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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연구론총 17집> <병인도병록>에 나타난 퇴계의 내면 의식 - 주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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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택민국학연구원 2016. 6. 30.

병인도병록 에 나타난 퇴계의 내면 의식

< >

주지영21)

목 차

< >

머리말 .

병인도병록 의 노정과 작품 개관 . < >

병인도병록 의 작품에 나타난 퇴계의 내면 의식 . < >

맺음말 .

국문초록

< >

병인도병록 은 퇴계의 노년에 이루어진 여정에서 창작된 시들을 묶은

< >

기행 시집이다 안동에 거주하고 있던 퇴계는 명종의 부름을 받아 조정으로. 향했다 약 두 달 간 지속된 여정 속에서 퇴계는 꾸준히 병을 앓았다 퇴계는. . 수차례 사장(辭狀)을 올려 여정을 중단하고자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퇴계가 네번째 사장을 올리고 윤허를 기다리지 않은 채 귀가함으로써 여정은 끝을 맺었다. <병인도병록 에 실려 있는 시에는 출발 이후 여러 지>

역을 거쳐 다시 안동으로 돌아오기까지 퇴계가 품었던 생각과 감정들이 진솔 하게 표현되어 있다 심신의 고통을 겪는 중에 창작된 시들이기 때문에 기행. , 시임에도 새로운 경험에 대한 내용보다는 시인의 내면을 읊은 시들이 주를 이룬다. <병인도병록 의 시에는 지나온 삶에 대한 퇴계의 생각과 추구하고>

자 하는 삶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명예를 추구하는 삶과 학문을 탐구하는. 삶이 서로 대비되면서 명예는 헛되고 경계해야 할 것으로 학문은 끊임없이, 희구하는 대상으로 나타나 있다 또한 정서적으로는 고독감과 비애감이 자주. 표출되고 있는데 이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긍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 은 자연으로부터의 감흥이다 계절이 봄으로 전환되어 가며 생동하는 자연의.

(2)

풍경으로부터 퇴계는 위안과 기쁨을 얻었으며 자연물과 깊은 교감을 나누었, . <병인도병록 에는 노년의 퇴계가 겪었던 내적 갈등과 그가 선택하고 지> , 향했던 삶의 가치가 무엇이었는지 또렷하게 나타나 있다.

핵심어

< >

퇴계 이황 병인도병록 기행시 노년 내면 의식, , , ,

머리말 .

퇴계(退溪) 이황(李滉)은 조선 성리학의 기틀을 세웠다고 평가되는 인물로 한국의 대학자 중 한 사람이다 또한 그는. 2300수 이상의 시를 지은 시인이 기도 하다 몇몇 문헌에는 퇴계가 시 짓기를 즐겼으며 시에 정성을 기울였다. 는 기록이 전한다 퇴계 언행록에서는 퇴계가 시 한 절구를 우연히 읊더라도. 한 구절 한 글자를 반드시 정교하게 생각하고 고쳤으며 가벼이 남에게 보이, 지 않았다 고 하였다 .1) 퇴계 선생은 시 짓기를 좋아하여 평소 많은 공을 들 였다”2)고도 한다 퇴계의 시 중 시가 사람을 그르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그르치는 것이니 흥, ( )이 이르고 정( ) 이 따르면 이미 금하기 어렵 네”3)라 읊은 것이 있다 여기에는 만약 시를 통해 발생하는 폐단이 있다면. 그것은 시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탓이며 감정의 움직임이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시를 짓게 만든다는 그의 생각이 담겨 있다 이는 퇴계가 자신의. 감정을 담아 내면을 표현하는 글의 한 양식으로 시를 활용했을 것이며 따라, 서 퇴계의 좀 더 개인적이고 정서적인 면모를 시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고 기대하게 한다.

퇴계의 시작(詩作) 활동은 40대 이후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전하는 퇴계의 시 중. 2~30대에 지은 작품의 비중은 매우 적다.

(3)

다만 33세에 퇴계는 고향으로부터 남쪽으로 향하는 여행을 하였고 이 여정, 에서 다수의 시를 창작했다 이때 지은 시들은. <남행록(南行錄)>이라는 별 도의 시집으로 묶었다 생애에서 활발한 시작의 흔적이 나타나지 않는 시기임. 에도 여행 과정에서 만큼은 퇴계는 많은 시를 남겼다 그는. <남행록> 외에 <서행록(西行錄)>, <관서행록(關西行錄)>, <관동행록(關東行錄)>, < 인도병록(丙寅道病錄)> 등 여러 편의 기행 시집을 손수 엮었다 또한 퇴계는. 시가 학자에게 가장 긴요한 일은 아니지만 경치를 마주치고 흥을 마주하면

시가 없을 수 없는 것”4)이라고 한 바 있다 이 말은 퇴계가 학문과 시작을. 다른 영역의 것으로 보면서도 시를 긍정했으며 경물로부터 받는 감정적 자극, 을 시 창작의 강한 동인으로 인식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퇴계의 시 창작에 있. 어 타지로의 여정은 각별한 계기로 작용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병인도병록 은 퇴계가 남긴 기행 시집 중 현재 그 형태를 확인할 수 있

< >

는 유일한 시집이다 퇴계 문집의 초초본. (初草本)에 해당하는퇴도선생집 에 필사본이 전해진다.5) 1566년 퇴계는 명종의 소명을 받아 고향으로부터 조정으로 향했는데 병으로 인해 중간에 되돌아오게 되었다 이 여정에서 지, . 은 시들을 모은 것이 <병인도병록 이다> . <병인도병록 에는 당시의 노정과>

퇴계의 내면 의식이 시를 통해 드러나 있다.

퇴계 관련 자료가 풍부하게 남아 있고 학문적 위상이 절대적인 만큼 퇴계 의 시에 대한 연구도 다수 이루어져 왔다 그동안의 많은 연구에서는 퇴계 시. 의 총체적 양상 성리학 사상의 시적 구현 사회나 자연에 대한 인식 등에 관, , 하여 다루었으며 특정 소재나 특정 유형의 시에 주목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 퇴계 시에 대한 접근은 그의 학문적 성취와 관련하여 이루어지는 경향이 강 했다 그의 시는 조선 유학의 거목이 이룩한 성리학적 경지를 바탕으로 읽히. 고 이해되었다 작자의 성향과 업적에 따라 작품에 접근하는 것은 마땅한 방. 식이다 그러나 퇴계가 지은 시를 대하며 위대한 학자보다는 시인으로서의 개. 인을 의식할 때 퇴계가 시작의 동인으로 지적한 그의 내면의 감정에 더욱 충, 실하게 시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본고에서는 퇴계의 기행 시집 <병인도병록 에 소재한 시의 면모를 확인>

(4)

하고자 한다 생의 한 국면에 놓인 개인이 그 경험과 심경을 어떻게 시로써. 표출하고 있는지 살펴봄으로써 시인으로서의 퇴계에 주목할 것이다 먼저. 병인도병록 에 나타나는 노정과 그 속에서 창작된 작품의 양상을 정리하

< >

고 작품에 드러나는 주제 의식과 시인의 내면에 관해 논하도록 하겠다 특정, . 한 시기 특정한 상황에서 지은 시를 통해 노년의 퇴계 시가 보여주는 일면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병인도병록 의 노정과 작품 개관 . < >

병인도병록 은 퇴계의 나이 세이던 년에 월부터 월까지 약 두

< > 66 1566 1 3

달 간의 여정에서 지은 시를 묶은 기행 시집이다. 1566년 월1 14 ,일 퇴계는 명종이 내린 교지를 받았다 명종은 특명을 내려 퇴계를 가선대부. (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임명하고 조정으로 올라오도록 했다 이 시기. 퇴계는 고향인 안동에 머물며 벼슬을 멀리하고 강학에 힘쓸 것을 결심한 지 오래였다 또한 고령에 접어들었고 병에 자주 시달렸기 때문에 한겨울에 도성. 까지 가는 노정은 퇴계에게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퇴계는 처음부터 관직 제수를 사양하고자 했을 것으로 판단되지만 왕명을, 거스르지 못하고 조정으로 향하는 길을 떠났다. 1 26일 경 출발하여 요성 (邀聖山 堯聖山/ )의 성천사(聖泉寺)에 도착해 하루를 묵었다 그리고 다음날. 영천(榮川)에 도착하였는데 날이 궂고 병이 나서 며칠 간 머무르며 사면을 요청하는 사장(辭狀)을 써서 올렸다 그리고 영천으로부터 풍기. (豊基)로 옮겨 명종의 명을 기다렸다 이때에 병증이 더욱 심해졌다. . 210일에 앞서 올린 사장에 대한 명종의 교지를 받았는데 사면을 허락하지 않고 오히려 내의(內 를 보내니 잘 조리해서 올라오라는 명이었다 이에 퇴계는 죽령

) . ( )

竹嶺

이 얼어붙어 험하였므로 조령(鳥嶺)으로 행로를 바꾸었고 예천, (醴泉)으로 가 서 다시 사장을 올리거나 다른 방법을 강구하고자 했다.

결국 퇴계는 월2 13일에 예천으로 가서 두 번째 사장을 써서 올렸다 이곳. 에서 명종이 허락을 내리기를 기다렸으나 명종은 그사이 오히려 이전보다 품 계를 올려 퇴계를 자헌대부(資憲大夫) 공조판서(工曹判書)에 제수하였다 명. 종은 퇴계의 사장을 받아 보고도 윤허하지 않았으며 예문관 제학으로 거듭

(5)

임명하였다. 225일에 퇴계는 명종이 사퇴를 허하지 않으며 자헌대부 공조 판서에 임명한다는 내용의 교지를 받았다 다음날인. 26일 안동의 학가산(鶴 에 있는 광흥사 로 떠났다 퇴계는 교지를 받기 이틀 전인

) ( ) . 23

駕山 廣興寺

에 문봉(文峯) 정유일(鄭惟一)의 서신을 받아 이미 명종의 하명에 대한 소식 을 전해 듣고 낙담해 있던 차였고 세 번째 사장을 올릴 계획을 갖고 있었다, . 그렇기 때문에 교지를 받은 바로 다음날 예천의 관사를 떠나 광흥사로 향했 고 이때 귀로를 잡아 돌아가기로 마음을 굳혔던 것으로 보인다, .

월 일에 광흥사에서 명종에게 사장을 올려 소명을 거두어 줄 것을 간절 3 1

히 청했다. 3월 일에는 천등산8 (天燈山)의 봉정사(鳳停寺)로 옮겼다. 13일에, 앞서 올린 세 번째 사장에 대한 명종의 교지를 받았는데 역시 허락하지 않으, 며 조리하여 올라오라는 내용이었다 다음날 퇴계는 네 번째 사장을 작성했. 다 사장에서 퇴계는 자신이 벼슬을 받을 만한 인물이 되지 못하고 명을 기. , 다린다는 것이 승직되기를 바라는 것과 같이 되었으므로 죄가 중하다고 하였 . 15일에 경상도로 사장을 제출해 서울로 전해지도록 했다 종전에 사장을. 올릴 때에 직접 사람을 보냈던 것과 다른 방식이었다 그리고 왕명을 기다리. 지 않고 봉정사를 떠나 안동으로 돌아갔다 앞서 올린 세 번째 사장에서 명, . , 을 기다리는 일이 마치 승직을 바라는 것처럼 되어 결국 무거운 죄를 지었다 고 하였으므로 퇴계가 명종의 허락을 얻지 못한 채 귀가한 것은 죄를 피하기 위한 행동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안동의 집에 도착하여 길을 떠난 후로부. , 터 돌아온 직후까지 지은 시들을 모아<병인도병록 으로 엮었다> .

이 기간 동안 퇴계는 40편에 이르는 시를 지었다 그 중 다른 이본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것이 편이고 나머지는4 , 퇴계선생문집 이나 퇴계선생속 , 또는퇴계선생전서 등에도 실려 있다. <병인도병록 과 다른 문집>

에 실려 있는 같은 작품 간에는 제목이나 본문에서 자구의 차이가 보이는 경 우가 잦다 이는 퇴계가 자신의 시를 퇴고하는 과정에서 처음의 원고를 수정. 하면서 발생한 결과로 생각된다.6)

(6)

병인도병록 은 초초본 퇴도선생집 의 제 책에 수록되어 있

< > (初草本 《) 13

다 초초본. 퇴도선생집 은 여러 차례 간행된 퇴계 문집의 첫 번째 형태이 다 초초본은 많은 유고를 망라하기는 하였으나 편집이 치밀하게 이루어지지. 는 않았다. <병인도병록 과 같은 별도의 시집에 있는 작품들이 문집의 다른>

부분에 중복 수록되어 있기도 한데 같은 문집에 실려 있는 같은 작품임에도, 자구의 차이가 나타난다 이후 교정과 편집을 거듭 거쳐 후대의 문집이 점차. 체계를 갖추어 간행되었다 따라서 후대 문집에 실려 있는 원고를 퇴계가 수. 정한 최종적 형태를 반영하여 교정된 것으로 보고 작품을 들 때에 같은 작품, 이 후대 문집에도 수록되어 있는 경우 차이가 있더라도 후대 문집의 원문을 따르도록 하겠다.7)

당시 퇴계가 지은 시들은 언제 어느 장소에서 창작되었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특히 창작 일자는 많. 은 경우 정확하게 알 수는 없고 다만 작품의 수록 순서나 서간 등 기타 자료, 를 통해 대략적으로 추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병인도병록 의 여정을 통해>

지어진 시들을 창작 시기와 장소를 밝혀 아래에 정리해 보도록 하겠다.8)

제목 시기 장소

, ,

丙寅正月二十六日 力疾赴召 出宿聖

, [ ]

泉寺 次二友韻 丙寅 金士浩 朴德明 1 26 요성산(邀聖山 堯/ 성천사

) (

聖山

) 泉寺

, [ ]

榮川公館病留 答李宏仲 二十九日 1 29 영천(榮川)

, , ,

正月 將赴召 病留龜城 上狀乞辭待 ,

命 書懷東軒韻 1 29~30

雙淸堂趙松岡韻 1 29~30

二月初六日 大風雪 2 6 풍기(豊基)

, , ,

病留豊基時 士敬寄詩 頗譏余行 而 ,

適聞其恭陵參奉之除 故詩中云 2 8

, , [

病中 得金季應書 二絶 時季應量移

, , ]

丹陽 書云身病 雞鳴方睡 2월 일8 ~12

, ,

二月初九日 用東軒韻 二首 2 9

[ , , ,

同前韻 初十日 承奉旨狀 不許退歸

, , ,

徐調上來 以竹嶺凍險 將改道鳥嶺

, , ]

時又遣內醫 賜藥診病 惶恐靡容云 2 10 [ ]

基道中 向醴泉

2 12

, , , ,

十三 抵醴泉 再辭待命 呻吟之餘 2 15 예천(醴泉)

(7)

퇴계는 길을 떠나 요성산 성천사에 머물렀던 월1 26일부터 안동으로 돌아 온 후 월 하순까지 지은 시를3 <병인도병록 에 포함시켰다 시를 지은 장소> . 를 보면 요성산 영천 풍기 예천 학가산 천등산을 거쳐 귀가하는 과정이, , , , ,

, , 見軒有己酉經行拙句 有感 二絶

, ,

十六日 病吟 二首 2 16

折梅 置案上 2 17

,

十八日 風雨感懷 2 18

, ,

郡人尹祥 趙庸二公 皆明經授徒 ,

無著述 後來無徵爾 2 18~20 ,

二十一日 偶題 2 21

, ,

得鄭子中書 益歎進退之難 吟問庭梅

[書言陞拜事] 2 22

代梅花答 2 22

, , ,

趙士敬親老且窮 不堪遠宦 未赴命 , ,

寄詩來 奉和 二絶 2 22~24 安上舍孝思 集勝亭 任武伯韻 2 25

, [ , ,

二十六日 尋廣興寺 昨日 奉旨

. ,

前不許退 且知實有冬官之除 以求退

, . ,

得進 尤當力辭 官舍久留不便 遂入 ]

2 26 학 가 산 (鶴 駕 山) 광흥사(廣興寺)

, ,

廣興寺 次聾巖李先生舊題韻 二絶 2 26~29

三月二日 得柳景文書 3 2

偶吟二絶 3 2

,

三月三日 用晦菴先生一字韻 3 3 ,

對雨 次客舍聽雨韻 3 6

, ,

是日 復用晨起對雨韻 二首 3 6

, ,

初八日 移鳳停寺 馬上二絶 3 8 천등산(天燈山) 봉정사(鳳停寺) ,

鳳停寺西樓 次韻 3 8~14

夜雨 3 8~14

喜晴 3 8~14

[ ,

鳴玉臺 臺舊名落水 今取陸士衡詩 飛 , ]

泉漱鳴玉之語 改之 3 8~14

[ , , ]

黃魚 俗云 黃魚多上 旱荒之兆 3 8~14 鳳停持音僧空允詩軸 慕齋金先生 首

題駱峯申先生和之 允往在甓寺時所贈

3 8~14

山寺月夜 3 8~14

,

出山 題鳴玉臺 3 15

歸途馬上 3 15 귀로

[ ] ,

追次洪大提 退之 見寄韻 二首 3 15~26 안동(安東) 도산 (陶山)

陶山訪梅 3월 하순

代梅花答 3월 하순

(8)

드러난다 시의 내용을 살피면 이동하는 동안 지역의 관사 또는 사찰에서 지. 냈던 것으로 보인다. 豐基道中 向醴泉[ ]은 풍기에서 예천으로 가는 도중의 작품으로 되어 있고, 初八日 移鳳停寺 馬上二絶, , 은 광흥사에서 봉정사로 가는 도중의 작품으로 되어 있는데 각각 제목에 언급되어 있는 지명을 반영 하여 창작 장소를 정해 두었다.

병인도병록 의 작품에 나타난 퇴계의 내면 의식 . < >

병인도병록 에는 퇴계가 안동의 집을 떠나 도성으로 향하다가 되돌아오

< >

기까지 겪었던 상황과 그 속에서 떠올린 상념 느꼈던 감정들이 담겨 있다, . 병인도병록 이라는 제목은 병인년 길을 떠나 있던 중에 병을 앓았던 일에

< >

관한 기록이라는 뜻으로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담아 지은 것이다 퇴계의 다, . 른 기행 시집이 남행록 ’, ‘서행록 등 행선지와 관련된 단순한 제목으로 되어 있는 데 비해 <병인도병록 이 색다른 제목을 갖게 된 것은 여정의 정황이>

특수했기 때문일 것이다 퇴계는 안동으로부터 한양의 조정으로 가야 했지만. 경상도도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행로를 돌렸다 목적지에 근접조차 하지 못. 하고 길 위에서 분투하다 끝난 미완의 여정이었다 노환과 기상 악화로 인해. 여정은 자주 지체되었으며 애초 마지못해 떠난 길이었기에 퇴계는 이 여정을, 늦게라도 무르고자 조정에 수차례 글을 올렸다 그러나 그의 요청은 받아들여. 지지 않았고 결국 스스로 여정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

병인도병록 에는 신병으로 인한 괴로움과 자신의 뜻에 반하는 세상의

< > ,

요구에 대응해야 했던 노년의 퇴계가 겪은 내적 갈등이 기록되어 있다. < 인도병록 의 시들은 갈등 상황에서 쓰였기 때문에 퇴계가 긍정하고 지향했던>

바와 그 반대편에 위치하던 것들이 시 속에 더 선명하게 드러나 있을 수 있 . <병인도병록 을 쓸 당시 퇴계의 생각과 감정에 대하여 시를 통해 살펴>

보도록 하겠다 시에는 그가 지나온 삶을 어떻게 평가하고 어떠한 삶을 추구. 했는지가 드러나 있으며 그에게 정서적 괴로움이나 충만감을 일으킨 것이 무, 엇이었는지 나타나 있다.

명예에 대한 회의와 학문에 대한 열의 1.

(9)

병인년 도성으로 출발한 지 약 사흘 만에 퇴계는 병으로 누워 사직을 청하 는 글을 올렸다 퇴계는 어린 시절부터 자주 허약함과 고단함에 시달렸으며. , 이러한 체질은 그가 평생 수차례 관직을 사양하는 사유가 되었다 사직을 청  . 하는 글을 올린 후에 지은 아래의 시는 당시 퇴계의 심정과 생각이 어떠했는 지를 보여준다.

, , , ,

正月 將赴召 病留龜城 上狀乞辭待命 書懷東軒韻

정월에 부름을 받아 부임하려던 차에 병이 들어 구성에 머물면서 소장을 올려 사직을 청하고 명을 기다리면서 동헌에 걸려 있는 시의 각운자를 써서, 마음을 적다

病尼嚴程臥一城 병 빡빡한 여정 멈추게 하여 한 성에 누웠네 誤身何地不緣名 몸 그르침 어디서건 이름 때문 아니겠는가 歸田本爲逃名計 전원으로 돌아감 본래 이름 피할 계책인데 却被名驅枉此行 오히려 이름에 내몰려 잘못 이번 행보 내디뎠네

위의 시에서 퇴계는 자신의 이번 행보를 나선 것이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 었다고 말하고 있다 타지에서 몸져눕게 된 상태에서 쓴 위의 시에서는 고향. 에 머물러 지내는 삶을 유지하지 못하고 또다시 불려나온 상황에 대한 원망 까지 감지된다 퇴계는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 이름 곧 명예와 명성 때. , 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명예를 추구하는 삶을 피하기 위해서 전원으로 돌아갔. 는데 도리어 이름에 내몰리게 되었다고 탄식하고 있다 또한 어느 곳에서건, . 몸을 그르치게 하는 것이 바로 이름이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퇴계가 명예를, 늘 경계해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고 있음을 알아볼 수 있다. ‘ ’자는 시 속에 세 차례 쓰이면서 핵심 시어로 역할 하고 있다 시의 맥락 상. ‘ ’은 시인을 곤란에 처하게 하는 것으로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 ‘ ’자는<병인도병록>

의 여러 시에서 반복하여 쓰인다 아래의 시에서도. ‘ ’자가 사용되어 퇴계가, 명예와 명성에 대하여 생각하는 바를 보여준다.

同前韻 앞의 운자를 쓰다

天上雲行豈有岐 하늘 위 구름 길 어찌 갈래 있겠는가 東西倏忽任來之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마음대로 오가네

人生動見如鉤網 사람 삶 걸핏하면 갈고리와 그물 같음 보이는데

(10)

邃古寧同似鹿枝 아득한 옛날에는 오히려 사슴이나 나뭇가지 같지 않았겠는가

雪嶺高關愁石棧 눈 덮인 고개 높은 관문 돌 잔교 두려워 春風故國想園籬 봄바람에 고향땅의 동산과 울타리 생각하네 因思昔日求名誤 지난 날 명예 추구하던 잘못 생각하여

除患規規反築基 근심 없애고자 벌벌 떨었으나 오히려 터전만 다진 꼴이라네

본래 위의 시에는 시를 짓던 때의 정황에 대한 설명이 부연되어 있다.9) 이때 퇴계는 이번 여정에서 첫 번째로 올린 사장에 대한 명종의 답을 받았다.

병환을 들어 사직을 청했던 퇴계에게 명종은 내의(內醫)를 보내 진찰을 받고 조리하여 올라오도록 하였다 명종의 대우에 퇴계의 입장은 더욱 난처해지게. 되었다 병으로 인한 고단함도 문제였지만 관직 생활을 떠나 강학에만 전념할. 뜻이 확고했기 때문에 퇴계는 이번 행로를 서둘러 중단하고 싶은 마음이 컸 을 것이다.

당시 퇴계의 심정은 시에서 비유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시는 하늘 위 구름. 의 움직임에 대한 서술로 시작된다 구름의 행로는 정해진 갈래가 없어 임의. 대로 오고간다고 하였다 이어지는 구절에서 사람의 삶을 갈고리와 그물에 비. 유한 것은 곧 자신의 처지를 암시한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그렇게 하. 지 못하는 답답함을 자유로이 움직이는 듯 보이는 자연에 대비하여 표현한 것이다 한겨울 원하지 않는 행로를 힘겹게 이어가던 퇴계에게 조정으로의 길. 은 춥고 험하며 위태로운 모습으로 고향은 봄바람이 전해지는 동산과 울타리, 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퇴계는 자신이 갈고리와 그물 에 걸린 듯이 된 것이 과거의 과오 때문이 라고 하였다 지난 날 명예를 구한 것이 잘못이라 생각되어 그 근심을 없애려. 고 애썼지만 오히려 터전을 다졌다고 하였다 퇴계는. 40대 후반부터 고향에 서 학문과 교육에 힘을 쏟으며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관직을 맡게 되더라. 도 금방 사임하였으며 임명될 때마다 사양한 것이 수십 차례였다 사직을 일. 관할수록 오히려 그의 명성과 주어지는 벼슬의 품계는 높아졌다 오히려 터전. 을 다졌다는 표현은 이러한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퇴계는 자신이 명예를 좇는 잘못을 했다고 평하고 있으며 과오를 깨닫고,

(11)

피하려고 했을 때도 명예는 그를 얽어맸다 명예는 얻고자 할 때는 그것을 향. 해 삶을 경주해야 하기 때문에 벗어나고자 할 때는 자신의 의지로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생활을 구속하고 자유를 방해하는 것이었다 퇴계는 노년까지 명. 예와 명성을 누렸고 그것에 시달렸다, . ‘ ’의 문제는 퇴계의 삶에서 하나의 화두가 되었으며 퇴계는 그것을 회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음을 시를 통해 알 수 있다.

, , , , ,

趙士敬親老且窮 不堪遠宦 未赴命 寄詩來 奉和 二絶

조목은 어버이가 늙고 가난하여 멀리 벼슬하러 갈 수가 없어 명을 받들어 부임하지 못하고 시를 부쳐왔으므로 받들어 화답한다 절구 두 수,

猿鶴無端怨且驚 원숭이와 학 끝없이 원망하고 놀라는데

召除荐沓百艱生 부르시어 벼슬 줌 거듭거듭 내려도 온갖 어려움 생기네

君今亦試嘗艱味 그대 지금 또한 쓴 맛 보고 있으니

總爲吾儕太近名 이 모든 것 우리가 명예 너무 가까이 한 탓이라네 衰白難堪走軟紅 쇠잔한 백발에 붉은 먼지 속 달림 견디기 어렵거늘 乞身何日返吾窮 물러남 청하여 어느 날에나 내 모습으로 돌아오리 歸時更勉求師訓 돌아올 때는 우리 더욱 힘쓰세 옛 스승들의 훈계

파고들어

晦木春容尙賁躬 깊은 나무 봄날 모습 같이 제 몸 다시 빛내 보세

월천(月川) 조목(趙穆)은 퇴계의 수제자로 꼽히는 인물로 도산서원의 사, 당에 제자 중 유일하게 조목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는 사실은 두 인물의 특 별한 관계를 짐작하게 한다 그는 퇴계와 마찬가지로 벼슬에 천거되더라도 사. 양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강학을 중요하게 여겼다 위의 시는 관직에 임명되었. 으나 응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 월천에게 퇴계가 전 하는 말이 담겨 있다 이 시에서도 퇴계는. ‘ ’을 언급하고 있다 우리 가 겪. “ 고 있는 어려움은 명예를 가까이 했기 때문에 온 것이라며 명예를 멀리해야, 할 것이라는 뜻을 에둘러 전하고 있다.

또한 이 시에는 퇴계가 지향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나타나 있다. “軟紅 로 상징되는 번거로운 속세는 그가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물러나 옛 스승으. 로부터 이어받은 학문에 몸담을 때 吾窮”, 즉 본래의 자신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퇴계가 벼슬을 거부하는 것은 그것이 자신의 본모습과 어긋.

(12)

나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시의 마지막 구에서 퇴계는 스승의 가르침에. 파고들어 제 몸을 빛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여기에서. 晦木春容 의 비유를 하며 이처럼 살아가자고 말하고 있는데 이 비유는 주자의 호인, 회암 이 어두운 땅 속에 깊이 뿌리박은 나무가 봄에 밝게 빛난다는 뜻

(晦庵)’

을 가진 것과 연결된다 퇴계는 유학에 대한 탐구가 평생 자신이 걸어야 할. 길이라고 인식하고 표명하고 있다, .

퇴계는 위인지학(爲人之學)을 경계하고 위기지학(爲己之學)을 강조한 학자 였다 위기지학은 자신의 본질을 밝히고 인성을 수양하기 위한 것이고 위인지. 학은 타인이나 세상에 미치는 영향에 초점이 있다는 점에서 둘은 서로 대비된 다 시에는 퇴계가 위기지학의 길을 추구하고 있음이 나타나 있다 퇴계에게. . 벼슬은 명예로 향하기 위한 길이고 또 명예에 의해 견인되어 가는 지점이었, 다 명예는 다른 사람들의 인정으로부터 구해지는 것이기에 스스로의 본질을. 구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기 때문에 퇴계는. ‘ ’을 추구하였던 지난 시 절을 과오라고 규정하였고 자신이 겪고 있는 곤경을 ‘ ’에 의한 것이라고 탄 식하였다 반면 학문에 힘쓰며 스스로 수양하는 일은 끊임없이 추구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시의 마지막 구에 담긴 의미와 같이 땅속 깊이 뿌리. , 내린 나무가 빛을 내듯 내면이 깊이 다듬어진 사람은 스스로 광채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의 학문에 대한 희구가 나타나 있는 시를 아래에 더 들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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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十六日 尋廣興寺 26일 광흥사를 찾다

童稺曾來過洞門 어린 아이 적에 일찍이 와서 어귀의 문 들른 적 있었는데

重尋白髮映山雲 다시 찾으니 흰 머리 산의 구름에 드러나네 幾多羊胛光陰裏 얼마나 많았던가 양 어깨뼈 익을 만한 광음 속에 虛度浮生道未聞 뜬 인생 헛되이 보내고 도는 아직 듣지도 못했다네

위의 작품에서는 퇴계가 품고 있던 학문에 대한 열의가 드러난다 첫 번째. 시에서 퇴계는 광흥사에 도착하여 어린 시절 방문했던 기억을 떠올리고 있다.

빠르게 지나가는 세월 속에 많은 일들을 거쳐 왔다고 하면서도 인생을 헛되이 보냈을 뿐이라고 자평한다 아무리 많은 일들을 거쳤더라도 모두 헛된 것일 뿐. 이라고 말한 이유는 도를 얻지 못했다는 인식 때문이다 곧 도학에 있어서의. , 성취가 그의 생에서 유일하게 의미 있는 일로 나타난다 퇴계는 어린 시절에.

(13)

왔던 곳에 노년이 되어 다시 찾아와 세월을 반추하고 당대의 대학자였음에도, 겸손을 빌어 학문의 높은 경지를 끝없이 추구하는 소망을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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郡人尹祥 趙庸二公 皆明經授徒 惜無著述 後來無徵爾

고을 사람 윤상 조용 두 분이 다 경을 밝혀 문도에게 전수하였는데 애석, 하게도 저술이 없어 뒷사람에게 증빙을 줄 만한 것이 없다

性理淵源不易明 본성과 이치 연원 밝히기 쉽지 않은데 襄陽稱道二公名 예천에서는 이 두 분 이름 일컫는다네 如何著述無傳後 어찌하여 저술 후세에 전해지지 않았는가 仰止高山獨感情 높은 산 우러르며 홀로 정 느꼈다네

이 시는 퇴계가 예천에 당도하여 유학을 연구하고 교육한 예천 지역 학자 두 사람에 관하여 읊은 것이다 시에는 지역 학자들에 대해 느끼는 정감이 표. 현되어 있다 그들이 경전을 깊이 탐구하고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전한 것을. 기리며 저술이 남아 있지 않음에 안타까움을 표하고 있다 비록 증거가 될 만. 한 두 학자의 저술은 없으나 퇴계는 같은 학문의 길을 가며 학문적 경지를 이룬 두 사람에게 마음으로 동질감을 느끼고 있다.

번잡한 정사에 관여하기보다는 자신이 사는 고을에서 강학을 일삼고 교육 에 힘쓴 두 학자의 삶은 노년의 퇴계가 추구하는 삶의 모습이었다 앞에서 들. 었던 시에서 퇴계는 명예에 얽매여 생의 많은 시간을 허비했으며 자신의 본 모습을 상실했다고 여기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그는 옛 스승의 가. 르침을 따라 학문에 매진하는 삶을 지속해 갈 수 있기를 갈망했다 자신이 추. 구하는 삶을 살아간 지역 학자들에게 퇴계는 존경을 표하며 앞으로 살아갈 삶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퇴계는 고단한 노정 위에서 노병에 시달리는 상태에서도 끝없이 학문을, 탐구하고자 하는 뜻을 분명히 하였다 노년의 퇴계는 명예와 학문은 서로 동. 시에 추구되기 어려운 것이었으며 지난 시절 명예 속에서 헤맸던 것이 학문 을 부족하게 했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명예에 대한 회의와 학문에 대한 희. , 구가 대비되면서 지난 삶에 대한 반성과 앞으로의 삶에 대한 지향이 시를 통 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노년의 고독감과 자연으로부터의 위안 2.

(14)

병인도병록 에는 퇴계가 느끼는 고독감과 우울감이 자주 드러난다

< > . <

인도병록 을 쓰던 당시 퇴계는 늙고 병든 몸을 자유롭게 가누지 못했고 거> , 취를 자신의 의지대로 택할 수도 없는 상태에 놓여 있었다 여정 속에서 그는. 심신의 고단함을 느꼈고 세월의 흐름을 절감하며 슬픔에 잠기기도 했다 아, . 래의 시에는 당시 퇴계가 느꼈던 슬픔이 진솔하게 표현되어 있다.

雙淸堂趙松岡韻 쌍청당에서 조 송강의 시를 보고 그 운자에 의하여 旅病淹留自作凉 나그네 병이 들어 저절로 고독한데

雪庭春信閟梅香 설정(雪庭)의 봄 소식은 매화 향기 가뒀구나 故人尙有題名處 옛 친구의 시 아직 짓던 곳에 있으니 拭淚幽吟宛對牀 맞대어 앉은 듯 눈물 닦고 읊어 보네

鳴玉臺 명옥대

此地經遊五十年 이 땅에 노닌 적도 어느덧 쉰 해라 韶顔春醉百花前 고운 청춘 꽃 아래서 취토록 마셨더니 只今攜手人何處 손 마주 잡던 사람 지금은 어디 가고 依舊蒼巖白水懸 의구한 푸른 바위 하얀 물이 매달렸네

위에 인용한 두 편의 시 중 첫번째 시는 퇴계가 영천의 공관에 머물 때 지 은 것이다 퇴계는 공관에 있는 송강. (松岡) 조사수(趙士秀)의 시를 보고 그 운자에 따라 시를 지었다 송강 조사수는 퇴계를 존중하고 공경하며 교우를. 맺었던 인물이었다 그는 퇴계가 이 시를 짓기 년 전인. 8 1558년에 세상을 떠 났다 퇴계는 위의 시에서 자신의 모습을 병든 나그네라고 표현하였다 지치. . 고 아픈 몸을 이끌고 객사에 앉아 세상을 떠난 친구의 글을 마주하니 눈물을 흘릴 정도로 슬픔에 잠기게 되는 자신의 모습을 퇴계는 그대로 썼다 그는 병. 환으로 고달팠고 여정에서 우연히 마주한 죽은 친구의 자취는 그를 더욱 외, 로운 심사로 몰아넣었다.

두 번째 시는 천등산 봉정사에서 쓴 것으로 퇴계는, 50여 년 만에 이곳에 오게 되었다고 말하며 지나간 시간을 반추하고 있다 시의 제목 아래에 부연되. 어 있는 정황을 살펴보면10), 50여 년 전 퇴계는 사촌 형제를 비롯한 지인들과

(15)

함께 이 장소에서 자주 시간을 보냈다 당시 퇴계는 젊었고 함께하던 벗들과. 함께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며 취하도록 술을 마실 수 있었다 그러나 시를 짓. 는 지금 그 사람들은 모두 죽어 세상에 없고 퇴계는 병든 노인이 되어 있다, . 여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자신의 삶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으나 50

기암과 폭포는 옛날과 다를 바가 없어 인생의 덧없음을 더욱 부각시킨다.

원하지 않으나 거부할 수 없는 세상의 요구에 억지로 따르며 길 위에서 병 환에 시달리던 퇴계는 노년의 고독감을 느꼈다 길 위에서 우연히 마주친 자. 신의 지난 삶의 자취들은 상실감과 한탄만을 고조시켰다 아래에 인용하는 시. 에서도 외롭고 근심스러운 정서는 일관되게 나타난다.

夜雨 밤비

病客三更抱百憂 병든 길손 삼경에 온갖 근심 품었으니 行身許國兩難謀 제 일이나 나라 일 두 가지 다 어렵네 如何一夜山窓雨 무슨 일로 한 밤 산창에 비가 내려 滴碎幽襟苦未休 가슴속을 부수어 괴로움 쉬지 않게 하는지

위의 시에서 퇴계는 늦은 밤까지 잠들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심정을 읊고 있다 신병으로 몸이 불편한데다가 마음속에 근심이 가득한데 빗소리까지 들. 리니 더욱 잠을 청하기가 어렵다 늦은 밤까지 내리는 비는 퇴계의 복잡한 심. 경을 더욱 심란하게 만들었다 빗방울이 끊임없이 가슴속에 떨어져 부서지는. 듯 괴로움을 그칠 수 없다고 토로하였다 이 시를 짓던 당시 퇴계는 명을 받. 아 하는 수 없이 조정으로 향하고 있기는 했으나 이는 마음으로 바라는 바가 결코 아니었다 길을 떠난 뒤에도 이미 수차례 명을 거두어 주기를 청하였으. 나 매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퇴계는 병과 궂은 기후로 자꾸 지연되는 여정. 속에서 나라의 명을 따르지도 거역하지도 못한 채 괴로워하고 있었다, .

여정 내내 지치고 어두운 심사에 사로잡혀 있던 퇴계에게 유일하게 위안이 되어 줄 수 있던 것은 자연에서 전해지는 봄의 생기였다 여정이 지속되는 동. 안 계절은 겨울에서 봄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아래의 시에는 퇴계가 봄 기운. 을 느끼며 시름을 덜어내는 모습이 나타나 있다.

(16)

豐基道中 풍기 도중

今日姸和景色明 오늘은 따뜻하여 날씨가 청명한데 春風欺颭病輿行 봄바람이 병든 사람의 수레를 흔드네 栽松偃蹇遮官道 심은 솔은 교만스레 한길을 가로막고 聚石縱橫限地耕 돌무더기 가로 세로 경지(耕地)를 금그었네 老我有身仍有患 늙은 나는 몸이 있어 근심이 있는 건데 居民無事爲無名 거민(居民)은 일 없으니 이름이 없을밖에 猶能醒得愁心處 시름을 씻을 곳이 그런대로 나타나니 鳥喚泉鳴野草生 샘이 울고 새 우짖고 들풀이 돋아나고

喜晴 날이 개이므로 기뻐서

蕩空雲霧捲朝陰 허공을 넘실대던 구름 안개 다 걷히고 白日晴天照客心 개인 하늘 밝은 볕이 객의 가슴 비춰주네 坐聽泉聲如戛玉 샘 소리 들어보니 옥을 끌어당기는 듯 更憐靑藹欲渾林 숲에 깃든 아지랑이 예쁘게도 파랗구나

위에 인용한 두 편의 시에는 봄의 정취를 느끼며 우울감에서 벗어나는 퇴 계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병인도병록 에 실려 있는 시 중 밝은 정서가 드>

러나는 시는 대부분 봄 풍경에 의해 감흥을 얻어 창작된 시들이다 먼저 인용. 한 시에는 퇴계가 풍기에서 예천으로 이동하는 중에 보게 된 여러 정경들이 묘사되어 있다 길가의 소나무와 경작지의 돌들 거주민들의 모습이 따뜻하고. , 맑은 날씨를 배경으로 그려지고 있다 샘물이 녹아 소리를 내며 흐르기 시작. 하고 새가 지저귀며 풀이 돋아나는 풍경을 바라보면서 퇴계는 이제 시름을 씻 어낼 곳을 찾아냈다고 말하고 있다 봄을 맞아 새롭게 태동하는 자연이 뿜어. 내는 생기로부터 퇴계는 겨우 위로와 위안을 얻어 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음에 인용한 시에는 기쁨의 감정이 좀 더 직접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흐렸. 던 날씨가 개이고 밝은 볕이 드리우자 퇴계는 그 빛이 마음을 비춰주는 것으 로 느끼고 있다 샘물이 흘러가며 내는 소리도 숲에 일어나는 아지랑이도 다. , 아름답게 나타난다 건강하게 태동하는 자연은 퇴계가 겪고 있는 심적 번뇌와. 육신의 고단함을 잊을 수 있게 해 주는 것이었다 퇴계는 계절에 따라 태어나. 고 피어나는 자연을 바라보며 기쁨을 느꼈고 정신적 여유를 구할 수 있었다.

고요히 생동하는 자연을 체감하고 완상하는 것은 그의 삶에서 중요한 요소 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관직 생활을 피해 안동에 머무르기를 소망했던 이. 유 중 하나도 이러한 생활을 유지하고자 함에 있었을 수 있다 마음을 밝게.

(17)

하고 생활에 소박한 낙을 제공하는 자연 속에서 퇴계가 심신의 안정을 누릴 수 있었음을 시에서 확인할 수 있다.

代梅花答 매화를 대신하여 답하다

我是逋仙換骨仙 나는 바로 포옹이라 환골한 신선인데 君如歸鶴下遼天 그대는 학을 타고 요양에 내렸구려 相看一笑天應許 서로 보고 웃는 것 하늘이 허락함이니 莫把襄陽較後前 양양의 매화와 전후를 비교하지 마오

위의 시는 <병인도병록 을 엮던 시기의 시 중 마지막 작품이다 퇴계는> . 안동의 서원으로 돌아와 매화를 보고 두 편의 시를 지었다 위의 시는 그 중. 한 편으로 매화가 퇴계의 시에 화답하여 대화를 건네는 듯한 구성을 취했다, . 매화는 포옹 즉 매화시로 유명한 은자인 임포, (林逋)를 자처하고 퇴계는 도, 를 배워 학이 되었다는 고사의 주인공인 정영위(丁令威)라고 하여 매화와 퇴, 계의 마주침은 신선의 만남에 비유되었다 서로 웃으며 만난 것은 하늘이 허. 락한 일이라고 썼으니 안동으로 돌아와 매화를 마주한 퇴계의 마음이 얼마나, 뿌듯한 것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약 두 달 간 이루어진 여정의 기록이 서원에 핀 매화와 나누는 가상의 대 화로 맺어지고 있는 것은 그가 결국 돌아와야 할 곳이 어디이며 마주하고 싶, 은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양양의 매화 즉 여정 도중에 예천 지. , 역에서 먼저 보았던 매화와 전후를 비교하지 말라는 마지막 구의 내용은 타 지에서의 매화와 달리 이곳에서 보는 매화가 갖는 특별한 의미를 잊지 말라 는 당부로 읽히기도 한다 객지에서 고독감과 우환에 시달리던 퇴계는 집으로. 돌아와 자신이 아끼는 매화를 바라보며 비로소 안정감과 지극한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길을 떠나 지은 첫 번째 시에서부터 퇴계는 매화와 대나무가 자신이 돌아 오기를 기다린다고 읊은 바 있다.11) 그리고 결국 여정을 중단하기로 결단하 고 안동으로 돌아와 매화를 노래하는 시를 썼다 괴로움이 가득하던 약 두 달. 간의 여정에서 퇴계에게 가장 위안이 되었던 순간은 봄의 기운 속에서 화창 하게 피어나는 자연의 모습을 볼 때였다 그리고 매화를 곁에 두고 바라보며.

(18)

서로 대화를 나누는 시를 지으면서 그는 비로소 외로움을 떨쳐내었다 자연, . 과의 교감에서 느끼는 고양감이 노년의 퇴계에게는 무엇보다 순일한 만족으 로 작용할 수 있었다.

맺음말 .

병인도병록 은 노년의 퇴계가 엮어 남긴 기행 시집이다 퇴계의 다른 기

< > .

행 시집들이 행선지와 관련된 단순한 제목을 취하고 있는 데 비해 이 시집이, 병인도병록 이라는 제목을 갖게 된 것은 특징적인 점이다 제목에 이미 밝

< > .

혀져 있듯이 이 시집에는 길 위에서 병에 시달리던 퇴계의 여정이 담겨 있, 다 당시 퇴계는 신체적으로 곤란했을 뿐 아니라 심적으로도 괴로움을 겪었. 다 억지로 시작해 결국 중단하고 말았던 이 여정에서 겪은 자신의 내적 갈등. 을 그는 시로 표현했다 갈등 상황에서 쓰인. <병인도병록 의 시들에는 당시>

퇴계가 추구하거나 배척했던 가치 고양되거나 침체되는 정서적 순간이 대비, 적으로 드러나 있다.

병인도병록 에는 약 두 달의 기간 동안 지속된 퇴계의 여정이 담겨 있

< >

다 두 달 간 퇴계는 총 네 차례 사장을 조정으로 올렸다 신병을 사직의 사. . 유로 삼기는 했으나 퇴계가 남긴 시를 보면 그가 관직 생활에 대해 전혀 뜻, 이 없으며 관직에 몸담았던 과거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퇴계는 명예를 좇느라 많은 시간을 헛되이 보냈고 명예가 자신을 부. 자유하게 만든다고 하며 그것을 거듭 경계했다 퇴계에게 삶을 의미 있게 하. 는 것은 학문뿐이었고 그것은 명예와 동시에 추구될 수 없는 것이었다 퇴계, . 는 명예가 학문을 부족하게 만들었다고 판단했으며 남은 삶에서는 오직 강학, 에 전념하고자 했다 명예는 버리고 벗어나야 할 것 학문은 바라고 추구해야. , 할 것으로서 퇴계의 내면에서 서로 대립되고 있었다.

퇴계는<병인도병록 에 실려 있는 시를 쓰는 동안 대부분 정신적 심리> , 적으로 침체되어 있었다 그는 고독감과 비애감을 토로했다 건강하지 못한. . 몸을 이끌고 객지에 머무르며 왕명에 얽매여 있는 자신의 처지가 외롭고 고 통스럽다고 느꼈다 과거에 방문한 적 있는 장소에서는 세월의 흐름을 절감하. 고 이미 고인이 된 지인들을 떠올리며 비애에 잠겼다 그가 정서적으로 고양.

(19)

되는 순간은 자연의 생기를 느낄 때였다 계절이 봄으로 바뀌어 감에 따라 태. 동하는 자연을 바라보며 그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특히 그가 애호했던 식. 물인 매화에 대한 시에서는 노년의 퇴계가 느끼는 외로움과 우울함을 해소해 주는 것이 자연과의 교감이라는 점이 잘 드러나 있다.

병인도병록 은 퇴계의 노년기에 일어났던 하나의 사건을 배경으로 창작된

< >

시집으로 그의 생의 한 국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노년의 퇴계는 이 기행 시집, . 에서 지난 삶을 반추하고 소망을 드러냈으며 감정을 진솔하게 표현했다 감정. 의 움직임을 시 창작의 동인으로 여겼던 시인으로서의 퇴계의 내면을 병인도<

병록 에서 읽어 볼 수 있다 고단한 상황 속에서 창작된 이 시집의 시들은 노> . 년의 퇴계가 지녔던 지향점과 그 대척점을 선명하게 대비시키고 있었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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