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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배냇저고리의 조형적 특성과 미적가치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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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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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투고일_2018.08.10. 심사기간_2018.09.01-16. 게재확정일_2018.10.05. 전통 배냇저고리의 조형적 특성과 미적가치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Formative Characteristics and Aesthetic Value of Traditional Baenaet Jeogori 안귀주, 홍익대학교 대학원 An, Guh Joo_Graduate School of Hongik University. 차례. 1. 서론 1.1. 연구의 목적 및 의의 1.2. 연구의 방법 및 범위 2. 이론적 고찰 2.1. 전통사회의 문화적 배경 2.2. 전통 출생의례 2.3. 전통 신생복의 종류 3. 전통 배냇저고리의 조형적 특성 3.1. 구조 및 형태 3.2. 소재 3.3. 색상 3.4. 바느질 방법 및 기타 4. 전통 배냇저고리의 조형미 4.1. 기능미 4.2. 벽사(辟邪)의 미 4.3. 인격미 4.4. 자연미 5. 결론 참고문헌.

(2) 전통 배냇저고리의 조형적 특성과 미적가치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Formative Characteristics and Aesthetic Value of Traditional Baenaet Jeogori 안귀주, 홍익대학교 대학원 An, Guh Joo_Graduate School of Hongik University. 요약 중심어 배냇저고리 전통 배냇저고리 전통 신생아복 한국 전통 유아복. ABSTRACT Keyword Baenaet Jeogori Traditional Baenaet Jeogori Traditional Newborn Baby wear Korean Traditional Baby wear. 출산율이 급격히 감소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 아이에 집중되는 기대와 관심은 더욱 높아져 유·아동제품에 요구 되는 감성의 수준은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다. 특히 배냇저고리는 일생에서 최초로 접하게 되는 의미 있는 옷으 로, 그 기대에 부응하는 디자인 제안을 위한 기초자료를 마련하기 위해 전통 배냇저고리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 였다. 이를 위해 전통사회의 문화적 배경과 신생아의상에 대해 고찰하고, 배냇저고리 유물 20점을 선별하여 조 형적 특성을 분석하였다. 그 결과, 전통 배냇저고리는 성인 저고리와는 다른 독특한 비율의 조형이며, 세부적으 로는 아기들의 신체구조와 기능상의 필요, 사용상의 편의를 위해 깃을 없애거나 긴 고름을 다는 등의 특징이 있 었다. 아기의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며 실타래를 고름으로 단 것도 있으며, 바느질과 가장자리 처리를 제대로 하 지 않거나 시접을 겉으로 나오게 한 것도 있었다. 그 밖에 각각의 배냇저고리에서 지역의 풍습이나 취향에 따라 서 나타나는 조형적 특징을 관찰하여 정리하였다. 그리고 관찰한 배냇저고리의 조형적 특성으로부터 기능미, 벽 사의 미, 인격미, 자연미를 유추할 수 있었다. 전통 배냇저고리의 기능미는 갓 태어난 아기를 위해 선택된 실용 적 조형이 그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면서 발현되었고, 벽사의 미는 악령으로부터 아기를 은폐하기 위한 조형적 노력에서 나타났으며, 검소하고 소박한 형태와 색상에서는 중용의 덕을 겸비한 인격미가, 가공하지 않은 색과 소재의 사용으로 자연미가 발현되었다. 이상과 같이 전통 배냇저고리의 조형적 특성과 그 미적가치를 규명함으 로써 특별한 의미와 기대를 담고 있는 배냇저고리의 디자인 구상을 위한 기초자료와 아이디어를 제공하는데 본 연구의 의의가 있다. As the birthrate has rapidly fallen, increasingly high expectations have been placed on those children who are born and they are the focus of great attention. As a result, the level of emotion associated with goods for infants and children has been continuously rising. Baenaet jeogori is meaningful because people get to wear it for the first time in their life, so a study on the traditional Baenaet jeogori was conducted to prepare basic data for suggesting its design in order to satisfy such expectations. For this, efforts were made to study the cultural background of traditional society and clothes for newly born babies and to select 20 pieces of Baenaet jeogori remains and analyze their formative attributes. It was found that traditional Baenaet jeogori was very different in shape than that for adults. In detail, traditional Baenaet jeogori had breast ties but no collar due to the body structure of babies and functional necessity and for the convenience of users. Some had skeins of thread for breast ties signifying the hope for the health and longevity of babies. There also were some with poor needlework and hem treatment or with the seam allowance shown externally. In addition, observations were made about the formative characteristics of each Baenaet jeogori which appeared following the customs or tastes of different regions and then the results were analyzed. The following aesthetic values were discovered from the observed Baenaet jeogori. The beauty of functions was revealed as practical shapes chosen for new-born babies and it played a prominent role. The beauty of bixie appeared informative efforts to conceal babies from evil spirits. The beauty of personality combined with the virtue of moderation was revealed from plain and simple shapes and colors. The beauty of nature was manifested through using unprocessed natural colors and materials. This study is meaningful in that it provides basic data and ideas to conceive designs of the modern Baenaet jeogori through the research mentioned above.. 428.

(3) 1. 서론 1.1. 연구의 목적 및 의의 급격한 출산율 감소가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있는 반면 태어나는 아이에게 집중되는 기대와 관심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는 유아복 시장의 불황에도 불구하고 일부 고가의 수입 유아제 품이 주목받고 있는 현상과 유·아동제품의 고객이 양가 조부모와 이모·고모·삼촌 등으로 확대 되는 현상1)을 보면 알 수 있고, 이 때문에 유·아동복 제품에 기대되는 가치와 감성의 수준은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다. 특히, 배냇저고리는 인간의 일생에서 최초로 접하게 되는 옷이며 생명탄생의 기쁨을 기념하고 아기가 건강하게 성장하기를 바라는 기원을 담고 있는 의미 있는 옷이다. 하지만 현대 배냇저 고리 제품은 획일적 디자인이며, 배냇저고리의 디자인 개발을 위한 연구와 자료가 부족하다. 연구자가 조사한 전통 배냇저고리와 관련된 선행연구는 고부자(1988)의 ‘제주도민의 초생아 복과 그에 나타난 의식’, 하상효(2000)의 ‘전통 어린이 복식에 관한 연구’, 추은혜(2000)의 ‘출생 의례 복식에 관한 연구’, 김정아(2003)의 ‘1920~1950년대의 아동복식에 관한 연구’, 고부자(2007)의 ‘우리나라 유아의례와 복식의 민속연구’, 김정아(2010)의 ‘개항기 이후 한국 아동복식 연구’ 등이 실태조사를 통한 복식문화와 민속학적 관점에서의 연구를 하였으나 배냇 저고리의 상징성에 치중되어 있는 경향이 있다. 디자인 개발을 위한 연구로는 장은아(2009) 의 ‘신생아 배냇저고리 DIY 상품의 패턴설계 및 봉제방법에 관한 연구’, 윤화영(2010)의 ‘한국 적이미지의 신생아복 개발에 관한 연구’, 이수복(2011)의 ‘천의의 가치로서 배냇저고리의 게 시 표현에 대한 연구’, 남경순(2012)의 ‘우리나라 전통 배내옷의 디자인 개발’ 등이 있으나 배냇저고리의 재연과 제작법 연구에 치중되어 있어 새로운 디자인의 개발을 위한 기초적인 자료와 연구는 부족하다고 생각된다. 이에 본 연구는 전통 배냇저고리의 조형적 특징을 분석하고 이러한 조형을 통해 나타나는 미적 가치를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이를 통해 현대사회가 배냇저고리에 기대하는 가치를 반영한 감각적인 제품을 제안하기 위한 기초자료와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것에 연구의 의의가 있다. 1.2. 연구의 방법 및 범위 연구는 먼저, 서론에서 전통 배냇저고리 조형이 나타나게 된 전통사회의 문화적 배경과 출생의 례, 신생아 의상에 대해 고찰하였다. 이를 위해서 역사적 기록과 민속학, 복식사 분야의 선행연 구를 참고하였다. 본론에서는 전통 배냇저고리 유물의 조형적 특성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미적 가치를 도출하였다. 연구에 참고로 한 역사서와 고서적 등은 유물이 발견된 조선시대로 한정하 고 왕실과 민간의 기록을 모두 포함하였다. 배냇저고리의 조형분석은 가장 오래된 유물이 발견된 1500년대에서부터 1970년대까지의 배 냇저고리 중에서 전문가 집단의 검증을 통해 전통적인 형태와 제작방식이 적용된 20점을 선정 하여 연구의 대상으로 하였다. 유물은 국립 민속박물관, 국립 제주박물관, 대전 시립박물관, 석주선 기념박물관, 제주 민속사 박물관, 경운 박물관 등의 협조를 받아 실물을 관찰하고 도록 과 학술자료 등의 기록을 참고로 하였다.. 2. 이론적 고찰 2.1. 전통사회의 문화적 배경 전통사회에서는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는 것을 당연한 도리로 여겼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임신 을 잘 할 수 있는가는 모두에게 큰 관심사였다. 그래서 잉태를 위한 기자의례(祈子儀禮)는 치성과 주술적인 행위를 통해 일반적으로 행해졌다. 치성은 초자연적인 존재는 물론 자연물을 대상으로도 하였는데, 단군신화에서 웅녀가 신단수 아래에서 지성을 들여 단군을 잉태했다는 설화에서부터2) 조선후기의 「동국세시기」에서 ‘충 1) http://www.fnnews.com/news/201803041732499073 기초조형학연구 19권 5호 (통권89호). 429.

(4) 청도 풍속에 (중략) 삼신당에 가서 아들을 점지해 달라고 비는데 그 행렬이 끊어지지 않는다.’ 라는 기록3)이 있는 것을 보면 오랜 기간 동안 민간신앙의 형태로 성행한 것을 알 수 있다. 주술적인 행위에는 주로 물질적인 것이 동원되었는데, 아이를 낳은 집의 쌀과 미역으로 국밥을 지어 먹거나 탯줄이나 돌부처의 코를 갉아 먹는 등의 음식을 통한 것이 있고, 작은 도끼를 깔고 자거나 차고 다니고, 아들 낳은 여인의 속옷을 훔쳐다 입기도 하였다.4) 잉태가 되면, 태아 때부터 하나의 생명체로서 인격을 부여하고 교육의 대상으로 여겨 산모의 마음가짐, 언행, 음식 등 모든 것이 아기의 신체적, 정서적으로 영향을 준다고 믿고 신중히 행하였고, 태교를 임산부는 물론 가족 전체가 지켜야하는 것으로 여겼으며5) 왕실에서도 임신 사실을 확인 한 후에는 산실청(産室廳)과 호산청(護産廳)에서 임신부 및 태아를 별도로 관리 하였으며 임신이 공식화 된 이후에는 궐 안에서의 태형과 장형, 도살을 금지하였다고 한다.6) 2.2. 전통 출생의례 2.2.1. 출생 출생의례는 일생 중 첫 번째로 겪게 되는 통과의례이며 산모와 아기가 동시에 연결되어 있는 의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민간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대문에 금줄을 쳤다. 금줄은 왼쪽 으로 꼰 새끼줄에 숯과 한지, 붉은 고추나 솔잎을 꽂아서 대문에 쳤는데, 새로운 생명체가 태어난 곳임을 알려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하고 위험한 것으로부터 아기를 보호하는 주술적인 기능을 하였다. 2.2.2. 초삼일 조선시대 민간의 기록 「쇄미록」에서 ‘오늘이 새로 난 아이의 삼일이다. 몸을 씻기고 비로소 새 옷을 입히고 ’라고 한 것을 보면, 전통사회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바로 씻기거나 옷을 입히 지 않고 강보에 싸두었다가 3일 후에 몸을 씻기고 첫 옷을 입힌 것을 알 수 있다. 왕실의 기록 「림산예지법(臨産豫知法)」에 ‘산부는 해산 후 3일 째에 조심스럽게 목욕을 해야 한다’고 되어 있어 왕실에서도 산모와 아이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간으로 3일을 둔 것으로 보인 다. 또한 생후 3일이나 7일에 산실에 깔았던 짚자리를 치우는 ‘권초례(捲草禮)’를 지냈는데, 이것은 민간의 ‘금줄’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7) 2.2.3. 삼칠일(三七日) 산모가 아기를 낳은 후 조심하는 기간을 7일 간격으로 초이레, 두이레, 세이레라고 하며 세이 레를 삼칠일이라고 하였다. 단군신화에서 곰이 여자가 되기까지 21일이 걸렸다는 것과8) 신라 토템의 대상인 닭의 부화기간이 21일이 걸린다는 점 등에서 전통사회에서 삼칠일은 환골탈태 와 완성의 기간으로 여긴 것으로 보인다.9) 민간에서는 금줄을 걷어 외부와의 차단이 해제되는 날이며 친척들이 포대기나 미역 등의 물품을 가지고 산걷이를 가기도 하였다.10) 2.2.4. 백일(百日) 100일이 되면 아기의 생명과 건강이 안정기에 이르렀다는 것을 축하하고 잔치를 벌였다. 백일 에는 출생 후 처음으로 머리카락을 자르고, 백(白)색의 한자는 숫자 백(百)과 동일 음으로 2) 이화형, 「한국전통産育의례 속의 생명중시의식 고찰」, 동아시아 고대학회, 2014, pp.441-442 3)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61091&cid=58728&categoryId=58728 4) 정연학, 「일생의례와 물질문화-출생의례와 혼례를 중심으로」, 역사민속학회, 국립민속박물관 기획논문, 2011, pp.72-73 5) 최래옥, 『한국 민간 속신어 사전』, 집운당, 1995, p.248 6) 신명호, 「근세 한·일왕실의 육아문화 비교연구」, 동북아문화연구, Vol.21, 2009, p.151 7) 김정아, 「개항기 이후 한국 아동복식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1, pp.14-16 8) 일연, 김원중, 『삼국유사』, 을유문화사, 2003, p.37 9) 김대훈, 「동학(東學)에 함유(含有)된 고유사상의 탐구」, 경상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0, pp.55-56 10) 강종원, 「출산 후 '산걷이' 의례 물품의 의미와 기능 : 안동시 추목마을의 사례를 중심으로」, 안동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4, pp.5-6 430.

(5)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가 있기도 하여 백(白)색 옷감을 백(百)줄로 누빈 저고리를 입히거나 백(百)조각의 천을 기워서 옷을 해 입히기도 하였다.11) 이날 백설기 떡을 나눠먹으며 잔치를 하고, 떡을 얻어먹거나 잔치에 초대를 받은 사람들은 쌀, 실타래, 돈 등으로 답례하였다. 왕실 에서도 백일 이후에야 외출을 할 수 있었으며, 조선 후기 왕실의 기록에서는 백일에 음식을 하사하고 하례를 받으며 과거시험을 실시했다는 기록이 있다.12) 2.3. 전통 신생복의 종류 2.3.1. 강보(襁褓) 갓 태어난 아기는 바로 옷을 입히지 않고 몸을 닦은 후 길이는 55㎝, 너비는 65㎝ 크기의 홑이불처럼 갸름한 무명 겹 쌀 포대기로 아기를 감싸고 어깨·배·다리를 세 번 매어주었다. 이 포대기를 ‘강보’, ‘쌀깃’이라고 하며, 아기를 덮어주고 깔기도 하고 업을 때에 두르기도 하였다. 아기를 싸고 묶어주는 것은 어깨에 바람이 들어가지 않게 고정시켜 주면서 갑자기 환경이 바뀐 아기에게 엄마의 자궁안과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한 배려이다.13) 2.3.2. 배냇저고리 전통사회에서는 생후 3일이나 7일이 지나서 첫 옷을 입혔다. 조선시대 민간의 기록 「양아 록」이나 「쇄미록」에 아기가 태어나 초삼일이나 초이레가 되면 ‘깃 업는 옷’을 입히고, 두이 레에 ‘깃 있는 옷에 두렁이’를 입히고, 삼칠일에 비로소 윗저고리와 바지의 모양을 갖춘 의복을 입혔다고 되어있다.14) 조선 왕실의 기록 「대군공주어탄생(大君公主御誕生)의 제」에서도 ‘7일에는 (중략) 강보를 탈의하고 無領衣를 被하매’15)로 기록되어 있어 왕실에서도 생후 7일 이 되어서야 첫 의복으로 ‘무령의’를 입힌 것을 알 수 있다. 아기가 처음으로 입는 옷을 ‘배냇저고리’, ‘배내옷’이라고 하고, ‘백일안저고리’, ‘이란저고리’, ‘이레안저고리’ 등16) 입히는 시기와 기간에 관련된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고, ‘삼저고리’, ‘봇디 (뒤)창옷’으로 부르기도 하였는데 ‘삼’은 탯줄의 의미가 있고, ‘봇’은 ‘태(胎)’의 제주도 방언으 로17) 어머니의 자궁과 분리된 아기를 감싸주는 옷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전통 배냇저고리는 몸을 완전히 감쌀 수 있는 크기이며, 몸을 한 바퀴 둘러서 묶을 수 있는 길이의 고름이 달려있다. <그림 1>은 가장 오래된 배냇저고리 유물로 대전 금고동 안정 나씨 일가 중에 나부부인 용인이씨 묘의 출토복식이며 16세기의 배냇저고리로 추정된다. 깃이 없고 삼베로 만들어진 홑저고리이다. <그림 2>는 경기도 양주의 해평 윤씨 남아 묘의 출토복식으 로 17세기의 배냇저고리로 추정된다. 뒷고대 부분에만 깃이 달려있고, 앞길이 길고 뒷길은 짧은 명주 겹저고리이다. <그림 3>는 1880년대 무명 배냇저고리로 뒷고대부분에만 깃이 형 성되어 있고 명주실을 꼬아서 만든 고름이 달려있다. 배냇저고리는 주로 산모자신이나 시어머니, 친정어머니가 만들었고, 아들을 낳지 못하거나, 과부 등 부정한 사람이 만들면 안 된다고 여겼으며, 좋은 집안의 나이든 사람이 만들어 주면 아기의 명이 길어진다고 여겼다.18) 왕실에서도 태교를 위해서 배내옷은 침선장을 시키지 않고 왕비가 직접 손수 지었다고 한다.19) 또한 효험이 있다고 믿어서 아들 낳은 집의 배냇저고리를 훔쳐 오면 임신이 된다고 하기도 하고, 행운을 준다고 믿어서 잘 보관하였다가 중요한 시험을 치르러 갈 때 배냇저고리를 뜯어서 옷 안에 꿰매어 입고 가기도 하였다.20) 11) 고부자, 「민족조사에 나타난 초생아 옷의 사상 및 상징」, 전통의생활연구, Vol.3, 2009, p.15 12) 주영하 外ㆍ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조선왕실의) 출산문화』, 이회문화사, 2005, p.38 13) 하상효, 「전통 어린이 복식에 관한 연구-조선 후기의 복식을 중심으로」, 중앙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0, pp.13-14 14) 최남선, 『조선상식(朝鮮常識) 풍속편』, 1948, 동명사, pp.46-47 15) 김정아, Op. cit., p.18 16) 고부자, Op. cit., p.4 17) 고부자, 「제주도민의 초생아복과 그에 나타난 의식」, 문화재학회, Vol.21, 1988, p.5 18) 정연학, Op. cit., p.78 19) 신상천, 「조선 왕세자교육과 유대인 교육을 통한 영재교육 시사점」, 경원대학교대 석사학위논문, 2008, p.5-9 20) 고부자, 「우리나라 乳兒儀禮와 服飾의 民俗 硏究」, 비교민속학회, Vol.37, 2007, pp.257-260 기초조형학연구 19권 5호 (통권89호). 431.

(6) <그림 1> 16세기 배냇저고리,. <그림 2> 17세기 배냇저고리,. <그림 3> 1880년대 배냇저고리,. 대전시립박물관 소장.. 석주선박물관 소장. 석주선박물관 소장. 2.3.3. 두렁치마 두렁치마는 ‘두렁이’, ‘두령이’ 라고도 하며 아기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거나, 보온이 필요한 경 우에 배냇저고리 위에 입혔다. 두렁치마는 어른 치마의 형태로 배와 아랫도리를 둘러주어 따뜻 하게 하고, 누웠을 때 등을 편하게 해 주는 기능을 하며 뒤가 겹치지 않게 착용하여 엉덩이가 보이지만, 기저귀를 갈기에는 편리하다.21) <그림 4>는 무명을 손으로 누빈 1880년대 두렁치 마로 무명 3폭의 좌우에 사다리꼴의 무를 달아 양끝이 쳐지지 않게 하였고, <그림 5>는 도련 을 따라 분홍색 선을 두른 1880년대 무명 누비두렁치마이다. <그림 6>은 어깨끈이 달려 있으 며 뒤 허리는 단추로 고정하는 1900년대 서양목 두렁치마이다.22) 두렁치마는 초이레나 두이레부터 입히기 시작하여23) 길게는 백일이나 돌까지도 입혀지는 경 우가 있었으며 주로 여아들이 입었다. 조선 고종 때의 「왕실발기(宮中撥記)」 중에 왕자의 삼칠일 의대(衣襨)에 누비두렁이가 있는 것으로 보아 왕실에서도 착용한 것을 알 수 있다.24). <그림 4> 1880년대 누비두렁치마,. <그림 5> 1880년대 누비두렁치마,. <그림 6> 1900년대 누비두렁치마,. 석주선박물관 소장. 석주선박물관 소장. 석주선박물관 소장. 2.3.4. 두렁이 두렁이는 ‘배둘이’, ‘배두렁이’라고도 하며 아기의 배 부분을 두르는 옷으로 제주도에서는 ‘배 부레기’라고 한다. 장방형의 작은 보(褓)형태로 끈이 2개 달려있어 배를 타고 끈을 묶어서 착용한다. 홑 면이나 두 겹에 솜을 넣어 누벼서 만들기도 하고 제주도에서는 삼베로 만들기도 하였다 <그림 7>. 2.3.5. 기타 전통사회에서는 포대기를 이용해 아기를 업어서 키웠다. 포대기는 ‘처네’, ‘천의’, ‘두티’ 라고도 하며 대개 무명이나 명주에 솜을 넣어 누벼서 만들었다.25) 아래 너비를 넓게 하여 아기 업은 사람까지 싸게 하였다. <그림 8>는 어른의 솜 누비바지로 만든 포대기로 부족한 부분은 다른 천을 이어서 만든 1880년대 누비포대기이다. 아기가 누워있을 때는 깔포대기, 까리개 또는 깔개라고 하는 요를 사용했다. 주로 굵은 명주나 고운 무명 흰색으로 누벼서 만드는데 솜을 충분히 넣어 푹신하게 만들었다.26) 아기의 탯줄을 자른 후에는 청색 무명주머니 속에 쑥을 넣고 배꼽주머니를 만들어서 배꼽 위에 21) 조효순, 『한국복식풍속사연구』, 일지사, 1998, p.190 22) 석주선기념민속박물관, 『한국전통 어린이복식』, 단국대학교 출판부, 2000, pp.22-23 23) 최남선, Op. cit., p.47 24) http://waks.aks.ac.kr/dir/searchView.aspx?dataID=E0016971@AKS-2013-CKD-1240002_DIC 25) 고부자, Op. cit., p.260 26) 하상효, Op. cit., p.14 432.

(7) 얹어 놓고 끈으로 매어주었다. ‘쑥주머니’라고도 하며, 해독작용과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효능 이 있다고 한다.27) <그림 9>는 덕온공주의 손녀인 윤백영(1888~1986)이 아들의 탯줄 떼어 낸 자리에 데어 주었던 쑥 주머니이다. 왕실에서는 생후 3일째에 첫 목욕을 시키고 ‘부전(付鈿)’이라고 하는 노리개 주머니를 채웠다. 이것은 동의보감의 처방에 따른 것으로 주머니 안에는 주사(朱砂), 웅황(雄黃)을 넣었는데, 혼백을 안정시키고 요정과 악귀와 사악한 기운을 쫒아주는 부적의 효과를 기대한 것이다.28). <그림 7> 제주도 배부레기,. <그림 8> 1880년대 누비포대기,. 해녀박물관 소장. 석주선박물관 소장. . <그림 9> 1907년 쑥주머니, 석주선박물관소장. 3. 전통 배냇저고리의 조형적 특성 3.1. 구조 및 형태 배냇저고리는 길·소매·깃·동정·섶·옷고름으로 이루어져 전체적인 구조는 성인저고리의 구조와 같다. 그러나 남녀공용으로 입혀졌기 때문에 성별이 구분되는 조형요소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 특징이 있다. 배냇저고리는 입고 벗기기 편하고 아기를 충분히 감싸기 위해서 품을 여유 있게 하고, 기저귀 <표 1> 16세기 안정 나씨 묘 출토 저고리와 포의 품과 길이 비교. (단위 : cm) 성별 . 여. 여. 여. 남. 남. 여. 여. 구분 직금 저고리 저고리 1 저고리 2 저고리 4 저고리 5 장저고리 1 장저고리 2. 미확. 배냇. 인. 저고리. 사진 <그림 19> 대전 안정나씨 묘 출토복식 특별전 도록, p.68 <그림 20> 대전 안정나씨 묘 출토복식 특별전 도록, p.72 <그림 21> 대전 안정나씨 묘 출토복식 특별전 도록, p.74 <그림 22> 대전 안정나씨 묘 출토복식 특별전 도록, p.112 <그림 23> 대전 안정나씨 묘 출토복식 특별전 도록, p.114 <그림 24> 대전 안정나씨 묘 출토복식 특별전 도록, p.66 <그림 25> 대전 안정나씨 묘 출토복식 특별전 도록, p.66 <그림 26> 대전 안정나씨 묘 출토복식 특별전 도록, p.77. 99출토지. 품. 길이 품:길이. 68. 49. 성별 . 나부부인 용인이씨. 0.72. 여. 구분 장삼 1. 묘 나부부인 용인이씨. 64. 52.5. 0.82. 여. 64. 53. 0.83. 남. 묘. 장의 1. 나부부인 용인이씨. 과두. 묘 안정나씨 부부. 66. 64. 0.97. 여. 62. 61. 0.98. 남. 장의 2. 묘(남편) 안정나씨 부부 묘(남편) 나부부인 용인이씨. 73. 83. 1.14. 여. 69. 82.5. 1.20. 남. 묘 나부부인 용인이씨 묘 나부부인 용인이씨. 24. 32.5. 1.35. 묘. 여. 도포형 직령 장의 3 중치막 1 장삼 2. 사진 <그림 11> 대전 안정나씨 묘 출토복식 특별전 도록, p.56 <그림 12> 대전 안정나씨 묘 출토복식 특별전 도록, p.58 <그림 13> 대전 안정나씨 묘 출토복식 특별전 도록, p.110 <그림 14> 대전 안정나씨 묘 출토복식 특별전 도록, p.62 <그림 15> 대전 안정나씨 묘 출토복식 특별전 도록, p.102 <그림 16> 대전 안정나씨 묘 출토복식 특별전 도록, p.60 <그림 25> 대전 안정나씨 묘 출토복식 특별전 도록, p.108 <그림 18> 대전 안정나씨 묘 출토복식 특별전 도록, p.52. 출토지. 품. 길이 품:길이. 88. 130. 1.48. 83. 125. 1.51. 62. 99. 1.60. 76. 122. 1.61. 73. 118. 1.62. 73. 119. 1.63. 66. 110. 1.67. 78. 140. 1.80. 나부부인 용인이씨 묘 나부부인 용인이씨 묘 안정나씨 부부 묘(남편) 나부부인 용인이씨 묘 안정나씨 부부 묘(남편) 나부부인 용인이씨 묘 안정나씨 부부 묘(남편) 나부부인 용인이씨 묘. 를 한 다리를 덮을 수 있도록 길게 만들어 하의로서의 역할도 하기 때문에 성인의 저고리에 서의 품과 길이의 비율과 다르다. 16세기의 나부부인 용인이씨 묘 출토 배냇저고리는 품 24cm, 길이가 33cm로 품과 길이의. 27) 석주선기념민속박물관, Op. cit., p.13 28) 신명호, Op. cit., p.159 기초조형학연구 19권 5호 (통권89호). 433.

(8) 비율이 1:1.38 인데, 이는 성인저고리와 다른 독특한 비율이다. <표 1>은 함께 출토된 성인여 자 상의 10점과 동일시기로 추정되는 안정 나씨 부부 묘에서 출토된 성인남자 상의 5점의 품과 길이의 비율을 계산하여 배냇저고리와 비교한 것이다. 표에 따르면 이 배냇저고리의 품과 길이의 비율은 저고리와 포의 중간 수치에 해당하여 의례복과 유사한 특징이 있다. 17세기 해평 윤씨 남아 묘 출토 배냇저고리는 품 29cm, 길이 32cm로 품과 길이의 비율이 1:1.10 이다. <표 2>은 이 배냇저고리를 비슷한 시기의 성인남성 저고리의 비율과 비교한 것으로, 이 배냇저고리는 성인남성의 일상복 저고리의 품과 길이의 비율과 유사한 조형이다. <표 2> 17세기 배냇저고리와 성인 남성 저고리의 품과 길이 비교. (단위: cm) 번호. 성별. 1. 남. 3. 남. 2. 남. 도식화. <그림 27> 한국전통복식사. 17세기 남자 저고리. 연구, p.45. <그림 28> 남아미라 및 출. 17세기 배냇저고리 16세기 말 성인 남자 저고리. 착용자. 품. 길이. 광해군. 60. 73.3. 92. 1.22. 29. 32. 46.7. 1.10. 70. 69.5. 76. 1.00. 해평 윤씨. 토유물 연구논총, p.286. <그림 29> 한국 전통 복식 사 연구, p.44. 소년. 미확인. 화장 품:길이. 3.1.1. 깃 전통 저고리에서 깃은 의상의 개성을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조선시대의 기록에서 배냇저고리를 ‘깃 없는 옷’이라고 한 것을 보면 다른 저고리와 구별되는 배냇저고리의 가장 큰 특징은 ‘깃의 형태’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배냇저고리를 ‘눈·코 없는 옷’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전통사회에서 신생아기간 동안은 온전한 인간의 삶이 아니라고 보아 완벽한 형태의 옷을 입히지 않았고, 이렇게 하는 것이 악령으로부터 아기를 감추기 위한 주술적인 효과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기도 하다.29) 그러나 본 연구에서 분석한 다수의 배냇저고리에는 깃이 달려 있었다. <그림 30>의 16세기 배냇저고리는 깃이 없으나 <그림 31>의 17세기 배냇저고리는 뒷고대부분에만 깃이 있고, <그림 32>과 <그림 33>는 동일 시대의 유물인데 깃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해서, 깃의 유무 는 소재나 구성양식, 지역이나 계절과도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판단되며 취향과 상황에 따라 서 선택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림 34>과 같이 1900년대 이후 배냇저고리 유물에는 대부 분 깃이 달려있으며, 현대복식의 요소가 반영된 형태가 나타나기도 하였다.. <그림 30> 16세기 배. <그림 31> 17세기 배. <그림 32> 1880년대. <그림 33> 1880년대. <그림 34> 1900∼. 냇저고리, 대전시립박물. 내저고리, 석주선박물관. 배냇저고리, 석주선박물. 배냇저고리, 석주선박물. 1920년대 배냇저고리,. 관 소장.. 소장. 관 소장. 관 소장. 석주선박물관 소장. 전통사회에서 배냇저고리를 ‘깃 없는 옷’으로 부르고 기록한 것은 갓 태어난 아기들의 굵고 짧은 목과 연약한 피부를 고려하여, 신생아 옷을 만들 때 목 부분의 형태 결정이 중요하다는 가르침으로 이해해야 할 것 같다. 유물 중에 뒷고대부분에만 깃을 형성한 경우에는 이러한 가르침을 따르면서도 최대한 제대로 된 의복의 형태를 갖추기 위한 심미적인 욕구가 반영된 것으로 보여 진다. 29) 고부자, Op. cit., p.255 434.

(9) 3.1.2. 섶 한복의 저고리는 섶을 달아서 양쪽을 겹쳐 입는 구조이나, 배냇저고리의 경우는 섶을 생략하여 <그림 35>와 <그림 36>처럼 자연스러운 상태에서는 좌우가 겹치지 않는 것도 있었다. 섶이 없어도 좌우의 길을 최대한 겹쳐서 고름으로 동여 묶는 방법으로 입히기 때문에 여밈을 위해서 섶이 반드시 구성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섶의 유무가 깃의 유무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며, <그림 37>, <그림 38>, <그림 39>처럼 깃이 없어도 섶은 있는 형태가 대부분이여서 섶도 취향이나 제작상의 편의를 위해서 선택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다수의 배냇저고리에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섶을 구성한 것은 배냇저고리 를 생애 첫 의복으로 생각하여 ‘예(禮)’와 형식을 갖추기 위한 노력이 반영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림 35> 1900년대. <그림 36> 19세기말. <그림 37> 1880년대. <그림 38> 1880년대. <그림 39> 16세기 배. 겹 냇저고리, 석주선박. 배냇저고리, 국립중앙박. 배냇저고리, 석주선박물. 무명 배냇저고리, 석주. 냇저고리, 대전시립박물. 물관 소장. 물관 소장. 관 소장. 선박물관 소장. 관 소장.. 3.1.3. 고름 전통 배냇저고리에는 천 고름 이외에도 실이나 끈이 고름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실 고름은 배냇저고리의 특징 중의 하나이며 다섯, 일곱, 아홉 가닥을 사용하기도 하고 함경도에서는 80까지 무병장수하라는 의미로 8가락을 꼬아서 달아주었다고 한다.30) 긴 실은 장수를 상징하 여 백일잔치에 실타래를 선물로 하기도 하였고, 돌잡이 물품 중에도 실타래가 있으며, 돌잡이 때는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면실타래로 만든 방석에 앉기도 하였다.31) 실 고름에는 주로 면(綿)실이 사용되었고, 굵기는 얇은 것에서부터 한태래 정도의 굵은 것을 그대로 단 것도 있었다. <그림 40>와 <그림 41>는 당시에는 고가이었던 굵은 실타래가 달린 것으로 보아 부유층의 저고리로 추정할 수 있고, <그림 42>는 얇게 꼰 무명실을 고름으로 달았는데, 청색의 실을 섞어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32). <그림 40> 1900년대. <그림 41> 1900년대. <그림 42> 1880년대. <그림 43> 1880년대. <그림 44> 1930년대. 배냇저고리, 석주선박. 배냇저고리, 경운박물관. 배냇저고리, 석주선박물. 배냇저고리, 석주선박물. 배냇저고리, 국립제주박. 물관 소장. 소장. 관 소장. 관 소장. 물관 소장. 천 고름의 경우, 폭이 3cm 정도에서 1cm미만으로 끈처럼 좁은 것까지 다양하다. <그림 43> 의 천 고름은 끝부분에 다른 천이 이어져 있는데, 장수를 기원하며 천을 이어서 만들었던 풍속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고름의 길이는 몸을 돌려서 묶기 위해서 길게 하였는데, <그림 44>의 고름은 길이가 115cm에 달한다. 고름은 대부분 섶이나 앞길에 고정하는데, <그림 40>은 하나의 긴 실을 겉 길에 고정하여 양쪽 고름으로 사용하였고, 17세기 출토 배냇저고리는 짧은 고름이 진동선에 달려 있으며, 제주도의 삼베 배냇저고리 중에는 <그림 44>처럼 뒷 중심에 고정된 것도 있다. 고름을 길에 고정하지 않은 경우에는 겨드랑이 부분에 실 고리를 만들어 고름을 걸어주었다. 30) 고부자, Op. cit., p.254 31) 석주선기념민속박물관, Op. cit., p.107 32) 석주선기념민속박물관, Op. cit., p.9 기초조형학연구 19권 5호 (통권89호). 435.

(10) 3.1.4. 소매 배냇저고리의 소매는 손을 완전히 덮는 정도로 긴 것이 특징으로 본 연구에서 분석한 배냇저고 리 중 가장 긴 것은 제주도 삼베 배냇저고리로 화장이 57cm에 달한다. 소매를 길게 하는 것은 손톱으로 얼굴에 상처를 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제주도 지역에서는 남아용은 ‘ (온)소매’로 길고 통이 넓게 하고, 여자는 ‘반쪽짜리’로 여겨 여아용은 길이가 짧고 통도 절반 인 ‘반소매’로 하였다. 배냇저고리의 소매가 긴 것은 조선시대에 관복을 손이 나오지 않도록 길게 만든 것처럼, 전통사회에서 손을 ‘죄를 짓는 것’으로 여겼고 ‘소매가 짧으면 자라서 퇴박 받는다.’ 하여 손을 가리는 습속의 영향도 있다.33). <그림 45> 1880년대. <그림 46> 1880년대 누비 배냇저. <그림 47> 1950년대 삼베 배냇저고. 배냇저고리, 석주선박물관 소장. 고리, 석주선박물관 소장. 리, 제주 민속자연사박물관 소장.. 소매는 길과 따로 재단하여 연결하기도 하고, 길과 연결된 한 조각으로 재단하여 진동선이 없는 것도 있다. 배래선은 직선인 것이 다수이며, 수구는 어른의 손이 들어갈 수 있는 정도로 넓다. 배래선이 곡선인 것은 분석한 저고리 20점 중 4점이었다. 한편, <그림 45>의 1880년대 배냇저고리에는 5cm, <그림 46>의 누비 배냇저고리에는 9cm 의 소매끝동이 달려있고, 제주도 삼베 배냇저고리 중에는 <그림 47>와 같이 배래의 아래쪽을 틔어둔 것이 다수 있었다. 3.1.5. 도련 및 트임 배냇저고리의 도련선은 직선 12점, 곡선 8점이었다. 조선시대 성인 저고리에서 도련의 형태는 성별이나 시대에 따른 특징이 있으나, 현재까지 발견된 배냇저고리 유물만으로 시대적 흐름이 나 성별에 따른 특징을 규정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한편, 17세기 배냇저고리<그림 48>는 앞길이가 뒷길이보다 길어서 다리를 가리면서도 기저귀를 갈기 편하게 되어있다.. <그림 50> 제주도 삼베 배. <그림 51> 제주도 삼베 배. <그림 48> 17세기 배냇저. <그림 49> 16세기 배냇저. 냇저고리. 국립제주박물관. 냇저고리. 국립제주박물관. 고리, 석주선박물관 소장. 고리, 대전시립박물관 소장.. 소장. 소장. 기능적인 목적과 장식적인 요소를 가미하기 위해 트임을 넣은 경우도 있다. 16세기 배냇저고 리 <그림 49>은 양쪽에 삼각형의 ‘무’를 달아서 도련 폭이 넓어지는 저고리 선을 만들면서 짧은 트임을 넣어서 장식성과 기능성을 가미하였다. 한편 제주도 배냇저고리는 대부분 <그림 50>과 같이 옆선에 트임이 있고, <그림 51>와 같이 뒤 중심선에 트임을 넣은 것도 있는데, 이는 대소변에 의해서 더러워짐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34). 33) http://folkency.nfm.go.kr/kr/topic/%EB%B0%B0%EB%83%87%EC%A0%80%EA%B3%A0%EB%A6%AC/145 34) 고부자, Op. cit., p.6 436.

(11) 3.2. 소재 전통 배냇저고리의 소재로는 무명, 명주, 삼베가 주로 사용되었고 수의를 만들다가 남은 것으 로 만들기도 하였고35) 개항이후에는 서양목, 거즈(Gaze), 소창지, 융(絨), 전(氈), 등으로도 만들었다. 계절에 따라 겨울에는 <그림 52>처럼 솜을 넣어 누비로 만들고, 봄·가을에는 <그 림 53>과 같이 얇은 겹저고리로 만들었으며, 한여름에는 <그림 54>와 같이 모시나 삼베로 홑저고리를 만들었다. 특히 제주 지역의 배냇저고리 중에는 삼베를 사용한 것이 많은데, 전통사회에서 삼이 약용으로 도 사용되고, 삼베의 거친 표면이 태열로 인해 가려운 피부를 긁어주기 때문이다. 또한 신생아 시기부터 거친 삼베의 촉감을 경험하게 하여 인생의 고난을 체험하게하고 인내를 키우기 위해 서 라고도 한다.36) 전통사회에서는 아기에게 어른의 입던 옷을 뜯어서 옷을 지어 입히면 오래 산다는 속설이 있어 서, 배냇저고리를 장수하는 어른의 입던 옷으로 만드는 풍습이 있었다. 특히, ‘웃옷’은 양반을 상징한다고 생각하여 부귀공명을 이룬 남자 어른의 웃옷을 더 중히 여겨 이것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는 주술적인 믿음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랜 세월동안 연마되어 감촉이 부드럽고 안전이 검증된 소재를 사용하기 위한 지혜이기도 하다. 또한, 옷감이 풍부하지 못했던 환경에 서 아이의 옷을 만들 정도로 성한 옷은 남자의 옷이 대부분이었을 것으로도 추측해 볼 수 있 다.37) 왕실에서도 이와 같은 민간의 풍속을 따라서 고종은 자신의 옷으로 순종의 배냇저고리 를 만들기를 명하였다는 기록이 있다.38). <그림 52> 1880년대 명주 누비. <그림 53> 1900년대 서양목 겹. <그림 54> 1930년대 삼베 홑 배냇저고리,. 배냇저고리, 석주선박물관 소장. 배냇저고리, 석주선박물관 소장. 국립제주박물관 소장. 3.3. 색상 전통사회에서는 백일이전에 아기들에게 백색의 옷을 입혔다. 백색은 인공적인 가공을 하지 않은 ‘소색(素色)’을 포함하여 ‘무색(無色)’을 의미하며, 한복에서 소색은 순수한 흰색에서부 터 무명이나 삼베 고유의 색인 밝은 미색이나 담갈색(淡褐色)까지를 포함한다. 특히 전통사회 에서는 아기에게 염색한 옷을 입히면 옷 욕심이 세어진다고 하고, 삼신할머니가 해코지한다고 하기도 하여39) 반드시 백색 배냇저고리를 입혔다. 본 연구에서 분석한 전통 배냇저고리 20점 중 백색은 5점, 소색이 15점이며, 삼베소재의 경우에 약간의 농도차이가 있으나 인공적인 염 색을 한 것은 아니다. 백색은 대부분의 문화권과 종교에서 순수, 청결, 신성 등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상징하고 있다. 기독교에서는 성스러움, 천사 등의 의미로 사용되고 불교에서도 흰색의 연꽃, 관음보살의 흰옷 등이 청정함과 고귀함을 상징하고 이슬람과 유교, 힌두 문화권에서도 신성한 의식에서 흰색 옷을 입는다. 우리 선조들이 백색을 선호한 것은 오래된 유습이며 한국인이 백의호상(白衣好 尙)의 민족임은 잘 알려져 있다. 전통사회에서 백의를 선호한 이유에 대해서 민족적 감성과 미의식에 의한 선택이라는 견해 외에도 염색기술의 부족과 경제적인 궁핍, 잦은 국상으로 인한 상복(喪服)토착화 등에 의한 필연적인 결과라는 의견도 있으나40), 배냇저고리에서 백색을 35) 고부자, Op. cit., p.253 36) 고부자, Op. cit., p.7 37) 문화제관리국, 『한국민속 종합보고서』, 제24책(산속편), 1993, p.177 38) 김용숙, 『朝鮮朝 宮中風俗 硏究』, 일지사, 1987, p.254 39) 고부자, 앞Op. cit., p.259 기초조형학연구 19권 5호 (통권89호). 437.

(12) 선택한 의미를 보면 우리민족의 백색에 대한 호의(好意)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특히, 16, 17세기 배냇저고리 유물의 경우에 함께 발굴된 옷들에 색상과 문양이 있는 것과 대조적으 로 배냇저고리는 문양이 전혀 없고 소색을 하고 있는 것은 갓 태어난 아기 옷의 색상을 선택하 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끝동이나 무가 달린 경우도 배색(配色)을 한 경우는 없고 실 고름도 소재자체의 색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한편, 1880년 배냇저고리의 실 고름에 청색 실이 섞여 있는 것은 제주도지역에서 양반이나 청금유생(靑衿儒生)들의 청색도포처럼 배냇저고리를 ‘첫 의례복’으로 여겨 청색 물을 들여 입 히기도 한 것처럼41) 입신양명의 기원으로 푸른색을 가미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지역에 따라 백색이 아닌 색도 사용한 경우가 간혹 있는데, 전남지역에서는 산전금기를 어겼을 경우 액을 면하기 위해 분홍색이나 유색으로 만들었다고 전해진다.42) 3.4. 바느질 방법 및 기타 전통 배냇저고리의 제작방법은 성인저고리와 동일하나, 독특한 방법으로 시접을 처리한 것도 있다. <그림 55>은 홑저고리에서 시접을 겉으로 나오도록 처리하였는데, 이는 아기의 피부에 자극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며, 배냇저고리의 제작에 있어서 심미적인 추구보다도 기능적 인 측면이 우선 고려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다수의 홑저고리가 성인저고리와 같은 방법으로 시접이 처리되어 있어서 시접을 겉으로 처리하는 것이 공통적인 특징은 아니다. 바느질 방법은 주로 성근 홈질이 사용되었고, 배냇저고리를 입는 동안은 아직 온전한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바느질도 곱게 하지 않는다고 하는 속설이 있으며43) 유물 중에도 투박한 바느 질이 나타나는 것도 있었다. <그림 56>, <그림 57>은 깃과 섶, 옆선과 배래를 엉성한 바느질 로 고정하였고 가장자리 처리도 하지 않아 옷감의 올 풀림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한편, 겹저고리인 <그림 58>는 백색서양목 두 겹을 홈질하여 뒤집은 후 소매배래와 옆선을 가장자리에서 1cm정도 들어간 위치에서 성글게 홈질하여 옆선과 배래를 마무리 하였다. 이는 아기가 빠르게 성장하는 것을 고려하여 성장 후에 품을 쉽게 늘일 수 있게 한 것으로 추측 된다.. <그림 55> 1950년대 삼베 배 <그림 56> 1900년대 초 냇저고리,. <그림 57> 1930년대 제주도 <그림 58> 1900∼1920년대. 제주민속자연사박물 배냇저고리, 국립민속박물관 소 삼베 배냇저고리, 국립제주박물 배냇저고리, 석주선박물관 소장. 관 소장.. 장. 관 소장. 이상과 같이 분석한 전통 배냇저고리 20점의 조형적 특징을 정리하면 <표 3>과 같다.. 4. 전통 배냇저고리의 조형미 4.1. 기능미(機能美) 기능미는 실용적으로 만들어진 물건이 그 기능을 충분히 발휘함으로써 드러나는 아름다움으 로 공예품이 실용적인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면서도 간결한 구성을 이룰 때 직관적으로 파악되 는 미(美)이다.44) 의술과 위생수준이 낮았던 전통사회에서는 ‘잘 키워야 반타작’이라는 말이. 40) 서봉하, 「한국에서 백의호상 현상이 고착된 배경에 관한 논의」, 한국복식학회, Vol.64.1, 2014, pp.152-162 41) 고부자, Op. cit., p.255 42) 추은혜, 「출생의례복식에 관한 연구:전남지역을 중심으로」, 전남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0, pp.21-22 43) 고부자, Op. cit., p.255 44)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69446&cid=58767&categoryId=59123# 438.

(13) <표 3> 전통 배냇저고리의 조형적 특징 형태 번호. 배냇저고리. 소장처. 추정연 도. 구분. 깃. 섶. 진동. 소매 배래. 고름. 도련. 소재. 색상 세부치수. 품:길. 품:화. 이. 장. 총길이 :화장. 특징. Ⅹ2 가장 오래된 배냇저고리. 깃이 없고 고대에 안단 처리.. 길이:32.5. 대전 1. 시립박 16세기 물관. 홑 저고리. 無. 有. 有. 직선. 천 고름. 곡선. 삼베. 소색. 화장:31 품:24. 겉섶 윗부분에 천을 이어 만듦. 1.35. 1.29. 1.91. 진동:13.4. 폭 1cm정도의 천고름. 등솔기 꼬집어 박음. 수구와 가장자리는 접어 박음. 섶선, 옆선, 배래선은 통솔. 무 달림. 옆트임 있음 뒷고대부분에만 2.5cm너비의 깃 달림.. 길이:32 2. 석주선 17세기 박물관. 중반. 겹 저고리. 無. 有. 有. 직선. 천 고름. 겉에서 상침으로 고정.. 화장: 곡선. 명주. 소색. 46.7 품:. 1.10. 1.61. 2.92. 29. 앞길이를 뒷길이보다 길게 함. 폭 2cm의 천고름. 짧은 고름이 진동선에 달림.. 진동:12. 가장자리 성글게 상침질 함. 뒤 중심선을 접어서 홈질함. 등바대 부위에 천 조각 덧댐. 덧댄 조각이 깃의 형태를 이루고 있음.. 길이:22 3. 석주선. 조선. 홑. 박물관 1880년 저고리. 無. 有. 有. 직선. 실 고름. 곡선. 무명. 소색. 화장: 32 품: 22. 소매 이음선 있음. 5cm 끝동 달림. 소매 1.00. 1.45. 2.91. 진동:10. 끝 올 풀린 상태. 전체적으로 성근 홈질, 도련선은 접어서 홈질 함. 흰색과 푸른 색실을 섞어서 얇게 꼰 무명 실고름.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음. 명주사이에 솜을 넣고 1cm 간격으로. 길이:26 4. 석주선. 조선. 누비. 박물관 1880년 저고리. 無. 有. 無. 곡선. 천 고름. 곡선. 명주. 소색. 화장: 36 품: 30. 손으로 누빈 저고리. 0.87. 1.20. 2.77. 진동:12.5. 폭 3cm의 천고름. 고름의 끝에 문양이 있는 다른 천 이음. 폭이 좁은 섶이 달림 9cm의 소매 끝동 달려 있음.. 국립 5. 민속 박물관. 흰색 거즈소재.. 길이:22 19세기. 홑. 말. 저고리. 無. 無. 無. 직선. 단추여 밈. 직선. 거즈. 백색. 화장: 25 품: 28.5. 고름대신 스냅단추 한개 달림. 0.77. 0.88. 2.27. 목부분은 천을 접어 고대를 팜. 가장자리는 접어서 홈질.. 진동:15. 왼쪽어깨부분이 해져 기웠음. 남아용.. 국립 6. 민속 박물관. 전체적으로 성근 시침질로 바느질함.. 길이:39 일제. 홑. 강점기 저고리. 有. 有. 有. 직선. 실 고름. 직선. 무명. 소색. 화장: 51 품: 33. 뒷중심선 접어서 시침질. 1.18. 1.55. 2.62. 옆 트임 있음. 섶이 뜯겨나간 상태.. 진동:10.5. 가장자리는 성근 감침질. 무명실을 꼬아 만든 실고름. 고가의 실타래를 고름으로 사용한 것으로 부유한 계층의 배냇저고리로 추정됨.. 길이:26 7. 석주선 박물관. 1900∼ 1920 년대. 겹 저고리. 無. 無. 無. 곡선. 실 고름. 꼬임이 없는 하나의 실고름을 오른 길에. 화장: 곡선 서양목 백색. 33.5 품:. 0.84. 1.08. 2.58. 31. 고정하여 양쪽 고름으로 사용. 소매배래와 옆선은 겉에서 1cm정도 들어간 선에서 성글게 홈질하여 막음.. 진동:14. 아기가 성장하면 홈질을 뜯어서 품을 늘여 입은 것으로 추측됨.. 옆선에 6cm 트임 있음.. 길이:26 8. 석주선 박물관. 1900∼ 1920 년대. 겹 저고리. 有. 有. 有. 직선. 실 고름. 부분적으로 재봉틀로 바느질되어 있음.. 화장: 직선 서양목 백색. 33.5 품:. 0.84. 1.08. 2.58. 31. 배래와 옆선은 겉에서 1cm 정도 들어간 선에서 성글게 홈질하여 막음. 아기가 성장하면 홈질을 뜯어서 품을 늘여 입은. 진동:10. 것으로 추측됨.. 거친 삼베소재로 만듦. 길이:26. 국립 9. 제주 박물관. 옆선과 소매선은 겉에서 시침질 함.. 1930. 홑 저고리. 有. 有. 有. 직선. 무명실 고름. 직선. 삼베. 소색. 화장: 49 품: 30.5 진동:10. 옆선에 5cm, 소매에 16cm트임 있음. 0.85. 1.61. 3.77. 가장자리 끝처리 하지 않고 올이 풀려 있음. 촘촘하게 땋은 끈고름. 두 줄의 끈고름이 뒷중심에 고정됨.. 기초조형학연구 19권 5호 (통권89호). 439.

(14) 있을 정도로 영아 사망률이 높아서 양육에 있어 건강을 보살펴주는 것이 최우선의 목표였다. 그래서 갓 태어난 아기에게 입히는 배냇저고리를 만들 때에도 의복의 ‘의학적(醫學的) 기능’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또한 입고 벗기는 것과 아기를 돌봄에 불편함이 없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 고려되어 완성된 배냇저고리의 실용적인 조형에서 기능미를 유추할 수 있었다. 배냇저고리의 기능미는 독특한 형태에서 나타났다. 전통 배냇저고리는 아기의 특수한 신체구 조를 고려하여 저고리의 꼴에서 가장 중요한 깃과 섶을 없애기도 하였는데, 깃은 의상의 인상 을 좌우하는 중요한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관념적인 측면보다는 건강을 위한 기능적인 측면을 우선 고려한 것이다. 소매를 기형적으로 길게 한 것과 상의인 ‘저고리’를 다리까지 감쌀 수 있는 길게 한 것도 배냇저고리가 수행해야하는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실용적인 선택의 결과로 배냇저고리에서 기능미를 완성하게 하였다. 옷감의 선택에 있어서도 청정의 새 생명에게 깨끗한 새 옷감을 사용하지 않고 오랜 기간 착용한 어른의 옷을 뜯어서 사용한 것은 부드러운 촉감과 안전성이 검증되었다는 기능적인 면을 우선 고려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렇게 연마된 옷감이 만들어내는 인체와의 높은 밀착도가 엄마의 품을 갓 떠난 아기를 포근하 게 감싸주는 역할을 충실히 이행함으로써 더욱 강한 기능미를 발현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배냇저고리에서 유추되는 기능미는 사용에 의해서 체감될 수 있는 미적가치로, 한국 복식에서 언급되는 자연미, 인격미, 상징미, 전통미, 조화미 등과 같은 시각적인 미적가치와는 다른 양상의 미적가치이다. 배냇저고리의 기능미는 쓰임새에 충실하게 만들어 따로 시각적 기교(技巧)를 더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발휘하게 되고 있었다. 4.2. 벽사(辟邪)의 미 조선시대의 문화와 사상의 배경인 유교는 엄격한 생활규범의 성격이 강해서 일반서민들이 따 르고 행하기에는 너무 고상하고 어려운 일이었다.45) 그래서 일반서민들은 생사화복(生死禍 福)의 문제를 민간신앙에 의지하였는데, 복식을 통해서도 주술적인 효과를 기대하고 길상의 염원을 표현하기도 하여 이러한 벽사의 의지가 미적요소로 출현되기도 하였다.46) 벽사는 ‘사 귀(邪鬼)를 물리치는 것, 또는 재앙을 불제(祓除)하는 일’47)의 의미로 한국복식에서 음양오행 설에 근거한 색채를 선택하는 것과 활옷처럼 길상의 염원을 담은 문양으로 공간을 가득 채워 잡신의 접근을 막는 등의 조형이 이루어내는 문양의 충전성은 벽사의 미(금기숙(1988), 남기 연(2000))로 설명되어왔다. 아동 복식에서도 악귀의 접근을 막으려고 돌잔치 때 입었던 색동 저고리는 색의 조합이 화려함의 정수를 보여주었고, 장수를 기원하며 돌띠에 새긴 십장생문양 은 의상에 장식성을 더하였다. 배냇저고리에서 벽사의 미는 신생아를 위한 주술적 의도에 의한 독특한 조형을 통하여 발현되 었다. 전통사회의 민간신앙에서는 인간을 해치려는 무수한 악령들이 있다고 믿어서, 출산을 비밀로 하기 위해서 배냇저고리를 미리 만들어 놓지 않았다. 염색을 하지 않은 자연색을 사용 하는 것도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하기 위해서인데, 신부의 의례복이나 오방장두루마기, 색동 저고리에서처럼 공격과 방어를 위한 조형과는 달리 은폐를 목적으로 한 조형에서 출현되는 벽사의 미이다. 배냇저고리를 통한 벽사에는 무병장수와 부귀공명을 위한 길상(吉相)의 축원이 담겨있기도 하다. 장수를 기원하며 긴 실고름을 달기도 하고, 사회적 성공을 이루어 낸 남자 어른의 옷으로 배냇저고리를 만들고, 자라는 동안 무탈하기를 바라며 배냇저고리를 두드려 세탁하지 않았고, 착용이 끝난 후에는 청결하게 관리할 수 있는 행주로만 사용48)하였는데, 이와 같이 제작 단계 에서부터 후처리까지 전 과정이 벽사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으며, 이는 배냇저고리의 조형에 영향을 끼친 것은 물론 배냇저고리가 효험이 있는 옷이라는 이미지를 형성하여 신성한 벽사미 를 발현하게 하였다. 45) Jon Carter Covell, 『Korea's Culture Roots』, Utha, Moth House Publication, 1982, pp.16-17 46) 금기숙, 『조선복식미술』, 열화당, 1994, p.164 47)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92306&cid=41826&categoryId=41826 48) 고부자, Op. cit., p.258. 440.

(15) 형태 번호. 배냇저고리. 소장처. 국립 10. 민속 박물관. 추정연 도. 구분. 광복. 겹. 이후. 저고리. 깃. 有. 섶. 有. 진동. 有. 소매 배래. 곡선. 도련 고름 (앞,뒤. 소재. 색상 세부치수. ) 천 고름. 품:길. 품:화. 이. 장. 총길이 :화장. 길이:31 직문이 있는 명주 소재.. 화장: 곡선. 특징. Ⅹ2. 명주. 백색 36.5 품: 0.94. 1.11. 2.35. 여아용. 천으로 된 동정이 달림.. 33 진동:13.5. 국립 11. 민속 박물관. 길이:25 광복. 겹. 이후. 저고리. 無. 有. 有. 직선. 천. 곡선,. 서양. 고름. 직선. 목. 백색. 화장: 33 품: 25. 깃이 없는 고대를 폭이 좁은 천으로 감싸서 1.00. 1.32. 2.64. 진동:11. 긴고름과 짧은 고름의 너비가 다름.. 길이:42 12. 13. 경운. 광복. 홑. 박물관. 이후. 저고리. 경운. 광복. 겹. 박물관. 이후. 저고리. 無. 無. 無. 有. 有. 無. 직선. 직선. 천 고름. 직선. 천. 곡선,. 고름. 직선. 융. 견. 소색. 소색. 화장: 36 품: 32. 등솔기, 옆솔기 없음. 1.31. 1.13. 1.71. 광복. 겹. 박물관. 이후. 저고리. 無. 有. 有. 직선. 실 고름. 직선. 소창. 소색. 길이:22.5. 깃이 없는 고대를 폭이 좁은 천으로 감싸서. 화장: 38 품: 33. 0.68. 1.15. 3.38. 화장: 37 품: 28.5. 15. 광복. 홑. 사박물. 이후. 저고리. 無. 無. 有. 직선. 천 고름. 직선. 삼베. 소색. 관. 1.30. 2.79. 16. 자연사. 1950. 깃과 섶이 없음. 시접이 겉으로 나옴. 1.04. 1.28. 2.46. 폭이 좁은 천고름.. 저고리. 有. 有. 有. 직선. 천 고름. 직선. 명주. 소색. 화장: 31.5 품:. 0.72. 1.09. 3.00. 0.94. 1.25. 2.65. 길이:34 1960. 박물관. 홑 저고리. 有. 有. 有. 곡선. 실 고름. 직선. 삼베. 소색. 화장: 45 품: 36. 전체적으로 성인저고리와 유사함.. 1960. 박물관. 홑 저고리. 有. 有. 有. 곡선. 실 고름. 삼베. 옆선에 고리를 달아서 고름을 지지함.. 거친 삼베소재로 만듦.. 화장: 직선. 얇은 밧줄을 고름으로 사용. 깃보다 폭이 좁은 섶이 달림.. 길이:33 제주. 깃과 섶이 모두 있고 천고름이 달림.. 거친 삼베소재로 만듦.. 진동:13. 국립 18. 소매와 옆선에 트임이 있음. 알길 밑단은 끝처리하지 않음.. 29 진동:9. 국립 제주. 중심선에 9cm 내려온 위치와 겨드랑이,. 길이:21 홑. 박물관. 17. 품: 33.5. 70cm의 실타래 고름. 앞섶에 실고리로 고름을 지지해 줌.. 진동:12. 제주 민속. 화장: 43. 솜 겹저고리.. 소창 겹저고리. 0.93. 길이:35. 속자연. 마무리 한 배냇저고리. 천고름.. 진동:11. 제주민. 소매 끝, 앞자락 끝 오버룩. 앞자락 끝 둥굴게 굴림.. 길이:26.5 경운. 섶 없고 좌우 앞길이 5cm겹침.. 진동:11. 진동:13.5. 14. 마무리 함. 깃부분은 재봉틀로 바느질함.. 소색 42.5 품: 0.92. 1.18. 2.58. 36. 얇은 밧줄을 고름으로 사용. 옆선에 고리를 달아서 고름을 지지함. 깃보다 폭이 좁은 섶이 달림.. 진동:13.5. 거친 삼베 소재로 만듦. 길이:23.5. 국립 19. 제주. 고대가 7.5cm로 좁은 것이 특징.. 1970. 박물관. 홑 저고리. 有. 有. 有. 직선. 끈 고름. 직선. 삼베. 소색. 화장: 54 품: 36.4. 얇은 밧줄을 고름으로 사용. 0.65. 1.48. 4.60. 가장자리 처리하지 않아 올 풀려 있음. 뒷 중심선을 자르고 감침질하여 트임 만듦.. 진동:10. 옆선에 4cm, 소매에 8cm 트임 있음. 겉섶의 일부분이 잘려 나감.. 거친 삼베소재로 만듦.. 길이:28 국립 20. 제주 박물관. 1970. 홑 저고리. 無. 無. 有. 직선. 끈 고름. 깃과 섶이 없음.. 화장: 직선. 삼베. 소색 45.5 품: 0.88 32 진동:11.5. 1.42. 3.25. 고대부분 접어서 상침질 함. 소매와 밑단은 접어서 감침질. 옆선에 4.5cm, 소매에 5.5cm 트임 있음. 얇은 밧줄을 고름으로 사용.. 기초조형학연구 19권 5호 (통권89호). 441.

(16) 4.3. 인격미 조선의 전통사회에서 유교는 엄격한 서열의식과 예절을 중요시하여 의관 정제의 의복형태는 예를 다하고 위신과 체통을 지키기 위한 조형적 특색을 가지게 되었다. 한국복식에서 착용자의 인체가 드러나지 않는 풍성한 형태와 신분에 따라 선택된 색상 등에서 나타나는 미적 가치는 예의미(김영자(1990), 임영자(2000)), 의례미(박선경(2006)), 격식미(배리듬(2016))로 설 명되기도 하였다. 특히 조선시대의 의복은 신분과 권위에 따르는 인격을 표현하는 수단으로도 이해될 수 있으며 왕실의 의복과 관복, 선비의 복장 등에서 복제를 바탕으로 하여 가미된 조형 요소로부터 유추되는 미적가치는 ‘인격미(금기숙, 1988)’로 설명되기도 하였다. 배냇저고리에서도 이상적 인격을 추구함이 표현되었다. 어렵게 태어나고 살아남은 아기에게 조차도 의복을 통해서 살아가면서 익혀야 할 덕목을 일찍부터 가르쳐야한다고 생각했다. 조선 시대의 기본적인 교육철학은 ‘일상성(日常性)에 기초한 중용(中庸)’을 가장 큰 덕목으로 생각 하여, 조선왕조실록 고종의 기록에서는 ‘갓난아기에게 너무 좋은 옷을 입히는 것을 피하게 하 였고, 육아품 또한 사치스럽지 않도록 주의하고’라고 하며 왕실이라 하여 무작정 풍성하고 사 치스럽게 아이를 기른 것이 아닌, 중용을 지키려 노력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49) 민간에서도 돌이 되기 전까지는 유색의 옷을 입히지 않은 것도 이러한 중용의 덕을 지닌 인격으로 자라기 를 바라는 마음에서였고, 이는 장식적인 요소를 최대한 배제한 단순한 형태의 배냇저고리조형 으로 표현되어 소박하고 겸손한 인격미를 느끼게 하였다. 배냇저고리 형태에서도 여밈을 위해 필수적이지 않은 섶을 시간과 노력을 들여 구성한 것이나 16세기 배냇저고리의 품과 길이의 비율이 저고리와 포의 중간수치로 나타나는 것과 17세기 배냇저고리에서 고대부분이라도 깃을 형성한 것 등은 의례적인 요소가 가미된 것이다. 이는 배냇저고리를 첫 의례복으로 여겼기 때문이고, 비록 갓 태어난 아기이지만 기본적인 복제의 예를 지키고자 노력하는 고매한 인격미를 느끼게 하였다. 4.4. 자연미 조선시대의 예술은 유교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건축·공예·서화에서 실용성과 예술성이 조화를 이루어 자연미를 살리면서 고상하고 기품이 있다고 평가된다.50) 복식에서도 자연적인 소재와 천연염색을 사용하고 활동에 방해가 되지 않으며 신체의 곡선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넉넉한 형태가 이루는 아름다움은 자연미((금기숙(1988), 임영자, 유순례(2000), 윤보현, 배수정 (2001), 권순교, 박선정(2006), 서봉하, 김민자, 심수현(2007))로 설명되었으며, 이는 한복 의 가장 대표적인 미적가치로 인정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복식에서 나타난 자연친화적인 성향 은 순수미(최세환, 김민자, 1993) 또는 소박미(도주연, 권영숙, 2000)로 이해되기도 하였다. 배냇저고리에서 나타나는 자연미는 여유 있는 품과 길이에서 오는 풍성한 형태와 오래 사용하 여 인체친화력이 높은 소재를 사용한 것이나 가공되지 않은 자연색을 만을 고집한 것, 백일이 나 돌 의상에서 보이는 화려한 장식을 배제한 절제된 조형으로 자연미를 느낄 수 있었다. 배냇 저고리의 자연미는 자연으로부터 갓 주어진 소중한 생명을 숭고하게 여기고 자연 상태 그대로 지키려는 의지를 표현하였다. 이는 고대로부터 이어져온 전통사회의 경천사상(敬天思想)에서 비롯되어 우리민족이 자연의 원리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자연과 일치하려는 의지가 표현된 것 이며 이를 통해 자연에 적응된 순수미를 느낄 수 있게 하였다.. 5. 결론 배냇저고리는 일생 최초의 옷이며 탄생을 축하하고 아기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 있는 옷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배냇저고리 제품들은 천편일률(千篇一律)적인 디자인으로 높아지는 고객의 감성과 기대에 부응하고 있지 못하는 것 같다. 이에 본 연구는 전통 배냇저고리의 고찰을 통해 49) 안세희,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나타난 전통육아의 의미 고찰」, 부산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3, pp.12-54 50)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66065&cid=40942&categoryId=33048 442.

(17) 서 생명을 대하는 선조들의 지혜와 정성을 이해하고, 배냇저고리의 조형적 특성과 그 미적가치 를 파악하여 감각적인 배냇저고리를 제안하기 위한 정보와 아이디어를 제공하고자 하였다. 전통 배냇저고리 유물 20점을 선정하여 조형적 특징을 분석한 결과, 배냇저고리의 구조는 성 인저고리의 기본구조와 동일하며, 몸을 전체적으로 감싸는 긴 길이로 성인 저고리의 품과 길이 의 비율과 다른 독특한 비율이 나타는 것도 있었다. 형태에서 목이 짧은 아기의 신체구조를 고려하여 깃이나 섶을 달지 않은 것이 있었고, 장수를 기원하며 실 고름을 사용한 것이 다수 있었으며 몸을 둘러서 맬 수 있게 길이를 길게 한 특징이 있었다. 소매는 얼굴을 할퀴지 못하게 손을 완전히 덮는 길이이며 어른의 손이 들어갈 수 있도록 수구를 넓게 하여 배래가 직선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도련선의 형태는 직선과 곡선이 혼재하였으며, 실용성과 장식적인 효과 를 위해 옆선과 소매에 트임을 넣은 경우도 있고, 대소변에 의해서 더러워짐을 막기 위해 뒤 중심에 트임을 넣은 것도 있었다. 이 밖에도 지역이나 개인의 취향에 따라서 독특한 조형이 가미되기도 하였다. 소재는 무명, 명주, 삼베가 주로 사용되었고, 전통사회에서는 장수와 건강을 위해서 성인남자 의 입던 옷으로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제주 지역에서는 태열의 치료효과를 기대하고 인내를 키우라는 의미에서 거친 삼베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색상은 백일이전의 아기에게는 유색을 입히지 않는 전통을 지켜 대부분 인공적인 염색을 하지 않은 소색이었다. 제작방법에 있어서는 바느질을 곱게 하지 않거나 가장자리 처리를 하지 않은 것도 있으며, 아기피부에 자극이 되지 않도록 시접을 겉으로 나오게 만든 것도 있었다. 또한 겹저고리의 만드는 방법을 간편하게 하고 성장에 따라 품을 조절하기 쉽도록 옆선과 배래를 1cm 정도 들어간 부분에서 성글게 홈질하여 막은 것도 있었다. 이와 같은 전통 배냇저고리의 조형적 특성에서 기능미, 벽사의 미, 인격미, 자연미를 유추할 수 있었다. 기능미는 갓 태어난 아기의 옷으로서 수행해야하는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실용적 인 조형의 선택에 의해 발현되었다. 의상에서 시각적인 기교를 추구하기보다 아기의 양육을 위한 ‘의학적 기능(醫學的 技能)’을 수행하기 위해서 깃을 없애고 옷 길이와 소매길이를 기형 적으로 길게 하여 독특한 비율을 완성하였고, 오래 입던 옷을 사용하여 밀착도 높은 실루엣을 완성하였다. 벽사의 미는 아기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배냇저고리를 이용하기 위하여 깃과 섶을 생략하고 눈에 띄지 않도록 자연색을 그대로 사용하는 등의 조형적 특징이 나타나고 있으 며 적극적인 방어목적이 아니라 은폐의 목적성을 띄고 있었다. 인격미는 배냇저고리를 입는 의식을 통해 진정한 인격체가 되었음을 공언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아기에게 가르치고자 하였 던 중용의 덕을 반영한 단순한 형태와 정갈한 색상에서 소박하고 겸손한 인격미를 느끼게 하였 다. 자연미는 오래 사용하여 친화력이 높은 소재나 자연 그대로의 색을 사용하고, 화려한 장식 을 배제한 절제된 조형에서 유추되었으며 소중한 생명을 숭고하게 여기고 자연 상태 그대로 지키려는 의지가 담겨있고 전통사회의 자연친화적인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다. 이와 같은 연구를 통해서 전통 배냇저고리에는 우리 선조들의 생명에 대한 정성과 육아에 관한 지혜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는 현대사회에서 요구되는 가치와 감성을 담은 배냇저고리의 구상을 위해 활용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전통 배냇저고리 조형의 특징 중 소매를 길게 하여 얼굴을 할퀴지 못하게 하는 것과 시접을 겉으로 나오게 처리하는 것은 현대 배냇저고리에서도 응용되고 있다. 그리고 실 고름을 이용한 여밈 등은 독특한 조형요소로 써 현대 신생아복뿐만 아니라 다양한 의복의 디자인에서도 활용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 밖에도 태어날 아기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며 산모가 직접 배냇저고리를 제작하거나 사용 한 배냇저고리를 소중히 보관하는 정성은 현대인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전통 사회에서 장수한 어른의 옷을 재활용하여 아기의 옷을 만든 것은 현대 신생아복에서 리사이클 링과 연계하여 아기의 첫 옷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부여하는 등으로 활용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본 연구는 배냇저고리의 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는 유물을 대상으로 하여 시대와 성별, 지역적 조건이 한정적이고, 전통 배냇저고리에 대해 유추할 수 있는 기록이나 시각작품 또한 많지 기초조형학연구 19권 5호 (통권89호). 443.

(18) 않고 특정 시대에 한정되어 있는 것이 본 연구의 한계로 생각되며, 이점을 보완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자료의 수집과 후속연구가 진행되기를 기대해 본다.. 참고문헌 고복남, 『한국 전통 복식사 연구』, 일조각, 1986. 금기숙, 『조선복식미술』, 열화당, 1994. 김용숙, 『朝鮮朝 宮中風俗 硏究』, 일지사, 1987. 대전 시립박물관, 『대전 안정나씨 묘 출토복식 특별전 도록』, 모어커뮤니케이션즈, 2016. 문화제관리국, 『한국민속 종합보고서』, 제24책(산속편), 1993. 석주선기념 민속박물관, 『남아미라 및 출토유물 연구논총』, 단국대학교 출판부, 2002. 석주선기념 민속박물관, 『한국전통 어린이복식』, 단국대학교 출판부, 2000. 일연, 김원중, 『삼국유사』, 을유문화사, 2003. 조효순, 『한국복식풍속사연구』, 일지사, 1998. 주영하 外ㆍ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조선왕실의) 출산문화』, 이회문화사, 2005. 최남선, 『조선상식(朝鮮常識) 풍속편』, 1994. 최래옥, 『한국 민간 속신어 사전』, 집운당, 1995. Jon Carter Covell, 『Korea's Culture Roots』, Utha, Moth House Publication, 1982. 강종원, 「출산 후 '산걷이' 의례 물품의 의미와 기능 : 안동시 추목마을의 사례를 중심으로」, 안동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4. 김대훈, 「동학(東學)에 함유(含有)된 고유사상의 탐구」, 경상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0. 김정아, 「개항기 이후 한국 아동복식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1. 신상천, 「조선 왕세자교육과 유대인 교육을 통한 영재교육 시사점」, 경원대학교대 석사학위논문, 2008. 안세희,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전통육아의 의미 고찰」, 부산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3. 정연학, 「일생의례와 물질문화-출생의례와 혼례를 중심으로」, 역사민속학회, 국립민속박물관 기획논문, 2011. 추은혜, 「출생의례복식에 관한 연구:전남지역을 중심으로」, 전남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0. 하상효, 「전통 어린이복식에 관한 연구-조선 후기의 복식을 중심으로」, 중앙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0. 고부자, 「민족조사에 나타난 초생아 옷의 사상 및 상징」, 전통의생활연구, Vol.3, 2009. 고부자, 「우리나라 乳兒儀禮와 服飾의 民俗 硏究」, 비교민속학회, Vol.37, 2007. 고부자, 「제주도민의 초생아복과 그에 나타난 의식」, 문화재학회, Vol.21, 19880. 서봉하, 「한국에서 백의호상 현상이 고착된 배경에 관한 논의」, 한국복식학회, Vol.64.1, 2014. 신명호, 「근세 한·일왕실의 육아문화 비교연구」, 동북아문화연구, Vol.21, 2009. 이화형, 「한국전통産育의례 속의 생명중시의식 고찰」, 동아시아 고대학회, 2014. http://folkency.nfm.go.kr/kr/main http://waks.aks.ac.kr/ http://www.fnnews.com/bigissue https://terms.naver.com/ https://www.google.co.kr/ https://www.naver.com/. 444.

(19)

수치

그림  세기  배냇저고리&lt;1&gt;  16 , 대전시립박물관  소장. 그림  세기  배냇저고리&lt;2&gt;  17 ,석주선박물관  소장 그림  년대  배냇저고리&lt;3&gt;  1880 , 석주선박물관  소장 두렁치마2.3.3

참조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