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자비령 위치는 고려사 지리지 동주 편을 근거로 황해도 서흥군 서북쪽으로 알려져 있지만, 고려사 지리지 동주 편은 근거로서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반면 대명일통지 외이 조선 편은 자비령을 ‘평양성 동쪽 160리’라고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으며, 원 시기 경계로 삼았다고 설명하 고 있다. 그러므로 자비령 위치는 대명일통지 외이 조선 편을 근거로 살펴봐야 할 것이다.
대명일통지에서 기록된 평양성은 검토 결과 고구려 장수왕이 427년 천도한 평양성으로 확인됐다. 현재 고구려 장수왕의 평양성은 평안도 대동 강 부근으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 그 위치가 중국 요녕성 요양시라는 주장 이 제기되고 있다.24) 관련 기사를 바탕으로 고구려 장수왕이 천도한 평양 성 위치를 살펴보겠다.
24) 인하대학교 고조선연구소, 고구려의 평양과 그 여운연구총서2, 2017, 주류성출판사.
사-1. 12월에 황제가 함원전(含元殿)에서 포로를 받았다. 왕은 정치
옮겼고, 천보(天寶) 2년 또 요서(遼西) 옛 군성(郡城)으로 옮겼다. 지덕
려를 멸망시키고 그 지역에 안동도호부를 두었음을 알 수 있다. 즉 당이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안동도호부를 설치한 평양성이 요 동경도 요양부이 며, 요 동경도 요양부가 곧 고구려 장수왕이 427년 천도한 평양성으로 추측 할 수 있다.
현재 요 동경이나 요 동경도 요양부 위치는 중국 요녕성 요양시 지역으로 보고 있으므로, 결국 고구려 장수왕이 천도한 평양성은 중국 요녕성 요양시 지역임을 알 수 있다. 대명일통지에서 평양성이 중국 요녕성 지역인 명 요동도지휘사사 고전 편에 기록된 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고구려 장수왕의 평양성이 중국 요녕성 요양시 지역이므로 동녕부 자비 령은 요양시 동쪽 80km 범위 안에서 찾을 수가 있다. 요양시 동쪽 80km 범위는 중국 요녕성 본계시(本溪市)에 해당된다. 그러나 현재 본계시에서 자비령이란 지명을 가진 곳은 찾을 수 없다. 약 천 년 전의 지명이기 때문에 현재는 사라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필자는 경계로 삼을 수 있는 자연지리 조건으로 2가지를 선정하고 본계시 지역에서 경계로 삼을 만한 곳을 찾아 현장 답사를 진행했다. 경계의 자연 지리 조건으로 첫 번째는 육상교통로 상의 길목으로, 두 번째는 요충지(要 衝地)로 선정했다. 경계는 그곳을 통해서 많은 사람이 교역⋅외교 등의 이유로 오고가야 하며, 무력충돌이 발생할 경우 내지(內地) 진출을 막는 1차 군사방어선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먼저 육상교통로 상의 길목을 찾아 봤다. 과거 중국 요녕성 지역의 중심 지역은 요양시 지역이었다. 한반도 북부에서 요양시에 이르는 육상교통로 는 현지답사를 통해 2개를 확인했다.
[그림 5] 한반도 북부-요양시 육상교통로
첫 번째 육상교통로는 평안도 의주(義州)-봉황시(鳳凰市)-통원보(通遠 堡)-연산관(連山關)-첨수만족향(甛水滿族鄕)-요양 궁장령구(弓長嶺區)-요양시이다. 이 육상교통로는 청(淸) 사행로(使行路)로도 알려져 있다. 이 육상교통로는 좁은 골짜기를 따라 형성되어 있고 고개가 높고 험했다. 이 육상교통로에서 본계시 지역에 속하는 곳은 첨수만족향이다.
[그림 6] 첨수만족향 입구(2020.01.)
그러나 첨수만족향은 요양시에서 동남 방향에 위치해 대명일통지 외이 조선 편에서 기록된 방향과 일치하지 않는다. 대명일통지는 동서남북과 동북⋅동남⋅서남⋅서북을 포함한 8방위로 방향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육상교통로는 평안도 삭주(朔州)-관전현(寬甸縣)-애양진(愛陽 鎭)-새마진(賽馬鎭)-초하장진(草河掌鎭)-사산령촌(思山嶺村)-요양시 이다. 이 육상교통로는 현지답사 결과를 근거로 선정한 것이다. 이 육상교 통로 시작을 평안도 삭주로 잡은 이유는 현재 평안도 삭주 앞 압록강에 하구 단교(河口斷橋)라는 다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 다리는 일본이 길림성 장춘시에 만주국(滿洲國)을 세운 뒤 한반도에서 만주국으로 쉽게 이동하기 위해 1942년 12월 건설한 것이다. 현재 이 다리는 중간 부분이 교량(橋梁)만 남아있는데,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 진격에 이용되어 폭격을 당했기 때문이 다. 이 같은 역사적 사실은 과거 평안도 삭주가 의주 나루처럼 압록강을 건너는 나루터 중 하나였음을 보여준다.
[그림 7] 하구 단교(河口斷橋)(2019.06.)
관전현은 평안도 삭주에서 압록강을 건넌 뒤 북쪽으로 약 4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관전현 지역의 도로 환경을 확인한 결과 남쪽은 평안도 삭주, 동쪽은 요녕성 환인현(桓仁縣), 서쪽은 단동시(丹東市), 북쪽은 철령 시(鐵嶺市)으로 도로가 나있음을 확인했다. 따라서 관전현은 압록강과 요 녕성 서북지역 사이 육상교통로 상의 길목으로 평안도 삭주에서 압록강을 건넸다면 관전현으로 이동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관전현 이후 국도 나 지방도로를 따라 이동해 본 결과 애양진-새마진-초하장진-사산령촌-요양시로 확인됐다.
[그림 8] 관전현 교통표지판(2019.04.)
이 육상교통로는 비교적 넓은 골짜기를 따라 형성되어 있고, 고개는 비탈이 완만하고 높지 않았다. 이 육상교통로에서 본계시 지역에 속하는 지역은 사산령촌이다. 사산령촌은 요양시 동쪽에 위치해 대명일통지
외이 조선 편에서 기록된 방향과도 일치한다. 또 사산령촌 동쪽은 산간지 역이고 서쪽은 태자하(太子河) 중류의 평지지역으로, 사산령촌을 기준으 로 자연환경이 크게 달라져 자연적 경계로 삼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림 9] 사산령촌 입구(2020.01.)
다음으로 요충지를 찾아봤다. 사산령촌 북쪽에 평정산(平頂山)이 있는 데, 현지답사 결과 평정산 정상 부근에서 군사유적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첫 번째 군사유적은 원(元) 말기(末期)에 쌓은 것으로 추측되는 성(城)이다.
이 성은 평정산 정상 부근을 둘러쌓은 퇴뫼식 산성(山城)으로 보이며, 현재 돌로 쌓은 성벽 일부가 남아있었다. 두 번째 군사유적은 러일전쟁 시기 돌로 만든 참호(碉堡)이다. 참호는 1∼2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이며, 평정산 능선에 따라 일정한 간격을 두고 만들어져 있었다. 평정산 지역에 군사유적이 존재하는 것은 본계시 일대가 잘 조망(眺望)되고, 북쪽으로 심양(瀋陽) 동쪽으로 요양으로 나눠지는 지역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이처 럼 평정산에 긴 시기에 걸쳐 군사유적이 존재한다는 점은 사산령촌 부근이 과거부터 요충지로 여겨졌음을 보여준다.
[그림 10] 본계시 전경 (평정산 정상, 2019.03.)
[그림 11] 평정산 유적 안내판 (2019.03.)
이상으로 경계로 삼을 수 있는 자연지리 조건에 요양시 사산령촌 지역이 모두 해당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1270년 원이 동녕부를 설치하고 동녕부 경계로 삼은 자비령은 중국 요녕성 본계시 사산령촌 지역으로 추측 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