Ⅳ. 거사불교의 확산과 禪宗의 復興
2. 무신정권의 등장과 불교계의 변화
고려사회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불교계는 건국 초기부터 계속해서 정 치세력과 상호관계가 있었다. 교종‧선종세력 같은 사원세력의 유지와 성장은 국가 권력과 집권계층 간의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12세기 후반 에 있었던 무신란은 고려사회의 새로운 변화상을 이끌어냈던 중요한 요소였다. 정 치뿐만 아니라 사회와 경제 구조상의 변화를 병행하였던 것이다.
선종세력이 실질적으로 다시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숙종과 예종대에 걸쳐 확장 되다가 인종, 의종 무렵의 무인정권이 등장하면서였다. 문벌귀족에서 무인세력으로 집권지배층이 변화함에 따라 고려사회를 주도하던 교종세력이 쇠퇴하고 선종세력
156) 채상식, 譯註 普覺國尊 一然碑·陰記, 신라사학보14, 신라사학회, 2008, 271쪽. “中統辛酉 承詔 赴京 住禪月社 開堂 遙嗣牧牛和尙”
이 재부흥하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사상계의 재편이 이루어진 것이다.157) 교종세력
금 사원세력을 포섭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170) 이에 따라 무인정권들은 권
사원세력 내부에서 일어나는 개혁운동에도 관심이 있었다. 즉 최충헌은 본인의 정 치적 입장을 지키기 위해서 선종세력의 결사운동에 관심을 갖고 후원하게 되었다.
불교계의 정화를 위해 선종계가 정치권과 결합하는 것을 일종의 선택으로 판단하 고 있었던 것 같다. 최씨정권에 도전하는 사원세력을 탄압하면서 선종중심의 사원 정책을 전개한 것이다.186) 결국 양자 간의 필요에 의해 최충헌의 정치적 행보와 선 종세력의 불교계의 개혁의지가 합해져 고려 중기 정치, 사상계의 변화를 가져온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최우 역시 최중헌의 사원정책을 계승하는 한편 선종세력을 중앙으로 흡수하고 이를 통해 정권의 안정화를 추구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새로운 문인들을 대폭 기용하고 정권과 불교계의 지지기반을 넓히고자 한 것이다.187) 이를 위해 수 선사에 대한 지원을 지속함과 동시에 화엄종과 법상종 계통의 사찰에도 지원하는 모습을 보인다.188) 그러나 최우의 불교계에 대한 지원 중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수선사의 혜심과의 관계이다. 이러한 모습은 眞覺國師語錄에 ‘答崔尙書遇’라는 제목의 서편을 보아 둘 사이가 이미 서신을 교환했음을 알 수 있다. 혜심이 최우 를 비상한 인물로 추앙하며 적극적으로 칭송하는 모습에서 둘 사이의 긴밀한 관계 를 살펴볼 수 있다.189) 또한 혜심이 高宗 즉위년에 禪師를 받고, 뒤이어 1216년(고 종 3)에 선종의 최고승계인 大禪師에 임명된 사실은 최우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 임을 짐작할 수 있다.190) 이렇듯 최씨정권과 수선사와의 관계는 최충헌의 불교계 결사운동에 대한 지원으로부터 시작해 최우의 지원으로 계속해서 이어져 나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무신정권기부터 약화되던 교종세력은 최충헌 집권기에 결정적인 타 격을 받아 정치권에서 배제되었고, 선종은 교종보다 우위를 차지하면서도 최씨 정 권과의 결속을 통해 선종세력을 구체화하기 시작하였다.191) 이에 따라 선종계는 당
186) 김광식, 앞의 책, 1995, 352쪽.
187) 최병헌, 「진각혜심, 수선사, 최씨무인정권」, 보조사상7, 1993, 185쪽.
188) 高麗史, 世家, 卷42, 高宗 12年 8月. “丁酉 以康宗忌日 飯僧二百於內殿 康宗眞殿在玄化寺 忌日 詣寺行香例也 自庚辰以來 國家多故 王不得親詣”; 高麗史節要 卷15, 高宗 10年 8月. “八月 崔瑀造 黃金十三層塔及花甁各一 置于興王寺 共重二百斤”
189) 최병헌, 앞의 논문, 1993, 187쪽.
190) 東文選 卷118, 「曹溪山第二世故斷俗寺住持修禪社主贈諡眞覺國師碑銘」, “…今上卽位 制授禪師 又加大禪師 其不經選席 直登緇秩 自師始也…”
191) 황병성, 앞의 논문, 1991, 101쪽.
시 사회적 혼란을 극복하는 사상체계로서 위상을 차지하면서도 최씨 무인정권에 적극 수용되었고, 정권의 지원으로 교세의 확장을 보장받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고려 중기 문벌귀족사회의 몰락 이후 무신정권으로 정권이 교체 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체제의 효율적 운용을 위해서는 종교계의 협조가 여 실히 필요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고려사회에서 불교가 가지고 있던 영향력은 정 치권력에도 작용했기 때문에 새롭게 집권한 최충헌은 최씨정권에 반발하였던 교종 세력이 아닌 선종세력이 필요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