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하지만 가치판단적 용어를 포함하는 많은 문장들이 사실적 정보를 제공하는 듯하다. 만일 어떤 문장 φ가 가치판단적 용어 ψ를 포함하지만 참거짓을 가지는 명제를 표현한다면 φ는 정서주의의 반례가 될 것이다.
I 정서주의자들은 보통 다음과 같이 재반론한다: ψ는 통상 가치판단적 의미로 쓰이지만 φ의 문맥에서는 사실을 서술하는 의미로 쓰였다. 이때 φ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윤리적 문장이 아니며, 따라서 정서주의—어떤 윤리적 문장도 인지적 문장이 아니라는 입장—의 진정한 반례가 아니다.
I 특히, “좋다”라는 표현이 “ξ라는 목적을 위해서 좋다”는 뜻으로 문장 φ속에서 쓰였다면 φ는 윤리적 문장이 아니라고 생각해야할 것이다.
요약 (계속)
I 그러나 이런 재반론 전략으로도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다:
I 어떤 대상이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서 좋다는 문장의 경우
“좋다”라는 표현이 비가치판단적이라고 말하기가 매우 어렵다.
I “좋다”를 포함하는 문장은 문맥에 따라 달라지는 사실적 정보를 표현하고 있어서 “좋다”가 정확히 어떤 비가치판단적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말하기 힘들다.
I 이런 문제들 때문에, 결국 윤리적 문장들도 인지적
문장들이며, “좋다”는 세계의 상태를 기술하는 의미(인지적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부인하기가 힘들어진다.
I 그렇다면 “좋다”의 (인지적) 의미는 정확히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요약 (계속)
I “좋다”의 기능적 정의에 따르면: (D1) 모든 x에 대해서, x가 좋다면 그리고 그래야만 x는 x의 기능을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수행한다.
I 인공물이나 가축과 같이 우리를 위해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 사물들에는 (D1)이 잘 적용되는 것처럼 보인다.
I 하지만 어떤 사물들은 그 기능과 상관없이 좋거나 나쁘다고 말해야 할 것같다. 예를 들어:
I 우리들 자신즉 인간은 인공물이나 가축이 아니지만, 누군가가 좋다거나 나쁘다고 흔히 말하고는 하며,
I 일반적으로 수단이 그 목적을 잘 실현하기 때문에 좋다고 말해진다면, 그 목적은 그 자체로 성취할 가치가 있으므로 좋다고 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요약 (계속)
I 아래 정의들을 살펴보자:
I (D2) 모든 x 에 대해서, x 가 좋다(good)면 그리고 그래야만 내가 x를 좋아한다(like).
I (D3) 모든 x 에 대해서, x 가 좋다(good)면 그리고 그래야만 내가 x에 찬성한다(approve).
I 위 정의들은 두 가지 문제점들을 가진다.
1.
좋아하거나 찬성하는 것은 내성(introspection)에 의해서 알 수 있기 때문에 무엇이 좋은지 나쁜지도 매우 쉽게 알 수 있다는 반직관적 결과가 나온다.2.
위 정의들에는 풍부한 반례들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요약 (계속)
I “바란다”라는 용어를 가지고 “좋다”를 정의하려고 하는 시도가 종종 있다:
I (D4) 모든 x 에 대해서, x 가 좋다(good)면 그리고 그래야만 내가 x를 바란다(desire).
I (D5) 모든 x 에 대해서, x 가 좋다(good)면 그리고 그래야만 누군가가 x를 바란다(desire).
I (D6) 모든 x 에 대해서, x 가 좋다(good)면 그리고 그래야만 x 가 바람직하다(desirable).
I 하지만 (D4)와 (D5)는 (D2)나 (D3)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반례들에 부딪힐 것이다.
I (D6)는 반례로부터 자유로울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바람직하다”가 이미 가치판단적 용어이기 때문에 가치판단적 개념을 비가치판단적 개념으로 환원시켜 주지는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