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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모 부양 문제와 가족관계의 단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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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는 전통적으로 가족 간의 끈끈한 유대의식이 강하게 나타나는 대가족제 도를 유지해 왔다. 따라서 개인의 가치보다는 가족 공동체의 가치가 우선시 되었으 며 가족 구성원의 결속과 단결이 무엇보다도 중요시 되었다. 특히 이러한 가족 간 의 유대의식은 6·25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도 가족의 분산과 파괴를 저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전쟁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는데도 크게 공헌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 우리나라에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부터 여성의 사회진출 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많은 젊은이들이 도시로 대거 몰리게 되면서 전통적인 대 가족제도가 붕괴되고 대부분의 가족 구성이 핵가족으로 변모하는 양상이 나타난다.

핵가족 제도는 공동체 의식보다는 개인주의를 더욱 확산시켰으며 이로 인한 가족구 성원 간의 소외와 단절현상이 사회문제로 크게 대두되었다. 특히 핵가족 제도로 인 한 노부모 부양문제는 오늘날까지도 심각한 사회문제로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박완서는 대부분의 작품에 가족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그 중에서도 핵가족으로 인한 노부모 부양문제나 가족 간의 단절현상은 기존의 여러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다.71) 2000년대 단편소설에서도 노부모 부양문제나 가족 간의 단절문 제가 등장한다.

먼저 노부모 부양문제가 나타나는 작품은 「그리움을 위하여」, 「그 남자네 집」, 「마흔 아홉 살」, 「후남아, 밥 먹어라」, 「촛불 밝힌 식탁」등으로 상당 히 많은 작품에서 노부모 부양문제를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박완서의 2000년 대 이후 작품에 이렇게 노부모 부양문제가 많이 등장하는 것은 70대 후반의 연령층 을 살고 있는 작가 개인의 경험과 사고가 크게 반영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위의 작품 중에서 노부모 부양문제와 그로 인한 가족 간의 단절문제가 직접적으 로 거론되고 있는 작품은 「촛불 밝힌 식탁」을 들 수 있다. 나머지 작품 「그리움 을 위하여」, 「그 남자네 집」, 「마흔 아홉 살」, 「후남아, 밥 먹어라」등에서 는 노부모 부양문제가 크게 이슈화되지 않고 단편적으로 등장한다.

「그리움을 위하여」에서는 아버지가 병으로 죽고 어머니가 홀로 남았는데 아들 이 어머니를 모실 여력이 안 되자 어머니가 늙은 나이로 재가한다는 내용이 나타나 고, 「그 남자네 집」에서는 좌익 활동을 한 큰형이 아버지와 함께 북으로 넘어가 고 막내아들 때문에 어머니만 홀로 남한에 남았는데 막내아들이 노모의 부양을 불 편해하며 어머니를 구박한다는 내용이 나타나며,「마흔 아홉 살」에서는 노년의 나 이로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가 이혼하게 되는데 그 중 시아버지를 모시고 살면서 시 71) 「그의 외롭고 쓸쓸한 밤」, 「꽃잎 속의 가시」, 「길고 재미없는 영화가 끝나갈 때」, 「환각의 나 비」, 『미망』,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 등 많은 작품에서 노부모 부양문제나 가족 간의 갈등과 단 절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어머니에 대해 며느리가 갈등을 느낀다는 내용이 나타난다. 또 「후남아, 밥 먹어 라」에서는 노년의 나이로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처음에는 아들네가 모시다가 너무 버거워하여 다시 큰딸이 모시게 되는데 이도 힘들어서 결국 어머니를 시골에 있는 이모네로 보낸다는 내용이 나타나고 있다.

이상과 같이 위의 작품들에서는 노부모 부양문제가 크게 문제시되지 않고 작품 내부에서 단순히 이야기 전개를 도와주는 역할을 하거나 단편적으로만 등장하고 있 음을 확인할 수 있다.

「촛불 밝힌 식탁」에서는 노부모 부양문제가 중요한 문제로 거론된다. 이 작품 은 박완서의 작품 중에서는 특이하게도 서술자가 노년 남성으로 제시되고 있다.

<나>는 초등학교 교장 자리에서 퇴직한 지 오 년 남짓 된 노인으로 시골생활을 청 산하고 서울로 이사를 계획한다. 낯선 서울로 이사를 하려고 하는 것은 아들 내외 와 함께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대가족 제도를 경험하고 자란 인물이므로 아 들로부터의 부양을 어느 정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아들에게 경제적으로 의존을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아들 내외와 함께 살면서 손자 들과 말동무를 하며 여생을 보내고 싶을 뿐이다. 아들 내외는 핵가족에 적응한 세 대이므로 양자 사이에서는 사고방식의 차이가 엄연히 존재한다. 이러한 나의 계획 은 며느리의 반대로 여지없이 물거품이 되고 만다.

“아버님, 저희들이 맞벌이 하면서 연년생으로 아이 둘 키울 때 얼마나 힘들었 는 줄 아세요.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어요. 친정엄마가 파출부처럼 드나드시지 않았으면 우리 둘 중의 하나가 직장 그만둬야 했을 걸요. 솔직히 저이 직장보다 제 직장이 도중에 그만두기 아까운 직장이란 건 아버님이 더 잘 아실 거예요.

그렇게 눈물나게 아이들 키워 이제 돈 들 일만 남았지 잔손 갈 일은 없어져서 숨 돌리게 되니까 같이 사시자고요?”72)

며느리는 시아버지에 대해 다분히 공격적인 태도를 취한다. 두 아이를 키울 때 72) 「촛불 밝힌 식탁」, 앞의 책, p. 189.

도와주지 않은 것을 은근히 불평하며 함께 살 수 없음을 명백히 드러내고 있다. 문 제가 되는 것은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부양해야할 대상으로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이 다. 며느리의 이런 태도는 핵가족화로 인한 가족 개념의 축소 때문으로 보인다. 며 느리에게는 핵가족, 즉 한 쌍의 부부와 미혼자녀로 구성된 가족만이 가족으로 받아 들여지므로 시부모는 동거의 대상에서 제외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며느리의 가치 관과 시아버지의 가치관이 충돌을 일으키지만 체념하는 쪽은 시아버지 쪽이다. 박 완서 특유의 갈등 회피 방식이 나타나는 것이다. <나>는 자신의 권리를 내세우지 도, 부모부양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며느리가 하자는 대로 일을 진행시킨 다. 그리하여 같은 단지에 위치한 아파트 앞뒤 동을 구해서 두 부부가 각각 따로 살게 된 것이다. 나는 아들 내외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노력은

<불빛을 확인할 수 있는 거리>라는 말에서 잘 나타난다.

마누라는 그런 소리를 어디서 얻어들었는지, 수프가 식지 않는 거리가 따로 사는 부모 자식 간의 이상적인 거리라고 좋아했다. 나는 마누라에게 그런 소리 는 입 밖에도 내지 말라고 윽박질렀다. 왜냐하면 며느리가 가끔가끔이라도 따뜻 한 음식을 해 날라야 될 것 같은 부담을 느끼기 알맞은 소리였기 때문이다. 그 대신 나는 불빛을 확인할 수 있는 거리라는 말을 썼다.73)

나의 고교 동창들은 내가 아들네와 가까운 거리에 살게 됐다는 것만으로도 효자 를 뒀다며 부러워한다. 심지어 한 달에 한두 번 손자들과 식사를 한다는 말에는 질 투까지 한다. 그만큼 노부모를 제대로 부양하는 자녀들이 없다는 것에 대한 박완서 의 현실 풍자가 나타나는 대목이다. 아파트라는 폐쇄적이고 획일적이며 독립적인 공간과 핵가족으로 인한 개인주의적 사고방식으로 인해 노부모를 부양하는 가정이 현저히 줄어들고 그로인한 노부모 부양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제기되고 있는 것 이다.

남들의 부러움과 질투에 나는 은근히 자랑스럽고 의기양양 해진다. 그러나 그것 73) 위의 글, p. 191.

은 오래가지 않는다. 아들 내외와의 사이에서 나타나는 생활방식의 차이 때문이다.

아들네 집에 처음 초대받을 때만 해도 아들네 식탁의 깔끔하고 장식적이고 국적 불명의 퓨전요리를 신기해서 하나하나 맛보면서 그 요리법까지 묻던 마누라가 차츰 시들해하더니 나중에는 집에 와서 김치 국물로 입가심까지 하게 되었다.

그리고 손자들이야 그 맛밖에 모르고 자랐으니까 할 수 없다손 쳐도 내 새끼 불 쌍해서 어쩌나 탄식을 하곤 했다. 그리고 마침내는 청국장을 맛있게 끓인 날 아 들네 집에 그걸 갖다 주고 왔다. 아들이 희색이 만면해서 그걸 반기더란 얘기를 자랑스럽게 하면서 앞으로는 종종 그럴 거라고 했다. 거기 재미를 들인 마누라 는 아들이 좋아하던 음식을 하나하나 생각해내서 나르는 빈도가 점점 잦아졌 다.(…중략…)

무심히 볼 때는 몰랐는데 지켜보고부터는 창에 불이 안 들어오는 날이 잦아지는 것 같았고, 그건 신기할 정도로 마누라가 별식 만드는 날과 일치하곤 했다.74)

서구화된 음식에 길들여진 아들네와 전통 음식이 익숙한 노부부사이에 존재하는 이질감이 양자 간의 관계에 단절을 가져온다. 노부부는 아들네의 생활방식이 생소 하고 잘 맞지 않으며 아들네는 노부부의 생활방식이 이질적이다.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해 나르는 아내의 노력은 아들네의 의도적인 회피로 헛수고가 되고 만다.

양자 간의 생활방식의 차이는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을 정도로 요원해 보인다.

이와 같이 노부부와 아들네 간의 사고방식이나 가치관, 생활 방식 등의 차이는 가족 간의 소외와 단절을 초래한다. 「촛불 밝힌 식탁」에 나타나는 가족 간의 단 절은 단절감을 넘어서 비정함으로 표현된다.

모닥불의 잔광 같은 희미한 빛을 보았다기보다는 느낀 어느 날 저녁, 그날은 마 누라가 아들을 위한 별식 같은 걸 한 날도 아닌데 나는 슬쩍 산책 나가는 척 혼 자 나가 맞은편 아들네 아파트로 올라가 초인종을 눌렀다. 연거푸 두 번 세 번 까지 눌러보았다. 아무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지만 나는 느낌으로 안에서 웅성대 74) 위의 글, pp. 193~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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