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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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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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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기 공주박물관대학

2014년 5월 23일(금) 15:00

~ 17:00

고려시대 석조미술

-우리나라의 승탑

僧塔

-소 재 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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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석조미술

-우리나라의 승탑

僧塔

소 재 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장

1. 승탑의 기원

불교에는 세 가지 성스러운 보배가 있으니 바로 불佛(부처), 법法(가르침, 불경), 승僧(스님)이다. 따라서 이러한 불교의 삼보는 모든 불교도로 하여금 숭배의 대상이 되어 부처를 위해서는 탑과 불상을 만들어 예배하고, 가르침 에 대해서는 수많은 경전으로 엮어서 세상에 보급하며 스님은 불법을 전하 고 민생을 교화하는 전도자로서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삼국시대로부터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고승들이 백성의 스승인 국 사의 칭호와 국왕의 스승인 왕사의 칭호를 받았고 이들은 교화는 물론 불법 의 학문적 탐구에도 정진하여 외국에까지 이름을 떨치기도 하였다. 이리하 여 덕망 높은 스님이 일생을 마치게 되면 평소에 스님을 받들던 제자와 신 도들이 스승의 묘탑인 승탑과 탑비를 세우게 되었다. 또한 이러한 승탑과 탑비는 왕명으로 승탑의 칭호가 붙여지며 비문은 당대 제일의 문장가가 글 을 짓고 명필가가 글을 써서 이를 석공이 비석에 새기게 된다. 이같이 지극 한 정성으로 세워진 승탑과 탑비는 온갖 장식무늬와 장엄한 조형으로 완성 되어 우리나라 석조미술의 진면목을 이루게 되었다. 승탑의 건립은 탑과 마찬가지로 인도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실제로 인도 에서는 불탑보다도 승탑이 먼저 만들어졌다. 석가모니를 따르던 10대 제자 중의 한 사람인 사리불은 석가모니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이에 석가모니 를 극진히 따르던 급고 장자는 제자 목건련의 도움으로 석가모니로부터 사 리불의 장례를 허락받아 묘탑을 만들고 정성으로 돌보았다고 한다. 이후 불 교의 융성과 전파에 힘입어 인도는 물론 중국에서도 고승들의 묘탑이 만들 어졌으며 그러한 관습이 뒤늦게나마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승탑이 ‘부도浮屠’라는 명칭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부도는 ‘붓다Buddha’의 음역이라고 하며 원래는 부처를 가리키는 것이었으나 나중에 는 고승을 부처님처럼 존경하여 부도라 일컫게 되고 나아가 고승의 묘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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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부도라는 것으로 굳어진 듯하다. 우리나라의 승탑은 절의 외곽에 따로 탑원을 마련하여 승탑과 탑비를 안치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승탑의 모양 은 조선시대 이전까지 대부분 불탑과는 별개의 형태로 제작되었으며 극히 일부의 승탑만이 석탑 모양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고려시대 말기 이후로는 석탑형 승탑, 석종형 승탑이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특히 조선 시대 후기에는 간단한 석종형 승탑이 크게 유행하였다.

2. 우리나라 승탑의 등장과 역사적 배경

1) 기록에 보이는 초기 승탑의 조영 우리나라에서는 불교 전래 이후 처음부터 승탑이 세워진 것은 아니었으며 모든 승려에게 세워준 것도 아니었다. 신라의 고승 원효元曉는 유골로 초상 을 만들어 분황사에 안치하였고 백제의 승려 혜현惠賢의 시신은 호랑이 밥 이 되게 하였으며 통일신라시대의 진표율사眞表律師의 시신은 흙 속에 매장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또한 이러한 고승들의 시신 매장법은 이를 안타까워 했던 제자들이 스승의 유골을 거두어 탑을 만들게 된 동기가 되기도 하였 다. 『삼국유사』에는 혜현이 산중에서 일생을 마쳐 시체를 석실 속에 두었 는데 호랑이가 다 먹어버리고 오직 머리와 혀만 남겼으나 해가 세 번 바뀌 어도 변하지 않고 후에 돌처럼 단단해졌으므로 제자들이 공경하여 석탑에 간직하였다고 한다. 또 원광 스님은 80여 세에 입적하였는데 부도가 심곡사 에 있으며 경주 부근의 안강 땅에는 혜숙 스님의 부도가 혜숙사란 절에 있 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승탑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고승들의 유골을 안전하게 탑 속 에 안치하는 법식을 중국으로부터 들여온 후라고 생각된다. 또 『삼국유 사』에 고승 원광, 혜숙, 혜현 등의 승탑에 대한 기사가 실려 있으므로 우리 나라에서는 삼국시대 말기에 승탑이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으며 당시는 중 국에서 고승 구마라집의 승탑이 조영되고 있었으므로 그러한 장례법이 우리 나라에 들어온 것이라고 추정된다. 그러나 삼국시대 말기에 조성된 승탑은 현재 남아 있는 것이 없다. 오늘날 남아 있는 승탑들은 대부분 통일신라 하 대 이후에 조성된 것들로 신라사회에서 새로운 선종불교가 널리 전파되고 있던 시기와 관련이 있다. 그리고 당시에는 상당한 지위와 덕망을 갖춘 고 승에 한하여 국왕의 허락을 받아 승탑이 조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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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신라 하대 선종불교의 도입과 승탑 조영 불교 도입 이후 통일신라 대 전성기인 8세기 중엽까지는 불교 경전을 연 구하고 해석하는 이른 바 교종 중심의 불교 활동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리고 이러한 교종의 교세는 열반종, 계율종, 법상종, 법성종, 화엄종 등으로 대표 되는 5교敎의 교단 활동이 중심을 이루었다. 그러나 전성기를 누렸던 신라 왕조도 타락상을 보여 원성왕대 이후 신라 하대로 접어들면서 왕권이 쇠약 해지고 계속되는 왕계 귀족들의 정권 다툼으로 내정의 혼란을 자초하게 되 었다. 그리고 흥성했던 신라 불교계는 많은 유학승을 당 나라에 보냈는데 마 침 당 나라에서는 선종 불교가 크게 일어나고 있어 많은 승려들이 선학禪學 을 공부하게 되었다. 그러나 무종 황제가 등극한 후에는 불교를 탄압하고 유 학승을 귀국시키게 되었는데 이때는 이미 신라의 왕정이 쇠망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리하여 귀국승들은 중앙에서 활동하지 못하고 지방으로 흩어져 새로이 공부한 선종불교의 가르침을 전하고자 하였는데 이 때 각 지역에서 독립적 인 세력을 이룬 후원자들을 만나 새로운 선종 불교의 국면이 전개되기 시작 하였다. 선禪이란 침묵과 깊은 사념을 통하여 마음의 평정을 구하는 수행방법으로 원래 요가에서부터 출발하였다. 그 후 불가의 수련법으로 각광을 받아왔으며 중국 남북조 시대의 양 무제 때인 대통 원년(527)에 서역의 달마 대사가 배 를 타고 와서 중국 땅에 최초로 선을 전하였다. 그 후 신심일여身心一如의 자 세로 일상생활 중에서 해탈의 경지를 추구해온 선은 혜가慧可(2조), 승찬僧瓚( 3조), 도신道信(4조), 홍인弘仁(5조), 혜능慧能(6조)으로 이어지는 선맥을 이루었 으며 이 때 중국의 선은 남종선과 북종선으로 갈리고 남종선의 종조가 된 혜능 선사로부터는 많은 제자들이 나와 남종선의 여러 갈래 선맥을 이루었 다. 또 이로부터 중국의 선은 중국인의 강한 현실주의적인 사고체계에서 발 전하였다.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 직지인심直旨人心, 견성성불見性 成佛 등의 가르침은 이러한 중국선을 대표하는 것이 되었고 묵조선, 조사선, 간화선 등으로 선수행도 확대 증진되었다. 이러한 중국의 선종불교가 신라에 본격적으로 전래된 것은 800년대 이후 의 일이지만 그 이전부터 선은 신라 땅에 전래되고 있었다. 4조 도신으로부 터 선법을 전수받은 법랑이 통일신라 초기에 최초로 선을 전하였으며 단속 사의 신행神行 선사는 신수神秀로부터 북종선을 전수받았다. 그러나 선이 신 라에서 유행하게 된 것은 중국 남종선의 고승 서당지장으로부터 선법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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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받은 도의道義가 헌덕왕 13년(821)에 귀국하고 홍척洪陟이 흥덕왕 1년(826) 에 신라에 돌아와 선법을 펴기 시작한 이후이다. 도의는 무념무수의 심요를 전수하려 하였으나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아 결국 설악산 진전사에 은거하였 고 그의 가르침은 염거화상을 거쳐 문성왕 2년(840)에 귀국한 체징선사體澄禪師에 이르러서야 크게 종풍을 떨치게 되고 비로소 가지산문의 활동이 전개되었다. 한편 홍척은 826년에 귀국하자마자 지리산 실상사에서 산문을 열고 활동 을 개시하여 실질적인 신라 선종불교활동의 효시를 이루었다. 그리고 혜철慧哲은 부석사에서 화엄학을 공부하다가 전라남도 곡성 태안사泰安寺에서 동리산문銅 裏山門을 개산하였다. 3) 전통을 이룬 팔각당형 승탑 현존하는 우리나라 승탑 중에서 건립연대가 가장 빠른 것은 전 흥법사 염 거화상탑傳 興法寺廉巨和尙塔이다. 이 염거화상은 신라 선종 9산문 중의 하나인 가지산문迦智山門을 개창한 도의道義선사의 제자이며 844년에 입적하였다. 이 승탑은 평면이 팔각형이며 기단은 하대석, 중대석, 상대석을 차례로 결합하 고 하대석에는 사자, 중대석에는 향로와 꽃무늬, 상대석은 연꽃잎무늬를 장 식하였으며 기단 전체의 형태는 불상의 대좌모양을 하고 있다. 상대석 위에 는 탑신 받침대를 돋우고 여기에 팔부중상을 새겼으며 탑신부에는 사천왕상 과 기둥을 새겼고 지붕은 처마 밑에 서까래를 새겨 넣었으며 지붕 위는 기 왓골을 내어 기와지붕의 형태를 갖추었다. 이와 같은 팔각당형의 승탑은 계속 후대로 이어져 조선시대까지 계승되는 데 형식은 변함없지만 기단과 탑신의 조각은 승탑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 다. 그러나 통일신라 하대의 승탑이 모두 팔각당형을 이룬 것은 아니었다. 염거화상의 스승인 도의선사가 머물렀던 양양의 진전사陳田寺터에는 사각형 석탑모양의 기단 위에 팔각형의 작은 탑신을 올린 승탑이 남아 있어 이 승 탑은 팔각당형으로 승탑이 정착되어 가는 과도적인 승탑의 예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외국의 예를 보면 746년에 세워진 중국 하남의 회선사 정장선사 탑이 팔각당형을 이루고 있으며 800년을 전후한 시기에 세워진 장안 소요원 의 구마라습사리탑은 지붕은 사각형이나 탑신이 팔각형을 이루고 있다. 또 팔각당형 건물로 일본에 남아 있는 몽전夢殿은 739년에 세워진 것으로 불사 리를 봉안하기 위하여 세워졌는데 이러한 예들로 미루어 팔각당형 또는 절 충된 팔각당형의 승탑이 이미 존재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현존하는 팔각당형 승탑으로는 곡성 태안사太安寺의 적인선사조륜청정탑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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忍禪師照輪淸淨塔, 화순 쌍봉사雙峰寺의 철감선사탑澈鑒禪師塔, 남원 실상사의 증 각대사응료탑證覺大師凝廖塔과 수철화상능가보월탑秀澈和尙楞伽寶月塔, 장흥 보림 사寶林寺의 보조선사창성탑普照禪師彰聖塔, 문경 봉암사鳳巖寺의 지증대사적조탑 智證大師寂照塔, 구례 연곡사鷰谷寺의 동부도東浮屠 등을 들 수 있으며 여기에 약간 변형을 가한 승탑으로는 고달사지부도高達寺址浮屠, 선림원지부도禪林院 址浮屠 강릉 굴산사지부도崛山寺址浮屠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승탑들은 한결같 이 뛰어난 조형성을 발휘하고 있어 9세기 이후 통일신라 하대의 석조미술의 진면목이 석탑에서 승탑으로 옮겨왔음을 실감할 수 있다.

3. 신라 승탑의 특징

1) 일반적인 형식 신라의 승탑은 진전사陳田寺터의 승탑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승탑이 팔각 형의 평면을 기본으로하는 이른바 팔각당 형식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승탑 전체는 기단부와 탑신부 그리고 상륜부로 크게 나뉜다. 기단부는 불상의 연화대좌 형식을 본뜨고 있는데 이는 승탑의 격을 거의 불격과 동등하게 생각하였기 때문이라고 추정된다. 또한 이 대좌형 기단부는 다시 하대석(밑받침), 중대석(중간받침), 상대석(윗받침) 등 세 부분으로 나뉘 어지며 그중에서 밑받침과 윗받침은 복합구조를 띠는 것이 보편적이다. 즉 밑받침은 상단부와 하단부의 겹친 구조를 이루는데 때로는 옆면부와 윗면부 의 조형구조를 이룰 때도 있다. 이 때 대체로 두 면에는 무늬곽, 사자, 구름 등의 장식무늬가 펼쳐지며 상단부에서는 중간받침을 받기 위한 괴임턱 장식 이 유별나게 돋우어지기도 한다. 윗받침은 대개 연꽃잎 무늬를 밑면에 두르 고 윗면에는 다시 탑신부를 받기 위한 별도의 받침장식을 돋우어 놓는다. 특 히 이 받침대의 옆면에는 무늬곽 장식, 연꽃장식 그리고 난간형 장식 등 다 채로운 구성이 표현되어 탑신부를 직접적으로 떠받는 부분으로서의 정성스 런 조형정서를 읽을 수 있다. 이에 반하여 중간받침은 가장 단순한 편이다. 입체적으로도 이 부분은 잘록한 형태로서 기단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다. 따라서 이 부분은 시선을 가장 적게 받으므로 조형성향이 또한 상대적 으로 적은 편이다. 탑신부는 팔각의 지붕과 벽면을 지닌 팔각당형이며 여기에는 신라 목조건 축의 형태를 상당히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특히 출입문 형태를 표현함 에 있어서는 문틀과 문고리, 자물쇠 등이 사실적으로 표현되고 문의 양 옆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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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는 사천왕상, 신장상 등이 배치되며 지붕 위에는 기왓골이 표현되고 처마 밑에도 서까래, 비천상 등이 표현되어 목조건물에서의 중요하고 특징적인 표 현요소를 그대로 옮겨 놓았다. 이는 승탑의 탑신부가 필시 어떤 중요한 팔각 형 목조건물의 형태를 모방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상륜부는 승탑에서 가장 연약한 부분이라서 현존하는 신라 승탑 중 상륜 부를 완벽하게 보존하고 있는 예가 거의 없으므로 확언할 수는 없지만 노반 과 복발, 팔각지붕 모양의 보개, 불꽃에 싸인 보륜 등을 갖추고 있다고 보며 여기에 봉황 장식이 첨가되기도 한다. 2) 특수형식 일반적인 형식을 지닌 신라 승탑들은 영호남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승탑은 형식적인 면에서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데 특 히 중부권 승탑에서 별도의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면 기단부에서 연화대좌 형식을 채택하되 중간받침을 귀룡형 또는 운룡문으로 장식하는 사례로써 고달사지高達寺址 승탑, 선림원지禪林院址 승탑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이들 승탑의 형식은 주변지역에서 고려시대로 계승 되는데 특히 원주지역을 중심으로 한 고려 승탑에서 공통적인 특징을 보여 준다. 여기서 기단부에 거북, 구름, 용 등이 장식되는 것은 석비의 조형에서 힌트를 얻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당시에 석탑, 석비, 석등, 석조 불상대 좌 등의 석물조형이 대상을 넘나들며 조형 소재를 공유하고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아울러 승탑의 지붕 표현에서 기왓골이 생략되는 형식도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이점 또한 이미 석탑이나 석등에서 지붕의 기왓골 표 현을 애당초부터 생략한 것을 승탑 조형에서 그대로 인용하기 시작한 것으 로 추정된다. 3) 신라 승탑의 양식적 특징 신라 승탑은 그 시원 양식이 중국 唐 나라에서 들어와 신라식으로 정착되 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9세기 중엽 이후로는 이들의 조형에 변하지 않 는 형식의 틀이 생겼으며 특히 작품의 부위가 받침, 몸체, 정상부 등 3부분 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이 가장 눈에 띠는 형식적 특징이 되었다. 그중에서 조형적으로 가장 관심의 대상이 되는 곳은 받침부이며 그 다음 으로는 정상부의 조형에 관심을 두고 있다. 특히 정상부頂上部의 조형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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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을 포함하여 상륜부로 연계되는 구도를 중시한 듯하다. 그러나 본체에 해당하는 탑신은 중요한 핵심부라서 이곳의 조형은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지 는 않고 있다. 따라서 신라 승탑은 상하의 조형에 강세의 형국을 표현함으로 써 양단으로 시선을 끈다. 또한 시선을 끄는 곳은 입체적 조형성이 강하게 나타나 생동감이 있고 중간부의 핵심 공간은 매우 정적이며 차분한 분위기 를 보여준다. 이로써 승탑의 조형은 상하의 생기 있는 조형이 중간부의 차분한 분위기 를 중심으로 하여 대련을 이룸으로써 조형미를 승화시킨다. 여기서 본체를 중앙에 두고 상하의 장엄부재들이 얼마나 균형 있고 세련된 미감으로 상호 연계되는가에 따라 그 작품성을 결정짓는다. 아울러 작품상의 전반적인 조형 의지가 강하면 강할수록 핵심부인 본체에 장엄의 미를 발현하게 되며, 반면 에 형식화될 때에는 바로 이 본체의 부분부터 미의식에 대한 관심을 소홀히 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신라의 승탑은 받침부 즉 기단부의 조형이 매우 중시 된 듯하다. 이 부분에서는 상당한 기량을 발휘하고 있는데 이를 테면 기단부 가 윗받침, 중간받침, 밑받침 등으로 구분되어 각 부분마다 온갖 치밀한 조 형이 베풀어진다. 그런데 여기서도 조형의 품세는 구도나 장식에서 강약의 조화를 이루는데 역시 상부와 하부는 강한 동세의 형국이고 중간부는 정적 인 차분함을 연출한다. 그러나 중간부를 세련된 표현력으로 강조하는 경우는 기단부 전체에도 분명 진취적인 조형 의지를 돋보이고 있다. 이와 같은 조형의지가 우선 작품의 구도면에서 적정한 균형 감각과 비례 를 유지할 때 신라의 승탑은 정형을 이룩한다. 전 흥법사 염거화상탑傳 興法 寺 廉巨和尙塔(844), 실상사 증각대사탑實相寺 證覺大師塔(861이전), 태안사 적인선 사탑泰安寺 寂忍禪師塔(861) 등 초창기의 승탑은 이러한 면에서 성공하고 있다. 기단부는 격조가 있고 여기에 베풀어진 무늬는 우아하고 부조는 생동감이 있다. 여기서 진일보한 신라 하대 중반기 이후의 승탑인 쌍봉사 철감선사탑 雙峰寺 澈鑒禪師塔(868), 고달사지 승탑高達寺址 僧塔(870년 경) 등은 세련미와 사 실적인 미감을 이상적으로 결부시켜 조형의 자신감에 차 있다. 또한 이처럼 자신감에 찬 과정을 경험하면서 일부 승탑은 규모가 훨씬 커진다. 그러나 880년 이후의 승탑은 간혹 화려하거나 장대한 조형성을 보여주기 는 하지만 조형 감각은 형식적으로 기울어 과거에 비하여 쇠퇴한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890년 이후가 되면 온 나라가 어지러운 형편에 처하여 선문활 동이 일시 위축되고 고려의 후삼국 통일이 이루어진 후에야 다시 활기를 띠 는데 조형의욕은 앞서 있으되 기량이 따르지 못하여 일부 승탑에서는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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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 표현과 규모의 장대함만이 나타나게 되고 또한 일부의 승탑은 규모면에 서조차도 위축됨을 나타내기도 한다. 특히 탑신부에 표현되는 부조는 승탑의 시대에 따라 변하는 승탑의 조형의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가 되고 있다.

4. 고려시대의 승탑

1) 고려불교와 승탑조영의 전개 신라 하대에 크게 교세를 떨친 선종불교는 분열된 신라 국토에서 지방 세 력의 활동에 이념적으로 호응하는 새로운 불교정신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러 한 정황은 후삼국기에도 계속 이어졌으나 일시 교세활동은 내정의 혼란으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가 고려에 의하여 국토가 재통일되면서 다시 지방 세 력의 후원으로 되살아났다. 그러나 고려 왕조가 광종대 이후로 강력한 왕권국가로 접어들면서 고려의 불교는 중앙 집권적인 응집력을 추구하는 정치이념에 호응하는 교종불교로 선회하기 시작하였고 특히 대각국사 의천이 고려 불교를 통합하여 천태종 天台宗 을 창시하게 되자 대부분의 선종불교도 교종으로 흡수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신라 하대부터 조영되어오던 승탑은 고려시대에 들어서는 선승 의 전유물이 아니라 교종 승려들의 묘탑으로도 조영되었으며 고려 문화의 전성기에는 새로운 스타일의 승탑을 선보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승 탑은 이미 신라 하대에 완성된 팔각당형 승탑의 형식을 계승한 상태에서 고 려시대적인 양식을 가미하였고 규모와 조형성은 사찰의 교세와 시대적인 부 응에 따라 수작과 범작이 고루 등장하였다. 특히 수작秀作에 속하는 승탑들은 초창기의 승탑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들은 주로 신라의 승탑 양식을 계승하였지만 조형성은 다소 뒤떨어지며 형식화를 촉발하고 있다. 그 후 11 세기에 들어 고려의 승탑은 화사함과 우아함을 겸비한 새로운 양식을 탄생 시키기도 하였으며 한편으로는 형식화로 퇴화된 승탑을 지어내기도 하였다. 그 후 고려 왕조가 붕괴되는 무신정권기와 원 침략기의 정국에서는 고려 불교가 위축되어 이렇다 할 승탑의 조형이 이루지지 못하였으며 이때 한편 에서는 또한 신흥 종교활동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보조국사 지 눌普照國師 知訥에 의한 조계종의 성립이라고 할 수 있다. 조계종은 선종불교 의 부활을 표방하면서 선종의 입장에서 교종을 통합하는 활동을 전개하였으 며 많은 국사를 배출하였는데 난국에 처한 당시의 정황으로 말미암아 손꼽 을만한 승탑을 선보이지는 못하였다. 또한 당시는 이미 승탑조영의 정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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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때라 새로운 승탑을 부활시키는 전기를 마련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원 나라와 화의가 맺어지고 중국과의 문화교류가 활성화되면서 고 려 말기에는 중국 당唐나라 때부터 전통을 이어온 임제선이 보우普愚 나옹懶翁 등 에 의하여 고려 사회에 소개되어 신라의 구산선문이나 고려 후기의 조계종 과는 다른 선풍이 진작되기에 이르렀다. 이와 함께 나옹의 스승인 지공선사智空禪師의 승탑이 새로운 석종형 스타일로 고려 말기에 등장하였고 이를 계승하여 제 자 나옹선사懶翁禪師의 승탑도 동일한 양식으로 뒤를 이었는데 이는 조선시대 에 들어 석종형 승탑이 크게 유행되는 실마리가 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나옹 선사의 승탑이 여러 군데에 건립되는 양상이 벌어지기도 하였으며 특히 영 전사令傳寺에 세워진 나옹선사탑은 석탑과 승탑의 차별을 없애 아예 석탑형 으로 승탑이 세워지기도 하였다. 2) 고려 승탑의 양식적 특징 고려시대 초창기의 대표적인 승탑은 규모가 장중하거나 지붕이 과장되며 기단부의 변형이 신라의 승탑에 비하여 다양하게 전개된다. 여기에 해당하는 승탑으로는 보현사 낭원대사오진탑(940), 흥법사 진공대사탑(940), 봉암사 정 진대사원오탑(965), 고달사 원종대사혜진탑(977), 보원사 법인국사보승탑(978) 등을 들 수 있는데 한결같이 장중한 기풍에 다소 둔중한 지붕이 처마 밑이 보일 정도로 휘어 들린 모습을 하고 있어 신라 하대의 승탑과 뚜렷이 구별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태안사 광자대사탑(950), 갑사 승탑, 영국사 승탑 (1180), 굴산사지 승탑 등과 같이 극히 왜소해진 승탑도 조성되고 있으며 그 러한 경향은 후기로 갈수록 역력하게 나타나고 있다. 또한 고려시대의 승탑은 석탑과 마찬가지로 일반형을 벗어나 다양한 형태 를 지닌 승탑이 눈에 띠게 조성되었다. 이같은 변형의 승탑은 크게 보궁형, 탑형, 석종형, 탑신원구형 등으로 분류된다. 우선 보궁형 승탑으로는 원주에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온 법천사 지 광국사현묘탑(1085)을 들 수 있는데 이 승탑은 평면 사각형에 2층누각의 모 습을 하고 있으며 기단으로부터 상륜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조각장식을 베 풀고 있으며 특히 탑신부의 장식은 이국적인 조형감각을 보여주고 있어 특 이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홍법국사 실상탑(1017)은 원래 충주 정토사 터에 있던 것으로 탑신이 원구형으로 이루어지고 지붕은 연잎모양을 하고 있는데 조형성이 매우 뛰어난 고려시대의 승탑에 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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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형 승탑으로는 역시 원주에서 국립중앙박물관에 옮겨온 원주 영전사지 보제존자사리탑(1388)을 들 수 있는데 이 승탑은 쌍탑으로 그 모습이 오층석 탑과 다를 바가 없다. 또한 경기도 장단의 화장사 지공선사탑, 여주 신륵사 의 보제존자 석종, 청주 안심사 석종 등은 석종형 승탑의 대표적인 예로써 그 연원은 통일신라 하대에 조성된 울산 태화사지 사리탑까지 올려 볼 수도 있으나 사실은 지공선사탑의 영향이 크다고 본다. 특히 탑형 승탑이 세워지 고 한편으로 새로운 석종형 승탑이 등장하는 점 등은 고려 말기의 사회에서 승탑 조형의 질서에 상당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음이 주목된다. 3) 토착화된 조선시대의 승탑 조선시대는 제도적으로 불교가 인정받지 못하는 시기였다. 그러나 조선사 회가 표방한 유교의 이념은 실천이념에 국한된 것으로써 종교적 차원을 보 장할 수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조선 왕조는 유교이념을 정치적 수단으로 내 세워 고려의 불교 성향을 배격하고 불교계의 막대한 경제권을 환수하였을 따름이지 불교를 대신할만한 종교적 대안이 없었다. 따라서 조선 왕조는 제 도적으로 불교를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만백성의 신앙 대상으로서의 불교를 묵인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조선 시대의 정황에서 불교는 표면적인 활동을 자제할 수 밖에 없 었다. 또한 불교 경제도 위축될 수 밖에 없었으며 조선 사회가 인증하는 공 식적인 불교 제도는 사라질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난세에 조선의 불교는 산중불교로 활동하였으며 여기에 적합한 불교활동으로는 선종불교를 표방하 게 되었다. 특히 고려 말기에 들여온 임제선臨濟禪은 나옹懶翁을 거쳐 무학대 사無學大師로 이어지고 간화선看話禪과 경학을 동시에 추구하는 통불교적인 한 국선종으로 발전하였다. 이 과정에서 조선 불교의 법맥은 끝없이 이어지고 서산대사와 같은 걸출한 고승이 나타난 뒤로는 수많은 제자들이 배출되어 오히려 조선시대 후기의 불교는 상당한 수준에 이르고 있었다. 그런데 조선시대의 승탑 조영에 있어서는 색다른 양상이 나타났다. 이미 승탑 조영의 제도가 무너졌으므로 조선시대에는 오히려 승탑 조영에 임금의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어져버린 셈이다. 따라서 초창기에는 고승만이 승탑 조성의 대상이 되어오다가 후기에 들어서는 각 사찰마다 다투어 승탑을 조 성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결국 조선시대는 가장 많은 승탑이 조 영되는 시기가 되었는데 일부 승탑은 조선시대의 독특한 양식을 보여주고 있으나 이처럼 승탑이 흔하여지고 승탑의 존귀성도 다소 하락하게 되니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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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시대의 일반적인 승탑은 양산의 과정을 거치면서 토착화되고 민예화되었 다. 조선시대의 일반형 승탑은 고려시대의 승탑을 계승하는 한편 탑신이 북 모 양으로 비대해지고 기단부와 지붕도 두툼해지면서 조각장식도 굵직하게 표 현되는 경향을 띠고 있다. 여기에 시대가 하락 할수록 지붕이 솟아오르고 상 륜부는 길쭉해져 고려시대의 팔각당형 승탑과 쉽게 구별이 된다. 이러한 예 로는 충주 청룡사 보각국사정혜원융탑(1393), 회암사지 승탑(1407)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조선시대 후기에는 간략한 형태의 석종형 승탑이 크게 유행 하고 아울러 팔각당형 승탑과 석종형 승탑이 혼재된 듯한 복합형의 승탑도 눈에 띠게 조성된다. 또한 조선시대 후기에는 승탑의 수량이 부쩍 늘어 사찰마다 조성된 승탑 원에 다량의 승탑들이 줄지어 있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조선 시대에 들어 그동안 승탑의 조영을 제한하던 불교계가 어떠한 제도적 장치 가 없어 승탑이 무절제하게 양산된 결과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시기는 한편 으로 다양한 민예적 승탑의 전성기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서도 구례 연곡사 소요대사탑(1650)은 전통의 팔각당형 승탑을 고수하였으며 순천 선암사의 화산대사탑은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의 형식을 계승한 조선 시대 말기의 승탑으로 조선시대 특수형 승탑의 양식을 마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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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기 공주박물관대학】

인문학과 함께 떠나는 특별전시 산책

● 기 간: 2014.02.21. ~ 11.21. 격주 금요일(총15회)/15:00~17:00 ● 장 소: 국립공주박물관 세미나실 ● 강의 일정 및 내용 연차 일자 강의 주제(안) 강사 전시기간 1 02.21 특별전시 해설 및 큐레이터와의 대화 김진경(국립공주박물관 학예연구사) 찰나 속에 흐르는 삼천년 의 혼, 한국의 세계문화유산 (01.28. ~ 03.30.) 2 02.28 고인돌 조현종(국립광주박물관장) 3 03.14 한국의 전통마을 김봉건(한국전통문화대학교총장) 4 03.28 종묘와 궁궐 남호현(국립순천대학교 건축학부교수) 5 04.25 특별전시 해설 및 큐레이터와의 대화 김미경(국립공주박물관 학예연구사) 하늘이 내린 살기 좋은 고장, 天下大安 (04.22. ~ 06.29.) 6 05.09 청동기시대 마을 배진성(부산대학교 고고학과교수) 7 05.23 고려시대 석조미술 소재구(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장) 8 06.13 조선시대 초상화 이수미(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9 07.25 특별전시 해설 및 큐레이터와의 대화 김진경(국립공주박물관 학예연구사) 여인의 숨결이 담긴 색 실공예, 刺繡자수 (07.21. ~ 09.10.) 10 08.08 특별전시 전시연계 강좌 2 미 정 11 08.22 특별전시 연계 강좌 3 미 정 12 10.10 특별전시 해설 및 큐레이터와의 대화 최장열(국립공주박물관 학예연구사) 무령왕릉과 백제의 대외교류 (09.25. ~ 11.23.) 13 10.24 특별전시 연계 강좌2 미 정 14 11.07 특별전시 연계 강좌3 미 정 15 11.21 특별전시 연계 강좌4 미 정 * 상기 일정 및 강의 내용은 박물관 사정에 따라 변동될 수 있습니다. 본 강의의 면학 분위기 조성을 위해 다음과 같이 진행하오니, 아래의 사항을 준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1. 강의는 정시에 시작되오니 강의 5분전 까지 강의실 입실을 완료해 주시기 바랍니다. 2. 강의 중에는 휴대폰을 꺼주시 바랍니다. 3. 추가로 교재가 필요하신 분은 홈페이지→학술․교육․행사→교육자료에서 교재파일을 다운받아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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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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