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여다의 섬

문서에서 제주도 여성 문화에 관한 고찰 (페이지 12-15)

II. 가족생활과 여성

1. 여다의 섬

제주의 결혼풍습이나 가족생활은 한국 전통가족의 모습과는 여러 측면에서 상당히 다른 점이 많다. 가부장제 사회이면서도 실제 생활내용에서는 여성의 목소리가 컸던 제주 사람들의 삶의 모습은 어떤가.13) 이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피기 전에 우선 여 다의 섬으로부터 출발하고자 한다. 여성 인구가 남성 인구보다 많음으로써 가족이나 결혼생활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역사적으로 여성 인구가 남성 인구보다 많은 곳이다.(<표 1> 참조)

<표 1> 제주도와 전국의 성비14) 비교(1925~1966)

년도 제주 전국

1925 86.6 104.65

1930 85.4 103.58

1935 83.6 103.05

1940 87.5 101.12

1944 85.7 99.38

1949 82.08 102.10

1955 108.06 100.03

1960 87.41 107.79

1966 90.92 101.44

자료 : 통계청

1955년도의 성비가 다른 해에 비해 높게 나타난 것은 모슬포에 <육군 제1훈련소>

가 생기면서 현주조사인구에 의해 군인이 포함되어 나타난 현상이라 예외로 보아야 할 것이다.

13) 제주도(2001), “가족과 결혼생활”, 「제주여성문화」제주문화자료총서8, 제주도, p.15.

14) 여자 100명당 남자의 수.

출생 시의 자연성비는 인종에 관계없이 대체로 105 전후를 기록한다. 남자가 여자보다 약 5% 정도 많이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연령이 상승함에 따라 성비가 점차 낮아지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남성의 사망률이 여성보다 높기 때문이다.15)

<표 2> 제주도의 연령별 성비 추세(1925~1966)

1925 1930 1935 1940 1944 1949 1955 1960 1966

0-4 104.6 102.5 102.9 106.8 104.3 99.1 112.6 104.4 103.0 5-9 109.1 105.2 104.4 107.8 106.6 99.1 103.9 103.5 105.3 10-14 100.6 101.8 105.6 108.6 108.6 103.5 107.7 106.1 104.2

15-19 78.5 82.6 90.5 86.5 84.0 84.0 124.9 114.9 110.7

20-24 70.3 69.4 70.3 68.0 60.4 67.1 78.2 111.4 119.5

25-29 70.0 66.6 64.2 62.4 57.1 68.3 79.2 89.9 103.4

30-34 75.2 69.9 66.2 64.6 57.8 66.8 74.3 69.3 97.5

35-39 80.2 74.9 71.9 72.0 67.3 63.2 71.2 61.2 70.8

40-44 84.5 80.6 78.6 77.6 75.2 65.6 61.4 65.3 61.8

45-49 80.3 80.1 82.0 82.5 84.5 70.0 64.8 59.8 64.6

50-54 85.2 84.5 86.0 83.5 83.4 74.8 65.0 60.2 57.9

55-59 79.2 78.7 80.1 83.7 80.0 72.2 66.9 60.0 57.3

60-64 77.3 78.5 81.3 77.5 76.3 72.8 65.9 60.5 56.0

65-69 76.0 75.4 76.9 75.5 76.3 68.6 63.6 56.5 53.1

70-74 66.0 66.2 67.8 71.4 74.0 64.0 62.1 58.1 51.0

75+ 57.8 57.6 58.7 63.6 63.7 55.5 53.5 50.1 44.2

자료 : 이창기(1999), 제주도의 인구와 가족, 영남대학교출판부, p.76에서 재구성함.

※ 1955년의 수치는 군인들을 상주지로 환원시켜 재집계한 것임(전체 성비 88.7)

그런데 <표 2>에서 보듯이 제주도에서는 1925년부터 1949년까지 전 기간을 통해서 청장년층의 성비가 매우 낮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노년기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 특히 성비가 갑자기 낮아지는 15세부터 49세까지의 연령층은 50세 이후보다도 더 낮은 성비를 기록하고 있어서 제주도 인구구조의 한 특징을

15) 이창기(1999), 전게서, p.79.

이루고 있다. 이것은 이 연령층의 남성인구 결손이 매우 심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며, 그 주된 원인은 일제시대의 과도한 도외이출에서 찾을 수 있다. 일제하의 도외이출과 4ㆍ3사건에 의한 희생이 참으로 오랫동안 제주도의 인구구조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다.

여다의 섬 이면에 숨겨진 이런 고난의 역사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원래 여다(女多)란 제주의 남자들이 바다로 나가서 어로작업 중 많이 조난, 사망하 여 여자가 수적으로 많았던 데 연유한다. 어쨌거나 성비의 불균형으로 인해 1950~

60년대에 남성들의 외도나 취첩 현상을 제주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도 이와 관련 하여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선별적인 사회적 인구이동 외에 잦은 해난 사고, 빈번히 일어났던 민란, 근세 이후 일본으로의 출가, 태평양 전쟁 및 4․3사건이나 6․25전쟁으로 인해 남성 인구의 사 망, 행방불명 및 지역적 이동이 많았고, 전쟁 이후에도 복구사업 등으로 일자리를 찾 아 남성들의 육지 전출이 잦았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보다는 제주의 생활환경이 각 박하여 여자들도 남자와 함께 일터로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데서 붙여진 측면이 더 크다. 또한 여다(女多)는 인구통계의 비교 결과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보다는 제주 여성들이 근면하게 일한다는 비유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거친 파도와 싸우며 어획 하는 해녀(海女)는 여성들이 바다로 나가서 일하는 여다(女多)의 섬 제주를 표상하 는 이름이기도 하다.16)

A. A. Pieter 목사는 1899년 “Korean Repository”에 기고한 글에서 “제주도는 한국의 시실리이며, 여성들은 (조선반도의)육지 여자들보다 더 튼튼하고 훨씬 잘 생 겼다. 길거리에서는 남자 하나에 여자 3명이 같이 있게 된다”라고 하여 제주도가 여 자 천국임을 말하고 있다.17) 이것은 제주 여성들의 바깥 활동이 얼마나 활발했었나 를 짐작하게 한다.

16) http://jejugo.netian.com/jejudo/je13.htm 17) 김영돈(2000), 제주도 제주 사람, 민속원, p.40.

문서에서 제주도 여성 문화에 관한 고찰 (페이지 12-15)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