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역사
1. 정치와 전쟁
- 정치의 본질에 대한 서구 정치학의 두 가지 대표적 정의 방식
① David Easton(50년대 미국 자유주의 정치학자): 시대를 풍미한 영미권의 정치학 입론. “정치 는 가치의 권위적 배분”의 문제. 계약론적·자유주의적 전통 (<- 홉스, 로크)
② Carl Schmitt(20년대 독일 극우 반자유주의 공법학자): “정치는 我方과 他方간의 대립”의 문 제. 독일 나치즘의 이데올로기(‘국가학Staatslehre’). 군사론적·국가주의적 전통.
-> 클라우제비츠(Karl von Clausewitz): “전쟁은 다른 수단(군사적 폭력)에 의한 정치의 연장”
2. 전쟁의 역사
1) 중세 유럽에서의 전쟁
- 중세에 있어서 폭력의 분산성
- 메로빙거-카롤링거 왕조 시대의 변화: 샤를마뉴 대제 시대의 중앙집권화. 군사복무에 대한 대가로서의 봉토. 봉건제적 봉록(feudum)의 기원.
- 샤를마뉴 체제의 붕괴 이후 봉건적 정치-군사질서의 확립
⇒ 중세는 기마병 지배 사회. 하층민은 군사기능에서 배제, 생산직에만 종사.
- 12세기 이후 ‘상업혁명’의 영향으로 봉건적 군사체제에 금전관계의 침투: 보병군 체제로 전환.
2) 기사군 체제에서 보병군 체제로
- 14-15세기 끊임없는 전쟁의 시대 - 영국의 양궁부대
- 스위스의 보병군 - 용병의 출현 - 상비군의 출현
- 프랑스 상비군은 대내 반란진압용 및 대외 침략용으로 왕권의 상징 3) ‘군사혁명’의 시대
- 16세기 군소 봉건 영주 및 소규모 도시국가의 몰락, 영토국가들(territorial states)의 정치무대 등장
- ‘군사혁명(military revolution)’: 정치적 주역으로서 영토국가들의 등장 이후 전쟁의 대규모화·
장기화
- 스페인에 의한 보병체제의 확립: 스페인군은 기마군의 공격에 대한 방어용 무기로 화승총 사 용(석궁 대체). 테르쇼(tercio)에 의한 보병 편성.
- 모리스의 전술혁명: 1594년 네델란드인 모리스에 의해 도입된 일제사격(volley)법으로 1·2·3열 대형을 형성하고 반복사격. 끊임없는 반복훈련과 기율
- 아돌푸스(Gustavus Adolphus)의 전술혁명: 절대주의국가 스웨덴의 군국주의(militarism)의 발 전. 국민개병제에 입각, 사상 최초의 근대적 군대조직 창설. 모리스식 전법과 스페인의 테르쇼 (tercio)전법의 혼용. 무기 및 장비의 표준화(특히 야전용 대포의 표준화와 규모 축소). 全軍을 국
왕의 직접 통제 하에 둠으로써 군사가 완전히 군주의 정책의지 실현을 위한 수단화.
4) 17~18세기의 전쟁과 국가의 발전 A. 군국주의화의 양상 비교
- 프랑스의 경우: 팽창과 파국
- 영국의 경우: 산업혁명·금융혁명·의회주의에 기반한 ‘재정-군사국가’의 발전 - 독일의 경우: 군국주의적 국가화
B. 18세기 전쟁술의 변화
- 기술적 향상과 보병 및 포병의 전술 변화
- 그러나 병참보급문제 및 통신문제가 해결되기 이전인 18세기는 여전히 ‘제한전쟁(limited war)’의 시대.
C. ‘국민전’과 ‘총력전’의 시대로
- 절대주의 국가의 제한전
- 프랑스 혁명으로 탄생한 시민군(‘국민방위군’):“정치적 권리는 곧 군사적 의무”.
- 프랑스 혁명군의 재정문제: 재정적 난관을 타개하기 위한 방책으로서의 주변지역에 대한 군 사적 침략(이른바 ‘혁명수출정책’) 단행.
5) 19세기: 산업화와 ‘군사지상주의’의 출현
- 화기의 발전과 ‘공격전’으로부터 ‘방어전’으로의 전환
- 철도혁명: 19세기 중반 프러시아에 의해 최초로 군사적으로 이용.
- ‘전쟁계획(war planning)’의 도입 - 해군경쟁
- 파국적 결말: 1·2차 세계대전
3. 전쟁 형태(무기형태)의 역사적 변화
① 최초의 ‘무기혁명’: 활의 발명
② ‘기마혁명’: 말의 이용(전차병과 기마병)
③ ‘철기시대 혁명(Iron Age Revolution)’
④ 화약혁명: 대포의 발전:
⑤ 개인화기의 발전
4. 유목민과 정착민 혹은 전쟁기계와 국가
i)전쟁기계로서의 유목민과 국가형태로서의 정착민 간의 충돌
ii)상호침투 - 유목민의 제국 건설(원나라, 청나라 혹은 오스만 투르크 등)/국가의 파시즘화(일본, 독일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