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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서 진리와 창조

문서에서 베르그손의 예술철학 연구 1 (페이지 22-26)

이 연구를 마치기 전에 마지막으로 다루어야 할 문제가 하나 더 남아 있다.

베르그손에게서 예술 진리론, 곧 예술은 존재에 대한 일종의 철학적, 형이상학적 인식이라는 관점은 예술 감정론(예술은 인간적 감정을 표현한다는 관점)과의 관계에서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술은 인식일 뿐 아니라 창조 활동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사실, 베르그손에게서 예술은 가장 전형적인 창조 활동이다. 예술이 없었다면 창조가 무엇인지 인간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창조란 그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대상을 존재하게 하는 활동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예술은 사물의 실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해주는 동시에 창조적인 것으로 규정될 수 있는 것인가? 창조와 진리라는 두 관념은 정반대되는 것 아닌가? 예술 진리론과 예술 창조론의 관계에 관한 이 문제가 바로 우리가 다룰 마지막 문제이다.

최근 마크 싱클레어는 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베르그손의 예술론에서 창조와 진리를 양립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주기 위한 해석을 제시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베르그손에게서 예술적 창조는 창조적 진화에서 전개된 생명적 창조의 모델을 따라 이해되어야 한다. 생명적 창조는 전에 없었던 것을 만들어내는 창조(무로부 터의 창조)가 아니라 “창조적 행위 이전에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재적 요소들을 갖지 않는 기원적 통일성으로부터 [이 요소들을] 분리”해내는 활동이다.45) 따라서 생명의 창조나 예술의 창조 모두 한편으로는 전에 없었던 것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사물의 실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창조된 것은 그 이전에는 그러한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지만, 그럼에도 기원적인 통일성 속에 이미 존재했다고 말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 창조와 진리는 이러한 타협안에 쉽게 응하지 않을 것 같다. 싱클레어는 분리라는 관념에 포함된 역설에 충분히 주의하지 않는 것 같다.

‘그 이전에는 없었던 요소들의 분리’란 엄밀히 말해 분리라고 할 수 없다. 분리해야 할 것이 애초에 없었는데 어떻게 분리라고 말할 수 있는가? 사실 창조적 진화

에서 생명의 창조는 생명의 다양한 경향들의 분리, 분기(divergence)인 동시에 생명적 통일성의 다양한 변형들이기도 하다. 그래서 마비, 본능, 지성이라는 생명 진화의 주요한 세 방향은 이 세 경향을 잠재적으로 갖고 있는 생명의 원초적 통일성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온 것들일 뿐 아니라 하나의 주요한 경향을 발전시킴 으로써 다른 경향들은 잠재화시킨 통일성들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물 질과 기억에서도 이미 발견된다. 순수 기억은 모든 기억들을 하나로 융합한 전체 로서 이 순수 기억으로부터 특정한 개별 기억이 떠오르는 방식은 전체로부터 부분이 분리되는 방식이 아니다. 특정한 개별 기억은 전체로부터 분리되지 않고 반대로 전체가 그 특정 기억을 중심으로 응축되어 이 특정 기억은 모든 기억 전체를 보이지 않는 배후에 두고서 떠오르기 때문이다.46)

45) Mark Sinclair, “Bergson's Philosophy of Art”, p. 100.

46) 싱클레어는 창조적 진화에서 베르그손이 세아이유(Séailles)를 언급하는 각주(베르그 손, 창조적 진화, p. 62 각주 36)에 주목한다. Mark Sinclair, “Bergson's Philosophy

이렇게 본다면 분리 관념을 통해 창조를 진리의 드러냄과 연관시키려는 싱클레어의 해석은 베르그손에게서 창조 개념의 의미를 보다 깊이 있게 탐구하지 못하고 일반적인 의미에서 분리를 이해함으로써만 가능한 것임이 드러난다. 창조가 분리를 넘어서 어떤 총체성 자체의 예측 불가능하고 미리 결정할 수 없는 변화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진리와의 충돌은 더욱 첨예해질 수밖에 없다.

해결의 실마리는 ‘무로부터의 창조’라는 창조 개념의 의미를 변형시키는 것 이 아니라 예술적 창조가 정확히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데에서 주어질 수 있다.

우리는 앞서 베르그손에게서 예술은 대상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암시한다는 것을 보았다. 따라서 예술은 대상의 진리를 고스란히 복제해서 우리에게 전달해주지 않는다. 반대로 예술은 대상의 진리를 향해 우리 스스로 나아가도록 이끌며 대상의 진리를 인식하는 것은 작품을 감상하는 우리들 자신이다. 예술 작품이 진리의 인식이라면, 이는 오직 우리가 진리를 인식하도록 유도한다는 점, 그 길을 보여준 다는 점을 의미하지, 우리가 스스로는 알아낼 수 없는 무엇을 직접 가르쳐준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베르그손은 형이상학 자체도 이와 다르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존재를 구성하는 지속에 대한 직관을 자기 스스로 가질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 어떤 것도 그에게 그 직관을 줄 수 없을 것이다.”47) 형이상학은 단지

of Art”, pp. 94-96. 싱클레어에 따르면, 세아이유는 예술적 창조를 무로부터의 창조라는 전통적 관념과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베르그손은 그에게 빚지고 있다. 다만 세아이유가 창조를 “요소들의 종합”으로 본 반면 베르그손은 이를 부정한다.

하지만 싱클레어의 주장과 달리 베르그손은 이 각주에서 무로부터의 창조를 논의하지 않으며, 그가 세아이유에게 동의하는 바는 생명은 창조라는 주장뿐이다. 게다가 싱클 레어는 이 각주에서 베르그손이 요소들의 잠재적, 선행적 존재 가능성 자체를 부정한 다는 점에 충분히 주의하지 않는다. 베르그손에게 요소들이란 “불가분적 과정에 대한 정신의 다양한 관점들”에 불과하다. 따라서 잠재적 요소들의 종합이든 분리든 간에, 창조는 요소들의 관점에서 사고될 수 없다. 생명진화 과정의 창조성은 우리가 말했듯이 단순히 기원적 생명의 원초적 통일성으로부터 잠재적인 구성 요소들이 분리되는 과정 으로만 생각될 수 없다. 창조는 또한 원초적 통일성의 예측 불가능한 변형적 증식 과정이기도 하다.

47) Henri Bergson, “Introduction à la métaphysique”, p. 185.

각자가 어떻게 하면 스스로 직관을 가질 수 있는지 방법을 제시해줄 수 있을 뿐 이다.

그렇다면 예술적 창조의 대상이 되는 것은 사물의 진리가 아니라 진리에 도달하는 이 방법이다. 어떤 이미지들, 어떤 리듬들을 어떻게 사용하여 감상자로 하여금 자신의 실천적 인격을 벗어나 대상의 진리에 다가가게 만들 것인지의 문제에 대해 예술의 무궁무진한 창조성이 발휘된다. 베르그손이 1887년의 강의에서 다양한 예술들을 규정하는 방식들을 잠깐 살펴보자. 조각상은 인물의 정지된 태도를 통해서 그 태도 속에 “미리 형성되고 있는 운동의 우아함, 유연성과 날렵 함”을 암시한다. 음악은 다양한 리듬들을 통해서 우리의 귀를 잠재워 꿈을 꾸게 만들지만 어떤 구체적인 감정이나 관념도 제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음악의 이 불명료성은 음악이 “모든 예술 중 가장 표현적”인 예술이 되게끔 한다.

“음악 선율의 리듬과 진행에 맞는 온갖 감각과 감정들에 대한 기억”을 우리 안에서 일깨우기 때문이다. 곧게 뻗은 수직선들을 통해 대표되는 고전 건축물들의 느낌은

“우리로 하여금 무제약적인 저항과 확고부동함(solidité)을 생각하게 한다.”48) 이렇게 나열된 예술들의 규정에서 우리는 명확하게 예술의 표현 수단과 예술에 의해 표현된 바를 구분할 수 있다. 조각상이 취하는 태도, 음악 선율의 리듬과 진행, 건축물의 수직선들은 감상자를 유사 최면적인 상태에 빠져들게 하는 예술의 수단 들, 기예들로서 예술가의 고유한 창조물들이다. 하지만 감상자가 예술에서 느끼게 되는 바, 운동의 우아함, 유연성, 날렵함이나 감각과 감정들, 무제약적인 확고부동함 등은 예술에 의해 암시된 진리들, 사물의 본질들이다. 이러한 본질들이 베르그손 자신의 지속 개념, 곧 다양성, 이질성들의 상호침투적 통일성이라는 관념을 통해 어떻게 재해석되고 재정의될 수 있는지의 문제가 제기될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예술에서 창조와 진리 사이의 충돌에 관한 문제와 관련해서는, 우리는 다음과 같은 명제를 하나의 일반적 원칙으로 삼을 수 있다. 예술은 창조적인 암시 수단들에 의한 진리의 직접적 체험이다.

48) Henri Bergson, Cours Ⅱ, p.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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