 사이에 새 두 마리가 좌우 로 배치되어 머리와 꼬리를 맞대고 회전하고 있다.
<그림 30> 역시 장신점에서 출토되었으며 상단에 는 구름, 하단에 해수를 배치하고 사슴 두 마리와 선인(仙人)을 주된 문양으로 시문하여 흉배문양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그림 29> 쌍조문직금흉배
(출처: 織繡券 (p.72) 北京文物精粹大系編委會, 2001, 북경: 北京市文物局)
용인 영덕동 출토 단호문 직금흉배와 인천 석 남동 출토 공작문 직금흉배는 흉배문양의 형식 은 갖추고 있으나 구성과 표현양식이 매우 사실 적이고 자유로운 화면구도를 이루고 있어 후대
의 정형화된 흉배문양과는 크게 구분되는 특징 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문양으로 볼 때 유물 3 점의 연대는 명대중기 즉 15세기로 추정된다.
<그림 30> 서녹문직금흉배
(출처: 織繡券 (p.68) 北京文物精粹大系編委會, 2001, 북경: 北京市文物局)
Ⅵ. 결 론
지금까지 조선전기 직금흉배에 관한 문헌기록 과 현전하는 유물 3점의 제직기술을 분석하고 중국의 직금흉배유물과 비교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하였다.
문헌기록으로 볼 때 직금흉배직물은 고려 말 에 중국 원나라에서 처음 유입되었으며 조선시 대에는 세종연간에서 성종대의 기록에 집중적 으로 나타난다. 당시 유입된 직금흉배의 문양은 기린, 백택, 사자, 호표 등이다. 당시 직금흉배의 형태는 <노걸대>의 기록을 통해서 바탕직물에 직접 금사로 흉배문양을 시문한 형식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바탕직물의 종류는 고려시대에는
단자, 조선시대에는 문양 없는 저사, 라직물이 많이 사용되었고, 드물게 무리구름문(骨朶雲紋) 의 저사도 사용되었으며 대부분 1필을 단위로 하였다.
중국에서 직금흉배는 원대와 명대의 유적에서 많이 출토되어 문헌에 기록된 직금흉배 유입시 기인 고려 말, 조선 초와 일치한다. 따라서 바탕 직물에 직접 문양을 금사로 시문한 직금흉배는 14세기에서 15세기까지 사용된 초기 흉배의 형 태임을 알 수 있다.
용인 영덕동과 인천 석남동에서 출토된 직금 흉배 유물 3점에 사용된 금사의 형태는 모두 연 금사이며 용인 영덕동출토 단령의 금사는 심사 에 금박을 붙여서 만든 금박연금사의 형태로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인천 석 남동의 연금사는 편금사를 심사에 말아 감은 형 태이나 현재는 배지가 거의 녹아 없어지고 금박 만이 관찰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중국 명대 의 죽지를 배지로 사용한 연금사와 매우 유사한 특징을 보이고 있어, 석남동 금사도 명대 죽지 연금사의 한 종류일 가능성을 추정해 보았다.
용인 영덕동과 인천 석남동 직금흉배직물 3점 은 거의 유사한 조직을 사용하였다. 바탕직물은 문양이 없는 5매수자조직의 무문단이며, 문위사 (금사)는 지경사와 1:1로 직입되었고 봉취직(장 화)의 기법으로 짜였으며 지경사에 의해 1/4 5매 능조직으로 조직되었다. 이 같은 제직기법은 고 려시대와 중국 원대, 명대의 직금유물에서 보여 지는 특징이다.
직금흉배직조설계는 복식의 구성에 따라 흉배 문양의 위치를 결정하여 설계한 후 이에 맞추어 한 벌 분량의 옷감을 제직한 ‘직성필료’이다. 직 금흉배는 교임형의 복식에 맞도록 설계되었으 며 문양을 반으로 나누어 왼쪽길 앞뒤, 오른쪽 길 뒤, 겉섶 앞에 제직하여 앞뒤로 흉배문양을 나타내었다. 인천 석남동 출토 대금형 상의는 중국유물에서 보여 지는 교임형 상의용으로 설 계된 직금흉배직물을 대금형 상의로 구성하여 겉섶 앞쪽 흉배 반쪽을 사용하지 않아 앞쪽에서 흉배문양이 오른쪽 반만 시문되는 현상이 만들 어졌음을 확인하였다.
중국 원대의 흉배문양은 매작문, 화훼문, 산수 문, 수렵문 등 당시 일반적인 직물에 사용된 문
양을 방형으로 도안하여 장식적인 효과를 나타 냈을 뿐 계급의 의미를 담고 있지는 않았으며, 명대에 와서야 흉배의 문양이 계급을 나타내며 정형화되기 시작한다. 용인 영덕동과 인천 석남 동 직금흉배문양은 상단에 구름, 하단에 해수를 배경으로 하고 중앙에 단호문과 공작문을 배치 한 후대 흉배문의 형식은 보이지만, 소재의 표 현이 사실적이며 자유로운 화면구도를 나타내 고 있어 후대의 정형화된 흉배문양과는 크게 구 분된다.
이상으로 문헌의 기록과 직금흉배유물의 제직 특성 및 조형적 특징을 비교해 볼 때 용인 영덕 동과 인천 석남동에서 출토된 직금흉배유물의 연대는 15세기경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직금흉배직물의 분석 자료는 흉배의 초기 형식과 직금제직기술을 이해할 수 있는 실증적 인 자료를 마련하는데 그 의의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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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王朝實錄 原刊老乞大 飜譯老乞大 老乞大諺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