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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전쟁 체험의 형상화

1. 전쟁의 고발

1931년 10월 경상북도 영천에서 태어난 하근찬은, 1937년 중일전쟁과 1941년 태 평양 전쟁이 계속되던 일제말엽에 유년기를 보내면서 일제의 참상을 직접 경험하 였다. 그의 나이 20세였을 때 한국전쟁이 발발하였다. 전쟁에 대한 청년시절의 체 험은 처녀작이라 할 수 있는 「수난이대」로부터 한결같이 한 가지 주제만으로 작 품활동을 하게하는 그의 작품 세계의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나는 (나뿐만 아니라 같은 연배는 다 마찬가지이겠지만) 전쟁의 그늘 속에서 태어나 전쟁과 더불어 자랐고 또 꿈 많은 시절을 전쟁 때문에 괴로움으로 지샌 것만 같이 회상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결과인지는 모르겠으나, 지금껏 내가 발표한 작품들의 대부 분이 전쟁과 무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내 작품들의 성격을 규정한다면

<전쟁 피해담>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19)

성장기에 경험한 태평양 전쟁과 6․25전쟁은 그의 소설 거의 전편에 등장하고 있는데 한국전쟁 동안 교사 생활을 하던 아버지의 죽음20)은 그가 당시의 사회에 대한 비인간적인 절망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그러한 절망감은 작품 속에 일관성 있게 전쟁의 비인간적인 잔학상에 대한 치열 한 항변과, 상실되고 파괴된 인간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평화에의 의지로 드러나고 있다. 그리하여 작품의 주제는 전쟁의 비인간적인 잔혹함에 대한 항변과 인간성 회복에 대한 의지로 형상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거의 예외 없이 시대적 주류에서 소외된 토속적 인간상이나 시대의 주류에 미처 참여할 수 없는 어린아이들로 되어 있다.

19) 하근찬, “전쟁의 아픔을 증언한 이야기들”, 「한국문학」138호, 1985, p.66.

20) 하근찬은 1950년 8월15일 초등학교 교장이었던 그의 부친이 그의 제자였던 청년에 의해 끌려가 학 살 당한 아픈 체험을 안고 있다.(참조 : 하근찬, “그 주검들 사이에서 마치 기적처럼”, 「문학사상」, 1984, 6, p.100.

즉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주체적 의지나 정치적 이념과는 전혀 관계없 이 타율적인 힘에 의해 자신의 삶을 유린당하는 피해자들이다.

소설의 무대는 거의 전부 시골 소읍이거나 농촌으로 되어 있다. 전쟁이나 역사의 흐름 같은 것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 무고한 농촌 사람들이 겪은 수난을 말하자면 나는 증언하듯이 소설을 썼다.21)

자신의 체험을 근거로 한 그의 문학은 전쟁의 피해 양상을 증언하듯이 소설화 하였다. 전쟁 후 살아남은 사람들의 비참한 삶과 전쟁 속에서 직접 참여하지 않고 남겨진 채 그 몫을 감당해야 하는 남겨진 사람들의 처절함을 작품 속에서 증언하 고 있다.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전쟁의 회오리에 휘말려가는 이 땅의 힘없는 사람들이 어떤 수난을 당하고 있는지를 작품을 통하여 고발하고 있다.

죄 없이 죽어간 사람들, 억울하게 불구가 된 사람들, 까닭 없이 고향을 잃고 부모처자 와 헤어진 사람들…… 그러한 무고한 백성들의 수난을 이야기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시심대신 나의 내부에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22)

「수난이대」가 당선된 후 10여 년 동안 집요하게 전쟁으로 고통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썼다. 「낙뢰」, 「흰 종이수염」, 「홍소」, 「분」, 「왕릉과 주둔군」, 「산울림」,

「붉은 언덕」, 「나룻배이야기」 등의 단편과 「야호」가 그에 해당한다. 특히 그의 소 설 속의 주인공들은 전쟁으로 의해 큰 피해를 당했으면서도 전쟁의 당위성이나 부당성도 판단하지 못한 채 전쟁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분노하거나 저항하지도 않 고 숙명처럼 그냥 현실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힘없는 농촌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말하자면 전쟁에 시달리는 시골 사람들 이야기 한 가지 주제만 놓고 작품을 썼다.

하근찬 소설은 특정한 이념이 배제되어 있으며 단지 역사의 회오리 중심에 서 있는 민중의 삶을 그 자체로 보여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23)

21) 하근찬, “전쟁의 아픔, 기타”, 「산울림」 한겨레, 1988, p.4.

22) 하근찬, “전쟁 <컴플렉스>의 극복”, 「문예중앙」,1981, 여름, p.223.

이렇듯 전후현실에 대한 그의 인식을 바탕으로 한 활발한 창작활동은 전후작가 로서 독특한 작품세계를 형성하였다. 작품에 나타난 전쟁에 대한 인식태도와 방법 그리고 그 대상에 대해 주목해 본다면 전후 사회에 대한 그의 비판적인 인식은 육체의 손상과 순수성의 파괴, 가치관의 혼란, 여인들의 한 등 네 가지 층위에서 이루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1) 육체의 훼손

하근찬 작품들을 소재 중심으로 나누면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드러난다. 첫째 는 6․25를 소재로 한 것들이고, 둘째는 일제 말엽의 이야기들이다. 그 중 50년대 부터 70년대 초반까지 발표한 작품에는 대부분 전쟁으로 인해 겪게 되는 피해와 후방에 있는 민중들의 수난 모습을 그리고 있다.

전쟁의 그늘이라 할까, 변두리라 할까, 그것이 할퀴고 지나간 뒤의 참담한 삶들, 즉 전 쟁의 후일담 같은 것과, 또 그것들이 밀어닥치고 있을 때 현장으로 끌려가는 사람들과 뒤에 남은 사람들의 비통한 양상을 주로 그렸다. 24)

그는 전쟁이 전후현실의 삶과 운명에 남겨 놓은 비극적인 상처를 구체적으로 추 적하였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품들이 바로 전쟁의 가져온 죽음과 불구를 문제 로 한 주로 육체성을 모티브로 다룬 작품들이다. 그러나 그의 그러한 육체성은 깊 은 사고의 힘을 동반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일정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전쟁 당시 교사였던 아버지의 죽음을 직접 목격하면서 전쟁의 참혹 함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소름끼치는 인간에 대한 절망을 느꼈다고 한다.

전투보다도 더 참혹하고 비통한 일을 겪었는데 그것은 부친의 죽음이었다. 반동이라 하여 학살당한 부친의 시체를 찾기 위하여 가히 시체의 바다라 할 수 있는 처참한 곳을 더듬기도 했던 것이다. 그 시체들 전부가 타살이어서 목불인견이었다. 나는 그 때 전쟁 의 잔학성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소름끼치는 절망을 느꼈다. 어머니와 둘이서 시신을 찾아 가매장하던 그날이 마치 지옥의 하루 같던 일이 지금도 머리에 생생하다.25)

24) 하근찬, “전쟁의 아픔을 증언한 이야기들”, 「한국문학」 138호, 1985. p.66.

25) 앞의 책, p.69.

작가의 이러한 체험은 「야호」의 한 대목에도 반영되어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다.

목불인견이었다. 연장들이 마구 난무하고 있는 것이었다. 괭이가 사람의대가리를 찍는 가 하면, 쇠스랑이 사람의 얼국을 긁어내고 있었고 삽이 사람의 몸뚱아리를 파고 들고 있었다. 산 사람의 머리가 쪼개지고 있었고, 산 사람의 어깨가 부서지고 있으며 산사람 의 가슴이, 산사람의 팔다리가 그렇게 마구 엉망지창으로 망그러지고 있었다. 생피가 마 구 튀고 있었다.

깨갱깨갱 깨갱깨갱 깽깽깽깽깽깽깽 -징징 -징징징징징징 ― 꽹가리와 징은 미친 듯이 울리고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그렇게 죽이고 있는 것이었다. 더구나 동족이 동족을 말이다. 달이 훤 히 내려다 보고 있는 하늘 아래에서 말이다. 26)

그의 육체성은 신체결손의 의미를 띄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손상된 육체성 은 그들의 손상된 삶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육체가 곧 삶인 것이며 그것은 노동하는 그들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작가가 기차 안에서 본 상이군인의 모습과 언젠가 유럽 기행문에서 읽었던 ‘신 기료장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수난이대」의 창작 배경을 밝힌 글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이 작품의 구상이 떠오른 것은 동해 남부선의 열차 속이었다. 1956년 가을 쯤 이었다.

(중략)

잡상인들에게 시달려야 했다. 잡상인이란 주로 상이군인들이었다. 팔 하나가 없거나 다리 하나가 없거나 혹은 얼굴이 형편없이 뭉개져 버린 말하자면 인간파편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물품을 거의 강매하다시피하고 다녔다. (중략)

팔이 하나 잘려나간 사람, 다리가 하나 잘려 나간 사람, 얼굴이 끔찍하게 뭉개져 버린 사람…… 이런 인간파편 같은 상이군인들의 모습에서 전쟁이라는 괴물의 수법을 볼 수 가 있다.27)

전쟁에서 불구가 된 사람들이 같은 전쟁을 치르고도 멀쩡한 삶을 이어가는 사람 들에게 갖는 이러한 반감 표출은 작가에게 커다란 충격을 남기게 된다. 이 체험은

26) 하근찬, “야호”, 「오늘의 역사 오늘의 문학」 10, 중앙일보사, 1997, p244.

전쟁의 의미를 다시 성찰하게 하고 있다. 전쟁은 인간의 외양만을 불구로 만든 것 이 아니라 그 내면에 피해의식, 이유 없는 적개심 등을 품게 하는 상처를 남겼다 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한번은 그런 열차 속에서 나는 어떤 잡지에 실린 기행문을 읽고 있었다. 어느 문인의 글이었는데 서구를 여행하고 돌아와서 쓴 글이었다. 그 글 가운데 이런 대목이 있었다.

그 필자가 어느 도시의 뒷골목을 지나려니까, 신기료장수가 앉아서 구두를 고치고 있었 다. (중략)

아들은 2차 대전에 죽고 자기는 1차 대전 때 한 쪽 다리가 이렇게 돼서 신기료장수로 연명해 간다면서 무릎 밑으로는 잘려나간 반 토막 다리를 끄떡 들어 보이더라는 것이다.

그 대목을 읽은 나는 옳지! 됐구나 싶었다. 바로 우리에게도 그대로 들어맞는 얘기가

그 대목을 읽은 나는 옳지! 됐구나 싶었다. 바로 우리에게도 그대로 들어맞는 얘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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