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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적 이데올로기의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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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의 작품은 주인공이 대부분 여성이며, 그 여성의 나이가 대개 중년이거나 노년이라는 점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중년이나 노년에 해당하는 여성들은 유교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억압을 상당히 많이 받으며 자란 세대에 속한다. 따라서 박완서 의 작품에는 유교적 이데올로기를 거부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자주 찾아볼 수 있으 며 한편으로는 유교적 이데올로기에 순응하고 마는 여성 인물도 종종 나타난다. 유 교적 이데올로기란 가부장제나 남아선호사상, 여성의 부덕(婦德), 정절, 희생 등으 로 나타나는 남성중심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말한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여성들은 유교적 이데올로기의 영향 아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남성의 그늘에 의존해서 살았고, 의지할 남성 이 없는 여성들은 그만큼 소외되거나 차별을 받으며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1970년대 이후 우리나라는 산업화·도시화의 과정을 겪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여 성의 노동력이 고도성장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가 되었다. 이에 따라 여성의 사회 참여 기회가 늘어나게 되었으며 자연스럽게 여성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게 되었다. 더 나아가 1980년대 후반에 일어난 여성해방운동으로 인해 여성 들의 빼앗긴 권리를 되찾자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되면서 여성에 대한 법적, 제도적 차별들이 점차 소멸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여성에 대한 억 압은 여전히 존재하며 여성은 이러한 억압과 차별에 대해 여러 방면에서 투쟁의 모

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박완서는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계급투쟁의 극단적인 관계로 보지 않고 단지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서 잘못된 것을 바로 잡으려고만 한 다. 따라서 박완서의 작품에서는 남성성과 여성성의 대립이 아닌 남성중심 이데올 로기에 대한 모순을 자각하는 여성의 정체성 회복의식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움을 위하여」에서 나의 사촌동생이 환갑이 넘은 나이로 재혼을 하는 것은

<일부종사>라는 유교적 이데올로기를 거부하는 것임을 우리는 이미 앞에서 살펴보 았다. 박완서의 이러한 설정이 의미를 갖는 것은 그냥 여성도 아닌 유교적인 통념 에 길들여진 노년여성의 재혼이라는 점 때문이다. 이런 점 때문에 나는 사촌동생의 결혼을 질투하며 그것을 막으려는 이유로 유교적인 이데올로기를 내세운다.

나는 질투로 분기탱천하여 동생의 친동기들한테 전화통을 돌렸다. 먼저 경환 이한테 이게 얼마나 우세스러운 일이라는 걸 강조했다. 우리 집안이 어떤 집안 이냐? 나는 구태여 가문에 전해 내려오는 열녀나 정경부인까지 거슬러올라갈 것 없이 육이오 때 우리 집안 내에서 떼로 생겨난 과부들을 생각해냈다. 어쩌면 그 많은 떼과부들이 하나도 개가를 안 하고 수절을 했을까. 말을 하면서도 끔찍한 생각이 들었다.48)

나는 사촌동생의 형제들에게 사촌동생의 결혼을 막아야 한다는 당위성을 입증하 기 위해 열녀나 정경부인, 6·25 전쟁 당시 수절한 과부들을 떠올린다. <일부종사>,

<정절> 등의 유교적인 이데올로기를 근거로 들어 사촌동생의 결혼을 막아보려고 하 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계획은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 사촌동생의 남동생인 경환 은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누님의 행복”이라며 사촌동생의 편을 들어준다. 이처럼 박완서는 유교적인 이데올로기보다 여성 개인의 행복이 더 중요 함을 역설하며 유교적 이데올로기의 모순을 보여주고 있다.

「대범한 밥상」에서는 이보다 더 극단적인 상황이 나타난다. 비행기 사고로 딸 48) 「그리움을 위하여」, 앞의 책, p. 31.

과 사위를 한꺼번에 잃은 경숙과 사돈영감이 함께 살게 된 것이다. 이들의 기막힌 동거에 친구들은 배신감에 가까운 실망감을 느끼며 경숙과 사돈영감을 비난한다.

유교적인 관점에서는 대면하기도 조심스러운 사돈의 관계, 그것도 안사돈과 안사돈 도 아니고 안사돈과 바깥사돈의 관계이니만큼 친구들의 비난의 강도는 높아진다.

그러나 내가 경숙을 찾아가서 경숙과 사돈영감이 함께 살게 된 것은 그들에게 남겨 진 손자와 손녀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나는 비로소 경숙에게 품었던 오해 를 풀게 된다.

“사람의 의지로 선택할 수 없이 저절로 돼가는 거면 자연스러운 게 아닐까.

처음 그 일 당했을 때, 세 살, 여섯 살, 저 어린 것을 어쩌나, 그 생각 때문에 눈물도 안 나더라구. 사람들마다 불쌍해하는 눈길로 바라보며 혀를 차지를 않 나, 눈물을 흘리지를 않나, 눈치가 빤한 어린것들이 즈이들 처지가 얼마나 달라 졌다는 걸 왜 모르겠어. 그때부터 세 살짜리는 내 손을 한시반시 안 놓고, 찰싹 붙어 있으려고 그러지, 그뿐인 줄 알아. 다른 한 손으로는 즈이 오래비 손을 꽉 쥐고 안 놓지, 사내놈은 사내놈대로 누이에게 잡히지 않은 다른 한 손으로는 즈 이 친할아버지 손을 꽉 부여잡고 놓아주지 않지, 쇠사슬도 그런 쇠사슬이 없더 라고. 그게 아이들 나름의 생존전략이었을 거야.…(후략)”49)

일반적으로 남성과 여성이 동시에 유교적인 판단기준 아래 놓였을 때 더 손해를 보거나 피해를 보는 쪽은 여성이다. 따라서 경숙과 사돈영감의 동거를 놓고 봤을 때 비난을 받거나 손가락질을 받는 쪽은 경숙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졸지에 잃은 손자들에 대한 불쌍함과 연민은 경숙으로 하여금 유교적인 관념은 물 론 주위 사람들의 비난과 손가락질마저도 초월하게 하게 만든다. 경숙은 오로지 손 자들을 위해 대면하기조차 어려운 상대인 사돈영감과 너무도 <자연스럽게> 동거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박완서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여성의 유교적 이데올로 기에 대한 거부의 방식은 여성 자신만의 이익이 아닌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방식으 49) 「대범한 밥상」, 앞의 책, pp. 219~220.

로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여성은 남성과의 대립이 아니라 남성과의 조화와 협력을 통해 상생(相生)을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후남아, 밥 먹어라」에서는 남아선호사상에 대한 작가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후남(後男)>이라는 이름에서부터 벌써 남아선호사상이 나타난다. 딸 셋을 연이어 낳게 되자 다음 번에 태어나는 아이는 남아(男兒)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막내딸의 이름을 <후남>이라고 지은 것이다.

남아선호사상은 유교적인 가치관에서 비롯된다. 유교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집안 의 가장이 될 수 있는 대상은 남성이고, 남성만이 집안의 대를 이어갈 수 있으며 조상의 제사를 지내는 주체도 남성이다. 따라서 한 집안의 대를 이어가기 위해서라 도 여성은 반드시 남자아이를 낳아야 했으며 그렇지 못한 여성은 학대를 받거나 심 지어는 그 집안에서 쫓겨나기도 하였다. 이러한 여성에 대한 차별은 여성이 남아를 낳음으로써 극복될 수 있었기에 남아를 선호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후남은 딸 중에서도 막내딸이다. 여자도 배워야 한다는 어머니의 확고한 의지와 강한 생활력 덕분에 언니들은 둘 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후남은 수재들만 가는 대학 에 응시했다가 낙방하고 나서는 대학에 진학하려던 것을 포기한다. 딸 셋을 대학을 보내 가르치기에는 어려운 집안 형편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계집애>들을 대학에 보내야 한다며 자신의 팔자를 저주하는 아버지 때문이다. 여자는 아무리 가르쳐봤 자 결국 남의 식구가 될 사람이기에 쓸모없는 짓이라는 아버지의 남성 중심적인 가 치관이 나타나는 대목이다.

그러다가 후남은 고국에서 참한 신부감을 구하고자 하는 미국이민자와 결혼을 하 게 된다. 미국이민자와의 결혼은 고등학교밖에 못 나온 후남에게 언니들의 질투를 불러일으킬 만큼 신분의 상승을 가져온다. 어머니는 이런 후남을 두고 몹시도 고마 워하면서도 자랑스러워한다. 박완서는 남성의 사회적·경제적인 지위가 여성의 지위 를 결정짓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남성중심의 사회, 남성에 대해 의존적인 여성상을 의도적으로 그리고 있는 것이다. 후남의 신분상승을 부러워하고 질투하는 대상이 같은 여성이라는 점에서 여성의 남성에 대한 의존방식은 매우 심각함을 알 수 있 다. 여성이 자기 스스로의 능력과 힘으로 신분을 개척하고자 하는 의지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남성중심의 사회가 강력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바꾸어 말하면 여성의 정체성 회복에 대한 의지가 나약함을 의미한다.

「후남아, 밥 먹어라」에서 여성의 정체성 회복을 위한 노력은 남아선호사상에 대한 거부로 나타난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 마저 치매에 걸리게 된다. 그러나 치매에 걸린 어머니는 아들을 알아보지 못한다.

그토록 하늘같이 떠받들던 아들을 처음 대하듯 하는 것이다. 이런 어머니가 유일하 게 기억하고 찾는 대상은 미국에 이민 가 있는 <딸막내> 후남이다.

“가끔 네 생각은 나시나 봐. 우리 딸막내 어디 가서 밥이나 안 굶나, 하시면서 먼 산을 바라보신단다.”

“딸막내가 뭐야?”

“네가 딸로는 막내 아니냐?”

“그럼 엄마가 내 이름도 생각 안 난단 말야?”

“누구 이름은 생각난다던? 글쎄 병수한테도 댁은 뉘시유, 하신단다. 병수가 누구 냐? 엄마가 하늘같이 받들던 맏상제 아니더냐.”50)

어머니로서는 언니들보다 많이 가르치지 못했고 미국 이민으로 인해 멀리 떠나보 내야 했던 막내딸이 품안에서 금지옥엽처럼 길렀던 맏아들보다 더 가슴에 남았던 것이다. 이와 같이 박완서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유일하게 기억하고 있는 대상을 장남이나 아들이 아닌 막내딸로 설정함으로써 남아선호사상을 거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여성의 남아선호사상에 대한 거부는 여성의 정체성 회복을 위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며, 여성이 유교적 이데올로기의 모순을 깨닫게 됨을 의미한다.

유교적 이데올로기는 여성들에게 삼종지도(三從之道)나 부덕(婦德)을 강요하기도 한다. 즉, 여성은 태어나서는 아버지의 말씀에 복종하고, 결혼을 해서는 남편의 뜻 에 순종하며, 남편이 죽고 없을 때는 아들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것으로 <여자는 여자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여성의 가치는 수동성, 소극성, 우유 50) 「후남아, 밥 먹어라」, 앞의 책,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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