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1598-1142 (Print) / ISSN 2383-9066 (Online) https://doi.org/10.7738/JAH.2020.29.6.019
일제강점기 수원화성의 관아건축 훼손과정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Process to Demolish Official Buildings in Suwon during Japanese Colonial Period
안 국 진 Ahn, Kug-Jin (수원시정연구원 연구위원)
최 지 해* 1) Choi, Ji-Hae (수원시정연구원 위촉연구원)
Abstract
This study examines the process to demolish official buildings of Joseon Dynasty in Suwon Hwaseong during Japanese colonial period. King Jeongjo built the new Suwon city and constructed the city fortress. Hwaseong Hawnggung and other official buildings were also built in Suwon Hwaseong. However Those buildings were demolished gradually and lost their identity during Japanese colonial period. The official buildings of Hwaseong Haenggung were classified into nine parts. 1) Central area of Hwaseong Haenggung 2)Nangnamheon(落南軒) 3)Uhwaguan(于華館) 4)Namgunyeong(南軍營) 5)Bukgunyeong(北軍營) 6)Gangmudang(講武堂) 7)Yiah(貳衙) 8)Jungyeong(中營) 9) Hoeryungjun(會寧殿). Bukgunyeong was the first demolished building in Suwon Hwaseong.
Nangnamheon and Hwaryungjun were not destroyed during Japanese Colonial Period. from 1910s to 1930s most official buildings were demolished and new buildings were rebuilt.
주제어 : 수원화성, 화성행궁, 일제강점기, 관아건축, 철거
Keywords : Suwon Hwaseong, Hwaseong Haenggung, Japanese Colonial Period, Official Buildings, Demolition
1. 서 론
18세기 정조에 의해 계획적으로 조성된 수원화성의 중요한 건물은 20세기 일본의 식민지 정책에 의해 철 거되고 훼손되었다. 수원의 관아건축은 일제강점기가 되면서 자연스레 일제의 통치를 위한 건물로 전환되었 다. 이로 인해 수원화성의 정체성은 말살되었다. 화성 행궁의 정전인 봉수당을 비롯한 행궁중심영역은 경기 도 관찰부에서 수원자혜의원으로 바뀌었고 북군영 자 리에는 수원경찰서로 우화관은 수원공립보통학교로 바 뀌었다. 낙남헌 자리에는 수원군청이 들어섰다. 그 외 수원화성의 주요 관아건축물은 다른 기능으로 대체되
* Corresponding Author : [email protected]
이 연구는 2019년도 수원시의 재원으로 수원시정연구원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기초연구사업임 과제번호: SRI-기본-2019-13
었다.
이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언제 어떤 건축물이 철거되 고 어떻게 활용되었는가를 도면이나 사진 등으로 정리 한 문헌이 없다. 수원화성의 행궁 및 관아건축물의 변 화에 대해 체계적으로 정리하거나 분석한 연구 역시 부재한 상황이다.1) 본 연구에서는 수원화성의 행궁 및
1) 수원의 행궁 및 관아건축에 관한 선행연구는 다음과 같다.
1. 장필구「풍경궁과 화성행궁의 자혜의원 전용에 관한 연구」2012:
평양의 풍경궁과 수원의 화성행궁이 일제시기 자혜의원으로 바뀌면 서 공간적 변화를 비교분석 하였음.
2. 한동민 『수원을 걷는다, 근대수원 읽기』2012: 수원의 전반적인 근대도시 변화를 다루었음. 그 중에서 행궁이 자혜의원과 수원군청 으로 바뀌면서 변화양상을 자세히 설명한 부분도 있음.
3. 안국진「수원근대건축의 변화와 특징에 관한 연구 – 국가기록원 소장 일제시기 건축 도면을 중심으로」2014: 국가기록원에 소장 되 어 있던 수원 근대건축물 도면자료가 집성되어 있음.
4. 안국진「우화관 복원에 따른 근대건축자산 존치여부에 관한 연 구」2018: 화성 유수부의 객사로 사용했었던 우화관의 존치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기초자료 제공, 시민들의 의견수렴에 관한 연구.
관아건축의 변화양상을 당시의 도면, 지도, 문헌 등의 자료와 새롭게 발견 한 자료를 토대로 건물의 철거 및 훼손 과정을 자세히 분석하고자 한다.
2. 수원화성 관아건축의 위치와 성격
2-1. 수원화성 관아건축그림 1. 수원화성 관아건축물의 위치 (1911년 수원면 지적도 재편집)
그림 2. 수원화성 관아건축물의 위치_확대 (1911년 수원면 지적도 재편집)
수원화성 내의 관아건축은 크게 네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2) 봉수당을 중심으로 한 행궁중심영역, 행정
5. 안국진「일제강점기 수원의 도시공간구조에 관한 연구」2018: 수 원의 행정영역, 도로구조의 변화 및 주요건축물의 위치와 도시경관 변화를 분석 함. 주요 건축물 중에서 관공서의 위치 및 건축적 변화 에 관한 분석도 포함 됨.
2) 『수원시사 17권 – 수원화성』에서는 화성의 영역을 1) 삼문 2) 행궁중심영역 3)휴식 및 행사영역 4) 행정 및 군사영역 5) 미복원시 설로 구분하고 있다. 이는 크게 복원시설과 미복원시설로 구분하고
영역, 군사영역 그리고 기타영역이다. 화성행궁은 수원 화성에서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뒤로는 팔달산 앞으 로는 수원천이 흐르고 있어 배산임수의 원리를 따르고 있다.
구분 번호 건물명칭 건물용도 (완공년도)
행궁 중심 영역
①
봉수당 화성행궁의 정전 (1794) 장락당 혜경궁의 처소 (1794) 경룡관 장락당의 누문 (1794) 유여택 화성유수 거처 (1795) 복내당 관아의 안채 (1794) 낙남헌 행사를 위한 공간(1794) 노래당 행사 중 휴식공간(1794) 득중정 활을 쏘는 사정(1794) 신풍루 행궁의 정문(1789) 좌익문 행궁의 중삼문(1790) 중양문 행궁의 내삼문(1790)
행정 영역
②
외정리소 왕 행차시 제반사항을 처리하는 공간(1796) 비장청 하급관리를 위한 공간(1796) 서리청 문서관련 서리의 공간(1796)
③ 집사청 기타사무를 위한 공간(1789) 군사
영역
④ 남군영 장용외영 친군위의
입직숙위 장소(1794)
⑤ 북군영
⑥ 강무당 군사 무예연마 공간(1794)
⑦ 중영 중군의 관할 관청(1798) 기타
영역
⑧ 우화관 화성유수부 객사(1789)
⑨ 화령전 어진봉안각 즉 영전(1801)
⑩ 이아 수원판관 주재관청(1793) 표 1. 수원화성 관아건축의 건물명칭(그림 2.참조)
2-2. 일제강점기 관아건축의 용도변화
일제강점기 하에서 행궁을 비롯한 주요 관아 건물은 일제의 통치에 필요한 건물로 용도가 바뀌었다. 수원 자혜의원은 1910년 화령전에 설치되었다가 1911년에 봉수당을 중심으로 한 행궁중심영역으로 이전하였다.
이전하면서 행정영역도 자혜의원으로 변용되었다. 행 궁건물 중에서 낙남헌과 노래당은 1895년에 수원군청 이 설치되었고 일제강점기에도 계속 수원군청으로 사 용되었다. 남군영은 일제 초기 헌병파견소·출장소가 들어섰으나 1932년 수원토목관구가 들어섰다. 북군영 에는 통감부시기 수원경찰서가 설치되었고, 일제강점 기에도 계속해서 경찰서로 사용되었다. 강무당은 1908 년 수원지방법원이 개청된 곳으로 1920년에 이아로 법 원이 이전한 이후에는 수리조합이 들어섰다. 이아는 일제강점기 초기 일본의 수비대 의무실로 사용되었다 가 1920년부터 수원지방법원으로 사용되었다. 우화관
복원시설을 1)-4)로 구분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왕이 이용하는 1)-3) 영역을 모두 행궁중심영역으로 포함시키고 4) 영역을 행정영 역, 군사영역으로 나누어 분류하였고 나머지 영역은 모두 기타영역 으로 분류하였다.
그림 4. 1923년 수원자혜의원부지배치도면 (국가기록원 일제시기 건축도면 아카이브)
그림 5. 1914년과 1929년 수원자혜의원(좌:사카이마사노스케
『發展せる水原』1914, 우:『生活狀態調査1–水原郡-』1929) 그림 3. 일제강점기 초 수원자혜의원 배치도 변화 (국가기록 원 일제시기 건축도면 아카이브)
은 수원공립보통학교가 1906년에 이곳으로 이전하면서 교사로 사용되었다. 중영은 1907년부터 일본군대의 수 비대로 사용되기 시작했고 이후 다카노야마(高野山) 국민학당으로 사용되다 1938년 수원군청이 들어섰다.
건물 용도 변화 (사용시기)
①(낙남헌
제외) +② +③ 수원자혜의원 (1911-1945)
① 낙남헌
수원군청 (1895-1938) 토목관구 (1916-1932) 수원세무서(1934-1938) 수원도서관(1940-1945)
④ 남군영 헌병파견소·출장소 (1905-19??) 수원토목관구 (1932-1945)
⑤ 북군영 수원경찰서 (1907-1945)
⑥ 강무당 수원지방법원 (1908-1920) 수리조합 (19??-1945)
⑦ 중영
수비대 (1907-19??) 다카노야마 국민학당 (19??-1935)
수원군청 (1938-1945)
⑧ 우화관 수원공립보통학교 (1906-1945)
⑨ 화령전 수원자혜의원 (1910-1911)
⑩ 이아 수비대의무실 (19??-1920) 수원지방법원 (1920-1945) 표 2. 일제강점기 관아건축의 용도 변화
3. 수원화성 관아건축의 변용 과정
3-1. 행궁중심영역
수원자혜의원은 1910년 9월 5일에 화령전에 개원하 였으나3), 봉수당을 중심으로 한 행궁중심영역에 있던 경기도 관찰부가 1910년 10월에 서울로 이전하게 되면 서 1911년 5월 28일에 화성행궁 자리에 수원자혜의원 이 들어서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초기에는 봉수당을 병원 본관으로 사용하고 그 외 기존 행궁건물을 그대 로 사용하면서 필요에 따라 수선·증축·철거를 하였다.
수원자혜의원은 1919년 배치도를 보면(그림3 중앙) 봉 수당 앞에 중양문이 사라지고 좌익문 앞 일부 영역이 확장되었다. 1921년에는(그림3 우측) 특별병실과 전염 병실 건물을 수선하였고 전염병실 주변으로 벽을 세웠 다. 좌익문 앞 확장된 영역은 일부 변화가 있었고, 건 물을 수선하였다. 행궁건물이 대부분 철거된 시기는
3) 한동민, 『수원을 걷는다, 근대수원 읽기』, 수원박물관, 2012, 282∼284쪽
1923년 본관 건물을 신축하면서였다. 배치도를 보면 (그림4) 전면에 신본관이 있고 뒤에 십(十)자형 복도로 각 건물을 연결하고 있다.
신본관 배치도(그림4)를 보면 신본관은 기존의 좌익 문이 있던 위치에 세워졌고 원래 본관으로 쓰였던 봉 수당은 일반 병실로 용도가 변경되었다. 새로운 정문 은 화성행궁의 정문이었던 신풍루를 대체하였다.(그림 5)
그림 6. 낙남헌의 시기별 공간사용변화
그림 7. 일제강점기 낙남헌 건물변화 (국가기록원 일제시기 건축도면 아카이브)
그림 9. 수원군청, 토목관구, 세무서의 위치이전, 1943년 ( 수원화성박물관)
그림 8. 1929년 수원군청 (『生活狀態調査 1 –水原郡-』
1929) 3-2. 낙남헌
1895년 (고종32년) 을미개혁에 따른 행정구역의 개 편으로 화성유수부가 수원군으로 격하되었고, 낙남헌 에 수원군청이 설치되었다.4) 일제강점기에도 낙남헌은 계속해서 수원군청으로 사용되었다. 원래 북쪽이 정면 이었던 낙남헌은 일제강점기에 건물을 수선하면서 동 쪽으로 바뀌었다. 행궁의 일부 벽을 허물고 새로운 진 입로를 만들면서 건물의 정면도 방향이 바뀐 것이다.
(그림7)
바뀐 건물의 정면에는 입구에 포치를 설치하였고 외부 의 툇간을 모두 막아 내부공간으로 만들었다. 외벽은 비 늘판벽으로 마감하고5) 1910년대 새롭게 증축한 건물은 복도로 연결하고 변소를 따로 두어 복도와 연결시켰다.
(그림7 좌측) 1938년 수원군청이 중영 위치로 이전하던 시기의 배치도를 보면(그림7 중앙) 변소로 사용되었던 건 물이 확장되어 숙직실로 바뀌고, 청사 건물은 증축되었 다. 또 새롭게 지어진 창고건물은 복도로 연결하였다. 수 원군청 이전 이후 비어있던 낙남헌 건물은 수원도서관으 로 용도를 바꾸고 그 주변을 공원으로 만드는 계획을 세 웠다.6) 1939년 낙남헌 건물의 배치도를 보면 1910년대 새롭게 증축된 건물과 군청사에 증축 확장된 부분은 철 거되었다.(그림7 우측)
1916년에는 경기도 지역에 4개의 토목관구가 설치되었
4) 안국진,「일제강점기 수원의 도시공간구조에 관한 연구」, 수원 시정연, 2018, 43쪽
5) 김재국, 「수원 근대건축의 입지와 발달」, 『수원시사 2 –수원 의 도시공간과 도시구조』, 수원시사편찬위원회, 2014, 162쪽 6) 『每日申報』 1939.01.14
는데 그 중 하나가 수원에 설치되었다.7) 토목관구는 수 원군청과 함께 낙남헌 건물을 사용하였고 1932년 남군영 자리로 신축이전 하였다.8) 이후 1934년 5월 세금 징수 업무를 독립적 세무기구로 분리시키면서 조선총독부 세 무관서를 전국 각 지역에 설치하였다.9) 수원에도 수원세 무서를 설치하였는데 그 위치는 수원군청과 함께 낙남헌 건물을 사용하였다. 이후 수원세무서는 수원군청과 함께 1938년에 신축하였다. 위치는 팔달문과 수원역 사이에 있 는 신작로에 위치하며 현재 수원세무서의 위치와도 일치 한다. 수원군청은 중영 위치로 신축이전 하였다. (그림9)
7) 조선총독부관보 1916년 10월 19일 1264호 2면 8)『每日申報』1932.09.04
9) 손낙구, 「일제하 세무관서의 설치와 운영」, 건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5, 84쪽
그림 10. 1918년 수원보통학교 (수원화성박물관)
그림 11. 수원보통학교(사카이 마사노스케 『水原』1923)
그림 14. 1917년 남군영에 위치한 헌병파견소 (수원화성박 물관)
그림 15. 남군영 자리에 위치한 토목관구, 1936년 (수원화성 박물관)
그림 12. 1929년 수원공립보통학교 (『生活狀態調査 1 –水原郡-』1929)
그림 13. 1931년 수원보통학교 항공사진 (국립중앙박물 관)
3-3. 우화관
1896년에 설립된 수원군공립소학교(水原郡公立小學 校)는 1906년에 우화관으로 이전하였다. 1906년 9월 18 일 학부령 제28호로 각 지역의 공립소학교는 공립보통 학교로 개칭됨에 따라 수원군공립소학교는 수원공립보 통학교(水原公立普通學校)가 되었다.10) 우화관 건물이 학교로 사용된 것은 사진자료로 확인할 수 있다. 1918 년과 1923년 사진에서(그림10,11) 우화관을 확인할 수 있으나 1929년 사진에서는 우화관이 사라진 것을 볼 수 있다.(그림12) 1931년 항공사진에서도(그림13) 우화 관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우화관 건물은 1923-1929년 사이에 철거된 것으로 추정한다.
10) 안국진, 「일제강점기 수원의 도시공간구조에 관한 연구」, 수 원시정연구원, 2018, 65쪽
3-4. 남군영
일제강점기 초기 남군영이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 가를 기록한 문헌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으나 1917 년 수원지적도를 보면(그림14) 남군영에 헌병파견소·
출장소로 표시되어 있다. 헌병대는 경찰권을 집행하는 군대기관으로 1905년에 수원 헌병부대가 설치되었고, 경찰의 직무를 수행하였다. 1910년 9월 10일 칙령 제 343호 ‘조선주차헌병조례’를 통해 군사경찰인 헌병과 일반경찰을 통합하였다.11) 이 후 1932년에 수원토목관 구가 남군영 위치에 신축이전을 하였다. 남군영 건물 은 1932년 이전에 철거된 것을 알 수 있다.
3-5. 북군영
통감부시기에 들어서면서 각 지방에는 경찰기구가 설치되었고, 경기도에는 한성 5부 경찰서 외 수원, 개 성, 인천 경찰서를 설치하였다.12) 일제강점기에는 전국 각지에 경찰서를 건설·운영하였는데, 전체를 규모에
11) 차선혜, 「수원의 지방통치기구 변화」, 『수원시사 3 –수원의 통치체제와 지방세력』, 수원시사편찬위원회, 2014, 405∼408쪽 12) 차선혜, 2014, 400∼405쪽
그림16. 1910년대 수원경찰청사도면(좌)과 이등경찰서 공통 도면(우) (국가기록원 일제시기 건축도면 아카이브)
그림 17. 1929년 수원경찰서 (『生活狀態調査 1 –水原 郡-』1929)
그림 20. 1917년 수원지방법원 배치도(좌)와 1910년대 초의 수원지방법원 배치도(우) (좌 : 수원화성박물관, 우 : 국가기 록원 일제시기 건축도면 아카이브 )
그림 18. 수원지방법원 1910년추정(국가기록원 일제시기 건축도면 아 카이브)
그림 19. 수원지방법원 (1910년대, 독립기념관)
따라 일·이·삼·사등 경찰서로 나누고 표준설계도인 공 통도면을 작성하였다.13)
수원경찰서는 이등경찰서이며 규모는 전면 39척 (尺)(약 11.8m), 측면 54척(약16.4m) 총 193,3㎡로 현관 입구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공통도면대로 지어졌다. 경 찰서가 개축된 시기는 1910년 전후로 추정하는데 이는 황성신문 1909년 4월 25일자 신문을 토대로 기존건물 의 공간이 협소하여 경찰서 개축을 계획하고 있는데서 짐작한다.
수원경찰서 신축도면은(그림16 좌측) 1910년경으로 추정하는데 경찰서 건물 외 창고와 검도를 단련하는 검경장이 있다. 경찰서의 내부 공간구성을 보면 사무 실, 응접실, 형사실, 신문실, 서장실, 휴게실, 소사실, 탕비실, 화장실과 후면에 연결된 유치장이 있다. 이 구 성은 공통도면의 실구성과 일치한다. 외벽전체는 누름 대비늘판벽으로 마감되어 있는데 1929년 당시 사진을 통해 확인하였다. (그림17)
3-6. 강무당
기존 연구에서는 일제강점기 수원지방법원의 위치로 이아(貳衙)만 알려졌으나 최초의 수원지방법원이 설치 된 곳은 강무당 자리였다.14)
강무당은 수원군청 북서방향에 위치하고 있다. <그 림 14> 1917년 지도를 보면 수원지방법원이 표시 된
13) http://theme.archives.go.kr/next/place/securityOffice.do?flag=2 14) 원래 강무당은 군사들의 무예연마장소로 1908년 10월 30일 수 원구재판소(水原區裁判所) 명칭으로 개청하였다.
곳이 강무당 자리이며 대지 형태를 보면 1910-1911년 사이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수원구재반소증축급 모양체공사설계도’의 대지형태가 흡사하다.(그림20)
건물의 평면도를 보면(그림18) 기존의 강무당 건물 을 개조해서 사용한 흔적을 볼 수 있다. 건물전체를 둘러싸는 외벽을 두고 각 실을 연결하는 복도를 설치 하였고, 증축한 건물과 연결하는 복도는 추가로 확장 하였다. 내부 공간구성에서 특징으로는 탕탄소(湯呑
그림 21. 강무당 자리에 위치한 수리조합 (수원화성박물관)
그림 23. 수원지방법원지청청사급부속가지도 (국가기록원 일제시기 건축도면 아카이브)
그림 22. 이아의 공간사용변화 (좌: 수원화성박물관, 중,우 : 국가기록원 일제시기 건축도면 아카이브)
그림 24. 시기별 중영의 모습 (좌 : 수원화성박물관, 중 :
『生活狀態調査1 -水原郡-』1929, 우 : 『每日申報』1938.08.04.)
그림 25. 시기별 중영의 공간사용 변화 (좌 : 수원화성박물 관, 중: 국가기록원 일제시기 건축도면 아카이브, 우: 국가기 록원 CJA0022133)
所)15)가 있고, 숙직실에는 온돌로 된 방과 다다미로 된 방이 위치한다.
1910년대 수원지방법원 사진에서 강무당의 정면과 측면에 증축건물과 연결된 복도가 보인다.(그림19) 수 원지방법원이 1920년 이아(貳衙) 위치로 이전한 후 강 무당은 헐리고 수리조합이 그 자리를 대신하였다.(그 림21) 정확하게 철거된 시기는 정확한 문헌이 남아있 지 않으나 1936년 수원의 관광그림지도에는 다른 형태 의 건물로 표시하였다. 종합해보면 강무당은 1920년과 1936년 사이에 철거된 것으로 추정한다.
3-7. 이아
이아는 일제강점기 초에는 수비대의무실로 사용하였 다. 수비대는 중영을 본부로도 사용하였다. 19세기 이 아와 1917년의 이아 배치도를 비교해보면 대부분의 중 심건물은 그대로 남아있다. 그러다 1919년 8월부터 1920년 3월까지 본격적으로 경성지방법원 수원지청 신 축공사를 진행하면서 이아 건물은 완전히 철거되었 다.(그림22)
수원지방법원을 신축하면서 건물 주변으로 벽을 둘 러 담장을 만들었고, 새로운 도로를 조성하였다. 수원
15) 방 가운데 바닥을 파낸 화로가 있는 일본 전통방식의 다실(茶 室)
지방법원의 위치변화는 수원 성내에서 중심지역으로 이동하였고 새롭게 놓인 도로 방향으로 정문을 두었 다. 법원 건물배치도를 보면 전면에 업무공간을 두고 후면에 휴식공간을 두는 단층 목구조 건물이다.(그림 23)
3-8. 중영
중영은 화성유수부 군무(軍務)를 담당하던 중군(中 軍)이 관할하던 관청이었으나 1907년부터는 일본군대 의 수비대로 사용되었다. <그림 14>에서 수비대의 위 치를 확인할 수 있다. 이후 1929년의 사진을 보면 일 본의 종파불교 진언종(眞言宗)의 다카노야마(高野山) 법륭사(法隆寺)에서 운영하는 3년제 다카노야마 국민 학당이 중영을 사용하고 있다. 1920년 전후로 수비대 에서 다카노야마 국민학당으로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그림24, 25) 이후 이 자리에 수원군청의 부지로 선정
그림 26. 1900년 이전 수원 관아건축 변화
그림 30. 1930년대 수원 관아건축 변화 그림 29. 1920년대 수원 관아건축 변화
그림 31. 1940년대 수원 관아건축 변화 그림 28. 1910년대 수원 관아건축 변화
그림 27. 1900년대 수원 관아건축 변화
되면서 다카노야마 국민학당에게는 퇴거명령이 내려졌 다.16) 수원군청의 신축공사는 총 공사비 3만 9천원에 1938년 2월부터 시작하여 7개월만인 1938년 8월에 완 공 및 입주를 하였다.17) 수원군청 신청사는 철근콘크 리트 건물로 일본인 청부업자 요리오카 미이찌(賴岡實 一)가 설계와 시공을 맡았다.18) <그림 24>에서 1929년 사진에서 중영의 일부가 철거되었고, 1938년 수원군청 이 신축되면서 완전히 철거되었다.
3-9. 화령전
화령전 내에 1910년 9월 5일 수원자혜의원이 처음 설치되었다.19) 그러나 1년도 채 사용하지 않고 자혜의 원은 봉수당을 중심으로 한 행궁영역으로 이전하였다.
이 후 <그림 14> 1917년 지도와 <그림 15> 1936년 관광지도를 보면 화령전이 철거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화령전은 자혜의원으로 잠 시 사용된 것 외에 유일하게 철거되지 않고 다른 용도 로도 활용되지 않았다.
4. 수원 관아건축의 훼손과정
16) 『東亞日報』 1935.05.03 17) 『每日申報』1938.08.04 18) 『每日申報』1938.10.09
19) 한동민, 『수원을 걷는다, 근대수원 읽기』, 수원박물관, 282∼
284쪽, 비록 수원자혜의원이 들어서기 전 정조의 어진이 서울로 옮 겨졌으나 비어져있던 진전을 사용하기에는 민심의 동요가 큰 영향 을 끼쳤고, 이에 정전은 두고 부속건물을 병원 건물로 사용하였다.
수원화성의 관아건축의 훼손과정을 살펴보면 가장 먼저 용도변경이 일어난 것은 수원군청이다. 수원군청 은 낙남헌과 노래당 건물을 활용하였다. 1900년대는 강무당이 법원으로, 이아는 수비대 의무실로. 중영은
구 분
번 호
건물 명칭
건물
용도 변경된 용도 철거시기
행 궁 중 심 영 역
①
봉수당 화성행궁 정전
수원 자혜의원
1923년 본관 개축으로 일부 철거 1930년대 완전철거 장락당 혜경궁
처소 경룡관 장락당
누문 유여택 화성유수
거처 복내당 관아의
안채
표 3. 수원화성 관아건축의 건물용도 변화와 철거시기
낙남헌 행사공간
수원군청 토목관구 수원세무서
수원도서관 철거되지 않고 건물 활용 노래당 휴식공간
수원군청 토목관구 수원세무서 수원도서관 득중정 활쏘는
사정
수원 자혜의원
1923일부철거 1930년대 완전 철거
신풍루 행궁정문 좌익문 행궁
중삼문 중양문 행궁
내삼문
행 정 영 역
②
외정리 소
제반사항 처리공간 비장청 하급관리
공간 서리청 문서관련
서리공간
③ 집사청 기타사무 공간
군 사 영 역
④ 남군영
장용외영 친군위 입직숙위
수 원 헌 병 대
→ 수 원 토 목 관구
1932년 토목관 구 신축이전으 로
완전 철거
⑤ 북군영 수원
경찰서
1910년 경찰서 개축으로 완전철거
⑥ 강무당 군사무예 연마
수 원 지 방 법 원 → 수 리 조 합
1 9 2 0 - 1 9 3 6 년 사이 수리조합 신축으로 완전 철거
⑦ 중영 중군
관할청
수비대 → 다 카 노 야 마 국 민 학 당 → 수원군청
1938년 수원군 청 신축이전으 로
완전철거
기 타 영 역
⑧ 우화관 화성유수 부 객사
수 원 공 립 보 통학교
1 9 2 3 - 1 9 2 9 년 사이 교사신축 으로 완전철거
⑨ 화령전 어진봉안 각
수 원 자 혜 의 원(1910 - 1911)
철거 되지 않 음
⑩ 이아 수원판관 주재관청
수 비 대 의 무 실 → 수 원 지 방법원
1920년 수원지 방법원 신축이 전으로 완전철 거
수비대로 북군영은 경찰서, 남군영은 헌병파견소로 사 용하였다. 1910년대에는 경찰서를 개축하면서 북군영 이 관아건축물로 처음 완전 철거되었다. 화령전이 1910년부터 1여 년간 잠시 수원자혜의원으로 사용되었 고 1911년부터 행궁건물이 수원자혜의원으로 바뀌었 다. 행궁건물들을 용도에 맞게 수선하여 사용하였다.
1910년대는 경찰서로 사용 된 북군영을 제외하고는 관 아건축물이 용도에 맞게 수선되었다. 1920년대부터 본 격적으로 관아건축물을 철거하였다. 1920년에 이아가 수원지방법원 신청사를 지으면서 철거되었고, 수원공 립보통학교 교사건물을 지으면서 우화관도 철거되었 다. 1923년 수원자혜의원 신본관이 건립되면서 일부 행궁건물을 남기고 대부분 철거되었다. 수비대로 사용 하던 중영건물은 다카야마 국민학당으로 사용하면서 중영의 일부 건물을 철거하였다. 1930년대는 대부분의 관아건축물이 철거되는 시기이다. 수원군청과 낙남헌 을 같이 사용했던 토목관구가 1932년 남군영 위치로 신축이전하면서 남군영은 완전 철거되었다. 1920년대 철거여부를 정확히 알 수 없는 강무당도 1930년대에는 그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채 수리조합이 들어선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중영은 1938년 수원군청이 신축이전 하면서 완전히 철거되었다. 수원자혜의원은 1930년대 일부 남아있었던 행궁건물이 완전히 철거되었다. 1940 년대는 더 이상 철거되는 건물은 없고 수원군청의 신 축이전으로 비었던 낙남헌이 도서관으로 개조되었다.
정리해보면 1900년대와 1910년대에는 관아건축물의 용도변화만 일어났다. 그러나 1910년 경찰서 개축으로 북군영이 완전히 철거되는 것을 시작으로 1920년대에 는 이아, 우화관이 완전철거 되었고, 중영과 행궁중심 영역은 일부가 철거되었다. 1930년대 들어서는 수원군 청으로 사용되었던 낙남헌과 화령전을 제외하고는 관 아건축물이 모두 철거되었다. 1940년대는 더 이상 철 거가 된 관아건축물이 없었다.
5. 맺음말
본 연구에서는 수원화성의 관아건축이 일제강점기 를 거치면서 철거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관아건축을 행궁중심영역, 낙남헌, 남군영, 북군영, 강무당, 중영, 우화관, 화령전, 이아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관아건축 물은 일제강점기가 되면서 일본의 필요에 따라 용도를 변경하여 사용하였다.
가장 먼저 용도변경이 이루어진 낙남헌은 구한말에 수원군청으로 바뀌었고 일제강점기에도 계속해서 수원
군청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낙남헌은 해방까지 철거 되지 않고 남아있었던 유일한 관아건축물이었다. 가장 먼저 철거된 관아건축은 북군영이다. 1907년에 북군영 자리에 경찰서가 들어섰고 1910년경에 북군영을 철거 하고 경찰서 신축공사를 하였다. 1900년대, 1910년대는 관아건축의 용도변화가 주를 이루었으나 1920년대부터 는 관아건축이 본격적으로 철거되기 시작하여 1930년 대 낙남헌과 화령전을 제외하고는 모든 관아건축이 철 거되었다.
조선왕조의 몰락과 식민지국가체제로의 전환은 도 시공간구조와 기능을 변모시켰다. 기존 조선왕조에서 사용하였던 관아건축물들은 그 기능을 상실하고 식민 국가체제하의 사회기반시설(병원, 학교, 군청, 경찰서, 법원, 세무서, 토목관구, 도서관 등)로 활용하였다. 하 지만 정조의 위패와 어진이 모셔져 있던 화령전은 신 성시되었던 중요한 장소로 식민국가체제로 전향되었다 고 할지라도 민심이 이반되고 관리의 어려움으로 빈 공간으로 방치되어 몰락한 조선왕조의 처량한 뒷모습 의 상징공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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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theme.archives.go.kr/next/place/viewMain.do 24.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http://db.history.go.kr/
25. 대한민국신문 아카이브 : http://www.nl.go.kr/newspaper/
접수(2020. 05. 13) 수정(1차: 2020. 10. 17) 게재확정(2020. 10.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