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지도, 독도를 어떻게
한국의 영토로 그렸나?
머리말
1897년에 발행된 일본의 교과서에는 울릉도의 지명을 죽도(竹島, 다케시마)로, 독도의 지명을 송도(松島, 마츠시마)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송도’라는 지명이 사라졌 다. 대신 19세기까지 울릉도의 지명이었던 ‘다케시마’를 독도의 지명으로 버젓이 표기하 고 있다. 이처럼 일본 지도에 표기된 독도의 지명은 크게 ① 송도(松島, 마츠시마)로 표 기한 1905년 이전의 지도와, ② 죽도(竹島, 다케시마)로 개칭한 이후의 지도로 양분된다.
이는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표기하던 지명인 송도(松島, 마츠시마, Matzchima)에서, 독 도를 빼앗기 위해 날조하여 만든 소위 시마네현 고시(1905년)를 통해 죽도(竹島, 다케시 마, Takeshima)로 지명을 변경시킨 시점과 일치한다.
이처럼 일본은 조선의 고지도를 이용하여 독도 침탈에 활용했지만, 역으로 지도를 바 로 읽으면 그들이 그린 지도를 통해 ‘한국령 독도’의 명백한 진실이 밝혀진다. 지도 속에 표기된 지명만 바로 읽어도 일본의 독도 침탈 역사가 극명하게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독도 침탈 역사는 189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계속되어 왔다. 그중 공공연하 게 대놓고 ‘독도’를 빼앗으려 했던 사건은 크게 세 차례가 있었다. 제1차 독도 침탈사건은 바로 1905년 소위 ‘시마네현 고시’라는 날조된 문서를 만든 사건이었고, 제2차 독도 침 탈 사건은 1950년대 미국과의 비밀 외교 접촉을 통해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체결하여 국 제사회에 독도 침탈을 공론화시킨 사건이었다. 제1차 독도 침탈사건을 겪은 1905년 당시 우리나라는 일본에 의해 강압적으로 외교권을 박탈 당하였고, 끝내 일제 강점기를 겪었 다. 제2차 침탈이 진행되던 시기에는 우리나라가 한국전쟁(1950~1953년)으로 외교적 불 지도가 증명하는 우리 땅 독도 3
양재룡 | 호야지리박물관장([email protected])
는 자국민에게 일본의 영토라는 억지 주장을 주입시키려고 교과서를 왜곡하고, 대외적으로 는 ‘다케시마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이를 세계 지도에 반영하여 그려 넣기 시작한 것이다.
이 글에서는 일본의 제1차 독도 침탈사건 이전까지 일본이 그린 지도를 통해 ‘한국 영 토, 독도’의 진실을 밝히고자 한다(2, 3차 독도 침탈사건은 차월호의 ‘현대지도’ 편에 연 재될 것임).
제1차 독도 침탈과정을 보여주는 일본의 근대지도
일본은 책으로 인쇄된 조선의 목판지도가 지도 밖으로 나가는 독도와 울릉도를 안으로 접어 그렸기 때문에 그 위치가 서로 바뀐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일본의 고지도들은 조선의 목판지도를 보고 울릉도와 독도의 위치를 바꾸어 수세기 동안 독도를 송도(松島, 마츠시마, 소나무 섬)로 표기하고, 울릉도를 죽도(竹島, 다케시마, 작은 섬)로 잘못 표기 해 왔다(양재룡 2019).
1900년대에 들어오면서 일본은 독도의 전략적 위치를 탐내어 당시 일본인들이 조선의 영토로 알고 있던 독도를 침탈하기 위해 주도면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선 일본은 1900~1905년 사이 독도를 ‘주인이 없는 섬’으로 조작하여 조선의 영토에서 제외시키는 명분을 만드는 한편, 대내적으로는 자신들이 그린 지도가 독도와 울릉도의 위치를 바꾸 어 잘못 표기한 사실을 지우는(숨기는) 작업을 은밀히 병행하였다. 이 과정을 마무리하여 한국의 독도를 영구적으로 일본의 영토로 점령하려 날조했던 문서가 바로 ‘시마네현 고 시’(1905년)이다.
그 첫 단계로, 일본은 “조선의 고지도는 우산도(독도)를 울릉도의 주변에 위치한 섬으 로 지도마다 각각 다르게 그렸다. 따라서 독도는 우산도(독도)와는 별개의 ‘주인이 없는 섬’이다”라는 논리로 조선의 영토에서 독도를 제외시키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소위 일본 이 주장하는 ‘무주지선점원칙’(無主地先占原則)을 내세우기 위한 명분을 만드는 작업이었 다(양재룡 2019).1)
두 번째 단계로 일본은 100년 이상 조선의 목판지도를 보고 자신들이 잘못 그려온 지
1) 일본은 지금까지도 이 주장을 계속하고 있음. 그동안 지도 밖으로 멀리 떨어진 독도를 접어서 울릉도 안쪽에 그린 조선의 목판지도를 우리 자신이 제대로 읽지 못했기 때문이었다고 사료됨.
도에 1904년 ‘일로만한상세지도’는 과거 울릉도의 지명이었던 ‘죽도’(竹島, 다케시마)를 없애는 대신 ‘울릉도’(鬱陵島)로 표기하고, 1905년에는 독도를 ‘송도’(松島, 마츠시마) 대 신 ‘죽도’(竹島, 다케시마)로 표기하여 그동안 일본이 잘못 그려온 지도를 은밀하게 고치 는 작업을 추진해 왔다.
마지막 세 번째가 ‘무주지선점원칙’을 내세운 일본이 독도를 침탈하고자 날조한 소위
‘시마네현 고시’(1905)이다. ‘한국령 독도’를 일본이 영구적으로 강탈하려던 작업이었다.
시마네현 고시(<그림 1> 참조)의 내용은 “북위 37도 9분 30초, 동경 131도 55분, 은기(오 키섬) 85리에 위치한 도 서를 ‘죽도’(竹島, 다케시 마)로 칭하고, 본 현(시마 네현) 소관 은기도사(隱 岐島司, 오키섬의 수장) 관할에 속한다”라는 내용 을 단 세 줄에 걸쳐 기록 하고 있다.2)
특히 이 문서에서 주 목할 내용은 이전까지 일 본이 그린 지도에서 ‘북위 37도 9분 30초, 동경 131 도 55분, 은기(오키섬) 85 리에 위치한 도서’는 송도 (松島, 마츠시마, 한국의 독도)였다. 그런데 이 문서에서는 기존에 있던 이 섬을 마치 일본이 처음 발견한 섬처럼 “~죽도(竹島, 다케시마)라 칭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 존에 있던 섬이라면 마땅히 이 섬은 “~송도를 죽도로 개칭한다~”라고 기록했어야 했다.
일본이 이처럼 송도(松島, 마츠시마)로 표기해오던 독도의 지명을 굳이 죽도(竹島, 다 케시마)로 은밀하게 바꾼 이유는 그들이 기록한 문서와 지도에 독도를 ‘송도로 부른다’라 는 기록이 있고(호사카유지 2010),3) 100년 이상 일본의 고지도에서 죽도를 울릉도의 지 지도가 증명하는 우리 땅 독도 3
2) 일본은 날조된 이 문서를 대한제국이 알지 못하도록 중앙정부(내각)에서 ‘무주지선점원칙’을 의결하고. 일개 지방정부인 시마네현의 명칭을 붙임으로써 조선이 알지 못하도록 은밀하게 제1차 독도 침탈을 시작했음.
3) 일본은 1877년 內務省稟議日本海內竹島外一島地籍編纂之件에 답한 태정관 지시에 ‘竹島外一島之義本邦關係無之義卜 可相心得事’(일본국립공문서관 소장 太政官 문서) 울릉도(죽도, 竹島, 다케시마)와 그 외 한 개 섬인 독도(당시는 松島)는 본방(日本)과 관계없다는 것을 심득(心得, 마음에 익힐 것)으로 기록하고, 첨부된 ‘기죽도 약도’에는 송도의 위치에 조선 의 것을 명시했음.
<그림 1> 시마네현 고시(島根懸 告示)
이 제1차 독도 침탈과정에서 그들이 그린 지도에 독도의 지명을 은밀하게 바꾼 과정을 상 세히 증명하고 있다.
<표 1> 일본 지도의 독도와 울릉도의 지명 변천 과정
시기 대표적 지도 독도의 지명 울릉도의 지명 비고
1789년 삼국접양
지도 그리지 않음 죽도
(竹島, 다케시마)
죽도에 ‘조선이 갖는다’라고 기록하고, 강릉 앞에 울릉도 크기의 이름이 없는 큰 섬을 그렸음
1800~1900년 일본전도 외 송도 (松島, 마츠시마)
죽도 (竹島, 다케시마)
1897년 문부성 검인정 교과서 (이 시기의 모든 일본의 지도) 1904년 일로만한
상세지도
송도 (松島, 마츠시마)
울릉도 (鬱陵島)
죽도를 울릉도로 바꾸어 기록함.
러일전쟁 시작 1905년~현재
육지측량부 구역일람도 (1937)
죽도 (竹島, 다케시마)
울릉도 (鬱陵島)
시마네현 고시(1905)에서 ‘죽도(다케시마)로 칭한다’라고 기록. 송도가 일본의 지도에서 영원히 사라짐(현재의 모든 일본지도)
독도는 일본 영토가 아니다
: 1905년(시마네현 고시) 이전의 일본의 지도
1880년대 이후 일본은 제국주의 영토 팽창에 따라 각종 지도가 활발하게 제작되었지만
<지도 1> 삼국접양지도 <지도 2> 일로만한상세지도
적어도 19세기 말까지는 독도가 자국의 영토가 아니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 때 문에 이 시기 수많은 일본의 근대지도에서는 모두 일본과 한국의 영토를 분명하게 구분 되도록 채색하거나 다른 표식으로 “독도는 일본의 영토가 아니다”라고 제작하였다. 대 표적 일본의 채색지도로는 1789년 죽도를 “조선이 갖는다”라고 표현한 ‘삼국접양지도(지도 1)’, 4) 1882년 ‘동판조선국전도’,5) 1894년 ‘대일본조선신찬지나여지전도’,6) 1897년 일본 문 부성이 검인하여 일본지지 교과서에 첨부된 ‘일본전도(지도 3)’,7) 1904년 ‘일로만한상세 지도(지도 2)’8) 등이 이에 속한다.
이 시기 일본이 그린 근대지도들은 대부분 채색지도이다. 물론 일본의 영토와 구분되 도록 독도와 울릉도는 한국과 같은 색으로 표시했다. 일본인들은 스스로 독도를 한국의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05년 시마네현 고시 이전까지 일본 교과서를 비롯 한 수많은 일본의 지도는 모두 ‘독도는 일본의 영토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자칫 이 같은 채색지도에 독도가 한국과 같은 색으로 표시되어 있으 지도가 증명하는 우리 땅 독도 3
자료: 秋山四郞, 1897, 호야지리박물관 소장.
<지도 3> 일본지지 교과서 속의 일본전도
4) 삼국접양지도(三國接壤之圖), 林子平, 1789, 일본, 70×96cm, 독도박물관 소장. 이 지도에는 죽도(竹島, 다케시마)라고 명기하고, ‘조선이 갖는다’라고 기록했음. 독도(송도)의 지명은 없지만 강릉 앞바다에 실제 존재하지 않는 이름 없는 큰 섬을 그리고 있음. 이 시기 일본에서 사용된 죽도(다케시마)의 지명은 조선의 목판지도를 잘못 읽은 울릉도를 지칭하는 지명이었음.
5) 동판조선국전도(銅版朝鮮國全圖), 木村文造: 1882, 70×96cm, 독도박물관 소장). 1882년 木村文造가 편찬한 지도. 일본은 붉은색, 조선은 흰색으로 그려 영토를 구분했음. 죽도(竹島, 울릉도)와 송도(松島, 독도)는 조선과 같은 색으로 표시되어 있음.
6) 대일본조선신찬지나여지전도(大日本朝鮮新撰支那與地全圖), 赤松範靜, 1894, 99×69cm, 채색, 호야지리박물관 소장. 일본 영토의 해안선과 섬은 붉은색 선으로 표시하고, 한반도와 함께 (竹島, 독도), 송도(松島, 울릉도)는 검은색 선으로 표시되었음.
7) 일본지지(日本地誌, 木村文造, 1897, 共益商社藏版, 호야지리박물관 소장) 교과서 속에 첨부된 일본전도(日本全圖). 일본은 붉은색, 조선은 흰색으로 그려 영토를 구분했음. 죽도(竹島, 울릉도)와 송도(松島,독도)는 조선과 같은 색으로 표시되어 있음.
8) 일로만한상세지도(日露滿韓詳細地圖), 小林藤次郞, 1904, 38×53cm, 호야지리박물관 소장. 일본은 붉은색, 조선은 흰색 으로 그려 영토를 구분했음. 죽도(竹島, 울릉도)와 송도(松島, 독도)는 조선과 같은 색으로 표시되어 있음.
영토로 그린 것이 아니라, 일본의 영토가 아니라고 그렸다’라고 읽는 것이 올바른 지도 해석이다.
다만 일본이 ‘독도는 주인이 없는 섬’이라고 강변하는 시점에서 필자는 한국이 이런 일본의 채색지도를 보고 단순하게 ‘일본이 독도를 한국의 영토로 그렸다’라고 잘못 해 석한다면 ‘한국이 독도를 강점하고 있다’라는 일본의 논리적 비약 역시 피하기 어렵다 는 점을 제언해 둔다.
‘독도는 한국의 영토’라고 꼭 짚어 표기한 지도는 따로 있다.
독도는 한국의 영토이다 : 실측 일청한군용정도의 증언
일본은 옛날부터 한국의 영토로 알고 있던 독도를 침탈하기 위해 먼저 한국의 섬 독도를
‘주인 없는 섬’으로 규정하고, 무주지선점원칙(無主地先占原則)에 따라 1905년 ‘시마네현 고시’로 이 섬을 일본의 영토로 편입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일본의 ‘다케시마 영유권’
자료: 吉倉淸次郞, 1895, 105×77cm, 호야지리박물관 소장.
<지도 4> 실측 일청한군용정도 <지도 5> 독도 부근을 확대한 모습
지도가 증명하는 우리 땅 독도 3
주장은 정당한 권리이고, 오히려 한국이 일본 고유의 영토인 다케시마 (竹島)를 불법으로 강점하고 있으며, 한국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할 어 떠한 증거도 없다고 공언해 왔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1905 년 이전에 이미 수많은 일본의 근대지도는 “독도는 일본의 땅이 아니 다”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독도가 ‘한국의 영토’라고 증명할 문서나 지 도는 정말 없는 것일까? 이를 송두리째 뒤엎는 지도가 바로 일본인에 의해 만들어진 ‘실측 일청한군용정도’(1895, 지도 4)이다.9)
이 지도는 시마네현 고시 10년 전(1895년)에 일본에서 일본인에 의해 제작되었고, 범례에 따라 동해에 국경선을 그려서 ‘한국령 독도’를 분명 하게 명시하고 있다. 이 지도 속에는 ‘독도는 한국의 영토’라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를 다음과 같이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첫째, 이 지도는 필수적인 발행 기록(발행일, 편자, 발행인, 인쇄인, 발행소)을 완벽하 게 갖추고 있고, 둘째, 범례 속에 국계(國界, 국경선)의 기호를 명시하였으며(<그림 2> 참 조), 셋째, 명시된 국계에 따라 일청한(일본, 중국, 한국)의 국경선을 그렸고(지도 4), 넷 째, 동해상에 한국과 일본의 국경선을 분명하게 그렸으며(지도 5),10) 다섯째, 죽도(竹島, 다 케시마, 당시 울릉도)와 송도(松島, 마츠시마, 당시 독도의 지명)를 조선의 국경선 안에 그림 으로써 1905년 시마네현 고시 이전에 송도로 표기했던 ‘주인이 없는 섬’ 독도가 한국의 영토 임을 입증하고 있다(<지도 5> 참조). 여섯째, 이 지도는 군사적 목적으로 작성되어 매우 정 확한 정보를 담고 있다. 특히 이 지도에 별도로 부착된 ‘제국육해군변비일반’(帝國 陸海軍兵備一斑, <그림 3> 참조)에는 당 시 일본제국의 육, 해군의 병력 및 군함의 배치, 중국군 배치 상황, 당시의 부대명, 병력수, 사령관명, 함정과 제독의 이름까 지 기록한 문서가 부전지로 부착되어 이 지도의 군사적 용도를 짐작케 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실측 일청한군용정도’는 1895년 당시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동
<그림 3> 제국육해군변비일반과 외피 봉투
9) 실측 일청한군용정도(實測 日淸韓軍用精圖)는 현재까지 동해상에 한일 간 국경선이 그려진 유일한 지도로, 2010년 필자 에 의해 처음으로 학계에 보고되고, 그 진본이 공개되었음.
10) 동해상에 그려진 실선은 해저전선(海底電線)임. 일본은 대륙을 침략하기 위해 일본 본토와 연해주, 본토와 상하이를 거 쳐 중국의 광동을 연결하는 해저케이블의 부설을 1894년 이미 완료하였음.
<그림 2> 발행기록과 범례
참고문헌
건설교통부 국토지리정보원. 2007. 외국고지도에 표현된 우리나라 지도 변천과정 연구. 수원: 국토지리정보원.
김종식. 2010. 낱낱이 파헤친 독도사. 인천: 보학당.
양재룡. 2010. 독도가 한국 영토일 수밖에 없는 지도 속 독도. 독도연구저널 9호: 144-150.
______. 2011. 지도로 밝혀야 할 한국령 독도에 대한 소고. 대한지리학회 연례학술대회 자료집. 서울: 대한지리학회.
______. 2013. 일본 근대지도의 고백 ‘독도는 일본의 영토가 아니다. 수원: 중부일보. http://www.joongboo.com/news/
articleView.html?idxno=856240 (2019년 6월 12일 검색).
______. 2013. 한국령 독도의 침탈을 고발한 일청한군용정도. 수원: 중부일보. http://www.joongboo.com/news/articleView.
html?idxno=856800 (2019년 6월 12일 검색).
______. 2010. 우리 땅 독도 동해바다 한국해. 영월: 호야지리박물관.
______. 2015. 한국령 독도의 정체성과 고지도의 실증적 해석. 영월: 영월박물관협회.
______. 2016. 지도가 실증하는 한국령 독도 「독도 도록」. 영월: 호야지리박물관.
______. 2018. 지도로 읽는 한국영토 독도. 영월: 호야지리박물관.
______. 2019. 독도는 떠다니는 섬인가? 국토 제452호: 68-73. 세종: 국토연구원.
오사카 유지, 세종대독도종합연구소. 2010. 대한민국 독도. 파주: 책문.
秋山四郞. 1897. 日本地誌. 公益商社藏版.
첫째, 10년 뒤 ‘독도가 주인이 없어 선점했다’(無主地先占原則)는 전제하에 만들어진 1905년 일본의 ‘시마네현 고시’ 자체가 날조된 문서이고, 둘째, 이 날조된 문서에 의해
‘독도를 선점했다’는 것은 일본이 한국을 강점한 1910년보다 5년 전에 맨 먼저 한국의 영 토, 독도를 강탈했음을 증언하는 명백한 실증이며, 셋째, 이 날조된 문서를 근거로 제시 하고 있는 오늘날 일본의 ‘다케시마 영유권’ 주장 역시 원천적으로 성립될 수 없는 ‘한국 령 독도’의 강탈 행위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따라서 ‘실측 일청한군용정도’는 일본의 ‘시마네현 고시’가 날조된 문서라는 사실을 밝 힘으로써 일본의 ‘다케시마 영유권’ 주장을 잠재울 수 있는 실증지도인 것이다.
한편, 오늘날 세계지도는 일본의 ‘다케시마 영유권’ 주장을 편향되게 받아들여 ‘독도’
를 한-일 간의 영토문제로 기록하는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까지 직면해 있다. 따라서 이 지도는 독도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일본인들과 세계 유명 지도제작사를 비 롯하여 세계인들에게 서둘러 보급함으로써, 일본의 ‘다케시마 영유권’ 주장을 편향되게 그리고 있는 오늘날 세계지도의 흐름을 근원적으로 바로잡는 실증자료로 제시할 필요 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