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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ge and Actual State of Unique Massage Therapy of Korea Passed Down in the Form of Ceremony for Treatment of Disea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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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접수▸2012년 9월 26일 수정▸2012년 11월 27일 채택▸2012년 11월 29일 ▒ 교신저자 최선미, 대전광역시 유성구 유성대로 1672 한국한의학연구원

Tel 042-868-9485 Fax 042-863-9464 E-mail [email protected]

治病儀禮로 전승된 한국고유 擦法사용과 실태양상

잔밥먹이기를 중심으로

-김영완, 백승민, 박정환, 문수정, 이상훈, 최선미

한국한의학연구원 침구경락연구그룹

Usage and Actual State of Unique Massage Therapy of Korea Passed Down in the

Form of Ceremony for Treatment of Diseases

Young-wan Kim, Seung-Min Baek, Jeong-Hwan Park, Su-Jeong Moon, Sang-Hun Lee, Sun-Mi Choi Acupuncture, Moxibustion & Meridian Research Group, Korea Institute of Oriental Medicine

Massage therapy, which is a Seondosul treatment that was prevalent during the time of Goguryeo, has been propagated throughout the general regions of Jeolla and Chungcheong-do with Iksan and Namwon as the center by the residents of Goguryeo who moved down south.

In particular, the fact that this therapy was used importantly in the limited boundaries of the general regions of Jeolla and Chungcheong-do has become a factor that enabled preservation of large amount of old formats of the early stage Seondosul treatment. Seondosul that has been passed down the generation continued to function as a folklore remedy in the form of traditional massage therapy that is suitable for the humanistic natural environment of Korea. That is, treatment methods for generalized diseases in households have been used continuously from the ancient society to the modern society in Korea.

Key Words : Goguryeo; Massage therapy(擦法); City and Gun Bulletin; Seondosul(仙道術); Feeding of Janbap; Taoism; Folk remedy

Ⅰ. 서론

民間信仰 중에서 병의 치료를 위한 비일상적인 治病 의례는 전국에 걸쳐 각 지역의 고유한 문화적 특성과 함께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치병의례의 전 승배경을 파악하기란 쉬운 것이 아니며, 알 수 있는 치 병관련 내용 또한 전설 · 설화 등의 형태로 모호하게 전해지는 한계가 있다. 치병의례는 과거 의료가 부족하던 시기에 인간이 질 병의 원인을 외부의 客鬼 · 邪鬼 · 惡鬼 등이 몸속에 들 어와 질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여겨서 병의 원인이 되 는 객귀 등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어 달래거나, 위협을 가해 쫓아내기 위한 방법으로 주문과 행위를 동반한 의식을 진행 하는 것이다. 이러한 치병의례는 呪術的인 疾病 치료법에 민간의 필요성으로 형성된 도교적 신앙형태를 바탕으로 한 仙 道術을 習合하였다. 따라서 心身의 안정과 長生을 목 적으로 하는 養生法과 醫術을 갖게 되었다.1) 1) 車柱環. 󰡔韓國道敎思想硏究󰡕. 서울대학교출판부. 1997.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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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 · 충정도 지역에 치병의례인 ‘잔밥먹이기’2) 한 주문과 행위를 통해서 병의 원인이 되는 客鬼를 몸 밖으로 쫓아내서 병을 치료하는 의례로써 잔밥먹이 기3)는 쌀이 든 천을 身體에 摩擦을 할 때 ‘잔밥각시’4) 로 불리는 神的 존재가 마찰을 한 쌀의 모양을 통해서 환자의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呪術的 의료행위다. 특이하게도 이 요법은 전라 · 충청도 지역에서만 거 의 유일하게 시행하고 있는 고유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 은 하나 또는 인접지역을 범위로 하는 마을 단위의 치료 의례로 존재하는 독특한 성격이라고 하기에는 지역적 규모가 크지만, 전국에 걸쳐서 나타나지는 않아 보편적 의례라고 하기에는 지역적인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잔밥먹이기의 주문과 행위의 구 성요서를 살펴보고 요법이 지역적 특수성을 가지게 된 원인을 󰡔三國史記󰡕와 󰡔三國遺事󰡕의 기록을 통해서 단 서를 찾고자하며, 어떤 질환에 대한 치료를 주 대상으 로 하였는지를 市郡誌(史) 및 민속보고서의 내용을 통 해 분석해 보고자 한다.

Ⅱ. 한국전통 治病儀禮의 전승 경위

1. 治病儀禮로서 仙道術의 高句麗 전래 배경

고구려에서 도교를 수용한 시기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을 토대로 볼 때 7세기경에 이루어 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미 고구려에서는 교리 적인 체계화를 가지기 전부터 나라 안 사람들이 五斗 米敎를 민간신앙으로 신봉하고 있었고, 仙道術을 이용 하여 질병을 치료하고 있었다. 고구려에 민간신앙으로 전래되어진 도교가 이미 7 세기 이전에 존재했을 가능성과 성격은 다음의 󰡔삼국 유사󰡕와 󰡔삼국사기󰡕의 기록을 통해서 확인 할 수 있다. ① 「高句麗本記」에 전해지기를 고구려 말기인 武德 · 貞觀 연간에 나라 사람들은 다투어 五斗米敎를 신봉하 였다. 唐 高祖가 이 말을 듣고 道士를 시켜 天尊像을 보내고 또한 道德經보내서 강연하게 하여 왕이 백성들 과 함께 들으니 곧 제27대 營留王 즉위 7년, 武德 7년 甲申이었다. 다음해에 고구려에서는 唐에 사신을 보내 서 佛敎와 道敎를 배울 것을 청하자 唐 황제 高祖가 이를 허락하였다.5) ② 寶藏王이 즉위하자(貞觀 16년 壬寅) 또한 儒· 佛·道 의 3敎를 모두 일으키려 했다. 이때 왕의 총애를 받던 재상 蓋蘇文이 왕에게 아뢰길, “지금 유교와 불교는 다 같이 융성하지만 도교는 그렇지 못하니 특별히 唐에 사 신을 보내서 도교를 구하도록 하십시오.” 하였다.6) ③ 寶藏王 9년 6월에 盤龍寺의 普德和尙은, 國家에 서 道敎를 받들고 佛法을 믿지 않는다고 하여 남쪽 完 山 孤大山으로 옮겼다.7) 위의 기사 ①을 통해서 고구려 말기인 영류왕 7년인 624년에 당에서 도교가 외교를 통해 들어오기 이전부 터 고구려는 도교가 일반 백성을 대상으로 민간신앙으 로 널리 신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단계의 도교 는 교리가 확립되어 있기 보다는 도교가 가지고 있는 양생 · 치병을 위한 선도술이 기층민을 중심으로 널리 보급되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8) 그러므로 다음해인 625년 唐 황제 高祖가 고구려에 도덕경을 강연할 수 있는 도사를 파견할 때를 기준으 로 보자면 이 시기가 고구려 도교가 교리의 체계성을 2) 민속학 측면에서 ‘잔밥먹이기’ 연구는 이필영이 대표적이다. 특히 충청도지역에 대한 조사 · 수집은 후속 연구에 많은 기여 를 하고 있다. 3) 본고에서는 이하 ‘요법’으로 통일하여 기술하겠다. 4) 각시는 젊은 새색시를 일컫는 용어다. 각시의 성격상 막 결혼 한 여성을 지칭하기 때문에 처녀와 부인의 경계선적인 존재 로 인식되며, 여신적 성격으로 관념되어진다. 이필영. 「해물기 기와 잔밥먹이기 –충청지역을 중심으로-」. 󰡔考古와 民俗󰡕. 2005;8. p.82. 5) 󰡔三國遺事󰡕 第三卷 興法 寶藏奉老 普德移庵, 高麗本記云 麗季 武德 貞觀間國 人爭奉五斗米敎 唐高祖聞之 遣道士 送天尊像 來講道德經 王與國人聽之 卽二十七代營留王卽位七年 武德七 年甲申也 明年遣使往唐 求學佛老 唐帝(位高祖也)許之. 6) 󰡔三國遺事󰡕 第三卷 興法 寶藏奉老 普德移庵, 寶藏王卽位(貞觀 十六年壬寅也) 亦欲倂興三敎 時寵相蓋蘇文 說王以儒釋並熾 而黃冠未盛 特使於唐求道敎. 7) 󰡔三國史記󰡕 卷 第二十二 寶藏王條, 九年夏六月 盤龍寺普德和 尙 以國家奉道 不信佛法 南移完山高大山. 8) 五斗米敎의 원래 명칭은 天師道다. 천사도는 교도의 한 일파 로 부적 · 성수 · 주문 등의 치병술을 중심 한 주술적인 치료를 하였다. 병을 치료 한 후 그 대가로 쌀을 5斗를 내게 하였으 므로, 일반적으로 천사도보다는 오두미교로 더 많이 불렸다. 李瑾明 편역. 󰡔中國歷史󰡕 상권. 신서원. 2002. p.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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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고 행해지는 시점이다. 따라서 일정한 교리의 정형화를 가지고 전래된 도교 의 이전에 이미 민간에 전승된 도교는 치병과 관련하 여 수용되었으며, 치료를 위한 주술요법으로서 선도술 이 시행되었다. ②의 기사는 고구려 마지막 왕인 보장왕 때 재상인 연정토의 건의를 받아 국가가 도교를 받아들여서, ③ 인 보장왕 9년에는 기존의 지배적 위치에 있던 불교와 대립 속에서 우위를 점철한 도교의 확연한 입지를 반 증하는 단면을 볼 수 있다. 즉 ③의 단계에서는 도교가 이미 국가 저변에 만연하여 왕실에서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기층저변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러한 도교의 저변확대는 초기에 수용된 오두미교 단계의 치병의례와 영류왕이후 보장왕 때에 이르기까 지 중국의 선진적이며 정교화된 도교의 양생술까지 모 두 고구려의 土風에 맞게 고유의 치료법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시간적 계기가 마련되었다.

2. 高句麗 治病儀禮의 전라 · 충청도 지역 정착

원인

보장왕 시기는 고구려 도교가 가장 왕성하게 번성한 기간이기도 하지만, 한 나라의 국운이 다하여 멸망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러한 국면은 대내외적으로 정세가 불안했기에 국가는 도교를 통해서 국운을 일으키려 했 으며, 각각의 개인은 계속된 전란으로 피폐된 정신과 육체을 치료하기 위해서 도교를 맹신했다. 신라에 의해 668년 고구려는 멸망하였으나, 도교의 선도술을 통한 그 치료법은 고구려 유민들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활용 되었다. 주목할 점은 그 유지가 남아 서 전승된 지역은 멸망된 옛 고구려영토가 아닌 전라 · 충청도 지역에서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전승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삼 국사기󰡕에 기술된 내용이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할 것 이다. ① 文武王 10년 6월에 高句麗 水臨城 사람 年(牟)岑 大兄이 유민을 수습하여 窮牟城으로부터 浿江 남쪽에 이르러 唐의 관리와 승려 法安 등을 죽이고 신라로 향 하여 西海 史冶島에 이르러 고구려 대신 淵淨土의 아 들 安勝을 만나 漢城으로 맞아들여 임금을 삼고 小兄 多式 등을 신라에 보내어 애절히 말하기를, “망한 나라 를 일으키고 끊어진 세대를 잇게 하는 것은 천하의 公 義이므로 오직 大國에 바랄 뿐입니다. 고구려의 先王 은 도를 잃어 멸망하였으므로, 지금 臣 등이 고구려 귀 족인 안승을 받들어 왕으로 삼았으니, 원하옵건데 신 라의 藩屛이 되어 영원토록 충성을 다할 것입니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왕이 나라의 서쪽 金馬渚에 살게 하 였다.9) ② 神文王 4년 11월 安勝의 族子 장군 大文이 金馬 渚에서 謀叛하다가 사실이 발각되어 伏誅 하였다. 그 남은 무리들은 대문의 誅死함을 보고 新羅의 관리를 살해하고 金馬渚를 차지하여 배반하므로, 왕이 將士를 명하여 그들을 치니 마주 싸워 幢主 逼實이 전사하였 다. 마침내 그 성을 함락하고 그 곳 사람들을 國南의 州郡으로 옮기고 그 곳을 金馬郡이라 하였다.10) ③ 神文王 5년 3월에 南原小京을 두고 여러 州郡의 民戶를 남원소경에 옮겨 分居케 하였다.11) ④ 南原小京은 본시 백제의 古龍郡인데, 신라에서 이를 아울러 神文王 5년에 처음으로 小京을 설치하였 다. 그리고 景德王 16년 南原小京을 설치하였으니 지 금의 南原府다.12) 위의 기사 ①~④는 사건의 경과를 시간 순으로 나열 한 것이다. ①의 기사내용을 보면 고구려가 멸망한 후 연잠과 그 유민들이 신라에 藩屛이 될 것을 스스로 자 처하자 문무왕은 그들에게 지금의 益山인 금마저에 그 9) 󰡔三國史記󰡕 卷 第六 文武王條, 文武王十年六月 高句麗水臨城 人年(年, 當作牟)岑大兄 收合殘民 自窮牟城 至浿江南 殺唐官 人及僧法安等 向新羅 行至(口, 據通鑑補之)西海史冶島 見高句 麗大臣淵淨土之子安勝 迎致漢城中 奉以爲君 遣小兄多式等 哀 告曰 興滅國繼絕世 天下之公義也 惟大國是望 我國先王以失道 見滅 今臣等 得國貴族安勝 奉以爲君 願作藩屛 永世盡忠 王處 之國西金馬渚. 10) 󰡔三國史記󰡕 卷 第八 神文王條, 神文王四年十一月 安勝族子將 軍大文 在金馬渚 謀叛 事發伏誅 餘人見大文誅死 殺害官吏 據邑叛 王命將士討之 逆鬪 幢主逼實死之 陷其城 徙其人於國 南州郡 以其地爲金馬郡. 11) 󰡔三國史記󰡕 卷 第八 神文王條, 神文王五年三月 置南原小京 徙諸州郡民戶分居之. 12) 󰡔三國史記󰡕 卷 第三十六 雜誌 南原小京條, 南原小京 本百濟 古龍郡 新羅幷之 神文王五年初 置小京 景德王十六年 置南原 小京 今南原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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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이 터를 잡고 살수있게 허락해주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기사의 대신 · 대형 · 소형 등의 고구려 관 등명을 통해서 그들이 고구려내의 지배층이었으며, 지 배층인 자신들을 따르는 유민들을 이끌고 남하하였다. 그리고 문무왕을 통해서 얻은 금마저 지역에 하나의 작은 고구려 문화권 지역을 만들어 생활하였다.13) 그러나 금마저에 안착한 그들의 삶은 신문왕 4년을 기점으로 바뀌게 되었다. ②의 기사 내용은 안승의 족 자 대문과 고구려인의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을 당한 다. 대문을 비롯한 고구려인들의 반란은 신라정부에 위기감과 경각심을 불러일으켰고, 그 결과 이들 세력 을 금마저에서 더 남쪽 지역에 위치한 州郡으로 옮겨 지게 된다. 반란으로 남쪽 지역 주군으로 옮겨가게 된 고구려인 들이 모두 어느 지역으로 제각기 흩어지게 된 것인지 에 대해서는 ③의 기사를 통해 보면, 그 이듬해인 신문 왕 5년에 남소원경에14) 민호가 옮겨와 고구려인들이 남소원경 일대를 중심으로 퍼져서 재정착했다. 그리고 남소원경이 옛 백제지역으로 남원임을 ④의 내용으로 확인된다. 즉 이상의 일련의 사건은 한 무리의 고구려인들이 한강이남 지역으로 내려와 금마저(익산)→남원소경 (남원)으로 옮겨 정착하게 된 경과를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또한 기사상에 나타난 마지막 정착지인 남원은 교통과 교역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기 때문 에15) 새로운 문화로써 선도술을 받아들이기 용이했 다. 이때 2번에 걸쳐 안착한 세력이 가지고온 사상은 고구려 지배층에서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는 고구려의 고유한 종교 · 예술16) 등의 일상생활 전반에서 향유한 문화를 고스란히 가지고 왔으며, 이 때 그들의 고유한 치료법으로써 활용된 선도술이 사용되었음은 자명한 일이다. 물론 이 지역이 손쉽게 고구려의 치료법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유는 이미 백제와 신라가 도교에 대한 수 용과 이해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① 將軍 莫古解가 간청하여 말하길, “일찍이 道家의 말을 들으니 만족할 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얻은 바가 많으니 어찌 구할 것이 무엇있겠습니까”하였다.17) ② 孝昭王 元年에 처음으로 두어 학생들을 가르쳤는 데, 本草經 · 甲乙經 · 素問經 · 針經 · 脈經 · 明堂經 · 難 經의 과정을 하였다. 博士가 2명이었다.18) ①의 기사는 백제의 장군 막고해가 태자 시절의 近 仇首王에게 고구려군을 계속 추격하는 것에 대해서 󰡔도덕경󰡕의 ‘知足知止’라는 말을 인용하여 간청을 하 고 있는 내용으로, 이미 도교에 대한 기본적 이해는 가 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②의 기사는 신라 효소왕대의 기사로 의학을 가르치 는 과목중에 ‘素問’이 보이고 있다. 따라서 효소왕 원 년인 692년경에는 이미 도교의 導引法 연구가 진행되 고 있으므로, 기본적으로 선도술 치료법의 이해를 가 지고 있었다.

Ⅲ. 治病儀禮로서의 잔밥먹이기 구성요소

1. 지역별 治病儀禮 사용 실태

앞장에서는 전라 · 충청도 지역에 요법이 정착하여 13) 󰡔三國史記󰡕 문무왕 10년 8월에 沙湌 須彌山을 보내 安勝을 고구려왕으로 봉하였고, 문무왕 14년 9월에 안승을 報德王 으로 봉하였다. 14) 小京에 대한 설치 배경은 크게 3가지로 수도인 경주의 보완, 복속민 시책, 피정복민에 대한 사민정책의 일환으로 파악하 고 있다. 그 목적은 중앙정부의 지방 통제력 강화와 지방문 화의 중심지적 성격이다. 사민정책은 목적에 따른 수단으로 기능 하였을 것이다. 梁氣錫. 「新羅 五小京의 設置와 西原京」. 󰡔호서문화연구󰡕. 1993;11. p.6. 15) 이흥재. 「南原地域 佛像樣式에 대하여」. 󰡔불교학보󰡕. 2001;38. p.240. 16) 󰡔三國史記󰡕 잡지의 기록에는 고구려의 玄琴을 습득한 貴金 先生이 지리산에 은거하고 있는데 신라왕이 伊湌 允興을 南 原 公事로 보내서 현금연주법을 배워오도록 방법을 구하라 고 명하고 있다. 이 기록을 토대로 보면, 첫째 고구려 멸망 후 남하할 때 고구려 전통문화에 포함된 치료법을 가지고 왔으며, 둘째 이찬 윤흥이 남원 공사로 부임하여 지리산에 있는 귀금선생에게 현금 연주법을 알아내려는 것을 통해서 남하한 고구려인 집단이 신문왕 5년 남원소경으로 分居한 州郡 중 금마저에서 온 고구려인 집단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7) 󰡔三國史記󰡕 卷 第二十四 近仇首王條, 將軍莫古解諫曰 嘗聞道 家之言 知足不辱 知止不殆 今所得多矣 何必求多. 18) 󰡔三國史記󰡕 卷 三十九 雜誌 醫學條, 孝昭王元年初置 敎授學 生以本草經 甲乙經 素問經 針經 脈經 明堂經 難經爲之業 博 士二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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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역의 고유한 민간요법으로 자리잡게 된 전승배경 을 󰡔삼국사기와󰡕 · 󰡔삼국유사󰡕의 기록을 통해서 살펴 보았다. 본 장에서는 현재까지 그 명맥을 이어져 내려 온 치병의례 중 찰법이 어떻게 정착하였는가를 보기로 한다. 이 요법에 대한 그간의 연구는 대부분이 민속학의 영역에서 이루어졌다. 민속학에서는 요법의 행위가 치 병을 위한 민간신앙으로 각 가정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비정기적 의례로써 파악하고 있다. 민속신앙으로 ‘잔 밥먹이기’의 정의는 외출을 하였다가 귀가한 뒤에 특 별한 이유 없이 갑자기 심하게 앓게 되면 ‘잔밥각시’에 게 잔밥을 먹여서 질환의 원인을 찾고, 그에 따라서 적 절한 조치를 하는 일종의 治癒의례다.19) 따라서 요법 에서 차지하고 있는 전통 의료의 가치보다는 의례가 가지고 있는 전체적인 의식절차와 치병의 대상이 되는 주술자와 환자와의 행위 순서에 맞추어 口述과 현장조 사를 통한 민속자료의 광범위한 자료수집을 바탕으로 연구하였다. 요법은 몸안에 든 병을 치료하기 위한 치병의례로서 의 크게 2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주문과 행위 를 통해서 몸안에 든 병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알아내 는 위한 진단법20)과 다음으로 병의 원인이 밝혀진 후 치료를 위한 주술적인 驅逐21)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수기법으로는 환부에 문지르거나 대었다 떼었다를 반 복하며 방향은 원 또는 전후좌우로 가볍게 마찰하는 찰법을 사용한다.22) 이때 병의 원인이 되는 객귀에 대 한 驅逐주문을 외우는데, 치료자가 주문을 읍조리게 됨으로써 일종의 리듬감을 가지게 되고, 몇 번을 반복 하여23) 주문을 외우는 것은 치료를 위한 찰법의 강도 와 속도감 및 치료시간을 정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24) <Figure 1> 배에 잔밥먹이기와 바가지에 가득 담은 쌀25) <Figure 2> 팔에 잔밥먹이기와 잔밥을 먹인 이후 쌀26) 각 지역마다 요법의 방법은 다소간 차이점은 있으 나, 그것을 구성하는 행위 자체는 동일하며 다음의 내 용과 같다. ① 쌀 한 되를 바가지에 담아 아픈 아이의 웃옷을 벗겨서 그 바가지를 싼다. 그런 후 그것으로 환자의 배 와 등에 대고 문지른다. 그 때 다음과 같이 주문을 왼다. “잔밥각시(객귀로 여김)가 영감하고, 기염하신 잔밥 각시, 아무생 먹은 사람이 이렇게 되었으니, 잔밥각시 가 아이를 당장에 살려줘야지 안 살려주면 무쇠칼로다 19)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신앙사전-가정신앙편󰡕. 2011. p.555. 이규창은 잔밥 · 자는밥 · 잠밥 등의 단어가 각종 국어사전에 수록되지 않는 점을 들어 전북지역의 방언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규창. 「韓國醫俗 調査硏究 -全北地方을 對象으로-」. 󰡔논 문집󰡕. 군산대학교. 1983. p.42; 󰡔全羅民俗論攷󰡕. 집문당. 1994. p.245). 20) 의례행위가 가지는 목표를 해결하기 위한 형식으로는 말 (words) · 몸짓(gestures) · 사물(objects) 필요하다. 이창익. 「신 화와 의례의 해석학적 차이에 대한 물음」. 󰡔신화와 역사󰡕.서 울대학교출판부. 2004. p.121. 21) 驅逐는 고대사회에서부터 내려온 祝由法이 그 모태가 된다. 고대의 치료법인 축유는 병의 유래를 밝히고, 이를 ‘빌어서 풀어헤친다’는 뜻으로 원시신앙에서 비롯되었다. 잔밥먹이기 의 치병의례의 주술은 축유에 속한다 할 수 있다. 전국한의 과대학 신경정신과 교과서편찬위원회 편, 󰡔한의신경정신과 학󰡕, 집문당, 2007, p. 10. 동양의 고대사회에서 의료행위로 서 시행된 축유요법은 다음의 책을 참고(周一謀 저, 金南一 · 印昌植 역. 󰡔고대 중국의학의 재발견󰡕. 법인문화사. 2000.). 22) 李圭昌. 앞의 책. 1994. p.246. 23) 지역에 따라서 주문은 3번, 7번, 21번, 환자의 나이에 맞추 어 주문을 외우는 경우도 있다. 24) 이러한 찰법의 운영방법은 手技法의 4가지 원칙과 부합된다. 즉 첫째 有力은 반드시 일정한 힘이 들어간다. 둘째, 特久는 일정시간 이상 꾸준히 요법을 지속한다. 셋째, 均勻은 행위 동작이 절도 있고 리드미컬해야 한다. 넷째, 柔和는 그 수법 이 가벼우나 들뜨지 않고, 무거우나 정체되는 느낌이 없어야 한다. 신준식 외. 󰡔한국추나학󰡕. 대한한의학회 추나분과학회. 1995. p.162. 25) 부여군지편찬위원회. 󰡔부여군지󰡕. 제6권 부여의 민속문화. 2003. p.250. 26) 국립문화재연구소. 󰡔한국의 가정신앙 –전라남도 편-󰡕.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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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목을 쳐서 무쇠둠벙에 집어 넣으면 곰짝을 못한다.” 위와 같은 주문을 일곱 번 반복한다.27) ② 골치가 아프면 김제 지방에는 작은 바가지나 되 에 쌀을 담아 어머니 치마나 大主의 웃저고리에 싸감 아서 이마나 편두 부근을 접촉시켰다가 떼었다가 또는 안마하면서28) 다음과 같이 주문을 왼다. “해동 조선 전라도 징게(金提郡) ○○面 ○洞에 사 는 ○氏 대주 ○째 자손 ○○ 코침이 마르고 골치가 따끈거리는 데, 배고프고 목마른 혼신 올 데 갈 데 없 이 의지할 곳 없는 혼신이 붙었으면 많이 먹고 그렇지 않으면 쌀 한 톨 까딱하지 말지어다. 강남에서 오신 되 박각씨(升閣氏) 허튼 소리나 빈말 넣지 말고 원녕이정 (元亨利貞)으로 흑백을 자상 분명하게 가려 주렸다. 城 主로 먹이는 것도 아니고 조상으로 먹이는 것도 아니 고 五方터전 地神으로 먹이는 것도 이니고 거리 中天 에 떠돌아 다니는 귀신 배도 고프고 목도 마르고 잠시 잠깐 수(數)도 사납고 액도 사나워서 침책을 했는가 해 서 잠밥을 먹일레라. 그러허니 네 이름도 알고 성도 알 고 그러니 앉아서 먹고 서서 먹고 못 먹었다 옆난 소리 귀난 소리 말고 많이 먹고 배불리 먹고 써-억 물러 가 렸다. 암(안)먹고 안 물러 갔다가는 은장도 드는 칼로 목을 베고 배를 따서 大川 한바다에 띄우면 세상에 나 궁내(국냄새) 장내도 못 맡을테다. 인자(이제) 세닐곱 스물 하나를 먹여 줄테니 왼쌀 왼되박쌀 왼말쌀 왼섬 쌀 받아 갖고 오던 길로 써-억 물러 가렸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세닐곱 스물하나를 먹였으니 써-억 물러 가렸다. 그저 잊은 것 없이 서운함 없이 써-억 물러 가렸다. 속거천 리 퉤-퉤.”29) 이상의 ① ②와 같이 주문과 함께 환자의 환부를 문 지른 바가지의 쌀이 첫째 바가지 꼭지 부분(윗부분)이 파여져 있으면 ‘조상신’이 붙었다하여 치성을 드린다. 조상신에 대한 의례는 唐 왕실에서 초기에 도교를 도 입할 당시 조상숭배 정책으로 활용한 것이 고구려를 통해서 들어온30) 이후 다시 전라 · 충청지역에 민간신 앙으로 자리 잡았다. 둘째 배꼽(바가지 중간) 부분이 파여져 있으면 객귀 가 붙었다고 여긴다. 이때에는 환자의 신발(예전에는 짚신)에 왕겨 · 고추 · 된장 · 소금 · 쌀 등을 조금씩 넣고 마당에 나가 불을 사른다. 그러면 아픈 부분이 풀 리고, 환자의 병이 낫는다.31) 잔밥을 먹인 쌀은 요법을 시행한 사람이 가지고 간다.32) 잔밥을 먹인 쌀을 가지 고 가는 것은 잔밥을 먹인 사람(치료자)에 대한 감사 의미와 선도술 유입 당시 오두미교에서 환자에게 쌀을 5斗를 거두는 것이33) 변화되어 고유한 토착 신앙으로 지속적으로 남겨진 것으로 여겨진다.

2. 고유의 治病으로 본 의례행위 분석

요법의 전체 의례절차는 병의 원인에 대한 진단과 그 결과에 따른 주술적 치료34)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 한 원인에 따른 결과는 가정신앙으로 이어온 일련의 절차다. 그러나 실제로는 병의 원인에 대한 진단 자체가 치료 를 위한 행위로 찰법이 시행되고 있으며, 주술적 치료는 눈에 보이지 않는 병에 대한 가시적인 효과를 보여 심리 적 안정을 갖기 위한 방편이다. 따라서 이미 무의식적으 로 치료를 위한 행위가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잔밥먹이 기’라는 의례의 첫 부분으로 전승되어 내려왔다. 잔밥먹이기 의례에서 실제 치료행위가 구체적으로 실시된 전라 · 충청도 지역을 표로 보면 다음과 같다. 27) 부여군지편찬위원회. 󰡔부여군지 제6권󰡕. 부여의 민속문화. 2003. p.250. 28) 이필영은 잔밥먹이기에서 찰법은 ‘안마’로 파악하여 전체 의 례에서 부분적인 의미만 지니는 것으로 보고 있다(이필영. 앞의 논문. 2005. p.84). 잔밥먹이기를 민속의 전체적인 의 례행위를 볼 때 안마가 醫俗으로 작은 부분 일수 있으나, 전 통치료 방법으로 민간에서 내려와 지속적으로 전해 내려왔 다는 점에서는 의료적 가치부여가 충분하다. 29) 이규창. 앞의 책. 1994. p.246 인용. 30) 柳承喆. 「7세기 중반 高句麗의 道敎受容과 佛敎界의 動向」. 동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2. p.18. 31) 이필영. 「충남지역 가정신앙의 제 유형과 성격」. 󰡔샤머니즘 연구󰡕. 2000;3. pp.39~41. 32) 잔밥먹이기를 한 사람이 그 집의 사람이 아닌 경우로, 김제 시 만경읍 · 죽산면, 전주시 완산구, 여수시 화영면, 영암군 영암읍 등에서 보인다. 33) 李瑾明 편역. 앞의 책. 2002. p.285. 34) Mueller의 연구에 따르면 종교적 활동과 영성(sprituality)이 사망률, 신체적 질환, 정신적 질환, 삶의 질, 말기의 불치병 을 포함한 질병에 대처하는 능력 등을 포함하는 긍정적 건 강 상태와 갖는 직접적 관계를 보여주는 큰 규모의 연구들 이 증가하고 있으며, 영적인 욕구를 해결해주는 것이 질병으 로부터의 빠른 회복을 촉진한다고 하였다. Mueller PS, Plevak DJ, Rummans TA. Religious involvement, spirituality, and medicine: implications for clinical practice. Mayo Clin Proc. 2001, 1225–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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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1> 전라북도 지역의 잔밥먹이기35) 지 역 의례 명칭 질 환 치료 방법 群山市 잔밥먹이기 (잔밥물리기) 머리 아프기, 사지 떨림 바가지에 쌀을 담아 환자 옷으로 감싼 후 환부에 대었다가 떼기를 반복한다. 金堤市 잔밥먹이기 머리쑤실 때, 머리 아플 때, 골이 아플 때, 골이 쑤실 때 됫박에 쌀을 담아 환자 옷으로 감싼 후 환부에 대고 문지른다. 또는 대었다가 떼기를 반복한다. 南原市 잔밥먹이기 갑자기 머리 아플 때, 배아플 때, 체한데 바가지, 됫박에 쌀을 담아 치마로 감싼 후 환부에 문지른다. 茂朱郡 잔밥먹이기 두통, 팔다리 욱신, 갑자기 아플 때, 그릇, 바가지, 됫박에 쌀을 담아 여자속옷, 환자 속옷으로 감싼 후 환부에 문지른다. 扶安郡 잔밥먹이기 아이가 갑자기 아프고 고열 바가지에 쌀을 담아 천으로 감싼 후 환부에 문지른다. 完州郡 잔밥먹이기 아이가 아플 때, 집안 식구 중 아픈 사람, 약을 먹어도 효험이 없을 때 작은 됫박, 바가지에 쌀을 담아 환자 옷, 책보, 보자기로 감싼 후 환부를 두드린다. 益山市 잔밥먹이기 나가서 음식을 잘못 먹어 아픈 경우, 갑자기 머리나 몸이 아플 때, 살(煞)이 붙었을 때 바가지, 그릇에 쌀을 담아 환자 옷, 천으로 감싼 후 환부를 두드린다. 任實郡 잔밥먹이기 귀신이나 액이끼어 아플 때, 갑자기 배가 아프 거나 머리가 아플 때 됫박에 쌀을 담아 여자 치마, 환자 속옷으로 감싼 후 환부에 문지른다. 長水郡 잔밥먹이기 특별한 이유 없이 몸이 쑤시거나 머리가 아플 때, 집안 식구가 아플 때 바가지, 됫박에 쌀을 담아 여자속옷, 환자 속옷으로 감싼 후 환부에 문지른다. 全州市 잔밥먹이기 머리 아플 때, 몸이 저리듯 아플 때, 배 아플 때 바가지, 됫박에 쌀을 담아 환자 옷으로 감싼 후 환부에 대었다 떼기를 반복한다. 井邑市 잔밥먹이기 갑자기 몸이 쑤시거나 머리 아플 때 바가지, 됫박에 쌀을 담아 치마, 보자기로 감싼 후 환부를 문지른다. 鎭安郡 잔밥먹이기 몸이 쑤시거나 머리 아플 때 쌀을 여자 속옷으로 싸서 환부에 문지른다. <Table 2> 전라남도 지역의 잔밥먹이기36) 지 역 의례 명칭 질 환 치료 방법 高興郡 잔밥물리기 갑자기 무릎이나 다리가 아픈 경우, 객구들어 몸이 아픈 경우,몸이 부었을 때 대접, 바가지에 쌀을 담아 천으로 감싼 후 환부에 두드린다. 谷城郡 잔밥먹이기 집안에 아픈 사람 바가지에 쌀, 좁쌀을 담아 치마폭에 싸서 아픈 곳에 대고 먹인다(문지른다). 光陽市 잔밥먹이기 아픈 곳 그릇에 쌀을 담아 환부에 갖다 댄다. 求禮郡 잔밥먹이기 머리 아플 때, 어디 나갔다가 갑자기 아플 때, 갑자기 머리나, 어깨가 아플 때 작은 바가지에 쌀을 담아 치마, 보자기 로 감싼 후 환부에 문지른다. 潭陽郡 잔밥먹이기 머리 아플 때, 어깨나 허리 아플 때 작은 바가지에 쌀을 담아 치마로 감싼 후 환부에 문지른다. 務安郡 잔밥먹이기 아픈 곳 됫박, 바가지, 쪽박에 쌀을 담아 보자기로 감싼 후 환부에 문지른다. 寶城郡 잔밥먹이기 머리 아플 때, 몸이 안좋을 때 바가지에 쌀을 담아 보자기로 감싼 후 환부에 문지른다. 新安郡 잔밥먹이기 팔다리가 아플 때 바가지, 됫박에 쌀, 보리쌀을 담아 치마로 감싼 후 환부를 두드린다. 麗水市 잔밥먹이기 동티, 머리나 어깨 아플 때, 허리 아플 때 바가지에 쌀을 담아 치마, 보자기로 감싼 후 환부에 문지른다. 靈光郡 잔밥먹이기 머리나 몸이 아플 때 바가지에 쌀을 담아 치마, 보자기로 감싼 후 환부에 댄다. 靈巖郡 잔밥먹이기 머리, 허리, 몸이 아플 때 바가지에 쌀을 담아 보자기로 감싼 후 환부를 문지른다. 또는 대었다 때었다를 반복한다. 莞島郡 잔밥먹이기 팔다리가 갑자기 아플 때 작은 바가지, 쌀주발에 쌀을 담아 보자기로 감싼 후 환부를 두드린다. 長城郡 잔밥먹이기 갑자기 아플 때, 발목을 빼었거나 몸의 상처가 잘 낫지 않을 때 됫박에 쌀을 담아 천, 환자 옷으로 감싼 후 환부를 문지른다(질렀다 빼기를 반복). 珍島郡 잔밥먹이기 몸이 붓고 아플 때, 어깨나 다리가 갑자기 아플 때 작은 종기, 그릇에 곡식, 찰조를 담아 보자기로 감싼 후 환부를 두드리며, 문지른다. 咸平郡 잔밥먹이기 몸이 아플 때, 갑자기 다리가 아플 때 됫박에 쌀을 담아 보자기로 감싼 후 환부를 두드린다. 海南郡 잔밥먹이기 갑자기 아플 때 그릇에 쌀을 담아 환부에 갖다 댄다. 35) 국립문화재연구소. 󰡔한국의 가정신앙 –전라북도 편-󰡕. 2008. 36) 국립문화재연구소. 󰡔한국의 가정신앙 –전라남도 편-󰡕.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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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역 의례 명칭 질 환 치료 방법 扶餘郡 잔밥먹이기 외출 후 갑작스런 두통, 복통, 급체, 감기, 몸살 바가지에 쌀을 담아 환자 옷으로 감싼 후 환부를 문지른다. 舒川郡 잔밥먹이기 외출 후 갑작스런 오한, 두통 바가지에 쌀을 담아 환자 옷으로 감싼 후 환부를 문지른다. 公州市 잔밥먹이기 (해물리기) 문상 후 갑작스런 오한 바가지에 쌀을 담아 환자 웃옷으로 감싼 후 환부를 문지른다. 保寧市 역신에 의한 병 어떤 병 둥그런 됫박에 쌀을 담아 보자기로 감싼 후 환부를 천천히 문지른다. 論山市 잔밥먹이기 문상 후 복통, 두통 됫박에 쌀을 담아 환자 옷가지로 감싼 후 환부를 문지른다. <Table 3> 충청남도 지역의 잔밥먹이기37) 지 역 의례 명칭 질 환 치료 방법 公州市 잔밥먹이기 집밖의 음식을 먹고와 아플 때, 외출 후 오한나고 떨릴 때 됫박, 밥그릇에 쌀을 담아 보자기, 환자옷으로 감싼 후 배나 가슴, 아픈 부위를 문지른다. 錦山郡 잔밥먹이기 해질 무렵 한축(寒縮)나고 아플 때 됫박에 쌀을 담아 환자 옷으로 감싼 후 환부 문지른다. 論山市 잔밥먹이기 외출 후, 갑자기 한축(寒縮)나고 아플 때 바가지에 쌀을 담아 환자 옷으로 감싼 후 배를 문지른다. 唐津郡 잔밥먹이기 어린아이가 배 아플 때 베에 쌀을 담아 동그랗게 뭉친 후 배를 문지른다. 扶餘郡 잔밥먹이기 외출 후 머리 아플 때, 갑자기 아플 때, 한전이나고 추워서 잠을 못잘 때 바가지, 됫박에 쌀을 담아 환자의 옷으로 감싼 후 배, 몸을 문지른다. 靑陽郡 해물리기 외출 후 갑자기 아플 때 바가지에 쌀을 담아 보자기로 감싼 후 몸을 문지른다. <Table 4> 충청북도 지역의 잔밥먹이기38) 지 역 의례 명칭 질 환 치료 방법 沃川郡 잔밥먹이기 아픈 사람 종발에 쌀을 담아서 머리 위로 칼을 휘두른 다음 환자의 배를 문지른다. 陰城郡 풀어내기 배 아플 때 배를 쓸어내린다. <Table 5> 경상북도 지역의 잔밥먹이기39) 지 역 의례 명칭 질 환 치료 방법 聞慶市 없음 몸 아픈데 헝겊에 좁쌀을 담아 환부를 문지른다. 安東市 객구물리기 (객귀물리기) 몸 아픈데 작은 종지에 좁쌀을 담아 헝겊으로 감싼 후 가슴을 문지른다. <Table 6> 경기도 지역의 잔밥먹이기40) 지 역 의례 명칭 질 환 치료 방법 甕津郡 동범잡기 (동토잡기) 물건을 잘못 다루어 탈이 난 것으로 까닭 없이 아플 때 밥사발에 쌀을 담아 환자 옷으로 감싼 후 배를 쓸고 환부를 문지른다. 加平郡 객귀물리기 가슴이 답답할 때 주발에 쌀을 담아 천으로 감싼 후 배를 문지른다. <Table 7> 전국 시군지에 기술된 잔밥먹이기41) 37) 국립문화재연구소. 󰡔한국의 가정신앙 –충청남도 편-󰡕. 2006. 38) 국립문화재연구소. 󰡔한국의 가정신앙 –충청북도 편-󰡕. 2006. 39) 국립문화재연구소. 󰡔한국의 가정신앙 –경상북도 편-󰡕. 2007. 40) 국립문화재연구소. 󰡔한국의 가정신앙 –경기도 편-󰡕. 2005. 41) 부여군지편찬위원회. 󰡔부여군지󰡕 제6권. 부여의 민속문화. 2003. 서천군지편찬위원회. 󰡔舒川郡誌󰡕 제4권. 전통민속 · 현대문화. 2009. 공주시지편찬위원회. 󰡔公州市誌󰡕 下卷. 2002. 보령시지편찬위원회. 󰡔保寧市誌󰡕 中. 2010. 논산시지편찬위원회. 󰡔論山市誌󰡕 4. 민속과 현대문학. 2005. 무주군지편찬위원회. 󰡔茂朱郡誌󰡕 中. 2004. 완도군지편찬위원회. 󰡔莞島郡誌󰡕. 2010. 청송군지편찬위원회. 󰡔靑松郡誌󰡕. 1990. 이천시지편찬위원회. 󰡔利川市誌󰡕 3. 민속과 구비전승. 2001. 광양시지편찬위원회. 󰡔光陽市誌󰡕 제3권. 문화 · 민속 · 인물.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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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역 의례 명칭 질 환 치료 방법 茂朱郡 없음 배탈 그릇에 쌀을 담아 보자기로 감싼 후 배 위를 문지른다. 莞島郡 잔밥먹이기 팔다리가 갑자기 아플 때 작은 좀드리 바가지 같은 것에 쌀을 담아 보자기로 감싼 후 그릇 입쪽을 환부에 두드린다. 靑松郡 없음 아픈 곳 종지에 곡식을 담아 헝겊에 감싼 후 배에 문지른다. 利川市 없음 배앓이 배를 따뜻하게 덮어주거나 쓸어 준다. 光陽市 잔밥먹이기 아픈 곳 바가지에 쌀, 보리를 담아 환부를 문지른다. 전라 · 충청도 지역 이외에 의례 명칭은 다르나, 같 은 치료 행위를 하는 지역으로는 경상북도 · 경기도의 일부 지역에서 발견되었다.42) 이것은 요법이 타 지역 으로 전파된 경로를 파악할 수 있는 근거가 되며, 교통 과 전자통신이 발달하기 이전에는 여성들의 결혼을 통 해서 경험과 口傳으로 전파된 것으로 여겨진다. 요법 을 통한 치료는 가정내에서 이루어지며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치료법이기 때문에 전문가보다는 주로 가정주 부나 신할머니를 통해서 진행되어43) 여성들간에 가정 내에서 전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경상북도 지역에서 요법 사용에 쌀이 아닌 좁쌀을 이용한 것은 경상북도 지역의 환경적으로 논농사보다 밭농사를 위주로 하였기 때문에 변형된 것으로 여겨진다. 󰡔한국의 가정신앙󰡕에 기술된 내용이 한 道를 중심으 로 넓은 지역을 조사했다면, 각 도의 市郡을 중심으로 자세하게 분석할 수 있는 자료로 각 지방자체단체에서 간행한 市郡誌(史)를 들 수 있다. 시군지에서는 해당 시군의 인문 · 자연환경에 따른 민간에서의 질병 치료 법을 파악할 수 있다. 전국 시군에서 발행한 시군지 중 치료행위를 실시한 시군은 다음과 같다.

3. 고찰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 요법의 치료방법은 각 지역 마다 조금씩 다른 점은 있으나 <Figure 1> · <Figure 2> 처럼 일반적으로 바가지에 쌀을 가득 담아 천으로 바 가지로 감싸서 묶은 다음 바가지를 뒤집어서 쌀이 든 부분으로 환자의 아픈 부위를 문지르거나 가볍게 ‘톡 톡’ 두드리기를 반복한다. 즉 각 지역의 잔밥먹이기의 치료 방법을 종합하여 보면 작은 바가지에 쌀을 담아 환부에 ‘문지른다’, ‘두드린다’, ‘대었다가 떼기를 반복 한다’ ‘갔다 댄다’, ‘쓸어내린다’고 하였다. 그러한 행위 는 한의학에서 사용하고 있는 추나기법 중 연부조직 수기법과 비슷한데, 그 중에서도 체표면을 비벼주는 기법인 마법(摩法, rubbing)이나 찰법(擦法) 혹은 체표 를 두드리는 기법인 고격법(叩擊法, tapping)에 속한 다고 볼 수 있으며, 그러한 기법에 쌀을 담은 작은 바 가지라는 도구를 함께 사용하였다고 볼 수 있다.44) 각 도의 시군에서 요법을 시행한 질환은 눈에 보이 는 외상에 의한 것 보다는 눈으로 확인이 어려운 몸속 병이 주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사용된 질환을 증상 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지 역 질 환 전라북도 頭痛, 腹痛, 胃滯, 四肢疼痛, 小兒發熱, 急腹痛, 身痛 전라남도 頭痛, 膝痛, 脚痛, 身痛, 浮腫, 疼痛, 肩痛, 腰痛, 四肢疼痛, 捻挫 충청남도 頭痛, 小兒腹痛, 胃滯, 惡寒, 感冒 충청북도 腹痛 경상북도 身痛 경 기 도 胸悶 <Table 8> 지역별 사용된 질환 위의 표를 살펴보면 두통 · 복통 · 요통 · 오한 등 가 정내에서 흔히 발병하는 병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 러한 질환은 현재 뿐만 아니라 고대사회에서부터 가정 에서 일어나는 보편적인 병들이다. 특히 소아질환에도 사용하였음을 볼 수 있는데, 도구를 사용하거나 주문 을 외우지는 않는다는 차이점이 있지만, 치료자의 손 을 사용하여 환부를 문지르는 행위 자체는 소아 推拿 의 방법으로 현재에도 소개되고 있다. 즉, 마법은 화중 이기(和中理氣), 소적도체(消積導滯)의 작용이 있어 42) 조사결과 경상남도 · 강원도 · 제주도에서는 잔밥먹이기와 유 사한 치료의례가 나타나지 않았다. 43) 이필영. 앞의 논문. 2005. p.91. 44) 신준식. 앞의 책. 1995.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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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치나 배가 아플 때, 식체로 배가 더부룩할 때, 기체 및 가슴과 옆구리가 갑자기 아플 때 흔히 쓰이며, 찰법 도 부드러운 자극으로 온경통락(溫經通絡), 행기활혈 (行氣活血), 소종지통(消腫止痛), 건비화위(健脾和胃) 의 작용이 있어 명치나 배가 아프거나, 풍습(風濕)으로 인한 산통(酸痛), 외상으로 인해 부은 상처 등에 쓰인 다.45) 소아 질환의 치료로 잔밥먹이기 방법을 이용한 것은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도구를 사용하였다는 민 간요법으로서의 의미도 있지만, 그 방법 자체가 통증 을 유발하는 침이나 쓴 약을 사용하여 치료하기 힘든 소아에게 통증이나 공포를 유발하지 않기 때문에 소아 들이 심리적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유 용하게 사용되었으리라 판단된다.46) 문지르는 행위 외에 이 요법의 구성 요소 중 주목해 볼 만한 것으로는 치료자와 환자간의 밀접한 상호작용 을 들 수 있다. 잔밥먹이기의 치료주체는 대부분 여성 이며 특히 가정 내에서 어머니 또는 할머니에 의해 시 술되는 경우가 많은데 잔밥먹이기를 매개로 신체의 증 상뿐 아니라 심리적인 지지를 통해 정서적인 안정을 유도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의료전달체계가 발달한 현대에는 가정 내에서 직접 질병을 치료할 경우는 드물지만, 질병 치료를 매개로 한 민간요법의 심리적 효과는 현대의학에 시사하는 바 가 있다. 일례로 먼저 서양에서는 저출생 체중아의 회 복을 돕는 방법으로 ‘인큐베이터 치료’와 더불어 산모 와 피부를 더 많이 접촉하도록 하는 ‘캥거루 육아법’이 연구되고 있는데, 이러한 방법은 체온을 유지시키며 신경정신적 기전을 통해 호르몬 분비를 원활히 하여 영아사망률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다음으 로 보완대체요법으로 마사지 요법(Massage Therapy) 은 통증의 감소나 스트레스 · 불안 등을 경감시키고 면 역기능을 증가시키는 작용을 한다고 보고되었다.47) 따라서 이러한 가정 내 민간요법의 심리 · 정서적인 효 과에 대해 추가적인 연구를 진행하는 것도 필요하다. 또한 잔밥먹이기는 주술적 성격도 갖고 있어 우리나 라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온 원시적인 신앙의 모습을 엿 볼 수 있는데, 그것은 한의학적으로 보았을 때 祝由에 해당하는 치료기법이다. 이렇게 잔밥먹이기는 한의학 적으로 보았을 때 마법 · 찰법 · 고법 등의 추나기법 및 축유에 해당하는 한의학적 원리가 녹아있는 민간요법 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이러한 한국 전통의 고유한 요 법이 지금까지 민간에서 民間療法 · 民間醫療 · 醫俗 등 으로 일컬어지면서 지속적으로 경험과 구술을 통해서 그 명맥이 유지되어 왔다.

Ⅳ. 결론

본고에서는 전라 · 충청도 지역에서 치병을 위해서 시행된 비정기적 가정의례 중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 ‘잔밥먹이기’가 전승되어 민간에 남아지게 된 배경 및 질환과 치료방법을 살펴보았다. 이 요법은 병이 들었 을 때 정확한 실체를 알 수 없는 신적 존재인 잔밥각시 에게 병을 낫게 기원을 드리는 치병의례로 가정내에서 주로 여성들을 중심으로 경험과 구전을 통해서 이어져 내려왔다. 고구려에서 시행된 선도술 치료법이 남하한 유민들 에 의해서 익산과 남원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특히 남원은 과거 전라 · 충청도 지역을 관통하는 지리적 중 심부를 차지하고 있어 교통로를 중심으로 전파되었다. 또한 전라 · 충청도 일대라는 한정된 지역공간에서 주요하게 사용된 점은 초기 선도술 치료의 거친형태의 古形을 많이 간직할 수 있는 요건이 되었다. 그리고 일 부가 타 지역에 전파됨으로서 인문 · 자연환경에 따라 의례명칭과 치료방법 등이 원형에서 변화되었음을 확 인할 수 있었다. 도교의 한 방편으로 전래된 선도술이 국내의 인문 · 자연환경에 맞게 고유한 전통의 찰법으로 민간에 남아 서 지속적으로 기능을 하였다. 즉 한국 고대사회에서 부터 가정내의 일반적인 질환이던 頭痛, 腹痛, 胃滯, 四肢疼痛, 小兒發熱 · 腹痛, 急腹痛, 身痛, 膝痛, 脚痛, 浮腫, 疼痛, 肩痛, 腰痛, 捻挫, 惡寒, 感冒 등의 치료법 이 치병의례 속에서 존속하여 현재까지도 이어져 왔음 45) 조휘성, 곽중문 공역. 󰡔엄마손은 약손(소아추나학)󰡕. 의성당. 1995. pp.79-80. 46) 조휘성, 곽중문 공역. 위의 책. 1995. p.37.

47) Field T. M. Massage Therapy Effects American Psychologist, 53(12), 1998, 1270~1280. 마사지 요법으로 인한 환부의 압력과 찬 온도가 통증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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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각 지역 시군지 및 민속보고서의 내용을 통해서 파악 하였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으로 전라 · 충 청도 지역에 전파된 원인을 살펴볼 수 있었다. 민간에서 사용하고 있는 치료법은 경험과 구전에 의 해 전승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므로, 기록을 통한 문 헌근거와 다소간의 간격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러한 간격은 역사적 추론을 통해서 그 간격을 매울 수 있다. 본 논문은 역사적 추론을 통해서 고유의 치료법을 밝혀 낸 사례가 될 것이다. 따라서 고유의 치료법인 찰법을 전통문화유산의 보존과 전통의학적 효능의 과학화 · 현 대화를 통해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요구되어 진다.

감사의 글

본 연구는 한국한의학연구원 민간요법활용기반구 축사업(K12210)의 지원으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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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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