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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프로젝트의 미학예술학적 의미

문서에서 진화하는 예술 (페이지 23-28)

1. ‘장(場)’ 및 ‘사람’과의 관계성

나오시마의 경우를 비롯하여 다양한 ‘아트프로젝트’에 대한 조사연구를 행하 는 가운데 특히 인상에 남는 것은, 거의 모든 프로젝트에서 ‘장’과의 관계, ‘사람’

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고 하는 사실이다. 작가가 전시회장이 되는 지역을 직접 방문하거나 또는 거기에 살면서, 토지에 뿌리를 내린 작품을 제작하고, 그 지역 주민들과 각지에서 모여든 볼런티어들이 그 제작이나 설치에 참가한다. 이와 같은 형태가 눈에 띄며, ‘참가’, ‘협력’, ‘커뮤니케이션’, ‘결과보다는 프로세스’라고 하는 구호가 많은 프로젝트로부터 들려온다. 그 미학예술학적 의미 는, 아트프로젝트가 되기 위해서는 그 핵심에 사물로서의 ‘작품’이라는 존재가 확 실하게 있는 것도 중요할지 모르나, 기성의 명품을 전시해 놓고 사람들은 단지 한 때의 감상자로서 그 앞에 다가간다는 식의 지금까지 일반적이었던 인간과 예 술의 관계방식과는 크게 다른, 새로운 만남의 형태가 생겨나야 한다는 것이다. 요 컨대 여기에 이르러서는 예술 표현이 ‘장’과의 관계,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를 강 하게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술작품은 근대 이후 그것이 본래 존재하고 있었던 ‘장’과의 관계나 역사적 문맥으로부터 분리되어 ‘미술관(museum)’이라고 하는 제도 속에 갇혀있었다. 미 술관은 편리하고 효율적인 제도여서 힘차게 그 수를 늘리고 기능을 강화하였고, 그것이 예술의 존재방식을 규정할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이르렀다. 이 제 도는 미술관이라는 틀 내에 그치지 않고, 미술계 전체에 침투해갔다. 그래서 미술 관을 지향하는 작품이 생겨나고 사람들은 예술을 만나기 위하여 미술관에 찾아갔 다. 그러나 예술이란 본시 그 원초적인, 인간 내부로부터의 강력하게 맹아(萌芽) 한 에너지의 발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에 걸쳐 활발하게 전개된 ‘어스 워크(earth work)’는 그러한 예술 본래의 에너지가 미술관 의 속박을 벗어나려고 하는 본능적인 충동의 표출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에너지 는 20세기 말부터 아트프로젝트 속에 흘러 들어와, 사람들에게 더욱 친근한 형태 로 마을이나 자연을 무대로 하여 새로운 전개상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 잠시 1990년대 이후 성행하게 된 아트프로젝트가 1980년대까지의

야외조각전과 어떠한 차이를 보이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80년대까지의 야외조 각전은 퍼블릭 아트의 설치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든 어스워크적인 작품을 모은 것이든, 오브제를 제작하는데 가장 큰 가치를 부여하였다. 제작된 작품이 시간의 경과를 중요한 요소로 삼는 프로세스 아트라 할지라도, 그것은 처음부터 작품으 로서 제작된 것이며 종래의 작품 개념에 의연히 기초하고 있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전시회장은 공원처럼 일괄하여 빌릴 수 있는 장소였다. 이에 반하여 90년대 이후의 아트프로젝트는 작품을 제작하기에 이르는 프로세스를 더욱 중요시 하였 다.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나 워크숍을 행하면서 제작해가는 아트프로젝트는 작품 을 제작하는 프로세스가 더없이 중요한 요소를 점하고 있다. 전시회장은 여기저 기 흩어져있는 경우가 많고, 각각의 장소에서 토지소유자와의 교섭이 필요했으며 이것이 아트프로젝트의 내실에도 영향을 미쳤다.

2. ‘지역성’이라는 무대

아트프로젝트는 예술문화를 통한 지역 활성화를 도모한다. 지역의 정체성 (identity)을 확립하고 지역 간에 존재하는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한다. 다시 말해 특정한 도시에 집중하는 정보와 가치를 분산시키며 지역의 특성을 생산해내 고 재평가하는 일에 주력함으로써, 타 지역에는 없는 문화적 정체성을 발신하려 는 움직임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지역 고유의 정체성을 끌어내어 지역의 이미지 와 지역의 브랜드 가치를 향상시킨다. 여기에는 물론 지역민의 활동의 활성화도 수반되기 마련이다. 예술을 매개로 한 다양한 지역민의 활동이 펼쳐짐으로써, 작 품 제작에서 주객을 분리하는 일이 더 이상 불가능해졌다. 특히 지역민이 자주적 으로 기획 운영하는 아트프로젝트에서는 워크숍, 볼런티어 활동 등 지역민이 참 가하는 사업이 많으며, 마을이나 동네 전체를 감싸 안음으로써 지역 내의 커뮤니 케이션을 강화하게 된다. 이러한 움직임은 주민이 지나치게 적은 과소지(過疎地) 뿐만 아니라 도시의 빈 공간을 재생하고, 또 침체된 상점가를 활성화 하는 등 그 목적과 방법은 다양하지만, 생활에 아트를 끌어넣는 새로운 관계방식으로서 시도 되고 있다.

다양한 ‘아트프로젝트’의 현장을 조사하는 가운데 느낀 인상 깊은 프로젝트 는 대도시보다도 오히려 작은 마을이나 전원지대를 무대로 한 경우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현대 예술작품의 대부분은 일상 속에서 비(非)일상의 시공을 나타내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그 자장(磁場)에 접했을 때, 우리들은 커다란 충격(impact)을 동반하면서, 일상의 나태함으로부터 깨어나고 일상을 객관시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이러한 ‘자각’과 ‘각성’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생겨나는 것은, 아 트프로젝트가 인간의 삶의 활성화, 나아가서는 지역의 활성화를 추진하는 원동력 에 깊이 관여하기 때문이다.30) 지역 주민들은 예술의 힘으로 지역의 미래를 개척 하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지역에서의, 지역에 관계하는 아트프로젝트가 도처에서 시도되고 있다.

‘대도시’와 ‘작은 마을 또는 전원지대’ 양자 간의 장(site)으로서의 성격의 상 위를 생각해보면, 현대 예술작품이 불러일으키는 ‘일상 속의 비(非)일상’이라고 하 는 대조양상은 후자 편이 더욱 선명한 경우가 훨씬 많다. 이런 사실은 ‘대도시’라 고 하는 환경 자체가 이미 어딘가 현실을 벗어난 비일상적인 세계에 가까운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현대예술의 성격이 크게 부각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인간 본래의 살아있는 환경이란, 어디에선가 자연의 향기와 따스함이 감돌며 사람들 각자의 신체감각으로 직접 확인하고 안심할 수 있는, 그러한 접촉 가능한 스케일을 갖춘 것이었다. 아트프로젝트는 우리들의 삶이 그러한 환경으로 부터 어떻게 분리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3. 새로운 풍경의 창출

나오시마가 있는 세토나이카이의 풍경은 내해(內海) 다도해라고 하는 정원 같은 안온한 자연에 의해, 또 지역민들의 삶이 만들어 낸 다양한 문화와 역사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것은 마치 유년기의 원풍경(原風景)인 것처럼 우리를 편안하 게 해주는 고향 같은 친근함을 가져다준다. 온화한 기후, 부드러운 바다, 조용하게 떠 있는 섬들, 하얀 모래사장, 항구의 어선, 사찰과 신사의 사단과 경내, 산허리의 계단식의 밭,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민가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것들을 꿰뚫 는 한적한 시간, 이와 같은 우리들이 현대사회 속에서 잃어버린 많은 것들을 아 30) 마리 케네디는 이러한 활동을 ‘Transformative Planning’라고 부른다.; Marie, Kennedy,

“Transformative Planning for Community Development”, in: eScholarship Repository, Institute for Research on Labor and Employment, 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 05-01-2009.

직도 남기고 있다. 나오시마의 현대미술은 이 세토나이카이의 풍경의 풍요로움에 문득 눈뜨게 한다.

풍경을 발견하는 것은 우선 외부의 시선이지 내부의 시선이 아니다. 외부의 시선은 진기한 ‘탐승경(探勝景)’과 함께 타자의 보편적 ‘생활경(生活景)’을 비일상 적인 풍경으로서 주시한다. 내부의 정주자(定住者)에게는 자신들의 신변 생활경은 보이지 않지만, 외부의 여행자는 그 생활경을 풍경으로서 발견한다.31) 그러나 외 부의 시선에 촉발되어, 마침내 내부의 시선도 그 생활경을 주시하기 시작한다. 이 러한 풍경발견과 같은 구조는 역사적으로 다양한 국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유럽 의 고전미, 숭고(the sublime), 픽처레스크(picturesque), 미국의 야생(野生, wildness)과 같은 아름다움을 발견한 사람은 거의 모두가 내부의 정주자나 선주 민이 아니라 외부의 여행자나 이주민이었다. 다시 말해 풍경 발견에 가장 기여한 사람은 그 토지에서의 노동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 외부의 예술가나 지식인들이 었다. 원풍경 또는 고향의 풍경이라고 불리는 풍경 역시 이러한 풍경발견과 같은 구조를 갖는다. 원풍경이나 고향풍경은 우리들이 그 내부에서 살아가고 있을 때 는 알아차리지 못한다. 거기로부터 벗어나 몸을 끌어내어 외부의 시선을 가졌을 때, 비로소 우리는 그 풍경을 알아차린다. 역설적인 말이지만 바로 그 때 기지(旣 知)의 풍경은 미지(未知)의 풍경이 되는 것이다.

4. 각성하는 주체

이제 아티스트와 시민이 협동작업 체제를 구축하면서 함께 일구어낸 ‘사실 (史實)로서의 아트’, 즉 아트프로젝트를 활발하게 추진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전문화(specialization)의 색채가 농후한 예술계(art world)에 만연해있는 만성적인 폐쇄성로부터의 탈각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예술가가 살아가는 활동무대인 환경 을 확장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그것은 아티스트 자신의 확신에 가장 잘 부합하는 장(場)을 스스로 발견하고, 필연성에 입각한 무대(舞臺)를 찾아낸 것 이다. 전람회 예술에서는 실현될 수 없는 리얼리티를 거머쥐기 위해 아트라고 하

이제 아티스트와 시민이 협동작업 체제를 구축하면서 함께 일구어낸 ‘사실 (史實)로서의 아트’, 즉 아트프로젝트를 활발하게 추진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전문화(specialization)의 색채가 농후한 예술계(art world)에 만연해있는 만성적인 폐쇄성로부터의 탈각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예술가가 살아가는 활동무대인 환경 을 확장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그것은 아티스트 자신의 확신에 가장 잘 부합하는 장(場)을 스스로 발견하고, 필연성에 입각한 무대(舞臺)를 찾아낸 것 이다. 전람회 예술에서는 실현될 수 없는 리얼리티를 거머쥐기 위해 아트라고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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