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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제2기 소설로 불리는 일제체험을 다룬 소설들은 일제치하와 관련한 소재를 작품화 시킨 1970년대 초에서 1970년대 말 혹은 1980년대 초에 발표한

78) 구중서에 따르면 이는 “유년시절 소재 소설은 냉정히 검토할 때 대체로 소재주의적 한계에 부딪치고 있눈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체험 세계 자체를 소재로 하면 그 안에 비록 인간적 삶과 역사의 그늘을 정교하게 조화시킨다 해도 힘찬 대작을 낳는 데는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렇다면 작가에겐 실 체험의 확장 아니면 상상력의 활성화가 요구 된다”고 하였다.

79) 천이두, “추억과 역사”, 「세계의 문학」 7, 1978, 3, pp.245-246.

소설들이 해당된다. 여기에는 진행형의 식민지 현실과 청산논리가 지배적인 세력을 형성하고 있으며 일제강점기의 폭력과 비인간성에 대한 경험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제 1기와는 달리 청년기에서 거슬러 올라간 유, 소년기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연유로 이 시기의 작품은 경험을 토대로 한 사실적인 면과 동시에 회상을 안고 다소 낭만적으로 흐르는 경향도 가지고 있다. 「일본도」와 「족제비」의 경우 일제말기 족제비 같은 일본 상인의 착취를 회상하며, 일본도나 채찍을 휘두르며 민중들을 공포로 몰고 가던 교장, 헌병, 순사의 모습을 그려낸다. 전쟁의 직접 체험보다는 후방에서 일제 의 만행을 고발하는 식민지 정책의 실체를 묘사하는 것이 주를 이룬다고 볼 수 있다.

수난의 연속성에서 어린 시절에 체험한 일제치하에서 전쟁이라는 일관성 있는 소재를 발견해 낸 것이다. 그러나 일제치하에 관련된 작품들은 참혹함이나 비극성이 직접적으 로 드러나지 않는다. 이것은 하근찬이 일제에 대한 체험과 전쟁에 대한 체험의 폭이 다 르기 때문이다.80)

「조랑말」은 피압박 민족으로서의 설움이 소박하게나마 해소되는 상황이 제시되고 있다. 나아가 일본에게 끈임 없는 핍박을 당하면서도 꺾이지 않는 무엇인가를 가 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겠느냐는 작가의 의견이 암시적으로 나타나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열한 살인 초등학교 4학년 때 일어난 태평양 전쟁은 결코 동화 속의 이야기로만 기억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런 대목도 없지가 않으나, 직접적인 괴로움을 그때부터 겪었 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등학교 생도들에게도 근로 동원이 실시되어 공부대신 곧잘 논으로 밭으로 일을 하러 나갔던 것이다. 그리고 어른들의 세계의 어두운 광경을 수없 이 목격하기도 했다. 징용이니 정신대니 하는 인력동원과 공출이니 헌납이니 하는 물자 강제수탈에서 빚어진 가지가지 희비극이 그것이다.

해방이 되던 해 봄에 나는 중학교에 입학을 했는데, 일제치하의 그 마지막 서너 달 동 안의 학교생활은 정말 괴로움의 연속이어서, 말하자면 나로서는 최초로 맛본 세상의 쓴 맛이라고 할 수 있다.81)

그의 체험이 작품으로 형상화 되면서 소년시절의 체험을 여과 없이 그대로 어린 이의 눈을 통하여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서술되기도 한다. 때문에 “일제 말기의 절망적이거나 피폐한 모습이 다소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필체로 나타나고 중복되 는 내용이 많고 다양성이 결여되어 있다.”82) 거나 “상황의 유사성으로 인해 다양 성을 가지지 못하는 점은 작가의 한계 ”83)라는 연구자의 평가를 듣는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 일제 식민지 수탈에 대한 묵시적 비판과 그 상황이 현재의 시점에 서 얼마나 극복되었는가와 광복이후 일본의 영향이 식민지 상황과 동일선상으로 이어지고 있지 않는가를 고발하고 비판하고 있는 것에 주목해서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1)경제적 수탈

하근찬의 작품들 중 「족제비」,「야호」,「산에 들에」와 같은 작품에서 일본이 35년 통치기간 동안 감행한 억압과 수탈의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식량을 공출하 고 전쟁무기를 만들기 위하여 유기 및 금붙이 공출을 강요하며 정신대, 강제 징용, 학도병 등 사람까지 수탈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우리민족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다.

군에서 공출 독려반이 나오면 면직원은 물론 면장, 구장, 반장까지 동원된다. 주재소의

81) 하근찬, “전쟁의 아픔을 증언한 이야기들”, 「한국문학」 138, 1985, p.4.

82) “그 욕된시절”, “죽창을 버리던 날”, “일본도”에서 일제치하의 힘든 학생시절의 모습이 그에 해당되 며 “그해의 삽화”, “준동화”,에서는 일본인 여선생에 대한 사모의 정이, “낙발”, “기울어지는 강”, “원 선생의 수업” 등에서 선생님에 대한 중복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초기 작품이 후기로 갈수록 줄거리 의 변형을 가져오며 김순동은 후기 작품일수록 일본에 대한 감정이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고 하였다.

83) 전영태, “담담한, 혹은 정결한 결벽성”, 「산울림」, 한겨례, 1988, p.398,

전영태는 하근찬의 이러한 성향에 대하여 내용의 한계가 아니라 작가의 한계라고 보았다.

“하근찬의 경우 그의 소설의 진폭이 그다지 크지 못한 것도 그 스스로 작가의 계층적 한계에서 벗 어나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가의 생애사적 사실과 결부시켜 서술한다면 하근찬은 초등학교 교사의 아들로 그 스스로 초등학교 교사와 잡지사 편집 기자를 거친 그런 사람으로서 체험하지 않은 것은 허 구화하지 않으려는 작가 의식으로 소설을 써온 작가이다. 이러한 작가의 태도는 그의 정결한 결벽성에 연원한다. 하근찬의 작품은 허황된 것 , 체험할 수 없었던 것, 쓸데없이 흥분하는 것, 잡다해서 다른 사람의 골치만 아프게 하는 것 등을 그 자체에서 거부하고 있다.

순사까지 나선다. 그리고 어찌된 영문인지 공출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을 터인데 하시모 도 농장의 직원까지 동원이 된다. 84)

「족제비」는 마을에서 떨어진 농장에 사는 안개 같은 존재인 일인 하시모도와 그 집 뒤 숲속에 산다는 30년 북은 족제비에 대한 마을 주민들의 궁금증으로 시작된 다.

이 가난한 마을의 경제권을 지배적으로 장악하는 것은 일본인 하시모토의 농장 이다. 마을 사람들은 하시모도에 대해 반감 내지 경계심과 더불어 선망어린 호기 심도 가지고 있다. 하시모토는 마을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는 비밀스러운 존재이 다. 더불어 자꾸만 곡식과 가축이 사라지는 것은 어디에 거처하는지 모르는 족제 비 탓이라고 생각한다.

그 하시모토라는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알쏭달쏭한 존 재였다. 말하자면 이 농장 주인인 하시모토는 안개에 싸인 것만 같은 존재였다.

또 한 가지 알 수 없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족제비였다. 저택 뒤에 있는 대나무 숲은 낮에도 그 속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우거져 있었다. 그 대나무 숲속에 30년 묵은 족 제비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 족제비 역시 똑똑히 본 사람은 없었다. 85)

하시모토와 족제비는 마을 사람들에게 가장 강력한 호기심의 대상이다. 이 두 개의 이야기가 교차 서술되는 것은 그들이 비밀스러운 존재이면서도 어떤 연관이 있다는 암시를 던져준다.

소설의 결말에 가면 족제비가 바로 하시모토였음 마을 사람들 앞에 드러낸다.

30년 묵은 족제비를 연상하게 되는 하시모도는 보이지 않은 곳에서 조선을 수탈 하며 호의호식하는 전형적인 일본인의 모습으로 제시된다.

가난한 농민들은 극심한 경제적 곤란을 겪으면서 입에 풀칠을 하는 것만도 천만 다행이라 생각하는데 그 가난의 현상을 보여주면서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학섭이 아버지 고생원이다.

고생원은 일제의 식량공출이 나오자 몰래 하시모도 농장 근처의 대나무 숲에 쌀

84) 강신제, 하근찬, “족제비”, 「한국현대문학대계」 37, 동아출판사, 1995, p.539.

세 가마니를 숨기고 나오다 농장에 접근한 아이들과 마주치게 되고 결국 일웅 아 버지 최서기의 고발로 숨겨둔 쌀 세 가마니는 공출 독려반에 의해 뺏기고 고생원 은 주제소로 끌려가게 된다. 고생원은 최서기의 아들 일웅이로 인해 자신이 밀고 당해서 뺏기게 된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다. 하시모도 농장에 숨어있던 30년 묵은 족제비가 언덕을 파내어서 발각되었고 자신을 주제소까지 끌고 가게 했다고 생각 한다. 당시 농촌의 빈궁과 공출로 모든 것을 빼앗겨 굶주린 것을 걱정하면서 곡식 을 몰래 숨길 수밖에 없는 것은 일제치하에서 무리한 식량 공출로 우리 민족이 겪어야 했던 고달픈 상황과 연관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야호」는 활동사진을 상영한다는 소식에 기대에 찬 마음으로 산골 마을의 젊은 이들이 학교에 모여드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반도지원병이 혁혁한 공을 세 우고 훈장을 받는다는 활동사진을 보여주고 태평양전쟁을 위해 강제징용, 유기공 출, 여자공출까지 나온다.

“놋그릇 공출이 다 머고, 저거가 우리 놋그릇 살 때 한 푼 보태주기나 했나, 애국심에 서 자진 헌납한다고? 자진 헌납이 와 배당대서 나오노. 도대체 머 말라비틀어진 기고, 앞으로 또 무슨 공출이 안 나올 줄 아나, 두고 보래 음……음…….”86)

젊은이들은 말 같지 않은 소리라고,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 생각하며 불안한 웃음을 짓고 화를 내보지만 결국은 징용이나 정신대로 끌려가게 되는 것 이다. 무엇을 하러 가는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병사들의 방석을 만들러 가는 줄 알고 떠난 처녀들은 결국 돌아오지 못하는 정신대 신세가 된다.

전체가 4장으로 된 옴니버스 형식의 「산에 들에」는 일제 말기의 증상이 절정에 달했던 1944년 가을부터 이듬해 여름 광복 될 때까지 시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1장은 정신대에 대한 이야기 2장 금붙이의 수탈 등은 「야호」와 비슷한 일제말기 의 사회상을 보여주고 있다.

“저…… 누가 카는데 곧 말이다, 처녀공출이 나온다는 기라.”

86) 하근찬, “야호”, 「오늘의 역사 오늘의 문학」 10, 중앙일보사, 1984,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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