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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 욕망과 기억투쟁

문서에서 오경훈 연작소설 연구 (페이지 84-94)

절멸과 반공의 시대를 거쳐오며 제주항이 무장소화되어가는 과정은 과거와 현 재를 살아가는 인물들이 느껴온 장소상실의 감각을 통해 더욱 확연하게 와 닿는 다. 특히 「유한」과 「가신 님」, 「기념탑」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이 제주항 동부둣가 에 소재한 ‘주정공장’의 무장소성과, 그에 대응하는 인물들의 행동 양상이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 제주항 축항과 그 인근 부지에 설립한 주정공장은 일제 의 식민수탈과 병참기지를 위한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전략의 일환이었다. 1934 년 일제에 의해 설립된 주정공장은 일제 당시에는 병참기지화 전략을 위한 주요 산업시설로 사용되었다가 일제가 물러난 이후 되돌려졌다. 그 이후에 이 공간이 사용되어온 과정을 보다 면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일제가 물러간 자리에, 이곳에는 반공과 시장질서 수호를 국시로 한 국민국가가 들어앉았으며, 파시즘적 지배체제와 글로벌 자본주의를 그대로 담지한 채 지배의 주체만 바뀌어 연장되었 는데, 4·3 이후 초토화 작전이 전개되던 당시에, 주정공장의 창고는 감옥이자 임 시 수용소의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반공담론의 국민국가 이데올로기에 복무하였던 것이다. 특히 1949년 봄 진압 작전의 방식이 하산을 권고하는 선무공작으로 선 회하면서 귀순자가 속출했을 때, 4월경 이곳 수감자는 약 3천여 명에 이르렀다 고 조사되어 제주도내 최대 수용소이자 감옥으로 기능하였다.128)

이후 당시 청년층의 대부분은 재판에 회부되어 육지 형무소로 이송됐으며, 이 들 중 대다수는 한국전쟁 직후 집단희생을 당했다고 전해진다.129) 제주지역 경 찰서는 한국전쟁 발발 직후부터 내무부 치안국의 지시에 의거, 주민 중 일부를 예비검속하여 관할 경찰서․지서별로 집단 수용하고, 심사와 등급분류를 실시했다.

주요 대상자는 정부당국이 4·3을 계기로 한라산 입산자나 그 가족을 대상으로 입산자, 귀순자, 자수자 명부 등을 작성하고, 요시찰인으로 분류하여 일상적으로 사찰하고 관리해 오던 이들이었다. 예비검속자들은 과거 범죄경력(혐의)의 경중 에 따라 D,C,B,A 4개 등급으로 분류되었고, 이들 중 범죄혐의가 무겁다고 판정 된 D,C등급 대부분이 제주주둔 해병대사령부에 의해 총살 암매장되거나 수장 학 살되었다.130) 일부는 정뜨르비행장(현 제주국제공항)에서 총살당했으며, 나머지 일부는 산지항에서 배에 실려 나가 바다 한가운데서 수장 당했다고 전해진 다.131) 주정공장은 이렇듯 해방 정국 동안 반공 지배담론을 부정하는 것으로 간 주되는 척결의 대상들을 모아두었다가 후에 예비검속의 대상을 판별하여 희생 여 부를 결정하는 공간으로 역할하였다.

이곳은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육군 제5훈련소를 설치해 신병 양성 훈련소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중·고생으로 조직된 학도 돌격대가 결성돼 훈련소에 입소했 으며, 이들과 더불어 제주 출신 청년 약 3천 명이 동년 동월에 해병 3·4기로 지 원 입대해 훈련을 받았다. 앞서 「가신 님」에서 보았듯, 4·3 이후 줄곧 ‘빨갱이’ 낙 인에 대한 공포에 시달렸던 제주 사람들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자신들이 국가에 충성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약 3만여 명에 이르는 이들이 자발적으로 군에 입대하였다. “목을 찢는 것 같던 외침소리, 메아리처럼 울려오던 그 소리는 남편과 함께 입대하던 젊은이들이 막힌 가슴을 트려고 절규하던 소리였다.”(160 쪽)라는 구절은 두려움과 절박함으로 가득하던 당시 젊은이들의 심경을 잘 보여 준다. 예비검속이라는 생존적·사회적 죽음의 공포로부터 안위를 도모하고, 저항

128)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대부분의 귀순자를 한 곳에 수용했고 부상자와 임산부도 같이 수용했다. 혹 독한 고문후유증과 열악한 수용환경 때문에 주정공장에서 죽어 나가는 사람도 있었으며 아기를 낳는 경우도 있었다. 이곳 수용소에 수용된 사람들은 일단 경찰서나 군부대에서 취조를 받고 수 용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제주4·3연구소, 『제주4·3유적 Ⅰ』, 제주도, 2004, 73쪽.

129) 위의 책, 73쪽.

130) 조정희, 「한국전쟁 발발 직후 제주지역 예비검속과 집단학살의 성격」, 제주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13, 2쪽.

131)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431쪽 참조.

보다는 순응의 방식을 통해 존재 가치를 증명받고자 하였던 인정투쟁이 그 안에 있었다. 이 기간 동안 ‘절멸’과 ‘반공’의 심상으로 덧칠된 주정공장은 일제 때와 해방 정국을 거쳐 경제체제와 중앙권력에 의해 무장소화된 제주항 주변 공간의 모습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이제 주정공장은 더 이상 장소로 존재하지 않으며, “공장, 병영, 수용소, 감옥으로 사용되었던 과거의 건물은 철거된 지 오 래되어 그 자리에 잡초만 우거져 있”(141쪽)다. 수용소로 활용했던 산비탈 위 창 고 터에는 현대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어 마찬가지로 당시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한편 공터로 존재하던 옛 주정공장 부지는 최근 ‘제주 주정공장 옛터 역사 기념관’을 조성하고 개관을 앞두고 있다.

오경훈은 이상 언급한 실제 사례를 극화하여 「유한」과 「가신 님」, 「기념탑」 세 개 의 작품에서 주정공장에 대한 각각 상반된 진술을 선보인다. 이 사라진 장소 속의 침묵되었던 절멸과 반공의 기억들을 소환함으로써 은폐된 죽음과 삶을 대항기억의 차원에서 끌어올리고 있다. 먼저 「유한」에서의 주정공장은 아버지가 공비로 억울 하게 몰려 수용되었다가 이후에 육지 형무소로 끌려가 다시 돌아오지 않은 곳이 다. 「기념탑」에서 그려지는 주정공장은 “한 인간이 자신의 동지를 배반하여 목숨을 보전하고 일신의 영달을 꾀하기 위해 시대 정황에 부합하는 기회주의자로서 계기 를 포착하는 역사의 현장”이다. 「가신 님」에서의 주정공장은 “4·3의 화마와 레드컴 플렉스를 벗어나기 위해 한국군에 입대하는 임시 병영으로 주목”132)된다.

「유한」과 「기념탑」은 주정공장에 수용되었던 이들의 서로 대조되는 결말을 보여 준다. 한쪽은 발언의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로 예비검속으로 끌려가 다시는 돌아 오지 못했고, 한쪽은 전향의 의사를 밝혀 적극적으로 가까스로 구명도생하였다.

「유한」의 한수는 아버지가 어떻게 죽었는지 어디에 묻혔는지라도 알고 싶어하나 누구도 알려주는 사람이 없고, 가족들은 그가 과거에 갇혀 있다며 제발 그만하라 고 다그칠 따름이다. 며느리와 아들은 각각 “참으로 이상하네요이. 왜 옛날 일을 자꾸 곱씹고 다니지요? 이제 잊어버려도 좋을 일 아닌가요?”, “아버지는 할아버 지가 참혹하게 돌아가셨다고 말하지만 그건 아버지가 만들어가는 면도 없지 않다 고요.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아직 밝혀진 것도 없는데 분한 감정에 먼저 잠기려고 하고 있잖아요.”(136쪽)라며 한수의 행동을 비난하는데, 이에 대해 한수는 “악한

132) 고명철, 「제주 항포구의 창조적 저항과 응전」, 앞의 책, 262쪽.

자들은 증오하고 경계해야 해.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아니? 과거의 폐단을 덮어 놓으려고만 했기 때문이지. 맺힌 게 있으면 풀어야 해.”(137쪽)라고 말한다. 「기 념탑」의 아버지는 자기만 살아 나왔다는 죄책감에 산사람들에 대한 애정 어린 마 음을 가지고 있지만, 그런 한편으로 자신은 약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뿐이라며 자 신의 행위를 변명하고 정당화한다. 배신자나 비겁자가 되었다 해도 그의 가슴속 에는 한가닥 주장하고 싶은 뜻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과거 행위에 대해서 회한 같은 것을 가지고 “죄가 있다면 약한 것뿐이야. 너무 약해서 목숨을 구걸하지 않 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그걸 이용했지.”(234~235쪽)라며 중얼거린다. 이처럼

「유한」과 「기념탑」은 타의에 의한 죽음 또는 자의적 전향이라는 두 상이한 방식을 동원, 반공 이외의 담론은 허용치 않는 국민국가가 변방인의 저항을 폭력적으로 은폐 및 말소해온 과정을 주정공장을 매개로 끌어올린다.

한편 「기념탑」과 「가신 님」은 자신이 ‘피해자’임을, ‘빨갱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 명하여 국민으로 인정받기를 원하는 이들이라는 점에서 공통분모가 있다. 「기념 탑」의 아버지는 정작 자신이 산사람이었고 그들과 함께했다는 소속감을 가지고 있 으면서도 피해자 신고서를 작성할 때에는 그 내용을 의도적으로 누락함으로써 스 스로를 부인하고 어떠한 이념에도 휩쓸리지 않았던 ‘선량’하고 ‘무고’한 피해자로 존재 증명을 받기를 원한다. 「가신 님」의 승운은 ‘빨갱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자발적으로 전쟁에 참전하였고, 목숨을 내놓음으로써 50여 년 만에 참전용사로 공로를 인정받아 흉상 기념상이 건립되면서 비로소 ‘국민’으로 인정받 게 된다. 내부식민성이 내재화된 변방인들의 인정투쟁이 두 소설에 담겨 있다.

「유한」의 한수, 「기념탑」의 아버지, 「가신 님」의 승운은 모두 국가로부터 ‘호명’

받고 ‘승인’을 받아야만 ‘국민’으로 승격될 수 있다는 국민화의 논리 안에 갇힌 인 물들이다. 승인받지 못하여 죽임을 당하거나(「유한」), 승인받고자 죽음을 감내하 거나(「가신 님」), 승인받고자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기념탑」), 곧 내부식민지로 서의 제주의 상황을 표상하는 ‘비(非)국민’적 존재들인 것이다. 이러한 제주 사람 들의 심성구조가 복합적인 층위로 채워져 있던 공간이 해방정국 이후의 주정공장 창고였다. 「유한」, 「가신 님」, 「기념탑」은 제주항 인근의 주정공장이라는 공간을 매개로 무장소성이 초래되어 있는 근현대 이후의 제주사회를 변방과 절멸, 반공 이라는 공간 인식 간 중첩을 통해 확장된 역사적 지평 안에서 효과적으로 형상화

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변방의식을 내면화해온 변방인들이 절멸과 반공의 논리 에 사로잡힘으로써 이러한 장소상실의 감각들이 주정공장이라는 장소 위로 중층 적으로 덧대어져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다시 현재에 벌어지는 인물들의 행위나 사건들을 통해서 역사적 지평을 넓히고 현재적으로 재구성된다. 「가신 님」에서 나타나는 수자와 그의 딸 금희의 갈등, 사위와 제막식 행사 관계자들의 갈등, 「기념탑」에서 부각되는 참전 용사 출신의 인정 욕구 등이 그것이다.

먼저 「가신 님」에서, 죽은 옛 남편 승운의 동창회장이 수자에게 남편의 호국영 웅 선정에 따른 흉상 제막식에 부인의 신분으로 참석할 것을 강요할 때, 수자는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 벌써 50년도 더 전의 일이며, 이 일로 “눈물을 몇 말 이나 흘렸”던 사람에게 “고통을 다시 안겨주”(153쪽)는 처사라고 생각했기 때문 이다. 실제 이 동창회장은 국가로부터의 인정 욕망에 사로잡혀 오랜 시간 고통받 았던 수자의 처지는 안중에 없는 인물이다. “내 솔직히 말하는 건데 이 일은 나 라에서 하는 겁니다. 위에서도 참가하는 게 좋겠다고 말하더군요. 나라를 위해 싸우다 전사한 사람 아녜요? 미망인이 살아 있는데도 참석하지 않는다면…, 우리 는 이 사업을 제대로 못한 게 됩니다.”(164쪽)라는 대사에서도 알 수 있듯, 그가 규정한 가치 척도의 일 순위는 국가주의에 있다. 이에 대해 수자는 “나라다 윗분 이다 하고 겁주지 마세요. 나라가 한다니 좋은 사람 되고 싶어서 나대는 건가 요?”(164쪽)라고 응수하며 그의 위선을 꼬집는 한편 국가주의에 대한 반감을 드 러낸다. 끝끝내 제막식에 참석하지 않으려 했던 수자가 그러한 결심을 바꾸게 된 것은 수자의 딸 금희의 원망 어린 설득 때문이었다.

“내일 모레 제막식이 있어요. 어머니, 저와 함께 가는 거지요? 응?”

엄벙대는 딸은 회장이란 사나이와 같은 말이었다. (중략)

“뭐, 내보고 나오라고?”

“왜요? 어머니에게는 남편되는 사람 아녜요? 내게는 아버지이고.”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이야. 이제 얼굴도 이름도 다 잊었다.” (중략) 딸은 가슴을 치받는 걸 누르지 못하는지 성깔을 누그리지 않는다.

“내겐 아비 되는 사람이에요. 아비 없는 자식도 서러운데 아버지 일에 어머니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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