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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전쟁과 일제의 전북지역 거점도시 개발의 관계

이 장에서는 일제의 전북지역 거점도시 개발과 제국주의 전쟁 즉 청일전쟁, 러일전쟁과의 관계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주지하듯이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기에 이르는 시기는 동아시아에서 제국주의 식민지쟁탈전 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시기였다. 열강과 열강 사이에서 나라가 배상의 일환으로 넘겨져 식민지로 전 락되기도 하였고 일본처럼 후발자본주의로 성장하여 식민지를 획득하면서 제국주의가 되기도 하였 다. 한국의 부산포가 1876년 일본에 의해 강제로 개항 된 뒤, 1910년 완전히 강제로 합방될 때까지 약 25년간,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이 모두 조선에서 치뤄졌고, 그 결과 또한 대만과 조선의 식민지로의 전락이라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러면 일제가 전북지역과 관계를 맺고 거점도시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언제부터인가. 그것 은 1894년 청일전쟁 시기이면서 동시에 동학농민혁명 시기였다. 지금까지 연구에서 전주의 도시화가 청일전쟁과 동학농민혁명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장명수의 성곽의 철폐 등과 관련되어 언급되기는 하였지만, 인프라 구축과 관련되어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4) 전통도시 전주에서 시가지계획과 공업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되는 것은 일제의 만주, 중국침략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 조선총독 부는 1930년대 이후 조선을 대륙병참기지로 위치짓고 조선시가지계획령을 통해 대대적으로 독점적인 개발을 진행하게 된다. 1930 년대 전주지역 도시화와 공업화에 대해서는 별도의 논고에서 다룰 예정이다.

도시의 인프라 구축에서 가장 중요한 철도부설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과정에서 일본군이 군용으 로 긴급히 개설하였다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있다. 이 과정에서 경의, 경인, 경원, 경부선, 삼 랑진선 등이 개통하게 되었다.5) 전주의 경우는 철도보다 통신망의 개설이 보다 시급하게 추진되었 다. 1894년 8월 22일에 일본의 육군성이 작성한 공문서는 당시의 인프라 작업의 하나인 통신망의 정비 실태를 밝혀준다. 다음은 공문서와 통신망 정비시 필요한 재료들의 한 사례이다.

위의 공문서는 兵站総監이 작성한「朝鮮国大邱等に電線架設の件」으로, 연대과장, 연대부장, 주무 과장, 주무부장, 고급부관, 차관의 협조를 얻고, 대신의 재가를 받았다. 일본 육군성 병참총감이 조선 국에 통신망을 설치하기 위해 필요한 재료를 청구하기 위한 공문서로 朝密333호로 긴급하게(至急)

처리된 것이다.6)

이 공문서에는 병참총감 가와우에(川上操六)가 육군대신 백작 오야마(大山厳)7)에게 보내는 공문서 가 첨부되어 있다. (発第185号, 至急) 이 공문서를 통해 육해군 양 군간의 교통을 편리 신속하게 하 고 작전을 확실하고 쉽게 하기 위해, 조선국 대구부로부터 전주를 거쳐 강진현 부근 해안에 이르는 전선과 전주로부터 군산진에 이르는 전선가설 계획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 음과 같다.

①대구부에서 전주에 이르는 선로는 조선국 재래선을 이용하고, 전주로부터 강진현 해안(고금도 대안)에 이 르는 도로 약 45리 및 전주로부터 군산진에 이르는 약 10리간은 신규 가설함.

②전주에서 강진현에 이르는 선로는 순창군, 담양, 광주, 나주, 영암군을 경과하고 군산진에 이르는 것은 신 창리를 경과함.

③통신소는 대구, 전주, 고금도 대안 및 군산진 4개소로 한다.

④선로 건축법은 수송 재료를 이용하는 반영구법으로 한다.

5) 군용철도의 실태에 대한 것은 조선총독부철도국,『조선철도사』(1937) 참조. 철도설립에 대한 자세한 것은 정재정, 『일제침략과 한 국철도』(서울대출판부, 1999) ; 허우긍,『일제 강점기의 철도수송』(서울대출판문화원, 2010) 참조.

6) 陸軍省, 明治27年7月~8月 「着電綴(三)」‘兵站総監’「朝鮮国大邱等に電線架設の件」M27-5-117(所蔵館:防衛省防衛研究所) 7) 1842年 11月 12日 薩摩国鹿児島加治屋町 출생

⑤전선은 13번 동선 절연체는 에보나이트제 또는 도기제를 이용하고 전주는 긴 18척 및 20척 및 스기마루 를 이용한다.

⑥통신소용 기계물품은 체신식으로 한다.

⑦통신소는 전주로 하여금 중계소로서 그 접속법은 될 수 있으면 고금도 대안에 이르는 것을 일면선으로 한다.

⑧기구 재료는 본부에서 부산으로 수송하고 동소로부터 강진현 부근으로 보낸다.

또한 러일전쟁시기에도 일본육군이 한국의 통신망 변경에 관한 공문서가 발견된다.

1905년(소화38년) 8월 4일  兵站総監部 参謀長 大島健一가 逓信次官 田建治郎가 보낸 조회안(총 3263호) 공문서에 근거하여 검토한 공문서이다. 満一乾第六五七号 「韓国電信線変更ノ件」이다. 그 내용은 한국의 목포-대구선, 대구-금산선을 접속하여 목포-전주-대구-부산을 일회선으로 한다. 또한 옥구-전주선, 전주-군산선을 접속하여 옥구-공주-전주-군산을 일회선으로 변경한다는 것이다. (중략)

8)

더욱이 통신망뿐만 아니라 도시화 인프라의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인 전주의 철도 부설에 대 한 것도 일본 육군성이 재가하여 한국에 설치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은 육군성이 수령한 공 문서 잠밀수제 2380호 공문서로서외무성대신 카쓰라 타로가 육군대신 테라우치 마쓰다케에게 보낸 것이다. 1905년 12월 8일에 테라우치가 확인한 자료로서 공문서 제목은「전주-군산간 경편철도 부설 허가에 관한 건」이다.9)

이처럼, 일제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준비 하고 치르면서, 한국의 통신망과 철도를 연결하 였다. 그것은 전북지역과 전주도 예외가 아니었 다. 일본정부와 일본육군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부산-대구-전주는 조선국 재래 선을 사용하였으며, 서쪽으로 전주에서 군산진과 남쪽으로 전주와 강진을 연결하는 통신망을 설 치하였다. 또한 전주와 군산에는 경편철도를 부 설하여 전주의 군사적 측면의 중요성은 더욱 중 시되었다.

이를 통해 볼 때, 전주지역의 도시화 과정에 서도, 가장 중요한 인프라 정비 요소 가운데 통 신망 건설과 변경, 철도부설 등이 청일전쟁, 러 일전쟁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추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주목되는 것은 전략적으로 전 주를 중심으로 하여 동서남북으로 연결하고 있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만큼 당시 일본내각과 일본군은 전주를 전략적 요충지로서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8) 日本陸軍省, 明治 38年「満大日記 8月」

9) 日本陸軍省, 明治 38年「満密大日記 明治38年 11月, 12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