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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현대미술의 포스트온라인 조건

강 수 미*

1)

Ⅰ. 서론: 포스트온라인 시대

Ⅱ. 포스트온라인 조건: 다른 노동, 몸, 관계, 탈진실

Ⅲ. 컨템포러리 아트 표상: 필터버블 개인과 유리우리 사회

Ⅳ. 결론: 포스트미적인 것

Ⅰ. 서론: 포스트온라인 시대

1971년 발표한 저서 미학입문에서 조지 디키(George Dickie)는 독자에게 컴퓨터 시(computer poems)를 상상해보라고 권한다. 그의 뜻은 컴퓨터가 지은 시 에는 어떠한 창작 의도도 들어있지 않다는 점을 단언하는 데 있다. 디키는 근거 로 컴퓨터가 인간처럼 의도를 품을 수는 없다는 점, 프로그래밍 단계에서 투입된 프로그래머의 의도는 컴퓨터가 단어를 조립 배열하는 작시(作詩) 과정에는 작용

* 동덕여자대학교 교수

이 논문은 한국미학예술학회 2017년 가을 정기학술대회 기획심포지엄에서 발표한 원고 를 수정보완하여 게재한 것임.

* DOI http://dx.doi.org/10.17527/JASA.53.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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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못한다는 점을 든다.1) 그로부터 사십여 년 이상 흘렀다. 현재는 가령 “디지 털 원주민(digital natives)” 또는 “디지털 이민자(digital immigrants)”2)로 대별될 뿐 대다수 인류가 디지털 기반 세상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구글의 딥러닝(deep learning)에서 보듯 컴퓨터가 자기 주도 학습(machine learning)을 통해 문학작품 을 쓰고, 세계 최강 바둑고수를 연파하고, 시각예술 작업을 하며, 랩을 창작하는 현실을 산다. 여기서 ‘머신 러닝’은 “컴퓨터 알고리즘을 통해 컴퓨터 스스로 자기 학습을 하고 능력을 향상시키는” 기술 체제다. 그것은 1950년대 수학자 앨런 튜링 (Alan Turing)이 제안한 ‘인공지능 학습 기계(artificially intelligent learning machine)’를 출발점으로 해서 지난 수십 년 사이 다양하게 발전해왔다. 그리고 현 재는 인간의 뇌를 구성하는 신경세포와 유사한 신경망(neural network) 알고리즘 을 통해 심층 학습, 이미지 인식, 로봇 비전의 역량을 갖추는 수준에 이르렀다.3) 전통 인문학인 ‘미학’에서까지 디지털과 온라인 컴퓨팅 기술을 이용한 학문적 정 체성 재정립 및 연구 성과 분석이 진행될 정도다. 예컨대 ‘컴퓨터 텍스트 마이닝 기법(computational text-mining tool)’을 이용해 지난 50여 년 간 미학 분과에 축 적된 엄청난 양의 지식-텍스트 데이터를 수집 분석하고, 거기서 특정 의미, 의도, 경향 등을 학술정보로 구조화한 연구가 수행되는 학문 지형이다.4) 오늘날 이 같 1) 죠지 딕키, Introduction To Aesthetics: An Analytic Approach, 미학입문, 오병남․

황유경 옮김 (서광 1985), p. 157. 본문에서는 현재 표기법에 따라 조지 디키로 썼다.

2) 프렌스키는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환경에 둘러싸여 산 N(net)세대 또는 D(digital)세 대와 전(前) 세대 사이의 “불연속”을 주장하고, 전자를 “디지털 원주민”으로, 후자를

“디지털 이민자”로 명명한다. Marc Prensky, “Digital Natives, Digital Immigrants Part 1”, in: On the Horizon, vol. 9, no. 5 (MCB University Press, October 2001, pp. 1-6. 이에 대한 비판으로는 Jamie McKenzie, “Digital Nativism Digital Delusions and Digital Deprivation” in: From now on. The educational technology journal, vol.

17, No. 2 (November 2007). http://www.fno.org/nov07/nativism.html (2017. 12. 9 최 종 접속).

3) 이상 Tim Macuga, “What is Deep Learning and How Does It Work?”, in:

Australian Centre for Robotic Vision (2017. 8. 23 인용 및 참고). resources.rvhub.

org/what-is-deep-learning-and-how-does-it-work/ (2017. 12. 9 최종 접속).

4) Ossi Naukkarinen & Johanna Bragge, “Aesthetics in the age of digital huma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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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상황은 과거 디키가 단순 가정한 바와 달리 우리가 컴퓨터의 자기 주도 역량 및 의도, 실천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시대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 또 그 수행 방식과 역량이 비록 기성 사회의 논리와 예측을 벗어나 임의적이며 복잡하고 불 확실한 작용처럼 보이더라도 인간의 정신과 수행성 너머의 테크놀로지 구조, 알 고리즘 체계, 포스트 휴먼, 포스트 미학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할 시점임을 일깨 운다.

이 같은 점에서 본 연구는 연구범위를 ‘온라인 일반’으로 느슨하게 잡기보다 온라인의 시대적 이음매, 이를테면 ‘단절과 접합’을 강조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는 사회 문화적 특이성과 경험의 다름에 초점을 맞춰 ‘포스트온라인(post-online)’

이라는 제한적 개념으로 동시대 사회와 현대미술을 교차 분석할 것이다. 한편으 로 2000년대 중반 국내외 미술계에서는 ‘포스트인터넷 아트(post-internet art)’라 는 용어가 회자됐다. 이때 포스트인터넷 아트란, 초창기 넷아트(Net art)의 계보를 잇되 단순히 인터넷 ‘이후(after)’를 지칭하기보다는 인터넷 및 전자적 미디어에

‘대해(about)’ 인터넷과 아날로그 안팎을 횡단하는 작업을 지시한다.5) 그러나 본 논문에서 제시하는 ‘포스트온라인’은 예술 영역에 한정되지 않는다. 인터넷 중심 인프라스트럭처, 소셜 미디어/모바일 장치 같은 직접적이고 특정한 대상에 분석의 초점을 맞추는 것도 아니다. 이 연구에서 ‘포스트온라인’ 개념은 그것들에 의한 인 간적, 사회적, 역사적, 감각 지각적, 경험적 변화를 종합 논의하는 방향을 지향하 며, 예술이 그 변화의 역장(力場)에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구체적으로는 ‘포스트 온라인 조건’이라는 논제와 ‘수행성(performativity)’ 이론을 중심으로 2000년대 말

in: Journal of Aesthetics & Culture, vol. 8 (2016), pp. 1-18. dx.doi.org/10.3402/

jac.v8.30072 (2017. 12. 9 최종 접속).

5) Gene McHugh, Post Internet-Notes on the Internet and Art 12.29.09>09.05.10 (Link Editions 2011); Ian Wallace, “What Is Post-Internet Art? Understanding the Revolutionary New Art Movement”, in: Artspace (2014. 3. 18). www.artspace.com/

magazine/interviews_features/trend_report/post_internet_art-52138(2017. 12. 9 최종접 속); 김지훈, 「왜, 포스트인터넷 아트인가?」, 아트인컬처 (2016년 11월호), pp.

9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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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달라진 노동, 몸, 관계, 탈진실(post-truth) 문제를 조망할 것이다. 그에 기초 해 국내외 작가/작품을 분석하고 포스트온라인 조건과 함께 현상된 현대미술의 다른 미적 수행성을 밝히는 일이 연구의 핵심이다.

Ⅱ. 포스트온라인 조건: 다른 노동, 몸, 관계, 탈진실

“[1988년 수행 개념을 문화철학적으로 도입한 주디스]6) 버틀러는 체현의 조 건을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기’로 설명함으로써, 자신의 이론과 [1955년 발 화 행위와 연관시켜 언어철학적 의미로 처음 ‘수행적’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존] 오스틴의 이론 사이에서 흥미로운 공통점을 발견한다. […] 두 사람은 수행적 행위의 이행을 제의화된 공개적 공연으로 본다.”

- Erika Fisher-Lichte7)

동시대는 컴퓨터문화와 디지털기술의 시작점이라 할 1970년대는 물론 인터 넷과 온라인 환경이 보편화 한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과도 다른 조건에 있 다. 2016년 1월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다보스포럼)에서 ‘제4차 산 업혁명’ 이슈를 처음 제기한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의 아젠다를 참조하자.

18-19세기 기계화와 수력 및 증기기관에 의한 제1차 산업혁명, 1870-1914년 대량 생산과 전기에 의한 제2차 산업혁명, 1970-1980년대 컴퓨터와 디지털 정보기술이 이끈 제3차 산업혁명을 거쳐 현재 인류는 “신체/자연(physical), 디지털, 생물학 영역들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며 테크놀로지들이 융합(fusion)”8)하는 시대를 맞이

6) 이하 [ ] 안, 또는 굵은 글씨체 강조는 이해를 돕기 위해 논자가 부가한 것이다.

7) 에리카 피셔-리히테, Ästhetik des Performativen, 수행성의 미학, 김정숙 옮김 (문 학과지성사 2017), p. 54.

8) Klaus Schwab,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what it means, how to respond”, in: World Economic Forum (2016. 1. 14). www.weforum.org/agenda/2016/01/

the-fourth-industrial-revolution-what-it-means-and-how-to-respond/ (2017.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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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는 서술이 보인다. 놀라운 점은 제3차와 제4차 산업혁명 간에 불과 삼사십여 년밖에 차이나지 않는다는 것이고, 후자가 전자의 컴퓨터와 디지털을 공통 기반 으로 함에도 ‘혁명’이라 부를만한 단절과 불연속성을 내재한다는 점이다. 요컨대 동시대는 장치의 다양성이나 기술 수준에서만이 아니라 그 장치 및 기술의 역량, 네트워크 방식, 작용 양상, 사회적 파급력 및 탈 인간적 효과 등 복합적이고 총체 적인 차원에서 가까운 과거와 크게 다른 조건의 시대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온라인’으로 뭉뚱그리지 않고 ‘포스트온라인’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통해 2010년대 전후로 달라진 사람들의 인식, 감각, 경험은 물론 의사소통체제 및 사회, 문화, 예술, 지식의 조건을 탐색할 필요가 여기 있다.9) 외관상 여전히 컴퓨 터를 쓰고 1990년대 이래로 꾸준히 인터넷사회에서 생활해왔기에 우리에게 가까 운 과거와 현재는 정도 차는 있더라도 시대의 매트릭스가 연속돼 보인다. 하지만 2000년대 말을 기준으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 앞서가 “단순 디지털화”라면, 현재 는 “기술의 조합을 기반으로 한 혁신”이라는 차별화가 과장이 아니다.10) 결정적 순간은 IOS 체제의 애플과 안드로이드 체제의 삼성 스마트폰/모바일 기기가 전 세계 시장에 쏟아진 2009년 즈음이다. 또 그에 힘입어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 램 등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온라인 플랫폼과 모바일 앱(App) 등의 소셜 미디어가 폭발적으로 전개된 이후다. 요컨대 1990년대 초 ‘정보고속도로’라는 설명 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열린 인터넷 기반 온라인 세계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와 전망은 2010년대 소셜 미디어가 우세종이 된 온라인 현실과 전혀 동일하지 않다.

둘을 비교해보면 양자 사이에 시대적 불연속을 상정하는 일이 무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단적으로 많은 논자들이 지적하듯 트위터, 페이스북 등에 대한 사람들의 애초 기대는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내지 못해온 사람들에게 공평하고 자유롭게 주

최종 접속).

9) 광주비엔날레 재단이 연간 발행하는 국제 저널 눈 noon: An Annual Journal of Visual Culture and Contemporary Art의 편집위원인 강수미, 김성원, 김영호, 서동 진, 신형철은 2016년 초 편집회의를 거쳐 6번째 이슈로 ‘포스트-온라인’ 개념을 처음 제시했다. 눈 noon, vol. 6 (광주비엔날레 재단, 2016년 9월) 참조.

10) Klaus Schwab,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what it means, how to respo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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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는 발언권, 전 지구적 연결/

교환과 소통, 다양하고 다층적인 커뮤니티 구성 및 민주적 네트워 크 가능성이었다. 하지만 최근 현실은 정반대 결과라는 비판과 성찰이 강도 높다. 이를테면 소 셜 미디어들이 사회적 편견, 개 인에 대한 집단적 공격, 근거 없 는 비방과 사이버 폭력, 대중적 굴욕, 여론 조작과 비뚤어진 선입견을 확대 강화시키는 통제 불능의 장이 된 것 이다.11) 또 큰 비용이나 노고를 들이지 않고 개인이나 집단이 온라인을 통해 정 보는 물론 거의 모든 것을 수집, 가공, 생산, 창안, 재생산, 소비, 향유, 유통하고 다양한 이익을 취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도 1]. 그와 동시에 전통적 질서의 붕괴, 경험가치의 하락, 규범의 혼란, 가치판단의 오류, 이전과 다른 질량의 경쟁과 이전 투구가 극에 달하고 있다. 그 양상은 단지 일시적이고 특수한 몇몇 경우가 아니 다. 동시대 사회 전반, 사회 문화적 현상 곳곳, 개개인의 사고 및 일상 행위와 경 험의 국면마다, 지식 및 예술 활동에까지 심층 작용한다. 앞서 슈밥은 2016년 기 준 “전 세계 인구의 30% 이상이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정보를 연결, 학습, 공유”하고 있다고 보고한다. 그리고 수십 억 인구를 연결하는 모바일 기기의 전면 화, 인공지능(AI)과 양자 컴퓨팅(quantum computing)의 가속화 및 상용화는 “우 리가 하는 일뿐만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지를 바꿀 것”12)이라고 단언했다. 우리가

11) 예컨대 다음의 테드 강연을 보라. John Ronson, “When online shaming goes too far”.

www.ted.com/talks/jon_ronson_what_happens_when_online_shaming_spirals_out_of_co ntrol (2017. 12. 9 최종 접속). Eli Pariser, “Beware online ‘filter bubbles’”. www.

ted.com/talks/eli_pariser_beware_online_filter_bubbles (2017. 12. 9 최종 접속). Monica Lewinsky, “The price of shame”. www.ted.com/talks/monica_lewinsky_the_price_of_

shame (2017. 12. 9 최종 접속).

12) Klaus Schwab,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what it means, how to respond”.

[도 1]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를 생산하고 유튜브 플랫폼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유튜버들, 2017. 10.

논자의 스크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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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하는 것과 우리의 정체성이 그것들의 작용에 걸려있고 충분히 그러리라 예상 되는 현재인 것이다.

예술분야에 맞춰 논의하면 이해가 구체적이 될 것이다. 포츠담대학 아트 &

미디어학과 교수 마리루이제 앙거러(Marie-Luise Angerer)는 주디스 버틀러 (Judith Butler)의 젠더연구에 따라13) 수행성을 “정체성 구성의 전략”으로 본다.

그리고 20세기 후반부터 예술에서 부각된 “수행적인 것”이 그런 맥락에서 “징후 적인 효과”와 상통한다고 주장했다. 풀어보자면 정체성은 타고나거나 미리 결정된 것이 아니라 ‘행위하기’를 통해 변화하며 구성된다는 입장이다. 그 관점으로 보건 대 현대미술에서 설치, 비디오, 퍼포먼스의 급증 현상은 수행적인 것, 즉 “아직 분 명하게 인식할 수 없는 움직임과 변화들[징후적인 효과]” 혹은 “치환 (Transposition), 말하자면 자체적으로는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 이행의 순간”에 집중하는 미술계 경향을 예증하는 것이다. 예컨대 그레고르 슈나이더(Gregor Schneider)는 완전히 똑같은 집을 두 채 짓고 실제로 일란성 쌍둥이가 그 집에서 일정 기간 생활하는 <슈나이더 가족 Familie Schneider>(2004) 작업을 했다. 거 기서 미술/작품은 미적 오브제로서 집도, 예술 프로젝트 참여자로서 쌍둥이도 아 닌 일련의 수행-이행 과정 전체다. 프란시스 알리스(Francis Alÿs)는 <리허설 1 (시험) Rehearsal I (El Ensayo)>(1999-2001)에서 빨간색 폭스바겐 비틀이 미국 국경에 인접한 멕시코의 가난하고 위험한 지역 티후아나의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 고 미끄러지기를 반복하는 행위―매년 도시재생을 공약하지만 실행되지 않는 정 치처럼―를 미학적 대상으로 부상시킨다 [도 2].14) 또 그는 독일 볼프스부르크 시

13) Judith Butler, “Performative Acts and Gender Constitution: An Essay in Phenomenology and Feminist Theory” in: Sue-Ellen(ed.), Performing Feminism. Feminist Critical Theory and Theatre (Baltimor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90), pp.

270-282.

14) 마리루이제 앙거러, 「예술에서는 무엇이 행해지고 있는가? - 징후적인 고찰」, 문화학 과 퍼포먼스, 루츠 무스너 & 하이데마리 울 편, 문화학연구회 옮김 (유로 2009), pp.

79-117 참조. 인용은 p. 79, pp. 88-89. 슈나이더와 알리스의 두 작품은 앙거러가 선택 해 논했다. 하지만 이하에서 나는 알리스의 작업을 비판적으로 분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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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에서 비를 맞으며 같은 차를 운전하지 않고 몸으로 밀고 가는

―그 때문에 차량 정체가 일어나 고 불필요한 긴장이 유발되는―

<VW 비틀 VW Beetle>(2003) 작업을 했다. 이 또한 수행적인 현대미술 사례다. 이런 수행적인 미술은 스튜디오 창작도 아니고, 그 창작의 결과물로서 오브제 작 품이 남지도 않는다. 예술적 성 과나 아름다움은 둘째 치고 굳이 그러한 의도와 형식과 내용을 취할 이유나 명분, 평가나 보상을 판별하고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결정적으로 형식상 창작자의 행위 와 시공간적 상황, 물리적 세부가 표현, 전달, 보존, 공유되는 데 한계가 있다. 그 럼에도 ‘수행적 전환’15)이라는 강력한 조류에 현대미술의 근간이 바뀌고 있다.

앙거러는 자세히 논하지 않았지만, 미술뿐 아니라 현대예술의 그런 정체성 구성 전략과 수행적인 것에 대한 지향은 1990년 후반-2000년 초반 컴퓨터 기술과 온라인 문화가 득세할 때 시대적 경향의 반작용으로 ‘날 것’, ‘비천한 것’, ‘물질성 (materiality/physicality)의 원천’으로서 몸/신체에 집중하는 방식을 취했다. 그러 나 곧 그 몸/신체는 디지털예술과 사이보그이론의 화두들 속에서 포스트 휴먼 층 위로 맥락을 이동했다. 그리고 2010년대 중후반 앞서 살폈듯 사람들이 제4차 산 업혁명을 논하는 사회 환경에서 이제 몸/신체는 중층적인 차원과 확장된 의미망 을 갖추며 또 한 번 이슈가 변하는 선상에 있다. 수행적인 것이 곧 그 이슈다. 즉 15) 피셔-리히테는 1960년대 초 서구 문화예술계에서 “수행적 전환”이 나타났고 행위예술, 퍼포먼스 같은 장르가 형성되었으며, 1990년대에 연구자들은 문화의 수행적 성격에 관 한 연구를 육체적 행위를 포함한 수행 개념으로 본격화했다는 입장이다. 에리카 피셔 -리히테, 수행성의 미학, pp. 30-31과 p. 49 참조. 그러나 예술계/학계 내부를 넘어 현실사회의 구조적 변동과 결부되는 양상은 2000-2010년대로 구분할 필요가 있어 보 인다.

[도 2] Francis Alÿs, <El Ensayo>, Tijuana 1999-2001, In collaboration with Rafael Ortega, ©

Francis Alÿ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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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이 몸/신체의 ‘행하기’를 다양한 매체를 통해 공연하는 식으로―예술형식 으로서 ‘공연’만이 아니라 피셔-리히테가 “공개적 공연”이라 정의한 의미에서―

맥락적 변이를 거듭하는 자체가 사회 전체 변화에 대한 징후라 할 것이다. 그 점 에서 이제 미술에서 수행적인 것은 예술영역에 국한하지 않고 사회의 일상 현실, 미학과 윤리, 리얼리티와 온라인 이펙트, 인간의 위기와 테크놀로지 위험 등의 이 슈로 두루 고찰할 필요를 제기한다.

먼저, 현대사회에서 달라진 노동과 몸의 문제를 생각해보자. 온라인이 전면 화 된 이후로도 사회는 물질적 토대 위에서 물리적 노동 및 신체 활동에 따른 성 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단적인 예로 21세기 실리콘밸리의 IT산업 종사자조차 “결코 잠들지 않는 전 지구적 체제 앞에서” 디지털로의 패러다임 전 환으로 인해 더 치밀하고 강도 높아진 지적, 육체적, 감정 노동에 24시간 일주일 내내 불면 상태로 노출되어야만 한다.16) 하지만 글로벌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체 제가 전 지구적 네트워크를 통해 주식시장 및 금융시장을 투기화 하고 탈규제 정 책을 활성화하고 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를 촉진하는 현재, 경제의 실체가 이전 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 오늘날 경제는 가상화폐 비트코인 광풍이 우려되고, 전 세계가 노동시장에서 기회를 얻지 못하거나 낙오한 사람들로 넘치고, 최고의 소 득이 신체노동이나 물질적 상품과 무관한 형태가 되었다. 그런 경제는 사회학자 지그하르트 네켈(Sighard Neckel)의 용어를 빌리면 “새로운 기회 구조”를 만들어 낸다. 그 달라진 구조에서 이전과 중요한 차이는 견실한 노동 대신 “[기회자본을 통해] 계량 불가능한 기회시장에서 이루어낸 수행적 성과”가 성패를 좌우한다는 점이다.17) 예를 들어 소수 독점적 금융정보, 문화산업 정책, 미디어 영향력, 개인 성으로 얻은 유명세, 엘리트 네트워크, 뛰어난 외모와 잘 관리된 신체, 성공적인 자기 마케팅능력과 수요 확대능력 같은 것이 계량 불가능한 기회자본이다. 그 자

16) 조너선 크레리, 24/7: Late Capitalism and the Ends of Sleep, 24/7 잠의 종말, 김 성호 옮김 (문학동네 2014) 참고, 인용은 p. 47.

17) 지그하르트 네켈, 「자기표현의 성공 원칙-시장사회와 수행경제」, 문화학과 퍼포먼스, pp. 211-227 중 pp. 211-212 인용 및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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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을 어떤 우연한 기회에 얼마만큼 유리하고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그렇게 얻은 성공보수, 유명세, 관심, 명성을 어떻게 연출(공공 앞에서 공연)해서 다시 새로운 수요로 연결시킬 것인가가 기회시장에서 성공을 결정한다. 주식 투자자 워렌 버 핏과의 점심식사가 치열한 경매를 거쳐 30-40억에 낙찰되는 이유가 그 같은 기회 자본경제 논리에 있다. 이렇게 변화된 경제구조에서 인간의 몸은 마르크스나 벤 야민이 서구 산업시대 임금노동자와 창녀를 두고 짚었던 바와18) 달리 절박하고 유일한 상품 혹은 곤궁한 자본이 아니다. 오히려 공개/공연을 통한 유효성의 입증 및 개인의 가시적 성과를 중시하는 “수행 경제”에서, 거대한 오디션 경연장이 된 승자독식 “시장 사회”에서, 살아남고 성공하기 위한 “수행적 도구가 바로 신체”다.

네켈이 짚듯이, 오늘날의 기회 구조에서 개인의 몸은 “사회적 관계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이미지를 전달하는 표현 매체”인 것이다.19)

이와 관련하여 앞서 예를 든 알리스의 자동차 퍼포먼스, 즉 어느새 ‘아티스 트 알리스’를 상징하는 기호가 된 빨간색 비틀을 작가가 직접 온몸으로 밀어 삐 뚤삐뚤 앞으로 나아가는 행위를 재고해보자. 알리스는 전자장치 및 기술을 효율 적으로 사용하거나 디지털 네트워크를 이용해 비물질적 역량을 극대화하는 일과 정반대의 노동을 대가나 소득 없이 자발적으로 수행한다. 그 점에서 계량 불가능 한 기회시장에 대항해 미약하지만 함축적 의미는 강한 퍼포먼스를 했다고 해석 가능하다. 19세기 산업사회의 속도를 비판하며 파리 파사쥬 내부를 거북이와 함 께 느리게 걷던 산책자 댄디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한가.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단적으로 알리스의 퍼포먼스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거의 전부 공 식 웹사이트(www.francisalys.com)와 구글, 유튜브, 비메오 등 온라인 미디어 플 랫폼에서 접할 수 있는 가볍고 짧게 가공한 디지털 콘텐츠다. 동시에 구겐하임, 모마, 테이트 같은 세계 유수 미술관에 에디션이 붙은 형태로 소장된 컨템포러리 아트 컬렉션이다.

18) 강수미, 아이스테시스: 발터 벤야민과 사유하는 미학 (글항아리 2011), pp. 168-187 참고할 것.

19) 지그하르트 네켈, 「자기표현의 성공 원칙-시장사회와 수행경제」, pp. 21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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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스는 1959년생 벨기에 출신 건축전공자였지만 1986년 전시 참여를 계기 로 멕시코시티로 터전을 옮긴 후 글로벌 미술계에서 전 방위로 활동하는, 생존 작가 중 영향력 순위 10위20)의 아티스트다. 예컨대 2017 베니스비엔날레를 비롯 해 국제 미술계의 저명하고 영향력 있는 기획들에 빠지지 않고 초대되는 동시에 리손, 다비드 츠비르너 등 여러 국제적 상업 화랑을 통해 신작을 선보이는 동시 대 미술계의 대표적 유목민 예술가(nomadic-artist)인 것이다. 결정적으로 2017년 12월 현재 구글에서 ‘francis alys’를 검색하면 0.5초 만에 약 155,000개(한글로는 약 22,900개) 결과가 나오는 온라인미디어 영향력과 대중적 노출도가 높은 현대미 술가다. 알리스가 예술 전문가 및 미술계는 물론 일반인의 넓고 다양한 관심 대 상이 될 수 있는 힘은 무엇인가. 흥미롭게도 그의 퍼포먼스 작업들이 글로벌 자 본주의의 탐욕과 극한의 생존 경쟁과 비열한 승자독식의 메커니즘을 거슬러 소외 된 도시에서 혼자 걷기, 느림, 의도적 무위와 실패, 무소유, 소박한 세련미, 비움, 정신적 풍요, 부드럽지만 무시할 수 없는 저항의 태도 등을 감상자에게 추체험하 게 한다는 데 있다.21) 특히 그 작품들이 작가가 직접 현장에서 수행한 것이지만, 다른 한편 대중의 실질적 감상은 사후 편집을 거쳐 온라인에 공개되고 업로드 돼 이뤄진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가 화면을 통해 보는 알리스의 모습과 작품 수행 과정은 지적이며 시적이다. 그것은 세련돼 보이는 유목민 방랑자의 라이프 스타일과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자유로운 정신, “파도를 타는 서퍼처럼” 기꺼이 위 험을 즐기면서 “첫 번째 것을 놓치면, 다른 것을 얻을 좋은 기회”22)가 온다고 믿 20) “TOP 100 Artist Ranking” in: Artfacts.net, 2017. 9. 30 통계 및 업데이트.

www.artfacts.net/index.php?lang=1&living=1&pageType=ranking&paragraph=4 (2017.

12. 9 최종 접속).

21) 현대미술 사학자, 비평가, 에세이스트, 디자이너 등은 알리스의 미술에서 이러한 면모 를 긍정한다. 우정아, 「프란시스 알리스-도시를 걷는 미술가」, 미술사학보, 제43집 (2014. 12), pp. 119-138; 전영백, 「걸으면서 그리기, 정치에 개입하는 시적 행위」, 동 아일보 (2015. 5. 26); 박상임, 나의 사적인 도시: 걸어본다 3 (난다 2015) 등. 이런 해석은 작품 내적 비평에서 또 현대미술의 열린 수용 면에서 의미 있다. 하지만 우리 는 글로벌 자본주의 기회경제와 온라인 영상 공유의 문화자본 효과, 사회 정치적 개 입의 미술이 내포한 모순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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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우연과 즉흥의 프리랜서 유럽 백인 남성 예술가의 그것이다. 그렇게 보이기에 사람들, 특히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와 킨포크(Kinfolk)라이프에 열광 하는 젊은 글로벌 트렌드 세터들23)에게 그의 미술은 특별한 관심과 인기를 끌어 낼 수 있다. 작품 대부분이 온라인으로 공유되기에 원하는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그의 퍼포먼스를 향유하고 전파 가능하다. 때문에 그 관계의 확장성 및 소통 효 과, 문화적 영향 및 새로운 수요 창출력은 통상의 미술관 붙박이 작품을 확연히 넘어선다. 바로 그 점에서 알리스의 창작-노동은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자신 을 1인 기업가로서 그리고 남이 대체할 수 없는 상표로 규정”하는 글로벌 기회경 제를 수행적 현대미술로 체화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국제 미술계와 미디어가 동시에 반복해서 수행하는 “공적인 언급” 혹은 “캐스팅”을 통해 “중요한 엘리 트”24) 아티스트로서 사회적 지위와 예술 역량을 더 넓혀갈 수 있다.

알리스는 2017년 베니스비엔날레 이라크 국가관 대표작가로서, 이라크의 비 영리 NGO 단체인 루아재단(Ruya Foundation)의 지원을 받아 쿠르드군대와 모슬

22) 알리스의 모마 회고전 ≪프란시스 알리스: 속임수 이야기 Francis Alys: A Story of Deception≫가 열린 2011년 5월 패션지 보그가 특집에서 인용한 알리스의 발언. 2000 년부터 10년 동안 멕시코시티 남동쪽 고원의 회오리 속으로 뛰어드는 시도를 담은

<토네이도 Tornado> 작업으로 알리스는 폐가 손상됐다. Kevin Conley, “A Dangerous Mind: Francis Alÿs at MoMA” in: Vogue (2011. 5. 10).

https://www.vogue.com/article/a-dangerous-mind (2017. 12. 9 최종 접속).

23) 욜로, 킨포크 라이프의 글로벌 트렌드는 www.kinfolk.com,news.chosun.com/site/data/

html_dir/2017/02/03/2017020302030.html, news.donga.com/Culture/more19/3/all/201407 19/65282339/1 (2017. 12. 9 최종 접속) 등 참조. 반면 워싱턴포스트, 허핑턴포스트 등 온라인 매체는 이 유행이 유발하는 각종 사회문제를 지적한다. “트위터 분석 회사인 톱시(Topsy)에 따르면, ‘한 번 사는 인생’의 약어인 YOLO는 2011년 10월 처음 트위 터에 등장했고 그 이후 약 3,660만개의 트윗에 포함됐다. 그 중 상당수가 젊은이들이 벌이는 위험하거나 위태로운 일과 관련된 것”이라는 기사를 보라. Sydney Lupkin,

“Young Adults Tweet #YOLO When They Don't Study, Get Drunk or Drive Too Fast” in: ABC News (2012. 12. 29).

24) 지그하르트 네켈, 「자기표현의 성공 원칙-시장사회와 수행경제」, p. 215와 pp. 218-219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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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전장을 누빈 9일 간의 기 록을 5분짜리 영상 <무제, 모슬, 이라크 2016년 10월 31일 Untitled, Mosul, Iraq, 31 oct 2016>(2016)로 제작 전시했다.

“인터넷만 연결되면 누구나 미술 에 접근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미 션”이라는 한 온라인 아트 저널 은 알리스의 그 수행적 영상작품 이 “예술, 예술의 역할, 전쟁의

콘텍스트와 예술의 관련성을 공표”하는 것이라 단언한다. 또 저널의 기사는 사람 들이 “알리스의 제스처”에 대해 정의(justice)를 향한 시시포스적 시도와 그럴 수 없는 무능력을 동시에 보여준다고 해석하기 쉽지만, 중심은 미학적인 관심이라고 못 박는다. 그 근거로 “내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은 나의 인격, 활동, 그리고 내가 보고 있는 장면 간에 우연의 일치[전쟁터의 장면과 칼라를 매칭하기]를 발견하 는 것 […] 증인으로서 아티스트의 역할이 진정 문제”라는 작가의 발언을 인용했 다 [도 3].25) 여기서 읽히는 바는, 미술저널과 알리스 자신이 그의 수행적 예술을 집단이 사회 정치적, 공공적 행위로 나아가도록 하는 변혁의 기폭제 대신 예술 내적이고 은유적, 시적인 가치 차원에 위치시키고 ‘작품’으로 규정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그러한 입장에 대해 작가 윤리나 작품의 진정성, 미술저널의 공적 기능을 들어 반드시 비판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26) 그러나 동시에 분쟁지역의 한복판

25) Coline Milliard, “What Happened When Francis Alÿs Went to the Front Lines in Iraq” in: Artsy (2017. 5. 16).

https://www.artsy.net/article/artsy-editorial-happened-francis-alys-front-lines-iraq (2017. 12. 9 최종 접속).

26) 이에 대해 할 포스터(Hal Foster)가 “폭력이 가해진 신체는 종종 진리의 중요한 목격 자, 권력에 저항하기를 뒷받침하는 필수적인 증거의 근간”이라는 시각을 적용할 수 있 을까? Hal Foster, “Obscene, Abject, Traumatic”, in: OCTOBER, vol. 78 (The MIT

[도 3] 프란시스 알리스의 <Untitled, Mosul, Iraq, 31 oct 2016>, 2016을 다룬 온라인 저널 www.artsy.net, 2017.

12. 논자의 스크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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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파괴와 폭력의 위험지대에서 작가의 목숨을 건 현존이 퍼포먼스아트가 되 고, 그것을 국제적 현대미술전시와 온라인 네트워크에 띄우는 일련의 노동/수행성 이 어떤 세계의 이미지와 닮았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영 어덜트 SF 소설”이자 영화로 제작돼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이윤을 거둔 <헝거 게임 The Hunger Games>27)과 유사한 구조를 띤다. 생존을 건 리얼리티 쇼의 수행자와 자신 또한 당사자이면서 그것을 이미지박스로 즐기는 관객. 특히 우리를 소스라 치게 하는 대목은 그것이 소설과 영화의 픽션이 아니라 리얼리티라는 사실이 다.28)

주어진/선택한 조건에서 작가 알리스는 수행적인 미술을 했고, 아티스트 자 신과 미술저널은 ‘수행한 것’에 대해 미적인 의미를 강조한다. 그런데 그 같은 미 적 수행성의 척도를 대서 ‘징후적인 효과’에 스스로 만족하거나, 감상자가 자유로 이 인식하고 비판적 행위로 나아갈 것이라는 식 해석은 “지불 능력이 있는 수 요”29)에 따라 움직이는 기회시장의 방식이다. 결국 알리스의 창작 의도가 어떠했 든 간에, 그의 예술 수행이 글로벌 자본주의의 성공 방식과 그 반작용으로서 느 슨하고 개인적인 라이프스타일 양자 어디에도 ‘부응’ 혹은 ‘저항’일 수 있는 측면 은 현대미술의 미결정성, 모호성, 다중성에 문제는 없는지 비판적으로 돌아보게 한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는 노동과 몸/신체의 수행성 및 경제구조의 변화에 이어 다음 이슈로 2010년대 접어들어 세계가 직면한 ‘탈진실’의 상황을 논할 필요가 있 다. 현재는 소셜 미디어 효과에 따라 사회 전반에 예측 불가능성이 통제할 수 없 을 만큼 확산 심화된 상태다. 소셜 미디어 플랫폼의 막강한 온라인 지배력은 전

Press, Fall 1996), pp. 107-124 중 p. 123.

27) 원작자 수잔 콜린스는 TV의 이라크전쟁 장면과 리얼리티 쇼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www.scholastic.com/thehungergames/videos/contemporary-inspiration.htm (2017. 12.

9 최종 접속).

28) 온라인의 현실성에 대해서는 강수미, 「현실의 온라인, 포스트-온라인」, 눈, vol. 6, pp. 84-92 참조.

29) 지그하르트 네켈, 「자기표현의 성공 원칙-시장사회와 수행경제」, p.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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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적 매체는 물론 지식에서 유흥까지 동시대 인간 삶을 둘러싼 모든 생산 소비 체제를 뒤흔들고 있다. 그래서 이전이라면 당연했을 주류 언론의 정보가 가짜 뉴 스에 휩쓸리거나 파국의 진앙이 된다. 전문가적 전망은 섣부른 단견으로 몰아세 워지거나 사실 그런 것으로 판결난다. 트위터에 올린 짧은 글 한 줄이 빅 머니를 벌어들일 수도, 전 세계적 비난과 사이버블링(cyberbullying)의 대상이 될 수도, 한반도 긴장의 ‘[나치식] 최종 해결’로서 핵전쟁을 유발할 수도 있다. 어떤 이변이 언제, 어떻게, 얼마만큼의 규모로 일어날지 모르는 형편이 곧 일상이다. SNS에 의해 여론의 관문이 거의 완전히 열린 지금, 아이러니하게도 여론 편향성도 그만 큼 극대화되었다. 이 같은 거대 이변과 통제 불능의 사례로 연구자들은 영국의 브렉시트(Brexit),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을 꼽는다.30) 하지만 매일매 일 온라인을 달구는 사건들, 공동체와 사회 구석구석에서 발생하는 부정적인 에 너지와 그로 인한 갈등 및 종잡을 수 없는 사태를 둘러보면 그 현상은 비단 크고 거창하고 공적인 차원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한 국외 보고서에 따르면, 1977-1995년 출생한 이들을 일컫는 ‘밀레니얼세대’ 중 61%가 정치 뉴스를 접하는 원천이 페이스북이다. 소셜 미디어계의 ‘슈퍼 플랫폼’인 거기서 사용자의 태도, 행 위, 정치적 결과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특정 효과가 발원한다.31) 우리나라의 경 우도 2011-2013을 기준으로 KBS나 조선일보 등 전통 언론매체의 신뢰도는 하락 한 반면 카카오톡, 페이스북 같은 소셜 미디어의 월평균 사용자 수는 급증한 것 으로 조사됐으며 그 영향 또한 지대한 상황이다.32) 요컨대 국내외를 막론하고 이 제 공적인 것, 객관적인 것, 정의, 팩트, 신뢰할 것, 믿고 따를 것, 중요한 것 등등 에 대한 단일하고 중립적이며 결정적/절대적 기준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사람들은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에 더 많이 노출되고 더 자주 언급되며 ‘좋아요

30) Dominic DiFranzo & Kristine Gloria-Garcia, “Filter Bubbles and Fake News”, in:

XRDS, Vol. 23, no. 3 (Spring 2017), pp. 32-35 중 p. 32.

31) Dominic DiFranzo & Kristine Gloria-Garcia, “Filter Bubbles and Fake News”.

32) 최동욱, 「포털뉴스의 정치성향과 가짜뉴스 현상에 대한 시사점」, KDI FOCUS, 85호 (한국개발연구원, 2017년 9월 12일), pp. 1-8 중 p. 6과 그림 [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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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ke’ 숫자가 많거나 내가 더 보기/알기를 원하는 쪽에 몰리고, 그 방향으로 안내 되며, 거기서 나누는 감정 및 경험을 믿는 경향이 강해졌다. 그에 대해 우리는 ‘탈 진실’ 개념으로 분석할 수 있다.

‘탈진실’은 옥스퍼드사전이 ‘2016년의 단어(word of the year 2016)’로 선정한

‘post-truth’를 번역한 용어다. 정의상 “여론 형성 과정에서 객관적인 사실이, 감정 과 사적 신념에 호소하는 것보다 영향력이 떨어지는 상황을 뜻하고 또 그와 관련 해서” 쓰인다.33) 1992년 세르비아계 미국인 극작가 스티브 테시치(Steve Tesich) 가 「거짓말 정부 A Government of Lies」에서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이 단 34)의 사용량이 2016년 급증했기에 그 해의 단어로 선정되었다. 서두에 썼듯 지 금은 제4차 산업혁명의 주요 변화 동인으로 모바일 인터넷, 클라우드기술, 빅데이 터,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 등 최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이 꼽히는 시대다. 또

“2020년까지 인터넷 플랫폼 가입자가 30억 명에 이를 것이고 500억 개의 스마트 디바이스로 인해 상호 간 네워크킹이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을 근거로 “초연결 사회 진입”을 공표하는 시대다.35) 그런 시점에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기존 사회에 서 ‘주관적’, ‘감정적’, ‘독선적’, ‘일방적’이라고 터부시했던 사적 감정과 사적 편견 에 객관적 사실이 밀리는 현상에 부대끼고 있다. 여론 형성의 임의적 기제를 통 제할 인간의 판단력과 공동체적 윤리 및 양심에 기초한 기성 게이트키핑(gate keeping) 시스템이 무효화되고, 진실/진리의 자리가 부정/가짜로 전도되는 현실에 처했다. 그것이 ‘탈진실’이란 단어가 내포한 실체인데, 심각한 문제로는 온라인 오 류정보의 확산 현상이 있다.

33) en.oxforddictionaries.com/word-of-the-year/word-of-the-year-2016 (2017. 12. 9 최종 접속).

34) Richard Kreitner, “Post-Truth and Its Consequences: What a 25-Year-Old Essay Tells Us About the Current Moment”, in: The Nation (2016. 11. 3).

www.thenation.com/article/post-truth-and-its-consequences-what-a-25-year-old-es say-tells-us-about-the-current-moment/ (2017. 12. 9 최종 접속).

35) 김진하, 「제4차 산업혁명 시대, 미래사회 변화에 대한 전략적 대응 방안 모색」, KISTEP Inl, 15호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2016년 8월), pp. 45-58 중 pp. 4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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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벽두부터 세계경제포럼이 지목했고 허핑턴포스트 같은 디지털 세대 에게 전달력이 큰 매체가 전한 바, 우리 사회 전체의 가장 큰 위협은 ‘디지털 오 류정보(digital misinformation)’다. 즉 오늘의 일상 현실에서 여론 형성, 파급력, 결정력이 엄청난 “소셜 미디어를 통해 광범위하게 확산되는”36) 잘못된 정보가 세 대와 지식수준과 경험의 질을 막론하고 사회 전체를 흔든다. 온라인에서는 엄청 난 양의 데이터가 각각의 사용자 개인을 통해 끊임없이 오르내리고 넘나든다. 그 런 환경에서는 시간과 장소, 배경과 맥락에 상관없이 생성되고 변조되고 유통되 는 정보와 데이터를 진실 vs. 거짓, 사실 vs. 오류로 관리하기가 원천적으로 불가 능하다. 오히려 사용자는 각자의 사고 패턴, 사회 정치적 당파성, 주로 접촉하고 소통하는 그룹 성향, 의식/무의식으로 노출되는 미디어에 좌우되는 경향이 강해진 다. 2015년 컴퓨터과학자들이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한 연구에 주목하 자. 과학 뉴스와 음모이론을 사례로 들어 실험한 결과에 따르면, 인간 뇌의 “확증 편향성”이 소셜 미디어 사용자들로 하여금 우호적 네트워크(friendship networks) 에서 동질적 무리(homogeneous clusters)를 따라 의사소통하도록 이끈다. 그 때문 에 “콘텐츠는 메아리 방(echo chamber) 내부에서만 순환하는 경향”이 나타난 다.37) 여기에 최근에는 ‘필터 버블(filter bubbles)’ 현상이 가세하면서 탈진실의 정 도와 양상이 기존 진위 체계나 문제 해결법을 압도하고 있다. 요컨대 이것들이 함께 동시대 포스트온라인 조건으로 작용하면서 사람들의 인식과 경험에 복잡다 기한 현상을 야기하는 것이다.

필터 버블은 소셜 미디어로 뉴스나 여론, 지식, 각종 상품 및 여행 정보 따

36) Carolyn Gregoire, 「잘못된 과학 정보는 인터넷에서 어떻게 퍼지는가」, 허핑턴포스트 코리아 (2016년 1월 13일). www.huffingtonpost.kr/2016/10/04/story_n_8965720.html (2017. 12. 9 최종 접속).

37) Alessandro Bessi, Fabiana Zollo, Fabio Petroni, Antonio Scala, Guido Caldarelli, H.

Eugene Stanley, and Walter Quattrociocchi, “The spreading of misinformation online”, in: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2015년 9월), pp. 1-6 중 p. 3. www.pnas.org/content/early/2016/01/02/

1517441113.full.pdf?with-ds=yes (2017. 12. 9 최종 접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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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를 접할 때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고 작동하는 알고리즘의 효과다. 즉 온라인에 축적된 빅데이터가 알고리즘을 통해 사용자의 취향, 편견, 기존 사고 및 행동 패 턴에 맞게 내용을 거르고 전달하면서 비슷한 성향과 신념을 가진 이들끼리 헤쳐 모으고 비누거품처럼 알알이 구획하는 양상을 이른다. 대표적으로 ‘슈퍼 플랫폼’으 로 불리는 구글, 아마존, 네이버, 다음,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카카오톡/스 토리 등 온라인 (상업)공간은 알고리즘을 이용해 개인 사용자의 성향, 욕구, 과거 행적 등에 맞춘 ― 반대로 말하면 알고리즘이 머신 러닝을 통해 게이트키핑 한

― 뉴스 및 검색 결과를 내놓는다. 그러면 사용자는 온라인 메아리 방에 있는 것 처럼 자신과 공명하는 콘텐츠 또는 취사선택된 정보들에만 반복 노출되면서 그것 이 전부인 것 같은 세계로 고립/격리될 수 있다. 소셜 미디어 플랫폼의 개별화된 추천 서비스나 개인 사용자에 맞게 학습하고 반응하는 온라인 시스템이 필터 버 블의 주원인이라는 점에서 그렇다.38) 물론 이러한 필터 버블과 개인 맞춤형 추천 서비스의 알고리즘이 우려만큼 지대한 영향을 끼치거나 광범위하게 작동하는 것 은 아니라는 연구가 있다. 또 SNS 사용자와 오프라인의 사람들을 비교했을 때 후자가 더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다양한 견해 및 아이디어를 접하지 못할 가능성 또한 고려해야 한다.39) 그런 만큼 이분법적으로 어느 쪽이 좋고 나쁨을 판단할 수 없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진단은 그것이 단지 온라인 소셜 미디어만의 문제 가 아니라, 그 온라인이 곧 현실인 사회 구조 전체의 문제임을 일깨운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슈퍼 플랫폼이 어떻게 사진가, 사진 기자, 작가, 언론인, 음악가 등 수백만 명의 판매자를 압박할 수 있는지 파악할 수 있 다. 업스트림 판매자가 더 가난해지는 것뿐만 아니라 슈퍼 플랫폼의 경제적 힘이 정치권력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 문제다. 판매자와 소비자가 게이트

38) Eli Pariser, The Filter Bubble: How the New Personalized Web Is Changing What We Read and How We Think (New York: Penguin 2011) 참조.

39) Dominic DiFranzo & Kristine Gloria-Garcia, “Filter Bubbles and Fake News”, pp.

33-34와 Alessandro Bessi 외, “The spreading of misinformation online”, pp. 4-5 교 차 참조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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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퍼에 의존하면 할수록 슈퍼 플랫폼은 우리의 정치적 견해와 공적 쟁론을 주무를 것이다. 빈발하는 가짜 뉴스가 입증하는 바와 같이, 우리의 사회 구 조는 물론 궁극적으로 우리의 안녕이 위협 받고 있다.”40)

선 vs. 악, 정의 vs. 부정, 진실 vs. 거짓, 윤리적 공동체 vs. 일탈적 개인, 올 바른 미디어 vs. 사악한 기술 등을 가르고 한쪽을 다른 한쪽이 근절하는 것이 답 이 아니다. 논점은 그런 구분이 정말 어려운 조건에 현실이 처했다는 각성이다.

세계경제포럼이 ‘디지털 오류정보’를 현 사회 전체의 심각한 위협이라 지목한 사 실과 함께 경쟁법 및 독점 금지법을 다루는 위 두 법학자의 분석을 참조해서 우 리가 추출할 판단은 이런 것이다. 요컨대 온라인이 ‘정보고속도로’나 ‘자유로운 사 이버 매체’라는 가까운 과거의 기대와 전망으로부터 비약적 변화 혹은 탈주의 변 이를 거듭한 결과가 현재의 조건이다. 지금 여기 그것은 우리 인식을 변형시킬 수 있는 힘(“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과 경험을 통해 사고 및 행동 패턴을 유 연하게 하는 역량(“연성[malleability]”)41)을 촉진하는 기제로서 광범위하고 치밀한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즉 문화 예술 생산과 소비의 서클, 경제에서 정치권력으로 의 에스컬레이팅, 공적 담론과 지식의 수렴 및 배출 등이 걸린 제반 과정에 관여 하는 현실의 포스트온라인 조건인 것이다.

Ⅲ. 컨템포러리 아트 표상: 필터 버블 개인과 유리우리 사회

앞 장에서 설명한 필터 버블의 실제적 효과 중 하나는 소셜 미디어 사용자들의 40) Ariel Ezrachi & Maurice Stucke, “The E-Scraper and E-Monopsony”, in: Oxford Business Law Blog (2017. 4. 10). https://www.law.ox.ac.uk/business-law-blog/blog/

2017/04/e-scraper-and-e-monopsony (2017. 12. 9 최종 접속).

41) Marc Prensky, “Digital Natives, Digital Immigrants Part 2: Do They Really Think Differently?”, in: On the Horizon, vol. 9 no. 6 (MCB University Press, December 2001), pp. 1-9 중, pp. 1-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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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된 ‘개인화(personalized)’다. 소 셜 미디어는 ‘포스트, 공유, 좋아요, 구독, 해시태그(#)’ 횟수로 정의되 고, 그 숫자가 나타내는 공연의 성 과(performance)가 앞서 네켈이 말 한 기회경제 또는 게오르그 프랑크 (Georg Franck)가 정의한 “관심경 제(Ökonomie der Aufmerksamkeit, attention economy)”42)의 요체다.

그런데 온라인 매체를 통해 자신 의 정치 성향, 취미, 라이프스타 일, 행동 및 사고 패턴과 공명하는 컴퓨터 알고리즘 결과 값에 반복적이고 배타 적으로 노출되면서 사람들은 자기만의 네트워크 거품 안에 칩거하는 개인들로 귀 착되고 있다. 이 ‘개인화’ 현상은 디지털 사회에서 모든 것이 연결되고 얼마든 쌍 방향 소통이 가능한 미디어 조건을 고려하건대 기이한 일이다. 디지털 원주민은

“거의 또는 전 생애가 네트워크로 연결된”43) 사람들이다. 디지털 이민자 또한 그 러한 현존 조건을 피할 수 없다. 그런데 그 같은 삶의 환경이 서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고 공감력이 떨어지는 사적 개체들을 주조한다는 점에서 역설이고 문제 다. 2017 카셀도큐멘타 프리데리치아눔 메자닌의 반원형 벽에 영사된 니코스 나 브리디스(Nikos Navridis)의 <장소를 찾아서 Looking for a place>는 1999년 작 품임에도 필터 버블에 갇힌 우리의 현존을 온라인 시대 초기로부터 가까운 미래 로 투사한 것 같은 기시감이 든다. 작품은 두 사람이 서로 접촉―만지고 껴안고 키스하고 싸우고 등등으로 보이는―하려고 애쓰는 상황을 퍼포먼스화한 4채널 비 디오 설치다 [도 4].44) 그런데 정작 그 네트워크 행위는 라텍스 풍선을 머리에 쓴

42) 지그하르트 네켈, 「자기표현의 성공 원칙-시장사회와 수행경제」, p. 220; Georg Franck, Ökonomie der Aufmerksamkeit (München: Ein Entwurf 1998) 참조.

43) Marc Prensky, “Digital Natives, Digital Immigrants Part 1”, p. 4.

[도 4] Nikos Navridis, <Looking for a Place>, 1999 (2017 Kassel Documenta)

https://www.youtube.com/watch?v=JJDW6Lpsfe8 2017. 10. 논자의 스크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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탓에 숨을 쉬기 위해서는 풍선을 부풀려야 하고, 그러면 그럴수록 상대방과 멀어 지며 만날 수 없는, 심지어 그 접촉 행위가 자신과 타인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폭력이 된다. 작품의 그런 표상들이, 온라인 필터 버블 안에서 의사소통과 네트워 킹에 열중하는 2010년대 후반 현실 사회 사람들로 하여금 나브리디스의 영상을 두려움의 데자뷰로 느끼게 한다.

다른 한편, 데자뷰가 아니 라 지금 여기 실존의 작품이 있 다. 2016년 SeMA 비엔날레 미 디어시티서울에 출품된 김희천의

<썰매>가 그것이다 [도 5]. 작품 은 “동시대의 서울과 서울에 사 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사는 다른 세계”45)를 작가가 설정한 세 가지 배경 이야기에 따라 디

지털 합성 싱글 채널로 응집, 분사한다. 모바일 기기를 잃어버리고 개인정보마저 인터넷에 유출된 이, 얼마 전 유행한 ― 그러나 이미 한물간 ― 게임을 실시간 온라인방송으로 중계(streaming) 하는 이, 한국의 신종 자살클럽을 취재하는 방송 사라는 세 설정에서 우리는 작품으로부터 특정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것은 가까운 과거와 그것의 징후로서 오늘 간의 역사적 긴장을 기술적, 매체적 조건에 서 들여다보는 일이다. 1989년 생으로, 프렌스키처럼 분류하자면 ‘디지털 원주민’

에 가까운 김희천은 페이스 스왑(Face Swap) 같은 얼굴 바꿔치기 앱은 물론 VR, 3D, 온라인 네트워크 게임이 경험의 하부조건인 일상을 살고 그것을 통해 작업하 는 작가에 속한다. 그 과정에서 디지털 미디어 언어부터 자기만의 시각적 사고까 지 역량을 키웠을 것이다. “다른 종류의 경험이 다른 뇌 구조로 이끈다.” 같은 정

44) https://www.youtube.com/watch?v=JJDW6Lpsfe8, www.banquete.org/exposicion Ingles/navridisIngles/navridis.htm (2017. 12. 9 최종 접속).

45)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2016 가이드 북 (서울시립미술관 2016), p. 42.

[도 5] 김희천, <썰매>, 싱글 채널 비디오, HD, 17분 27초,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2016 커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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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의사의 주장, “다른 문화에서 자란 사람들은 단지 사고하는 대상이 다른 것이 아니라 실제로 다르게 생각한다.” 같은 사회심리학자의 단언을 검증하는 일은 이 연구 범위를 넘어선다.46) 다만 여기서는 벤야민의 인간학적 유물론에 입각한 경 험이론을 비롯해 리처드 슈스터만(Richard Shusterman)의 신체미학, 자크 랑시에 르(Jacques Rancière)의 감각 지각적 경험론47)을 참고할 것을 권하고 넘어가자.

그것이 전제하는 바, 인간의 감각과 인식은 사회적, 역사적, 정치 경제적 조건들 속에서 이뤄지는 경험에 영향을 받는다. 그런 점에서 김희천 같은 디지털 조건을 원천으로 한 세대의 인식 및 경험 세계, 미적 세계가 전통적인 그것과 간극/차이 가 없을 수 없다.

<썰매>에서 김희천이 구사한 제작 방식, 매체 방식은 기존 조형예술의 콘 텍스트로 보면 매우 이질적이다. 하지만 가령 비슷한 미디어 및 기술 조건, 의사 소통 및 관계 구조에서 성장한 이들이라면 김희천의 작품을 마치 자신의 사고 과 정, 경험적 표상, 감각 지각적 표현, 평소 생활의 집합적 재현으로 수용할 것이다.

그만큼 작업이 컴퓨터문화에 정향됐다는 뜻이다. 또한 온라인 초기로부터 포스트 온라인 조건의 현재에 이르기까지 연속/불연속하며 진행된 세대의 삶, 그 경험의 특성을 납작한 스크린의―그러나 월드와이드웹/타임라인/뉴스피드를 타고 무수하 고 복잡하게 서치 혹은 서핑해서 취한 온라인소스, 데이터, 시청각자료를 가상적 으로(virtually) 포스트프로덕션 한 결과― 디지털이미지로 현상해냈기 때문이다.

아래 인용은 그 같은 작업이 어떤 방식으로 가능한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46) 앞 인용문은 Marc Prensky, “Digital Natives, Digital Immigrants Part 2”, p. 1에서 프렌스키가 “Bruce D. Berry”의 주장으로 인용. 그러나 Baylor College of Medicine의 정신과의사는 “Bruce D. Perry”이다. 뒤 인용은 같은 글 p. 3.

47) 강수미, 아이스테시스: 발터 벤야민과 사유하는 미학 중 특히 pp. 207-226과 pp.

271-288; 리처드 슈스터만, Performing Live: Aesthetic Alternatives for the Ends of Art, 삶의 미학: 예술의 종언 이후 미학적 대안, 허정선 & 김진엽 옮김 (이학사 2012); 자크 랑시에르, Le partage du sensible : esthetique et politiqu, 감성의 분 할: 미학과 정치, 오윤성 옮김 (b 2008)을 참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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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원 공간의 재현으로서 시각이미지를 읽기(표상의 능숙함), 다차원 시각 공간(visual-spatial) 기술, 멘탈 맵, 멘탈 종이 접기(실제로 하지 않고 정신 적으로 종이접기를 하듯이 결과를 그리기), 귀납적 탐구(관찰하기, 가설을 만들고 역동적인 표상의 행동을 제어하는 규칙을 이해하기), 주의력 배치 (다수의 위치를 동시에 모니터링), 예상한 자극과 예기치 않은 자극 모두에 더 빨리 반응하기(주의집중 시간의 길이에 상관없이 즉각적인 응답) 등”48)

디지털 원주민 세대는 대상이 물리적이거나 물질적으로 주어지지 않아도 구 상이 가능하고, “데이터의 바다(a sea of data)”를 떠다니는 정체모를 “곤궁한 (poor)” 정보/데이터/소음/이미지에 랜덤 액세스해서 수집하는 동시에 특정한 관 계 망으로 분산 배치하는 데 능하다.49) 진지한 작업보다는 게임을 선호하고 멀티 태스킹이 자연스러운 만큼, 그 결과 또한 하이퍼링크 세계처럼 다차원적이고 역 동적인 양상들로 도출해낸다. 그런데 이 같은 특성은 사실 현재 우리 각자가 PC 나 모바일 기기를 들여다보면서, 거기에 거의 완벽히 몰입돼서 외부가 없이 수행 하는 행위/일/오락/경험/사고와 그리 다르지 않아 보인다. 사람들은 온라인 네트 워크 멀티 플레이 게임조차 오롯이 혼자 고립돼 헤드셋을 쓴 채 모니터에 들어갈 듯 한 집중력과 배타성으로 과업처럼 수행하지 않는가. 김희천의 <썰매>에서 감 상자가 감각 지각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면이 바로 그 같은 세계다. 이를테면 작 가는 카레이싱 서킷을 차용해 광화문에서 숭례문까지 속도감 있게 질주하는 ― 무지개, 말, 자동차 계기판, 모니터 속의 모니터 등등 도무지 무엇이 달리고 무엇 이 공간인지 분간이 힘든 ― 짜깁기 이미지의 중층 스킨을 펼친다. 그리고 관객 은 그 납작하고 비촉각적 세계, 하지만 수행적 미술작품으로서 공연/공유되는 예

48) Patricia Marks Greenfield, Mind and Media, The Effects of Television, Video Games and Computers (Harvard University Press, 1984)를 Marc Prensky, “Digital Natives, Digital Immigrants Part 2”, p. 4 참조.

49) Hito Steyerl, “A Sea of Data: Apophenia and Pattern (Mis-)Recognition”, in: e-flux,

#72 (April 2016), pp. 1-10과 “In Defense of the Poor Image”, in: e-flux, #10 (November 2009), pp. 1-9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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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표상을 사적 체험으로 실감나게 흡수하고 다른 디지털 점들로 건너다닌다. 그 것은 비유적 의미를 넘어 실제로 필터 버블의 미적 향유이고, 그런 효과에 의해 사적으로 주조-재 주조되는 주체화 과정으로 보인다.

온라인의 개인화가 전혀 다 른 양태의 컨템포러리 아트로 표 상된 경우 또한 다룰 필요가 있 다. 안네 임호프(Anne Imhof)의 2017년 베니스비엔날레 독일관 단독 출품작 <파우스트 Faust>

가 그것이다 [도 6]. 작품은 공개 된 직후부터 언론의 스포트라이 트를 받고, 관객몰이를 했으며, 소셜 미디어를 뜨겁게 달궜고, 최고 국가관에 수여하는 ‘황금사자상’까지 받았다. 독일관은 나치시대 홍보관 역할 을 했던 이력 때문에 독일 언론 스스로 “파시즘을 연상시키는 잔혹한 분위기”라 고 묘사하는 건축 특징을 비롯해 역사성과 장소성이 강한 곳이다. 임호프는 그런 건물을 “나와 그 과거를 연관시키는 것들에 맞서는” 차원에서50) 유리 철골 구조 로 리모델링하고 퍼포먼스, 회화, 조각, 연극, 무용, 사운드 등이 횡단/교합하는 도 발적인 작품을 내놓았다. 현직 패션모델이거나 본인 또한 아티스트인 이를 포함 해 트렌디한 용모의 다수 젊은 남녀 퍼포머들이 즉흥과 임의성을 극대화하는 공 연을 유리 칸막이 실내, 철조망 울타리 위, 관객들 발밑과 사이사이 등 균질하지 않은 곳에서 예상치 못한 행위들로 펼친다. 작가와 퍼포머들을 잇는 단 하나의 네트워크이자 연출 방식은 모바일 메시지다. 관객들 입장에서는 그들이 어떤 대 화를 주고받는지 결코 알 수 없고, 물질적 공간감과 물리적 운동으로부터 신체가 느끼는 불안, 긴장감만 높아진다. 그 점을 부추기듯 작품은 젊은 남녀의 뒤엉킴, 50) 아네테 로이터, 「베니스 비엔날레. 극단성과 잔혹함」 (Goethe Institut Korea, 2017. 5

월). www.goethe.de/ins/kr/ko/kul/mag/20981800.html [도 6] Anne Imhof, <Faust>, Venice Biennale 2017

http://www.ifa.de/en/visual-arts/biennials/biennale-venedig/a nne-imhof-faust.html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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