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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과 주둔군」에서 하근찬은 서양문화에 파괴되어 가는 전통의 모습을 보여주 었다. 서양문화는 6․25 전쟁 당시에는 우리에게 구호물자를 주는 구원을 주는 존 재로 형상화된다. 그러나 하근찬은 소설「낙도」에서 구원자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서양의 문화, 특히 기독교의 이미지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이는 기독교라는 종교를 통한 서양의 문화가 전쟁과 함께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우리사회에 빠르게 번지고 있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낙도」에는 두 개의 종소리가 울린다. 하나는 학교의 종소리고, 하나는 예배당의 종소리이다. 예배당에 달린 종은 생긴 지 얼마 안 되지만 학교의 것보다 훨씬 종 소리가 크고 우렁차다. 즉 서양의 문화가 지니고 있는 거대한 힘이 우리 것보다 훨씬 강하다는 의미라 볼 수 있다.

‘김선생’은 학예 발표회를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그런데 빨간 털모자를 눌러 쓴 전도부인이 학교에 찾아와서 “교회의 세례식이 있는데 시간이 겹치니 학예 발표회 를 뒤로 미뤄 달라”고 요구한다. 육지에서 서양선교사가 오는 데 학예회 시간과 겹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물쭈물하는 교장 대신 김선생은 절대로 그럴 수 없 다고 단언한다. 전도부인은 교회에서 세례를 받는 아이들만이라도 일찍 보내 달라 고 주문하고 도도한 모습으로 사라진다. 학예회는 성황리에 시작되고 결국 학예회 때문에 세례를 받는 사람이 얼마 되지 않는 가운데 세례식도 치러진다. 서양 선교 사는 너그럽고 품위 있고 사랑이 가득한 모습으로 비춰진다. 그러나 김선생 때문 에 일을 그르쳤다는 전도부인의 말에 서양 선교사가 보이는 태도는 그러한 이미 지와 상반된다.

“흥……괘씸한 녀석이로군, 그대로 둬선 안 되겠는데……”(중략)

“이름을 알아서 통지를 하십시오. 그런 선생은 섬에 그냥 두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딴 데로 보내야겠습니다. 교육청에 잘 아는 우리 친구 있습니다.”(중략)

“그런 선생은 또 섬으로 보내어서는 아니 됩니다. 그런 선생은 도시로 나가도록 해야 됩니다. 그래야 우리 사업에 지장이 없습니다. 알겠습니까?”109)

서양 선교사는 아이들과 주민들에게 줄 구호물자를 자루에 가득 담아 가지고 온 다. 그 옷가지를 얻어 입은 아이들은 멋진 옷을 뽐내며 다니게 되고 주민들 역시 옷가지를 얻어 입으면서 그저 ‘주여, 주여’를 외치게 된다.

선교사가 말하는 사업이 김선생의 학예회와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는지, 그 사업 이란 것이 무엇인지 자세히 제시되지 않는다. 그러나 전도부인의 안하무인격인 태 도와 김선생을 다른 곳으로 보내버리겠다는 선교사의 말은 구호물자를 앞세우고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드러내 보여준다고 볼 수 있 다. 더구나 구호물자로 옷을 입은 창국이 모습 자체가 구호물자 같기만 하다. 그 리고 안선생의 “흣흣흐……그렇구만예, 꼭 동화책에 나오는 집 없는 아이 같구만 예”하는 말은 구호물자를 가지고 들어와 문화적인 우위를 차지해 버리는 강한 서 양 문화에 대해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는 우리문화의 모습에 대한 안타까움 의 표시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집 없는 아이’와 같은 우리문화에 대해 무시하는 그들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도 포함되어 있다. 그들의 강한 문화적 영향력 아래에 서 낙도 사람들은 보호받고(?) 있는 것이다.

작가가 느끼는 서양 문화는 강한 힘을 지닌 것이다. 그들은 강한 문화로 우리나 라를 지배하는 것이다. 이 문화적 지배 아래에서 너무 약하기만 한 ‘우리’에 대해 작가는 탄식하게 되고 분노를 느끼는 것이다.

「왕릉과 주둔군」에서 외국 군대에 의한 전통의 파괴에 따른 계승 문제를 제기하 였다면 일상의 소재에서 보여주는 전통에 관한 내용은 전통에 대하여 얼마만큼이 나 인식하고 있으며,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스스로 우리의 문화를 지키지 못함을 강하게 질책하는 작품으로 「조상의 문집」을 들 수 있다.

이런 전통 고수형의 인물들은 고향을 자기 동일성으로 이해함으로써 시대적 변

화에 의해 함몰되어가는 고향을 자기 파괴 내지는 부권의 파괴라고 인식하고 고 향적인 것과 뿌리 찾기를 통해 자기 정체성을 회복하려고 한다. 따라서 이들은 전 통과 자기정체성이 극단적적으로 분해 된 현실에서 향토와 고향의식의 회복을 향 하여 몸부림친다.

이 작품은 그렇게 벼르고 공들여 만든 조상의 문집이 휴지화 되는 과정과 이로 인한 충격으로 죽어가는 노인을 통해 고향적인 것과 부권의 부재를 심도 높게 그 리고 있다. 시대 변화에 따라 가치나 의미를 상실해 가는 증조부의 문집에 대한 송노인의 애틋한 향수를 담담하게 서술해 감으로써 새로운 가치관에 의해 사라져 가는 옛것에 대한 집착과 향수를 연민의 감정으로 형상화 하고 있다.

‘송노인’은 자신이 죽기 전에 조부의 나라 사랑에 대한 정신을 세상에 알리고자 조부가 남긴 매산 문집을 책으로 만들 것을 결심한다. 매산 송인도는 구한말 학자 로서 한일합병으로 열하루를 단식하고, 이후로 세상을 비관하여 술로 세상을 살아 가는 등 자신의 뜻을 잃어버린 인물이다. 송노인은 이처럼 훌륭한 조상이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아들 명준에게 책을 만들기를 권하지만 ‘애국자라는 말 자체가 벌써 멀고 서먹한 것으로 들린다.’즉 명준에게는 증조부의 문집은 종이 이 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그래서 제약회사의 홍보실에 근무하는 아들의 태도는 시큰둥하다.

“세상에 펴낼 가치가 없는 거니까 그러죠, 요즘 세상에 이런 책이 무슨 가치가 있단 말입니까?” 라고 하는 아들의 태도와 “이 문집을 펴내면 정신을 훨씬 더 차 리게 된다. 그 말 인가요? 읽지도 못할 이런 한문책 나부랭이가 뭐라고……”하는 말을 듣고는 송노인은 분노를 느낀다.

결국 송노인은 고향의 문중을 찾아다니며 후원을 얻어 조부의 문집을 만들게 된 다. 고생은 했지만 흐뭇한 마음으로 서울로 와 아는 사람들에게 책을 나누어 주기 도 한다. 그러나 “자손의 도리를 했구먼”하는 노인들의 말과는 달리 자식들은 그 책을 보고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어린 손주는 “이거 순 한문 아냐, 후졌다 후 졌어.”라고 하며 송노인을 실망시킨다.

흰눈이 나부끼는 저녁 송노인은 손자 명준이 사온 호떡을 싼 봉지가 다름 아닌 조상의 문집을 찢어 만든 것을 알고 두 눈이 화끈해지면 온몸의 피가 머리로 치

솟는 현기증으로 방바닥에 내려앉듯 쓰러지고, 이튿날 아무렇게나 구겨지듯 쓰러 져 싸늘하게 굳어진 모습으로 며느리에게 발견된다.

이 작품은 조부라는 전통과 혈통에 대한 자부심과 자랑을 간직하며 살던 송노인 의 꿈이 아들과 세상으로부터 거부당하는 과정을 송노인의 죽음을 통해 암시하고 있다.

조상의 숭고한 업적마저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자식들과 송노인의 가 치관의 차이와, 시대적 추이 속에서 송노인의 죽음이 함께 오버랩 되면서 전통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 의식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즉 송노인의 죽음은 물질주의적 세계 속에서 취할 수 있었던 마지막 저항적 행동 으로 근대라는 세계에 대한 환멸을 나타내는 것이라고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런 송노인의 근대적인 것과의 화해의 실패는 작품에서 비극적인 인식을 가중시키고 이는 빠르게 밀려들어오는 외래적 요소에 대해 바람직하게 대응해 나가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에 대한 반성과 전통의 끈을 잃어버린 우리의 현실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근대의 대세는 인정했으나 그것이 과연 바람직한 방향인가를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그리움을 통해 조명하고 있다. 결국 작가는 근대를 인간 주체를 고립화 하고 비인간화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작가가 송노인이나 「왕릉과 주둔군」의 박첨지를 통해서 지나 칠 정도로 전통의 소중함을 역설하고 있다. 따라서 국내에 유입된 외래적 요소에 대한 강한 불신감과 과거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화가 남궁씨의 수염」에서는 수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우리가 잃어버린 전통 의 모습을 상기시켜 준다. 산업화 사회의 출현과 서구사조의 수입으로 잃어버린 한국사회의 향토와 고향의식 회복 추구에 주제가 맞추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남궁’씨는 할아버지의 너불 너불한 수염에 대한 흠모의 감정을 지니고 있다. 어 느 날 앨범을 정리하다 ‘남궁’은 문득 할아버지처럼 수염을 길러봐야지 하는 생각 을 한다.

할아버지와 부친의 두 수염과 연관시켜서 자기의 수염은 어떤 위치에 놓이게 될까, 두 수염의 중간이 될까, 맨 아래가 될까, 아니면 할아버지의 수염과 동격이 될까, 혹은 그 이상이 될까, 하는 호기심이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110)

수염을 기르는 ‘남궁’씨는 자신의 수염이 볼품이 없음을 불만으로 여기며 실망하 고 수염을 자르기로 결심한다.

“반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이 모양이니……”

남궁의 말고 표정에서 어쩐지 그가 자기의 조부와 부친, 두 분의 수염과 견주어서 하 는 말인 것 같은 느낌이 문득 들어서 나는

“자네 할아버지 수염보다는 못한 것 같고……어떤가? 부친의 수염과 비교하면……”

(중략) “못해”

남궁은 한마디로 잘라 말했다.111)

그는 수염이 할아버지처럼 멋지게 자라지 않는 이유를 고향을 등졌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작가는 고향에 대한 애정에서 작가로서의 근거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이 부분에서 보여주고 있다. 이 계열의 작품들은 우직하리만치 과거에 집착하며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고 현실에 대한 강한 소외의식을 가지고 있다.

“나는 말이지 , 내 수염이 할아버지나 아버지 보다 못한 게 아무래도 고향을 등졌기 때 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일부러 내가 고향을 등지려고 한건 아니지만, 처음부 터 객지에서 태어났고, 객지에서 자랐으며, 성인이 된 뒤에는 줄곧 서울에서 살아서 이 제 말하자면 서울에 뿌리를 내린 셈이니 결과적으로 고향을 등진 셈이 됐거든,” (중략)

“더구나 나는 증손이거든요. 고향을 지킬 의무가 있는 증손이 고향을 등졌으니…

…”112)

110) 하근찬, “화가 남궁씨의 수염”, 「한국남북문학 100선」 42, 일신서적출판사, 2005, p.213.

111) 앞의 책, p.215.

112) 앞의 책,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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