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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Artist Essay 아티스트 에세이 (5) 영원히 멈추지 못한 웃음과 울음, 팔대산인의 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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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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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ICE, 제36권 제5호, 2018

송 주 영

맛그림미술교육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예술학과에서 미술사, 미학, 예술경영을 배우고 오하이오 주립 대학(The Ohio State University) 에서 미술교육으로 석사(MA)를 받았다. 수년간 디자인 전문지 기자로 근무하면서 디자인과 예술에 관한 다양한 저술을 하였고, 서울디자인페스티벌, 디자인코리아 등 다수의 국제 디자인 전시를 기획, 연출하였다. 현재는 디자이너, 예술가, 그리고 미술교육에 대한 저술 활동 및 강연을 하며 ‘맛그림미술교육’을 운영하고 있다.

중국 명청(明淸) 시대의 격동기를 살았던 팔대산인(

八大山人, Bada Shanren, 1625~1707)을 아는 분들이 많 지 않습니다. 그러나 팔대산인은 그와 동시대 승려 화 가였던 석도(石涛, Shitao, 1641~720)와 함께, 20세기 중 국 수묵화의 3대 거장인 오창순(吴昌硕, Wu Changsuo, 1844~1927), 제백석(齐白石, Qi Baishi, 1864~1957), 장대 천(张大千, Zhang Daqian, 1899~1983)에게 가장 큰 영향 을 미친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지난 해 예술의전당에 서 개최되었던 <치바이스(제백석)> 전시회의 성황으로 그 나마 국내에도 팔대산인의 이름이 자주 회자되었지요. 아 마 어렴풋하게 이때에 팔대산인의 이름을 접한 분들이 많 을 겁니다. 그러나 한 폭의 미스테리 수묵화같던 그의 80 년 평생, 그가 두 명의 여인과 인연을 맺었다는 것에 대해 서는 다들 잘 모르실 겁니다.

1625년, 명나라 주원장(朱元璋)의 17번째 아들인 녕왕 (寧王) 주권(朱權)의 9세손 주탑(朱耷)이 태어납니다. 유달 리 큰 “귀” 덕분에 귀를 뜻한 탑(耷)으로 불렸던 그는 일찍 이 7살 때 시를 지었고 11살 때 산수화를 그렸던 영재였지 요. 그러나 유복하고 예술적 유산이 많았던 그의 어린 시 절은 꽃이 지듯 짧은 순간이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그가 19세 되던 1645년, 만주군이 그의 고향을 점령하였고 그 과정에서 부친이 병으로 사망하였고, 잇따라 아내와 어린 아들도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집니다. 19세의 나이에, 아 버지와 아내 자식까지 눈 앞에서 죽는 것을 보고, 또 조국

인 명나라까지 잃는 경험을 한다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요? 극심한 고통을 느낀 그는 3년 후였던 1648년,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어 산야에 은거하면서 귀머거리인 척, 벙어 리인 척하는 생활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집 문 앞에 벙어 리 “아(啞)”자를 붙여 놓고 두문불출하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약 30여 년을 승려로 ‘탈세속(脫世俗)’의 삶을 살았던 그는 1680년대 중반, 돌연 환속(還俗)합니다. 그 30 년 동안의 삶에 대한 흔적은 기록상으로 찾기는 힘들지만, 역사학자들의 추정에 따르면 절에서도 시와 회화를 쓰고 그리며 가르쳤을 것으로 보는 편입니다. 예일대학의 왕팡

Artist Essay 아티스트 에세이 (5)

영원히 멈추지 못한 웃음과 울음, 팔대산인의 여인들

* 좌: Huang An Pin이 그린 팔대산인의 초상화 (1674)

* 우: 중국 남창시에 있는 팔대산인 기념관 앞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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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NEWS & INFORMATION FOR CHEMICAL ENGINEERS, Vol. 36, No. 5, 2018 …

595 유(Wang Fangyu) 교수의 조사에 의하면, 1670~1680년대

팔대산인의 개인적 기록들은 불투명하지만, 여러 문헌들 과 그의 작품 속에서 이 시기에 그에게 정신적 문제가 나 타나기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현세에 알려진 이름인 ‘팔대산인’은 이 때부터 시작입 니다. ‘八大山人’을 세로 글씨로 흘려 쓰면 마치 ‘哭之’나

‘笑之’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웃어도 울어도 영원히 멈출 수 없다(無聊哭笑漫流傳)”라는 중의적인 자백인 셈입니 다. 60세 이후, 제법 노년의 나이에 붓을 잡은 팔대산인이 그 후 20 여년 동안 남긴 작품들이 지금 우리가 보는 작품 들입니다. 팔대산인이 그린 물고기는 모두 백안(白眼)이 고 새(鳥)는 외다리라지요. 흰 눈창 물고기는 청나라를 백 안시한다는 의미고, 외다리 새는 나라를 잃어 슬픈 불구의 새의 모습을 보여 준 것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의 작품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이것이 200 년도 넘은 오래 전이라는 것에 놀라곤 합니다. 화폭의 여 백에 놓인 회화적 대상은 물고기, 고양이, 새, 때로는 이름 없는 잡초에 이르기까지, 현대적 ‘캐리커쳐(caricature)’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의 작품은 당시 화풍에서 그려온 화법 을 무시하고 전혀 새로운 자기만의 언어로 “감정”까지 드

러낸 매우 놀라운 형태의 “추상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동시대 문인들에게 ‘불안정한 정신상태였다’는 평가를 받았던 팔대산인은 늘 자기 세계 속에 빠져 고독한 생활 을 했습니다. 자기 작품을 궁핍한 사람이나 천진한 아이들 에게 주기를 좋아했지만 권세가들은 만금을 내놓아도 그 에게 직접 작품을 구할 수가 없었고, 농부나 날품팔이에게 그의 그림을 다시 사야 했다고 합니다. 때문에, 혹자는 그 가 실제로 ‘정신분열증’이 있던 사람이 아니라 당대 중국의 많은 권문세족들처럼 살아남기 위한 미친 척 코스프레를 했다는 평가도 적지 않습니다.

팔대산인은 “영웅적 서사, 이상주의, 대의를 위한 희 생, 역사적 사명”을 부르짖던 당대 문인들의 구호가 한낱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일침을 작품으로 드러냈습니다. “포 스트-89(Post-89)” 세대, 즉 천안문 이후의 격변의 시대를 넘나들던 중국의 현대 예술가들이 팔대산인의 이러한 자 유분방함에 매료되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격동의 시절을 살아가는 90년대 이후의 중국 예술가들도 프로파 간다(propaganda) 예술의 일침을 가하고 싶던 시기였으 니까요.

후대 인간들 손에 주어진 정보는 딱 여기까지입니다.

광인의 삶을 살았다고 여겨지는 ‘동양의 빈센트 반 고호’, 팔대신인의 참 모습에 대해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런 데 그에 대해 읽던 중 어떤 대목이 필자의 눈을 이끕니다.

지난 2015년 뉴욕타임즈에 실렸던 홀란드 커터즈 (Holland Cotter)의 글에 흥미로운 문장이 있습니다. “30년 의 수도 생활을 접고 그는 환속하여 심지어 결혼하기에 이 른다. 그러나 매우 불행하고 짧았다.” 왕팡유의 저서에서 도 “팔대산인은 환속 이후에 재혼을 했지만 이 새로운 결

* ‘八大山人’을 세로 글씨로 흘려 쓰면 마치 ‘哭之’나 ‘笑之’의 형태 로 표현한 팔대산인의 서명.

* 좌: 팔팔조도(叭叭鳥圖) 화첩 중 ‘조는 새’, 종이에 수묵, 31.8x27.9cm.

* 우: 안만책(安晩冊 중 ‘고양이’, 종이에 수묵, 27.9X31.8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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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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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ICE, 제36권 제5호, 2018

혼생활이나 새로운 환속의 삶이 그에게 기쁨을 주지는 못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근거로 불행한 짧은 결혼이었는지 아직 확 인된 바 없습니다. 기록과 자료가 없으니 그저 상상할 따 름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처음 세상을 등지던 때, 그를 눈물짓게 했던 첫 번째 아내, 그 여인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가 다시 세상으로 내려왔을 때, 그와 함께 잠 시 일상을 보냈던 두 번째 아내, 또 한 여인이 있었다는 사 실입니다. 19세의 나이에 잃어버린 부인에 대한 기억을 가 진 그가 60세의 나이에 만난 여인은 누구였는지, 무척 궁 금해집니다. 이 여인 때문에 그는 승려의 삶을 접었을까, 그런 상상이 드는 대목입니다.

오늘날의 평론가들은 팔대산인 당대의 정치적 격변기 와 현대 중국의 격동기를 비교하며, 서구 유럽에서조차 19 세기에 들어서야 가능했던 추상적 표현들을 실천했다고 감탄합니다. 그러나 이름 모를 이 두 여인이 “동양의 고호”

라고 불리는 팔대산인에게 막대한 영향을 준 것은 아닌가

멋대로 상상해봅니다. 한 획 속에 고양이와 새의 운치를 담아낼 줄 알았던 천재 화가, 팔대산인의 여인들이 새삼 궁금해지는 그런 날입니다.

* 섭사책(涉事册) 중에서 ‘물고기’.

* 연꽃과 오리, 85x95.8 cm.

참조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