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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호_강성철_도깨비 이미지의 시각적 정체성에 관한 연구.pdf(6.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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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The Korea Society of Illustration Research Vol. 15. 도깨비 이미지의 시각적 정체성에 관한 연구 -조선왕조실록과 민담자료를 중심으로Study on the visual identi ty of Dokkaebi's image -Focused on the Annals of the Choson Dynasty and folk tales-. 강 성철 Kang, Sung-chul 용인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2) Journal of The Korea Society of Illustration Research. 목. 차. Ⅰ. 서 론 1. 연구 목적 2. 연구 방법 및 내용 Ⅱ. 본 론 1. 도깨비의 어원 및 존재에 대한 고찰 2. 도깨비의 풍모 3. 실록의 도깨비 3-1. 귀매로 표현된 경우 3-2. 이매망량(魑魅魍魎)으로 표현된 경우 3-3. 이매, 망량으로 표현된 경우 4. 민담 도깨비의 행태와 그 진실 4-1. 도깨비의 외모 4-2. 인간적 행태 4-3.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 4-4. 출몰하는 장소 5. 지배 계급이 상상한 도깨비 이미지 6. 민중이 상상한 도깨비 이미지 Ⅲ. 결론 및 요약 참고문헌. 국문요약 도깨비는 우리 민족 고유의 심성을 반영한 존재이며 우리 자신이기도 하다. 그동안 도깨비 는 어리석은 인간과 신격화된 신성을 반반씩 가진 특이한 존재로 오랫동안 우리 곁을 지켜 왔다. 하지만, 주로 집안이나 동네 어른의 구전을 통해 전승되던 도깨비 이야기는 이제 단지 어린이의 동화책이나 애니메이션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시각적 이미지는 우 리가 어릴 때 듣던 그 모습이 아니다. 급속한 산업화 및 핵가족의 형성과 함께 전승이 단절 된 우리의 도깨비 이야기의 부활과 올바른 이미지 구축에 대한 탐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조 선시대 472년간 도깨비는 양반계급과 민중 사이에서 전혀 다른 이미지로 존재한다. 한편 우 리는 주변에 전해 내려오는 많은 우락부락한 조각, 귀면와, 또는 평면 이미지들을 모두 도깨 10 한국일러스트레이션학회.

(3) 도깨비 이미지의 시각적 정체성에 관한 연구. 비라고 거부감 없이 수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올바른 도깨비 모습은 어떤 것일까. 조 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도깨비의 모습과 민담에 전해지는 도깨비의 모습을 찾아보고 비교함 으로써 올바른 도깨비의 모습을 유추하고, 우리의 아름다운 문화유산이자 우리의 정체성과 관련된 에듀테인먼트 컨텐츠로서 도깨비의 가치를 재조명하고자한다.. Abstract Dokkaebi is the reflection of our nation’s nature: and of ourselves. For a long tim Dokkaebi has been with us as an unique creature, half as the silly human being and the other half as the divine nature. However the stories of Dokkaebi, that has been transmitted orally through families or neighbors, has now disappeared into children’s books and animations. Also the image is different from what we heard back in our childhood, since the oral tradition of Dokkaebi has been interrupted by rapid industrialization and appearance of increasing numbers of nuclear. Therefore the researcher feels that now is the time to study on our Dokkaebi stories and building the proper image for them. Dokkaebi exists as totally different images between the nobilities and the plebeians. Also numbers of different images transmitted to us, including rowdy, Guimyunwa or plane, are all perceived as Dokkaebi, without any denial. If that is the case, what would be the most proper image for our Dokkaebi? The researcher suggests to look for Dokkaebi’s appearance that were presented in the Annals of the Choson Dynasty and transmitted through folk tales. By comparing these various representations of Dokkaebi, the proper image of Dokkaebi can be analogized, and the real value of Dokkaebi will be illuminated; as one of our fine cultural heritage and the edutainment content that is related to our national identity.. Keywords / The Annals of the Choson Dynasty, Dokkaebi, Korean folklore, Traditional edutainment contents, Traditional visual identity 일러스트레이션 포름 11 1.

(4) Journal of The Korea Society of Illustration Research. Ⅰ. 서 론 1. 연구 목적 도깨비는 유구한 우리의 역사와 함께 지금까지 전해 내려온 독특한 존재이다. 주로 민담을 통해 구전되어온 도깨비는 한국이 산업사회로 진입하면서 끊임없이 전승되던 고리를 잃어버 린다. 가정이나 가까운 마을단위 구성원을 통해 구전으로 전승되던 도깨비 민담은 핵가족 형 태로 가정 대부분이 전환되면서 구전의 주요 매개자이며 수직적 전승 관계인 화자와 청자의 관계가 차츰 소원해지고 그 역할들을 상실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후대로 구전되는 기능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얼마 전 까지도 도깨비불 목격담이나 도깨비 조우 경험담을 직접 듣거 나 전해 듣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마저도 불가능해졌다. 도깨비는 단지 민속학자들의 연구 대 상으로 남게 되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어린이의 동화책에서만 이야기나 그림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와 관련하여 지금까지도 도깨비를 만났거나 보았다는 기록이나 민담자료는 많은데 이상하게도 그에 대한 구체적 이미지 및 얼굴 묘사는 남아있지 않다. 그렇지만, 어린이 동화 책이나 애니메이션에 도깨비는 분명한 이미지로 표현되고 있으며 많은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즐겨 다루는 소재로 등장하고 있다. 그 이미지는 대부분 벌거벗은 몸에 원시인 같은 천을 두 르고 머리에는 뿔이 달렸으며 가시가 박힌 큰 몽둥이를 들고 있는데 이는 일본의 오니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도깨비는 무섭기도 하고 어리석기도 한 독특한 캐릭터를 가지고 수천 년 동안 우리 민족 의 곁에 있는 친근한 존재이고 훌륭한 컨텐츠이다. 지금까지 민속학이나 민담에서만 다루어 져 왔던 도깨비의 올바른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도록 기록 자료-주로 조선왕조 실록과 민담-를 통하여 유추하고자 한다. 또한, 다양한 교육 문화 컨텐츠로 가공되어 우리의 정서와 생활 및 문화산업을 풍요하게 할 수 있도록 도깨비 컨텐츠 활성화에 이바지하고자 한다.. 2. 연구 방법 및 내용 도깨비의 이미지 연구를 위해 우선 조선왕조실록(이하 실록)과 도깨비가 등장하는 전승기 록 문헌과 민담의 관련 자료를 찾아내어 분석한다. 도깨비에 대한 연구는 지금까지 주로 민 속신앙 혹은 신화나 설화로 분석하거나 구비문학으로 연구하는 시도로만 이루어져 왔으며 디자인 분야에서 시각적 이미지에 대한 연구는 전혀 없는 상태이다. 그렇지만, 일반적이고 통념적으로 대상을 상상하고 시각이미지를 구체화시키는 방법은 충분히 가능하며 그러한 시 도는 일러스트레이션의 영역에도 흔히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문장만으로 이루어진 책의 내 용을 독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일러스트레이터들이 그들 고유의 상상력과 조형적 표현 능력 으로 일러스트레이션 이미지를 만들어 책에 삽입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민담의 도깨비는 생물과 무생물, 양쪽 개념을 모두 소유하고 있는 존재이다. 실록을 비롯 12 한국일러스트레이션학회.

(5) 도깨비 이미지의 시각적 정체성에 관한 연구. 하여 한문으로 기록된 도깨비가 나오는 서적은 조선시대 지배계급인 양반의 시각과 관념을 표현하고 있으며 전승되는 민담은 주로 피지배 계급의 도깨비 관을 보여준다. 두 집단의 시 각을 비교 분석하고 그들이 도깨비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으며 그 이미지를 각기 어떻게 상 상하고 있는가를 탐색한다.. Ⅱ. 본 론 1. 도깨비의 어원 및 존재에 대한 고찰 도깨비의 어원은 두 가지로 주장된다. 첫 번째는 조선시대의 문헌에 나오는 경우이다. 도 깨비는 조선시대 세종 때 편찬되었던 《석보상절》,. 《월인석보》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며. ‘돗가비’-‘도ᄭㅏ비’로 표현되는 기복신앙의 대상이었다.. 도깨비는 또 지방마다 돗가비,. 독갑이, 도각귀, 도채비. 도까비, 돛찌비, 토째비, 토개비, 망량, 영감, 물참봉, 김서방, 김생원 등의. 별칭으로. 불렸다.. 의 씨앗을 말하는 종자를. ‘돗가비’는 뜻했고1). ‘돗’과. ‘아비’의. 합성어로서. ‘돗’은. 불이나. 곡식. ‘아비’는 성인남자의 의미가 있다. 혹은 여기서 말하는. 씨앗의 의미에 자손을 번성케 하는 의미도 포함된 것 같다. 예로부터 불씨는 활활 타올라 앞 으로 집안을 잘 타는 불처럼 일으킬 의미와 징조로 인식되었다. 불씨를 꺼뜨린 며느리는 집 안 살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존재로 소박을 받을 정도였고 불을 꺼뜨린 며느리가 불씨를 찾아 헤매는 옛날이야기도 여럿 전해 내려온다. 이처럼 우리에게 불씨는 음식을 만들어 먹는 데 꼭 필요한 단순한 물리적 현상을 넘어서 신령스런 의미를 지니고 있었으며 씨앗 역시 앞 으로 풍요로운 생산과 수확을 기원하는 상징이었다. ‘아비’는 아버지 또는 성인남자의 뜻이기도 하다. 곧 도깨비는 생산 증대와 집안의 부를 가져다주는 성인 남성이라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돗’은 능청맞고 수선스럽고 변 덕스러움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이는 세월이 많이 흐른 후대의 일이라고 하는데2) 이 의미는 요즘에도 남아 있다. 우리는 행적이 신출귀몰하고 남의 의표를 찌르고 종잡을 수 없는 친구 를 일컬어 ‘그 친구 도깨비 같아’라는 표현을 지금도 하고 있다. 두 번째로는 나무로 된 남정(男丁)의 의미이다. 《동국여지승람》이 언급한 《삼국유사》 의 <도화녀비형랑>에 대한 기사에서 나오는 ‘동경 두두리’의 두두리가 바로 도깨비라는 것이다.. <도화녀비형랑>에서 신라시대에 죽은 사륜왕과 정을 통한 도화랑이 임신하여 나은. 비형이라는 아이가 도깨비인 ‘두두리’ 무리의 우두머리로 묘사된다. 그 내용에 나오는 ‘비형’은 엄밀히 말해 도깨비라고 볼 수 없고 차라리 귀의 존재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두두리는 고대어에서 목랑(木朗) 혹은 목매(木魅)의 속칭이었다고 한다. 목랑과 목매는 나무의 정(情) 또는 오래된 목가구의 정(情)으로 도깨비의 본체가 나무붙이인 방앗고나 마 1) 김종대, 저기 도깨비가 간다. 다른 세상, 2000. P13 2) 서정범, 한국문화상징사전, 동아출판사, 1992, PP192 와 210. 일러스트레이션 포름 13 1.

(6) Journal of The Korea Society of Illustration Research. 당 빗자루, 도리깨 등으로 나타나는 점과 일치한다. 또한 ‘돗가비’가 ‘돗구+아비’의 구 성이며. 고대어에서. ‘목랑두(木郞頭)’를. tuku(두쿠) 라. 하여. ‘메’. 혹은. ‘절굿공이’와. 같은 ‘나무류’를 뜻한다는 것과 ‘아비’를 남성 성인으로 본다면 결국 ‘돗가비’를 나 무로 된 남정(男丁) 으로 비정하고 있다.3) 또한 ‘두두리’가 두드리다(打)의 동사 어간과 일치하며 명칭 자체에서 나무붙이신의 두드림이란 주술적 행위로 생산력에 대한 일반인들의 믿음을 반영한다고 한다. ‘두두리’라는 음원 때문에 야장문화와도 연결하지만 결국 나무붙 이 신에 대한 믿음과 두드림이라는 주술적 신명이 어우러져 만들어 낸 신앙형태이며 도깨비 라는 명칭은 나무 아비로서의 형상적 명칭을 우리말로 풀어 계승한 이름이라는 것이다.4) 우 리는 남방에서 온 농경민족과 북방에서 온 기마 수렵민족의 혼합후손이다. 숲과 나무는 농경 민족에나 수렵민족에게나 모두 생존과 직결된 중요한 자원이었고 신앙이었다. 심지어 나무는 신라 금관에서도 나타난다. 이후 나무는 도깨비의 정체와 관련하여 뗄 수 없는 장치로 등장 하며 도리깨, 절굿공이, 빗자루, 길가의 나무, 장승 등으로 환생하는 것이다. 최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머리에 뿔이 난 도깨비는 일본의 오니가 건너 와서 전래하였 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으며5) 귀면와 또한 명칭에 대한 새로운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귀 면와는 올바른 도깨비 이미지의 정체성을 혼동시키는 역할을 오랫동안 해 왔으나 학계 일부 에서 용이나 괴수의 얼굴이라고 주장되는 등 최근 명칭에 대한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림 1).. 3. 실록의 도깨비 흔히 옛 기록에서 도깨비를 설명하기를 귀매(鬼魅), 이매망량( 魑魅魍魎),6) 독각귀(獨脚 鬼), 허주(虛主)라고 표현하고 모두 도깨비를 지칭하는바 이는 도깨비를 기록하는데 마땅한 한자가 없었기에 한자표기상 생긴 혼란이라고 한다. 흔히 예를 드는 다음의 문장-진( 晉) 나 라의 갈홍(葛洪)이 자신의 저서 포박자(抱朴子)에서 말하기를 “산정(山情) 도깨비는 모양 3) 강은해, 한국문화의 원형 두두리 도깨비의 세계, 예림기획, 2003, P34 4) 강은해의 같은 책 P54~55 5) 김종대, 저기 도깨비가 간다, 다른세상, 2000, P72~79 6) 3-2참고, 불경 법화경에 당 현종 이후 이매망량이 많이 등장하며 한 나라 이후 괴이 현상은 모두 이매망량으로 설명한다. 노나라 말(語)에도 망량이 등장하며 망-나무, 량-돌, 이-나무, 량-짐승의 요괴라는 설도 있다.. 14 한국일러스트레이션학회.

(7) 도깨비 이미지의 시각적 정체성에 관한 연구. 이 어린애와 같고 외발로 뒷걸음쳐 걸으며 밤을 좋아하고 사람을 해치는 걸 좋아한다.”7) 에서 우리 민간에 전승되는 도깨비는 외발도 아니고 뒷걸음치지도 않으며 사람에게 해를 끼 치지도 않는 이유로 산정 도깨비는 우리의 도깨비 모습이 아니다. 그런데 석보상절의 도깨비가 사람들이 기복 하던 우리 고유의 도깨비라면 옛 기록, 특히 조선왕조실록8) 에서 한자로 차용해 표현했다는 귀매 ·이매망량 · 이매 혹은 망량으로 표현 되는 도깨비는 어떤 존재였으며, 어떤 행태를 보일까. 3-1. 귀매로 표현된 경우 총 35건의 기사에 귀매로 표현되어 있다. 그중 원인을 알 수 없는 변고를 다룬 기사가 7 건,9) 흉한 외모를 설명하고자 6건, 귀신과 혼동되는 존재로 3건, 허무맹랑한 언행에 대한 비유 5건, 나머지 14건은 누군가를 탄핵하고자 비유적으로 쓰였다. 여기에서 원인불명 변고 를 다룬 7건의 기사 중 4번의 기사를 보면 현종 때 자전이 거처하는 통녕전 근처에 돌덩이 혹은 기와조각이 날아오거나 의복에 불이 붙고 궁인의 머리카락이 잘리는 사고가 일어난 경 우로, 민간에 전해지는 도깨비 행태와 일부 겹쳐 있음을 알 수 있다. 실록의 귀매는 총 35건 의 기사 중 7건의 기사를 제외하면 모두 귀신과 혼동되는 흉악한 몰골의 묘사,. 허무맹랑한. 존재이거나 임금의 총기를 어지럽히는 간신이나 역신의 의미로 쓰인 것이다. 정조 실록 10 권 4년 11월 27일의 기사는 러시아인에 대한 용모 묘사인데 일부 학자에 의해 난쟁이에 대 한 묘사로 잘못 기술되었다.10) 3-2. 이매망량( 魑魅魍魎)으로 표현된 경우 이매망량 단어의 기원은 지금부터 4000년을 훨씬 넘긴 황제와 치우간의 전쟁기록에 나오 7) 將梓驊· 范茂震· 楊德玲 編, 鬼神學詞典, 陜西人民出版社, 1992, P8 8) 이하 인터넷 조선왕조실록 인용 http://sillok.history.go.kr (2006.7-9) 9) 1. “복자(卜者)의 말이, 내가 올해 9, 10, 11월의 액운(厄運)이 을사년보다 못하지 아니하므로 피하는 것이 마땅하다 라고, 또 말하기를, ‘경복궁 안에 시각장애인을 불러들여 경을 읽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나, 내가 믿지 않으므로 반드시 행하지는 않겠다. 창덕궁으로 옮기려고 하는데 사람들이 말하기를, ‘창덕궁은 오래 비워 두었으니 반드시 귀매(이하 도깨비가 ) 있을 것이라.’고 하 여 지금 이곳으로 왔는데, 내게는 매우 편하나 시위하는 군사가 한데서 거처하게 되어 비바람을 피하지 못하니 이것이 심히 미안 하여 경복궁으로 돌아가고자 하는데 어떨까.” (1471년 세종 53권 13년 9월 1일) 2. ‘경덕궁은 불행히도 대궐에 도깨비의 변고가 일어나서 급히 처소를 옮겨야 하였으므로 할 수 없이 함께 짓도록 한 것인데’ (광해 144권 11년 9월 1일) 3. ‘자전께서 거처하시는 궁중에 도깨비의 변괴가 있는데 통명전이 더욱 심하다고 합니다’ (현종 9권 5년 12월 18일) 4. ‘외인의 말을 들으니 근래 대내에 도깨비가 요변을 일으키는 일이 있다고 하는데, 사실인지 모르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 를, 자전께서 거처하시는 통명전 근처에 정말 그런 일이 있다. 돌덩이가 날아오거나 의복에 불이 붙거나 궁인의 머리카락이 잘리는 등의 일이 자주 있는데, 궁인들이 거처하는 곳은 더욱 심하다. 이치로 미루어 보면 넓은 집이 오랫동안 비어 있었고, 또 이곳이 여 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므로 순음이 많이 모여 요사스러운 재앙이 생긴 것 같다’ (현종 12권 7년 7월 18일) -같은 내용의 다른 기사에서는 기왓조각이 날아온다고 했다. 5. ‘도깨비의 변고가 심상하지 않아 거처를 옮기는 조처가 있기까지 하였고’ (현종 12권 7년 8월 9일) 6. ‘대내(大內)에 요즈음 재이(災異) 가 있으니,【밖에서는 무슨 재앙이 있는지를 알지 못하였는데, 혹자는 귀신의 변고가 있었다 고 하며, 그때 내전에 여러 달 동안 포태의 징후가 있었는데, 갑자기 침전에서 괴이한 것을 보고 그 때문에 놀란 나머지 하혈하고 낙태한 사고라고 전한다.】’ ‘전부터 대내에 도깨비의 변고가 여러 번 있었다고 하는데, 이번의 재이는 과연 무엇인지 알 수 없 으나’ (숙종 9권 6년 7월 24일) 7. ‘대사동에 무녀 삼이와 설향은 궐내에서 도깨비의 요괴한 짓을 하여 단발하는 일로 인해 저의 집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삼이 는 제가 과연 불러와 한 차례 신사를 행하고 도깨비에게 빌었습니다.’ (숙종 35권 27년 10월 28일) 10) 본 논문 P14 참조. 일러스트레이션 포름 15 1.

(8) Journal of The Korea Society of Illustration Research. 며 이후 BC 200년 한나라 시대 이후 괴이한 현상은 모두 이매망량의 짓이라는 표현이 일반 적으로 사용되었다. 결국, 이매망량은 옛 중국에서 산천초목과 무생물의 정령이 요사스럽게 정형, 현화된 현상을 지칭한 것으로 원인을 알 수 없는 괴기한 일에 대한 원인이며 그 사건 의 주역으로 추정되는 존재에 대한 지칭으로 풀이할 수 있다. 실록에 다뤄지는 이매망량, 이 매와 망량으로 표현한 경우 모두 같은 맥락으로 파악할 수 있고 이매망량으로 표기된 경우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 정적을 탄핵하려고 인용된 경우가 대부분으로 모두 34건의 기사가 등 장한다.11) 그중 30번 정조 실록의 기사를 제외하고는 전부가 올바른 왕의 통치를 방해하는 11) 1. ‘이것은 반드시 이매망량( 이하 도깨비)이 시킨 것이니 괴이하기가 심한 것인데’ (1480년 성종 117권 11년 5월 28일) 2. ‘도깨비인들 어찌 청천백일 아래에서 괴이한 일을 숨길 수 있겠습니까?’ (1494년 성종 277권 24년 5월 4일) 3. ‘도깨비들도 우정(禹鼎)에서 몸을 숨기지 못했는데’ (1537년 중종 86권 32년 11월 4일) 4. ‘마치 거울처럼 환하고 저울처럼 공평하면 온갖 도깨비들이 우임금의 솥에서 도망하지 못할 것이다’ (1537년 중종 86권 32년 11월 15일) 5. ‘성명의 밝으심이 중천에 뜬 해와 같아 도깨비들이 반드시 술수를 부리지 못할 것이고’ (1572년 선수 6권 5년 7월 1일) 6. ‘전하께서 매우 영명하시니 그들의 음흉한 계략을 통촉하신다면 도깨비 같은 무리가 모습을 감추지 못할 것입니다.’ (1585 년 선수 19권 18년 6월 1일) 7. ‘도깨비 같은 무리가 번갈아가며 환괴(幻怪)를 부려 짙은 안개와 구름이 하늘의 해를 가리듯 성상을 속이고 있으니’ (1587 년 선수 21권 20년 9월 1일) 8. ‘남인(南人)이 조정에 가득 차 도깨비 같은 무리가 대낮에 횡행하였는데’ (1599년 선조 110권 32년 3월 4일) 9. ‘도깨비 같은 무리들이 대낮에 날뛰었는데’ (1599년 선수 33권 32년 3월 1일) 10. ‘도깨비가 희롱하고 있는데도 이를 밝게 비추지 못하고 벼락이 치지 못한다면’ (1600년 선조 124권 33년 4월 18일) 11. ‘아무리 깜깜한 밤중이었다고 하더라도 어찌 눈을 밝히고 일어나 앉아 도깨비 같은 짓을 하는 것을 본 사람이 하나도 없을 수가 있겠습니까.’ (1606년 선조 200권 39년 6월 29일) 12. ‘도깨비 같은 무리가 용납되어 숨을 곳이 없게 했야 했었다.’ (1607년 선조 210권 40년 4월 11일) 13. ‘종이나 머슴같이 굴며 도깨비처럼 모이어 밤낮으로 경영하였으니, 이 어떤 사람들인가’ (1608년 광해 9권 즉위년 10월 13일) 14. ‘도깨비 같은 자들이 대낮에 도망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1613년 광해 68권 5년 7월 8일) 15. ‘밝은 해가 중천에 뜨면 온갖 도깨비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1613년 광해 69권 5년 8월 8 일) 16. ‘도깨비들이 대낮에 날뛰며 멋대로 괴이한 짓을 하되 감히 누구도 이를 막지 못합니다.’ (1615년 광해 88권 7년 3월 28 일) 17. ‘태양이 중천에 떠 있으면 뭇 도깨비들이 저절로 숨을 죽이고 숨는 법입니다.’ (1617년 광해 111권 9년 정월 21일) 18. ‘화기가 충만하여 바람추위더위 · · ·습기가 침입하지 못하고 도깨비가 범하지 못하여’ (1628년 인조 12권 4년 5월 28 일) 19. ‘어두운 밤이 끝나고 밝은 태양이 하늘에 떠올라 온갖 도깨비들이 한꺼번에 사라진 것과 같습니다.’ (1632년 인조 27권 10년 11월 2일) 20. ‘천일(天日) 아래에서 도깨비가 결국은 그 정상을 숨길 수 없다는 것이야 물론 알고 있습니다만’ (1665년 현종 6권 4년 4월 23일) 21. ‘도깨비와 같은 말이어서 입에 걸잘 것이 없기에 놓아두고..’ (1677년 숙종 6권 3년 6월 21일) 22. ‘도깨비 같은 간사함은 해와 달이 밝은 데서는 저절로 도망하기 어려우므로’ (1681년 숙종 12권 7년 9월 27일) 23. ‘도깨비같이 간사한 무리가 감히 태양 아래서 함부로 날뛰고 있습니다.’ (1681년 숙종 12권 7년 9월 30일) 24. ‘자연히 마치 중천에 뜬 해를 보고 사라지는 도깨비와 같을 것입니다.’ (1689년 숙종 20권 15년 2월 1일) 25. ‘성명(聖明)은 마음이 열리고 눈이 밝으시어, 비로소 도깨비가 천일(天日)의 빛에 범함을 얻지 못함을 알았으며’ (1695년 숙종 29권 21년 10월 19일) 26. 영의정 최석정이 왕에게 ‘도깨비는 일월 아래서 달아나지 못합니다.’ (1706년 숙종 44권 32년 9월 18일) 27. ‘다행히 성명( 聖明)께서 위에 계시는 데에 힘입어 도깨비 같은 자들이 그 정상을 숨기지 못하였으나’ (1716년 숙종 58권 42년 8월 3일) 28. ‘아! 성명이 위에 계신데 이러한 도깨비 같은 무리가 어찌 오늘날에 날뛰어야 하겠습니까?’ (1716년 숙종보정실록 58권 42년 8월 8일) 29. ‘도깨비처럼 날뛰던 무리가 그 정상을 도망할 수 없게 되었으며’ (1776년 정조 3권 원년 3월 29일) 30. 대내에 도둑이 들었다. 임금이 어느 날이나 파조하고 나면 밤중이 되도록 글을 보는 것이 상례이었는데, 이날 밤에도 존현각 에 나아가 촛불을 켜고서 책을 펼쳐 놓았고, 곁에 내시 한 사람이 있다가 명을 받고 호위하는 군사들이 직숙하는 것을 보러 가서 좌우가 텅 비어 아무도 없었는데, 갑자기 들리는 발걸음 소리가 보장문 동북쪽에서 회랑 위를 따라 은은하게 울려왔고, 옥좌의. 16 한국일러스트레이션학회.

(9) 도깨비 이미지의 시각적 정체성에 관한 연구. 간사한 무리를 통칭하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주로 중국의 옛 우 임금시대의 고사를 빗대어 정적을 탄핵할 때 사용한다. 좌전(左傳) 선공 3년 조 기사에 의하면 우정(禹鼎)은 우임금이 만든 구정(九鼎)으로 온 천하 구주의 쇠를 거두어 모아 솥을 만들어 백물의 모양을 거기에 구비시켜 놓았으므로 백성들도 간요한 것을 잘 알아보기 때문에 산림천택에 들어가서도 그 들을 만나지 않았고 도깨비 같은 것들도 사람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매망량은 태 양처럼 밝은 왕의 올바른 통치행위를 방해하는 간신 무리를 지칭하며, 경계하라는 의미로서 고사를 인용할 때 주로 사용하는 관용구이며 중국에서 빌려 왔던 부정적 존재로서 선과 악, 양면성을 가진 도깨비의 속성 중 나쁜 역할을 강조하기 위하여 가장 많이 동원된 비유라고 할 수 있다. 3-3. 이매, 망량으로 표현된 경우 이매망량과 같은 단어와 의미로서 분절되어 사용되었다. 우선 이매의 경우 모두 108건의 기사가 나오는데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목숨이 붙어 있다고는 하나 그 모양은 도깨비 같은 형상이라’ (명종 16권 9년 5월 30일), ‘사람들은 그를 혹독한 귀신이나 도깨비로 볼 뿐이었습니다.’ (광해 3권 즉위년 4월 16일), ‘행동이 귀신이나 도깨비와 같아서 예측할 수 없는 자는 반드시 소인이요’ (인조 32권 14년 5 월 4일) ‘그의 아들과 손자가 도깨비와 같은 짓을 한 상황을 모두 불었다’ (효종 7권 2년 12월 20일), ‘지렁이처럼 그러모아 뭉치고 도깨비같이 흐릿하여 보이지 않아’ (영조 58권 19년 10월 3일). 이상 다섯 기사를 제외한 나머지 103건의 기사는 모두 임금의 밝은 통치를 흐리는 간신, 역적을 탄핵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다음 망량의 경우 이매와 같은 경우로서 모두 19건의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그중 허무맹 랑한 행태의 3가지 사건은 다음과 같다. ‘이천해는 도깨비에게 홀려 혹 스스로 목을 찌르기도 하고 혹은 배를 찌르기도 했다.’ 하였기 때 중류쯤에 와서는 기왓조각을 던지고 모래를 던지어 쟁그랑거리는 소리를 어떻게 형용할 수 없었다. 임금이 한참 동안 고요히 들 어보며 도둑이 들어 시험해 보고 있는가를 살피고서, 친히 환시와 액례들을 불러 횃불을 들고 중류 위를 수색하도록 했었는데, 기와 쪽과 자갈, 모래와 흙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고 마치 사람이 차다가 밟다가 한 것처럼 되어 있었으니 도둑질하려 한 것이 의 심할 여지가 없었다. 드디어 도승지 홍국영을 입시하여 고할 것을 명하였기 때문에, 홍국영이 말하기를, “전폐 지척의 자리가 온갖 신령들이 가호할 것인데, 어찌 도깨비붙이가 있겠습니까? 필시 흉얼들이 화심을 품고서 몰래 변란을 일으키려고 도모한 것입니다. 고금 천하에 어찌 이러한 변리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가 나는 새나 달리는 짐승이 아니라면 결 단코 궁궐 담장을 뛰어넘게 될 리가 없으니, 청컨데 즉각 대궐 안을 두루 수색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그것을 옳게 여겼다. 이때에 홍국영이 근위대장을 띠고 있었고 사세가 또한 다급하므로, 신전을 쏘도록 하여 연화 문에서 숙의하는 군사를 거느리고서, 삼영의 천경군으로는 담장 안팎을 수비하게 하고 무예별감을 하문의 파수로 세우고 금중을 두루 수색하였으나, 시간이 밤이라 어둡고 풀이 무성하여 사방으로 수색해 보았지만 마침내 있지 않았다. (1777년 정조 3권 1년 7월 28일) 31. ‘우정이 간악한 것들을 밝게 비추자 도깨비 따위가 그 형상을 피할 수 없었고’ (1812년 순조 15권 12년 4월 28일) 32. ‘해와 달을 걸어 밝게 비치니, 도깨비 따위가 달아날 수가 없었습니다.’ (1812년 순조 15권 12년 5월 6일) 33. ‘도깨비들이 우정 아래서 도망할 수 없었습니다.’ (1830년 순조 31권 30년 6월 23일) 34. ‘도깨비들이 우정에서 도망할 수 없었습니다.’ (1831년 순조 31권 30년 11월 26일). 일러스트레이션 포름 17 1.

(10) Journal of The Korea Society of Illustration Research. 문에 직접 시험하여 보았더니 (영조 3권 원년 정월 17일) ‘도깨비의 말을 어찌 다시 제기할 것이 있겠는가?’ (영조 111권 44년 7워 6일) ‘어떻게 정정당당한 장군의 혼령이 괴이한 도깨비의 미친 짓을 할 수 있겠습니까?’ (순조 25권 22년 4월 8일). 그리고 귀신과 혼동되는 2건은 다음과 같다. ‘도깨비에게 홀린 사람 같습니다.’ (영조 50권 15년 9월 16일) ‘조정이 스스로 도깨비방[魍魎房]이라고 말하였기 때문에 그 무녀의 호칭을 알았던 것입니다’ (영조 61권 21년 2월 13일). 다음 민간의 도깨비와 유사한 변고의 2건은 다음과 같다. ‘옷자락을 걷어 맨 데에서 모래를 움켜 주고서 함께 옥상으로 올라가다 존현각의 가운데 처마에 이르러서는 기왓장을 제치다 모래를 뿌리다 하여 도깨비짓을 하며 사람들의 눈과 귀를 현혹시 켜’ (정조 4권 원년 8월 11일) ‘기와를 뒤집으며 기회를 엿보다 더러는 돈을 부리어 종적을 현혹하다 하며 도깨비를 가장하다가 가만히 우거진 풀 속에 숨는 짓을 했으니’ (정조 4권 원년 9월 24일). 이상 귀매, 이매망량, 이매, 망량으로 표현되는 도깨비가 실록에 등장한 기사는 총 196건 이다. 장황하지만 이 기사를 읽으면 지배층이 생각했던 도깨비의 이미지가 비교적 구체적으 로 떠오르게 된다. 표1은 총 196건의 기사 중 정적에 대해 탄핵기사 162건, 알 수 없는 변 고 기사 10건, 허무맹랑한 사건과 행태에 대한 비유 9건, 흉악한 몰골에 대한 비유 8건, 귀 신과 혼동되는 존재에 대한 기사 5건, 혹독한 성정을 비유한 기사 2건을 나타낸다.. 표1. 실록이 묘사한 도깨비 이미지, 강성철. 4. 민담 도깨비의 행태와 그 진실 4-1. 도깨비의 외모 민간에 전승되는 우리 도깨비의 얼굴과 외모에 대한 시각이미지 자료는 우리에게 남아 있 지 않다. 이것은 우리 조상이 음귀들을 그림으로 표현해서 남기길 꺼렸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18 한국일러스트레이션학회.

(11) 도깨비 이미지의 시각적 정체성에 관한 연구. 있지만 아무튼 도깨비의 구체적 모습에 대한 묘사는 별로 남아 있지 않다. 대부분 ‘키가 구척장신’,. ‘키가 팔대장 같은 놈12)’,. ‘커다란 엄두리 총각13) ’,. ‘다. 리 밑에서 패랭이 쓴 놈14)’, ‘장승만한 놈’ 등으로 표현된다. 또 키가 너무 커 다리만 보이고 얼굴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와 같이 전승되는 민담 대부분에 도깨비는 구체적 이 미지나 얼굴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성현의 용재총화에서 설명하는 도깨비는 다음과 같다. ‘다리는 하나, 말라서 살이 없으며, 검은 옻칠을 한 것처럼 광택이 나고, 키가 매우 커서 상 반신은 구름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도깨비 이야기로 간 주되는 신라의 ‘방이 이야기’에 나오는 도깨비 모습은 아이의 모습으로 나타난다.15) 삼국 유사의 <도화녀 비형랑>조의 비형과 그 무리도 두두리 곧 도깨비로 설명하지만 용모에 대해 서 특이한 점은 전해지지 않는다.16) 모든 자료에서 거의 동일하게 표현되는 것으로 보아 결국 정확한 얼굴을 본 사람이 없다 는 의미도 된다. 하지만, 우리는 도깨비의 행동거지에서 도깨비의 얼굴 모습을 유추할 수 있 다. 도깨비를 인간과 유사한 성격, 속성, 신체와 골격을 가진 존재라고 봤을 때 일반적 경험 이자 관상 같은 전통통계를 바탕으로 도깨비의 모습을 짐작하는 것이다. 즉, 도깨비의 신체 골격 특성과 행동거지로 도깨비의 모습과 얼굴을 연상할 수 있다. 예컨대 하얗고 단아하며 관옥과도 같은 선비 얼굴의 허우대로 허둥대고 겅중거리고 남에게 속고 한밤에 지붕 위에 올라가서 기왓장을 뒤적이고, 그리고 수풀에 숨어서 돌멩이를 던지고 모래를 뿌리고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물론 인간 중엔 생긴 모습과 하는 행실이 다른 표리부동도 많다. 하 지만 행동이 엉뚱하다고 해서 도깨비가 눈이 하나이거나 송곳니가 불거진 괴이한 형상으로 상상이 되지 않는다. 김서방, 김생원, 혹은 참봉이라는 별칭과 함께 하는 짓을 보면 평범, 순 진, 어리석으면서 심통도 부리고 장난을 좋아하며 고집스러우면서 솔직한, 엉뚱하거나 바보 같은 사람이 떠오르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도 떡, 메밀, 고기, 술, 여자 등등으로 너무나 인 간적이다.17) 그렇다면, 얼굴 모습도 인간으로 유추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왜 이미지가 이 같이 연상되는 데도 우리 조상은 굳이 그림은 고사하고 언어로도 자세한 묘사를 남기지 않 았을까. 그것은 실제로 만난 사실이 없다는 가설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도깨비 조우 담은 늦은 귀가에 대한 핑계가 대부분인 민담과 행운을 가져다주는 구전이야기 등에서 주로 등장한다. 따라서 만나지도 않은 존재에 대해 구체적인 얼굴 모습을 설명할 수 없었던 것으 로 단정할 수 있으며 설혹 만났다 하더라도 특별한 외모를 갖지 않았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4-2. 인간적인 행태 도깨비는 인간을 닮았다. 술과 고기를 좋아하고 노래 부르며 춤추면서 놀기 좋아하고 예쁜 12) 박종섭외, 한국구비문학대계 8-1(경남 거제군편), P516 13) 류종목외, 한국구비문학대계 8-2(경남 거제군편), P231 14) 최정여외, 한국구비문학대계 8-6(경남 거창군편), P119 15) 唐 段成式, 酉陽雜俎續集 16) 동국여지승람, 21:18, 慶州<佛字>條 17) 한국구비문학대계에 등장하는 도깨비 행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일러스트레이션 포름 19 1.

(12) Journal of The Korea Society of Illustration Research. 여자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과부에게 돈을 갖다 주어 부자를 만들어 주고도 배신당해 쫓겨난 다음 동네방네에 여자를 믿지 말라는 고함만 지른다. 보잘 것 없는 음식으로 대접받으면서 엄청난 부를 안겨 주고, 사귄 남자를 부자로 만들어 준 다음 배신당하고도 해코지를 할 줄 모른다. 도리어 그에게 속고 쫓겨나며 겨우 자기 돈으로 산 상대방의 논밭에 개똥을 뿌릴 뿐 이다.18) 씨름을 좋아해 밤길에서 만난 취객에게 고기 내기 씨름을 걸지만 한 번도 이기지 못하고 고기도 얻지 못한다. 심술이 나면 솥 안에 솥뚜껑을 집어넣어 솥을 못 쓰게 만들고 돌멩이를 던지거나 모래를 뿌려댄다. 힘이 장사라서 황소를 지붕 위에 올려놓기도 하고 큰 바위를 굴 리며 가구를 엎어 놓기도 한다. 앞으로 출세하고 대성하게 될 어린 소년 앞에서는 비굴하 고19) 대가를 바라지도 않고 통학까지 시켜준다.20) 겨우 구황작물인 메밀로 만든 음식이나 얻어먹고 바다나 갯벌에서 고기가 많이 잡히는 곳을 알려 주거나 직접 고기를 몰아다 주기 도 한다.21) 힘이 장사이지만 어리석고 소박하여 인간의 꾀에 항상 넘어간다. 특별히 백마 피를 무서워 하며 자신이 먼저 절대로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심지어 나쁜 역할을 담당하는 제주 도의 영감놀이에서조차 경망스럽고22) 호색한이며 수전증에 걸린 전형적인 술꾼의 망가진 모습으로 등장하고 쫓겨난다. 여러 민담에서 내려오는 이와 같은 도깨비들의 특성을 종합해 보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른 다. 그는 우리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이다. 곧 약아빠지지 않고 솔직하며 소박하 고 어수룩한 어떤 남자의 인간적 모습이 떠오르면서 도깨비 모습과 겹쳐지는 것이다. 통상 도깨비는 인간성을 부여받은 잡신으로 취급된다. 하지만 화재 신이나 역신으로 제사 를 받는 지역을 제외하고 민담 속에 나오는 도깨비는 모두 인간적인 풍모를 가지고 있다. 심 지어 갯벌 어민에게서 채록한 자료에도 메밀 범벅 한 그릇 얻어먹고서 고기를 많이 잡게 해 준 다음, 확실하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얼핏 보여준 다음 생색도 없이 사라진다.23) 도깨비의 풍모와 행태는 특별히 사람들에게 예측할 수 없이 피해를 주는 그 무엇, 곧 원인 모를 화재나 돌림병의 원인 등으로 지목되는 경우와 제주도의 영감놀이 등을 제외하고는 전 국적으로 민담 속에서 모두 같다. 특별하게 머리에 뿔이 나거나 송곳니가 밖으로 비쭉 삐져 나온 모습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4-3.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들 도깨비는 메밀로 만든 음식, 떡, 술, 노래, 춤, 돼지고기, 사람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또 여자를 좋아한다고 한다. 돼지고기를 좋아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고 술 마시고 노래 18) 김종대, 저기 도깨비가 간다, 다른세상, 2000, P90 19) 한국구비문학대계 7-6, 1961, P53 20) 충주중원지, 충주문화원, 1985, PP969~970 21) 내고향 해제마을, 해제면지발간위원회, 1988, P272 22) 현용준, 제주도신화, 서문문고, 1976 23) 이훈익, 인천지방향토사담, 1990. 20 한국일러스트레이션학회.

(13) 도깨비 이미지의 시각적 정체성에 관한 연구. 부르고 춤추며 여자를 좋아하는 걸 보니 도깨비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한 국 남성이 틀림없어 보인다. 도깨비가 좋아하는 음식은 우리 민족이 수 천 년 동안 생활에서 친숙하던 음식이고 노는 모습은 한국 남정네들의 일반적인 행태가 연상되고 있다. 단지 메밀이 좀 의아스럽다. 요즘이야 의미가 좀 다르긴 하지만 전통적으로 메밀은 흔히 영양가가 없고 서민층에서 먹는 구황음식으로 많이 인식됐다. 보릿고개를 겪고 흉년을 겪는 서민들을 상징하는 메밀이야 말로 굶주린 백성이 따로 비용을 안 들이고 제사 음식으로 장 만할 수 있는 곡물이었던 것이다. 도깨비가 특별히 좋아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가장 손 쉽게 구하고 제사상에서 모양을 갖출 수 있는 음식이었다. 더욱 어민들에게 있어서 쌀은 상 대적으로 비싸고 귀중한 식량이었을 것이다. 갯벌고사나 뱃고사에서 도깨비가 좋아한다는 메 밀도 여기에서 유래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궁벽한 살림에 좋은 재료로 제사 음식을 장만한 다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다. 부득이한 합리화가 만들어 놓은 눈물겨운 제사 음식인 셈이다. 도깨비는 백마 피, 혹은 말 피를 싫어한다고 한다.24) 이유는 음귀적 속성이 있는 도깨비 에게 양의 상징인 백마 피가 상극이라서 그렇다고 한다. 흔히 도깨비를 이용한 다음 쫓아낼 때는 백마나 말의 머리를 집밖에 걸고 문에 말의 피를 발라 놓으면 도깨비가 집안에 못 들 어오고 도망을 간다고 하는데, 이것은 음의 속성을 가진 도깨비를 구축하기 위해서 설정한 의미로 보이며 혹은 기마민족으로서 말을 신성시하고 도축을 금기시했던 우리의 전통 가치 관과 관계가 있어 보인다. 개고기를 싫어한다는 설도 있다. 4-4. 출몰하는 장소 도깨비가 나오는 곳은 어디인가. 도깨비는 마을 주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숲, 시장에서 마 을로 돌아오는 으슥한 외딴 길, 깊지 않은 산속의 고개, 동네 가까운 동굴, 공동묘지, 사람이 살지 않는 마을의 외딴 폐가, 지대가 낮은 늪이나 물가, 갯벌, 얕은 바닷가, 가까운 바다에 산다고 한다.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사람들의 왕래가 드문 지역에 사는 것이다. 사람의 왕래 가 아주 없는 험한 산꼭대기나 깊고 먼 바다의 한가운데가 아니다. 산의 숲이 조금 우거지고 사람의 왕래가 잦지 않은 지역이지만 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다. 공동묘지도 예전엔 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이렇게 모두가 인가에서 가까웠다. 또한, 주로 어둡고 가는 비 가 조금씩 내릴 때 도깨비불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도깨비는 밝은 곳을 싫어하고 어둠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의미는 여러 가지를 내포하고 있다. 도깨비라는 존재가 인간과 신의 영역 중간, 즉 하 위 잡신의 위치에 걸쳐 있으므로 신의 영역에 속하는 높은 산과 인간거주지인 마을 사이 즉 그 중간지대인 낮은 산과 숲에 거처를 두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도깨비 자신 이 도깨비 담을 통해 언제나 수시로 인간세계에 출몰할 수 있도록 하려고 마을의 인가 가까 운 곳에 살아야 했던 것이다. 물론 그 설치장소의 설정은 인간이 한 것이다. 도깨비가 출몰하는 곳 대부분이 갯벌 제사가 행해지는 갯가나 연해 바다 혹은 모두가 평 소에 집안의 어른들이 사고가 날 가능성이 크고 위험하니 가까이 가거나 가서 놀지 말라고 24) 박종익, 한국구전설화집 2, 민속원, 2000, P297. 일러스트레이션 포름 21 1.

(14) Journal of The Korea Society of Illustration Research. 아이들에게 이르던 장소이다. 도깨비가 좋아하는 시골의 캄캄한 어둠 역시 그러하다. 도깨비 는 음귀이므로 음습한 곳, 오래된 우물, 오래된 절, 고목나무 밑, 동굴, 산계곡 등으로 밝고 공개된 장소가 아니다.25) 도깨비불이 나오는 밤은 위험한 야생동물도 있을 수 있으며 어른 들은 물론이고 아이들이 더 다치기 쉽다. 옛날 어두워지면 놀이를 그치고 곧장 집으로 돌아 와 밥 먹고 잠자리에 들어야만 했다. 어둠은 아이들과 어른들의 활동을 제한했다. 도깨비담 은 이러한 당시의 생활환경과 사람들, 특히 아이들의 상해 위험을 줄이기 위해 끊임없이 전 승되고 윤색되며 재생되었다 (그림 2).. 5. 지배 계급이 상상한 도깨비 이미지 살펴 본 바와 같이 지배계급이 상상한 도깨비 이미지는 실록의 묘사가 대표적인 경우로서 민중이 생각했던 도깨비와는 전혀 다른 존재에 대한 것이다. 실록에서 도깨비의 모양이라고 지칭한 구체적 형상의 예가 다음과 같다. ‘머리를 풀어헤치고는 흰 것을 이고 도깨비의 모양을 하고’ ‘목숨이 붙어 있다고는 하나 그 모양은 도깨비 같은 형상이라’ ‘시체가 길에 가득하고 썩은 살점이 냇물을 막고 있으며 살아남은 사람들도 모두 도깨비 몰골이 되어’ ‘굶주림으로 파리하고 부황(浮黃)이 들어 마치 도깨비 같은 몰골이었으며’ ‘사람들은 그를 혹독한 야차나 도깨비로 볼 뿐입니다’ 25) 任晳宰, 秦弘燮, 任東權, 李符永, 국립민속박물관총서 1 한국의 도깨비, 열화당, 1981, P21. 22 한국일러스트레이션학회.

(15) 도깨비 이미지의 시각적 정체성에 관한 연구. ‘조금이라도 뜻대로 되지 않으면 온갖 가혹한 형벌을 다 내리므로 도로에서도 놀라고 두려워하여 도깨비를 보듯 하였다.’ ‘말라 죽어 도깨비가 된 자는 다시 소생시킬 수 없고’. 특히 조선 정조 때 청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부사 정원시가 묘사한 대비달자, 즉 러시아 사람의 생김새를 도깨비의 외형으로 언급하기도 한다. “코가 큰 달자(㺚子)의 생김새는 어떠하던가?” 하니, 정원시가 말하기를, “눈은 깊이 들어갔고 눈썹은 크며 들창코에다 나귀 얼굴을 하여 마치 귀매(鬼魅)와도 같고 짐승과 도 같았으며 누린내가 풍겨서 사람이 가까이 갈 수 없었습니다. 용맹과 힘이 매우 뛰어나고 희노 (喜怒)가 일정하지 않아 호인(胡人)들도 매우 두려워하였습니다.”26). 이 기록들을 보면 사실 도깨비에 대한 묘사인지 야차나 귀에 대한 묘사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특히 정조 실록 기사는 정원시의 직접 화법 기록이고 아마 야차와 도깨비를 동격으 로 병치, 언급한 것으로 보아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을 보고서 불교의 귀신을 상상하면서 증 언했다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러시아인을 묘사한 증언이다. 실록에서 도깨비를 언급한 기사는 모두 합하여 196건이다. 그 중 ‘이상한 일이 물리적으 로 일어났을 때, 도깨비의 모습과 관련이 있는 기사, 도깨비의 존재에 관련한 기사’에 나오 는 39건의 기사와 세종실록 53권 13년 9월 1일의 다음 기사 즉 ‘창덕궁은 오래 비워 두 었으니 반드시 귀매가 있을 것이라.’는 기록만이 우리가 아는 도깨비 행태와 비슷한 사건의 기사이고 나머지는 실제 도깨비의 존재를 언급한 기사가 아니다. 귀매 및 나머지 단어, 즉 이매망량, 이매, 망량 단어는 거의 모두 중국의 고사와 관련하여 소인이나 간신, 먼 곳으로 귀양을 보내야 하는 역적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결국, 귀매 및 이매망량은 중국의 고사에서 가져 온 단어로서 우리가 수복을 빌었던 석보 상절의 도깨비라고 볼 수 없으며 중국의 요괴라고 단정된다. 주로 인물을 탄핵할 때 비유하 고 동원되는 흔한 관용어구로서 인용할 때도 항상 우임금이 만든 솥-곧 왕권의 상징, 밝은 대낮, 태양, 달 등의 단어와 함께 사용되었다. 곧 공명정대하지 않고 못된 존재이며 부정적 인물을 지칭했다. 어둠을 틈타 몸을 숨기고 무리를 지어 흉계를 꾸미고 온갖 나쁜 짓을 꾸미 는 인간 요물이 연상되기도 하는데 당파분쟁이나 다른 이유로 특정인을 탄핵할 때 흔히 사 용하는 비유 단어다. 다만, 현종실록 기사와 정조 실록의 기사를 통해 돌덩이와 기와조각이 날아오거나 혹은 모래를 뿌리는 데서 민간의 도깨비와 행태가 희미하게 겹쳐진다. 반역이나 위해를 시도하려고 야음에 몸을 감추고 대담하게 왕궁에 들어와서 불안을 일으키면서 사람 이 아닌 신이한 존재가 한 것처럼 위장했던 인간에 대한 기록이다. 이는 충분히 개연성이 있 는 일이다. 나뭇잎에 ‘주초위왕 (走肖爲王)’을 새겨서 이를 빌미로 조광조를 죽음에 이르 게도 했던 시절이었다. 실록에서 왕과 신하들의 대화를 보면 지금도 감탄할만하게 논리 정연 26) 정조실록 10권, 4년 11월 27일. 일러스트레이션 포름 23 1.

(16) Journal of The Korea Society of Illustration Research. 한 이론과 과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기사도 보이는 반면 허무맹랑한 모함 사건과 도깨비 위장 사건도 있었던 것이다. 그 시절 야음한 가운데 상대방에게 들키지 않고 기와조각이나 돌멩이를 집어던지고 모래 를 뿌리는 행위는 가능한 것이고 큰 피해가 아니라면 당한 사람도 도깨비짓이라고 범인 추 적을 단념해 버리는 것이 일반적이었을 것이다. 이렇듯이 실록의 귀매나 이매망량은 비록 도깨비로 번역될지라도 민간전승의 도깨비와는 그 의미가 너무 다르다. 조선왕조실록은 지배계급의 기록이자 중요한 공식 자료이며 비할 바 없는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갖는다. 역대 왕을 비롯한 지배계급, 편찬 기록자들도 도깨비에 대한 민간의 기복 신앙과 속설도 분명히 잘 알고 있었으리라 생각되지만 현실사상이었던 유 교철학을 기반으로 했던 조선시대의 지배계급에서는 대부분 도깨비를 부정적으로 인식했다. 실록의 귀매나 이매망량은 민중의 기복 대상이었던 석보상절의 도깨비와는 분명히 다른 존재를 표현한 것이다. 실록의 도깨비는, 불씨와 씨앗에서 기원했고 소박하게 나무를 두드리 며 기원하고 정체가 기껏해야 빗자루, 몽둥이 혹은 도리깨 등의 생활도구일 뿐인 민중의 도 깨비와 도저히 연결되지 않는다. 민담 속의 도깨비는 마을 주변 사람들의 왕래가 있는 곳에 살고 있는데 실록의 도깨비는 사람들이 살지 않는 아주 먼 곳에 살고 있다.27) 결국, 실록의 귀매나 이매망량은 우리의 도깨비를 한자로 표현한 것이 아니다. 중국의 요괴를 표현했던 원 래 그 단어의 기원에 맞춰 올바로 사용한 것이다. 이렇듯 실록의 이매망량은 한자의 뜻풀이로만 도깨비이지 실제 우리의 도깨비가 아니라 분명히 중국의 요괴이다. 결국, 조선시대의 지배계급인 유학자들은 불교와 무속에 기복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철저히 멸시하였기 때문에 민속신앙의 대상이었던 도깨비를 지칭하는 데 사용했던 한자 단어 자체에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와 함께 철저하게 도깨비를 부 정적으로 인식하고 흉악한 몰골을 가진 허무맹랑한 존재로 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6. 민중이 상상한 도깨비 이미지 민담과 설화 속에 등장하는 민중의 도깨비는 모순된 양면성을 갖고 있다. 해를 끼치거나 도움을 주는 존재이며 예지능력을 갖고 있으며 반면에 어처구니없이 어리석기도 하다. 역신 이나 화재신 역할을 제외하면 소탈하고 어리석은 우리의 이웃이나 우리 자신의 이미지가 도 출된다. 한밤중 늦은 귀갓길에 만나서 붙잡고 씨름을 했지만 얼굴을 자세히 보지 못하였다는 경우 및 과부에게 배신당한 도깨비 이야기, 친구를 도와주고 배신당한 도깨비 이야기에서도 그의 인상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지 않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것은 아마도 도깨비가 눈에 띄는 특별한 용모를 가지지 않았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따라서 도깨비는 보통의 성인 남자 외모를 가진 흔한 인상의 소유자라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그림 3와 4).. 27) 실록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도깨비는 인간세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 살거나 살아야 한다. 곧 그들은 밝은 왕권을 흐리기 때 문에 정상적인 인간사회에서 격리되어야 하는 탄핵대상의 인간들이었다.. 24 한국일러스트레이션학회.

(17) 도깨비 이미지의 시각적 정체성에 관한 연구. 석보상절의 도깨비는 민중의 도깨비라고 단정할 수 있다. 석보상절의 원문에서 ‘도깨비’ 는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번역자-수양대군으로 상징되는 귀족층-에 의해 ‘도깨비를 청 하여 복을 빌어 목숨을 길게 하고자 하다가 종내 얻지 못하니’28) 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도깨비는 고려사 열전 기사이변 조29) 이래 무식한 사람들이 믿는 쓸모없는 존재로 부정적 으로 회칠되고 무시되며, 조선시대를 지나면서 한문사용자인 지배계급에 의해 철저히 부정되 는 것이다. 신라시대 ‘방이 이야기’를 제외한 고려사 이전의 도깨비 관련 기록은 알 수 없 으나 석보상절에서 보듯이 불교에 의해 잡신으로 추락하고 다시 불교를 부정한 조선의 유교 문화에 의해 이중으로 부정당하면서 도깨비는 철저히 몰락한 것이다. 반면, 우리 민담 도깨비이야기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동네의 어르신이나 혹 우리네 어머니 와 할머니들을 통해 가정에서 주로 전승되었으며, 아이들에게 교훈과 경계를 주고 흥미와 꿈 을 키웠던 에듀테인먼트 컨텐츠로 가공되어 계속해서 이어져 왔다고 단정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 민족의 밑바닥에 흐르고 있는 문화 원형의 또 다른 표출이며 끈질긴 생명력이기도 하 다. 씨름 거는 도깨비와 과부와 남자를 부자로 만들고 배신당하는 도깨비 이야기들은 실제 있 었던 사건을 윤색하여 교훈을 주기 위해 가공된 이야기이며 명당과 어릴 때부터 큰 인물을 알아보는 도깨비 이야기는 역시 같은 목적으로 후대에 다듬어진 설화이다. 제사 받는 역신 도깨비는 전염병을 갖고 오는 외부인들에 대한 경계를 환기시키는 장치이며 화재 신으로 모 셔졌던 도깨비 굿 역시 그러하다. 화재 신 도깨비와 굿은 주민들이 화인(火因에)에 대해 과 28) 석보상절, 권 제9, 35장 앞쪽에서 37장 뒷쪽 29) 고려사열전, 기사이변, 이의민조 곧 ‘이의민이 무식하여 무격을 믿었다. 경주에는 지방 사람들이 두두을이라고 믿는 목매(木魅) 가 있었는데, 의민이 집에 당을 세워 맞아들이고 모시고 있었다. 매일 제사하여 복을 빌었는데, 홀연 하루는 당중에서 우는 소리가 있었다. 의민이 이상히 여겨 물으니 목매가 말하였다. 내가 너희 집을 오래 지켜 왔는데 이제 장차 하늘에서 화가 내리려 하니 내 가 의탁할 곳이 없어 운다 하더니 얼마 안되어 패하였다.’. 일러스트레이션 포름 25 1.

(18) Journal of The Korea Society of Illustration Research. 학적 인과를 알고 있지만 정착 공동체 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결과와 체념을 수용해야 했던 상황적 한계 때문에 구현, 설치된 존재 및 행사인 것이다. 제주의 ‘영감놀이’도 굿의 구조와 기원을 새롭게 조명하고 다른 관점으로 해석해야 한 다. ‘여자’가 병이 들면 벌이는 ‘영감놀이’를 어로사고로 잃은 남편 대신 수절하는 과부 가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제주의 특수 상황을 고려한 측면으로 굿의 내용을 새롭게 분석해 야 할 것이다. 민담의 도깨비 이야기는 지방에 따라 정착민이 주류인 주거 환경과 인간관계 때문에 생긴 갈등과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 덧붙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우리 민족의 독특한 심성이 빚어낸 아름다운 각색이며 구전 동화인 것이다. 한때 서민들의 기복신앙 대상이었던 도깨비 는 우리 민족의 문화 원형을 바탕으로 탄생한 신화 체계의 주인공이다. 수천 년간 그렇게 전 승되었지만 어느새 기록문학과 민담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도깨비는 구비 문학대계 등의 자료에서 보듯이 산업화가 진행되었던 시기 이후 모두 사라졌으며 아동용 컨 텐츠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도깨비는 조선시대의 지배계급에게 철저히 멸시당하고 영락했지만 민중에 의해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즉, 산업화와 함께 본래의 이미지와 인적인 전승매체 고리를 잃고 말았지만, 현 대에 들어와서는 매체를 바꾸어 동화책이나 애니메이션을 통해 끊임없이 전승되고 있는 흥 미진진한 교육, 훈계 목적 컨텐츠의 주인공으로 살아남은 것이다. 민중의 아이들은 자라면서 전승되는 도깨비 이야기를 통해 효와 가정의 의미, 선과 악의 구분, 긍정적이고 보편적인 인간관계, 배신과 어리석음에 대한 경계, 부자가 되는 법, 친구와 재물 관리 법, 물질과 인간과의 관계, 해서는 안 될 일에 대한 교훈, 결연한 삶의 의지를 배 웠다. 그리고 어른이 된 다음, 다음 세대의 아이들을 위해서 조금 더 새롭게 윤색하여 물려 주면서 아름다운 미래와 꿈, 희망의 여지를 주었다. 결국, 도깨비이야기는 곧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도깨비이야기 주인공인 도깨비 존재 자체 는 바로 우리 한국의 남정네들이며 도깨비 이미지는 우리 자신 같은 보통 이미지라고 단정 할 수 있다.. Ⅲ. 결론 및 요약 도깨비의 정체는 일단 어원대로 나무로 만들어져 두들기며 기원할 때 사용하던 도구였거 나 나무로 만들어서 모셨던 특정한 나무붙이 형태에서 기원했다고 추정된다. 또한 도깨비는 민간의 속설대로 우리의 손때가 묻은 부엌살림, 도리깨 같은 농사기구, 헌 가구 살림형태로 상징되는 우리의 문화원형이며 우리 자신이며 무의식적 콤플렉스이기도 하다. 분명한 것은 나무와 관련이 있고 그렇다면 수신(樹神)숭배와 연관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생활환경이 나무 문화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추론이라고 생 각된다. 도깨비 조우담은 모든 세간과 살림도구, 농사도구를 소중히 여기는 우리의 평소 생 26 한국일러스트레이션학회.

(19) 도깨비 이미지의 시각적 정체성에 관한 연구. 활습관에서 비롯되었으며 그것들을 반드시 소중하게 사용하고 지키며 폐기처분할 때는 정확 하게 처리하도록 하는 관념이 만든 속설이다. 거기에 평소 물건에는 사용하던 사람의 정(精) 이 붙는다는 전통적 믿음까지 덧붙여졌다. 한편, 도깨비는 읍내 장에서 동네로 돌아오는 언 덕이나 길목에 서 있던 나무일 수도 있다. 낮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보이던 익숙한 형상이 어 두운 밤에는 상상력과 두려움이 합쳐져서 전혀 다른 모양으로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착시현상 외에 심리적으로 본 도깨비는 실존하지 않되 실존하는 존재였다. 신라시대 ‘방 이 이야기’ 이후 도깨비는 고려시대에 목매, 목랑으로 불리며 신앙대상이 되었고 조선시대 에 들어와 지배층에 의해서 철저히 홀대받았다. 역신, 화재신의 누명을 쓰기도 했으며 늦은 귀가 길의 남정네가 둘러대던 핑계가 되었고 과부나 친구에게 부와 행운을 가져다주고 배신 당하는 어리석은 캐릭터로 전락하였다. 처음에는 초월적 존재로서 기복의 대상이었고 다음에는 규명되지 않는 사건, 사고 및 자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도깨비는 가난한 민중의 핑계와 부자가 되는 꿈을 꾸게 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고 종국에는 친구가 되었다. 비록 이루어 지지 않더라도 가난한 삶 을 벗어나게 해 줄 존재였으며 희망이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부유했던 귀족층에게는 도깨비 가 불필요한 존재인 동시에 불필요한 핑계였다. 실록의 도깨비는 흉악한 몰골의 부정적 존재 였고 민중의 도깨비는 아니었다. 하지만 석보상절에서 보듯이 조선 초기 기복 잡신이었던 도 깨비는 이후 조선시대를 지나면서 지배계급에 의해 선악 양면성중 특히 부정적인 면이 강화 되었다고 추정된다. 반면 시골 산촌 어촌의 도깨비는 민중이 일상생활에서 우연히 만난 행운 을 설명하기 위해서, 혹은 실망과 실수를 설명하기 위해, 그리고 도피하고 싶을 때마다 핑계 거리로 동원했던 희생양적인 무 실체의 실존 존재였으며 가난한 욕망을 투사하기 위해 창조 된 한국인 우리 자신의 실존, 실체이기도 했다. 도깨비 이야기는 흥미와 함께 경계와 교훈을 담은 의미로 집안 어른들에 의해서 구전으로 전승되며 각 가정에서 에듀테인먼트 컨텐츠로 활용되었다. 오래오래 민중의 아이들을 위한 가정교육 자료로 생명을 이어 온 것이다. 많은 아이들이 도깨비 이야기를 통해 매혹적인 꿈 을 꾸었고 아름다운 상상력의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그 흥미와 교육적 효과는 성인이 되어 서도 늘 뇌리에 각인되었고 다음 세대에 전승되었다. 살펴본 바와 같이 도깨비는 우리 민족 고유의 심성을 바탕으로 생겨난 특이한 존재이다. 무섭고 심술궂고 우스우며 어리석고 단순하지만 예지능력도 가진 매우 친근하고 이상한 존 재로서 세계 각국의 어느 신이한 존재와 비교해도 유사한 점이 없는 독특한 캐릭터인 동시 에 훌륭한 문화 컨텐츠인 것이다. 우리 민족에게 천년이상 전해 내려 온 그 문화 컨텐츠는 이제 불과 몇 십 년 사이에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구전 전승방식을 잃어버렸지만 다양한 아날로그와 디지털 매체의 컨텐츠로 새롭게 변신중이다. 우리가 선대로부터 전승 받은 방식 대로 아이들에게 들려주지 못한 구전 민담들이 다행히도 어린이 그림책에서 아름다운 그림 과 이야기로 되살아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본격적인 문화마케팅 시대를 맞아 올바른 도깨비 이미지를 정립하고 훼손, 왜곡되지 않은 원형이야기를 바탕으로 도깨비 이미지와 캐릭터의 일러스트레이션 포름 27 1.

(20) Journal of The Korea Society of Illustration Research. 다양한 전개 및 가공이 정책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일이다. 민속신앙이나 미신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우리 고유의 문화 아이콘으로 대접할 가치가 충 분하다. 외국에서 들어 온 4월 1일 만우절을 우리 고유의 도깨비 축제일로 바꾸어 새롭게 즐기는 문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도깨비를 우리 문화 원형의 한 아이콘으로 인 정하고 정신문화연구원의 서고에서 잠자고 있는 도깨비 민담들을 햇빛 아래로 끄집어내야 할 것 이다. 옛 문헌 기록과 민담채록, 구전으로 내려오는 도깨비 이야기들을 관련 전공학자 의 연구 자료로만 활용할 것이 아니라 이야기, 그림, 캐릭터, 기념품,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시각화 작업을 시도해야 한다. 그리하여 그들을 통하여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정련하고 다양 화하며, 더욱 새롭고 아름답게 다듬어 교육적 흥미와 가치를 부가하면서 후대에 올바르게 전 승해야 할 것이다.. 28 한국일러스트레이션학회.

(21) 도깨비 이미지의 시각적 정체성에 관한 연구. 참고문헌 1) 강은해, 한국문화의 원형 두두리 도깨비의 세계, 예림기획, 2003 2) 김열규, 도깨비 날개를 달다, 한국학술정보, 2003 3) 김종대, 도깨비를 둘러싼 민간신앙과 설화, 인디북, 2004 4) 김종대, 민담과 신앙을 통해 본 도깨비의 세계, 국학자료원, 1997 5) 김종대, 저기 도깨비가 간다. 다른 세상, 2000. 6) 내고향 해제마을, 해제면지발간위원회, 1988, 7) 무비스님편저, 약사여래본원경, 창, 2005 8) 민속학연구 제 2호, 국립민속박물관, 1995 9) 박종익, 한국구전설화집 2, 민속원, 2000 10) 서정범, 한국문화상징사전, 동아출판사, 1992 11) 윤열수외, 청도깨비의 익살, 가회박물관 출판부, 2005 12) 이훈익, 인천지방향토사담, 1990 13) 任晳宰, 秦弘燮, 任東權, 李符永, 국립민속박물관총서 1 한국의 도깨비, 열화당, 1981 14) 장주근, 민간신앙,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전남편), 문화재관리국, 1969, 15) 충주중원지, 충주문화원, 1985, 16) 현용준, 제주도신화 서문문고, 1976 번역 村山智順 金禧慶 역, 조선의 귀신, 동문선, 1990 참고자료 1) 고금소총 2) 고려사 3) 동국여지승람 4) 삼국유사 5) 석보상절 6) 성호사설 7) 용재총화 8) 한국구비문학대계 9) 해동잡록 10) 唐 段成式, 酉陽雜俎續集 11) 成俔, 傭齋叢話 12) 李瀷, 星湖僿設. 일러스트레이션 포름 29 1.

(22) Journal of The Korea Society of Illustration Research. 웹사이트 인터넷 조선왕조실록 사이트 http://sillok.history.go.kr. 30 한국일러스트레이션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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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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