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국진의 판화는 ‘논꼴시대’와 같이 추상의 경향을 띠지만 주지하다시피, 그 의 다양한 조형형식의 구성과 다양한 기법연구에서 볼 수 있듯이 단일 추상논법 과는 거리가 있다. 그는 논꼴에서 추상회화를 선보인 이후, 1967-1968년에는 한국 화단에서 전례 없던 급진적인 예술형식으로 해석된 해프닝, 테크놀로지 아트를 시도했다. 이러한 급격한 장르실험 이후, 그가 추구한 작업세계를 들여다보면, 과 거에 진척시킨 추상의 여러 조형적 실험이 드러난다. 따라서 강국진의 예술작품 형식 분석은 곧 그가 추구한 예술 사조를 탐구해야 그 실마리가 풀릴 것이다. 강 국진은 기성 추상회화에서 추구한 표피적인 형식 답습을 탈피하기 위해 ‘판화’를 선택했다. 이 때문에 그는 추상회화에서 오브제로, 해프닝으로, 설치미술을 시도 했고, 또 그 이후에는 판화매체를 선택하였다. 따라서 그의 판화작업은 판화에 다 양한 기법이 존재하듯이, 그의 판화 화면을 구성하는 추상은 하나의 사조가 아니 라 다양한 추상미술사조를 동시에 품고 있었다. 또한 정통 판화 기법을 익히기 위해 노력했지만 ≪형의 상관≫전에 출품했던 판화작업에서 확인되듯이 그는 오 히려 ‘판화적’이지 않은 작업들을 생산했다.
강국진 판화의 조형 변화는 초기, 중기, 후기로 나뉜다. 초기는 주로 1970 년대 초로 <가두시위>(1967), <투명풍선과 누드>, <한강변의 타살> 해프닝을 마 친 이후 그는 다양한 매체 실험에 개방적이었으며, 이 시기에 동판화와 석판화 등의 판화기법을 숙지해 가고 있었다. 중기는 대체적으로 판화의 기법을 교과서 적으로 습득하려 노력한 시기로, 판화기법을 사용하되 화면에서는 다양한 경향의 추상이 등장하는 시기이다. 1989년 이후를 강국진의 후기판화기로 볼 수 있는데, 이 시기는 주로 회화와 판화를 동시에 하나의 화면에 구성해내게 된다. 연구자는 강국진의 후기판화시대를 ‘행위판화’로 정립하고자 한다.
곽남신은 한국현대판화사에서 “강국진은 판화도구조차 제대로 구비되지 않았던 1970년대 초반부터 판화를 진행”했다고 서술했다.35) 강국진은 1960년대 후반부터 판화기술을 작업형식에 본격적으로 끌고 왔지만 실제 그 당시 판화제작 환경은 매우 척박했다. 1963년 김봉태는 ≪파리비엔날레≫(1963. 9. 28-11. 3, 파리시립근대미술관)36)에 판화부문으로 출품을 했는데 그 당시 추계예술대학교 전신인 중앙여고에서 그 작품을 제작했다고 한다. 그마저도 친한 지인인 한영진 이 중앙여고에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중앙여고에 비치된 프레스기는 작업용도이기보다는 인쇄를 위한 기계였다. 그만큼 한국 화단에서 현대미술로서 판화는 생소한 장르였다. 다만 몇몇 작가군이 현대미술 섹션의 한 파트로 해외에 서 판화작업을 하고 있었다. 1958년 ‘한국판화협회’ 창립전에서는 이항성(李恒星, 1919-1997)을 제외한 14명의 회원 모두가 목판화 출품에 그친 일화도 있다.37)
1970년대 초 강국진은 주로 대학입학 이전에 마스터했던 실크스크린과 에 칭작업을 했으며, 화면에 특정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기하학 추상을 연구했다. 이 시기 강국진은 판화 프레스로 찍어내는 조형 연구와 더불어 돗자리, 은박지, 마대 천 등을 활용하여 판화작업을 완성시켰다. 그의 판화작업 전반의 흐름을 분석해 보았을 때 주로, 판화 초기와 후기 시대에 판화의 전통기법과는 거리를 둔 작업 을 진행했다. 이 시기를 일종의 실험판화 시기로 규정할 수 있으며, 그는 초기에 서 중기로 넘어가는 시기에 실크스크린, 에칭에서 동판화, 석판화 등을 학습했다.
이 시기 그는 판화기법을 순차적으로 익혔을 뿐 아니라, 이 당시 추상에 대한 연 구와 실험을 판화를 통해 진척시켰다. 또한 에디션 넘버링과 A.P로 표기한 작업 의 최종 결과물도 다르다. 즉 판은 같은 판이지만 결국 다른 판화를 제작하여 에 디션 개념을 사용하되, 미술시장에서 통용되는 에디션 넘버링의 관념과는 또 다 른 차이가 있다. 그는 주로 넘버링과 E.P를 사용했으며, 넘버링 작업과 A.P는 같 은 것 같지만 결국 서로 다른 작업으로 남아 있다.
35) 곽남신, 한국현대판화사 (재원 2002), pp. 104-105.
36) 파리시립근대미술관, http://www.mam.paris.fr/ (2019년 4월 5일 최종 접속).
37) 이은주, 「행위예술가 강국진, 판화를 통한 매체실험의 전모」, p. 3.
1970년대는 판화를 접 하게 되면 기법 습득과 매체 탐구가 동시에 진행되었다.
1973년 <Relation> 목판화 는 칼로 자국 내어 파낸 흔 적이 거칠게 남아 있으며, 1976년 실크스크린 작업은 하나의 판을 두고 각기 다른 색감을 입혀 제작하였다. 기 법 연구에 충실하게 제작된 판화 이외 실험판화로 분류되는 <Shape of Line>(1973)에서는 돗자리는 종이로 특정 모양의 돗자리 부분을 찍어내고, 찍어낸 종이를 오려내면서 대칭으로 설치하여 종이가 마치 돗자리에서 떨어져 나온 듯한 시각적 효과를 연출하였다. 알루미늄 호일 위에 목판화 엠보싱 작업을 한
<Shape>(1973)은 빛이 반사하면서 쉽게 구겨지고 자국이 뚜렷하게 남는 호일을 사용하여 찍어냈다. [도 10] 엠보싱 자국 부분에 이미지를 찍고 색을 입혔는데 실 제로 이미지보다는 알루미늄 호일이 작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작업에 서는 1968년에 제작한 네온사인 작업 <시각 1, 2>(1968)와 같이 그 재료가 가지 고 있는 고유한 특성을 살려 표현하는 데 주력하였다. 1975년에 강국진은 메조틴 트 작업을 진행하게 되는데, 이 작업은 현재 <Story>(1975) 시리즈로 남아 있다.
강국진은 이 시기 스토리의 구성을 위한 명확한 소재를 구현함과 동시에 다른 한 편으로 1960년대에 완결하지 못했던 추상세계로 다시 회귀한다. 하지만 이 시기 의 추상성은 과거의 추상성과는 거리가 있으며, 이 시기에 판화로 제작한 추상의 전모를 살핌으로써 강국진이 추상회화에서 어떠한 예술정신을 탐독했는지 분석할 수 있다.
<Brushing>(1976) [도 11] 은 추상표현주의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 기계를 사용하여 제작된 직선의 교차점들은 내면의 감성보다는 절제적인 복합성을 표현 하고, 반면에 1973-1975년에 제작한 <Untitled> [도 12], <Following dots>은 앵
[도 10] 강국진, <Shspe-3>, <Shape-1>, <Shape-2>, 호일위에 목판화 엠보싱, 53x51cm
포르멜 방식의 조형적 탐구로 해석된다. 이에 반해 <Shape>(1975)는 앵포르 멜의 원형질 탐구와 절제된 직선들이 동시에 교차해, 앵포르멜 화풍과 추상표현 주의 화풍의 경계에 서 있다. 1980년에 이르러 석판화 기법을 학습하게 되고, 이 시기에는 주로 기하학 색채 추상으로 분류되는 <리듬>(1980) 시리즈를 제작하게 된다.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회화와 판화를 병행하며 제작한 <리듬> 에칭 시 리즈는 회화의 <선> 시리즈와 조형적 맥락이 닮아 있으며, 회화의 <선> 시리즈 와 같이 세로 선으로 화면을 가득 메우는 것 같은 화면을 완성하지만 에칭 <리 듬>에서는 아직 가로 선 사이의 화면에 담아 두었던 대상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렇듯 강국진은 판화로 화면의 대상화와 비대상화, 추상과 구상, 판화에서 의 색채, 회화의 색채 등을 동시다발적으로 탐구했고, 특히 판화에서는 실제로 위 와 같은 문제의식을 시각적으로 환원시키는 데 주력했다. 그래서 그에게 판화는 하나의 완결성보다는 ‘과정’에 있었고, 또 각각 다르게 찍힌 판화는 곧 오늘날 에 디션 개념으로 정립되는 복제와는 다르다. 강국진의 판화를 실험판화라 지칭할 수 있는 이유는 판화의 평면성 탈피, 복제성 등 판화의 교과서적 특성과 빗나간 화면을 구성해서가 아니다. 강국진이 1965년부터 꾸준히 실험했던 “강한 선, 가열 된 바탕, 부정의 세계를 뚫고 폭발하는 무수한 기호형에서 오는 직열된 감정”에 대한 구축을 두고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항상 새로운 것을 모색했기 때문이다.38)
[도 11] 강국진, <Brushing>, 1976, 에칭, 44.7x35.5cm, Ed. 2/20
[도 12] 강국진, <무제>, 1974, Intaglio with LP, 52x38cm, A/P
<Following dots I>(1976)과 <Untitled>(1976)의 판은 같으나 하나는 가로 작업이고 다른 하나는 세로 작업이다. 강국진은 하나의 판을 두고, 복제개념의 판 화보다는 제각기 다른 에디션을 제작하였고, 더 나아가 이미지를 가로, 세로로 작 동될 수 있도록 제작했다. <Shape>, <Shape Ⅴ>, <Untitled>는 동일한 판과 이 미지이지만 각각의 색이 모두 다르게 표현되어 있기도 하다. 또한 실크스크린, 에 칭, 동판화, 석판화 등의 각각의 질감을 활용한 표현 방식이 추상실험을 이루었다.
1985년 판화의 <리듬> 시리즈가 기학학적 추상에 머물렀다면 1987년부터 진척된 판화의 <빛의 흐름>은 칸딘스키와 같은 추상을 실험한다. 논리에 입각한 추상개념보다는 감정과 경험에 내맡기거나 마치 음악을 듣는 것과 같은 낭만성을 분출시킨 작업이다. 강국진은 이와 유사한 시기에 <리듬>과 <가락>회화 시리즈 를 제작하였다. 1987년 <가락>에서 <역사의 빛>(회화시리즈)으로 넘어가는 시기 에 오광수가 진행한 강국진 인터뷰가 KBS TV미술관에서 방영되었다. 오광수는 강국진의 회화 <리듬>, <가락> 시리즈를 두고 “평면적 회화에서 음악적 운율과 리듬을 표현하고 싶지는 않았을까”와 같은 평을 내놓기도 했다.39) 강국진의 회화 작업으로 분류된 작업 시리즈 표기상 <역사의 빛>은 1989년부터 시작되는데 판
1985년 판화의 <리듬> 시리즈가 기학학적 추상에 머물렀다면 1987년부터 진척된 판화의 <빛의 흐름>은 칸딘스키와 같은 추상을 실험한다. 논리에 입각한 추상개념보다는 감정과 경험에 내맡기거나 마치 음악을 듣는 것과 같은 낭만성을 분출시킨 작업이다. 강국진은 이와 유사한 시기에 <리듬>과 <가락>회화 시리즈 를 제작하였다. 1987년 <가락>에서 <역사의 빛>(회화시리즈)으로 넘어가는 시기 에 오광수가 진행한 강국진 인터뷰가 KBS TV미술관에서 방영되었다. 오광수는 강국진의 회화 <리듬>, <가락> 시리즈를 두고 “평면적 회화에서 음악적 운율과 리듬을 표현하고 싶지는 않았을까”와 같은 평을 내놓기도 했다.39) 강국진의 회화 작업으로 분류된 작업 시리즈 표기상 <역사의 빛>은 1989년부터 시작되는데 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