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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 료타로와 몽골

시바는 어릴 때부터 몽골 문화나 몽골 생활 등에 깊은 흥미를 가지고 있었으 며 오사카외대에서 몽골어를 전공하였다. 시바는 몽골어가 평생의 이력이 되었다 고 작가 스스로 밝힐 정도 몽골어는 그의 문학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시바가 고이부치 신이치(鯉渕信一) 아세아대학 (亞細亞大學)교수에게 보낸 서신 내용 중 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나는 몽골어를 배움으로써 일본어에 흥미를 가질 수가 있었다. 역사와 민족, 사람을 보는 시점을 가질 수 가 있었다. 중앙에서 떨어져서 주변에서 혹은 소수에서 다수 를 바라다봄으로써 보이는 것이 있었다. 그래서 작가가 될 수 있었다.

僕はモンゴル語を習うことで、日本語に興味を持つことができた。歷史や民族、人に對する視点を持 つことができた。 中央から離れた周辺から、あるいは少數から多數を見ることで、見えてくるものがあ る。そして作家になることができた。5)

중국어나 영어와 같은 중심어가 아니라 소수자의 언어, 주변어라 할 수 있는 몽 골어를 접함으로써 주변 민족의 눈에서 중앙을 바라보는 시각, 소수에서 다수를 바라보는 시각이 생겨났으며 그 덕분에 작가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작가 스스로 인정하듯이 몽골과 몽골어는 시바문학의 원천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공상 속에서 몽골을 위시하여 만리장성(万里長城) 의 새외민족에 대해서 깊은 흥미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나중에 그의 역사관과 문학을 보는 눈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여덟 사람과의 대화(八人との對話)』(1993)에서도 중국세계에서 보는 몽골은 텅 비어있지만 그 텅 비어 있는 곳에서 바라보면 농업문명의 중국과 조선, 베트 남, 일본의 경관이 잘 보인다는 의미의 말을 하고 있다. 이러한 시바의 관점에 대해 고이부치(鯉渕) 교수도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시바 선생님의 머리 어딘가는 항상 몽골이 존재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은 중국과 같은 점이 있지요. 역사는 중첩되며 그 역사를 문자로 남깁니다. 그러나 몽골에는

5) 週刊朝日編集部編 『司馬遼太郞からの手紙 (下)』 朝日新聞社 2004 p.433

이러한 사고가 없었습니다. 중국문명에 대한 동경이나 존경을 처음부터 갖고 있지

는 17세기의 세계사를 무대로 삼은『달탄질풍록(韃靼疾風錄)』(1987), 마지막 작 품으로『초원의 기록』(1992)을 남기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시바의 작가 인생은 몽골에서 시작하여 몽골로 마쳤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시바 문학에 있어서 몽 골이 차지하는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1973년 시바는 대학에서 몽골어를 전공한지 30년 만에 처음으로 몽골을 방문 하여 그 감회를 『몽골기행』(1974)으로 완성하였고, 또 다시 17년 후에 재차 몽 골을 방문하여『초원의 기록』(1992)을 저술하였다. 그 외 『러시아에 대해서(ロ シアについて)』(1986)에서도 몽골에 관해 언급하는 부분이 있다.

시바는『초원의 기록』을 완성한 후 고이부치 교수에게 보내는 편지 (1992년 1월 30일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덕분에 『초원의 기록』을 마쳤습니다. 이 글을 쓸 때 매일 콧물이 나오고 기침이 나는 등 몸 상태가 안 좋았지만 다 쓰고 나니 이런 증상은 말끔히 사라지고 말았습 니다. 역시 스트레스가 쌓였던 것 같습니다. 지금 한 시름 놓고 있습니다. 원고를 쓴다는 고통을 넘어서 소년시절부터 갖고있었던 몽골에 대한 기분이 이것으로 성불 (成仏)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과는 별도로 몽골은 저에게 영원히 매력 적입니다.

おかげ樣で、『草原の記』を終えました。每日、これを書いているとき、ハナミズが出たり、セキが出た りしてどこか不調でしたが、書きおえて消えました。やはりストレスがあったのだろうと思います。ほっとし ています。原稿を書くという苦痛を越えて、少年の日から持ちつづけていたモンゴルへの氣持ちが、 これで成仏できたと思っています。ただ、それとはべつに、モンゴルは、永遠に魅力的ですね。8)

소년 시절부터 품고 있었던 몽골에 대한 감정을 『초원의 기록』에 담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에 대한 마음은 영원히 간직하겠다고 몽골에 대한 깊은 애정을 털어 놓고 있다.

시바의 작품은 몽골에서는 다른 일본작가에 비해서 많이 번역되어 있어 널리 알려진 편이라 할 수 있다. 『초원의 기록』은 일본 동경학예대학에서 유학했던 가르사이한氏에 의하여 1997년 몽골어로 번역되었다. 번역본『초원의 기록』이 나오기 1년 전인 1996년에는 몽골 일본문화ㆍ문학센터의 대표 터무르바타르氏가

8) 週刊朝日編集部編 『司馬遼太郞からの手紙 (下)』 朝日新聞社 2004 p.431

시바의 『최후의 장군』을 몽골어로 번역, 출판하였다. 터무르바타르氏는 이 번 역으로 1997년도 일본번역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9) 그는 모스크바대학에 서 일본문학을 전공하여 몽골국립대학에서 일본학자인 고이부치 교수의 제자가 되어 공부하였으며 그 후 동경외대에도 유학을 하였다. 이 번역본이 계기가 되어 서 몽골에서도 시바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한편 일본에서도 『초원의 기록』

을 읽고 나서 몽골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어 몽골을 직접 방문하는 사람들도 적 지 않다.

그 외에『20세기를 살아가는 그대들에게(二十世紀に生きる君たちへ)』,『고안의 횃불(洪庵のたいまつ)』,『천산 산록의 녹음 속에서(天山の麓の綠の中で)』및『문명 의 동점(文明の東漸)』『메이지라는 국가』『러시아에 대하여』등의 에세이 작품 도 차례차례 몽골어로 번역되어 소개되고 있다.

이와 같이 시바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몽골에서는 그의 죽음을 몽골국영 텔레 비전에서 “일본의 저명한 작가 시바 료타로씨 급서하였다. 시바 료타로씨는 몽골 을 사랑하여 『초원의 기록』을 비롯하여 몽골에 관한 몇 편의 저작을 발표하였 다. 우리들은 몽골을 사랑해준 시바 료타로씨를 언제까지나 잊지 않을 것이다”10) 라고 보도하였을 정도이다. 외국 작가의 부고를 국영방송에서 전하는 것은 몽골 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로 그만큼 몽골에서 시바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 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몽골에서 시바의 작품이 번역되어 읽혀지고 있지만 작품의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9) オㆍジャルガルサイハン「日本文學のセミナー: 司馬遼太郞とモンゴル」日本大使館 2004년 10월 pp.46-49 10) 週刊朝日編集部編 『司馬遼太郞からの手紙 (下)』 朝日新聞社 2004 p.446-447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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