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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 : 이성주의의 몰락과 소통의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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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 작품으로서 「수수께끼」의 가장 큰 특징은 이성에 기초한 논리 적 실증주의가 철저하게 몰락하는 양상을 보인다는 점에 있다. 이 작품에서 성공 한 변호사이자 하원의원인 존 마커스 필딩(John Marcus Fielding)이 실종된다.

하지만 그 이유를 전혀 알 수가 없으며, 그 일의 원인과 내막을 파헤치고자 하는 어떠한 방법도 성공하지 못한다는 점이 모더니즘 탐정소설과 구별된다. 평범해 보이는 이 실종 사건이 특히 “모든 사회적이고 통계적인 가능성을 배반하는 효 과를 보인 까닭은 이 장르의 보통 작품들에 나타나는 해결의 결말을 전혀 가지 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가장 흔한 실종자는 10대 소년이고 그 다음이 사춘기 소녀이다. 이 유형의 대다수는 노동계급집 안 출신이며, 거의 예외 없이 부모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다. 세 번째로 많은 유형은 30대 인데, 노

동계급과는 비교적 관계가 없다. 그들은 주로 가정생활이나 가정의 상황에 싫증이 나 도망을 치려고 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40세가 넘으면 그 숫자는 가파르게 줄어든다. 더 나이든 사람이 정말 로 사라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며, 그것은 아주 가까운 가족이 없거나 거의 방랑자에 가까운 가난한 사람들에게 국한되어 있다. 따라서 존 마커스 필딩이 사라졌을 때, 그는 모든 사회적·통계학적 가능 성을 배반했다. (259)

The commonest kind of missing person is the adolescent girl, closely followed by the teenage boy. The majority in this category come from working-class homes, and almost invariably from those where there is serious parental disturbance. There is another minor peak in the third decade of life, less markedly working-class, and constituted by husbands and wives trying to run out on marriages or domestic situations they have got bored with.

The figures dwindle sharply after the age of forty; older cases of genuine and lasting disappearance are extremely rare, and again are confined to the very poor—and even there to those, near vagabond, without close family. When John Marcus Fielding disappeared, he therefore contravened all social and statistical probability. (169)

57세의 필딩은 부유하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해왔으며, 아들 한 명과 딸 두 명 을 두고 시티 그룹 내 몇몇 회사의 이사를 역임하면서 이스트 앵글리아(East Anglia)에 있는 테트베리 홀(Tetbury Hall)이라 불리는 엘리자베스 시대풍의 저 택과 1,800에이커에 이르는 농장을 관리하며 사냥을 즐기는 그야말로 남부럽지 않은 외양을 가진 보수당의 의원으로 소개된다. 하지만 그는 1973년 7월 13일 금요일 오후 2시 30분에 런던 나이츠 브리지에 있는 그의 아파트에서 나온 후 약속한 모임에도 불참한다.

이후 이 이야기의 절반에 해당하는 분량에서 한 달이 넘는 시간동안 필딩의 실종에 대한 여러 가지 추측들이 모두 사실과 다르다는 내용이 지루할 정도로 서술됨으로써 합리적 추론과 그에 따른 해결의 원칙이 철저하게 무시됨을 강조 한다. 무엇보다 파울즈가 즐겨 관찰해온 성적 뉘앙스의 면에서 필딩은 “개인적으 로 스캔들을 혐오하는 것은 사실로 보였고, 그것을 수용하는 사회의 난잡함에 대 해 일반적으로 경멸”(private disgust at the scandal had seemed perfectly genuine, [and it is] consonant with his general contempt for the wilder shores of the permissive society) 했던 것으로 묘사된다(171). 이외에 그의 실종에 단서가 될 만한 사실들 즉 사건 전 날인 목요일 저녁에 아들 피터와 그 의 여자 친구 이소벨 도슨(Isobel Dodgson)과 식사를 했던 일 그리고 당일 그를

태운 택시가 원래 목적지인 칩사이드(Cheapside)가 아닌 대영 박물관으로 갔던 일 등이 밝혀지지만, 이것들 역시 그의 행방을 알 수 있는 유용한 정보가 되지 못한다.

어쩔 수 없이 월요일 조간신문에 이 실종사건이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이 사건 을 전담한 젊은 형사 마이클 제닝스(Michael Jennings)는 약 20가지 추론을 만 들고 하나씩 조사해간다. 특히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그는 이 분석 자료의 가장 밑에 “외설적인”(obscene) 이라는 글자를 써놓고 실종자의 치정관계를 의심하는 데 주안을 둔다. 필딩과 18년 동안 함께 일을 해왔고 그와 가장 가까이 있었던 비서 파슨스 양이 실종자가 다른 여성과 “은밀한 관계에 빠질 사람이 결코 아니 다”(was the last man to indulge in a hole-in-the-corner liaison)고 증언하 지만, 제닝스는 그녀부터 “[필딩]에 대해 성적인 무엇인가를 느꼈음에 틀림없 다”(There must have been something sexual in her regard for [Fielding]) 고 의심한다(185). 제닝스는 그녀의 평범한 외모와 점잖은 행실에서 그들 사이 에서의 염문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필딩을 찍은 많은 사진들에 미소를 짓는 모습이 무척 드물었다는 점에서 억압된 관능성의 조짐을 발견한다. 하지만 이것은 순전히 막연한 심증에 불과한 것이다.

제닝스의 추론이 구체화되지 못하고, 필딩의 가족들 즉 필딩 부인과 두 딸 프 란체스카(Francesca)와 캐롤라인(Caroline) 그리고 피터에게서도 특이한 점이 발견되지 않는다. 심지어 그는 피터에게 실종자가 아들의 성관계에 관심을 가졌 는지도 묻지만 그것마저 부인된다. 다만 피터가 자기를 가족 중 붉은 양 한 마리 라고 표현함으로써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연상하게 할 만큼 필딩과 대립된 바 가 나타났을 뿐이다.

“내 어머니는 아무런 견해가 없어요. 그냥 체면을 차리는데 급급할 뿐이죠.”

“당신의 두 누이도 당신과 정치적으로 입장이 같은가요?”

“우리가족 중에 붉은 양은 한 마리밖에 없어요.” (291)

“My mother doesn’t have views Merely appearances to keep up.”

“May I ask if your two sisters share your politics at all?”

“Just one red sheep in the family.” (191)

또한 필딩부인은 자신의 역할과 사회적 지위에 고정된 여성으로서 상상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있을 수 있는 범죄가능성에서 제외된다.

하지만 필딩 부인이 그런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서는 보이는 것과 다른 어떤 면모를 가지고 있어 야 했다. [. . .] 그녀는 인생에서 자신의 역할과 사회적 지위에 스스로를 맞춘 여자로, 차분하긴 했 지만 상상력은 부족했다. 경사는 깊이 상처 입은 허영의 냄새를 맡았다. 그녀는 악평을 견뎌야 했으 며 그것에 대해 깊이 분개한 것 같았다. (297)

But to suppose Mrs. Fielding capable of such a crime required her to be something other than she so obviously was . . . a woman welded to her role in life and her social status, eminently poised and eminently unimaginative. The sergeant also smelled a deeply wounded vanity. She had to bear some of the odium; and in some inner peace she represented it deeply. (196)

마지막으로 프란체스카와 캐롤라인은 아버지의 “고독한 휴가에 대한 갈망의 증거”(the evidence of [the] yearning for a solitary retreat)에 대해서 다른 이들처럼 적잖이 당황하지만(196), 피터가 그것을 위선적인 행위로 간주했던 것 에 반해 오히려 의무감과 자기희생에 따른 것으로 파악함으로써 실종사건에 별 다른 도움을 주지 못한다. 이렇게 필딩의 실종사건의 발생과 조사가 오리무중상 태로 헤매는 전반부에 이어 후반부에서는 제닝스와 이소벨 사이에 낭만적인 분 위기가 연출되면서 이 사건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이 제시된다.

필딩의 행방이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으로서 합리적 실증주의의 한계가 드러나 고 이야기의 초점이 포스트모더니즘 소설가로 분한 이소벨의 의견으로 옮겨진다.

이 방법은 사건해결의 주체인 제닝스가 신비스러울 정도로 성적 생동감을 주는 이소벨을 처음부터 사랑하게 됨에 따라 그는 물론 독자들 역시 합리적 실증주의 에 따른 분석이 사실상 무너지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이소벨의 태도는 필딩의 가 족들에서 느낀 통제되고 고정된 사고와 대조된다. 동시에 그녀는 실종사건과 관 련하여 상상할 수 있는 가설들을 소개하면서 그것이 실제 사실일 수도 있다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한편 이야기의 이러한 분할구도는 모더니즘 단편소설에서는 보기 드문 것으로 독자가 보기에 불필요한 글의 단절로 느껴질 수 있고 파울즈의 인위적인 노력으 로 보일 수도 있다. 파울즈는 미스터리를 해결하기 위한 한 장르로서 탐정소설의

형식을 후반부에서도 계속 사용하지만 그의 작품들의 일관된 내용처럼 문제해결 의 단서를 여성의 신비로운 성적 매력에서 찾으려고 함으로써 성을 통한 자기인 식의 기회를 제공한다.

참으로 그는 그 심각한 사건과 관련하여 막다른 길에 이른 느낌을 받았다. 그가 만나야 할 사람 들이 여전히 남아있었지만 그들이 일반적인—사실상 허무한—그림에 무엇인가를 더해줄 수 있으리라 고 기대하지 않았다. 그는 애초에 도전의식을 느낀 상태에서 패배감을 느낀 것으로 빠르게 건너가고 있음을 알았다. 이제는 불필요한 일을 애써 찾는 것이 아니라 피해야 할 지경에 이를 것 같았다. 그 런데 이 부분에서 그에게 피터의 여자 친구인 이소벨 도슨을 그 목록에서 삭제해야 할 이유가 충분 했다. 그녀는 초동 수사 단계에서 다른 누군가에 의해 자세하게 심문을 받은 바가 있었고, 유의미한 기여를 제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경찰서에서 그녀에 대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사실 예쁜 여자는 무언가에 변화를 준다. 설령 그녀가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을 지라도. 프란체스카와 캐롤라 인은 이름을 들었을 때보다 직접 만났을 때 더 예쁘지 않았다.

Indeed he felt near the end of his tether over the whole bloody case. There were still people he had down to see, but he hardly expected them to add anything to the general—

and generally blank—picture. He knew he was fast moving from being challenged to feeling defeated; and that it would soon be a matter of avoiding unnecessary work, not seeking it.

One such possible lead he had every reason to cross off his list was Isobel Dodgson, Peter’s girl friend. She had been questioned in detail by someone else duirng the preliminary inquiry, and had contributed nothing of significance. But he retained one piece of casual gossip about her at the Yard; and a pretty girl makes a change, even if she knows nothing. Caroline and Francesca had turned out much prettier in the name than in the meeting. (197)

나중에 밝혀진 것으로서 필딩이 약속을 하지 않고 박물관에서 이소벨을 만나려 고 했으나, 예상과 다르게 그녀가 그 장소에 없자 서류 가방을 그곳의 물건 보관 소에 맡겨놓고 사라졌다는 정황증거는 그나마 이 사건의 유일한 단서로 등장한 다. 하지만, 제닝스가 이 사실을 그녀로부터 전해들은 것은 그가 그녀에게 반한 이후이고, 앞에서 보듯이 실종사건은 두 사람의 대화와 연애감정에 촉매역할을 할 뿐 문제해결의 의지는 사라진 상태이다. 프랑스 중위의 여자 에서 찰스와 사 라, 마법사 에서 니콜라스와 앨리슨, 그리고 심지어 「에보니 타워」에서 데이비 드와 다이애나의 관계처럼 극적인 면모를 보이지는 못하지만, 그들은 실종사건을 소재로 심리적 교감을 가지며, 그들의 대화에 독자들의 동참을 적극적으로 유도 한다. 이것은 적어도 저술당시에 새로운 메타픽션 작법으로 낭만적 요소에 기초

한 탐정소설 글쓰기의 전형을 구성한다.

정리하면 설득력 있는 범행 동기나 범죄 가능성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논리적 실증주의로 해석이 불가능한 필딩의 실종사건을, 이런 경우 등장하는 신의 가능 성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흥미를 더할 수 있는 심리기제로 이소벨의 성적 매력 이 사용된다. 버텐스(Hans Bertens)는 원래의 미스터리가 설명되지 못하거나 독 자가 기대한 방식으로 설명될 수 없는 상황에 등장하는 포스트모더니즘 탐정이 야기를 “반탐정이야기”라고 정의한다(196). 특히 이 작품은 마지막까지 열린 결 말의 형태로 제닝스가 자기인식에 훨씬 가깝게 이동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 도록 한다. 이러한 효과를 위해서 아름다운 이소벨의 등장이 우연한 요소로 사용 되고, 파울즈는 남성이 여성을 통해 자기 안에 들어있는 감정을 불러낼 수 있음 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줄거리로 돌아가서 이소벨은 필딩과 관련하여 그로부터 부자연스런 시선을 받 은 기억은 없지만, 아마도 피터에게서 들었던 것처럼 그의 기분에 동조해야 함에 불편을 느낀다. 그녀는 필딩이 “그가 싫어하는 척하면서 무언가를 하도록 설득하 려는”(using something he pretends to hate to try and get me) 태도를 가지 고 있으며(205), 이 점에서 피터와 충돌했음을 암시한다. 그녀가 열다섯 살 때 부모가 이혼했던 기억에 비추어 볼 때, 필딩부부는 항상 체면을 유지하는 사람들 로서 그만큼 자기감정을 쉽게 표현하지 못하는 부류에 있다. 가족의 소통부재를 염두에 둔 듯 필딩은 그녀의 유머감각을 칭찬하면서 그녀가 테트베리 삶의 방식 에 어울리지 않은 점을 싫어하지 않으며, 자기 스스로도 완전하지 못함을 시인했 음이 이소벨의 증언을 통해 경사에게 전해진다.

“다른 사소한 것이 한 가지 있었어요. 6월에 테트베리에서요. 그는 어느 날 그곳에 지은 새 외양 간을 보여주러 나를 데리고 갔어요. 사실 그것은 구실에 지나지 않았죠. 나를 칭찬하기 위해서였어 요. 그는 피터가 나와 잘 지내 기쁘다는 얘기를 했어요. 그런 다음 유머감각이 있는 누군가가 필요 하다고 했어요. 그리고 ‘정치적인 동물인 우리 모두처럼 말이오.’하고 말했어요.” 그녀는 그 단어들을 열거라도 하듯 천천히 말했다. “확실해요. 정확히 그렇게 말했어요. 그런 다음 사람들은 가끔 인생을 보는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을 잊는다는 식의 얘기를 했어요. 그게 다였어요. 하지만 그는 자신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자신도 알고 있다고 내게 말하려는 듯 했어요. 그리고 테트베리가 내 취향이 아니며, 내가 생각하는 만큼 그가 내 취향을 경멸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려주려는 것 같았어요.”

(3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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