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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에서 中國古琴과 39- (페이지 3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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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세 기 말의 合字調

즉, li'玄琴五音統 19세기말엽의 합자보는 그 기능이 肉讀을 보조하는 위치로 전락되는데,

보면 肉讀가 論d1(I 886年)

li'竹醒琴讀J) (1890年)

li'三竹琴讀d1(I863""'1907

?)

等의 악보에서

φ 『玄琴五흡統論d1; 정 Á. 도

렁二

• 청下 •

루츠

CZ)li'三竹琴뽑』 ι 숨·당·홍· ι 정

四훌 方 大

文興、大令、七燈、五樓

다시말해 19세기말에 들어서면서 사실상 합자보는 더이상 예전과 같이 그렇게 유행하지 보조하는 역할을 肉뽑을

사용하여 合字符號로

몇 개의 차지하고

전체 기보의 대부분을

한다 (49)

@li'竹解琴調』

는 않았다.

(49)

44 , p.23.

줄이톰의 비교 (一) 古琴의 줄이름

1V.

減宇짧와 合宇햄의 비교

古琴의 기원은 상당히 먼 古代로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는데, 그당시의 사람 蔡뿔가 펀 찬한 『琴操』中에 보면 “1*養作之琴(1*義써 가 금을 만들었고), 以具宮商角徵~(이 것은 宮角 商徵쩌를 고루 갖추고 있다), 至周文王增二뾰(周나라 때에 文王께서 2줄을 더 첨가 했다).

-說공(일설에는)

;

文王, 武王各加一꿇(文王과 武王께하 각기 한줄씩을 첨가 했다)"라 하 였는데,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代藏時代 琴은 五꿇琴A로 첫째꿇이 宮이고, 그다음이 차 례대로 商꿇·角꿇·徵꿇·쩌혈이었다가 周나라시대에 이 五옳에다 文王과 武王이 각기 한 줄씩 첨 가했다 하여 文꿇

武꿇이 되 었다 (50)

그러 나 이 런 줄이 름을 사용한 古樂讀전해 지 지 않고, 다만 文字讀時期의 《碩石調

뼈蘭》

樂讀中에 유일하게 宮꿇

商꿇

角꿇

徵꿇

겼꿇

文꿇

武뾰 등의 줄이 름을 사용했다 (51) 庸나라 중엽 에 이 르러 뽑柔가 文字讀에 근거하여 減字諸를 만들었는데 홍흥柔가 만둔 줄이 름의 減字符號는 아래와 같다. “---"(宮)

“---L.."(商)

• “:7

"(角)

“山"(徵)

“경"(쩌)

• “ -;r"

(文)

“"-\;"(武) 等.

이런 減字符號로 庸나라 중엽의 減字謂의 줄이름 부분에 사용했는데, 그러다가 居나라 末期에 陳出

陳居土 등의 琴학자는 다시 減字讀를 새롭게 정 리 했는데 특히 줄의 기 보를 그전과는 다르게 더 펀리해 졌다. 즉, 한자의 一·二·三· 四 等을 사용해서 줄이름을 기 보했는데

,

陳뼈

陳居士가 사용했던 줄이 름은 아래 와 같다 (52)

陳 抽:大·二·三·四·五·六·七 陳居土

:

一·二·극· 四 ·五· 六· 七.

庸나라 후기 에 사용하기 시 작한 漢字의 數字(-, 二, 三…)는 明나라

淸나라에 계속해 서 減字讀 記讀에 사용되며, 現在도 계속해서 사용되고 있다. 그러묘로 이와같이 減字讀中 웰줄이름의 커보법은 庸나라 말엽(發展期)에 이미 정형화 된 것임이 확실하다.

(50)

林讓三, [i'東亞樂器考.11 (홍콩

:

香港書店,

1978) , pp.136-137.

“琴五꿇, 第一짧뚫, 宮其次商角徵겼 。文王武王各加一꿇, 以옳少宮少商 。[i'桓譯新論.1.

(5 1)

꿇世₩, “《뼈뼈讀》 맑究" [i'香港中文大學學報.11 (홍콩

: 1979) ,

第죠卷,

'

第一期,

p.142.

吳 훼, “試談古琴讀的創制問題" [i'琴論總新.11 (北京

: 1964) , p.97.

(52)

본 논문 중 “減字讀의 발전 과청”에서 이마 다룬 바 있다.

7 3

-(二) 거 문고 合字뽑의 줄이 홈

『三國史記』에 근거하면 중국 西普 (A.D 265"-'316)때에 七꿇琴(혹 古琴 • 琴)을 고구려에 전해졌는데, 그 모양과 제도에 의거하여 새롭게 만든 악기가 바로 거문고라고 했다. 그밖에 도 고분에서 출토된 거문고의 고형이 그의 역사가 상당히 오래된 것엄올 실증하고 있다.

1932年 遺寧省輯安縣西빼(우용총)에 서 고구려

(B.C 37

,,-,

A.D

668)의 古樓群이 발견되 었는

데, 그 중에 무용과 연주하는 벽화가 있다. 이 그립에 보이는 두대의 현악커는 현재의 거

문고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는 두 사람 모두 앉아서 연주하는 모습을 하고 있고, 이 악기 는 각기 4개의 꿇을 갖추고 있다 (53) 그러나 지금의 거운고는 六꿇을 갖추고 있는데 첨가

된 2줄은 어찌된 일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것은 아마도 통일신라시기에 첨가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이 부분이 중국의 古琴과 비슷한데

,

즉 중국의 초기 古琴은 다젓줄의 五 꿇琴이였는데, 후대의 文王·武王이 한줄씩을 더해 지금과 같은 모습의 七뾰琴이 되었고,

더우기 古琴의 第六꿇을 文꿇으로 第七꿇을 武꿇이라고 하는 것과 거문고에서도 文뾰·武

꿇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 즉 第六뾰을 文훨·第一뾰을 武뾰이라고 하는 것에서 상당

히 흥미롭다.

거문고의 줄이륨은 연주시 폼에 가까운 꿇부터 시착하여 第一뾰이 文꿇, 第二혈이 遊鉉,

第三꿇이 大꿇, 第四꿇이 陳上淸

第五혈이 樓下淸(흑은 l技陳淸이 라 함), 第六꿇이 武꿇이 다. 거문고는 여섯줄이 각기 이름을 갖고 있는데, 거문고의 악보인 合字讀에서도 이 독특 한 줄의 이름에 기해서 記讀時 사용한다. 이는 줄이름의 漢字를 절약하여 符號로 만든 것 으로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쓰는 방식이 약간은 서로 다르다 (54)

즉 初期의 合字讀에 사용하던 줄이 름 符號는 아래 와 같다.

許關宗讀

:

大(大꿇)

遊(遊꿇)

文(文꿇)

淸(陳上淸) 李世짧讀

:

大(大꿇)

方(遊꿇)

文(文혈)

淸(陳上淸).

『樂學動L範』의 合字法에는 줄이름의 符號가 더 簡略하게 되어 있다. 즉;

大(大꿇)

方(遊꿇)

上(陳上淸)

又(뼈陳淸)

文(文뾰)

止(武뾰).

合字讀가 가장 많이 쓰이던 전성시기의 줄이름 符號는 아래와 같다. 즉;

文(文꿇)

方(遊꿇)

大(大꿇)

上淸(課上淸)

淸(陳下淸)

淸(武꿇).

또한 合字讀가 쇄퇴하던 시기의 줄이름 符號는 아래와 같다. 즉;

(53)

張師動, IF韓國音樂史.l(서

:

正音社,

1978) , p.19.

林讓三, IF東亞樂器考.1 (홍콩

:

香港書店,

1978) , p.197.

眼師動, IF韓國樂器大觀.1 (서 울

:

韓國國樂學會,

1976) , p.65.

(54)

본 논문중 “合字讀의 발전과청” 참조.

홍(文꿇)

方(遊꿇)

大(大꿇)

上淸(陳上淸)

下淸(陳下淸)

外淸(武뾰)

이와같이 시대의 변함에 따라 合字讀에서의 줄이름 符號가 다른데 특히 『樂學훨L範』에 나 와 있는 것이 가장 簡略한 것이 주목된다

.

.

(三) 減字讀와 合字讀의 줄이 름 比較

中國의 古琴은 아주 오래전 fjÇ義가 발명하던 시커에는 원래 줄이 다젓이었고, 그 줄이름 은각각宮·商·角·徵·겼이다. 한국고구려시대의 초기 거문고역시 줄이 넷인 완전한 거문고 보다 두줄이 적었었는데, 그것이 후대에 오면서 부터 文王

• 武王이 각각 한 줄씩

첨가하여 七꿇琴이 되었고, 거문고도 역시 통일신라시기 (A.D 668) 에 두줄을 더하여 여섯 줄을 모두 갖추게 되었다. 이와 같이 古琴과 거문고는 모두 초기에 5.4꿇 이었던것이 후대 에 와서 7.6줄로 변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古琴은 庸나라 시대의 文字讀에서는 줄이 름을 漢字로 宮·商·角 ·徵. ~.文·武 등으로 漢字를 그대로 記讀에 사용했었고, 거문 고는 그 줄이름이 文鉉·遊꿇·大꿇·陳上淸·陳下淸·武꿇 등으로 이 두가지 악기 모두 줄이름에 文꿇과武꿇을 사용한 공통점이 있다.

古琴의 宮꿇

商꿇

...

文혈

武꿇 풍의 줄이 픔은 庸나라 뽑柔때 까지 사용을 하다가, 庸 나라 말기 에 團뼈z 團톨土 등이 그 줄이 름을 간단하게 한자의 數字를 사용하여

- .

七로 껴보하기 시작했다. 그런반면 거문고는 古琴에 비해 큰 변화는 없었 다. 그저 줄이름의 첫글자를 이용하여 옮謂하였다. 이런 것이 『樂學軟範』시기에 사용하던 줄이 름 부호가 여 러 合字調中 가장 簡單하다. 즉; 文(文꿇)

方(遊꿇)

大(大혈)

上(陳上

淸)

又(뼈陳淸)

止(武꿇).

그러무로 여기서 다시 이 두악보에서 또다른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즉 古琴의 成 熟期減字謂인 『神奇秘讀J](1 425年)와 거 문고의 合字諸中 표준이 라고 할 수 있는 『樂學軟範』

(1 493年)에서 줄이름의 符號가 가장 簡略한 것이였고 또한 『神奇秘讀』와 『樂學휩L範』은 모 두

15C

대략 비슷한 시기의 文敵이라고 할 수 있다.

위의 내용을 귀납적으로 비교정리하면 〈表 一〉과 같다.

二. 古琴의 微와 거문고의 操 .It훌t

〔一) 기 능

古琴의 徵와 거운고의 陳는 그 기능면에서 같다. 이것들은 왼손으로 줄을 짚을 째 그 위 치의 기준이 되는 것으로 그 기능상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二) 數 量

古琴의 徵는 모두 13個, 거문고의 陳는 모두 16個로 되어 있다.

-

75-〈훌

->

減字짧和合字讀比較

| \ 꿇 名

l

|、~、 7Þ. .,.., 古琴꿇名

~ lli. ---\ 1- 、一、三、四、죠、六、七

l

年 代 ‘\」

1*

|

宮、商、角、徵、쩌 文,

1

宮、뼈、角、徵、꼈、少宮、

(約

B.C 1100)

1 少商

!

宮、商、角、徵、경끼、文、武 (494~590)

뽑 柔 1 . . . . 、--L-、?、山、꺼、 -:r 、-=t

(康中:約

A. D

627~741)

j

大、二、三、四、五、六、七

(康末)

陳 居 士 1- 、二、三、四、五、六、七 (庸末:約

A. D

874~888)

神 奇 秘 讀 1- 、二、三、四、五、六、七 (明

: 1425)

五知蘭琴讀 1- 、二、三、四、五、六、七

(淸

: 1722)

現 연Ë 1 -、二、三、四、죠、六、七

j싶풋켠1 玄 琴 꿇 名 -1

許 關 宗

(約 1443~1493) 1

朴 옳 老(

(約 1443~1493)

李 世 俊

(約 1443~1493) 樂 學 動 範

(1 493)

琴 合 字 讀

(1 56 1)

高 * (1 791) 琴 짧

文遊大陳被효t a효、꿇、행、上、陳、꿇

t좁 濟 文、遊、大、淸、 l技、武

陳f훔

文、遊、大、上、下、武 文、方、大、淸、下、武

i좁 文、方、大、上、又、止

文、方、大、上、淸、淸

홍、方、大、上、下、外

※ 古琴은 연주자의 몸에서 가장 멀리 있는 줄이 第一끓이고, 거운고는 반대로 몸과 가까이 한 줄 부터 第一꿇이다.

(三) 모양 및 위치

古琴의 徵는 금의 몸판 위에서도 바7깥쪽에 나란히 위치하고 있는데, 徵로 사용되는 재료 는 자개이고 그 모양은 작은 동그라미이며, 琴연주자에서 멀리있는 第-꿇 보다 더 바깥쪽 에 걸게 줄지어 13個가 늘어져 있다. 한펀 거문고의 陳는 직사형무로 납짝하게 만든 것을 키가 큰 것을 제 1 陳로 하여 왼쪽에서 오른쪽£로 세워서 나란히 붙여있는데, 이 陳는 제 2, 3, 4현(遊꿇

大꿇

陳上淸)을 버티고 있다. 또한 古琴의 徵는 琴面에 조금도 튀어 나오 지 않고 손a로 만져봐도 琴面과 같이 매끄럽지만거, 문고의 爛는 모두 튀어 나와 붙혀져 있어 徵와 그 單面圖는 물론, 위치도 다르다.

(四) 使用範圍

徵의 使用範圍는 상당히 넓어서 古琴七꿇에서 모두 완손 按뾰의 기준이 되지만, 거문고 의 陳는 遊꿇

大꿇

陳上淸 等 3個꿇에만 벗티고 있는데, 그중에서 遊꿇과 大꿇 두줄에서 만 陳의 쓰엽이 있어 古琴의 微보다 쓰임이 적다.

〔五) 徵(陳)의 간격 및 그 音高

古琴의 13個數는 현침(琴의 머리부분)에서 부터 시작 琴尾를 향하여 一徵

二徵

三微

...

.

"十二徵

十三微로 되어있지만 거문고의 陳는 徵의 순서와 반대로써, 거문고의 아래(연주

十一

十二

十三 -훨

••-•

4 6

-

1 5

1 4

2 2

3 5 2 5 3 2 3

*

정 견 l

1 1

흉놓 τ

5 4 3 6 5 4

圖 微位與鉉長之比껴l

t

1\

1 ••

7-8

홉· ~ 예* {立

62.4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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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4.9 . . . . • . . . 2.

1

|• 9c. 6.8 6

第十六뽑

第」시 빼α

뉴-카

第죠 얹

빼야

第三꿇

第二짧

第-짧

圖 觸 位 間 隔 圖

자의 완펀)에 서 부터 시 작하여 陳

二陳

三陳

...

十五陳

十六陳로 되 어 있다.

갖고 있다(圖一 참조). 이런 각기의 자리를

徵의 位置는 一定한 比律에 의 하여 계 산된

하모닉스의 륨을 얻을 수 있다 徵의 위치는 자연배음에 의하여 13個徵의 자리에서는 모두

만 끊즙(하모닉스)을 얻을 (古琴에서는 이런 奏法을 끊륨이라 함). 古琴은 徵의 자리에서

거리가 제 l 패와제 2 패의

수 있는 반면 거문고의 觸는 비파의 品이나 키다의 陳와 같이,

제 16陳까지 계속된다 가장 넓고, 그 밑의 제 3 陳 부터 점점 陳와 陳의 거리가 조밀해지며

다른규

〔圖二 참조). 이와 같이 徵의 위치와 陳의 위치는 각기 그 간격의 원칙이 완전히

古琴과 玄琴의 왼손이 짚어 서 (輕按) 낼 수 있는 소리

~

그러으로 칙에 의하여 결정이 된다.

-f)--훨 죠 때

圖 三. 古 琴 按 音 音 高

~

t

/、

J\

十 十

散十

g

o

--

-힐 - 二 三 四 죠 六 t J\ 九+十 + 十 十 十 十

효 -二三四五六

圖 四. 玄 琴 按 音 音 高

- 7 7

-역시 당연히 다르다. 거문고의 각 陳간의 음청은 대략 온음 정도이다(圖四 참조). 그러나 古琴은 각 微間의 음청은 일청치 않다(圖三 참조).

(六) 記讀方法

減字讀와 合字讀에서 모두 漢字의 數字인 一

三…等을 사용하여 微와 陳의 位置를 記讀한다. 그러나 차이점이 있는데, 古琴의 微는 그 微의 자리 뿐만아니라, 徵와 徵의 사

이 를 다시 十個로 나누어 그것을 分이 라고 한다 즉 七徵九分(훤 六徵二分(족) 五數七

分〔펄) 等, 아주 세밀한 위치의 微와 分까지 정확하게 記讀할 수 있다 그러나 거문고의

陳는 操의 位置를 표시해 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徵와 課롤 비교한 결과, 비록 이것들은 각기 모양과 위치, 數量

間隔 및 音높이 부분에 서 서로 다르지만, 그 기능 및 용법은 같아 모두 왼손이 줄을 짚올 때 그 위치의 기준이

〈훌

=>

徵와 課之 比較

거 운 고 의

13個 16個

1.

漢字의 數字로 기 보한다.

1.

漢字의 數字로 기 보한다.

2.

徵와 分윷 기보한다.

2.

線의 위치만 記讀 (數와 徵 사이흘 十둥분한 것율 分이라합)

記讀方法 微의 위치와 分의 위치흘 세밀하게 기보

할 수 있는데, 즉 七微九分(£), 六徵二分 (효), 五數七分(좋)…等.

版| :q;.

每陳마다 ð나옴

使用範圍 |

-t::짧에 모푸 척용횡(便用범위가 넓다) 遊젊·大짧에만 척용됨

徵간(練)의 격

자연배융언 하요낙스에 의하여 얻어진 일 기타의 패와 같이 제 1 패와 제 2 패의 갱한 비융에 의한 간격(園- 창조)

간격이 가장 넓고차례로점차초밀해

j

지며 제 16패까지 계속된다(쩔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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