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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口碑傳承

3.1. 선문대할망

여기에서 맞는 한자이름은 ①의 ‘愼栽佑’밖에 없는데 이보다는 국가기록인 ≪朝鮮 王朝實錄≫의 ‘愼㘽祐’로 표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㘽’와 ‘栽’는 같은 글자 이고, ‘祐’와 ‘佑’도 서로 통하는 글자이니 그 쓰임도 무방하다. 어쨌든 ‘신재우’는 원 본 확인 없이 2, 3차 자료를 인용한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데, 무분별하게 쓰이는 잘못된 이름과 내용은 하루빨리 시정하여야 할 것이다.

력이 강하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변이되지만 그 줄기는 하 나이다. 그러나 할망 이름은 ‘선문대․선문데․설문대․설명두…’ 등 많은 異稱을 갖 고 있다. 숱한 이름에 비해 뜻과 어원은 알 수 없어 어떤 이름을 중심에 내세워야 할지 혼란스럽다.

제주 창조설화인 ‘선문대할망’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오늘에 이르렀 다고 추정할 뿐이다. 신화적 요소가 강한 ‘선문대할망’이지만 ‘山神 굿’97)에 ‘선맹듸할 망’이 잠깐 언급될 뿐 여느 본풀이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또한 창조신화인 ‘三姓神話’

가 ≪瀛洲誌≫, ≪東文選≫<星主高氏家傳>, ≪高麗史≫<地理志>, ≪新增東國輿地勝 覽≫, ≪南宦博物≫ 등 숱한 옛 문헌에 수록된 것과 달리 ‘선문대할망’ 이야기가 수 록된 문헌은 그리 많지 않다. 비교적 소상히 소개된 문헌은 1843년 경에 만들어진

≪耽羅誌草本≫인데 주인공 이름이 ‘沙曼頭姑’와 ‘曼姑’98) 두 가지로 나타난다. 1954 년 발간된 ≪增補耽羅誌≫에는 ‘雪慢頭姑’․‘曼姑’99)라 표기되어 한자 표기도 들쭉날 쭉하다. 이보다 70년 앞서 나온 張漢喆의 ≪漂海錄≫에는 ‘詵麻姑’와 ‘詵麻仙婆’100)로 나타난다. 崔溥의 ‘耽羅詩’101)의 ‘麻姑’와 金尙憲의 詩102)에 등장하는 ‘麻姑’도 ‘선문대 할망’과 연관 있어 보인다.

‘麻姑’는 흔히 우리말로 여신을 존칭할 때에 사용되는 말이다. ‘마고’는 ‘청태산 마

97) 張籌根, <濟州島如神考>, ≪濟州文化≫(創刊號), 全國文總濟州支部, 1957, p.37. 구좌읍 평대 리 高奉仙 심방(남) 구송. “…예한로 영주산 저물이 당해서 선맹듸할망으로 논면 그물

에 드러사서 육지로 내조 리노아주마 시다가 백명지를 없어 예시건못니 리 못노 아서 일월산신 처서님 불공입내다.”

98) 卷2 奇聞條 참조. 上古有一神女號曰沙曼頭姑身長幾與天齊手倚漢挐山頂足躡滄海而弄波常自 言曰此土人製我一衣則我必連橋於大陸使徒步往來云而以一島之力終不能製其衣橋果不成州東 新村有巨人跡印在巖石上至今稱曼姑足跡云

99) 上古에 有一神女하니 号曰 雪曼頭姑라 身長이 與天齊하야 手倚漢拏山頂하고 足躡滄海而弄 波하야 常 言曰此土人이 製我一裀則我必連橋於大陸하야 便徒步往來云而以一島之力으로도 終不能製其衣裀하야 橋梁不成이러라 州東新村에 有巨人跡이 印在岩石上하니 至今稱曼姑足 跡云이라. p.273

100) 1771년 정월 초 5일 기사 참조. …或起拜向漢挐而祝曰白鹿屳子活我活我詵麻屳婆活我活我 盖耽羅之人諺傳仙翁騎白鹿遊于漢挐之上又傳邃古之初有詵麻姑步涉西海而來遊漢挐云古今者所 以析活於詵麻白鹿者無所控訴而然也

101) 金尙憲의 ≪南槎錄≫ 卷1 참조. 35절 중 33번째 시. 我來得覩神仙宅 採了天台劉阮藥 願學 麻姑看海桑 應將此身壺中托

102) 앞의 책 권2 26일 기사 참조. 試拔愁城按酒兵 當杯休起故鄕情 羅紈狎座留人醉 星漢低簷滿 意淸 官舍橘林秋後色 拏峯笙鶴夜來聲 何緣共着麻姑老 坐見桑田極望平

고할미’라고 전하는 중국 도교의 신선의 이름이 민간에서 관용되어온 것으로 여겨지 는데103) ‘마고할망’ 이야기는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하고 있다. 따라서 ‘선문대할망’도 마고 이야기의 한 유형으로 생각된다.

제주도 전설 속에서 ‘선문대할망’은 어떤 이름으로 발화되었을까. ≪濟州島傳說≫에 는 모두 18개의 ‘선문대할망’ 관련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선문대’라는 이 름이 4회, ‘설명두’ 5회, ‘설문대’ 2회, ‘마고’ 2회, 이칭으로 ‘세명뒤․쒜멩듸․설명대․설 명지할망’ 이름이 보인다.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 이야기를 전개한 경우도 5회나 된다.

≪韓國口碑文學大系≫9-1(1980), 9-2(1981)에는 각각 1편씩의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설문대할망’으로 기록하였고, ≪濟州道傳說誌≫에는 8개의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선문 대’가 4회, ‘설명두’ 2회, ‘설명주’ 1회, 異稱으로 ‘세명뒤’와 ‘설문대’ 각 1회, 이름 없는 것이 1회 보인다. ≪濟州說話集成≫(1)에는 2개의 이야기가 ‘설문대할망’으로, 진성기의

≪신화와 전설-제주도전설집≫에는 3개의 이야기가 ‘설문대’로 轉寫하고 있다.

도외 출신의 張籌根은 <濟州島女神考>104)에서 14개 유형의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선문데할망’으로, 任東權은 <선문대할망 說話考>에서 8개 유형의 설화를 모두 ‘선문 대할망’으로 표기해 ‘선문대’를 선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관련 논문에서는 ‘선문대’가 주로 쓰이는데, 張籌根․任東權․許椿 등이 ‘선문대 (데)할망’으로, 李成俊이 ‘설문대할망’으로 표기했다.

그런데 근래 들어서는 ‘선문대’와 ‘설문대’가 엇비슷하게 쓰이고 있는 추세다. 학계 에서는 ‘선문대할망’을 주로 쓰고 있지만 행정이나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설문대할망’

이 더 익숙하다.

‘선문대할망’이 이칭을 많이 갖고 있는 이유를 李成俊105)은 시공간적으로 분석했 다. 시간적으로는 ‘선문대할망’ 설화가 신화․전설․민담 요소를 다 포괄하고 있는 특 이형 설화로서 오래 전에 형성되어 전달되는 과정에서 명칭이 조금씩 달라졌다는 것 이고, 공간적으로는 널리 퍼져 있어 많은 사람의 입을 거치면서 그 이름이 달라졌는

103) 장주근(2000), 앞의 책, p.19.

104) 장주근(1957), 앞의 책, p.38. 장주근은 이 논문에서 ‘島內 동편에서는 선문데할망, 서부에 서는 설문듸할망 또는 설물데할망(설문데할망의 오기인 듯: 필자)이라 하는 것 같고, 神房 高奉仙 영감의 노래 錄音에는 선맹듸할망이라고 발음되어 있다’고 기록하면서 ‘선문데할 망’을 논문의 부제로 달고 있다.

105) 李成俊, <설문대할망說話硏究>, ≪國文學報≫ 10集, 濟州大學校 國語國文學科, 1990, pp.57~

58.

데 이칭이 많은 ‘고종달설화’와 민요의 ‘맷돌ㆍ방아노래’를 또 다른 근거로 들었다.

그렇다면 異稱이 많은 제주 여성의 상징으로 떠오른 창조설화의 주인공 이름은 어떻게 써야 할까.

張漢喆의 ≪漂海錄≫을 보면, 바다에 표류하던 제주민들이 한라산을 보자 “백록선자 (白鹿仙子)님, 살려주소. 살려주소. 선마선파(詵麻仙婆)님 살려주소 살려주소”, “‘옛날에 詵麻姑가 걸어서 西海를 건너와서 놀았다’는 전설”106)이 보이는데, 여기에 보이는 ‘詵 麻仙婆’와 ‘詵麻姑’가 ‘선문대’와 연관 있다고 생각된다. 위급한 상황에서 호소하는 제 주 사람들의 무의식이 반영된 ‘詵麻仙婆’와 창조설화의 주인공 ‘선문대’의 발음이 유사 한 것을 보면, ‘설문대할망’보다 ‘선문대할망’으로 통일하는 것이 좋아 보인다. 무의식 이 반영된 일상적 말투에서 ‘맨 처음의 응답을 유효한 것으로 취급한다’는 방언학의 이론도 ‘선문대할망’의 견해를 뒷받침해 준다. 더불어 ‘설문대할망’이 본격적으로 등장 하는 1985년 이전에 장주근(1957), 임동권(1964), 현용준(1976)이 채록한 설화 속에 ‘선 문대할망’이 많이 등장한다는 점, 그리고 학문용어로 ‘선문대’가 널리 쓰이는 점도 ‘선 문대’를 고집하는 이유이다.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