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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STI 정책 변천사

프랑스의 공공부문 R&D 정책은 각 소관 부처 및 기관별로 각 기 수행되어 왔으며 부처와 기관 간의 긴밀한 협력체계가 부족 하였다. 그러나 최근 정부지원 R&D 과제 및 산업체와의 R&D 연계 등에 관한 규정과 법률이 차츰 만들어지고 있다. 2006년은 이러한 조직적 혁신이 처음 시행되기 시작한 해 이다. 그러나 과학 기술정보에 관한 법률 제정 등의 구체적인 내용이 드러나기 까지 는 꽤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의 정책 변천사는 크게 4개의 단계로 나누어볼 수 있다.

우선 5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초까지를 인식기로 보고, 80년대 초반 까지는 구축기로, 90년대 초까지는 조정기로, 그 이후부터 현재까 지는 탈 규제기로 볼 수 있다.

첫 번째 단계인 인식기(‘55~’73년)에는 정보 유통 및 접근의 주 요 수단이 컴퓨터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 사회 전반에 확산되어 있었다. 특히 고고학, 화학 등과 같은 특정 분야의 DB 개발 작업 이 착수되기 시작하였으며 50년대말 DGRST(과학기술연구 특별위원 회- 이후 프랑스 중앙부처 연구부로 개편) 산하에 협회와 위원회 등을 통하여 과학기술정보 관련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시 작하였다.

1962년 DGRST가 발간한 보고서는 DB 산업 육성의 중요성을 피력하였고 그 다음해 국가 STI 프로그램 시행에 관한 정책보고 서가 발간되었다. 이 보고서는 독립적인 국가 통신망의 필요성과 STI 정책 의사결정의 일관적인 국제적 접근 방법의 필요성을 강 조하였다. 63년 드골 정부는 「Plan Calcul」(슈퍼컴퓨팅 관련계 획)을 세우고 독립적인 연구시스템 구축을 위한 적극적인 투자계 획을 밝혔다. 71년 국가계획위원회(Commissariat General du Plan)는 과학기술정보 자원에 대한 미국 의존도의 위험성을 지적 하는 보고서를 발간하고 이러한 이슈에 관한 국가적인 의식을 일깨웠다. 이 시기에 “Anti-America" 운동이 나타나기 시작하였 으며, 이보다 8년 앞서서 미국은 이미 2개의 국제 정보통신망 (TYMNET, TELENET)을 구축하고 주요 서지정보 DB 은행 (ORBIT(SDC), DIALOG, BRS, MEDILINE(NLM))의 온라인 접속 서비스를 시작하고 있었다.

71년 OECD가 발간한 보고서「Information in a evolving society」

는 경제성장과 STI 간의 직접적인 연관관계를 분석하였으며, UNESCO는 UNISIST라는 전세계 과학정보시스템 구축을 위한 야심찬 계획을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대해 프랑스는 STI 산업 의 독점화 가능성에 대한 우려 섞인 입장을 표명하였다.

두 번째 단계인 구축기(‘73~’82년)는 과학기술정보 정책의 국가 적 추진에 대한 인식 증가에 따라 과학기술정보 전담기관 설립에 대한 필요성이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국가계획위원회의 제안에 의해 1973년 2월 BNIST(Bureau National de l'information Scientifique et Technique)가 설립되었으며 그 임무는 다음과 같 다. ① 국가 과학기술정보 정책 추진 ② 정책 제안 등 정부의 폭 넓은 승인 획득을 위한 정책적 지원 ③ 부처 및 유관기관 간 정 책 조정 등이다. 적은 예산에도 불구하고 (120만 유로(‘74년), 200 만 유로(’78년)) BNIST는 크게 4가지 정책을 수행함으로써 프랑 스 STI 체계의 구조적 약점을 효율적으로 타계 해나갔다. ① 화 학, 물리학, 의학, 섬유 산업 지원을 위한 국가 DB 정책 추진 ② 국제표준에 부합하는 산업 및 과학용어의 표준화 ③ 정보과학 연구에 관한 포괄적인 계획 추진 ④ 문서 검색 소프트웨어 개발 및 교육 프로그램 운영 등이 그것이다.

1970년대 국가 STI 정책 기반 설립에 관하여 세 가지 보고서가 발간되었다. 1979년 DGRST의 보고서1)에 따르면 “전세계에 영향 을 미칠 독립적인 과학기술 자료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정부의 관심을 증대 시켜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또한 ‘미국의 정보 독점’

1) P. Aigrain and A. Dejou, Rapport du president du groupe de travail sur l'information scientifique et technique (unpublished report, DGRST, Paris, 1979)

이라는 수용할 수 없는 결과에 대한 국가적인 관심을 촉구하였다. 과학기술 정책과 세계 정보 자원에 대한 접근 권한 등의 관리 능 력 약화로 프랑스는 경제적 ․ 과학 기술적 ․ 문화적으로 비독립적 인 상태가 될 위험성이 있음을 지적하였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긴급 조치로써 △ 중앙 호스트 서비스를 통한 국가 서지정보 시스템 구축 △ 최종 사용자 지원 서비스 개선 △ 폭넓은 신규 정보 서비스 및 상품 개발 등에 대한 계획 을 수립하였다. 이는 국가적 정보 독립성 확보, 국제 협력 강화, 프랑스의 국제적 높은 위상 확보, 정보 전략 강화 등 네가지 주요 전략을 수행하기 위한 조치라 하겠다. 이 보고서는 프랑스 국가 정책의 필수적인 부분으로써 과학기술정보 정책이 검토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의견이 반영되어 BNIST는 정책적 기능 이 한층 더 강화된 기관인 MIDIST로 교체 되었다.

MIDIST는 美 COSATI와 유사한 개념의 기관으로 STI 국가 정책 개발, 부처와 유관기관 간의 역할 조정, STI 관련 인프라 구축 지원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기관이다. 1980년 MIDIST의 예산은 약 600만 유로로 BNIST 예산의 3배에 달한다.

두 번째 보고서인 Nora-Minc의 보고서2)는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텡 대통령의 요청에 의해 「프랑스 사회의 전산화 구현」을 위한 시도로 발간되었다. 1978년 6월에 발간된 이 보고서는 정보 접근 ― 기술 개발 ― 경제 ― 사회 활동 간의 연계에 관한 이슈 로 예상 밖의 대중적 관심을 끌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보고서 의 성공은 첫 번째 정책 대안(국가 서지정보시스템 구축)의 적용

2) S. Nora and A. Minc, L'informatisation de la societe (La Documentation Francaise, Paris, 1979)

을 촉진시켰다. 마지막으로 1979년 6월에 발간된 세 번째 보고 서3)는 과학기술 정보와는 관련이 적지만 경제사회의 정보관리 필요성에 대한 논점을 다루고 있다.

1979년 프랑스 국영 통신 회사인 Telesystemes는 National Questel Host를 개발 완료하고 서지 DB와 화학 분야 초록 서비스를 제공 하기 시작하였다. QUESTEL을 통한 세계적 정보 접속서비스 제공은 미국의 경쟁력 있는 서비스 제공의 위협으로부터 프랑스를 막아 주었다. 정책적으로 QUESTEL은 프랑스의 고품질 고부가가치 정보 서비스의 모범적인 사례로 활용되었다.

세 번째 단계는 조정기(‘82~’93)로써 정보도 에너지 자원과 같 이 탐색, 추출, 가공, 판매하는 중요한 자원으로 인식되기 시작하 였다. 또한 정보도 석유 등 과 같이 국가적 독립성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주요 부처와 기관들은 각각 자신들의 개별적인 정보 관리 관련 부서를 두기 시작하였다. 또 다양한 시민사회 협의회 등에서 정부의 정책 실행 및 그에 대한 규정의 생성과 그 집행 과정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CNRS(국립과학연구센터)는 신규과학기술정보 이사회를 만드는 등 STI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졌지만 새로운 정책 방향 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었다.

1981년 프랑코 미테랑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MIDIST의 정책은 점 더 개방적인 접근 방법으로 이동하였다. 즉 MIDIST가 추구하 는 전문가용 특정 분야 정보 뿐만 아니라 일반인을 위한 과학 문화 개념의 서비스 제공까지 포괄하는 것이다. MIDIST는 박물

3) R.Lenoir and B. Prot, L'information economique et sociale, Rapport au President de la Republique (La Documentation Francaise, Paris, 1979)

관 지원, 과학 및 출판의 대중화 등에 관심을 기울였다. 또한 오 랜 기간 부처 간 조정기관으로써 특권을 누렸던 MIDIST는 STI 공공정책 수립의 핵심에서 밀려나 교육부에 넘겨주게 되었다.

도서관 ․ 박물관 ․ 과학기술정보 이사회(DBMIST)가 새로이 설 립되었고, 이는 대학 도서관, 국립 교육 박물관 등의 관리 업무 와 교육부를 위한 과학기술정보 정책의 수립 및 수행, 또한 사 서, 교사, 대학교직원 등의 교육 훈련 등의 임무를 수행한다.

1970년대 BNIST와 MIDIST에 이여서 81년 이후 과학 문화에 초점 을 맞추어 DBMIST가 같은 목표를 개발하고 추구하게 되었지만 STI 정책의 부처 간 조정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상실하게 되었다.

프랑스의 경우 교육 부문에서 STI 이용자와 생산자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DBMIST의 STI 정책은 더 이상 국가적 정책이 아닌 교육부만을 위한 정책으로 몰락하고 말았다. DBMIST의 주요 기 여 업무는 다음과 같다. △ 국가 출판목록 △ 과학기술 센터 △ 대학 도서관 주요 자료 제공 △ 다양한 데이터 뱅크 개발 및 구 축 지원 △ 과학기술정보에 관한 대학 및 국가 서버 운영 △ 사 서 및 교사 온라인 교육 등 이다.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 제한된 예산만을 소극적으로 집행하는 보수정권 하에서 STI기관에 대한 강력한 보호 노력에 도 불구하고 1986년 MIDIST를 시작으로 뒤이은 2년 뒤 DBMIST 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STI 기관은 붕괴되었다. 1988년 CNRS는 CDST(과학기술정보센터)와 CDSH (인문 사회과학 정보센터)를 통합하여 프랑스 동부 지방 Nancy시에 INIST를 설립하였다. 기 관의 목표는 전통 산업의 붕괴로 경제적인 어려움에 봉착되어 있는 지역경제를 최신기술을 이용한 고품질의 고용 창출로 이끌

어 내는 것이다. 프랑스 동부의 로렌지방은 전통적인 철강, 광업, 섬유 산업 등을 대체할 첨단 신기술 사업이 요구되었다.

1982년에서 1987년 사이, 미국 연방 기관의 전산화 예산은 91억 에서 161억 달러로 증가하였다. 유럽지역은 EC를 구성하고 유럽 의 정보산업 창출 지원을 위한 정보서비스 개발 계획인 IMPACT 프로그램을 실행하였다. 과학기술정보정책은 국가적인 청사진을 넘어 유럽을 기준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마지막 단계는 탈규제 단계(‘93~’05)로 ‘93년 미국의 부통령 앨 고어는 “Information Highway" 개념을 도입하였다. 이러한 개념 은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운송 수단으로써 21세기 경제 및 사회 발전의 동력이 될 요소 중의 하나로써 이러한 개선된 서비스는 20세기 경제 발전을 촉진시킬 것이라고 제안하였다. 인터넷은 속도,

마지막 단계는 탈규제 단계(‘93~’05)로 ‘93년 미국의 부통령 앨 고어는 “Information Highway" 개념을 도입하였다. 이러한 개념 은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운송 수단으로써 21세기 경제 및 사회 발전의 동력이 될 요소 중의 하나로써 이러한 개선된 서비스는 20세기 경제 발전을 촉진시킬 것이라고 제안하였다. 인터넷은 속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