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오행겸대사가 유럽연합 확대의 향후 전망, 한.EU간 향후 관계 발전 방향, 그리고 유럽통합과정이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교훈 등에 관해 국정브 리핑 2.15일자에 기고한 내용임.
세계 최대시장, 유럽합중국으로
오행겸 주벨기에대사관겸 구주연합대표부대사
1952년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및 베네룩스 3국간 “구주석탄 철강공동 체(ECSC)”로 출범한 EU는 작년 5월1일 25개국으로 확대되었다. 인구가 4억6천만 명에 경제규모가 13조 달러, 교역규모가 2.5조 달러에 이르 는 세계최대의 단일시장으로 등장한 것이다. 아울러 작년 10월에는 EU 헌법조약이 서명되었으며, 현재 각 회원국별로 비준절차를 진행하 고 있는데, 헝가리, 리투아니아, 슬로베니아가 이미 비준을 완료하였다.
회원국이 비준을 완료하여 헌법조약이 발효되면 EU는 법인격을 갖게 되고, 대통령, 외무장관이 생기게 될 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가 거 의 모든 분야에 있어서 같은 법률과 정책을 집행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모든 EU 회원국 국민들이 해외 어디에서나 모든 EU 회원국 공관의 영사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되어, EU 시민으로서의 정체성
(Identity)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유럽합중국으로
발전하는 계기를 맞게 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작년 12월 EU 정상회의에서 루마니아와 불가리아가 2007년 가입하기로 확정되었고, 터키와 크로아티아도 금년중 가입협상을 시작할 예정이다. EU의 외연이 더욱 크게 확장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영역확대와 아울러 정치안보분야에서도 EU의 통합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데, 금년에는 「유 럽방위청」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고, 아프리카 등지에서 국제분쟁 초 기단계에 위기관리 기능을 수행할 EU 「신속대응전투부대」도 창설될 예정으로 있어 EU의 공동 안보방위 능력이 크게 향상될 것으로 예상된 다. EU는 명실공히 「세계적 행위자(a global actor)」로서 국제사회에 서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유럽 통합과정에서 배울점 많아
불과 60년 전까지만 해도 1차, 2차 세계대전이라는 참혹한 전쟁을 치르 면서 갈등과 적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던 유럽대륙이 이제는 하나의 헌 법조약 아래 「평화와 번영」이라는 통일된 목표를 추구하는 상황으로 까지 발전한 것은 분명 상전벽해의 변모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남북통일을 이룩해야 할 뿐만 아니라 동북아지역 평화와 안정에도 기 여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이러한 유럽의 통합으로부터 배울 점이 많다 고 생각한다. 숙적관계였던 독일과 프랑스의 화해, 독일의 나치정권 만 행 청산, 독일 통일과정 및 구동구권 국가들의 체제변환 과정은 과거사 청산과 공동 평화와 번영 달성이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한국과 EU의 관계는 계속 확대
우리나라와 EU와의 관계는 1996년에 기본협력협정 체결을 계기로 기존의 통상분야 뿐 아니라 경제전반에 걸친 다양한 협력을 추진하 고 정치대화까지 하게 되는 관계로 발전하였다. 작년 10월 베트남의 하 노이에서 우리나라와 EU는 두 번째 정상회담을 하였으며, EU는 우 리의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노력과 평화번영정책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EU는 매년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와 인적교류를 지 속하면서, 북한의 개혁․개방 노력을 지원하고 있다. 동구권의 EU 신규 회원국들은 북한에 대해 체제변혁의 경험을 전수해 주고, 북한이 국제 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참여할 것을 고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무역분야를 살펴보면, 우리나라와 EU는 매년 500억 달러 이상을 서 로 사고 팔고 있다. EU는 우리에게 있어서 미국,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수출시장이고, 우리나라도 EU에게 있어서 비유럽국가 중
네 번째로 큰 교역상대국이다.
필자는 작년 국정브리핑에 EU확대와 관련된 글을 기고하면서, EU가 25개국으로 확대가 되면 역외국가들의 수출을 잠식하는 소위 무역전 환효과가 발생해서 우리의 EU에 대한 수출이 줄어들지 않겠느냐고 하 는 일각의 우려를 소개한 바 있다. 하지만, 이것은 기우였음이 판명
되었다. 2004년 11월말까지의 통계를 볼 때 EU지역에 대한 우리 수
출은 340억불을 기록함으로써 2003년도에 비해 무려 40%가 늘어났 고, 120억불 이상의 흑자를 기록하였다. 특히, EU에 대한 우리 수출의 60% 이상이 반도체, 자동차, 무선전화, 컴퓨터, 선박 등 5대 수출품목에 집중되어 있는데, 유럽경기의 점진적인 회복과 유로화의 강세로 EU 에 대한 수출 전망은 앞으로도 매우 밝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반도체와 조선 등 양측간에 통상현안도 있지만, 이것은 EU와 우리와의 무역관계가 깊어지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현상이 라 할 수 있으며, 또 WTO와 같은 다자차원에서 원만하게 관리되고
있다. 따라서, EU와의 경제관계는 더 이상 시장 개방과 같은 전통
적인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협력을 통한 복합적인 경제통상 협력관계로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EU의 위성항법시스템인 갈릴레오 프 로젝트, 미래의 대체에너지를 위한 국제열핵융합원자로(ITER), 경쟁정 책, 항공, 운송보안 등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양측간 협력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또 EU는 우리의 주요한 투자유치 대상이기도 하다. EU는 현재까지 약 300억불 가량을 우리나라에 투자하여 사실상 최대 투자자로서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의 대 EU 투자는 약 90억불 정도에 머 무르고 있으나, 폴란드, 헝가리, 체코 등 중동구 국가들의 가입으로 우리 기업의 보다 활발한 EU 진출이 예상된다. EU 통합에 따라 복 잡하고 까다로운 규정들이 신규 회원국들에게도 적용됨으로써 앞으
로는 수출 증진 일변도의 전략보다는 현지 투자진출을 통한 부의 창 출이라는 새로운 전략이 더욱 요구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작년에 이 루어진 기아자동차의 슬로바키아 진출은 주목할 만한 성과라고 보여 진다.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EU는 계속 확대되고 또 발전하면서 미국에 대해 ‘No’라고 말할 수 있는 글로발 파워로서의 위치를 다져나가고 있다. 지금 EU의 수도인 이곳 브뤼셀에는 수많은 외교관, 로비스트, 기업인, 언론인들이 변화하는 EU의 모습을 취재하고, EU의 정책결정에 자신들의 이해를 반영하기 위해 몰려들고 있다.
필자는 미국 일변도의 사고방식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도 국익증대를 위해 좀 더 많은 관심을 EU에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작 년 한해 우리 벨기에대사관 겸 EU대표부에서는 작년 한해를 EU 알 리기 운동에 집중했는데,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EU의 각종 정책을 종합적으로 소개하는 “EU 정책브리핑” 책자를 발간했고, 홈페이지 를 새로 단장하여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EU의 모습을 우리 국민 들이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도록 하였다.
올해에는 EU알리기 운동 지속의 일환으로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에 서 EU로부터 실질적으로 배울 수 있는 점 뿐만아니라, 실패 사례들도 심층적으로 연구하여, 우리의 국정과제 수행과정에 참고할 수 있도록
가칭 “ EU로부터 배운다”라는 책자를 발간할 예정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전쟁의 참화를 통해 자기반성을 함으로써 평화와 번영의 기초를 확립하고, 다시금 세계최대의 공동체로 자리매김한 EU의 경 험으로부터 우리는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