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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이론적 접근의 단서

도의 유무와 그 확정성의 정도가 크게 다르다는 점을 애써 외면하는 무 모함을 피하려면 우선 후자의 경우에 초점을 맞춘 헌법해석의 가능성을 검토하고, 그 공간의 지형을 확인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무규율’이 국가기능의 배분 또는 권력통제의 체계상 최종적으로 헌법 재판소에 의해 관장되는 헌법적 지휘권이 완전히 입법자 또는 정치에 위 임된 것을 의미한다면, ‘개방된 공간’은 헌법재판소의 헌법해석을 통해 확 인되는 일정한 ‘윤곽’을 전제로 ‘폭넓은 판단여지’와 ‘형성의 자유’가 인정 되는 ‘구성된 공간’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이론적으로 논의의 필요성 자체 가 없는 문제, 즉 헌법규범과 헌법현실의 유동적인 관계 속에서 이 ‘개방 된 공간’의 크기와 그 구체적인 지형을 결정하는 공간구성의 분계선을 설 정하여 법과 정치, 법적 통제와 정치적 통제 및 헌법재판소와 정치 또는 입법자 상호간의 협력과 견제의 틀을 마련하는 헌법도그마틱의 난제를 회피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3. 헌법이론적 접근의 단서

(1) 헌법기본원리 - 자유민주주의, 사회국가원리 및 법치국가원리

1) 개 요

헌법을 정당성의 체계로 이해하는 관점에서 볼 때 자유민주주의, 사회 국가 및 법치국가원리로 표현되는 정당성의 정립구도는 헌법의 이념을 구체적인 제도의 형성과 국가운영으로 매개하여 주는 정당한 결정 및 통 제체계의 핵심이다. 재정권력의 행사도 이 정당성의 정립구도에서 벗어 나 있지 아니함은 물론이다.

다만 이러한 헌법원론적 명제에서 바로 재정에 대한 헌법적 통제의 범 위와 수단 및 그 척도가 도출될 수는 없고, 그것은 이들 헌법의 기본원 리의 좌표와 의미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한 정치한 헌법도그 마틱의 몫이다. 더욱이 재정에 관하여 절차와 형식적인 규정만을 두고, 명시적인 실체규정은 전혀 두고 있지 아니한 현행 헌법 하에서는 더욱

Ⅴ. 헌법도그마틱을 통한 보완의 가능성과 한계

절제된 인식과 치밀한 이론구성이 요구된다. 여기에서 원천적으로 불가 능한 상론은 약하고, 각 원리별로 핵심적인 논점만을 개괄적으로 검토해 본다.

2) 자유민주주의

우선 통치형태의 측면에서 모든 국가권력의 창설과 행사의 정당성을 국민의 뜻에 귀착시키는 자유민주주의 원리의 의미에 대해서는 재론할 필요가 없거니와, 여기에서 우선 관심은 ‘자유’라는 부가개념에 담긴 의미 이다. 민주적 정당성을 바탕으로 창설된 국가 또는 정부와 입법자가 원 천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제한되어 있다는 부정적 제한의 뜻이 그것이다. 그 구체적인 한계와 지침이 명시적으로 확인해 놓은 것이 헌 법상의 기본권목록이다. 다만 이 ‘자유’의 부가개념에서 후술하는 바와 같 은 통치권행사의 ‘과잉금지’와 ‘과소금지’의 한계선에 대한 간접적인 접근 의 단서는 찾을 수 있겠지만, ‘과잉’과 ‘과소’의 중간지대에 있는 재정행위 에 대한 헌법적 통제의 기준이 도출되기는 어렵다. 오히려 재정통제와 관련해서 주목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능적 한계’41)에 대한 인식, 즉 민 주적 정당성을 준거로 하는 결정권한배분의 체계가 수정 보완되어야 할 필요성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다.

앞에서 상술한 기능적 권력통제이론도 모든 통치권의 창설과 행사가 민주적 정당성에 의해 완전히 포착된 자유민주적 통치질서의 확립을 전 제로 민주적 정당성의 양적 질적 크기와는 맥락이 다른 요소, 즉 ‘옳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기능적 가능성을 기준으로 결정 및 통제를 개편하 려는 이론적 노력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42) 조직의 구성이나 결정의 절 차와 형식 등의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결정의 과정과 절차상의 정 당성 까지 포함하는 의미에서 ‘옳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큰 결정체계를 모색하는 ‘기능적 정당성’ 또는 ‘기능적합적 기관구조’의 관

41) Vgl. F. Kirchhof(FN. 36), S. 86.

42) 특히 본질성이론과 관련하여 집약된 논의로는 F. Ossenbuehl, Vorrang und Vorbehalt des Gesetzes, in; J. Isensee/P. Kirchhof(Hg.), HdBStR III,

§ 62, S. 339ff.

3. 헌법이론적 접근의 단서

점이 바로 그것이다. ‘최종결정권의 배분’에 초점을 맞춘 이른바 ‘헌법유 보’, ‘의회유보’ 또는 ‘행정유보’의 논제나 ‘헌법재판의 기능법적 한계’의 문 제 등은 모두 이 관점에서 논의되는 헌법도그마틱의 핵심문제들이다.

다만 여기에서 관심은 민주적 정당성의 크기와 연계되는 ‘정책결정권’

의 위임을 전제로 ‘최종결정권의 소재지’를 탐색하는 논의에 국한되지 아 니한다. 오히려 그 논의의 가능성과 한계를 확인하는 것이다. 예컨대 재 정에 대한 헌법재판통제기능의 확대나, 일정한 범위의 재정정책에 대한 최종결정권의 회수, 즉 국민투표를 통한 결정의 필요성 또는 감사원의 독자적인 기능과 지위 강화 또는 예산팽창에 대한 헌법적 한계의 설정 등 헌법정책적인 차원에서 진지하게 접근해 볼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문제들에 대한 검토 결과 긍정적인 판단이 도출되는 경우에도 자유민주 주의원리를 준거로 하는 헌법도그마틱으로는 그 결론을 수용하기 어렵 다. 감사원을 국회소속으로 변경하는 것의 헌법개정요부를 둘러 싼 논란 은 좋은 예이다.

요컨대, 자유민주주의원리는 재정통제문제에 대한 발상의 전환과 그에 따른 새로운 헌법정책적 접근의 필요성에 대한 시사점을 도출하는 근거 가 될 수는 있겠지만, 재정헌법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헌법도그마틱의 준거로서 효용은 기대할 수 없다.

3) 사회국가원리

사회국가원리를 준거로 하는 헌법도그마틱이 재정통제에 대한 헌법적 규율망을 구성하는데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과 한계가 두 번째 검토사항 이다. 사회국가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아직 정설이 확립되지 못하 였지만, 사회국가의 핵심은 ‘자유와 평등이 개인의 자율적인 생활설계에 의해서 실현될 수 있도록 생활여건을 조성해주는 사회구조의 윤곽’을 의 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43) 또한 사회국가원리의 법적 성격에 관해서도

‘내용 없는 백지개념’이나 ‘단순한 정치적 선언’에 불과한 것으로 보는 견 해는 더 이상 설득력을 갖지 못하고, 적어도 사회국가실현을 지향하는 국

43) 허 영(FN. 32), 156면.

Ⅴ. 헌법도그마틱을 통한 보완의 가능성과 한계

가생활에 대한 헌법적 지침과 수권규범으로서 규범적 구속력을 갖는다는 점에는 의견이 일치되고 있다.44) 여기에서 문제는 재정을 수단으로 하는 측면에서 사회국가실현의 구체적인 내용과 그 수단 및 방법, 즉 국가가

‘어떤 경우에, 언제, 어떻게’ 사회현상에 관여하여 분배하고 조정해야 하 는가에 대하여 헌법에 구체적인 지침과 한계의 제시가 없는 경우, 사회 국가원리로부터 그것을 대체 또는 보완할 수 있는 헌법적 준거를 도출해 내는 이론구성의 가능성과 타당성을 검토하는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우리 헌법은 사회국가원리를 명시적으로 규정하지 아니하고 다양한 사회적 기본권을 규정하여 사회정의의 이념을 수용하고 있는 바, 재정통제, 특히 헌법재판통제에 적용할 수 있는 헌법적 심사척 도는 개별 사회적 기본권의 해석을 통해서 탐색될 수 있을 뿐이다. 다만 여기에서는 각론은 약하되, 사회적 기본권의 법적 성격은 근본적으로 자 유권적 기본권과는 차별화된 접근이 불가피하고 또한 입법자 또는 행정 청에게 ‘광범위한 재량권’이 인정될 수밖에 없다는 입론의 근거, 말하자면 사회국가실현의 한계, 특히 재정 및 경제력에 따른 한계를 근거로 하는 이론구성의 한계를 지적하는데 그친다.

전술한 바와 같이 사회국가를 개인의 자율성을 바탕으로 자유와 평등 의 조화를 지향하는 사회구조의 윤곽으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국가의 측 면에서 본다면 사회, 경제분야에 대하여 국가의 관여와 간섭이 허용되는 공간의 윤곽이기도 하다. 법률의 근거에 따라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예산 투자가 필요한 사회정책적 결정이나 수권재량 범위 내에서의 구체적인 예산배정을 포함하여 화폐금융정책, 소득재분배 또는 경기조절 등의 목적 으로 시행되는 재정정책들은 모두 이 공간의 구체적인 지형을 형성하는 사회국가실현의 수단들이다. 따라서 사회국가실현을 위한 국가과제수행의 방법과 수단 및 그 시기는 제한된 예산의 배분과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44) 허 영(FN. 32), 154면. 우리 헌재도 사회국가를 사회정의의 이념을 수용한 국가, 즉 ‘사회현상에 대하여 방관적인 국가가 아니라 정의로운 사회질서의 형성을 위하여 사회현상에 관여하고 간섭하고 분배하고 조정하는 국가’이며, 궁극적으로는 “국민 각 자가 실제로 자유를 행사할 수 있도록 그 실질적인 조건을 마련해줄 의무가 있는 국 가”라고 보는 바, 사회국가원리의 규범적 구속력을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헌재결 2002.12.18. 2002헌마52, 핀례집 14-2, 909면.

3. 헌법이론적 접근의 단서

기 때문에 경제여건과 연계되는 거시적인 재정상황이나 다른 과제들과의 우선순위 등을 입체적으로 고려하여 조율되어야 하는 사항이고, 또한 이 러한 결정은 실물 정책적인 판단과 함께 항상 직간접적으로 정부의 재정 정책 및 통화신용정책적 판단과도 연계되어 있다. 헌재가 기본적으로 사 회국가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내용의 국가의무가 헌법에서 도출될 수는 없고, 국가과제수행의 시기와 방법에 관한 결정은 사회국가실현의 ‘일차 적인 주체’인 입법부와 행정청의 ‘광범위한 재량’에 맡겨져 있다고 판단하 는 것도 바로 법규범으로 개별적인 정책판단의 경제정책적 좌표를 포착 하기 어렵고 따라서 사법통제가 자제될 수밖에 없는 이러한 입체적이고 복합적인 결정구조상의 특성 때문이다.45)

결국 사회국가실현을 위한 직간접적인 재정결정과 관련하여 입법부와 행정청에게 인정되는 ‘광범위한 재량권’의 크기만큼 사회국가원리나 사회 적 기본권에서 국가의 구체적인 재정행위의무와 그에 따른 헌법적 심사 척도, 특히 헌법재판의 통제규범이 도출될 수 있는 가능성은 축소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회국가원리에서 재정통제의 준거를 도출할 수 있는 헌법도그마틱의 공간이 전무한 것은 아니다. 우선 적극적인 관점에 서 예산결정에 대한 헌법적 지침을 제시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희박 하지만, 이른바 ‘가능성유보’의 범위 내에서 예컨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와 같은 사회적 기본권이 구체적인 권리로서 효력이 인정되는 경우 에는 예외적으로 구체적인 예산배정이 선결된 것으로 보는 이론구성이 가 능하고 타당한 경우도 없지 아니하다.46) 사회복지의 사각지대가 여전히 많이 남아 있는 우리 현실을 감안할 때 이러한 이론구성이 가능하고 바 람직한 여지가 적지 아니하고, 적어도 사회적 기본권 보호의 ‘과소금지’

(Untermassverbot)에 위배되는 것이 명백한 것으로 여겨지는 예산결 정이 이른바 ‘가능성유보’의 논리형식으로 포장된 재정여건을 이유로 정 당화될 수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확인하고, 그 판단기준을 제시하는 것 은 오로지 사회국가원리를 준거로 하는 헌법도그마틱의 몫이다.

45) 헌재결 2002.12.18. 2002헌마52, 판례집 14-2, 911면.

46) 이 점에 관한 자세한 논의는 이 덕연,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의 본질과 법적 성 격, 공법연구 , 제27집 제2호(1999), 235-24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