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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콥 리스의 뉴욕 빈민가 사진

문서에서 거리 영화의 전사 (페이지 23-30)

리스의 사진은 뉴욕 빈민가의 삶과 생활을 기록하고 있다. 소재적인 측면에 서 보자면, 그의 사진은 뒷골목 경관에서부터 길거리의 부랑자와 아이들, 임시 숙 소, 노동자 숙소, 숙소로 사용되는 지하 창고 등의 세부적인 단위로 확장된다. 양 식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리스의 사진은 대체로 설명적인 동시에 관찰자적인 양 식을 통해 빈민가의 열악한 위생 상태와 그러한 환경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빈민 의 삶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재현한다. 물론, 그의 사진은 때로는 미국 문명화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담아내고 빈민가를 직접 탐사했다는 점에서 성찰적이며, 그 리고 때로는 빈민들의 삶을 부도덕, 야만, 지옥과 같이 상징한다는 점에서 시적이 기도 하다. 이처럼, 리스의 사진은 복합적인 다큐멘터리 사진의 양식을 갖고 있는 36) Jacob A. Riis, The Making of an American, p. 271.

것이다.

리스가 그의 아마추어 사진가들과 찍은 사진 중 일부는 빈민가가 위치한 뒷 골목의 경관을 다루고 있다. 이러한 사진들은 대부분 중앙 원근법을 적용하고 있 다. 예를 들어, 리처드 H. 로렌스와 헨리 G. 피퍼드 박사가 리스를 위해 찍은 <고 담 코트 Gotham Court>(1887-1888), <체리 힐의 멀른 골목 Mullen's Alley, Cherry Hill>(1887-1888), <강도들의 소굴 Bandits' Root>(1887-1888)은 각각 통 로를 중심으로 프레임 양측에 건물들이 자리 잡는 구도를 따르고 있다 [도 3-5].

<체리 힐의 멀른 골목>의 경우, 사진 속 가운에 소실점을 적용해 좌우측에 있는 4층 높이의 건물들이 하단에서부터 상단까지 그리고 그 건물들의 앞과 뒤가 입체적으로 보이도록 구성되어 있다. 리스의 뒷골목 경관 사진의 또 다른 특징으 로는 한 프레임 내에 적게는 다섯 명 내외 혹은 많게는 열 명 내외의 빈민가 사 람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그 사진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카메라를 바라보면서 부동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강도들의 소굴>의 경우, 화면 속 남성들이 각각 바지에 손을 찔러 넣고 있거나, 난간에 팔을 기대거나, 지팡이 를 잡고 있다. 그들의 경직된 자세는 프레임 좌우에 걸쳐 있는 벽돌 주택의 강고

[도 3] 제이콥 리스, <고담 코트>, 1887/1888년

[도 4] 제이콥 리스, <체리 힐의 멀른 골목>, 1887/1888년

[도 5] 제이콥 리스, <강도들의 소굴>, 1887/1888년

한 물성과 일체감을 이루면서 사진 전체에 통일감을 부여한다. 다만, <고담 코 트>의 한 소녀가 쓰레기통을 비스듬히 들고 서 있는 그 예외적인 모습에서 짐작 할 수 있듯이, 리스의 사진에 있어서 빈민들이 부동의 자세를 취하는 것이 엄격 한 규칙으로 적용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인물의 부동성을 강조하는 방식은 19세기 후반의 거리 사진을 지배하는 재 현 방식 중 하나였다. 빈민을 경직된 자세로 대상화하거나, 그들을 특정 계층, 성 별, 직업을 대표하는 인물로 전형화 하는 재현 방식은 19세기 거리 사진의 경향 중 하나에 속했다. 대표적으로, 영국 노동 계급의 일상적인 모습을 담은 존 톰슨 의 사진이 수록된 런던 거리의 삶 Street Life in London과 미국의 다양한 인 종, 성별, 직종을 일반화한 지그문트 크라우츠(Sigmund Krausz)의 사진과 글이 수록된 미국 대도시의 거리의 전형 Street Type of Great American Cities이 있다.37) 두 사진가의 작업은 인물들을 사회적 맥락으로부터 분리시키고 그들의 인격과 개성을 일반화해서 표현한다.

리스는 빈민가와 빈민을 분리하는 전략과 빈민가 속에서 빈민의 삶을 통합 하는 전략을 동시에 구사했다는 점에서 당대의 거리 사진과 차별화될 수 있다.

그는 뉴욕 빈민가의 경관과 같은 큰 단위만이 아니라 빈민가의 뒷골목을 구성하 는 작은 단위들까지도 자신의 촬영 범위에 넣었다. 빈민가라는 사회적 공간 속에 서 실제 빈민들의 삶과 그들의 생활양식을 상세하게 폭로하는 리스의 사진은, 19 세기 중엽까지 미국 도시 사진을 지배했던 웅장한 양식과 판이한 것이었다. 앞서 해일의 논의를 통해서 살펴본 바대로, 웅장한 양식은 시장 자유주의에 입각한 문 명화 과정을 지지했던 것이었다면, 리스의 사진은 “도시의 문명화 과정으로 이루 어진 세계가 허구적이며 그 허구가 근본적으로 파괴적임을 폭로”(Hale, 2006, p.

346)하는 것에 가까웠다.

리스가 집중했던 하위 테마 중 하나는 빈민가 사람들의 잠자리이다. 대표적

37) 존 톰슨과 지그문드 크라우츠의 사진은 각각 다음 책에 수록되어 있다. John Thomson, Street Life in London (MuseumsEtc, 2014); Sigmund Krausz, Street Types of Great American Cities (Leopold Classic Library, 2015).

인 예로는 <5센트짜리 잠자리 Five Cent a Spot>(1888-1889)[도 6]가 있다. 나 머지 절반의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가에 수록된 이 사진의 촬영 배경에 대해서 리스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해가 뜨기 얼마 남지 않은 어느 야심한 밤,

“문 열어!”라는 위생경찰관의 외침을 듣고 황급히 달려간 곳에서 리스는 13피트 남짓한 방에 12명의 사람이 잠을 자는 참혹한 광경을 보게 된다.38) 리스가 플래 시 라이트를 활용해서 찍은 이 사진 속 등장인물은 프레임 오른쪽 하단에 위치한, 이불에 덮여 다리만 나온 사람까지 포함하면 총 7명이다. 벽 한쪽에 움푹 들어간 공간에 마련된 침상에는 2명이 있고, 나머지 5명은 바닥에 있다. 여기서 카메라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사람은 총 3명으로 한 명은 침상에 앉아 있으며, 다른 두 명 은 바닥에서 이불을 덮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카메라를 향해 눈을 감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먼저, 불법 하숙 현장 을 급습한 경찰관 때문에 사람들이 놀라서 옴짝달싹 못 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 능하다. 이를 바탕으로 불법 현장을 감시하는 경찰관과 그 경찰관과 동행한 카메 라의 존재 자체를 감시, 처벌, 통제의 권력으로 풀이해볼 수 있다. 한편, 권력 담 론에 입각한 이러한 상징적인 해석과 달리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플래시 라이트의 빛 때문에 사람들이 눈을 감는 포즈를 취했다는 또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리스의 플래시 라이트는 그의 사진에 있어서 빈민가의 주거 환경을 구성하 는 모든 요소들을 즉시에 드러내는 기능을 담당했다. 한밤중의 빈민가는 사물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을 정도였겠지만, 플래시 라이트의 강력한 빛은 짙은 어둠 속에서라도 사물들이 본래 가지고 있었던 물질적 리얼리티를 드러내기에 충분했 을 것이다. 실제로, <5센트짜리 잠자리>에는 잠자는 사람들과 함께 온갖 잡다한 가재도구들이 널브러진 상태로 등장한다. 바닥에는 신발 두 켤레가 있고, 왼쪽 벽 에 붙은 선반들 위로는 짐 가방, 세면도구, 식기류 등이 쌓여 있다. 이처럼, 리스 의 플래시 라이트의 강력한 빛을 통해 드러난 빈민가의 무질서와 혼돈은 리스의 사진의 내용과 형식이 되었던 것이다.

38) Jacob A. Riis, How the Other Half Lives, p. 56.

<5센트짜리 잠자리>는 당시 19세기 뉴욕 빈민가의 주거 공간에 대한 역사 적 접근을 가능하게 한다. 이 사진을 통해 19세기 뉴욕 빈민가의 주거 공간의 기 능적으로 분리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그로 인해 빈민가는 인간과 사물 간의 위 계질서가 무너진 곳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닥에 이불을 펴고 새우잠을 자 는 빈민들의 위상은 무질서하게 널브러진 가재도구 혹은 신발의 위상과 크게 다 르지 않다. 특히, 이불 밖으로 얼굴만 내놓거나, 이불에 의해 얼굴이 반쯤 가려진 상태에서 팔만 내놓고 있는 사람의 모습은 흡사 신체가 변형되거나 절단된 것처 럼 보인다. 이는 빈민가의 좁은 공간 내에서 인격의 비인격화, 인간의 사물화, 인 간의 소외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때문에, 리스가 찍은 집 혹은 방은 가 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가 낭만적 경험과 현상학적 환원을 거쳐서 이야 기했던 “행복의 공간” 혹은 “꿈들의 집적체”39)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리스가 재현한 방은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가 영국 노동 계급의 실태를 조 사하면서 이야기했던 “육체가 퇴화한 인종, 모든 인간성을 박탈당하고 도덕적 육 체적으로 짐승처럼 타락하고 추락한 인종만이 쾌락함과 안락함을 느끼는”40) 사회

39) Gaston Bachelard, La poétique l'espace, 공간의 시학, 곽광수 옮김 (동문선, 2004), pp. 86-93.

40) Friedrich Engels, Die Lage der Arbeitenden Klasse in England, 영국 노동 계급의 [도 6] 제이콥 리스, <5센트짜리 잠자리>,

1888-1889년

[도 7] 제이콥 리스, <집 없는 아이들>, 1890년

적 공간에 더 가깝다. 이처럼 리스의 사진은 단순히 사회적 공간으로부터 인간을 분리해 그들의 삶을 전형화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공간으로부터 분리와 소외의 과정을 겪고 있는 타락한 인간의 삶을 그들이 속해 있는 사회적 공간 속에서 찍 었던 것이다.

리스가 집중했던 또 다른 하위 테마는 어린아이였다. 리스의 사진에는 자선 단체나 보호 기관에서 돌봄을 받는 아이들의 모습과 함께 길거리에서 신문을 팔 거나 노숙을 하면서 부랑자 생활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그가 재현한 뉴욕 빈민가의 어린아이들의 모습은 “감상주의적인 상징”41)이 깃든 것들이 여러 장 있으며, 그러한 사진들은 보는 사람의 감성을 자극해 빈민가 어 린이들을 위한 구호가 절실하다는 의미를 생성한다. 다소 선정적인 사진으로는

<집 없는 아이들 Street Arabs>(1890)이 있다 [도 7]. 주택가 계단 아래에 잠들어 있는 세 명의 아이들을 찍은 이 사진의 가장 큰 미덕은 구도의 안전성이다. 프레

<집 없는 아이들 Street Arabs>(1890)이 있다 [도 7]. 주택가 계단 아래에 잠들어 있는 세 명의 아이들을 찍은 이 사진의 가장 큰 미덕은 구도의 안전성이다. 프레

문서에서 거리 영화의 전사 (페이지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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