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선과 행위의 예술로서 무예

문서에서 저작자표시 (페이지 48-51)

‘기천’은 연구자의 인생 전반에 많은 영향을 미친 한국의 전통 무예 이다. 20대 후반부터 무예 수련을 시작했고, 범사 자격을 받았을 정도로 심취한다. 고조선에서부터 이어왔던 이 수련법은 부족 간의 싸움이 있었 을 때는 무술로 사용됐다가 평화의 시기에는 화합의 춤이 되었다. 우리의 역사와 함께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다가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탄압 속에 산중으로 들어갔고 몇 개의 분파로 나뉘기는 했지만, 산중 무예로 지금까 지 그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다. 무예의 빠른 동작 중에는 느린 호흡과 함 께 고요한 에너지가 몸속에 충만하고, 가만히 서서 이루어지는 호흡 수련 중에는 몸속으로 흐르는 빠른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이처럼 본 연구자 는 무예의 수련을 통해 ‘동중정’, ‘정중동’의 개념을 이해하게 된다.

연구자가 무예 수련 중에 경험했던 ‘동중정’은 강한 움직임이 있는 무 예의 연결 동작 중에도 내면 감정과 호흡은 고요함을 의미하는 말이다.

‘정중동’은 한 가지 동작으로 멈춰있거나 앉아서 이루어졌던 호흡 명상 중에 몸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일어났다가 바람처럼 몸 전체를 돌고 다시

멈추면 시원해지는 과정을 반복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를 기천에서는 풍화 수(風火水)의 흐름이라고 한다.

이 무예는 손을 이용하면 권법이 되고, 봉을 이용하면 봉 술이 되고 검 을 이용하면 검술이 되며 음악에 맞추면 춤이 된다. 손끝과 검 끝을 비롯 한 모든 동작에 선의 흐름이 있다. 태극에서 변형된 곡선의 흐름은 몸에 서 손끝, 검 끝으로 이어지며 동작의 연결에도 존재한다. 수학의 무한대 를 나타내는 기호와 흡사한 형태로 뫼비우스의 띠처럼 손바닥의 안과 밖 을 연결하여 무한하게 이어지는 흐름은 공격과 방어에 빈틈이 없으며 춤 처럼 우아하고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무예에서 익혔던 곡선은 춤을 추는 듯한 몸의 움직임과 함께 연필을 든 손에서 다시 종이로 이어졌고 그런 방식으로 행위의 흔적을 남긴다. 이는 무용과 선을 연결하여 설명한 칸딘 스키의 글과도 일치한다. <도판 32>

무용에서는 몸 전체가, 특히 새로운 무용에서는 손가락 하나 하나 까지도 아주 분명한 표현을 지닌 선을 그려내고 있다. ‘현대’무용가는 무대 위에 서 정확한 선을 기초로 하여 움직인다. 그는 스스로의 무용의 콤포지션 속 에 본질적인 요소로서 선을 끌어들이고 있다. 그 밖에, 무용가의 몸 전체는 손가락 끝이나 발가락 끝에 이르기까지 순간마다 끊임없이 선의 콤포지션을 이루고 있다. 52)

드로잉에는 수행의 과정을 내포한다. 검술에 ‘달빛 가르기’라는 검으 로 정면을 가르는 자세가 있다. 기본기를 갖추기 위한 수련법으로 같은 동작을 반복해서 몸에 익혀야 한다. 다음은 이에 대한 연구자의 노트이 다.

검을 내 몸처럼 만들기 위해 한 번은 산에 올라가 달을 향해 서서 만 번 의 검을 내리치는 ‘달빛 가르기’를 한 적이 있다. 4시간이 소요된 힘든 과정의 결과 검이 몸의 한 부분처럼 느껴지면서 흔들리지 않게 검을 사용할

52) W. 칸딘스키, op. cit., p.86.

수 있게 되었고 몸과 마음에 충만한 에너지를 경험하게 된다.

<도판32> 송유미, The beginning 20-117, mixed media on canvas, 45.5 X 45.5 cm, 2020

드로잉에서도 검술에서 사용했던 흐름을 이용하여 점을 설정하고 다양 한 각도에서 검이 흐르듯 그 점을 정확하게 지나도록 수십 자루의 연필을 사용하는 수련의 과정을 거쳤다. 멀리서 보면 고요하게 침잠하는 어두움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에너지로 충만한 선들이 있다. 작품에서 보이 는 재료의 물성들은 더 이상 어둠이 아닌 그 자체로 다른 빛을 발하게 된 다. <도판 33>

<도판33> 송유미, Drawing 20-76, Pencil and graphite on paper, 150 x 200 cm, 2020, 100일 드로잉 중 76번째

문서에서 저작자표시 (페이지 48-51)

관련 문서