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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이론적 배경

3) 한국

한국의 경우 역대 선거 때마다 각 정당에서 다양한 여성정책을 제시하며 여 성의 표 모집에 주력하였지만, 실제 공천과정에서 있어서는 경험부족, 당선불가 등을 내세우며 여성을 공천에서 누락시키는 소극적 자세를 보여 왔다. 따라서 여 성 스스로가 후보로 나서기를 꺼리게 되었고, 여성계 또한 여성후보를 찾는데 커 다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 1980년대에 들어와 여성계의 활발한 활 동과 정부의 여성에 대한 인식변화와 맞물려 여성문제전담기구로서 정무장관(제 2)실의 설치, 한국여성개발원 개원, 여성정책심의위원회발족과 더불어 여성발전기 본법 제정, 가족법 개정, 2001년 여성부의 출범 등 여성의 지위향상을 위한 제도 적인 기반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제도적 장치와 더불어 노동, 가족, 복지 등 제 분야에서 여성의 활발한 참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정치는 여전히 가장 낙후된 부문으로 남아 있다. 물론 2000년 2월 정치관계법 개정으로 비례대표 여 성공천 30% 할당제가 법제화된 이후, 16-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성의 국회진 출이 다소 약진을 보이기는 했으나, 과거와 비교해 볼 때 부분적인 변화일 뿐 제 도 자체의 실효성 면에서는 아직 많은 개선점이 요구되고 있다.

역대 의회에서 여성의원이 차지하는 비중을 통해 우리나라 여성의 정치참여 실태를 살펴보고자 한다.

1945년 해방 이후 헌법과 각종 선거법에는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해 왔으나 사실상 여성의 의회정치참여는 극히 저조하였다. 제헌국회부터 7대 국회까지는 각 국회별로 1명에서 3명까지의 여성의원 밖에 없었으나 1971년 8대 국회부터 여성의원의 수가 증가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가 되면서 다시 감소하였고, 최근 다시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여성정당인 대한여자국민당이 1945년 8월 18일에 결성 되고 임영신씨가 초대 당수로 선출되는 등 여성의 정당활동이 의욕적으로 진행 된 적도 있었다. 박순천 의원은 제헌국회선거부터 6대 국회의원선거까지 한번도 빠짐없이 출마하여 4번 당선되었고 7대 국회에서는 전국구의원으로 의정에 참여 함으로써 여성 중 최다선의원이 되기도 하였다. 김철안 의원은 1954년 3대 국회

<표 5> 역대 여성의원의 비율

선거에서 전국에서 당선득표율이 최고로 높은 4명의 의원 중 한 사람이었다15).

것은 지역구 여성 불모의 한국 정치사에 큰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여성들의 정치 참여가 확대될 경우 “정치상황이 더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는 경우 가 56.4%로 절반을 넘었으며 “더 나빠질 것”이라는 응답은 3.5%에 불과했다. 그리고 여 성정치인의 참여로 개선 가능한 분야에 대해서는 부정부패 감소(30.9%), 사회복지정책 강화(30.1%), 정치 관심분야의 다양화(23.4%), 일반 국민에 대한 친근감(13.1%) 등을 꼽 았다.20)

이러한 조사결과는 여성의 정치참여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이 상당히 우호적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를 위해 청신호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막상 선거의 결과를 보면 이러한 조사결과를 무색하게 만드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 문제다.

여성의 정치참여가 지니는 중요성을 감안할 때 한국 여성의 저조한 정치참여 현실은 여성 자신 뿐 아니라 국가사회 발전을 위한 걸림돌이 아닐 수 없다. 또한 현대사회가 점점 정치과정을 통해 다양한 사회적 욕구가 충족되고, 문제는 해결 된다라는 정치의 일상화의 흐름에 입각해서 볼 때, 인구의 50%인 여성이 이렇게 정치과정에서 소외되고 있음은 그만큼 여성과 관련된 정치, 사회, 경제적 문제들 이 정치적 이슈화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정책으로 구현하는 것도 어려워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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