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안 선벨트 구상의 지역정책화 과정과 특징에 관한 시론적 연구
이정록*
Establishing Process of National Regional Policy for the Sunbelt Development Initiative of the Southern Coastal Area in Korea
Jeong-Rock Lee*
요약 :이 연구의 목적은 남해안 개발에 대한 논의가 남해안 선벨트 구상을 거쳐 이명박 정부의 국가정책으로 수립되는 과정에 대한 특징을 시계열적인 관점에서 고찰한 것이다. 19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남해안 개발에 관한 논의를 한국미래학회, 지역화합특위, 남해안포럼 등이 지속시켰고, 논의과정에서 도출된 남해안 선벨트 구상이 제17대 대통령 선거 공약이 되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는 지역발전위원회가 주체가 되어 선 벨트 구상을 남해안 선벨트 종합계획으로 입안하였고, 정부는 2010년 5월에 국가계획으로 확정하였다. 남해안 선벨트 종합계획은 남해안을 범역으로 하는 최초의 국가계획이고 법정계획이라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2020년 까지 행해지는 각종사업의 구체적인 성과확보에는 회의적인 시각이 상존한다. 남해안 선벨트 구상의 성과확보 를 위해 논의에 참여한 주체들의 적극적인 역할이 요구된다
주요어 : 남해안 선벨트 구상, 남해안 선벨트 종합계획, 지역정책, 이명박 정부, 지역발전위원회
Abstract : The objective of this study is to introduce the characteristics and establishing process of national regional policy for the sunbelt developmentr initiative of the southern coastal area in Korea. Discussion on the development of southern coastal area of Korea with some members of the Korea Society of Future Studies began in the early 1990s, and its discussion was continued with the activities by the Committee on Regional Unity of the Grand National Party and Namhaean Forum. The sunbelt development initiative was selected as one of the major commitments of the Grand National Party in the 17th presidential election of Korea. Since the launching of the Lee Myung-bak government, the Presidential Committee on Balanced National Development made a comprehensive plan for sunbelt development of southern coastal area(CPSD), and this plan was confirmed by central governmental planning in May 2010. CPSD is meaningful in terms of the fir first national regional planning and legal plan in Korea. The target year of CPSD is 2020, and some projects by CPSD started in 2010. However, there are many negative views that CPSD will not be going too well. Therefore, new efforts and roles of geographers who participated in the process of planning of CPSD are required for the success of CPSD.
Key Words : sunbelt development initiative, comprehensive plan for sunbelt development of southern coastal area(CPSD), national regional policy, Lee Myung-bak government, Presidential Committee on Balanced National Development
* 전남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지리학과 교수(Professor, Department of Geography, Chonnam National University), [email protected]
1. 서론
1) 연구배경 및 목적
불균형 성장으로 나타난 공간문제를 해결하기 위 한 다양한 논의과정을 거쳐 국가지역정책(national regional policy)1)이 만들어지고 변화한다(Bachtler, 1994, 269). 우리나라 역대 정부도 국토공간의 불균 형을 해소하고 국가통합을 위해 많은 논의과정을 거 쳐 지역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였다. 노무현 정부 는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을 제정하여 국가균형발전정 책을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로 설정하였고(송우경, 2012, 8), 신행정수도 건설, 공공기관 지방이전, 지역 혁신체계 구축, 시도별 전략산업 육성 등 다양한 지역 정책을 시행하였다. 이명박 정부 또한 지역발전위원 회와 중앙부처가 주체가 되어 광역경제권과 초광역 개발권 사업, 선도산업 육성 등 많은 지역정책을 수립 하고 시행하였다.
이명박 정부의 초광역개발권2) 지역정책 중에서 국 가 및 지역적으로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사업이 ‘남 해안 선벨트(sun-belt)’이다. 수도권에 대극하는 신성 장벨트를 남해안에 조성하여 국토의 균형발전은 물 론이고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남해안 선벨트 구상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기 전부터 학계의 주목 을 받았다(이정록, 2009, 43). 왜냐하면 남해안 발전 을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로 추진하는 것이 타당하다 는 주장이 학계와 정치권에서 비교적 오랫동안 공론 화되었기 때문이다(이정록, 2009, 43).
남해안 발전이 갖는 여러 타당성에도 불구하고 역 대 정부는 남해안에 대한 종합개발 프로젝트를 국정 과제로 채택하지 않았다. 반면에 이명박대통령은 남 해안 발전구상을 대선공약으로 채택하였고,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는 남해안 선벨트 구상을 정부 지역정책의 핵심과제로 선정하였다. 이명박 정부는 남해안을 수도권에 대응하는 신성장축으로, 환태평양 시대를 대비한 열린공간축으로, 국토균형발전과 동서 화합을 위한 통합상생축으로 육성하기 위하여 남해안 선벨트를 초광역개발권의 선도사업으로 설정하였다
(이정록, 2012, 14). 그리고 남해안권 발전 종합계획 을 수립해 각종 사업을 추진하였고, 현재도 추진 중에 있다. 남해안 선벨트 사업이 이명박 정부의 핵심 지역 정책으로 채택된 것은 남해안 발전에 관심을 갖는 많 은 주체들의 활동과 노력의 결실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배경에서, 이 연구는 1990년대부터 논의가 지 속된 남해안 개발·발전 구상이 이명박 정부 핵심 지 역정책으로 채택되는 과정을 시계열적 관점에서 접 근하였다. 연구의 주요 목적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전 부터 남해안 발전의 필요성과 타당성을 논의하고 주 장한 주체들의 활동, 남해안 선벨트 구상의 지역정책 화 과정, 남해안 선벨트 사업이 갖는 의미와 한계 등 을 고찰하는 것이다. 이 연구에서는 남해안 발전의 중 요성을 주장하고 논의한 주체들 중에서 한국미래학 회, 지역화합특위, 남해안포럼, 지역발전위원회 등의 활동을 분석대상으로 한정하였다.
이 연구에 필요한 자료는 문헌조사와 관련자 면담 을 통해 주로 수집하였다. 남해안 발전의 필요성을 주 장하고 논의한 주요 전문가 집단과 단체들의 활동성 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발행한 각종 보고서, 언 론보도 자료 등을 연구에 활용하였다. 특히 남해안 선 벨트 구상 및 정책수립 과정과 관련한 자료는 국제정 책연구원(GSI) 내부자료, 한나라당 대선 공약집, 지 역발전위원회 내부자료 등을 많이 원용하였고, 부족 한 자료는 관계자와의 면담을 통해 보완하였다.
2) 선행연구 검토
남해안 개발 및 선벨트 구상과 관련한 연구는 그렇 게 많지 않다. 남해안 개발에 관한 연구는 1990년대 에 들어와서 담론 수준의 거시적 스케일의 연구가 행 해지기 시작하였다. 대표적인 연구에 해당하는 박양 호 등(1994)은 남해안 개발을 위한 대안으로 다도해 황금해안 프로젝트를 주장하였다. 2000년대 중반에 경남발전연구원에 남해안연구센터가 설립되면서 ‘남 해안시대리뷰’라는 잡지를 만들어 남해안 관련주제를 많이 다루었다. 김성국(2005), 김형국(2005), 이정록 (2005), 류우익(2007), 최상철(2007), 최협(2007), 허 민(2007) 등도 국토균형발전을 위한 남해안 발전 필
요성을 제시하였다.
한편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고 남해안 선벨트가 지 역발전정책의 핵심과제로 등장하면서 남해안 선벨트 와 관련해서는 , 문태헌(2008), 나주몽(2009), 정재희 등(2010), 최영국(2010) 등의 연구가 대표적이다. 반 면에 선벨트 구상과 같이 남해안 개발 논의가 정부의 국가계획 또는 핵심 국정과제로 채택되는 과정에 관 한 시계열적인 접근의 연구는 거의 없다. 이런 측면에 서 오랜 논의과정을 거친 남해안 개발 구상이 남해안 선벨트로 구체화되고, 정부의 국가계획 및 지역발전 정책으로 채택되는 과정을 고찰했다는 점에서 이 연 구가 다른 연구와 차별되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2. 남해안 발전에 대한 논의와 주체들의 역할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 강화와 국토균형발전을 위
해 남해안을 국토공간의 새로운 성장축으로 육성해 야 한다는 주장은 제17대 대통령 선거 이전에도 있었 다(이정록, 2009, 44). 일부 전문가 집단에서 남해안 개발과 발전의 타당성에 관한 논의를 지속시켰고, 이 러한 논의과정에는 여러 개인과 집단이 참여하였다.
한국미래학회, 지역화합특별위원회, 남해안포럼, 남 해안에 속해 있는 지자체인 부산·경남·전남 등은 남 해안 발전에 대한 논의를 지속시키는데 중요한 역할 을 하였다. 이들 주체들의 활동과 노력에 의해 선벨트 구상이 제17대 대통령 선거 한나라당 정책공약으로 채택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선벨트 구상이 대통 령선거의 정책공약으로 등장한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서는 전술한 주체들이 남해안 개발 및 발전에 관한 논 의에 참여한 배경과 활동을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1) 한국미래학회 활동
한국미래학회는 1988년 3월 목포에서 ‘서해안 시대 의 개발과 목포의 발전’이라는 주제의 심포지엄을 개
그림 1. 남해안 개발·발전을 주장한 주체들의 활동과정 자료: 이정록(2012)을 재구성함
최하여 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해서 남해안 벨트 개발 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김형국, 2005, 000). 그리 고 이런 논의를 바탕으로 한국미래학회는 1994년에
『물과 한국인의 삶』이라는 저작물3)을 발간하였고, 여 기에 남해안 개발의 청사진을 제시하였다.
이 책은 한국미래학회의 일부 회원들이 1993년부 터 연구를 시작하여, 이천, 목포, 옥포(거제도) 등지 에서 세미나와 토론회를 개최한 결과를 집대성한 것 이다. 이 책에서는 21세기 환태평양 시대에 대비한 국 가경쟁력 제고 전략으로 목포와 부산을 연결하는 다 도해 개발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국토공간의 균형 적 발전을 위해 광역 금강권, 목포권, 환광양만 지역 등의 L자형 개발(이한빈, 1994), 한국의 해양화 전략 에서 태평양으로 열린 남해안의 지리적 중요성(김진 현, 1994), 새로운 해양지향적 국토개발축으로 서해 안축·남해안축·동해안축의 구축(박양호 등, 1994) 등이 수록되어 있다.
특히 남해안의 효율적인 발전전략으로 다도해 황 금해안 10대 프로젝트4)가 제시되었다. 남해안은 국제 적·해양적 발상전환 가능지역, 국토균형발전의 신전 략지역, 지역감정과 지역갈등 해소지역, 해양문화 발 현 가능지역, 한국 민주화 발원지역 등이라는 의미성 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박양호 등, 1994, 515-516) 10 대 프로젝트를 통해 남해안의 효율적 개발이 가능하 다고 제안하였다. 또한 한국미래학회 일부 회원들의 노력으로 남해안 개발의 필요성이 일부 신문의 사설 과 칼럼으로 발표되기도 하였다.5)
한국미래학회가 주창한 남해안 개발구상은 1996년 김영삼 정부에서 ‘세계화추진위원회’를 통해 정책화 를 시도하였지만 국정과제로 채택되지 못하였다.6) 그 렇지만 한국미래학회의 연구활동은 남해안 개발 및 발전에 관한 논의과정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왜냐하면 남해안을 국토공간의 새로운 성장축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새로운 시각을 관련분야 이해당사 자들에게 제공했기 때문이다. 특히 김형국(2005)의 지적처럼, 미래학회는 여러 활동을 통해 남해안 벨트 개발에 관한 논의를 태동시켰고, 남해안 개발 구상의 국가정책화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남해안 개발과 발 전에 관한 논의과정에서 시금석 역할을 하였다고 본
다.
2) 한나라당 지역화합발전특별위원회 활동
한나라당의 지역화합발전특별위원회(이하 지역화 합특위)는 한국미래학회에 이어 남해안 개발과 발전 을 공식적으로 주장하였고, 관련 법률의 제정을 추진 한 주체 중의 하나이다. 한나라당은 영호남 동서갈등 해소와 지역화합을 목적으로 특별기구에 해당하는 지역화합특위를 2004년 6월에 조직하였고, 호남지역 현안과제 해결과 지역발전을 위해 정책간담회를 포 함한 많은 활동7)을 수행하였다(이정록, 2012, 43). 지 역화합특위의 많은 활동 중에서 정치적으로 주목을 받은 것은 남해안 개발의 필요성과 함께 지역화합특 구 지정을 위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표 1 참조).
2004년 6월 17일 출범한 지역화합특위는 11월 5일 여수에서 관광개발 세미나8)를 개최하여 남해안 개 발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11월 11일에는 여수 세미 나 결과를 바탕으로 행정수도 위헌결정으로 표출된 지역갈등과 대립을 해소하고 지역화합을 꾀하기 위 해 광양만권 주변의 전남과 경남 10개 시·군9)을 지역 화합특구로 지정하자는 방안을 제시하였다(이정록, 2012, 44-45). 이 권역은 광양만권경제자유구역이 위 치해 있고, 전남 동부와 경남 서부지역의 경제교류가 활발하며, 산업적 인프라의 공유가 가능하기 때문에 지역화합특구를 지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얻었다.
또한 지역화합특위는 2005년 2월 통영에서 세미 나10)를 개최하여 남해안 개발의 타당성을 강조하였 다. 류우익은 주제발표를 통해 충청권 행정수도 이전 의 대안으로 남해안 벨트 구상을 제시하였다. 특히 남 해안은 국토구조의 해양지향적 전환, 국토의 균형발 전, 선진국형 미래산업 기지, 영호남 지역화합, 우리 나라의 동북아 중심국가 도약 등에 기여하는 세계화 전선 구축에 적합하기 때문에 남해안 벨트 개발이 국 정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류우익, 2007, 106-116).
한편, 지역화합특위는 남해안 벨트 개발에 관한 논 의와 병행해서 지역화합특구 지정을위한 활동을 펼
쳤다. 지역화합특위는 2004년 12월 1일 특위에 참여 하는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간담회를 개최하여 지역 화합특구 설치와 행정구역 개편에 대한 의견을 수렴 하였다. 서울 여의도에서 개최된 간담회에는 특위소 속 의원 20여명이 참석하였고, 지역화합특구 설치를 위한 특별법 제정, 고흥·여수·통영반도의 교량건설 예산확보, 남해안에 인접한 지자체장 협의회 구성 등 이 논의되었다(이정록, 2012, 45). 외부 전문가로 참 석한 유우익(서울대 지리학과 교수)은 행정수도의 대 안으로 개발잠재력이 풍부한 남해안 개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지역화합특위는 2004년의 활동과 논의에 근거하여 2005년 3월 21일 지역화합특구 지정을 위한 법안을 발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이정록, 2012, 46).
2005년 5월 2일에는 지역화합특구법 제정을 위한 공 청회11)를 개최하였고, 규제 완화와 세금 감면, 보조금 지급, 민자 및 외자 유치 지원, 지역화합특구청 지정, 특구지원을 위한 종합발전계획 수립 등에 관한 내용 을 논의하였다(이정록, 2012, 47). 이러한 과정을 거 쳐 2005년 9월에 의원입법으로 ‘지역화합특별구역 지 원에 관한 특별법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12) 하지만 2007년 11월 ‘동서남해안권발전특별법안’이 대안13) 으로 국회를 통과하면서 지역화합특위가 주도해서 발의한 지역화합특구법안은 입법화에 실패하고 말았 다(이정록, 2012, 40-41).
한나라당 지역화합특위가 남해안 발전의 성장거점 역할을 수행할 지역화합특구 지정을 위한 특별법 제 정에는 실패하였지만, 남해안 발전의 중요성과 타당
성을 정치적인 문제로 부각시키는 데는 성공을 하였 다. 뿐만 아니라 지역화합특위는 남해안 발전의 필요 성을 지속적으로 논의할 새로운 주체인 남해안포럼 결성에 중요한 동인으로 작용하였다.
3) 남해안포럼 활동
남해안포럼은 남해안 지역의 공동발전을 통해 새 로운 남해안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 발하였다. 남해안 종합개발을 통해 국가경쟁력 제고, 국토균형발전, 영호남 상생발전 등을 꾀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남해안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활동, 남해안 개발 타당성의 공론화와 확산 등을 목적으로 포럼이 만들어졌다(이정록, 2007, 15). 남해안포럼은 2005년 2월 26일 경남 통영에서 개최된 한나라당 지역화합특 위의 정책세미나에서 발기인 모임을 갖고 출범하였 다. 포럼에는 남해안에 관심을 가진 대학교수와 전문 가, 한나라당 지역화합특위에 활동한 국회의원, 남해 안에 위치한 지자체 관계자 등 50인이 발기인14)으로 참여하였다(이정록, 2007, 15).
남해안포럼의 결성과 활동과정에는 당시의 사회·
정치적 상황을 포함한 여러 요인이 영향을 미쳤다. 첫 째는 한나라당 지역화합특위 활동이다. 남해안 개발 필요성을 강조한 한나라당 지역화합특위의 활동은 영호남 교류를 통한 지역화합과 공동발전에 관심이 있는 많은 이해당사자들을 결집시키는 계기가 되었 다(이정록, 2007, 16). 둘째는 신행정수도 대안으로 남해안개발이 등장하였다. 신행정수도 건설보다는 표 1. 지역화합발전특별위원회의 주요 활동(2004-2005)
일시 주요 활동 장소 비고
2004.06.17. 지역화합발전특별위원회 출범
2004.11.05 다도해 해상공원 국제관광개발 세미나 개최 여수 2004.11.11. 지역화합특구 지정 필요성 제안
2004.12.01. 지역화합특구 신설을 위한 간담회 개최 서울
2005.02.26. 관광개발 세미나 개최 통영 남해안포럼 발기인 모임
2005.05.02. 지역화합특구 지정을 위한 공청회 개최 국회
2005.09.21. ‘지역화합특별구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 국회 제출 입법화 무산 자료: 이정록(2012)을 재구성함
남해안을 수도권에 대응하는 신성장축으로 육성하여 국토균형발전을 꾀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일부 소수 의견15)이 등장하였고,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포 럼에 적극 참여하였다(이정록, 2007, 16). 셋째는 전 남도와 경남도의 역할이다. 서남권 J프로젝트를 실현 시켜야 하는 박준영 전남도지사와 ‘남해안시대’를 주 창한 당시 김태호 경남도지사의 도정철학이 포럼활 동에 영향을 주었다. 넷째는 여수세계박람회 유치계 획이다. 2004년 12월에 중앙정부가 2012년 여수세 계박람회 유치를 국가계획으로 확정하면서 여수시와 남해안 전역의 지자체16)가 세계박람회에 연계한 남해 안 개발에 관심을 가지면서 포럼 활성화에 도움이 되 었다. 다섯째는 남해안 연구에 대한 전남대의 적극적 참여이다. 전남의 해안과 도서지역 발전을 위해 대학 이 남해안 연구를 주도해야 한다는 인식을 당시 전남 대 강정채 총장이 가졌고, 그 결과 전남대가 남해안포 럼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17) 이와 같이 남해안포럼 활성화에는 지역화합특위를 이끈 정의화 국회의원, 신행정수도 건설의 대안, 전남과 경남지역 지자체들 의 관심, 전남대의 적극적인 재정지원 등의 요인이 복 합적으로 작용하였다(이정록, 2007, 16)
남해안포럼은 2005년 2월 출범한 이후, 4회의 포럼 을 개최하였다(표 2). 제1회 포럼에서는 남해안의 자 연환경 활용방안, 남해안 관광개발의 비전, 남해안과 국가균형발전, 남해안 발전과 지역단체의 역할 등에 대한 토론이 있었고, 남해안 시대를 위한 행동선언18) 을 채택하였다(이정록, 2007, 16). 제2회 포럼에서는
국토균형발전 측면에서 남해안 발전이 중요하며, 이 를 위한 중앙정부 차원의 특별법 제정과 특별법에 포 함될 내용이 주로 논의되었다(이정록, 2007, 16-17).
제3회 포럼에서는 해양문화의 연구를 위한 영호남 학 자들의 역할과 향후의 과제에 관해 협의를 하였다(이 정록, 2007, 17). 제4회 포럼에서는 2012여수세계박 람회 개최의 타당성, 여수세계박람회의 개최가 인류 사회와 국가 및 지역사회에 주는 의미 등에 관해 토론 하였고, 포럼결과는 세계박람회기구 사무국에 전달 되었다(이정록, 2007, 17).
남해안포럼 활동은 동서남해안권발전특별법 제정 에 필요한 논거 제공, 2012여수세계박람회 유치 필 요성의 확산, 남해안에 관심을 갖는 전문가들의 연계 시키는 구심체 역할 등의 성과를 만들어냈다(이정록, 2007, 16-17). 특히 포럼활동은 일부 정치권과 지방자 치단체 중심으로 논의되던 남해안 발전 중요성을 국 가적인 과제로 끌어올린 제기를 제공하였다. 또한 포 럼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일부 회원들이 당시 한나라 당 이명박 후보의 대선공약인 남해안 선벨트 구상을 탄생시키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4) 이명박 대통령 후보 선거공약: 한반도 선벨트 구상
1990년대 초반부터 남해안 발전의 필요성과 타당 성을 제기한 한국미래학회, 한나라당 지역화합특위, 남해안포럼, 부산·경남·전남 3개 지자체 등의 활동 표 2. 남해안포럼의 활동(2005-2007)
구분 개최일자/장소 주제 주요 내용
제1회 2005. 4.15-16/여수 남해안 발전 국제심포지엄 •‘남해안 선언문’ 제정
•남해안 시대를 열기 위한 행동선언 채택
제2회 2006. 11. 3/여수 남해안 발전을 위한 제도와 전략 •국토균형발전과 남해안의 역할
•남해안발전특별법 제정 필요성
제3회 2007. 1. 19/부산 남해안시대와 해양문화 •해양문화의 연구 필요성
•영호남 학자들의 역할과 향후의 과제
제4회 2007. 4. 2/여수 2012 여수세계박람회 의미 •2012 세계박람회 여수 개최 당위성
•여수세계박람회와 남해안 발전효과 자료: 이정록(2007)을 수정함
과 노력은 제17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구체화되기 시작하였다. 남해안 발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지역균형발전과 국가통합의 주요 공약으로 채택한 주체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였다.
2007년 8월 5일 당시 이명박 후보는 광주에서 열 린 한나라당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광주전남 합동연 설회에 앞서 기자회견을 갖고 광주·전남 지역공약과 함께 ‘남해안시대를 여는 한반도 선벨트 구상’을 발표 하였다(그림 2 참조). 핵심은 남해안을 수도권에 대 응하는 신성장산업의 벨트로 만들어 지역균형발전과 영호남 상생을 도모한다는 내용이다.19) 당시 이명박 후보는 한반도 선벨트 구상을 대선공약으로 제안한 배경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오늘 말씀드릴 ‘한반도 선벨트’는 목포에서 부 산까지 남해안 일대에 걸친 지역을 신성장산업의 벨트로 만들어 우리나라의 과제를 해결하고 미래 를 열어가는 구상입니다. 목포권과 부산권 그리 고 가운데 광양만을 중심으로 하는 남중권의 세 권 역으로 구성됩니다. 한반도 선벨트 개발은 미래지 향적으로 철저한 계획에 의해 이루어질 것입니다.
… 목포권, 남중권, 부산권은 육로와 항공로 그리 고 연안해운으로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한반도 선 벨트를 이룹니다. 그리하여 한반도 선벨트는 발전 축이 되고 국토의 균형발전을 이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함께 세계로 나아가 교류하고 경쟁하게 됩 니다. 교통인프라의 확충으로 접근성을 향상시키 는 것이 선결과제입니다. 나아가 생활환경을 개선 하여 정주인구는 물론 유동인구를 늘려가야 합니 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도자의 의지가 중요합니 다. 국책사업으로 지정하고 종합계획을 수립하여 추진하게 되면 정책에 대한 신뢰가 생겨납니다.”
(국제정책연구원, 2007, 내부자료)
한반도 선벨트 구상은 이명박 후보가 한나라당 대 선후보로 확정되면서 실현가능성이 높아졌다. 당시 이명박 후보는 서울과 지방, 도시와 농촌, 동과 서의 통합을 위한 5가지 약속 중의 하나로 ‘남해안시대를 여는 한반도 선벨트 구축’을 공약하였다. 한나라당 대
통령선거 정책공약집에는 한반도 선벨트 구축이 필 요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2012년 여수 엑스포 유치를 계기로 남해안은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맞이하였습니다. 한반도의 세계화 전선이자 아름답고 청정한 해안, 온난하고 쾌적한 기후를 가진 남해안은 국토균형발전을 이 끌 새로운 발전축으로 도약할 수 있습니다. 한반 도 선벨트(Sunbelt) 전략을 통해 권역별로 고르게 성장, 발전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한나라당, 2007)
한나라당 대통령선거 정책공약집에 수록된 한반도 선벨트 구축 공약은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과정에 서 이명박 후보가 제시한 내용과 거의 유사하였다. 공 약내용은 5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는 전남의 순 천, 여수, 광양, 경남의 남해, 하동, 사천 등 6개 시군 을 남중권으로 설정해 기존 사업을 고부가가치화하 고 항만과 물류산업을 육성한다는 전략이다(한나라 당, 2007, 18). 둘째는 서남권을 동북아 해양문화 관 광거점으로 조성하기 위해 J프로젝트의 강력한 추진, 대불산단과 무안기업도시 활성화, 조선산업타운 조 성, 문화예술, 첨단기술농업, 식품가공산업 등을 지 원하는 전략이다(한나라당, 2007, 18). 셋째는 동남 권을 유라시아 관문도시로 만들기 위해 부산경제자 유구역 활성화, 동남권 신공항건설 등 광역교통망 구 축, 해양·조선산업, 영상문화 및 컨벤션산업 등을 육 성하는 것이다(한나라당, 2007, 18-19). 넷째는 선벨 트 성공을 위해 광역적 교통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이 고, 다섯째는 선벨트 종합개발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통해 사업을 추진한다는 내용이다(한나라당, 2007, 19).
이명박 후보가 제17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대 선공약인 한반도 선벨트 공약은 이명박 정부가 추진 할 지역발전의 핵심 국정과제로 선정되었다. 하지만 한반도 선벨트가 남해안 선벨트로 명칭이 변경되었 고, 명칭변경은 남해안 중심의 단일축이 아닌 동해안 과 서해안도 포함하는 다핵축 개발로 전환하겠다는 정책의 수정을 시사하였다. 동해안과 서해안이 포함
되면서 사실상 선벨트 구상이 축소된 결과를 초래하 였다.
3. 남해안 선벨트 구상의 국가계획 수립과정과 특징
1) 남해안 선벨트 구상의 국가계획 수립과정
이명박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지역정책은 목표, 기 본방향, 추진전략, 대상 등에서 큰 차이를 나타냈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는 2008년 7월 제1차 보고회의 를 개최하여 이명박 정부가 추진할 지역발전정책의 기본구상과 전략을 발표하였다.20) 이명박 정부는 일 자리와 삶의 질이 보장되는 경쟁력 있는 지역창조를 지역발전정책의 비전으로 설정하였고, 이를 달성하 기 위한 5대 추진전략21)을 제시하였다. 남해안 선벨
트 구상은 5대 추진전략 중의 하나인 ‘전 국토 성장잠 재력 극대화’ 전략의 세부과제인 초광역개발권 개발 계획에 포함되었다. 초광역개발권은 대외개방형 국 가경쟁력 제고를 위하여 남해안 선벨트, 동해안 에너 지·관광벨트, 서해안 신산업벨트, 남북교류·접경벨 트 등 4개 개발벨트를 설정하였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는 제1차 회의를 토대로 초광 역개발권 기본구상 수립을 위한 연구작업을 진행하 였고, 남해안 선벨트 기본구상 연구가 가장 먼저 시작 되었다. 선벨트 연구는 기본구상, 기업유치, 관광거 점, 문화산업 등의 4개 과제22)로 구분하여 진행되었 다. 또한 동서해안 초광역벨트 개발방안 연구23)도 행 해졌다. 한편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주관한 초광역 개발권 기본구상 수립활동과 병행하여 당시 국토해 양부가 주관이 되어 초광역개발권 개발계획 수립도 진행하였고, 동서남해안 초광역개발권 사업의 효율 적인 추진을 위한 조직체인 동서남해안권발전기획단 이 국토해양부에 설치되었다.
그림 2. 이명박 후보가 제시한 한반도 선벨트 구상도 자료: 국제정책연구원(2007)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제3차 회의24)에서는 5+2 광 역경제권 전략을 보완하는 2단계 지역발전정책인 기 초생활권과 초광역개발권 추진을 위한 기본방향이 보고되었다. 초광역개발권에 포함한 남해안 선벨트 의 비전은 동북아 해양 관광·물류·경제중심지 건설 로 제시되었고, 비전달성을 위한 항만·물류산업과 국제무역·금융거점 구축, 남서권 글로벌 관광레저도 시 조성, 물류·산업·휴양 복합거점 개발, 남해안 크 루즈 등 선벨트 통합문화관광권 등의 4가지 개발방향 과 중장기 검토대상 프로젝트25)들이 예시되었다. 제3 차 회의에 보고된 남해안 선벨트 비전과 개발방향은 남해안 기본구상 연구팀이 작성한 내용이 대부분 포 함되었다.
지역발전위원회26)가 주체가 되어 수립한 남해안 선벨트 개발의 기본구상이 최종 확정된 시기는 2009 년 12월이다. 지역발전위원회는 제6차 회의27)에서 초 광역개발권 발전 추진방향을, 당시의 국토해양부는 동·서·남해안권 초광역개발 기본구상을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확정하였다. 4개 초광역개발권 중의 하나 인 남해안 선벨트 비전은 ‘수도권 대극(對極)의 동북 아 신 경제·물류·휴양허브’로 설정되었고, 이를 위 한 글로벌 경제물류거점으로 육성, 세계적인 해양관
광휴양지로 조성, 동합인프라 및 초국경 네트워크 구 축, 남중권을 동서통합 상징지역으로 개발 등의 개발 전략이 제시되었다. 초광역개발권은 국가균형발전특 별법, 동서남해안권발전특별법, 접경지역지원법 등 3개의 법률에 의한 법정계획의 성격을 가지며, 기본 구상 작업에는 지역발전위원회, 국토해양부 동서남 해안권발전기획단, 국토연구원 등이 주도적으로 참 여하였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2010년 4월에 열린 지역발전위 원회 제7차 회의28)에서 남해안 선벨트 종합계획(안) 이 수립되어 보고되었다(그림 3). 제7차 회의에서 보 고된 남해안 선벨트 종합계획(안)은 2008년 7월부터 당시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연구한 기본구상을 바 탕으로 관계부처와 지자체의 협의를 거쳐 만들어졌 다.29) 그리고 2010년 5월 남해안권 발전종합계획이 확정되면서 제17대 대통령 선거 한나라당 공약이었 던 한반도 선벨트 구상은 이명박 정부 초광역개발권 사업을 대표하고 상징하는 핵심적인 지역정책으로 탄생하였다.
그림 3. 지역발전위원회의 남해안 선벨트 구상 정책화 과정(2008-2010)
2) 남해안 선벨트 종합계획의 주요 내용
제17대 대선공약으로 출발한 선벨트 구상은 2010 년 5월 국토해양부가 남해안권 발전종합계획으로 결 정·고시함에 따라 정부계획으로 최종 확정되었다.
계획의 대상은 부산·경남·전남의 해안에 연접한 35 개 시군구이고, 동서남해안권발전특별법30)에 법적 근거를 갖고 있다. 계획의 비전은 새로운 경제·물 류·휴양허브의 선벨트 조성이고, 남해안을 동북아 5 위 경제권으로 도약시키고, 새로운 국토 성장축으로 조성하며, 2시간대 통합생활권을 만드는 것이 핵심목 표이다(그림 4).
남해안 선벨트 종합계획에서는 전술한 목표를 달 성하기 위하여 네가지 전략을 수립하였다. 첫 번째 전 략은 세계적인 해양 관광·휴양지대 조성이며, 친환 경 해양관광사업 육성, 문화예술·녹색생태 등 테마 관광 활성화, 크루즈산업 육성과 마리나 항만 조성을 통한 신해양관광 연계 인프라 구축 등을 중점과제를 선정하였다. 두 번째 전략은 글로벌 경제·물류거점 육성이며, 중점과제는 전략산업의 구조 고도화와 미 래 신산업 창출, 부산항과 광양항을 중심으로 동북아 물류항만 게이트웨이 구축, 농수산업 특화발전 기반 조성 등이다. 세 번째 전략은 통합 인프라 및 초국경 네트워크 구축이며, 중점과제는 2시간대 통합 생활권 을 위한 인프라 구축, 초국경·광역경제권 간 연계 네 트워크 구축이다. 네 번째 전략은 동서통합 및 지역발 전거점 육성이며, 이를 위해 섬진강 유역 중심의 동서
통합 및 지역상생기반 구축, 여수EXPO와 연계한 세 계적 관광명소화 추진 등을 중점과제로 계획하였다 (지역발전위원회, 2010).
남해안 선벨트 종합계획은 2020년을 목표로 하는 중장기 계획으로, 민간자본을 포함하여 약 24조원의 사업비가 소요될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를 위해 해안 권발전특별법을 개정하여 사업추진절차를 대폭 간소 화하고, 투자활성화를 유도하기 위하여 자연공원과 수산자원보호구역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향후 계획 도 포함하였다.
3) 남해안 선벨트 종합계획의 성과와 의미
이명박 정부에서 국가계획으로 확정되어 현재 시 행중에 있는 남해안 선벨트 종합계획은 중앙정부 차 원에서 입안된 많은 지역정책과는 차별되는 특징적 인 성과와 의미를 갖고 있다.
첫째는 이해당사자 집단과 개인의 적극적인 노력 의 결과이다. 1990년대 초반부터 주창된 남해안 개발 은 한국미래학회, 한나라당 지역화합특위, 남해안포 럼 등의 활동에 힘입어 논의가 지속되었고, 제17대 대 통령후보 선거공약을 거쳐서 이명박 정부 국가계획 으로 확정되었다. 물론 남해안 개발구상이 국가계획 으로 확정된 과정에는 전술한 이해당사자들이 중요 한 공헌을 하였지만, 김형국(2005)의 지적처럼 대통 령의 의지가 없었다면 국가계획으로 채택되지 못했 을 것이다.
그림 4. 남해안 선벨트 종합계획의 비전과 추진전략 자료: 지역발전위원회, 2010, 회의자료
둘째, 남해안 전역을 계획범위로 한 최초의 국가 계획이다. 남해안의 지리적 위치성 때문에 많은 부문 별·지구별 국가계획이 수립되고 시행되었다. 하지만 역대 정부는 남해안 전역을 통합적인 관점에서 접근 하여 종합개발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국가정책화하 는 작업에는 인색하였다.31) 반면에 이명박 정부는 선 벨트 대선공약을 바탕으로 남해안 전역을 계획대상 으로 하는 최초의 작업인 선벨트 종합계획을 수립하 고 국가계획으로 확정하였다.
셋째, 수도권에 대극하는 제2의 수도권 육성전략 이라는 새로운 접근이다. 선벨트 계획은 수도권 중심 의 단핵형구조를 탈피하여 개방형·해양지향형 국토 의 공간구조를 구축하기 위한 다핵형 전략이다. 신행 정수도의 대안으로 남해안이 부각된 배경 또한 수도 권에 대응하는 신성장축의 개발이 가능한 산업인프 라와 잠재력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넷째, 행 정구역을 초월한 광역적 연계계획이다. 선벨트 계획 은 남해안에 위치한 부산, 경남, 전남 등 3개 지자체 가 개별적으로 추진해 오던 인프라 구축과 지역개발 사업을 광역적으로 연계하고 통합시킨 최초의 국가 계획이다.
다섯째, 남중권에 속한 지자체들의 연계와 협력을 촉발한 동기를 제공하였다. 선벨트 계획에는 광양만 권 중심의 남중권이 동서통합을 위한 지역발전거점 기능을 수행하는 공간으로 설정되었다. 선벨트 계획 에 의거하여 지역발전위원회는 남중권이 선벨트에 서 실질적인 거점역할을 수행하도록 유도하기 위하 여 2010년에 남중권 통합성 강화를 위한 연구32)를 하 였다. 또한 남중권에 속한 9개 시·군은 지역발전위원 회의 지원에 힘입어 2011년 남해안 남중권 발전협의 회33)를 발족시켜 공동협력을 모색하고 있고, 실제로 지역발전위원회는 별도의 예산으로 남중권 지자체들 의 연계협력을 지원하였다.
남해안 선벨트 종합계획은 30여년 동안 전문가집 단 내에서 논의된 개발구상이 국가정책으로 채택·시 행된 최초의 사례라는 점에서 다른 지역정책들과 차 별된다. 남해안 벨트 개발구상이 한반도 선벨트 구축 으로, 남해안 선벨트 구상으로, 그리고 이명박 정부 의 핵심 지역정책인 남해안 선벨트 종합계획으로 확
정되는 과정에 많은 이해당사자와 집단이 역할을 하 였다. 특히 일부 지리학자들34)의 적극적인 활동과 공 헌이 없었다면 남해안 선벨트 구상이 국가계획으로 탄생하지 못했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4) 남해안 선벨트 계획의 문제점과 한계
남해안 선벨트 계획은 2020년을 목표로 하는 국가 계획이고, 국비와 지방비, 민간자본 등을 투자하여 2010년부터 일부 선벨트 사업들이 추진되고 있다. 소 수의 시범사업이 2010년부터 시작되었고, 현재 사업 이 진행 중에 있기 때문에 선벨트 계획의 문제점과 한 계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지만, 일부 문제점과 한계가 노출되고 있다.
첫째, 남해안 선벨트 계획은 대선공약과 비교해서 많이 후퇴·축소되었다는 사실이다. 대선공약에서는 선벨트 특별법을 제정하여 추진한다고 약속하였지만 실제로는 특별법을 제정하지 않고, 노무현 정부에서 제정한 동서남해안권특별법에 편승하여 사업을 추진 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대선공약에는 서해안과 동 해안벨트 사업은 존재하지 않지만, 동해안·남해안·
서해안·접경지역을 포괄하는 초광역개발권이 정부 의 지역정책으로 채택되면서 남해안 선벨트는 4개 광 역벨트사업 중의 하나로 위상이 대폭 추락하였다. 또 한 남중권을 독자적인 남중자유경제지역으로 발전시 키겠다는 내용도 수용되지 못하였다.
둘째, 사업추진의 구체적인 성과를 확보하는데 근 본적인 한계가 있다. 2020년까지 160여개의 선벨트 사업이 예정대로 진행하려면 약 24조원 정도의 사업 비가 소요된다. 하지만, 2010년부터 2013년까지 7개 사업35)에 약 130억원의 국비가 투입되어 선벨트 사업 의 실현 가능성이 문제가 되고 있다. 선벨트 사업이 법정계획이고, 광역발전특별회계에 근거하여 재원을 확보할 수 있지만, 소규모 예산지원, 민간자본에 의 존한 사업기획, 중앙정부의 정책적 무관심 등으로 사 업이 축소·지연되어 계획목표인 수도권에 대응한 신 성장축 조성은 요원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4. 결론 및 시사점
지역개발 및 발전에 관심을 가진 특정 이해당사자 집단 또는 개인의 주장과 대안이 지역발전을 위한 국 가정책이나 계획으로 발전된 경우는 많다. 프랑스의 소피아 앙티폴리스를 첨단과학도시로 만드는데 기여 한 피에르 라피트(Pierre Lafitte)도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이명박 정부에서 국가계획으로 확정된 남 해안 선벨트 구상도 동일한 사례이다.
이 연구는 1990년대 초반부터 지역발전에 관심을 가진 일부 전문가와 단체가 주장한 남해안 발전과 관 련한 아이디어들이 국가의 지역정책으로 채택되고 국가계획으로 수립되는 과정에 나타난 특징을 시계 열적 관점에 주안점을 두고 접근하였다. 왜냐하면 우 리나라에서 국가 및 지역발전을 위해 중앙정부 차원 에서 수립·시행한 특정정책을 대상으로 태동, 논의 와 전개, 계획수립과 집행 등을 포함한 일련의 정책화 과정에 대한 특징을 시계열적으로 접근한 연구가 많 지 않기 때문이다.
2010년에 이명박 정부 지역정책 및 국가계획으로 확정·고시된 남해안 선벨트 종합계획은 비교적 오랜 논의과정을 거쳐 정부의 핵심 지역정책으로 채택된 매우 특별한 사례이다. 남해안 개발구상에 대한 집단 적인 논의의 시발은 1990년대이다. 1990년 남해안에 관심을 가진 한국미래학회 일부 회원들이 남해안의 체계적인 개발을 역설하였고, 2004년부터는 한나라 당 지역화합특위가 논의를 재가동시켰고, 남해안포 럼은 2005년부터 남해안 개발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 를 확산시키는데 기여하였다. 이런 과정을 거쳐 남해 안 개발구상이 한반도 선벨트 구상으로 명명되어 제 17대 대통령선거 한나라당 선거공약으로 채택되면서 구체화되기 시작하였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 한반도 선벨트 구상은 남해안 선벨트 사업으로 개칭되어 정부의 핵심 지역 정책인 초광역개발권의 선도사업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2010년 5월에 정부의 국가계획으로 확정되었 고, 2010년부터 중앙정부의 광특회계에서 사업비가 지원되어 시범사업이 진행 중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한반도 선벨트 구상이 남해안 발전 종합계획으로 확 정되는 과정에는 지역발전위원회가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였고, 선벨트의 기본구상을 수립하는 과정에 는 일단의 지리학자들이 적극 참여하였다.
남해안 선벨트 계획은 남해안 전역을 계획대상으 로 하는 최초의 국가계획이고 법정계획이라는 상징 성과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선벨트 계획이 여러 주체들 의 노력으로 국가계획으로 확정되어 현재 사업이 시 행되고 있지만, 구체적인 성과를 확보하여 남해안이 수도권에 대응하는 제2의 수도권으로 기능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중앙정부의 확 고한 의지, 안정된 재원확보와 예산지원 등이 수반되 지 않으면 남해안 선벨트 계획은 축소·지연될 개연 성이 매우 높다.
이 연구는 선벨트 구상이 정부의 지역정책 및 국가 계획으로 확정되는 과정의 특징을 접근하는데 중점 을 두었기 때문에 선벨트 사업의 효과와 문제점에 대 한 분석에는 소홀하였다. 특히 선벨트 사업의 시행이 3년밖에 되지 않아 구체적인 사업성과와 문제점을 도 출하지 못한 것이 이 연구의 한계이다. 따라서 이와 관련한 문제는 후속 연구를 통해 보완하려고 한다.
이 연구를 수행하면서 확인할 수 있었던 중요한 사 실은 남해안 선벨트 구상에서 시작하여 남해안 선벨 트 종합계획으로 완성되는 과정에 일부 지리학자들 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아마도 일부 지리학 자들의 참여와 역할이 없었다면 남해안 선벨트 구상 은 이명박 정부의 핵심 지역정책으로 채택되지 못했 을 것이다.
주
1) ‘국가지역정책(national regional policy)’이란 중앙정부가 국가적 차원(national scale)에서 지역발전을 위해 시행하 는 정책을 말하고, 이는 지방정부가 지역적 차원(regional scale)에서 지역발전을 위해 수립·시행하는 지역정책(re- gional policy)과 구별된다. 즉, 국가지역정책은 국가적 관 점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김형국, 1983, 268; 송우경, 2012, 13). 이 연구에서 자주 등장한 ‘지역정책’은 중앙정부
가 국가적 차원에서 국가균형발전과 지역발전을 꾀할 목적 으로 수립한 ‘국가지역정책’의 의미와 개념을 내포하고 있 기 때문에 지방정부가 수립한 지역정책과는 개념적으로 차 이가 있다는 점을 밝혀둔다.
2) 초광역개발권은 해안 및 접경벨트(4개)와 내륙벨트(3개) 로 구성되기 때문에 일명 ‘4+3’ 벨트형 권역(송우경, 2012, 44)이라고도 불리며, 해안 및 접경벨트에 해당하는 남해안 선벨트, 서해안 신산업벨트, 동해안 에너지·관광벨트, 남 북교류·접경벨트 등의 4개와 내륙벨트에 해당하는 백두대 간벨트, 내륙첨단산업벨트, 대구-광주연계협력권 등으로 구성된다(지역발전위원회, 2009).
3) 한국미래학회는 1968년 ‘한국 2000년회’ 이름으로 결성되 었고, 1993년 『산과 한국인의 삶』을 시작으로 『물과 한국인 의 삶』(1994), 『강과 한국인의 삶』(2012) 등의 시리즈 저작 물을 발표하였다.
4) 목포권 국제교역기지 조성, 영호남 화합차원의 환광양만 권 종합개발, 완도권 종합리조트기지 조성, 마린폴리스 (marine-polis) 개발, 거제도 해양산업기지 조성, 사회간접 시설 건설, 환태평양 전망타워 건설, 동백조림지대 조성, 국제문화예술 이벤트 개발, 연안환경보전사업 추진 등이 다(박양호 등, 1994, 522).
5) 조선일보 1994년 5월 9일자 사설(제목: “다도해 프로젝트 를”)은 지방의 국제화와 개방화, 경제기지화를 위해 다도 해를 세계적인 관광지로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를 위 한 중앙정부 차원의 국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촉구하 였다. 또한 최정호(당시 연세대 교수)는 동아일보(1994년 6월 12일자) 칼럼(제목: “남해안 개발에 내일 달렸다”)에서 환태평양시대에 대비하고 국토균형발전을 꾀하기 위해서 는 남해안 개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6) 1996년 김영삼 정부 시절에 한국미래학회 중진회원들이
‘세계화추진위원회’의 위원으로 많이 참여하였고, 위원회 에 참여한 일부 학회 회원들이 “21세기를 위한 남해안개발 정책(안)”을 세계화추진위원회 국정과제로 채택시키려고 노력하였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김영삼 정부에서 남해 안 개발이 국정과제로 채택되지 못한 배경에는 여러 요인 이 작용하였지만, 지역개발에 대한 위정자의 안목 부족이 결정적인 요인이었다는 주장도 있다(김형국, 2005, 4-5).
7)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 한나라당은 호남지역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지역화합특위를 설치하였고, 정의화 국회의원(부산 출신의 당시 3선 의원)이 위원장을 맡았다. 특위가 호남민심을 얻기 위한 일명 ‘서진정책’을 추진하는데 첨병역할을 한다는 일부 비판적인 시각도 있었 지만(일요서울, 2004년 12월 13일자), 호남지역 예산확보, 지역화합특구 추진, 여수엑스포 유치지원 등 많은 활동을 수행하였고, 일정한 성과도 확보하였다. 특히 지역화합특
위가 많은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호남지역 여론주도층 의 호응을 얻게 된 배경에는 정치권에 입문하기 전부터 ‘영 호남 민간교류협의회’ 활동을 통해 동서화합을 위해 노력 한 당시 지역화합특위 정의화 위원장의 개인적인 정치철학 과 신념이 중요하게 작용하였다. 이런 활동으로 정의화 국 회의원은 광주광역시 명예시민, 여수시 명예시민 등으로 위촉되었고, 조선대학교가 수여하는 명예박사 학위를 받 기도 했다.
8) 2004년 11월 5일 여수 상공회의소에서 개최된 세미나(주 제: ‘다도해 해상공원 국제관광개발’)에서는 당시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최상철(발표주제: 남해안시대의 도래와 새로운 지역주의 창조)과 전남대 지리학과 교수 이정록(발 표주제: 남해안 관광거점개발의 필요성과 과제)의 주제발 표와 종합토론이 행해졌고, 최상철교수와 토론자로 참석 한 곽영훈 박사가 전남과 경남의 일부 시군을 묶어 특구를 만들자는 의견을 제시하였다(이정록, 2012, 44).
9) 10개 시·군은 경남의 진주, 하동, 사천, 남해와 전남의 여 수, 순천, 광양, 고흥, 구례, 곡성 등이다.
10) 2005년 2월 25일 통영에서 개최된 세미나(주제: 남해안 관광벨트 개발)는 지역화합특위가 주최를 하였지만, 한나 라당과 민주당 정책위원회, 여의도 연구소, 통영시청, 통 영상공회의소 등이 후원을 하였고, 세미나의 식전행사로 서 남해안 발전에 관한 열린 토론체인 ‘남해안포럼’ 발기를 위한 취지문이 발표되었다(이정록, 2012, 45).
11)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개최된 공청회에는 당시 류 우익 서울대 교수를 비롯한 관련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하였 고, 전남의 여수, 광양, 순천, 구례, 경남의 진주, 사천, 남 해, 하동 등 8개 시·군을 특구지정의 범역으로 설정하는 방안이 논의되었다(이정록, 2012, 46).
12) 지역화합특별구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의안번호 제 2712호) 발의에는 97명의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국회의 원들이 참여하였고, 남해안이 지역구가 아닌 국회의원들 도 많이 참여하였다. 특구의 범역도 공청회에서 제시된 내 용보다 축소하여 광양만권 중심의 7개 시·군(여수, 순천, 광양, 구례, 사천, 남해, 하동)으로 한정하였다(이정록, 2012, 47).
13) 정의화 국회의원(당시 한나라당 지역화합특위 위원장)이 대표발의한 지역화합특구법안에는 많은 국회의원들이 참 여하였지만, 지역구의 이해를 대변하는 국회의원들이 상 이한 여러 법안을 발의하면서 국회의 동의를 받지 못하였 다. 왜냐하면 ‘남해안 발전을 지원하는 특별법(안)’이 2006 년 하반기에 당시의 국회의원이었던 신중식, 김재경, 주승 용 등에 의해 독자적으로 발의되면서 동해안과 서해안에 지역구를 가진 국회의원들이 동해안과 서해안도 법안에 포 함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요구가
통합·재조정되어 ‘연안권발전특별법(안)’으로 확대개정되 어 당시 국회 건설교통위원회 의결을 거쳤지만, 법사위에 서 법안명칭이 ‘동서남해안권발전특별법(안)’으로 변경되 었고, 이 법안이 2007년 11월 21일 국회를 통과하였다(이 정록, 2012, 48).
14) 남해안포럼 발기인은 강정채(전남대 총장), 고석규(목포 대 교수), 곽영훈(사람과 환경 대표), 권오을(국회의원), 김 남길(경상대 교수), 김명주(국회의원), 김수암(부경대 교 수), 김석준(국회의원), 김성곤(국회의원), 김성국(부산대 교수), 기양수(국회의원), 김인세(부산대 총장), 김재경(국 회의원), 김충석(여수시장), 김태기(전남대 교수), 김태호 (경남도지사), 김한도(경남발전연구원), 김현호(한국지방 행정연구원), 문성혁(해양대 교수), 박복재(여수대 교수), 박준영(전남도지사), 박찬숙(국회의원), 박형준(국회의 원), 박호표(청주대 교수), 박희태(국회부의장), 설광석(동 아대 교수), 원지연(여수대 교수), 류우익(서울대 교수), 이 달곤(서울대 교수), 이군현(국회의원), 이상고(부경대 교 수), 이성호(부산대 교수), 이인기(국회의원), 이재웅(국회 의원), 이정록(전남대교수), 이종범(전남도 국장), 이태호 (명지대 교수), 전경수(서울대 교수), 정병국(국회의원), 정 옥주(국토연구원), 정의화(국회의원), 정재희(경남발전연 구원), 주승용(국회의원), 진의장(통영시장), 최덕철(경남 발전연구원), 최상철(서울대 교수), 최영호(해군사관학교 교수), 최협(전남대 교수), 한상준(한국해양연구원), 허민 (전남대 교수) 등이다(괄호는 당시의 직책임).
15) 신행정수도 이전이 위헌판정을 받은 후에, 당시 류우익 서울대 교수는 중앙일보 칼럼(2004년 10월 28일자)을 통 해 서울과 수도권의 과밀해소와 균형발전을 위한 대응축으 로 남해안 국제관광벨트 구축을 주장하였고, 당시 최상철 서울대 교수 또한 2004년 11월 한나라당 지역화합특위가 주최한 토론회의 주제발표를 통해 같은 주장을 견지하였 다. 특히 류우익 교수의 중앙일보 칼럼을 접한 당시 한나라 당 지역화합특위 위원장이었던 정의화 의원이 류유익 교수 에게 연락하면서 두 사람은 남해안벨트 개발에 관한 철학 을 서로 공유하게 되었다. 이런 두 사람의 인식은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 남해안벨트 개발구상이 이명박 후 보 선거공약으로 채택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게 된다.
16) 부산, 경남, 전남이 공동으로 남해안 공동·연계발전에 관 한 연구작업을 기획하였고, 3개 지자체의 재정지원으로 삼 성경제연구소와 3개 시·도 발전연구원이 공동으로 연구한 결과물인 ‘남해안 발전 기본구상’ 보고서가 2005년 12월에 만들어졌다.
17) 남해안포럼 사무국은 전남대의 재정적 지원으로 전남대 공룡연구센터(소장 허민) 내에 위치하였고, 포럼의 공동대 표는 당시 최협 전남대 교수, 류우익 서울대 교수, 김성국
부산대 교수 등 3인이 맡았고, 허민(전남대 지질학과 교수) 과 이정록(전남대 지리학과 교수)이 포럼의 중간관리자 역 할을 하였다.
18) 남해안 선언에 포함된 5가지 행동선언은 다음과 같다.
1) 남해안 지역의 상생적 공동발전을 위해 지역 간 협력을 추구한다. 2) 남해를 생명과 평화의 바다로 가꾸어 나간다.
3) 남해와 연결된 인접의 해안지역과 연대하여 경계를 초 월하는 해양공동체를 형성한다. 4) 동아시아시대의 도래를 선도하는 노력으로서 남해안시대를 준비한다. 5) 남해안을 인류의 꿈과 열정이 결실을 맺는 보금자리로 만든다.
19) 이명박 한나라당 경선후보가 발표한 한반도 선벨트 구상 에는 정의화 국회의원과 이명박 후보 정책캠프인 국제정책 연구원(GSI) 원장이었던 당시 서울대 류우익 교수가 중요 한 역할을 하였다.
20)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 2008년 7월 21일 국가균형발 전위원회가 대통령에게 지역발전정책을 보고한 공식적인 첫 번째 회의가 청와대에서 열렸고, 상생·도약을 위한 지 역발전 기본구상과 전략(국가균형발전위원회), 지역경쟁 력 제고를 위한 재정·세제 지원 및 규제개혁 방안(기획재 정부), 지방의 기업유치 및 투자활성화 방안(지식경제부), 지방분권 및 지역갈등사업 협력원활화 방안(행정안전부), 지역성장거점 육성과 광역인프라 구축방안(국토해양부) 등의 지역발전정책이 대통령에게 보고되었다(국가균형발 전위원회, 2008a).
21) 지역발전정책의 비전과 기본방향, 5대 추진전략(전국토 의 성장 잠재력 극대화, 신성장동력 발굴 및 지역특화발 전, 행재정적 권한의 지방이양 등 분권강화, 수도권·지방 상생발전, 기존 시책 발전·보완 등), 5대 전략의 세부과제 등이 보고되었다.
22) 기본구상은 전남대학교 지역개발연구소가 주체가 되어 이정록(전남대), 김성국(부산대), 안영진(전남대), 조상필 (전남발전연구원), 정재희(경남발전연구원), 유상현(영산 대), 기업유치 구상은 한국경제학회가 주체가 되어 김성태 (청주대), 임병인(충북대), 여택동(영남대), 관광거점 구상 은 한국관광학회가 주체가 되어 한범수(경기대), 조광익 (대구카톨릭대), 이우상(한국국제대), 문화산업 구상은 문 화산업학회가 주체가 되어 구문모(한라대), 고정님(삼성경 제연구소), 이병민(청강대), 김종원(경남대) 등이 참여하였 고, 선벨트 연구 총괄은 당시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이 었던 이정록(전남대)이 담당하였다(국가균형발전위원회, 2008b).
23) 동서해안 초광역벨트 개발방안 연구는 대한지리학회가 중심이 되었고, 서해안벨트에는 이원호(성신여대), 류주현 (공주대), 동해안벨트에는 정성훈(강원대), 남기범(서울시 립대) 등이 참여하였다(국가균형발전위원회, 2008b)
24) 2008년 12월 15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3차 회의에서는 지 역발전정책 추진현황과 과제(국가균형발전위원회), 지역 경제 활성화 대책(기획재정부),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국 토해양부), 농어촌 정주여건 개선 및 산업 활성화 방안(농 림식품부), 지역의료·복지서비스 확대 방안(보건복지부), 문화향유 기회 확대를 통한 지역문화 발전 방안(문화관광 부), 지역 환경서비스 제고 방안(환경부) 등이 대통령에게 보고되었다(국가균형발전위원회, 2008c).
25) 남해안 선벨트에서 중장기적으로 검토할 프로젝트로 예 시된 과제는 경제자유구역 확대(부산·진해, 광양), 남서권 해양관광레저 기업도시 활성화(영암·해남), 남해안 일주 크루즈 관광 및 해양스포츠 거점개발, 동서6축 철도망(목 포-순천-진주-마산-부산) 구축, 부산·울산·경남 맑은 물 공급(수자원 확보 및 수질개선) 추진, 제주 휴양형 리조 트타운 조성 등이다(국가균형발전위원회, 2008c).
26) 국가균형발전특별법 일부 개정(2009년 4월 1일)에 따라 지역발전정책을 총괄·조정하는 기구인 국가균형발전위원 회 명칭이 지역발전위원회로 변경되었다.
27) 2009년 12월 2일 대구에서 열린 제6차 보고회의에서는 초광역개발권 발전 추진방향(지역발전위원회), 동·서·남 해안권 초광역개발 기본구상, 남북교류·접경권 초광역개 발 기본구상(행정안전부), 남해안 관광투자 활성화를 위한 규제합리화 방안(기획재정부) 등이 보고되었다(지역발전 위원회, 2009).
28) 2010년 4월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7차 보고회의에서는 지역발전정책의 성과와 중점 추진과제(지역발전위원회), 지역경제 주요 현안 및 대책(지식경제부), 혁신도시·기업 도시 추진현황 및 활성화 방안(국토해양부), 남해안 선벨 트 종합계획(국토해양부) 등이 보고되었다(지역발전위원 회, 2010).
29) 남해안 선벨트 종합계획은 중앙정부와 3개 광역지자체의 예산으로 진행하여 2010년 2월에 완성되었고, 이 작업에는 국토연구원(연구책임은 당시 국토연구원 최영국박사)과 3 개 시·도 지방연구원이 참여하였다.
30) 동서남해안권발전 특별법은 2010년 4월15일 국가균형발 전특별법의 개정으로 동서남해안 및 내륙권 발전특별법으 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31) 2000년 정부계획으로 확정된 남해안 관광벨트 개발사업 은 중앙정부가 수립하고 시행한 국가계획이고, 계획의 범 위 또한 남해안 전역을 대상으로 한다. 하지만 관광벨트 개 발사업은 관광분야에만 한정하기 때문에 부문별 계획에 해 당하고, 이것이 종합계획의 성격을 가진 남해안 선벨트 계 획과 차별되는 점이다.
32) 지역발전위원회는 남중권의 협력과 연대를 강화하기 위 하여 12명의 관련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남중권발전포
럼’을 조직하였다. 포럼에는 12명의 관련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하였고, 이정록(전남대)이 포럼 위원장을 이정훈(경기 개발연구원)이 포럼 간사 역할을 수행하였다. 남중권발전 포럼은 지역발전위원회의 재정지원으로 연구보고서(제목:
남중권 통합성 강화 및 거점화 실행계획 2012)를 2010년 12월에 발간하였고, 연구보고서 작업에는 이정록(전남대), 이정훈(경기개발연구원), 금창호(지방행정연구원), 김영 준(문화관광연구원), 문태헌(경상대), 신승식(전남대), 장 흥훈(순천대) 등이 참여하였다.
33) 남중권에 속한 전남의 여수, 순천, 광양, 보성, 고흥, 경남 의 진주, 사천, 남해, 하동 등 9개 시·군은 2011년 5월 3일 하동군청에서 ‘남해안 남중권 발전협의회’를 발족시켰고, 현재도 협의회를 중심으로 연계협력사업을 시행하고 있 다.
34) 당시 류우익 서울대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후보의 정책캠 프였던 국제정책연구원(GSI)의 원장으로서 ‘한반도 선벨 트’ 공약작성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고, 이명박 정부가 출 범한 이후 초대 대통령실장으로서 남해안 선벨트 구상이 국정과제로 채택되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또한 전 국토연구원 박양호 원장을 비롯하여 필자, 당시 청와대 대 통령실 행정관으로 일한 이정훈 박사(현 경기개발연구원) 도 일정한 기여를 하였다.
35) 2010년부터 시작된 7개 시범사업에 2013년 현재 124.95 억원(전남 3개소 87.4억원, 경남 3개소 33.7억원, 부산 1개 소 3.9억원)의 국비가 지원되었고, 선도사업은 지자체가 발굴하여 중앙정부에 사업비 지원을 요청하는 방식이기 때 문에 2013년까지 사업실적이 없다(동서남해안 및 내륙권 발전기획단, 2013, 내부자료).
참고문헌
김성국, 2005, “남해안 시대와 국가균형발전,” 지역개발 연구, 27(1), 19-33.
김진현, 1994, “해양화 혁명: 한국 근대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 물과 한국인의 삶, 나남출판, pp.475-489.
김형국, 1983, 국토개발의 이론 연구, 박영사, 서울.
김형국, 2005, “남해안 발전축의 개발정책: 국책화를 위 한 제언,” 지역개발연구, 전남대학교 지역개발연 구소, 37(1), 1-17.
나주몽, 2009, “DPG분석에 의한 초광역경제권에 관한 시론적 연구: 남해안 선벨트 초광역개발권을 중 심으로,” 한국지역경제연구, 7(1), 93-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