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기간에 책을 읽다가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다. 읽은 책은 「포노 사피엔스」라는 책1)인 데, ‘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라는 부제에서 말하는 것처럼 스마트폰을 새로운 인류의 특징으로 규 정하는 도전적이고 파격적인 설정을 바탕으로 현 시대 문화 트렌드 변화 및 그에 대한 진단이 잘 정리돼 있다. 이 책의 작가는 아예 신인류로 정의하고 싶을 정도로 기성세대와는 다른, 스마트폰 유전자를 지니고 태어난 것 같은 요즘 세대에 ‘포노 사피엔스’라는 용어를 따서 붙였다. 영국 이코 노미스트 잡지(The Economist 2015)에 실렸던 바 있는 ‘포노 사피엔스’라는 용어를 보다가, 문득 공간정보 분야 종사자들, 그리고 공간정보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용자들을 위한 새로운 이름을 지 어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호모 매피언스(homo mapiens)’라는 새로운 용 어 정의를 통해 우리의 정체성을 재조명해 보고 싶었다. 혹시나 하고 구글과 국내 포털 사이트를 검색2)해 보았으나 아직까지 이 용어의 사용처나 쓰임이 없는 것으로 볼 때 이 글을 통해 새롭게 주 장할 수 있는 작명일 것 같다. 김춘수 시인이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고 읊었듯이 우리 스스로에 대한 애칭과도 같은 작명 하나가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지 않 을까 싶어서 공간공감 칼럼 지면을 빌려 생각을 꺼내 본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다시피 ‘사람속(屬)’을 가리키는 라틴어가 바로 ‘호모(homo)’이며, 다수 의 학자들이 여기에 각종 수식어를 붙여서 다양한 인류의 특성을 표현해 왔다. 손을 사용하며 손 재주가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와 직립형 인간이라는 의미의 호 모 에렉투스(homo erectus)라고 이름 붙여진 화석인류가 있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그리고 현생 인류와 관련된 이름으로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있다. 호모 사피엔스와 호모 사피엔 스 사피엔스의 차이는 정확하게 알 수 없더라도, 이 용어가 지혜로운 사람을 가리키는 이름이었다 임영모 | (주)웨이버스 부장, 「맵인사이트: 지도를 보는 따스한 시선」 저자([email protected])
1) 최재붕. 2019.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 서울: 쌤앤파커스.
2) 구글과 같은 해외 사이트 및 국내의 네이버, 다음을 통해 2019년 9월 16일 검색해 보았음.
는 것은 기억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다. 천성적으로 놀이를 좋아한다는 의미에서의 호모 루덴스 (homo ludens),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이라는 의미의 호모 파베르(homo faber)도 있으며, 이야기 하는 인간으로서 호모 나랜스(homo narrans), 끊임없이 움직이는 인간으로서 호모 모벤스(homo movence)라는 용어를 만들어냄은 물론, 정직원이 되지 못하고 인턴생활만 반복하는 취업준비생 의 자조적 트렌드를 반영한 호모 인턴스(homo interns)까지 다양하다. 유발 하라리는 ‘호모 데우 스(homo deus)’라는 명명으로 신의 자리를 넘보는 인류의 모습을 그려냈으며, 자크 아탈리는 ‘호 모 노마드(homo nomad)’라는 책으로 유랑을 꿈꾸는 유목 습성을 가진 인간을 그려내기도 했다.
호모 이코노미쿠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류를 정의한 사례를 볼 때, 여기에 ‘호모 매피언스(homo mapiens)’라는 용어를 하나 얹었다고 해서 크게 문제를 일으키거나 부담을 주지는 않을 것 같다.
기원전 약 1만 6500년 전 라스코 동굴의 별자리 그림, 기원전 7천 년경의 소아시아 지역 고대 도 시 차탈회위크(터키어로 Çatalhöyük)의 그림지도, 기원전 6천 년경의 터키 중서부 지방에서 제작 된 지도 등 ‘무엇이 인류 최초의 지도인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아무튼 쐐기문자 발생 연대 를 기원전 3천 년경으로 추정하는 것과 비교해 볼 때 문자 발생 훨씬 이전부터 인류는 지도라는 수 단을 사용하여 자신 주변의 세상을 기록하고 공유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은 별자리 모 양을, 주변 사냥감의 위치를, 산과 강의 모양을, 그리고 아직 미처 가보지 못한 세상까지도 상상하 면서 그것을 하나의 그림으로 표현하는 지도 창작 능력을 가졌고, 그 그림을 보는 사람들 역시 그 림을 보고 머릿속에 세상을 공간으로 파악하고, 실제 그에 따라 공간을 이동하기도 하는 지도 해 독 능력을 가졌다. 인류의 지도 창작 습성은 인류 역사와 함께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측량 도구 의 발달과 기록 수단의 발달에 따라서 지도의 모습도 변하였으며, 더욱 현실과 가까운 세상을 담 은 지도를 해독하고 이동에 활용하면서 인간의 활동 지역은 끝없이 넓어졌다. 지도상에 여러 군데
기재되어 있던 ‘테라 인코그니타’(Terra Incognita, 아직 발견되지 않았으나 존재할 것으로 여겨지 는 미지의 땅에 붙여둔 명칭)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상태이다. 아직까지 지도를 그리고 이용한 다는 다른 동물들이 없는 걸로 봐서, 이러한 지도 창작 및 해독 능력을 인류의 특징으로 삼아 ‘호모 매피언스(homo mapiens)’라고 칭하는 것은 결코 무모한 주장은 아닐 것 같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전문화된 호모 매피언스가 나타났다. 지도에 대한 인류만의 비상한 능력은 현대에 와서 디지털 기술과 접목되어 공간정보라는 형태로 확장되었다. 현재 공간에 대한 부분을 넘어서서 과거 공간에 대한 기록 및 미래 공간에 대한 예측을 하고 있으며, 육지에 국한하지 않고 영역을 확장하여 바다 속과 우주 너머는 물론 지하세계와 생체 내부까지 모든 것을 공간으로 인식 하고 있다. 종이 지도를 통해서 단순히 주변 세상을 즐기던 호모 매피언스가 정보화 여건 발전에 맞추어 모든 공간정보를 관심 대상으로 ‘진화’했다고 주장하면 억측일까? 다양한 공간정보를 창작 하는 사람도 호모 매피언스겠으나, 이렇게 만들어진 공간정보를 생활 속에서 손쉽게 해독하고 활 용하는 사람 역시 호모 매피언스라고 할 수 있다. 스마트폰의 지도를 보고 위치를 파악하고, 내비 게이션 안내로 길을 찾아가고, 통계주제도를 보면서 트렌드를 해석하고, 태풍 진로 지도를 보면서 조만간 불어올 비바람을 예측하는 능력 역시 호모 매피언스다.
우리는 ‘지도와 공간정보를 즐기는 호모 매피언스’라고 자기 선언을 해보면 어떨까? 그리고, 특 히 지도와 공간정보에 대한 정책, 기술, 데이터 등 창작을 하는 직업군들은 호모 매피언스 가운데 권한과 책임을 가진 리더 그룹이라고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우리 스스로를 선언한다면, 왠지 남들과는 다른 새로운 유전자의 인류처럼 특별한 느낌이 들고 의미 있어 보이지 않을까? 호 모 매피언스로서의 긍지를 다시 한번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참고문헌
The Economist. 2015. Planet of the phones. February 26, https://www.economist.com/leaders/2015/02/26/planet-of-the-phones (2019년 9월 16일 검색).
박미선 | 국토연구원 연구위원([email protected]) 가 「Housing Policy in the United States」이다.
물론 우리나라가 앞으로도 중앙 중심적, 하향적 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