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 제1회

수성궁(壽聖宮)은 안평대군(安平大君)의 옛집으로 장안의 서쪽 즉 인왕산(仁王山) 아래 자리 잡고 있었는데, 수려한 산천이 감싸고 있었는데, 마치 용이 서리고 범이 웅크린 듯한 형상이었다. 사직(社稷)은 인왕산 남쪽으로 가까이 있고 경복궁(景福宮)은 동쪽에 위치를 정하였으며, 인왕산 줄기가 굽이져 내려오다 수성궁에 이르러 높은 봉우리를 이루고 있었다. 비록 험준하지는 않았으나 올라가 내려다보면 사통오달로 툭 터인 거리에 상점들과 성에 가득찬 집 들은 바둑판이나 별들처럼 벌여 있어 역력히 가리킬 수 있고, 완연함은 베틀의 날줄이 나누어 갈라진 듯하였다. 동 쪽을 바라보면 궁궐이 멀리 아득한데, 복도가 공중으로 비껴있고, 구름과 안개는 비취빛으로 쌓여 아침저녁으로 모 습을 드러내니 진실로 절승의 경지였다. 당대의 술꾼들과 활꾼들, 노래하는 기녀들, 피리 부는 아이들, 시인 묵객들 은 봄날 꽃이 피거나 가을날 단풍이 들면, 그 위에서 놀지 않는 날이 없었고, 풍월을 읊고 풍악을 즐기느라 돌아가 는 것도 종종 잊곤 하였다.

제2회

류영(柳泳)은 청파(靑坡)에 살던 선비였다. 수성궁의 경개를 실컷 듣고서, 한 번이라도 놀러가고 싶은 생각이 가득 했지만, 의상이 남루하고 용모도 못 미쳐, 다른 유객들의 비웃음을 살 것을 염려하여 주저한 지가 오래였다. 만력신 축(萬曆辛丑:1601년) 춘삼월 열엿새 탁주 한 병을 사기는 했으나, 몸종도 없고 또한 함께 갈 벗도 없었다. 몸소 술 병을 차고 홀로 궁문으로 들어가는데, 구경 온 자들이 서로 돌아보고 손가락질하면서 웃지 않는 이가 없었다. 류생 은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모르다가, 이내 후원으로 들어갔다. 높은 곳에 올라 사방을 보니, 전란을 갓 겪은 후라, 장 안의 궁궐과 성안의 화려했던 집들은 모두 공허할 뿐이었다. 부서진 담과 깨어진 기와, 묻힌 우물, 흙덩이가 된 섬 돌도 찾아볼 수 없고, 풀과 나무만이 우거져 있으며, 오직 동문 두어 칸만이 홀로 우뚝 남아 있을 뿐이었다.

류생은 못과 돌만 남아있는 깊고 그윽한 서쪽 정원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온갖 풀이 우거져서 그림자가 밝은 못 에 떨어져 있고, 사람의 발길이 이르지 않았던 땅 위에 가득히 떨어져 있는 꽃잎은 미풍이 일 때마다 향기가 코를 찔렀다. 류생은 홀로 바위 위에 앉아 소동파(蘇東坡)가 지은 시구를 읊었다.

我上朝元春半老 아침에 일어나보니 봄은 거의 지나갔고 滿地落花無人掃 지천으로 널린 낙화는 쓰는 이가 없네.

류생은 문득 차고 있던 술병을 풀어 다 마시고는 취하여 바윗가에 돌을 베고 누웠다. 잠시 후 술이 깨어 머리를 들어 살펴보니 유객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다만 동산에는 달이 떠 있고, 연기는 버들가지를 포근히 감싸고, 바 람은 꽃잎을 어루만지고 있을 뿐이었다.

이때 한 줄기 부드러운 말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류영은 이상히 여겨 일어나 소리를 따라가 보니, 그곳에는 한 소년이 절세의 미인과 마주 앉아 있었다. 그들은 류영이 오는 것을 보고 흔연히 일어나서 맞이했다.

제3회

류영은 소년과 인사하고 말했다.

“수재(秀才)는 어떠한 사람이기에, 낮이 아니라 밤에 찾으셨습니까?”

소년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옛 사람이 말한 경개약구(傾蓋若舊);처음 만나 친함이 친구와 같다. 경개(傾蓋):수레를 멈추고 덮개를 기울인다는 뜻으로, 우연히 한 번 보고 서로 친해짐을 이르는 말. 공자가 길을 가다 정본(程本)을 만나 수레의 덮개를 젖히고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데서 유래한다. )란 말은 바야흐로 우리를 두고 한 말이지요.”

세 사람은 가마솔발처럼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데, 미인이 나지막하게 아이를 부르니, 계집종 두 명이 숲에 서 나왔다. 미인이 그 아이에게 말했다

“오늘 저녁은 우연히 고인(故人)을 만나고, 또 기약하지 아니한 반가운 손님을 만났구나. 오늘 밤은 쓸쓸히 보낼 수 없으니, 너는 술과 안주를 준비하고, 아울러 붓과 벼루도 가지고 오너라.”

두 차환들은 명을 받고 갔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왔는데, 빠르기가 새가 나는 듯 같았다. 차환이 가져온 유리 술병과 유리잔, 자하주(紫霞酒)와 진기한 안주는 모두 인간 세상의 것이 아니다. 술이 삼 순배에 이르자, 미인이 술 을 권하며 새로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重重深處別故人 깊고 깊은 궁 안에서 고운님을 여의나니 天緣未盡見無因 하늘의 인연 미진하여 볼 길 전혀 없네.

幾番傷春繁花時 꽃피는 봄날이면 몇 번이나 울었던가.

爲雲爲雨夢非眞 밤마다 상봉은 꿈이었지 현실이 아니어라.

消盡往事成塵後 지난 일이 허물어져 티끌이 되었어도 空使今人淚滿巾 지금 부질없이 눈물로 수건을 적시게 하는구나.

노래가 마치고 한숨 쉬며 흐느껴 우는데 구슬 같은 눈물이 얼굴을 덮었다.

류생은 이상히 여겨 일어나 절하며,

“내 비록 금수지장(錦繡之腸)은 아니지만, 어릴 때부터 학업을 닦아 조금 글을 압니다. 이제 그 가사를 들으니 격조 가 맑고 뛰어나나, 시상이 슬프니 매우 괴이합니다. 오늘밤은 마침 달빛이 낮과 같고 청풍이 솔솔 불어와, 이 좋은 밤을 즐길 만하거늘, 서로 마주 대하여 슬피 우는 건 어인 일이오? 술잔을 더함에 따라 서로 정이 깊어졌어도 성명 을 서로 알지 못하고, 회포도 펴지 못하고 있으니, 또한 의심하지 않을 수 없소.”

하니, 류영은 먼저 자기의 성명을 말하고 강요하더라.

제4회

이에 소년은 대답했다.

“성명을 말하지 아니함은 어떠한 뜻이 있어서 그러한 것인데, 당신이 구태여 알고자 한다면 알려드리는 것이 어렵 지는 않은 일이지는, 사정을 말로 하자면 장황합니다.”

그리고는 수심 가득한 얼굴로 한참 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의 성은 김(金)이라 하며, 나이 십 세에 이미 시문에 숙달하여 학당(學堂)에서 이름이 유명하였고, 십사 세의 진 사(進士)에 제이과에 올라, 그 때부터 모두 김 진사라 부릅니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기상이 호협하여 호탕한 마음 을 능히 억누르지 못하였고, 또한 여인 때문에 부모의 유체를 받들고서 마침내 불효의 자식이 되어 천지간의 한 죄 인이 되었으니, 이름을 억지로 알아서 무엇 하겠습니까? 이 여인의 이름은 운영(雲英)이요, 저 두 여인의 이름은 하 나는 녹주(緣珠)요, 하나는 송옥(宋玉)이라 하는데, 다 옛날 안평대군의 궁인이었습니다.”

류생이 말했다.

“'말을 하다가 다하지 아니하면 처음부터 말을 하지 않은 것만 같지 못하옵니다. 안평대군의 성시의 일이며 진사가 상심하는 까닭을 자상히 들을 수 있겠소?”

진사는 운영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성상(星霜)이 여러 번 바뀌고 일월이 오래 되었으니, 그대는 그때의 일을 능히 기억하고 있소?”

운영이 대꾸했다.

“가슴 속 깊은 원한을 어느 날인들 잊으리까? 제가 이야기할 것이오니, 낭군님이 옆에 있다가 빠지는 것이 있거든 덧붙여 주옵소서.”

제5회

이어 말하기를

장헌대왕(莊憲大王 : 세종대왕)의 팔 대군 중 셋째 왕자인 안평 대군이 가장 영특하였지요. 그래서 주상이 매우 사 랑하시고, 무수한 전민(田民)과 재화를 내리시니, 여러 대군 중에서 가장 나았사옵니다. 그리고 나이 십삼 세에 사 궁(私宮)에 나와서 거처하셨는데, 그 곳이 수성궁(壽城宮)이랍니다. 대군은 학업에 힘써 임하시고, 밤에는 독서하고 낮에는 시를 읊으시고 또 글씨를 쓰면서, 한 시각도 허송치 아니하셨습니다. 당시 문인재사들이 모두 수성궁 문 안 에 모여서, 그 장단(長短)을 비교하였고, 혹 새벽닭이 울어도 그치지 않고 강론을 하셨습니다. 대군의 필법(筆法)은 더욱 능하여져 일국에 이름이 났지요. 문종대왕이 아직 세자(世子)로 계실 적에 늘 집현전 여러 학사와 같이 안평대 군의 필법을 논평하시기를,

“우리 아우가 만일 중국에 났더라면 비록 왕희지(王羲之)에게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어찌 조맹부(趙孟頫)에 뒤지리 오.”

하면서, 칭찬하시기를 마지않았지요.

하루는 대군이 저희를 보고 말씀하셨습니다.

“천하의 모든 재사(才士)는 반드시 안정한 곳에 나아가서 갈고 닦은 후에야 이루어지는 법이니라. 도성 문밖은 산천 이 고요하고, 인가에서 좀 떨어졌을 것이니, 거기에서 업을 닦으면 대성할 수 있을 것이다.”

곧 그 위에다 여남은 칸의 정사(精舍)를 짓고, 당명을 비해당(匪懈堂)이라 하였으며, 또한 그 옆에다 단을 구축하고 맹시단(盟詩壇)이라 하였으니, 이는 모두 이름을 통해 의(義)를 생각한 뜻이었지요.

그 후에 당대의 문장(文章)과 거필(巨筆)들이 그곳에 다 모이니, 문장에는 성삼문(成三問)이 으뜸이었고, 필법에는 최흥효(崔興孝)가 으뜸이었습니다. 비록 그러하오나 다 대군의 재주에는 미치지 못하였지요.

하루는 대군이 술이 반취하여 여러 시녀를 불러 말하기를,

“하늘이 재주를 내리심에 있어서, 남자에게는 풍부하게 하고 여자에게는 적게 하였으랴? 지금 세상에 문장으로 자 처하는 사람이 많지마는, 능히 다 상대할 수 없고, 아직 특출한 사람이 없으니 너희들도 또한 힘써서 공부하여라.”

하고는 대군께서는 궁녀 중에서 나이가 어리고 얼굴이 아름다운 열 명을 골라서 가르치셨습니다. 먼저 <언해소학 (諺解小學)>을 가르친 후에 <중용(中庸)>, <논어(論語)>, <맹자(孟子)>, <시경(詩經)>, <통사(通史>등을 차례로 가 르치고, 또 이백(李白), 두보(杜甫), 당음(唐音)의 시 수백 수를 뽑아 힘써 가르치니 오 년이 지나지 않아 과연 모두 대성하였지요. 또 대군께서는 집에 들면 저희들에게 안전에서 시를 짓게 하여, 시의 우열을 정하여 가작자(佳作者) 에게는 상을 주어 권장하였습니다. 이에 탁월한 기상이 대군에게는 미치지 못하나, 음률에 청아함과 필법의 완숙함 은 당나라 시인의 울타리를 부러워하지 않을 만큼 되었습니다.

시녀 열 사람의 이름은 소옥(小玉), 부용(芙蓉), 비경(飛瓊), 부취(翡翠), 옥녀(玉女), 금련(金蓮), 은섬(銀蟾), 자란(紫 鸞), 보련(寶蓮), 운영(雲英)인데, 그 중 운영은 바로 저입니다. 대군은 열 명의 시녀를 심히 사랑하고 불쌍하게 여겼 으나, 항상 궁문 밖을 나가지 못하게 하고 사람들과의 말도 절대로 금하였습니다. 문사들과 주배전(酒杯戰)을 할 때 가 많지 않았지만, 간혹 있더라도 시녀들은 가까이 있지 하지 않았습니다. 대개 바깥사람들이 알까 하여 언제나 엄 한 명을 내렸습니다.

“시녀가 궁문 밖을 나가면, 그 죄는 죽음이 마땅하고, 궁문 밖 사람이 궁인의 이름만 알아도 역시 죽음을 면치 못 하리라.”

제6회

하루는 대군이 저희를 불러 이르기를,

“오늘은 문사 아무개와 주배(酒杯)를 나누었는데, 그 때에 상스러운 파란 연기가 궁중의 나무로부터 일어나 궁성을 싸고 산봉우리로 스르르 날아갔다. 내가 먼저 오언 일절을 짓고 손님들에게 짓게 했으나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즉 그것을 시제로 하여 너희들은 사의(私誼)대로 또는 연령대로 글을 지어 올려라.”

먼저 소옥이 시를 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綠煙細如織 푸른 연기 가늘기가 깁 같으니 隨風伴入門 바람을 따라 비스듬히 문으로 들어왔도다.

依微深復淺 흐릿하게 깊었다가 다시 엷어지니 不覺近黃昏 깨닫지 못게라, 황혼이 가까이 왔도다.

부용이 다음으로 올렸습니다.

飛空遙臺雨 공중에 날아 요대의 비가 되고, 落地復爲雲 땅에 떨어져 다시 구름이 되었도다.

近夕山光暗 저녁이 가까워 오매, 산빛이 어둑어둑하고 幽思向楚君 그윽한 생각이 초나라 임금을 생각하였도다.

비취의 시는,

覆花蜂失勢 꽃에 덮이니 벌이 갈 길을 잃었고,

籠竹鳥迷巢 대통 속의 새들은 아직도 깃에 들지 못하였구나.

黃昏成細雨 황혼 때에 가는 비가 되어 窓外聽蕭蕭 창밖으로 들리는 소리 소소하도다.

비경의 시는,

小杏難成眼 작은 은행으로 눈을 맺기 어렵고,

孤篁獨保靑 외로운 대피리는 홀로 푸른빛을 보전하였구나.

輕陰暫見重 가볍고 침침함을 잠깐 다시 보려니, 日暮又昏暝 날이 저물고 또한 어둡도다.

옥녀의 시는,

蔽日輕紈細 해를 가리는 얇은 깁은 가늘고 橫山翠帶長 산에 비끼어 길이 푸름을 띠었도다.

微風吹漸散 가는 바람이 불어 잠깐 그쳤으나, 猶濕小池塘 오히려 작은 연꽃이 젖었도다.

금련의 시는,

山下寒烟積 산 아래 쌓인 찬 연기가 橫飛宮樹邊 비끼어 궁중 나무 가에 날았도다.

風吹自不定 바람이 불매 스스로 정하지 못하였으니, 斜日滿蒼天 비낀 날이 창천에 가득하였도다.

은섬의 시는,

山谷繁陰起 산골에는 이따금 그늘을 지우고 池臺緣影流 연못가에는 푸른 그림자 흘렀도다.

飛歸無處覓 날아가매 찾을 곳이 없음이여, 荷葉露珠留 연잎에 이슬 맺힌 구슬이 머물었도다.

​ 자란의 시는,

早向洞門暗 일찍이 동문으로 향하여 어두웠더니 橫連高樹低 비끼어 높은 나무 밑에 연하였도다.

須臾忽飛去 잠깐 사이에 홀연히 날아가니, 西岳與前溪 서편 멧부리오 앞의 시내로다.

제 시는,

望遠靑烟細 멀리 바라보매 푸른 연기가 가늘고 佳人罷織紈 아름다운 사람은 깁 짜기를 마쳤도다.

臨風獨惆悵 바람을 대하여 홀로 설워하니, 飛去落巫山 날아가 무산에 떨어졌도다.

보련의 시는,

短壑春陰裡 작은 구렁이 봄 그늘 속이요, 長安水氣中 장안 물 기운 가운데로다.

能令人世上 능히 사람의 세상으로 하여금 忽作翠珠宮 홀연히 푸른 구슬 집을 지었도다.

대군은 한 번 보더니 놀라는 빛이 얼굴에 가득하여,

“당나라 시에 비하여도 첫째 둘째가 될 것이라. 근보(謹甫)[성삼문] 이하는 채찍을 잡지 못하리라.”

하고, 재삼 읊으면서 우열을 정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렇게 한참 읽으시다가,

“부용의 시에 그대를 꿈꾼다는 것은 대단히 잘 되었고, 비취의 시는 전에 비하면 아취(雅趣)가 있고, 소옥의 시는 표일(飄逸)하여 끝줄에는 은근한 취미가 있다. 먼저 이 두 글을 제일로 정한다.”

하고, 다시 말씀하시기를,

“처음에는 우열을 말하지 않았으나 재삼 해석하여 보니, 자란의 시는 심원한 곳이 있으나 무의식하게 사람으로 하 여금 차탄하고 춤추게 한다. 그리고 그 나마지 글도 아름답게 되었으나, 홀로 운영의 시는 초창(惆悵)하고 누구를 상사하는 듯이 표현하여 있다. 그리워하는 자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이 일을 마땅히 힐문할 것이로되, 그의 재조를 보아 그대로 내버려둔다."

이 말을 들고 저는 즉시 뜰에 내려 엎드려 울면서 고했습니다.

“시를 지을 때에 우연히 나온 것이오, 결코 다른 뜻은 없습니다. 지금 주군의 의혹을 받으니, 첩은 만 번 죽어도 오 히려 애석할 게 없습니다.”

대군은 저를 불러 올려 자리에 앉으라 한 후에,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