碩 士 學 位 論 文
한 국 정 당 민 주 화 에 관 한 연 구
國 民 大 學 校 政 治 大 學 院
선 거 공 학 전 공
임 재 용
2000
한 국 정 당 민 주 화 에 관 한 연 구
指 導 敎 授 윤 영 오
이 論 文 을 碩 士 學 位 請 求 論 文 으 로 提 出 함
2000年 6月 日
國 民 大 學 校 政 治 大 學 院
선 거 공 학 전 공
임 재 용
2000
임 재 용 의
碩 士 學 位 請 求 論 文 을 認 准 함
2000年 6月 日
審 査 委 員 長 審 査 委 員 審 査 委 員
國 民 大 學 校 政 治 大 學 院
목 차
제 1 장 서 론 ・・・・・・・・・・・・・・・・・・・・・・・ 1
제 1 절 연구 목적 ・・・・・・・・・・・・・・・・・・・・・・ 1 제 2 절 연구 방법 ・・・・・・・・・・・・・・・・・・・・・・ 3
제 2 장 한 국 정 당 민 주 화 의 역 사 적 고 찰 ・・・・・・・・・・・ 5 제 1 절 한국 정당의 기원 ・・・・・・・・・・・・・・・・・・・ 5 제 2 절 제 1공화국 시대의 정당 ・・・・・・・・・・・・・・・・ 7 제 3 절 제 2공화국 시대의 정당 ・・・・・・・・・・・・・・・・ 11 제 4 절 제 3공화국 시대의 정당 ・・・・・・・・・・・・・・・・ 14 제 5 절 제 4공화국 시대의 정당 ・・・・・・・・・・・・・・・・ 18 제 6 절 제 5공화국 시대의 정당 ・・・・・・・・・・・・・・・・ 21 제 7 절 제 6공화국 시대의 정당 ・・・・・・・・・・・・・・・・ 26 제 8 절 문민정부 시대의 정당 ・・・・・・・・・・・・・・・・・ 29
제 3 장 정 당 민 주 화 에 대 한 이 론 적 고 찰 ・・・・・・・・・・・ 33 제 1 절 정당민주화의 의미 ・・・・・・・・・・・・・・・・・・ 33 제 2 절 정당민주화에 대한 이론적 전제 ・・・・・・・・・・・・ 35 1. 개방성 ・・・・・・・・・・・・・・・・・・・・・・・・・ 35 2. 공정성 ・・・・・・・・・・・・・・・・・・・・・・・・・ 36 3. 경쟁성 ・・・・・・・・・・・・・・・・・・・・・・・・・ 38 4. 자율성 ・・・・・・・・・・・・・・・・・・・・・・・・・ 40
제 4 장 정 당 민 주 화 개 혁 방 안 ・・・・・・・・・・・・・・・・・ 43 제 1 절 개방성 강화 방안 ・・・・・・・・・・・・・・・・・・・ 43 1. 정당의 성립요건 완화 ・・・・・・・・・・・・・・・・・・・ 43 2. 당원의 비밀투표에 의한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 ・・・・・・・・・ 44 3. 당직자의 선출방식의 개선 ・・・・・・・・・・・・・・・・・ 45 4. 당비납부자나 자원봉사자에 한해 선거권과 피선거권 부여 ・・・・ 46 5. 당비의 대리납부 금지 ・・・・・・・・・・・・・・・・・・・ 47 6. 당원이 될 수 있는 자의 범위 확대 ・・・・・・・・・・・・・・ 48
제 2 절 공정성 강화 방안 ・・・・・・・・・・・・・・・・・・ 50 1. 지방당의 기부행위 상시 제한 ・・・・・・・・・・・・・・・・ 50 2. 소액다수의 당비납부 제도화 ・・・・・・・・・・・・・・・・ 51 3. 대통령선거 후보자 등의 정치자금 모금 허용 ・・・・・・・・・・ 51 4. 정치자금 수입・지출의 투명성 확보 ・・・・・・・・・・・・・ 53 5. 음성적인 정치자금 수수의 차단 ・・・・・・・・・・・・・・・ 55 제 3 절 경쟁성 강화 방안 ・・・・・・・・・・・・・・・・・・・ 56 1. 지구당폐지 및 자치구・시・군 단위의 지방당 체제로 개편 ・・・・ 56 2. 지구당 공동대표제 도입 ・・・・・・・・・・・・・・・・・・ 57 3. 공직자의 당직・겸직 제한 ・・・・・・・・・・・・・・・・ 57 제 4 절 자율성 강화 방안 ・・・・・・・・・・・・・・・・・・ 59 1. 정당의 유급상근직원수 제한 ・・・・・・・・・・・・・・・・ 59 2. 당원 총의가 반영된 대의기관의 구성 ・・・・・・・・・・・・ 60 3. 정당의 정책 연구개발 기능의 강화 ・・・・・・・・・・・・・・ 61 4. 정당의 정책 활동내용의 공개 ・・・・・・・・・・・・・・・・ 61 5. 제도화된 권력구조 강화 ・・・・・・・・・・・・・・・・・・ 62
제 5 장 결 론 ・・・・・・・・・・・・・・・・・・・・・・・ 65
참 고 문 헌 ・・・・・・・・・・・・・・・・・・・・・・・・・ 69
제 1 장 서 론
제 1절 연 구 목 적
오늘날 세계는 교통 통신수단의 발달로 인해 국제화, 개방화가 급속도로 전개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조직된 전산망은 모든 나라의 신경조직과 같이 퍼져 있어 세계도처의 일을 안방에서도 처리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최첨단 산업의 발달은 사람들의 의식을 증대시켰고 증진된 인식은 인간의 자유와 정치의식도 높아져 자유와 민주화에 대한 열망도 다양해졌다. 따라서 형식적이든 실제적이든 현대의 대부분국가의 정치는 민주주의 시장경제원리 를 채택하게 되고 민주정치의 기본 조건으로 국민주권, 정치의 정통성, 정당 정치, 평화적 정권교체, 국민의 정치의식 등이 요구되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정당의 민주화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기본적인 훈련이 필요하고 국민들이 정치에 익숙해져야 하며 그들의 정치적 의사를 대변하는 조직화된 정당이 필요하게 되고 그러한 정당은 민주화된 정당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정당은 서구정치의 근대화 과정에서 생성되었고 그에 대한 이 론은 서구의 정당현상을 중심으로 체계화되었다. 따라서, 한국의 현실에서 쉽게 적용되기는 어렵다. 더구나 한국의 현실이 타의에 의한 민족해방과 분 단, 동족간의 좌・우익 대립 등으로 이질화되었고 정치적 현상은 독재와 혁 명의 악순환으로 일관되는 과정에서 정치체제의 권위주의적인 속성이 강화
되었기 때문에 한국의 정치가 아직 민주주의 정치질서의 제도로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정당정치가 제도화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당 민 주화 가 필수적인 사항이다.
왜 정당의 민주화가 요청되고 강조되어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민주주의 의 윤리적, 정치적 우위성과 안정성을 확신하고 정당정치를 통해서 자유민주 주의 목표를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현대 한국의 민주정치에서 문 제가 되고 있는 집권당의 계속적인 권력유지 및 집권승계와 반대 정당의 견 제를 위해 행정정보의 통제, 야당육성의 제한 및 분열공작, 선거제도에 있어 서 집권자와 집권당에게 유리한 법 제정 및 집행, 정당자금의 대량살포와 관 권선거의 횡포 등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당민주화기 필요하다. 그 이유는 정당간의 경쟁체제가 구축되고 1인 보스체제가 종식되어 정당구성원 들의 자율성이 보장될 때 정치의 정상화가 이루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 시 말해, 정당민주화의 실현은 한국 정당정치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 하는 첩경이 될 것이다.
본 논문의 목적은 한국 정당의 민주화에 대한 고찰과 개혁 방안을 제시하 는 데 있다. 구체적으로, 본 논문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해 고찰하려고 한 다. 첫째, 정당 민주화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둘째, 정당 민주화를 이루기 위 한 전제조건은 무엇인가? 셋째, 한국의 정당 민주화를 위한 개혁방안은 무엇 인가? 넷째, 한국 정당정치에서 정당민주화에 대한 전망은 어떠한가? 이다.
제 2절 연 구 방 법
오늘날 정당은 민주주의 발달과 함께 발전한 헌법상 조직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는 정당정치로 귀결된다1)고 하는 것은 한국 정치에서도 그대로 성 립되고 있다. 그것은 한국이 정당정치를 시작한지 45년이 넘었고 정치적 혼 란 속에서도 그런 대로 명맥을 유지하고 헌법조항이나 정당법에 규정을 두 어 정당정치를 표방하여 보호하고 있으며 공익을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 이다.
그러나 지난날의 한국 정당정치는 자유민주주의에 근거한 민주정치가 제 대로 행해지지 못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즉 정당에 대한 타당성을 충분히 알고 있음에도 정당정치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고 여러 차례의 헌 정단절과 비민주적인 형태로 정당이 운영되어온 것이 사실이다.2) 그렇다면 그 원인은 무엇일까? 본 논문에서는 제1공화국시대의 정당에서부터 현재 김 대중 정부 초기의 정당에 이르기까지 주로 집권여당과 제1야당을 중심으로 정치적 왜곡과 비민주적인 관행들이 형성되어 지금까지 답습되고 있는 정당 의 비민주성에 대한 요인을 분석한다. 이를 위해서 정당과 정당개혁과 관련 된 문헌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통하여 정당민주화에 대한 대안을 제 시한다. 다만, 본 연구에서는 실증적인 자료를 통해서 한국 정당의 민주화에 대해서 논하는 것이 아니라 서술적(d escriptive) 방식을 통해 한국 정당 민주 화를 고찰하고 55년간의 한국 정당정치 기간 동안 실제로 이루어 졌던 정당 민주화에 대하여 고찰한다.
또한, 본 연구는 비교・분석적 시각(comp arative p ersp ective)에서 한국 정 당의 민주화를 연구한다. 즉, 한국 정당과 선진 민주주의를 구현하고 있는
1) M aclver , R. M . 1958, Th e Web of Gov ern m en t, N ew Yor k : M acm illan Co . p .208.
2) 길승흠외, 『한국선거론』,(서울 : 다산출판사, 1987), 147쪽.
나라들의 정당과의 비교・분석을 통해 정당 민주화를 위해 필요한 사항에 대하여 논의한다.
본 논문은 다섯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2장에서는 한국 정당 민주화의 역사적 고찰에 대하여 논의한다. 즉, 한국 정당의 역사적 고찰을 통하여 민 주화의 의미와 논리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느냐에 대해서 논의하고, 이 를 바탕으로 정당민주화에 대한 명확한 개념을 도출한다.
제3장에서는 정당민주화에 대해 이론적 고찰을 한다. 우선, 민주적인 정당 체계의 형성 요인으로 정당의 조직, 운영 및 자금에 대해서 고찰하고, 정당 민주화의 필수요건으로 정당의 개방성, 공정성, 경쟁성, 자율성에 대해 논의 한다.
제4장에서는 한국 정당의 민주화를 위한 구체적인 개혁 방안에 대해 고찰 한다. 정당법과 정치자금법의 개혁을 중심으로 정당민주화 방안에 대해 논의 한다.
제5장에서는 본 논문에서 고찰했던 정당민주화 에 대해서 간략하게 요약 하고, 향후 한국 정당정치에서 정당민주화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에 대하여 전망한다. 그리고, 한국 정당의 민주화 연구가 체계적이고 실증적으로 이루 어지기 위해서 필요한 사항이 무엇인지에 대해 논의한다.
제 2장 한 국 정 당 민 주 화 의 역 사 적 고 찰
제 1절 한 국 정 당 의 기 원
한국정당의 발전은 조선시대 후기의 사대당과 개화당에서부터 1894년 동 학혁명과 갑오경장을 통한 정치과정을 한국정당의 시작으로 보는 학자도 있 고3) 일제시대의 독립운동단체부터라고 보는 학자도 있다.4) 그러나 한말이나 일제시대의 독립운동단체는 일반적인 정당의 구성요소나 활동이 부분적인 것으로 현대정당과는 그 개념상 차이가 있다. 일제말기 공산당이나 해외에서 활약한 한국 독립당이나 조선민족 혁명당은 민족해방과 사회제도에 관해 철 저한 신념을 가졌을 지라도 자유권적 기본권보장과 의회제도의 기본바탕을 갖추지 못했고 국민대중과의 접촉을 차단 당한 상태였기 때문에 정상적인 정당발생과정을 밟은 것이라고 볼 수 없다.
한국정당의 발생과정은 일부 계층의 집단적인 의사표현을 위한 일시적인 단체로서 그 목적은 정권에 있지를 못하였다. 때문에 어느 정도의 정당형식 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서구식 민주주의 도입으로 자유권의 보장과 의회제 도의 정당정치가 국민 속에 면모를 차지하게 된 정당이 생겨나기 시작하면 서부터다. 즉, 미군정시대(1945~1948)던 1946년 11월 23일에 발표된 미군정 법령 제55호 정당에 관한 규칙 에서 시작되고 있다. 이것은 그 당시 극좌에 서 극우에 이르기까지 많은 정당과 정파들이 난립하여 빚어낸 혼란을 개선 하려는 의도에서 미군정에 의해 의도적으로 취해진 조치로 일반시민들에게
3) 김민하, 『한국정당정치론』,(서울 : 대왕사, 1983), 12쪽.
4) 조일문, 『새정당론』,(서울 : 삼화출판사, 1971), 113쪽.
최초로 정치활동을 인정하게 되는 한국의 정치발전에 획기적인 사건이었으 며 이와 같은 조치에서 근대적인 의미의 정당이 발생하게 된 것이 한국 정 당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미군정이 폐지되고 정부수립을 보게 됨에 따라 1948년 제정된 한국 헌법에 정당의 보호나 규제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어 국회의원이 있는 정당 은 국회법에 의해 원내교섭단체로서의 위치가 일을 뿐이었다.5) 특히 정국의 혼란과 지역적 취약성은 내적인 요인뿐만 아니라 주변국의 세력관계에 따른 외적요인도 중요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으므로 한국의 정당들이 단순히 환경 적, 지역적 세력에 대한 공백을 메우기 위한 인물중심의 정당이 되었다. 인 물이 중심이 된 정당은 다분히 주요인물이나 유명인사의 의사에 따라 이합 집산이 빈번하였고 권위주의적이며 폐쇄성을 더욱 가중 시켰다 더구나 정강 정책의 수립이나 결정과정에 있어서도 비현실적이고 비민주적인 성격을 벗 어나지 못하고 단지 정당설립을 위한 요건에만 충족할 뿐 그 실현가능성이 희박하였다. 이처럼 불완전한 정당의 생성은 식민지체제부터의 탈피와 정치 적 활동의 자유에 따른 개방에서 비롯되었고 이는 경쟁적이고 편협적인 체 제의 정당 존집상황이 되었으며 각 당간의 이질 혼합적인 체제는 정당의 활 동을 저해하였다. 이러한 풍토는 정당이 스스로 불안한 정치상황을 제공하게 되었고 이를 조성한 주체이기도 하며 정치상황의 산물이 되기도 하였다.6)
5) 중앙선거관리위원회,『대한민국정당사』,(서울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1983), 179쪽.
제 2절 제 1공 화 국 시 대 의 정 당
1948년 5월 10일 제헌국회를 구성하기 위해 실시된 총선은 단정노선을 지 지하던 우익 친미세력과 단정수립반대를 내걸고 선거참여를 거부하는 우익 민족주의 세력, 선거에 불참과 좌익친소세력의 총선 참여가 금지됨으로 인해 우익친미세력인 많은 정당과 단체들의 후보들이 나섬으로써 정당난립현상을 보였다. 이중 10명 이상의 당선자를 낸 정당 단체들의 수는 3개였고 의석수 198석 중 무소속은 85석을 얻었으며 나머지는 군소 정당들이 한・두명씩 얻 었을 뿐이다.7) 여기에서 특히 무소속이 압도적인 것은 정당에 대한 국민들 인식이나 지지기반이 약하였고 정당이 제대로 조직화되지 못했음을 의미한 다고 본다. 그리고 많은 당선자를 낸 대부분의 정당과 단체들이 이승만의 지 지세력으로 이념이나 정당정책을 내세우는 선거라기 보다는 인물중심의 선 거로 치러졌다. 또한 이때에는 정당의 조직이 제도화되지 못했던 시기였다.
따라서 이승만은 당시 정치적, 환경적 측면에서 볼 때 국민방위군 사건과 거 창 양민학살사건 등으로 실정이 거듭되면서 집권정부에 반대하는 세력이 우 세하자 재선을 노리고 있던 이승만은 중대한 위협을 느껴 정당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자신의 정당을 만들게 되었다. 이때 만들어진 것이 원내의 자유당 과 원외의 자유당이었다. 이러한 두 정당은 대통령의 희망에 따라 조직되었 던 신당인 만큼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분열을 방지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승만은 분당에 대한 언급이 없고 다만 자신의 재선을 위해 유리한 쪽으로 원외 자유당을 선택하였으며 원외자유당은 기존의 사회단체들을 기 반으로 결성되었기 때문에 민의 운동을 주도하는데 적합하였다. 이는 당이 조직되어 정권획득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현직대통령의 재선을 확보하
7) 중앙선관위원회, 『대한민국선거사』,(서울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1973), 387쪽.
기 위한 도구적 장치로 관권에 의한 압력을 받게 되었다.
원외자유당은 창당된지 3개월만에 당원수가 260만 명이라고 발표하여 자 발적인 결사의 조직이 아닌 동원에 의한 관제조직임을 드러내었고 기존사회 단체의 조직과 그 회원을 그대로 흡수하여 정당을 만들었음을 보여주고 있 는 것이다. 이러한 자유당은 1953년 3월 전당대회를 전후하여 원내 외의 정 당이 완전 통합하였다. 통합된 자유당은 주요압력단체를 모두 산하 기관단체 로 삼아 초정치적인 특수조직으로 출발하여 공직에 후보자를 추천하며, 권력 추구를 위한 정권의 도구로 변절되어 갔고, 항상 자유당의 이익을 대변하고 집권자를 옹호하는 이용단체로 전략해갔다. 출발부터 정당도 압력단체도 아 닌 그 본래의 기능을 오도한 채 정치권력의 배경 아래 공존공생의 길만 추 구하는 왜곡된 정치현상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초기 자유당은 민중대회와 정치파동때처럼 하부 정당원을 행동대로 동원 할 일이 많아짐에 따라 하부조직이 강한 발언권을 행사하게 되었다. 그 이유 는 이승만이 정치적 필요에 따라 창당을 하였으면서도 당수의 위치에서 중 요한 정책방향에 대한 지시만 했을 뿐 당 조직까지 직접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 3대 국회에서는 자유당의 이기붕을 국회의장으로 선출하여 최 초의 여당출신 의장이 되었다. 국회의원도 총 203석 중 114석을 당선시켰으 면서 이승만에게 3선의 길을 내주기 위한 개헌작업을 위해 무소속의원의 포 섭에 주력한 결과 136명으로 늘어났다. 그리하여 초대 대통령의 3선제한 폐 지를 골자로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제출된 안건인 3선 개헌은 사사오 입개헌으로 통과되었고, 당총재이며 집권자인 이승만에게 당권이 집중화되었 다. 자유당의 운영은 부・차장회의 중심으로 운영되는 듯했으나 총재가 부・
차장을 직접 임명함과 국회의원 후보공천에 대한 최종정권까지 직접 행사하 는 등 당무에 깊이 관여하였다. 1957년 3월 28일 자유당은 당헌을 개정하고
당기구를 개편하였다. 즉 부・차장중심으로 운영되던 당조직은 당무위원이 운영하는 당무회로 개편하여 자유당의 실질적인 권력기관으로 막강한 권한 을 행사하였고 그때까지 유지해오던 이승만 개인정당에서 당 핵심인사를 중 심으로 하는 간부정당제와 과두화과정으로 운영되었다. 1958년 5월 2일에 실 시된 제4대 민의원 선거에서 군소 정당이 몰락하고 무소속이 퇴조하면서 자 유당과 민주당에 의한 양당체제의 형태가 나타났고 이는 오히려 민주당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당의 역사가 길고 당원수가 증가되면 거대화된 당조직을 효율적 으로 통제하기 위해 소수간부에 의한 관료적 과두지배는 불가피해지고 당조 직이 과두화가 되면 당간부들에 대한 일반당원들의 비판을 막기 위해 당규 율을 엄격히 하거나 당원에 대한 상의하달식 지도와 통솔책이 필요하게 되 고 당원들은 소수 당간부에 대한 충성심이 강조되며 파벌을 둘러싼 정실인 사가 뒤따르게 된다.
그러면 정당을 운영하기 위해서 자금이 수반하기 마련인데 제1공화국에서 뿌리를 내린 정치자금과 정치적 대형 부정과 부패의 관계는 자금 조달과정 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의 온상이었다. 이러한 금력이나 이권과 관직 이 결부된 정치적 부패는 나라의 경제를 흔드는 망국적인 일이므로 정치자 금의 전액국고보조는 반드시 이루어야 할 사명이다. 왜냐하면 제 1 공화국에 서 정치와 관련된 대표적 대형부정사건을 보면 먼저 중석불사건은 제 2대 정・부통령 선거비용을 확보하기 위해 당시 정부의 보유불 또는 중석불(은행 불)은 양곡이나 비료의 수입에 불하할 수 없음에도 일부폭리업자와 결탁하여 20만 불을 불하하여 정치자금 조달이 추진되었던 사건, 국방부 원산사건, 산 업금융채권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 1공화국시대의 정당인 자유당은 이승만의 요청에 따라 정당을 만들어
서 당은 이승만이라는 등식이 성립되었고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당이 총재 를 선출한 것이 아니라 1인 집권의 단일권력체제로 노동대중을 기반으로 조 직한다던 자유당은 국민을 외면하고 족청의 조직을 이용하였으며 이범석이 이끄는 족청이 당내에서 세력이 강화되자 족청을 제거한 뒤에는 각종기관단 체와 경찰, 관료조직, 지방행정조직 등을 동원함으로써 민주정당과는 거리가 먼 동원화방식을 택하였고 관권으로써만 조직을 운영함에 따라 정당의 조직 을 개인화 하였다. 그리하여 집권자가 몰락하면 당의 운명도 함께 하는 인물 정당이 되었고 개인정당이 되었다. 특히, 당간부의 충원 및 당지도부와 추종 자들과의 관계는 사적인 신임을 바탕으로 한 충성심에 전적으로 의존하였고 그 결과 그들에게 통치기반을 제공해주는 도구적 역할에 지나지 않으므로 써 왜곡된 정치적 유산을 현재까지도 남겨 한국의 정치과정에 걸쳐 커다란 문제점이 되었다.8)
제 3절 제 2공 화 국 시 대 의 정 당
제 2공화국시대에 있어서 여당인 민주당은 야당으로서 투쟁의 역사를 갖 고 있었고 이승만의 헌법조작에 대한 공동투쟁의 동지적 유대의식에 기초를 둔 야당세력의 연합으로 대두하게 되었다. 민주당의 기구로 의결기관적인 성 격을 가진 각종 위원회를 조직의 상부에 올려놓고 당료기관적인 성격을 가 진 각종 집행 부서들을 병렬적으로 설치하였다. 특히 중앙당기구의 상층구조 에 있는 위원회가 정당의 당무기능과 역할을 갖고 있으며 합의기관적인 성 격을 띠고 있었다.
민주당에 있어서 당헌 제 33조에 의하면 당을 대표하는 것은 대표최고위 원이나9) 대표최고위원과 최고위원간의 관계에 있어서는 당헌상 아무런 명확 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으며 최고위원회는 몇 개의 파벌지도자의 모임이라 고 할 수 있다. 민주당의 창당에서부터 시작되는 거대한 파벌연합으로서 당 의 성격은 여러 차례의 자유당과 극한적인 투쟁과정을 거쳤으나 권력구조상 의 문제점은 여전하였다.
민주당은 정치권력의 핵심부에 있으면서 경제건설과 진정한 민주정치의 실현이라는 역사적 사명을 지녔으면서도 결단력이 없고 당의 약체성으로 인 해 국민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다. 긴 야당 생활에서 민주당 엘리트들은 권력구조상의 취약성과 상승작용으로 항상 와해의 위험성을 내재하고 있었 으며 내각구성과정에서 당내 세력경쟁에서 패배한 구파가 분리하여 신민당 을 발족하면서 민주당과 신민당으로 분당되었다.
민주당의 조직은 각각 파벌들이 서로 대등한 관계에 있어 제도적인 구속 력을 지니지 못하였고 당소속 국회의원의 원내활동에 관한 사항을 관리하는
9) 중앙선거관리위원회편,『정당기구기능과 정당정책 당헌등』, (서울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1965), 147쪽.
의원부를 두며 (민주당헌 제 38조 제 2항), 핵심조직으로는 민의원선거를 단 위로 하는 당부를 두었고 (민주당헌 제 13조) 당소속 국회의원은 중앙위원회 위원 (민주당헌 제 21조 제1항)과 중앙상무위원회위원 (민주당헌 제 22조)으 로 당연히 된다고 규정하였고 당헌 제 41조에 국회의원의 원내행동에 관한 당의 의결사항은 의원부 위원회의 출석인원 3분의 2이상의 반대가 있을 때 그 구속력을 상실한다고 하였다. 위의 견지에서 당내 국회의원들의 지위는 강력하였으며 의원이 갖는 자율성의 범위가 넓어 지방분권적인 민주정당의 특징을 보였고 지방당의 보스로서 군림하였으며 모든 당부의 결합관계는 수 평적 결합을 요구하였으나 한 당부가 예하에 지부를 종속시키는 수직적 조 직으로 이루어진 결합관계로 중앙집권적인 조직이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 서는 당원의 권위 추종적 경향인 구심적 요소와 강력한 파벌적인 성격을 가 진 원심적인 요소가 동시에 작용하고 있었다.
민주당 중앙당기관의 권한에서 볼 때 중요한 기관은 민주당헌 제 19조에 명시된 중앙위원회다. 이 중앙위원회는 전당대의원회 다음가는 의결기관으로 서 당의 운영지도와 중요인사의 의결 및 제청권을 가진 최고위원회보다 기 구상 위에 있다. 직능에는 최고위원을 선거하고 위원수를 결정하고 당헌개정 안을 결정하고 전당대의원회 폐회기간 중 그 직능을 대행한다. (민주당 당헌 제 27조, 제 30조)10) 민주당의 정강은 당내 각 파벌의 대립에 의해 중앙상무 위원회나 최고위원회 수준에서 결정하지 못하고 중앙위원회의 다수결에 의 한 표결에 의해 결정한다.
이상에서 볼 때 집권당으로서 정책기구 및 업무의 규정이 너무 빈약하고 당내 파벌간의 심한 투쟁 속에서 운영되어 정책기구를 소홀히 한 점이 많았 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점에서 민주당은 대부분, 정치를 선도하지 못하였
고 국민의 반사적 지지를 결합하는 상태였으며11) 정당지도부의 지도력의 빈 곤과 부재는 총리인준에 대한 견해차이로 당내 신파와 구파의 분열은 결국 장면정부를 붕괴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11) 이영석,『야망 30년 도전과 좌절의 발자취』,(서울 : 인간, 1981), 10쪽.
제 4절 제 3공 화 국 시 대 의 정 당
군부를 권력의 중심으로 한 제 3공화국 엘리트체제는 경제발전과 정치발 전을 위한 기술적인 관점에서 시작되었다. 따라서 5・16주체세력에 의한 국 가 선점적 정치조직인 중앙정보부의 창설은 이원적 권력형태를 유지하였고 정보부창설 주역들이 민주공화당의 창설과 더불어 정당지도자로 대거 의회 로 진출하였다. 그러므로 민주공화당은 조직상 소수의 엘리트에게 권력이 집 중되는 고도의 중앙집권화된 정당이다.
공화당의 조직은 권력집중제에 의한 것으로 중앙당 사무국이 지구당 인사 관리까지 담당하였고 하향식조직이었으며 정강정책은 대중운동보다 정치지 도자들의 견해를 반영하였다. 정보부의 공화당의 조직으로 제 3공화국의 권 력기구는 효과적인 통제체제를 유지하였으나 독립된 정치세력으로서 공화당 의 위치가 흔들리고 행정기능이 강화되면서 정당정치를 통한 입법기능이 약 화되어 행정부 우위현상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행정부의 권한강화는 정당, 관료, 군부간의 조심스러운 균형유지를 통하여 이루어졌다.
박정희는 당총재와 집권자로서 경제발전과 안보를 달성하기 위하여『정치 의 축소』를 주장하였고 경제기획원의 창설과 더불어 경제개발 계획에 대한 전권을 위임하였으며 소위 군부・관료권위주의체제의 완성을 이루었다. 그러 나 이러한 체제가 당면한 시련은 정통성의 문제가 뒤따랐다. 이러한 정통성 의 문제는 정치적 기구의 구조적 개혁에 의해 경제발전을 가능케 하였고 국 민으로부터 정통성을 얻어내는데 성공하였다.
한국정당의 조직방식에서 보았을 때 당료적 구조라 할 수 있는 당사무국 기구에서 인물중심, 파벌, 야합 등을 시정하여 당의 항구성을 유지하고 원내 중심보다 당에 중심을 두고 새로운 양식의 정당정치를 구현하려 하였다.12)
민주공화당의 기구를 보면 집행기관의 경우 당총재로부터 지구당사무국에 이르기까지 단일한 수직적 명령계통으로 이루어졌고 의결기관의 경우에도 전당대회에서 지구당위원회에 이르는 수직적 분포였다. 이러한 당의 집행기 관과 의결기관은 별개의 명령계통을 지니면서 중앙, 시도, 지구당 각각의 단 계에서 상호병렬적 대칭적으로 설치되었고 중앙상임위원회와 중앙사무국 시 도지부 위원회와 시・도지부사무국, 지구당위원회와 지구당사무국을 상호대 치시켜 설치하였다. 이는 소련공산당의 독재적인 조직에서나 볼 수 있는 조 직이었다. 따라서 민주당에서는 당조직을 구성함에 있어서 의결기관과 집행 기관과의 관계는 형식적으로 병렬적, 대칭적인 것이었으나 실제로는 수직적 인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당의 민주화의 요건은 당구성원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하급당 원들의 의사를 어떻게 하면 정강정책에 효과적으로 반영하는가에 달려있다.
집행기관의 경우정당내의 지배적 소수에 의한 조종과 통제가 용이하도록 조 직하지만 의결기관의 경우는 그 본래의 기능은 민주적인 당의 형성에 있다.
여기에 소수에 의한 조정과 통제가 있다면 의결기관은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되고 민주적인 정당의 형태라면 최소한 의결기관이 집행기관에 대해 자율성 을 견지할 뿐만 아니라 의결기관이 상위에 있어야 한다.
민주공화당의 전당대회는 당헌 제 7조에 규정된 것처럼13) 구성원에 있어 서 당연직위원이 상당히 차지하고 있으며 수천 명에 달하는 대의원들로 구 성되었다. 운영면에 있어서도 당무회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당무회의는 15일 이내의 대다수 당연직위원으로, 당의장, 중앙위원회의원, 정책위원회의장, 사 무총장, 의원총회총무, 당소속 국회부의장, 당소속 무임소국무위원, 당총재가 지명한 자로 구성되었다.
12) 민주공화당,『선진교양자료집』,(서울 : 민주공화당 선전부, 1964), 15쪽.
13) 중앙선거관리위원회,『정당의 기구기능과 정강정책 단헌등』,앞의 책, 12쪽.
민주공화당 당헌 제 22조에서는 당무회의기능을 당선언 및 정강정책에서 부터 시작하여 당운영 상의 중요사항에 이르기까지 당무에 관한 전 영역을 다루었다. 기구 상으로 당무회의는 당의장에 소속하는 기관으로 당내 소수실 권자의 모임으로 실질적인 최고기관이라 할 수 있다. 의원총회는 당헌 제 32 조의 규정 외에는 특별한 규정을 두지 않고 당소속 국회의원 후보자공천에 관한 결정권은 전적으로 당무회의 의결에 일임하고 있다. 그러므로 당내의 위원의 지위는 이들 소수자에 대한 하수인으로 전략하게 된다. 의원의 지위 가 극소수 특수한 사례를 제외한다면 당 결정에 절대 복종했었음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당내에서 의원세력의 약체성은 정부의 정책이나 소수 당간부의 의사가 의원을 도구로 하여 국회를 통해서 정통화되는 기현상을 발생시켰다.
민주공화당의 기구와 관련하여 정강정책에 관한 전문연구기관이 있다. 정 책기구는 현대정당에서 그 기능과 함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으며 의결기관, 집행기관, 정책연구기관은 정당의 3대 기본기구로 인식되고 있다. 정책전담 기구는 정책심의회를 구성하여 정강정책을 심의하도록 하였고 그러한 노력 은 조금이나마 제 6대 대통령선거에서 정책대결의 양상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훌륭한 기구와 조직을 가졌음에도 그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고 하는 것은 비교적 당헌상의 권한과 실질적인 영향력이 일치하는 조직에 속한다고 볼 수 없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민주공화당의 결정에는 대통령 인 당총재와 당무회의, 소수의 영향력 있는 간부들의 의사가 중요한 변수로 서 작용하였다.
정당자금에서 보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정당을 조직 하기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하였다. 이에 생각한 것이 4대 의혹사건이라 할 수 있는 증권파동으로 부당 이익을 1백 48억원, 새나라 일제승용자 면세도입
1억 2천 9백만원, 빠찡꼬 수입이 1천1백40만원, 워커힐 사건 등을 일을 켜 정치자금을 조달하였다. 더구나 전국구 국회의원후보자 매수사건은 전국구 비례대표제가 제 6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처음 채택된 이래 실질적인 당간부 들에 의해 정치자금조달의 수단이 되었고 1963년의 경우 전국 비례대표 1번 에서 15번 사이의 공천을 받기 위해 100만원 ~ 500만원의 헌금을 했던 것 이 1967년의 경우 2,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인상될 정도로 부패가 심하 여져 갔다.14)
결론적으로 말하여 민주공화당은 이원체제를 통해 대중조직력을 강화하고 당내기강을 확립하였으며 사무당원제를 두어 정당의 조직, 선전공작을 전문 적, 기술적으로 진행시킴으로서 비교적 대중정당체제를 갖추게 된 것이다.
그러나 민주공화당의 거대화, 비대화는 소수의 당 관료나 간부에 집중되어 당에 소속된 의원들은 정당내부에서 나 국회에서 정당한 역할을 행하지 못 하고 정강정책의 결정권이 당총재의 의지에 따르는 소수의 당료들에 의해 독점되었다. 이로 인하여 갈등해결을 위한 이익집단의 효율적 메커니즘이 봉 쇄되었고 군부가 중심이 되어 본질적인 정치체제의 세력으로 나서게 되었다.
14) 조일문,『정치자금의 이론과 현실적 고찰』,(사상계 : 1970. 1.), 45-68쪽.
제 5절 제 4공 화 국 시 대 의 정 당
제 3공화국시대의 정당이었던 민주공화당은 그대로 제 4공화국에 와서도 똑같은 통치자의 통치아래 집권당의 거대한 조직으로 성장하였고 장기집권 의 정당화에 기여하였다. 이러한 민주공화당은 그 조직내부의 편성과 제도의 수준에서 보았을 때 사무국 기구는 대중조직화라는 현대정당의 역할수행을 위한 하나의 도구적 기관이며 최고결정권자의 귄위적 결정이 조직의 하부까 지 신속하게 전달하는 적절한 기구를 가졌고 이러한 조직의 높은 제도화는 여러 가지 도전에 대해 대응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정권연장에 가능성을 더 욱 높였다. 조직 관료적 성향은 당무연륜이 더해갈수록 내부적 귀족화와 과 두화의 원인으로 작용되어 당의 운영에 많은 차질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민 주공화당의 당의 지도체제에 대해서 과업지향성과 독재적 권력지향성을 지 니고 있었는데 과업지향성은 능률과 조국근대화라는 이념적 지향성과 전문 성을 나타냈고 독재적 권력지향성은 외부적 반발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정당의 정치지도자는 권위적인 지도체제를 갖고 있기 때문에 비민주적인 정 치행태를 나타내며 국가주요정책에 대한 합리적 책임성이 희박하여 형식에 치우칠 때가 많았다.
한국의 정치상황을 볼 때 1971년 7월에 실시한 제 8대 대통령선거에서 신 민당의 김대중후보에게 근소한 차이로 이기기는 하였으나 위협을 느낀 박정 희는 자신의 장기 집권가능성에 대한 불안과 주한미군철수 및 북한의 도전 에 따르는 국가 안보의 위기가 겹치는 상황하에서 헌정을 중단하고 정치체 제를 재구성하기 위해 정치체제를 비상적 방법으로 혁신하여 국력의 조직화 를 기한다는 명분하에 1972년 10월 17일 국회의 해산, 정당 및 정치활동의 금지, 비상국무회의에 의한 국회권한대행 등 헌법일부 조항의 효력을 정지하
는 초헌법적인 비상조치를 단행하는 동시에 전국에 비상계엄 선포해 삼권을 장악 유신헌법을 채택하여 제 4공화국을 출범시켰다.
유신헌법은 전통적인 자유 민주헌정체제의 삼권분립주의에서 과감히 탈피 하고 정치체제에 있어서 대통령을 정치권력의 최고정점으로 하는 이른바 영 도적 대통령제 내지 권위주의 정부형태를 취하였으며15) 통일주체국민회의라 는 조직체를 만들어 국민의 직접선거에 의해 선출된 2,000 ~ 5,000명의 대 의원으로 구성하였다. 이 기관의 대의원의 임기는 6년으로 명예직이며 국민 주권을 성실히 수행하는 자로서 정당에 가입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는 국민 회의에 보수적 안정세력을 중심으로 초정당적인 범국민적 성격을 부여하고 있으며 실제로 의회민주주의를 지양하고 대통령의 행정권한으로 조직을 가 능하도록 하여 평화통일정책의 결정, 대통령과 국회의원정수의 3분의 1에 해 당하는 수로 대통령이 추천한 국회의원을 선임 및 헌법개정안의 최종확정 등 국민 총의적 입장에서 결정하려는 정치적 의도에서 시도된 것이었다. 이 는 국회와 정당의 기능을 무력화하여 국가의 최고법인 헌법개정안까지도 대 통령이 자의적으로 조작이 가능하게 하였다. 그 결과 권력을 인격화하여 정 당국가이론을 부정하고 반의회주의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
국회의원선거는 여당과 야당의 이른바 동반선거로 한 지역구에 2인을 뽑 도록 하였고 선거제도에서 볼 때 전국적인 덕망있는 인사와 직능대표의 국 회진출을 가능하게 하였지만 보다 중요한 정치적 의도는 집권층이 3분의 2 의 다수의석을 확보함으로써 국정의 안정성과 능률성을 확보하는데 있으며 장기집권의 기반을 마련하는데 있었다. 따라서 여당인 공화당과 제 1 야당인 신민당의 공천이 사실상 국회의원당선과 직결되게 됨으로써 정당간부 권한 의 비대화 및 이로 인한 국민대표성의 이중성, 통일주체 국민회의 출신들의
15) 김운태, 앞의책, 361쪽.
국회의원선임은 국민의사보다 대통령의 의사의 향배에 더 관심을 두고 충성 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와 같이 정당을 대체할 수 있는 통일주체국민회의 조 직은 이중플레이를 통하여 권력을 더욱 집중시켜 나가는 것이었다. 따라서 정당의 활동도 여당은 여당대로 집권자에게 순종만 하여야만 하며 야당은 야당대로 주어진 한계 내에서 제한된 활동을 감수하든지 극한적 대결로 맞 서야 된다는 인식이 배태되어 대부분의 국회의원이 원내 활동에 있어서 소 극적일 수밖에 없었고 의원 스스로도 원내발언에 있어서 무사안일주의의 타 성에 젖게 되었다.16)
정권말기에 있어서 정치자금의 조성은 각 경제인연합회 재벌 등에 의하여 정치자금이 조성되었으며 직접 통치자와의 암묵적 거래는 정부사업의 수의 계약으로 특혜시비를 불러 일으켰고 이는 제 5공화국까지 지속되었다.
유신체제는 한마디로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결집시키고 정권교체를 담당하 는 정당 선거관여를 제도적으로 봉쇄하였고 정당의 국민 대표성 및 자율성 이 결여되어 정치 권력이 제도화되지 못하였으며 자연인에게 인격화되었다 는 점이다. 삼권이 대통령에게 몰아준 유신체제는 권위주의체제로 정치체제 의 다원성과 하부구조의 분화와 자율성은 최대한 억제하였다. 더구나 정당정 치를 통하여 후계자를 육성하거나 장기집권이 가져오는 정치적 병폐에 대하 여 충분한 배려가 없었다. 이로 인하여 정치체제의 정당성마저도 도전을 받 지 않으면 안되었다. 단순히 안보논리를 앞세워 정치과정에서 국민의 참여를 제약한 결과 참여 지향적인 여러 계층의 희생이 극단화되면서 최고지도자의 제거가 필연적으로 발생되어 정권내부로부터 붕괴되고 말았다.
제 6절 제 5공 화 국 시 대 의 정 당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되고 정치적 위기가 조성되자 정부는 비상계엄을 선 포하였다. 1979년 12월 6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제 10대 대통령에 취임한 최규화 정부는 위기관리 정부임을 표방하여 사회적 혼란과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고 동시에 정치발전을 추구할 것을 약속하였으며 신헌법에 의하여 구 성된 새 정부에 정권을 이양하겠다고 하였다. 이러한 정치일정 중에 전두환 을 중심으로 신군부세력이 거사하여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였다. 또다시 시작 된 군부의 정치적 개입은 끊임없는 정치 사회적 혼란을 야기시켰고 민주항 쟁에 대한 거센 저항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국민들의 민주항쟁에 대한 저항 을 무력으로 진압한 신군부는 정국을 주도하여 1980년 8월 16일 최규화 체 제를 물러가게 하고 동년 8월 27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전두환이 제 11대 대통령에 당선되어 정권의 기반을 다졌다. 이와 함께 동년 9월 27일 헌법개 정안공고를 하고 10월 22일 국민투표에 붙였으며 10월 27일에 제 5공화국 헌법이 공포되었다. 동헌법의 부칙에 따라 통일주체국민회의가 폐지되고 또 다시 국회 및 정당이 해산되었으며 이 헌법에 의해 국회가 다시 구성될 때 까지 국가보위입법회의가 국회의 권한을 대행하였다. 이에 1981년 2월 11일 대통령선거인 선거가 실시되고 2월 25일에 대통령선거에서 전두환 후보가 제 12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곧이어 제11대 국회의원선거가 실시되고 여당 인 민정당이 다수의석을 차지하였으며 민한당과 국민당 그밖에 군소 정당 몇 개가 의석을 차지하는 다당제 국회가 구성됨으로써 제 5공화정이 시작하 게 되었다.
제 5공화국은 합법적인 정당설립의 자유 및 복수정당제를 보장하였고 정 당정치의 활성화를 위하여 다음과 같은 제도를 두었다. 첫째, 선거에 관한
경비를 원칙적으로 정당에 부담시키지 않고 정당운영자금을 국고에서 보조 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정당이 수령하는 기부, 찬조, 기타 재산상의 출연에 대하여 면세의 특진을 부여하였다. 둘째,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 본질서에 위배될 때에 한하여 헌법위원회의 결정에 의하여 해산할 수 있도 록 함으로써 정치적 이유로 인한 자의적 해산을 예방하였고 전국구 국회의 원후보자의 정당추천제를 둠으로써 유능한 정치인이 국회에 진출하도록 하 였으며 대통령선거일 및 대통령후보자의 정당추천제를 신설하였다. 셋째, 정 당의 당원인자는 선거일 공고 후 3일 이내에 그 소속 정당으로부터 탈당하 거나 당직을 변경하거나 제명된 경우에는 후보자로 등록할 수 없도록 하여 공천에 낙천된 자가 당적을 변경하여 무소속으로 입후보하는 것을 방지하였 고 국회의원 후보자 등록시 무소속 후보자는 1,500만원을 기탁하는데 비하여 정당의 후보자는 700만원을 기탁하도록 하였다. 넷째, 신정당법에 정당에 가 입할 수 있는 공・사적의 범위를 적극적으로 확대함으로써 대학교수를 비롯 한 지식인들의 정당활동의 길을 열었고 정당원 및 국회의원의 겸직범위를 확대하고 제도화하였다 또한 정당이 국민의사형성에 필요한 최소한의 조직 을 구비하지 못하거나 국회의원선거에 참여하지 않을 때, 국회의원총선거에 서 의석을 얻지 못하고 유효득표총수의 100분의 2이상을 득표하지 못한 때 등록을 취소하게 하였다. 그 결과 많은 정당이 제 11대 총선에서 민주정의 당, 한국국민당, 민권당, 사정당, 민사당, 민주농민당, 안민당의 8개 정당이 존속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정당의 제한은 국민대표성과 정당의 민주화를 제고하기 위하 여 무소속출마를 허용하고 국회의원임기 중 소속 정당을 이탈하거나 당직을 변경하거나 소속정당이 해산되더라도 그 신분을 보유하도록 함으로써 자유 로운 민의의 투입을 가능하게 함과 동시에 지나친 정당정치의 폐해를 방지
하려 하였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로서 국회의 권한약화와 대통령 선거제도에 있어 집권당이 행정권으로 조작할 여지가 있었고 대통령의 광범 위한 비상대권을 인정함으로써 권위주의적 정치체제에 따른 정당의 활동에 많은 제약을 가져오게 되었다.17)
한편 민정당인 당 기구는 제 4공화국의 당헌과 거의 비슷하며 당헌 제 7 조에 전당대회 대의원의 구성은 총재, 최고위원, 고문, 당무위원, 지도위원, 당 소속 국회의원, 정책평가위원, 지구당 위원장, 상무위원, 중앙당 및 시도 지부 사무처부장급 이상의 위원과 지구당 사무국장, 당 상무위원회가 추천한 시도대회선출대의원, 지구당대회선출대의원으로 하며 당헌 제 8조에 기능은 당 강령선언 및 기본정책의 채택과 개정, 당의 해산과 합당에 관한 사항, 총 재의 선출, 최고위원의 선출, 당헌의 채택 및 개정, 당 결의안의 채택, 당 활 동의 목표 및 기본방향 등 기본당무사항 등을 의결 및 승인하며 전당대회가 열리지 않는 기간에는 상무위원회가 대행한다고 하였다. 당헌 제 12조에 상 무위원회를 두고 이는 전당대회의 수임기간으로 조직하였으되 당헌 제 13조 에 상무위원회의 기능을 두고 있다. 당총재는 당헌 제 18조에 전당대회대의 원 10분의 1이상의 추천, 또는 당무회의 제청으로 전당대회에서 제적대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선출하고 총재가 궐위시 소집이 곤란한 경우 당무회의 제청에 의하여 상무위원에서 선출하기로 되어 있다. 그러나 당총재가 한번도 실질적으로 경쟁을 통하여 선거한 경우가 없었으며 정당의 기능 또한 당총 재의 절대적 명령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최고위원에 관한 사항은 당헌 제 22 조에 두었고 당헌 제 25조에 의해 당무회의를 두어 각종 선언과 전당대회에 상정할 당헌 정강정책안의 심의 및 작성 당규의 제정 또는 개편, 총재후보자 의 재청, 명예총재후보자의 재청, 최고위원, 대통령, 국회의원, 공직후보자의
17) 김운태, 앞의 책, 381-383쪽.
심의 등 전당대회에 참석할 대의원 및 상임위원회의 선임, 중앙위원회의 선 임, 국정운영에 관한 중요정책의 결정, 당무위원회에서 위임된 사항의 처리 당헌의 유권해석 기타 당무운영에 관한 중요사항과 총재로부터 지시받은 사 항의 처리를 하여 당운영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 외에 사무처, 정책 위원회, 의원총회, 국책연구원, 중앙당위원회, 재정 위원회, 평화통일위원회, 중앙위원회, 특별위원회, 시도대회, 지구당대회로 조직되었다. 제 1야당인 민 주당의 기구는 대의기관으로 당헌 제 7조에는 전당대회와 중앙위원회가 있 고 집행기관으로 당헌 제 13조에는 당무위원회가 있고, 대외협력위원회, 통 일국제위원회, 홍보위원회, 특별위원회, 당기위원회, 지방조직들의 규정으로 되어 있어 집권당과 그 조직기구에 있어 비슷하며 이러한 정당의 조직은 제 6공화국에서도 그대로 이어져 운영되었다.
제 5공화국에 있어서 정치자금의 조성도 집권자가 직접 재벌들에게 정치 헌금을 거두었고 제대로 정치헌금을 내지 않는 자는 정치적인 보복으로 그 룹을 해체시키거나 사업자금을 차단하는 비인간적인 수법을 썼다. 특히 대형 금융사건, 장영자・이철희 부부사건, 집권자의 친인척 비리사건, 새마을, 영 종도 비리사건, 일해재단설립사건, 평화의 댐 건립 등으로 정치자금을 거두 었다. 이러한 정치자금의 조성은 먼저 집권자로서 정치적 부정과 부패에 앞 장섰으며 이에 대한 면죄는 스스로가 책임을 지지 않고 부하에게 전가하는 비인간성을 드러냈고 권력만 있으면 남에게 속해있는 재산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전재성, 정치헌금을 모금하는데 비협조적인 자에게는 반드시 보복 하여 그 잔인성을 드려내었다.
따라서 자본주의사회에서 돈과 정치와의 관계는 불과 분의 관계이다. 특히 정치권력이 지배계급내부에 각종 이권의 분배를 주된 업무로 삼는 독재와 권위주위체제에서 유착은 더욱 심화된다. 부당한 정치자금의 유입은 그에 따
른 부당한 대가를 제공하게 되었다. 이러한 정치자금의 정경유착과정과 정치 보복적 성격을 띠므로 비공개, 음성적 수수와 여당으로의 편중, 권력지향의 문제점을 드러내었다. 정치자금이 집권자나 집권당에게만 집중되는 것은 정 치의 금권화(Plutocracy)를 초래하였고 정치권에 대한 일반국민의 불신을 받 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구조는 권력에 유착된 기업만의 성장으로 경제구조의 파행과 국가 경제의 낭비를 주도하였으며 정부정책을 불공정, 비일관성을 야기하여 이권거래, 검은 돈, 정치의 부패 등이 만연하게 되었으며 전체국가경영의 비효율성과 낭비는 심각하기까지 하였다.
돈의 정치가 주류를 이루는 한국의 정치상황에서 정치자금을 형성할 수 없는 야당 및 신진정치세력의 진출은 봉쇄되었고 국민대중의 민주적 의지에 따라 정치활동이 전개되었던 것이 아니라 돈의 흐름에 따라 정치활동이 이 루어지는 정치파행성을 가져왔다.18)
18) 최재승,『물밑의 하는 』,(서울 : 극동기회, 1994), 170쪽.
제 7절 제 6공 화 국 시 대 의 정 당
제 5공화정에 있어서 정치규제법을 통한 주도세력형성과정에서 반대세력 들의 조직화에 작용함으로써 자생적인 야당조직의 형성을 제약하였고 비민 주적 요소가 있다는 비난이 야기되었다. 그리하여 1984년 12월까지 3차에 걸 친 정치규제를 해금함으로써 자생야당이 출현하게 되었다. 1985년 초에는 총 선을 앞두고 민정당이 현정권의 체제의 정당성과 호헌을 주장하고 신민당을 위시한 다른 야당들은 개헌을 주장하였다. 헌법과 정치체제의 시비가 주된 논쟁으로 총선을 치른 결과 신민당이 대승을 거두고 제 1야당으로 부상하여 민한당을 군소 정당으로 전락시켰다. 사실 제 1야당으로 부상한 신민당이 민 한당(35석)과 국민당(21석)등 야당을 대거 흡수 통합하면서 재야정치세력과 연대하여 집요한 개헌투쟁을 전개하자 국민대타협의 명분으로 개헌작업에 착수하였다. 이에 따라 국회는 만장일치로 헌법개정특별위원회 구성안을 통 과시켜 발족했으나 민정당은 의원내각제 개헌안을 고수하고 신민당과 국민 당은 대통령 직선제를 고수하면서 여야대립이 첨예화되자 야당은 본격적인 원외투쟁을 전개하였다. 특히 4・13 호헌조치가 정부에서 발표되자 현정권의 장기집권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판단한 학원, 종교, 언론 등 국민각계에서 커다란 반발을 하였고 조직적인 민주쟁취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와 같이 광범위한 국민들의 참여가 증가되자 불안을 느낀 여권에서 6・29 민주화선언인 대통령직선제, 의원의 복권, 사면복권, 언론의 신장, 지방자치 등 제반 민주화조치를 통하여 권위주의적 정부형태를 어느 정도 민주화시키 는데 기여하였다.
제 6공화정 헌법의 총강에서 정당은 그 목적과 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 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또한 국회의원 선출은 한 지역구에서 한명의 의원
만을 선출하는 소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전국구의 경우는 직능대표와 정당 당 료정치인 또는 사회적으로 덕망있는 정치인의 국회진출을 가능케 하였으며 비례대표제를 채택하였다. 따라서 전국구의원의 배분은 국회의원정원수의 3 분의 1에 대해 지역구선거에서 의석수가 제일 많은 정당의 지역구 의석수가 지역구의원총수의 100분의 50미만일 때에는 제1당에서 전국구의석총수의 2 분의 1을 배분하고 잔여의석은 지역구선거에서 5석이상의 의석을 얻은 제2 당 이하의 정당에 그 지역구의석비율로 배분하였다. 그밖에 국회의원의 정치 적 부패를 방지하고 민의의 대변자로서 역할을 다하도록 청렴의무 및 직무 수행에 있어서 국익 우선조항과 이권개입 금지조항을 존속시켰고 국회의원 은 국무위원을 겸직할 수 있으나 법률이 정하는 직을 겸임할 수 없도록 하 였다.
그러나 제 13대 총선에서 패배한 민정당은 과반수의석을 확보하여야 한다 는 불안감을 해결하기 위해 야당이었던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표들이 민정당 과 밀실협상을 통하여 3당 합당을 결정하였고 이로써 제 6공화정이 정권의 안정과 승계를 도모한 야합을 이루어냈다. 국민적 합의에 반하는 합당은 3당 의 자유로운 정책대결과 토론을 향한 자유민주주의 실현을 묵살함으로써 정 당정치의 발전을 지연시키고 말았다. 이러한 3당 합당의 결과는 민주정치의 확립을 바탕으로 여소야대의 구도는 사라지고 216명의 의원을 가진 거대 여당인 민주자유당이 새롭게 창당되었다. 이것은 과거 권위주의 체제내에서 있었던 거대 여당에 의한 독주와 다수의 의석에 의존하는 힘의 논리에 의한 국민의 의사를 위반하는 명분에 지나지 않았던 정치체제였다. 3당 합당의 명 분은 정치의 안정과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위한 구국의 대결단이라고 하였으 나 실은 정치적 야합에 의한 밀실정치의 표본으로 순서에 의한 정권의 승계 권 확보와 장기집권의 기도였다. 야합에서 생겨난 집권당으로서 기득권을 이
용하여 선거에서 승리를 하게 되었고 김영삼 정부가 집권하는데 공헌하였다.
제 6공화국의 집권당인 민자당과 야당인 평민당의 정당조직을 보면 중앙 당과 지구당이 일방적인 상의 하달관계였다. 정책개발 및 제시, 공직선거의 후보공천은 물론 조직관련 측면에서 아래부터의 의견은 다분히 형식적이었 다. 대부분 정당운영을 보면 집권당이 다른 정당보다 당의 조직을 앞서 선도 하며 집권여당의 운영상황에 따라 야당의 정당조직운영도 이에 따르게 된다.
정치자금면에 있어서 정당의 정치자금은 주로 후원회비나 기탁금인데 이러 한 자금은 실제로 소수의 실력 있는 야당의원이나 집권여당에만 집중되어 있고 후원회 인원수도 제약하여 소수다액제가 불가피함으로써(중앙당 2,000 인, 시도지부 500인, 지구당 300인)재벌들의 영향력이 강화되는 문제점을 지 니게 되었고 여당이 독식하는 지정기탁금제가 유지되었으며 정당투표제를 채택하지 않았고 선거연령을 낮추지 않은 점이다. 또한 이것은 기업의 정치 헌금을 허용하면서 노조 단체 등 야성이 강한 단체들의 헌금은 금지하고 있 었다.
제 8절 문 민 정 부 시 대 의 정 당
제13대 국회후기의 국회의석분포는 민주자유당 216석(72.7%), 평화민주당 70석(23.6%), 무소속 11석(3.7%)으로 바뀌었다.19) 집권당의 인위적인 정계개 편은 1992년 3월 24일의 제 14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민주자유당이 총 의석 299석 가운데 과반수에 미치지 못하는 149석(49.8%)을 얻는데 그 침으로써 유권자들의 반발을 사게 되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또한 동년 12월 18일 제 14대 대통령선거에서는 현대그룹의 정주영이 통일국민당(1992년 2월 8일, 창 당)을 급조하여 대통령후보로 나서 전체 투표자 16.3%의 지지를 획득함으로 써 기존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감을 간접적으로 보여주었다.
이 선거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된 김영삼은 문민정부 를 표방하면서 전두 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들의 정치자금비리를 형사처벌하고 이들과 정치 적 결별을 뚜렷이 한다는 면에서 1995년 12월 6일에는 민주자유당을 개명하 여 신한국당을 창당하게 되고, 김종필은 이에 앞서 동년 3월 30일 기존 신민 당을 흡수・합당하여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한다.
이어서 1996년 4월 11일의 제 15대 국회의원선거에서는 여당인 신한국당 이 전체의석 299석 가운데 139석(46.58%)을 얻는데 그침으로써 과반수에 훨 씬 못 미치는 결과가 나타나자 무소속의원들을 영입하여 국회 내에서 과반 수의석을 확보한다. 김영삼은 정치개혁 등 사회 전반적인 개혁에 착수하였으 나, 이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1997년 11월 21일에 제 15대 대통 령선거를 앞두고 이회창이 신한국당과 기존의 통합민주당을 합하여 한나라 당을 만들게 되는데 이에 앞서 신한국당 내부에서는 처음에 9명의 대통령후 보가 당내경선에 나섰으나, 이인제는 경선 과정과 결과에 불만을 갖고 따로
19) 1990년 2월 15일 노태우의 민주정의당,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이 민주자유당으로 신설합당으로 인해 여소야대에서 여대야소로 변모했다.
국민신당을 1997년 11월 4일에 창당하여 정치인 세대교체를 주장하면서 대 통령선거에서 총유권자투표의 19.2%를 획득하였으나 1998년 8월 28일 국민 신당은 새정치국민회의와 통합을 선언하였다.
이상과 같이 한국정당의 전개는 국민의 의사와 상관없이 권력을 가진 핵 심층 인물들로 인하여 개편, 합당, 통합으로 이어지면서 국민들에게 불신과 냉소를 낳게 만들었다.
정당이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정당의 내부에 있어서 그 의사형성, 당 원의 권리, 의무, 당의 운영 등에 있어서 민주적이어야 함을 말한다. 예컨대 평등의 원칙, 의사형성에 있어서 의견과 반대의사의 존중, 기회의 균등 등의 제원칙이 적용될 것이 요구된다. 민주적인 정당조직은 구체적으로 당헌에 의 하여 제정된다. 당헌에 의하여 조직된 정당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 여하는데 중요한 조직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정당조직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에의 참여가 그 요건이므로 정당의 조직이 한 지방에만 편중되어서는 안되며 전국적인 조직일 것이 요구된다. 이러한 정당에 관한 일반원칙을 구 체화한 것이 정당법이다.20) 그러나 이러한 정당법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아 직도 한국의 정당이 민주화되지 못하고 있다. 정당법에 의한 정당은 목적을 수행하기 위하여 그 자체의 조직을 가지며 간부 당원들과 일반당원들로 구 성되고 중앙당과 지구당이 서로 유기적 활동을 하여야 한다. 이러한 유기적 인 활동을 통하여 정당의 민주화가 촉진되어야 하지만 한국의 정당은 지구 당이 중앙당의 지배를 받게 되므로 중앙집권적인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게 된다. 이로 말미암아 한국의 정당에 관한 당내과두화가 필연적으로 대두하고 있다.21) 그러므로 한국의 정당조직이 자유로운 합의를 기초로 하지 못하고 그 구성원의 절대적인 복종을 강요하고 있는데 한국의 정당이 참으로 국민
20) 김철수, 『신고 헌법학신론』,(서울 : 박영사, 1994), 120쪽.
의 의사를 매개하는 기구로서 역할을 다하려면 일반국민과 항상 접촉하고 있는 일반당원의사가 정당운영에 실제로 방영되도록 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현대정치에서는 여러 정당들이 서로 첨예하게 대립하게 됨으로 정 당조직이 더욱 과두화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이 정당사이의 서로 대립 과 투쟁 속에서는 필연적으로 고도의 전문적인 기술에 의한 능률적인 사무 수행과 투쟁조직으로서 일치단결 하는 일사불란한 모습을 요구하게 되는데 이러한 요구는 중앙집권적인 지도체제를 형성하게 한다. 따라서 중앙집권적 인 지도체제는 능률적인 사무수행과 전문성, 당내관료제의출현을 가져오며 투쟁조직으로서의 일사불란한 추진력은 엄격한 당규율과 계급질서가 뚜렷한 군대 조직과 같은 당조직을 갖게 하고 있다. 특히 대량정도와 인력관리에 따 르는 조직의 확대는 당원의 수의 증대를 가져왔고 이에 따른 엄격한 당규정 과 계급조직의 형성은 소수의 지도자나 간부들에 의하여 정당이 운영되어지 고 있다.
이상과 같은 정치적 현상은 정당의 민주화를 가져오지 못하고 소수인에 의한 관료적이고 권위적인 정당의 지도체제를 낳고 있다. 즉, 과두제적 지배 를 초래하고 있다.22) 이러한 과두제적 지배를 하는 당총재나 지도부는 선임 방법과 정책결정에 대한 토의와 결정방법을 모두 민주적인 절차를 밟도록 되어 있지만 형식에 치우칠 뿐, 실제로 대부분 중요한 문제들은 소수의 간부 에 의한 간부회(cau cu s)23)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하여 당규의 엄격 한 규정은 당간부에 대한 비판을 저하시키고 일반당원들로 하여금 정당의 본래 이념에 충실하기보다는 오히려 당총재에게 더 충성을 바치게 된다. 이
22) Mu ir, Ran soy . 1940. H ow Britain is Govern ed 4th (ed .), N ew York : P .R. Sm ith , p .116.
23) 코오커스(cau cu s)-일반적으로 정당의 영수회의, 간부회로써 미국에서 공직의 후보자를 선출하기 위해 개최되는 정당간부의 사적 또는 예비적인 집회를 의미하며 현재 미국의 뉴욕주, 일리노이주의 읍・면의 선거에서 실시되고 있어 긍정적인 기능도 있다.
렇게 되면 민의의 매개체로서 정당은 왜곡될 뿐, 정당의 민주화는 어렵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견지에서 정당의 민주화는 필요하게 되고 실제적인 민주 화의 실천은 민주주의 정치질서로 정착을 의미하는 것이다.
제 3 장 정 당 민 주 화 에 대 한 이 론 적 고 찰
제 1절 정 당 민 주 화 의 의 미
정당은 국민이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는데 필요한 조직을 확보하고 정 당의 민주적인 조직과 활동을 보장함으로써 민주정치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 하여야 한다. 현대정치에서 정당은 정치적 실권을 가지는 정치조직이다. 그 것은 복수의 정당을 전제로 하는 것이 보통이며 다수결을 전제하고 있으므 로 정권을 잡기 위해서도 다수의 동지를 필요로 한다. 이 때문에 정당의 존 재가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정치적 자유라는 원칙아래 반대파의 정치 적 의견도 용인해야 하기 때문에 정권을 잡은 정당과 그 밖의 야당적인 입 장에서는 정당이 있게 마련이다. 정당정치에 있어서는 정당이 의회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함으로써 의회를 바탕으로 정부를 구성하여 정권을 잡을 필요가 있게 된다. 정권을 잡은 정당은 강령과 정책에 의하여 정치를 해나감으로써 정당정치가 관철되는 것이다.
우리 헌법은 이러한 정당국가로서 정당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인 보호, 특 히 정당에 대한 재정적 보호를 규정함으로써 건전한 정당제도의 운영, 발전 을 도모하였다. 동시에 효율적이고 민주적인 정당제도의 확립을 위하여 정당 의 조직과 활동의 민주성 및 국민이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는데 필요한 정당의 조직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다. 특히 헌법 제8조에 의하면 정당의 목 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정당은 헌법재판소에 의해서만 해산될 수 있다고 하였다.24)
이 같은 정당의 민주화와 보호에 대한 추구는 한국의 정치환경에 민주주 의 정치질서를 정착시키고자 하는 노력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 다. 따라서 현실정치의 운영은 인물중심이나 힘의 논리를 피하고 정당제도 중심으로 영위되어야 하며 정치적 외부 세력인 이익단체나 군부에 의해 정 치가 운영되거나 통제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민주정치제도는 오랜 역사적 경험과 시행착오를 거듭한 결과를 창출해 낸 가장 바람직한 정치제도이다.
사실 전세계의 모든 국민들이 체제의 우월성뿐만 아니라 정통성과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하여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당의 민주화와 제도 화는 당연한 일인 것이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명목적인 정당의 민주화가 아닌 진정한 정당의 민주 화를 추구하여야 한다. 여기에서는 민주적인 정당을 판단하는 주요한 요인으 로 공정성, 경쟁성, 개방성, 자율성을 들고자 한다. 인간에 있어서 생명을 유 지하고 있음을 표시하는 4가지 기본징후로 체온, 호흡, 맥박, 혈압이 있듯 이25) 정당의 민주화의 실현여부는 위의 네 가지 요소에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정당의 조직과 운영 등이 위의 네 가지 요소에 들지 않았을 때는 정당의 민주화는 지극히 낮은 것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24) 법전편찬회(편),『소법전』,(서울 : 법전출판사, 1994), 2쪽.
제 2절 정 당 민 주 화 에 대 한 이 론 적 전 제
1. 개 방 성
정당의 개방성을 구성하는 변수로서는 정당의 가입, 정당의 간부 및 지도자 의 후보추천과 선출 과정, 정당의사의 결정과정, 정당의 교육 등을 들 수 있 다고 본다. 이러한 개방성을 구성하는 변수들이 중시되는 논리는 정당이 국 민 상호간의 관계를 밀접하게 유지하고 정당에 정치적 참여를 자발적으로 유도할 수 있으며 국민들의 의사형성을 언론의 조작을 통한 매도, 정치적 판 단의 결정 유도 등을 통하지 않고 직접 의사를 개진할 수 있고 청취할 수 있다는 가설에 근거를 두고 있다.
정당의 민주화를 이루는데 국민들의 참여가 제한을 받거나 언론이 왜곡, 조작되는 것을 여과 없이 그대로 반영되는 것을 차단하고 지도자의 정치적 기술과 수단에 따라 정치적 환경 등이 그대로 반영되는 것을 차단하고 지도 자의 정치적 기술과 수단에 따라 정치적 환경 등이 조성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으며 국민의 요구나 정치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정치활동이 이루어지게 된다.
따라서 정치권력이 국민의 의사에 기초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과정은 정당 내에서 일련의 개방적인 활동을 통하여 이끌어 낼 수 있게 된 다. 정당 은 여당이든 야당이든 겸허한 자세로 국민들의 의사를 접촉하고 생활하는 가운데 국민들이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 이들이 우선하는 사업이 무엇인 가? 국가적인 사업은 어떻게 집행해야 될 것인가를 수렴하여 정당활동에 반 영되어야 한다. 이러한 정당의 개방은 국가로 하여금 국민들의 권익과 공익 을 위해서 참여하고 활동함으로써 지속적인 정치적 관심을 갖도록 하고 교 육을 통하여 올바른 정치의식이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정당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