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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Artist Essay 아티스트 에세이 (1) 백석의 통영과 나타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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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ICE, 제36권 제1호, 2018

연재기사

송 주 영

맛그림미술교육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예술학과에서 미술사, 미학, 예술경영을 배우고 오하이오 주립 대학(The Ohio State University) 에서 미술교육으로 석사(MA)를 받았다. 수년간 디자인 전문지 기자로 근무하면서 디자인과 예술에 관한 다양한 저술을 하였고, 서울디자인페스티벌, 디자인코리아 등 다수의 국제 디자인 전시를 기획, 연출하였다. 현재는 디자이너, 예술가, 그리고 미술교육에 대한 저술 활동 및 강연을 하며 ‘맛그림미술교육’을 운영하고 있다.

너무나도 유명한 시인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입니다. 2005년 계간 「시인세계」의 설문조사에서 백석의 시집 『사슴』은 현역 시인 156명이 뽑은 ‘우리 시대 시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작품’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지난 2003년도 대입 수능시험에 시 <고향>이 지문으로 출 제되면서 더욱 대중적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사실 가장 많이 회자된 백석의 이야기는 아마도 길상사(吉祥寺)를 시주했던 기생 자야(본명: 김영한)와의 사랑 이야기일 겁니다. 알려지기로는 자야를 사랑했던 27 세의 백석이, 사랑하는 이를 지켜주기 위하여 스스로 연인 곁을 떠난 자야를 다시 찾아가던 날 밤, 그녀의 손에 쥐어 준 시가 이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지요.

백석과 자야의 애틋한 사랑이 빛나던 그들의 20대 청춘

시절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백석은 꽤 오랫동안 포옹 한 번 못한 여인, 박경련을 마음에 품고 살았습니다. 그의

“통영시대”로 알려진 초창기 시의 상당수가 통영 여인 박

Artist Essay 아티스트 에세이 (1)

백석의 통영과 나타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내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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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INFORMATION FOR CHEMICAL ENGINEERS, Vol. 36, No. 1, 2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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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경련을 향했다는 것도 꽤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첫눈에 반 한 숙명여고보의 여학생, 박경련을 그는 “난(蘭)”이라 애칭 하며 연모하였고 그녀를 만나기 위해 그 먼 통영을 몇 번 이나 방문했습니다. 풋풋한 그리움을 담은 아름다운 시

<통영>, <시기의 바다> 등은 그러한 백석의 첫사랑 박경련 을 향한 연서였습니다.

통영(統營)

옛날엔 통제사(統制使)가 있었다는 낡은 항구(港口)의 처녀들에겐 옛날이 가지 않은 천희(千姬)라는 이름이 많다 미역오리 같이 말라서 굴껍질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는다는 이 천희(千姬)의 하나를 나는 어느 오랜 객주(客主)집의 생선 가시가 있는 마루방에서 만났다

저문 유월(六月)의 바닷가에선 조개도 울을 저녁 소라방등이 붉으레한 마당에 김냄새 나는 비가 나렸다

백석의 시 중에서 가장 에로틱한 은유로 넘친다는 평을 들었던 시 <통영>입니다. 실제로 그녀를 만나기 위해 친구 신현중과 함께 그녀의 집까지 찾아갔으나 박경련의 사촌 오빠와 객줏집에서 식사만 하고 돌아와야 했고 그 후에 쓴 시가 이 <통영>입니다.

백석에 대한 몇몇 돌아다니는 기사나 일화들에는 백석 이 첫사랑 박경련이 결혼하여 실연의 상처로 방황하던 중 기생 자야를 만나 사랑을 시작했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시기적으로 잘못된 이야기입니다. 영생고보 영어교사로 근무하던 백석이 함흥관에서 자야를 보자마자 “오늘부터 당신은 나의 마누라야. 죽기 전에 우리 사이에 이별 따위 는 없을 거야!”라고 외치며 그녀의 품을 파고들던 때는 그 가 스물 다섯이던 1936년입니다. 자야와 만난 이후에도 백 석은 친구 허준과 다시 통영으로 가서 박경련의 집으로 찾 아가 그녀의 아버지께 청혼이 뜻을 밝혔지만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기생 자야를 ‘마누라!’로 외치며 함 께 한 이후에도 그가 품고 있었던 사랑은 통영 여인 박경 련이었던 것이죠. 짐짓 의아한 그의 이런 연애사는 ‘기생’

이라는 독특한 신분의 여자를 대하던 당시의 정서를 가늠 하게 해 줍니다.

백석이 자야를 만났던 그 이듬해 4월, 절친이었던 친구 신현중은 박경련의 집안에 백석의 어머니가 기생 출신이 라는 그야말로 ‘소문’을 전해준 후, 얼마 뒤 신현중 스스로 자신의 원래 약혼녀와 파혼하고 서둘러 박경련과 결혼을 하기에 이릅니다. 가수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의 완벽한 구한말 버전입니다. 첫사랑(짝사랑)과 친구를 동시에 잃은 백석에게는 평생 트라우마로 남았을 것입니다. 그의 상실 감은 매우 컸으며 절망, 분노, 한탄의 마음을 담은 수필과 시들이 연이어 탄생했지요.

신현중과 박경련이 결혼한 그 다음 해, 백석은 집안의 강요로 억지 결혼을 해야 했고, 서울로 도망치듯 홀로 내 려와 있던 자야를 다시 찾았던 것입니다. 어찌되었던 백석 과 자야는 그 날로부터 약 2년 정도 연애다운 연애를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자야와 또 다시 이별하였고, 그로 부터 몇 년 후인 1941년, 30세의 백석이 남긴 시 <흰 바람 벽이 있어>에서는 또 다시 첫사랑 여인 ‘박경련’을 그리워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은 만주 에 살던 그에게 통영은 까마득히 먼 바닷가, 즉 친구 신현 중과 첫사랑 박경련의 집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에게 박경련과 신현중 커플은 추억이자 동시에 아픔이 었고 그의 청춘 그 자체였을 겁니다.

통영 여인, 박경련 / 신현중과 박경련의 신혼 모습(1937년) 20대의 자야와 백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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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ICE, 제36권 제1호, 2018

연재기사

백석은 ‘모던걸’들과도 친분이 두터웠습니다. 최정희, 노천명, 모윤숙 등과 같은 여류문인들과 자주 어울렸고 그 녀들끼리도 백석을 ‘사슴’이라고 애칭했음을 알려주는 편 지들이 제법 남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노천명의 대표작

<사슴>에 등장하는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 백석을 의미한다는 추측에 신빙성이 있기도 합니다.

당시 30~40원짜리 양복을 입던 친구들과는 달리 무려

200원짜리 맞춤양복을 입었고, 남들이 20~30전짜리 양말 을 신고 다닐 때 1~2원 양말만 고집했던 ‘모던보이’ 백석.

숱한 여인들과의 스캔들, 서너 번의 결혼과 이혼, 그 질풍 노도와 같은 연애사는 1945년 34세의 나이로 무려 14세 연 하의 리윤희와 결혼하면서 멈춘 듯 보입니다. 1960년 북한 에 살던 49세의 백석의 마지막 동시 <앞산 꿩, 뒷산 꿩>은 경성 밤거리를 쏘다니던 모던보이의 모습과 너무나 달라 져 있습니다.

앞산 꿩, 뒷산 꿩

아침에는 앞산 꿩이 목장에 와서 껙껙, 저녁에는 뒷산 꿩이 목장에 와서 껙껙

아침저녁 꿩들이 왜 우나?

목장에 내려와서 왜 우나?

꿩들도 목장에서 살고 싶어 울지 꿩들도 조합 꿩이 되고 싶어 울지

마가리도 아닌, 흰 벽도 아닌, 이제는 조합원이 되고 싶 어 우는 꿩을 떠올린 중년의 백석은 안타깝게도 51세부터 34년 동안 일절 창작활동을 하지 못한 채 85세가 되던 1996 년에 삶을 마감했습니다.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 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 픔으로 가득찬다”던 모던보이 백석. 그의 사랑과 슬픔이 새삼 그리운 겨울입니다.

- 참고한 이야기: 『백석평전』, 안도현, 다산책방 (2014)

흰 바람벽이 있어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十五燭) 전등이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쓰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주앉어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느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 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陶淵明)과

‘라이넬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참조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