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3호 2020 May
장면 #1: 1779년 어느 날 영국 안스테이(Anstey)라는 소도시에서 네드 러드(Ned Ludd) 라는 직조공이 두 개의 직조기 틀을 부숴버렸다. 동네 청년들에게 조롱당한 후 홧김에 그랬다고도 하고 다른 이유 때문이라고도 했지만 정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 로부터 30여 년이 흐른 후인 1811년에 노팅엄(Nottingham)에서는 루들람(Ludlam)이 라는 젊은이가 망치로 직조기를 때려 부숴 쓰레기 더미로 만들어버렸다. 그 후 직조기 파괴자들은 조직화되어 활동했다. 베일 속에서 이 운동을 이끈 지도자는 킹 러드(King Ludd) 또는 러드 대장(Captain Ludd)을 자처하며 편지와 선언에 ‘Ned Ludd’라는 서 명을 사용하였다. 최초의 직조기 파괴자였던 네드 러드와 달리 이들 조직화된 직조기 파괴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의 행동 동기 중 한 가지 이유는 분명했다. 증기기관 하나가 수백 명의 사람을 실업자로 만들고 기계가 새롭게 개선될 때마다 가정의 생계를 책임질 사람들의 일자리가 강탈되는 현실에 절망한 사람들이 가담자 중에서 핵심적인 구성원 이었다.
장면 #2: 한동안 중국에서 화장지 원료 공급이 어려울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마스크 와 동일한 원료로 휴지가 만들어지니 공장에서 휴지 대신에 마스크를 생산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는 그럴듯한 설명도 함께였다. 하지만 이것은 가짜뉴스였다. 한 일본인이 진위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채 그 내용을 트윗에 올렸다. 일본에서는 화장지 대란이 일어났다.
이를 시작으로 전 세계적으로 화장지 사재기가 시작되었다. 그와 더불어 통조림, 냉동식 품 등 간편식의 사재기도 함께 일어났다. 휴지와 통조림을 싹쓸이해버려 텅 빈 마트 진열 대 사진과 고객끼리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는 사진도 인터넷에 올라왔다. 21세기도 20년 이 지난 시점의 3월에 일어난 일이었다.
두 가지 일화가 시사하는 바 중 하나는 이렇다. 계기야 어떠하든 갈등은 일군의 집단이 기회를 박탈 당하고 대안을 갖지 못할 때 생겨난다는 것이다. 물론 갈등이 일어나는 때가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갈등은 불평등이 심각할 때에도 일어날 수 있고 경쟁의 규칙이 불
갈등은 어떻게 생겨나는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노동시장 변화와 사회갈등
허재준 |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mail protected])
공정할 때에도 일어난다. 기득권과 미래의 헤게모니가 타협하지 못할 때도 생겨난다. 공 동이해를 갖더라도 이해를 타협하지 못할 때에도 생긴다.
여기서는 지면이 한정되어 있으므로 논의를 일자리 혹은 일자리 기회의 축소 가능성과 소득불평등에 한정하기로 하자. 만일 노동시장의 일자리 창출력이 제약되면 줄어든 일자 리라는 파이를 둘러싸고 갈등이 커질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기술의 확 산은 어떤 갈등을 내포하고 있을까?
4차 산업혁명 기술이 확산되면 일자리가 줄어들까? 역사적 증거를 보든, 국가 간 비교를 해보든 기술 발달로 일자리 자체가 줄어드는 것 같지는 않다. 특정 기업에서 4차 산업혁 명 기술을 채택하여 같은 매출을 적은 인원으로 올릴 수 있게 되었다는 보고나 사실 확인 은 많다. 그러나 경제 전체의 취업자 수가 줄어들었다는 보고는 없다. 4차 산업혁명 기술 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때는 아무리 올려 잡아도 2010년대의 일이다. OECD 국가들을 대 상으로 고찰할 때 2010년대에 고용이 줄어든 나라는 있다. 그러나 경제 운용을 잘못한 남 유럽 국가들이나 스마트폰 시대에 노키아가 경쟁에서 뒤지게 된 탓에 경제 상황이 급격 히 악화된 핀란드와 같은 나라의 일이었을 뿐, 4차 산업혁명 기술을 과도하게 도입해서 고용이 줄어든 나라는 없다.
19세기 이래 세 차례의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나타나는 장기간의 일자리 변화를 살펴봐 도 미국과 영국에서 그 시기에 일자리가 줄어들었다는 증거를 찾을 수는 없다. 미국에서 는 1820년에 288만 개에 불과하던 일자리가 2019년에는 1억 5700만 개 이상으로 늘었다.
4차 산업혁명 기술의 확산으로 일자리가 줄어들까?
<그림 1> 고용률과 2, 3, 4차 산업혁명(미국)
주: 여기서 고용률은 전체 인구 대비 취업자수 비율로 정의되었음.
자료: https://www.census.gov/library/publications/1949/compendia/hist_stats_1789-1945.html; https://www.census.gov/library/publications/1975/compendia/
hist_stats_colonial-1970.html; https://www.bls.gov/cps/tables.htm#empstat; https://fred.stlouisfed.org/series/POPTHM (2020년 5월 5일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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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는 1855년에 1125만 개에 불과하던 일자리가 2019년에는 3280만 개로 늘어났다.
신기술 도입으로 생산성이 향상되면 같은 양의 물건을 만드는 데 더 적은 수의 사람이 필요한 건 맞다. 하지만 증가한 생산성을 기반으로 그동안 충족되지 못했던 인간의 욕구 를 충족시키는 새로운 상품을 생산하는 기업가가 나타나고, 새로운 상품을 생산하는 기 업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공급하게 된다. 그로 인해 과거보다 더 많은 일자리가 생겨난다 는 사실을 <그림 1>과 <그림 2>는 보여주고 있다.
일자리의 절대 수는 줄어들지 않더라도 일자리가 생성되는 속도는 줄어드는 게 아닐까?
2010년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OECD 35개국의 노동시장 성과를 비교해보면 4차 산업혁 명 기술 확산기라고 볼 2010년 이후에 고용증가율이 감소한 국가가 26개국이나 된다.
이를 보면 4차 산업혁명 확산기에 일자리 창출력 둔화가 상당히 일반적인 현상인 것처 럼 보인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 기술 도입이 일자리 창출력을 줄이고 있다면 생산성 향 상 현상도 함께 관찰되어야 한다. OECD 35개국 중 2010년 이전에 비해 그 이후 생산성 이 증가하고 고용이 감소한 국가는 캐나다, 아일랜드의 2개국이 전부로서 이는 일반적인 현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소득불평등은 일자리를 가진 사람과 갖지 못한 사람 사이의 차이로부터도 생기지만 일자 리를 갖고 있는 사람 사이의 소득이나 부의 차이가 심할 때에도 생긴다. 자본주의 아래 에서 불평등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마르크스의 고전적 주장은 21세기에 토마 피케티에 의해 「21세기 자본론」으로 부활했다.
주: 여기서 고용률은 전체 인구 대비 취업자 수 비율로 정의되었음.
자료: https://www.bankofengland.co.uk/statistics/research-datasets; https://www.ons.gov.uk/employmentandlabourmarket/peopleinwork/
employmentandemployeetypes/timeseries/lf2k/lms (2020년 5월 5일 검색).
<그림 2> 고용률과 2, 3, 4차 산업혁명(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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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은 일자리 증가율을 줄이는 방식으로 일자리 기회를 제약할까?
4차 산업혁명
기술 확산은
소득불평등을
심화시킬까?
피케티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자본주의 시대에 자본의 평균수익률(이윤 혹은 이자)은 항상 성장률보다 높았다. 자본을 운용하는 사람이 바뀌더라도, 즉 창의적 기업가가 아닌 유산상속인으로 바뀌더라도, 그리고 금, 채권, 부동산, 투자 포트폴리오가 어떻든 대체 적으로 자본의 평균수익률은 5% 내외를 유지하였다. 반면 경제의 평균성장률은 인류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 0%에 가까웠다. 1~2%를 유지한 기간도 예외적으로 지난 두 세기 동안에만 확인될 뿐이다. 혁명이 일어났던 시기를 제외하면 노동으로 생계를 꾸리는 사람이 바꿀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그러므로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축적된 재산 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하고 노동소득만 있는 사람 사이의 격차는 커지고 불평등은 심화된다.
부모를 잘 만나 상속받은 재산이 있고 그래서 그 재산 관리를 잘하는 선택권을 갖지 못했다면, 개인적인 선택은 저축을 해서 부를 축적하는 것이다. 하지만 임금은 항상 먹 고살 만큼만 주어진다. 주거비, 식료품비, 의료비, 전기수도요금, 보육비, 등록금 등 지출해야 할 돈은 항상 많다. 그러므로 초기의 불평등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과연 그럴까?
경제발전 초기에 소득불평등이 증가하다가 일정 단계 이후에는 감소하는 현상을 사이 먼 쿠즈네츠(Simon Kuznets)가 60년 전에 발견한 후 경제학자들은 이 관계를 ‘쿠즈네츠
<그림 3> 최상위소득자 1%의 소득 비중
자료: https://wid.world/world/; https://sites.google.com/site/hminki00/ (2020년 5월 5일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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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쿠즈네츠 곡선
Share of Income Going to the Top 1%
오스트리아 프랑스 독일 일본 스웨덴 영국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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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선’이라고 부르고 있다. 주요국의 상위소득자 1%의 소득 비중 추이를 최근 100년 이상 의 장기간에 걸쳐 관찰하면 쿠즈네츠가 확인한 바와는 달리 오히려 U자 형태가 두드러진 다. 이를 ‘피케티 곡선’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Piketty(2013)는 역U자가 아닌 제대로 된 U자 형태의 소득불평등도 추이를 제시하며 경제발전과 소득불평등에 관한 쿠즈네츠 곡 선에 강한 의구심을 제기한 셈이다.
하지만 피케티 곡선에서 1970~1980년대 이전과 이후를 분리해서 보면 하나의 역U자 곡선이 끝나고 새로운 역U자 곡선이 시작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피케티 곡선이 쿠즈네 츠 곡선과 상충된다기보다 서로 다른 시기를 고찰하는 데 따른 해석의 차이일 뿐인 것이 다. 1, 2차 산업혁명 시대부터 시작되어 소득불평등이 심화되다가 20세기 초부터 완화되 던 소득불평등이 다시 3, 4차 산업혁명기인 1970~1980년 이후로부터 다시 악화되기 시 작하는 모습으로 볼 수 있다(허재준 2019). 1, 2차 산업혁명기가 증기기관과 전기라는 범 용기술의 영향으로 거대한 사회변화를 일으켰고, 3, 4차 산업혁명기에는 디지털 기술이 라는 범용기술이 다시 거대한 사회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앞에서 일자리와 소득분배에 관해 고찰한 두 가지 사실이 확인하는 바를 요약하면 다음 과 같다.
첫째, 일자리 증가율은 많은 나라에서 2010년 이후 둔화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기술 확산의 영향으로 보는 견해가 있지만 생산성 증가율까지 고려하면 그것은 부적절하다.
둘째, 소득분배 상황도 1970~1980년 이후 악화되고 있다. 새로운 범용기술 확산 초기 에 불평등이 확산된다고 판단되는데 과거의 경험에 의하면 일정 시기 이후에는 소득분배 상황이 다시 개선되리라고 볼 이유가 있다.
이러한 고찰이 시사하는 점 중의 하나는 4차 산업혁명 확산의 영향을 가늠하려면 한두 세대를 넘는 100년 이상의 시간 지평 속에서 고찰하고 판단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 아가 비록 4차 산업혁명 기술의 확산이 일자리 기회를 제약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지만, 일자리 기회가 과거보다 제약되고 있는 시기와 확산 시기가 맞물려 있다는 사실만으로 4차 산업혁명의 진전이 일자리 기회를 제약한다고 간주하고, 이와 더불어 소득불평등을 악화 시키는 방향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간주하더라도 그것은 항구적이라기보다는 잠정 적 현상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4차 산업혁명이 그 자체로 갈등을 일으키는 요인이라고 보는 것은 부적절하 다. 반면 4차 산업혁명의 전개가 낳은 급속한 노동시장 변화가 사회갈등을 유발할 가능 성은 여러모로 충분하다. 그렇다고 갈등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아니며 발생하더 라도 그 경로 또한 다양하다. 이해관계자들이 어떻게 대응하고, 사회제도가 얼마나 유연 성을 갖고 적응하는지에 달려있다. 그에 따라서 갈등으로 연결될 수도 있고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4차 산업혁명은
갈등과 아무런
관계가 없을까?
허재준. 2019. AI와 노동의 미래: 우려와 이론과 사실. 한국경제포럼 제12권 제3호: 59-92.
홍민기. 2015. 최상위 소득비중의 장기추세. 경제발전연구 제21권 제4호: 1-34. https://sites.google.com/site/hminki00 (2020년 5월 5일 검색).
Bank of England. A millennium of macroeconomic data, Version 3.1. https://www.bankofengland.co.uk/statistics/
research-datasets (2020년 5월 5일 검색).
Federal Reserve Bank of St. Louis. Population(POPTHM). https://fred.stlouisfed.org/series/POPTHM (2020년 5월 5 일 검색).
Office for National Statistics. Labor Force Statistics. https://www.ons.gov.uk/employmentandlabourmarket/
peopleinwork/employmentandemployeetypes/timeseries/lf2k/lms (2020년 5월 5일 검색).
Piketty, T. 2013. Le capital au XXI si cle. Paris: Editions du Seuil.
United States Census Bureau. 1949. Historical Statistics of the United States, 1789~1957. https://www.census.g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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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___. 1975. Historical Statistics of the United States, Colonial Times to 1970. https://www.census.gov/library/
publications/1975/compendia/hist_stats_colonial-1970.html (2020년 5월 5일 검색).
U. S. Bureau of Labor Statistics. Labor Force Statistics. https://www.bls.gov/cps/tables.htm#empstat (2020년 5월 5일 검색).
World Inequality Database. https://wid.world/world/ (2020년 5월 5일 검색).
참고문헌
4차 산업혁명 기술이 제공하는 여러 가지 사업 가능성 속에서 어떤 기업가에게는 과거 의 경쟁규범이 불공정한 규범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옛날 규범 순응자와 미래 규범 주장자 간에 갈등을 낳을 수 있다. 최근 전통적 택시회사 및 기사와 ‘타다’ 간에 벌 어진 갈등이 그 대표적 예이다. 우리는 겨우 택시운전사와 타다를 만든 기업가 사이의 갈 등을 보는 정도였지만, 변호사와 인공지능 법률자문회사, 의사와 원격진료 의료컨설팅사 사이에 갈등이 생기지 말란 법도 없다.
기술만으로 갈등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기술이 제공하는 변화의 전기(轉機)에 사회적 요소가 결합할 때 갈등이 일어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